‘비밀의 숲’은 비밀의 늪, 한번 빠지면 나올 수 없네

끝없이 궁금하고 의심하게 하라. 아마도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의 동력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비밀의 숲>은 제목이 가진 뉘앙스처럼 끝없이 비밀로 가득한 숲을 헤매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헤매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오랜만에 자발적으로 빠지고픈 그런 몰입의 느낌. <비밀의 숲>은 그래서 마치 ‘비밀의 늪’ 같다. 한 번도 안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 보고 계속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스폰서의 죽음.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당일 케이블 수리기사. 하지만 자신이 그 집에 갔을 때는 이미 그 스폰서가 죽어있었다고 항변하는 수리기사는,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차의 블랙박스에 찍혀진 영상에 의해 그 증언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진다. 그 영상 속에는 수리기사가 마침 그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창가에 한 사내의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 그래서 수리기사는 살인자로 감옥에 가게 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신은 무죄이며 억울하다는 글을 남김으로써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에 대한 비판여론이 생겨난다. 

검사 황시목(조승우)은 경찰 한여진(배두나)과 이 사건을 수사하다 그것이 검찰의 스폰서 비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차츰 그 ‘비밀의 숲’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것들이 의심스러워진다. 그 배후에는 서부지검 차장검사 이창준(유재명)과 그의 오른팔인 서동재(이준혁)가 있다는 게 분명해지지만, 또한 신출내기 검사로만 알았던 영은수(신혜선)의 아버지가 전직 법무부장관이었다 비리 누명을 쓰고 물러난 영일재(이호재) 법무부 장관이었고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황시목은 이 모든 것이 영일재가 만든 완벽히 짜여진 시나리오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이창준 역시 이 사건의 배후에 그가 있다고 의심한다. 한편 이창준의 오른팔이었던 서동재는 자신이 팽 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창준의 성 접대를 했던 업소 여인을 찾으려 하고, 황시목 역시 그녀를 쫓지만 결국 그녀는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비밀의 숲>은 그래서 결국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수사 과정이 이어지지만, 거기에 대해 어떤 실마리나 단서들을 속 시원해 내놓지 않는다. 대신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 진실과 연루된 인물들이 오히려 죽어나간다. 게다가 진실을 좇는 황시목은 과거 폭력행위가 드러나기도 하고 또 용의자 누명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이 <비밀의 숲>은 마치 미로 같다. 부감으로 내려다보면 그 숲이 지목하는 방향이나 그림을 볼 수 있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나무들만 빽빽이 채워져 있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 복잡한 수수께끼를 숲 바깥이 아니라 그 숲 안에서 풀어내는 일. 그것이 황시목이 걷는 그 길 하나하나에 시청자들이 집중하는 이유다. 

보통 이런 정도의 복잡함을 가진 수사물이 좋은 시청률을 가져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4% 대의 괜찮은 시청률을 내고 있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시청자들이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독특한 상황전개와 그것에 몰입하게 만드는 각별한 연출력 덕분이다. 사실은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사안들조차 <비밀의 숲>은 집중하게 만드는 연출을 보여준다. 

그 연출은 시청자들 앞에 상황을 끝없이 던져 반전의 반전을 이어가며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상황들에도 카메라를 비춰 어떤 의구심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더 큰 몰입감을 주는 건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그 추리 과정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 냉철한 이성으로 똘똘 뭉쳐 있는 황시목의 시선으로 이 숲을 헤매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황시목이 선천적으로 뇌에 이상을 갖고 태어나 뇌 절제 수술을 받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 부분은 두 가지 차원에서 드라마에 잘 녹아든다. 그 하나는 검찰 내부에서 내부자로서 수사하는 인물로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수사를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냉철함을 갖춰야한다는 개연성과 공감대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수사과정에서 이를 방해하기 위해 들어오는 갖가지 모략들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감정 자체에 둔감한 캐릭터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는 그래서 거기에 몰입하는 시청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느껴질 힘겨움을 상쇄시켜주는 역할도 해준다. 

이처럼 냉정하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몰입감을 주는 드라마가 있었던가. 보통 “낚인다”고 하면 불쾌한 감정이 들어있기 마련이지만 <비밀의 숲>은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에 의해 약간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그 불쾌함을 상쇄시키고 대신 복잡한 퍼즐을 푸는 재미를 만들어낸다. 풀릴 듯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재미가 주는 일종의 ‘낚이는 즐거움’이라니.

‘비밀의 숲’, 시청자들은 그 숲에 기꺼이 빠져들었다

스폰서 검사들. 그 검사들에게 뇌물을 뿌려온 스폰서의 죽음. 그 스폰서가 갖고 있었다는 검찰 비리 관련 진실들. 그 죽음을 그저 단순 강도 살인으로 덮으려는 부장검사.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은 그 첫 회만으로도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법 정의를 집행해야할 검찰이 오히려 가장 법을 많이 어기는 상황을 목도해오며 수없이 싸워왔지만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그들 앞에 오히려 내부고발자라는 낙인이 찍혀 왕따가 되어버린 황시목(조승우)이 그 검찰 비리를 파헤쳐나가는 이야기다.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그런데 이 황시목이라는 인물의 설정이 독특하다. 어린 시절 뇌수술로 인해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일상적인 삶을 살기는 어려운 인물이지만 어째 바로 이런 무감정한 면들이 검찰 내부의 비리를 파헤치는 검사로서는 최적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이성적인 판단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점이 그렇다. 황시목처럼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극단적인 캐릭터를 세워놓은 건 이 정도의 인물이어야 검찰 내부의 비리를 끄집어내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을 정도로 그 검찰이라는 ‘비밀스런 숲’이 깊고 어둡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황시목과 스폰서 살인사건으로 인연을 맺게 되고 향후 같이 이 힘겨운 진실 파헤치기를 해나갈 경찰 한여진(배두나)은 그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다. 그녀는 타인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공감하는 인물이다. 피해자의 상가를 찾아와 그 노모를 위로하고 부조금을 낼 정도. 경찰로서 자신이 할 역할의 선이 분명하지만, 그 선을 넘어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그녀가 황시목과 파트너가 된다는 건, 황시목과는 정반대로 이 정도로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는 인물이어야 그 어떤 유혹에도 휘둘리지 않고 수사를 해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무감하거나 다소 과하게 공감하거나. 사실 어느 쪽도 보통의 수준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인물들의 성향이지만 그래서 이러한 검찰 개혁의 문제를 환부 수준이 아니라 시스템을 고치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들이다. 사실 스폰서 검사에 관한 보도들로 대중들도 검찰을 잘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는 건 무수히 많은 장르물들이 검찰을 얼마나 비리단체로 그리고 있는가로 잘 드러난다. <비밀의 숲>은 이러한 현실적인 대중정서를 소재로 끌어와 그들과 대적해가는 검사와 경찰 사이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세워 놓았다. 

하지만 <비밀의 숲> 첫 회가 시청자들을 몰입시킨 건, 이런 대결구도와 정황들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인물들 간의 부딪침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비밀의 숲>의 이야기 전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보통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을 드라마가 그릴 때 다소 과장되게 극적으로 그려내는 것과는 정반대다. 

스폰서의 집을 찾아가는 황시목. 그가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스폰서의 어머니. 그래서 집에 함께 가지만 문을 들어서자마자 확인된 살인현장. 그래서 바로 현장 상황들을 통해 그 집에 왔었던 수리기사가 범행에 관련되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바로 쫓기 시작하는 황시목. 그렇게 다짜고짜 자기 길만 가는 황시목을 쫓게 되는 한여진. 그래서 결국은 용의자를 같이 쫓게 되면서 이어지는 인연.... 이런 이야기 흐름들이 너무나 인위적인 흔적 없이 흘러간다. 

사실 그래서 <비밀의 숲>에 대한 기대감은 바로 이렇게 자연스러운 전개를 통해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이야기 전개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전개 과정은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사건들을 툭툭 던져 나열해 줌으로써 오히려 더 시청자들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그 무감함 속에 무언가 비밀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애써 설명하거나 제시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집중해서 그 안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런 힘.

이것은 황시목이라는 무감정한 캐릭터가 주는 몰입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물론 거대한 검찰 비리와 맞서는 인물로서 오히려 힘을 발휘하는 캐릭터 설정이지만, 그 무감정함 뒤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그 비밀스러움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비밀의 숲>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여러 가지 차원으로 해석가능하다. 그것은 부패했지만 베일에 가려진 검찰 조직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들과 대결해가는 인물들 이를 테면 황시목이나 한여진 나아가 신출내기 수습 검사인 영은수(신혜선)가 숨기고 있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청자들은 이미 그 숲의 한 가운데 기꺼이 들어가 있다.

‘맨투맨’의 브로맨스, 멜로와는 다른 휴머니즘이 보인다

다크데스 여운광(박성웅)과 김가드 김설우(박해진). 닉네임만으로 보면 이 조합은 B급 슈퍼히어로물의 주인공들처럼 보인다. 배우로서 영화 속에서는 ‘나쁜 놈’으로 불리는 다크데스지만 실제로는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와 헤어진 연인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아파하는 평범한 남자 여운광. 그리고 그의 보디가드처럼 다가왔지만 사실은 특명을 받고 접근한 코드명 K 국정원 고스트 요원 김설우. JTBC 금토드라마 <맨투맨>의 조합은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른 두 남자들을 중심에 세우고 있다. 

'맨투맨(사진출처:JTBC)'

대놓고 브로맨스를 그려보겠다는 건 <맨투맨>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감지할 수 있는 일. <맨투맨>은 보디가드와 배우라는 직업적 관계로 만난(실제로는 다른 목적으로 만난 것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직업적 관계를 넘어선 인간적인 관계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여운광이 방문하기로 한 러시아의 빅토르 저택에서 목각상을 빼오는 것이 김설우의 임무지만, 그는 죽을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해주며 조금씩 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여운광이 연기 연습을 하겠다며 김설우에게 여자 역할을 시키는 장면은 그래서 코믹하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져 있다는 걸 슬쩍 드러낸다. 의외로 여자 역할을 잘 연기해내는 김설우는 연기 연습이 끝난 후에도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과도하게 몰입하며 눈물까지 흘린다. 물론 이건 웃음을 위한 코미디 설정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또한 연기로 시작한 김설우의 접근이 어느 순간부터 과도하게 몰입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에서 멜로 관계는 생각만큼 잘 보이지 않는다. 여운광의 1호팬이며 그의 매니저인 차도하 실장(김민정)은 물론 그에 대한 무한 애정을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 관계라기보다는 오누이 관계처럼 보인다. 여운광이 살뜰하게 차도하를 챙기지만 거기에 사랑의 감정은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여운광은 한 때 그가 사랑했지만 사고를 당한 후 이별통보도 없이 모승재(연정훈)와 결혼을 해버린 송미은(채정안)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지만 아직도 그 이별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운광과 이미 결혼한 송미은 사이에 멜로 관계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맨투맨>에서 집중되는 건 멜로가 아니다. 대신 여운광과 김설우의 관계가 갈수록 더 깊어지고, 김설우를 처음부터 스토커로 오인했던 차도하가 여운광을 목숨을 걸고 구해낸 그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된다. 또 여운광과 차도하 사이에 흐르는 오누이 관계 같은 훈훈함이나, 김설우와 그의 국정원 담당관인 이동현(정만식) 사이의 형제 같은 모습도 보는 이들을 따뜻하게 만든다. 하다못해 이 드라마는 이동현과 목각상 프로젝트의 국정원 팀장인 장팀장(장현성)의 관계도 사무적 관계로 그리지 않는다. 이 국정원 요원들이 막걸리를 마시거나 국밥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마치 오래된 친구같다.

<맨투맨>은 그래서 멜로 관계를 살짝 빠져 나오면서 보이는 인간적인 관계들이 느껴지게 하는 그 훈훈함이 드라마의 중요한 정서로 깔려 있다. 멜로를 넘어선 휴머니즘의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의 의미는 단지 여운광과 김설우라는 ‘남자 대 남자’의 의미에만 머무는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은 혹 형식적 관계를 벗어버린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마을>, 이 복잡한 미로가 보여주는 것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SBS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와는 사뭇 다르다.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른 장르다. 폐쇄된 공간이 아닌 개방된 공간에서 시청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압도적인 몰입감은 오히려 시청자를 유입하는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사진출처:SBS)'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마치 이런 장르적 한계에 도전이라도 하겠다는 듯 시청자들 앞에 복잡한 미로를 펼쳐놓는다. 하나의 미로를 지났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미로가 나타나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불친절한 느낌을 받는다.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 단서들은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보다는 오히려 의문들을 더욱 증폭시켜 놓는다.

 

사건 없는 마을에 암매장된 시체가 발견됐다는 건 이 드라마의 화두다.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그저 작은 마을. 그러나 그 고요함 뒤편으로 들여다보면 수군수군 대는 수상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 시체가 외지에서 온 김혜진(장희진)이라는 미스테리한 여인이고 그 여자는 이 마을의 최대 권력자인 서창권(정성모)과 내연관계였으며 그것 때문에 서창권의 새 아내인 윤지숙(신은경)과 드잡이까지 했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이들 가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그 죽은 김혜진이라는 인물이 이 마을에 영어교사로 들어온 한소윤(문근영)의 언니가 아닐까 하는 단서들은 서창권의 가족과 한소윤의 가족이 과거 어떤 일인가로 얽혀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의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윤지숙의 배다른 동생 강주희(장소연) 역시 김혜진과 무언가를 함께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녀 역시 이 살인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마을>은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회 한 명씩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언가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인물이 용의자로 등장해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단서를 뒤집고, 확실한 이야기를 숨긴 채 용의자를 줄이기보다는 늘려 나가는 불친절함이 의외로 드라마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많은 추리물과 스릴러물이 가진 힘일 것이다. 숨겨진 비밀과 그 비밀이 양파 껍질 까듯 벗기고 나면 또 다른 국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반복될수록 궁금증과 호기심은 증폭된다.

 

물론 이건 드라마로서는 도전적인 일이다. 시청률을 담보해내지 못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몰입감이 높을수록 시청자들의 새로운 유입은 요원해진다. 중간에 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드라마에 발을 디딘 시청자라면 결코 벗어나기 힘든 미로를 만나게 된다. 그 미로는 복잡해도 꽤나 매력적이다.

 

그런데 도대체 <마을>은 이런 미로를 통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건의 전개는 마을 사람 모두를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즉 애초에 평화로워 보이던 사건 없는 마을은 회가 거듭될수록 엄청난 의뭉스런 사건들이 숨겨져 있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고요한 표면 속에 꿈틀대는 욕망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펼쳐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소윤이 외부인으로서 이 마을에 들어와 느끼는 공포감과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에 대한 궁금증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시선에 맞닿아 있다. 시청자들은 한소윤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 의문의 마을을 들여다보게 되는 셈이다. 은폐된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을 파헤치려는 소윤과 우재(육성재) 같은 인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엄청난 욕망들이 뒤얽혀있고 그것은 때로는 범죄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러면서도 그 욕망에 일조한 모두는 쉬쉬하며 숨기는 상황.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이 미로 같은 드라마를 즐기는 법은 매번 뒤통수를 치는 사건 전개의 복잡함에 빠져들면서도 전체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소윤이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마을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보라.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고 모두가 한 가지씩의 비밀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미로를 즐기기 위해서는 실타래가 필요하다. 소윤과 우재라는 실타래를 쥐고 걸어가면 의외로 놀라운 마을의 실체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예뻤다>, 무려 3배나 뛴 시청률의 비결

 

지금껏 이처럼 드라마틱한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가 있을까. MBC <그녀는 예뻤다>의 첫 회 시청률은 4.8%(닐슨 코리아)로 시작했다. 사실상 드라마로서는 회생이 쉽지 않은 시청률 수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2회에 7.2%로 훌쩍 시청률을 올리더니 그 후로 매회 1%씩 시청률을 올렸고 마침내 13.1%라는 경이적인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에 올라섰다. 시작과 비교하면 무려 3배나 뛴 것이다.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무엇이 이런 드라마틱한 시청률의 원인이었을까. 그 첫 번째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시청자들의 애초 기대감이 워낙 낮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지상파 드라마에서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건 이제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어디서 본 듯한 상황과 캐릭터들 그리고 뻔한 스토리 전개가 그간 지상파 로맨틱 코미디물이 시청자들에게 준 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첫 시청률 4.8%에는 더 이상 로맨틱 코미디에 기대감 없는 시청자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황정음이 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더더욱 스테레오 타입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즉 황정음은 <내 마음이 들리니>, <비밀>이나 <킬미힐미>를 통해 절절한 입장을 드러내는 드라마에서 확실한 연기력을 보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녀의 로맨틱 코미디는 어딘지 과거 초창기 그녀의 존재감을 알린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리얼하게 술 취한 연기를 선보이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예뻤다> 역시 그 정도의 가벼운 작품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첫 회를 본 후 시청자들은 반색했다. 로맨틱 코미디에 항상 등장하는 예쁜 여 주인공의 틀을 과감히 깨버리고 역변한 인물 김혜진(황정음)이라는 캐릭터가 먼저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녀가 처한 일과 사랑이 기막히게 엮어진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들은 마음을 열었다. 낮은 스펙과 역변한 외모 때문에 어딘지 자신의 가치를 한없이 평가절하 하는 김혜진이라는 인물은 로맨틱 코미디의 여자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미생이기도 했다.

 

황정음은 김혜진 캐릭터를 입고 말 그대로 훨훨 날았다. 작정한 듯 망가지는 모습은 그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진짜 김혜진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술 취한 연기로 주목을 끌었다면 그녀는 이 작품에서는 술 취해 핸드폰을 부르는 모습이나 감기약을 먹고 쏟아지는 졸음을 참는 모습 같은 디테일로 보는 이들을 깨알같이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차츰 극중 김혜진의 진가를 차츰 알아가는 김신혁(최시원)의 입장이 되어갔다. ‘그녀는 예뻤다(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녀는 여전히 예쁘다는 생각의 변화를 황정음이 김혜진이란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것.

 

경쟁작이었던 <용팔이>가 버티고 있었지만 매 회 시청률을 올렸고 <용팔이>가 떠나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급반등한 <그녀는 예뻤다>는 따라서 우리가 갖고 있던 로맨틱 코미디와 황정음이라는 배우에 대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로맨틱 코미디도 사회적인 맥락을 담아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는 것이고, 황정음은 이제 더 이상 그 옛날의 시트콤으로 웃음을 주기만 하던 배우가 아니라 이제 정극은 물론이고 희극까지 모두 소화해내는 연기자라는 것이다. 드라마의 캐릭터와 내용이 이토록 그 드라마의 행보와 맞아떨어질 수 있다니. 놀라운 결과가 아닌가



<그녀는 예뻤다>가 재조명한 빼꼼녀 황정음의 진가

 

MBC <그녀는 예뻤다>에 등장하는 르누아르의 작품 시골의 무도회는 이 드라마의 모티브를 제공한다. 무도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춤을 추고 있는 남녀. 남자에게 이끌려 한껏 행복에 가득 찬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무언가 시선으로 말을 건네는 듯한 그림. 그런데 <그녀는 예뻤다>가 주목하는 건 이 여자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발코니 밑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들을 슬쩍 훔쳐보고 있는 이른바 빼꼼녀에 주목한다.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주역이 되지 못하고 그걸 쳐다보고 있는 조연. 그녀는 어쩌다 자기 인생에서 주역이 아닌 조연 역할을 맡게 되었을까. <그녀는 예뻤다>의 혜진(황정음)은 역변한 외모와 보잘 것 없는 스펙과 처지 때문에 어린 시절 첫 사랑이었던 성준(박서준) 앞에 나서지 못한다. 평범한 얼굴이거나 못생긴 얼굴의 여 주인공이 미남에 능력 있는 남자와 어쩌다가 로맨스를 갖게 되는 그렇고 그런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그 이면에는 이른바 스펙사회로 대변되는 번지르르한 이력서 뒤로 제 진면목을 제대로 드러낼 기회조차 갖지 못하며 심지어는 그 자체를 포기하는 젊은 세대의 고충이 깔려 있다.

 

누구나 화보 속의 인물이 되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그 화보 속 인물을 흘낏 흘낏 훔쳐보며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고, 누구나 잡지 속의 멋진 인물을 꿈꾸지만 어쩌다 보니 험하디 험한 그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주인공은 저 편에 있고 우리는 늘 관객의 입장에 서 있다. 저 르누아르의 빼꼼녀처럼.

 

하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 주목하고 바라봐주지 않았을 때 누구나 저 빼꼼녀였다. 훈남이 되어 돌아온 성준도 혜진이 우산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비오는 거리 한 구석에 앉아 과거의 고통 속에 떠는 빼꼼의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유학 가는 날 시골의 무도회의 퍼즐에서 그 빼꼼녀부분을 떼어내 혜진에게 건네준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빼꼼의 존재였던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성준의 시골의 무도회퍼즐에는 그 빼꼼녀의 조각이 빠져있다. 드라마는 성준이 이제 빼꼼녀의 조각처럼 되어버린 혜진을 찾는 이야기다. 달라진 얼굴. 보잘 것 없는 스펙으로 인턴으로 들어와 마치 심부름센터 직원처럼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토달지 않고 열심히 하는 그녀는 더 모스트라는 잡지를 만드는 사무실에서도 빼꼼녀. 그런데 과연 그녀의 진가가 빼꼼녀에 불과한 것일까.

 

사무실에서 그녀의 진가를 먼저 발견한 인물은 신혁(최시원)이다. 호텔 스위트룸 장기투숙객이면서 편의점 컵라면을 즐기는 이른바 스위트룸 노숙자라는 독특한 캐릭터인 그는 사무실 바닥에 떨어진 빼꼼녀퍼즐 조각을 주워 혜진에게 건넨다. 이 사무실에서 마치 빼꼼녀 퍼즐 조각 같은 혜진의 진가를 그가 먼저 발견한 것처럼. 혜진이 예전에는 자신이 예뻤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금도 그래하고 한 마디를 툭 던진다. 과거형으로 살아가는 혜진을 현재형으로 끌어낸 것.

 

<그녀는 예뻤다>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신분으로 태생으로 학벌 같은 스펙으로 또는 외모로 덮어놓고 있는 많은 진가들을 발견하고 상찬하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단지 혜진이라는 인물의 로맨스에만 마음이 심쿵한 것이 아니라, 늘 바닥으로 떨어져도 계속 해서 심기일전하는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저릿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진짜를 느낀 것일 게다.

 

캐스팅의 최적 조건은 그 배우의 입장과 캐릭터가 딱 맞아 떨어질 때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혜진을 200% 생생하게 연기해내고 있는 황정음은 이 드라마에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주목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황정음이라는 배우는 말 그대로 빼꼼녀였다. 어딘지 과장된 연기 때문인지 그녀가 이 정도의 배우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 빼꼼녀는 실로 긍정적으로 역변했다. <내 마음이 들리니>를 거쳐 <비밀>에서 연기의 영역을 확장한 그녀는 <킬미 힐미>로 확고한 배우의 위치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예뻤다>는 황정음의 확실히 깊어진 연기의 다채로운 결을 느끼게 해주는 드라마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로맨틱 코미디가 가져야할 웃음은 물론이고 그 밑바닥에 깔린 슬픔까지도 느껴진다. <그녀는 예뻤다>. 이건 드라마의 제목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빼꼼녀의 가치를 끄집어낸 연기자로서의 황정음도 그렇다.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가면>, 가면 놀이가 돼서는 곤란하다

 

SBS <가면>이 다루려는 건 정체성에 대한 문제다.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의 삶을 살아야하는 자(변지숙)와 죽었지만 타인의 욕망에 의해 유령처럼 떠도는 자(서은하)의 이야기. 도플갱어인 그들은 가면이란 장치를 통해 삶을 바꾼다.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변신 욕구는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재지만, 이러한 범죄에까지 와 닿는 변신에 대한 욕망은 그 사회의 건강하지 못함을 드러낸다.

 


'가면(사진출처:SBS)'

즉 이 드라마는 가면이란 설정 자체가 이미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특징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막상 가면을 씌우고 나니 거기 보이는 많은 놀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적으로 이런 놀이들은 극성을 높여주고 때론 달달하게 때론 자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해준다. 이를테면 가면을 쓴 당사자인 변지숙(수애)과 그 사실을 모른 채 조금씩 그녀에게 마음이 이끌리는 민우(주지훈)의 사랑이다.

 

가면이란 장치를 쓰자 두 사람은 서로 끌리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변지숙은 다가오는 민우에게서 한 걸음씩 물러나게 된다. 자신의 진짜 정체가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또 두 사람은 정략결혼을 한 사이로 한 방에서 지내지만 한 침대를 쓰지 않는다. 이것은 또 하나의 가면 장치다. 그들이 한 침대를 쓸 것인가 아닌가 역시 이 드라마의 달달한 자극 중 하나다.

 

가면을 씌우자 만들어지는 놀이는 이밖에도 많다. 변지숙에게 그 가면을 씌운 석훈(연정훈)은 그녀에게는 이 모든 사실을 터트릴 수 있는 두려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 범죄의 공모자로서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의 정체를 아는 동창을 그는 끝내 살해한다. 또 그녀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서 그는 등장해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해댄다.

 

가면이란 설정은 결국 두 가지 장치를 가능하게 해준다. 멜로의 장애물로서 정체를 숨기는 장치가 그 하나고, 스릴러의 요소로서 범죄 사실을 숨기는 장치가 나머지 하나다. 이 두 장치가 서로 얽히면서 굴러갈 때 드라마의 극적 전개는 가능해진다. 여기에 여전히 가난한 지숙의 집안과 병을 앓는 노모 그리고 사채 빚을 받는 일을 하는 동생의 이야기가 겹쳐지고, 지숙을 향한 석훈의 시선이 단지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죽은 서은하와의 비뚤어진 애정관계도 깔려 있다는 사실은 이 극적 전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좋다. 가면이란 장치는 이만큼 충분한 효용을 드러낸다. 하지만 드라마는 단지 그런 놀이의 쾌감 때문에 보는 건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 흐름이 메시지를 관통해야 하고 놀이의 쾌감 역시 그 흐름 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정도여야 한다. 그런데 <가면>은 이 장치를 활용한 놀이에 너무 깊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구성 또한 약간 패턴화되어간다. 즉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놓인 변지숙을 민우나 석훈이 등장해 구해주는 장면들이다.

 

변지숙의 캐릭터 또한 너무 수동적인 입장만을 만들어 놨다. 즉 그 범죄의 가면을 쓰게 된 그녀의 입장을 가족을 위한 희생 같은 선함에서만 찾다보니 너무 캐릭터가 일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저 밑으로 꾹꾹 눌러놓은 채 수동적인 위치에만 서려 한다. 누군가 그걸 건드려 주었을 때만 깨어나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이 너무 답답하게 여겨지는 면이 있다. 어차피 가면을 썼다면 그 가면이 주는 욕망을 끄집어내는 힘또한 무시할 수 없을 텐데도 그녀는 여전히 신파의 주인공처럼 그려진다.

 

<가면>은 그 장치가 가진 극성이 높은 드라마다. 그래서 시청률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라마가 가면이 가진 욕망의 변주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멜로나 스릴러적인 상황에만 빠져 가면놀이에 탐닉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막장의 유혹에 빠져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만 치닫는. 가면놀이에서 벗어나 좀 더 인물들의 과감한 변신과 그 파국을 그려내는 일은 어려운 일일까



왜 이토록 진실을 밝히려 애쓰는 걸까

 

진실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걸까. SBS <비밀의 문>이 영조와 사도세자의 역사를 가져와 다루는 것이 하필이면 진실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역사라는 것이 본래 그렇지만, 사극은 그 가져온 과거가 그저 옛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 어떤 의미를 가질 때에만 그 힘을 발휘한다. 즉 지금의 어떤 갈증이 역사적 사건을 끌어와 되새겨지는 것이다.

 

'비밀의 문(사진출처:SBS)'

<비밀의 문>맹의라는 영조(한석규)와 노론의 결탁을 증거 하는 비밀을 다룬다. 사도세자(이제훈)와 소론은 그 비밀의 문을 열려고 하고 영조와 노론은 그 문을 애써 닫으려한다. 그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사도세자는 그 애꿎은 백성의 죽음과 누명을 그저 지나치지 않으려 한다. 한 백성의 목숨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의 마땅한 일이라는 것.

 

이 말은 최근의 세월호 정국을 떠올리게 한다. 한쪽에서는 그렇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덮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비밀의 문>이 이러한 정국을 의도하고 만들어진 작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울림을 만드는 건 지금의 정국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제보자> 역시 진실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황우석 사건을 그대로 영화화한 이 작품은 모든 국민이 믿고 싶었던 이야기가 사실은 거짓이라는 걸 밝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집단적인 광기의 양상마저 보이는 맹신의 늪에서 진실 하나만을 쥐고 버텨내는 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가녀리게 느껴진다.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경력을 걸거나, 아니면 가진 걸 모두 버려서야 겨우 그 진실 하나를 지켜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뭉클하면서도 씁쓸함을 남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진실의 무게를 다루는 작품들이 나왔고, 또 그 작품들이 모두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재구성혹은 재해석되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의 대중정서는 어쩌면 진실에 목말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숨겨진 비밀의 문을 열고자 하는 열망 혹은 진실을 밝히는 제보자를 지켜내고픈 마음에 시선이 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게다가 작품을 통한 재구성재해석에는 현실이 이뤄내지 못하는 것을 허구 속에서나마 실현해내려는 욕망 또한 들어가 있다. <비밀의 문>은 도발적이기는 하지만 지금껏 역사와 사극이 다루던 방식을 벗어나 사도세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진실의 문제로 재해석을 시도했다. 역사에 나온 뒤주에 가둬져 죽음을 맞이하는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이 진실의 문제로 접근하면, 마치 진실을 알게 된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봉인하는 듯한 뉘앙스로 다가온다.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끌어와 재해석했다는 점은 그만큼 이 사극이 가진 진실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보자>는 훨씬 더 사실적이다. 거의 이름만 달라졌을 뿐, 황우석 사건을 마치 기록하듯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워낙 이 사건이 언론 등을 통해 가려지고 믿고 싶은 대중들의 열망에 의해 뒤틀려진 사실들이 많은 터라, 오히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 별다른 해석 없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그래서 그 자체로 더 큰 진실의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세상이 얼마나 많은 의문들과 의혹들을 있어 이처럼 진실을 갈구하게 된 것일까. 신문을 펴면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 사건 사고들이 제대로 대중들에게 의혹 없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그런 갈증들은 <비밀의 문>이나 <제보자> 같은 허구 속에서 꿈틀댄다. 진실을 밝히려 애쓰는 자들의 그 간절한 마음. 그것이 지금 대중들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갖는 마음일 것이다.

 

<비밀>, 집착을 버릴 때 더 커지는 것

 

가지려는 것보다 놓아주는 것이 더 큰 사랑이다. <비밀>의 엔딩은 그 사랑의 진정한 비밀을 알려주면서 마무리 되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강유정(황정음)은 행복을 위해 아들을 놓아주었고, 그토록 조민혁(지성)을 갖기 위해 심지어 자신을 망가뜨리기까지 한 신세연(이다희)은 그를 놓아주었다. 조민혁은 사장직을 버렸고 안도훈(배수빈)도 신세연과 성공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을 내려놓고 자신의 과오를 모두 인정했다.

 

'비밀(사진출처:KBS)'

결국 이 모든 사건들은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민혁에 대한 신세연의 집착이 그렇고, 안도훈의 성공에 대한 집착이 그러했으며, 박계옥(양희경)의 아들에 대한 집착 또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결국 강유정이라는 캐릭터는 이 집착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받은 인물이면서, 동시에 이 집착의 고리들을 끊어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조민혁에게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했고, 안도훈에게 정의를 알게 했으며, 박계옥에게는 진정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세상에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떻게 갚으며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준다. 누구나 죄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거기에 대해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것. 강유정이 왜 그토록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는가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죄 없는, 아니 그 죄를 비밀로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 비밀을 드러내고 용서를 구했을 때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

 

드라마는 강유정이 법정에 선 장면으로 시작해서 안도훈이 법정에 서는 장면으로 끝난다. 억울한 강유정이 차츰 현실을 깨달아가고 그래서 결국에는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을 구조적으로도 염두에 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애초에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시작했다는 얘기다. 첫 회에 벌어진 사건에 깔린 숨겨진 이야기들이 마지막 회에 드러날 수 있는 건 이 완결된 이야기 구조 덕분이다.

 

<비밀>은 드라마가 참신해질 수 있는 비밀을 알려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통속극에 가까운 평범한 멜로와 복수극이 될 수도 있었던 소재였지만, 그 안에 시청자가 궁금해 할 수 있는 비밀 코드를 담아냄으로써 이야기를 팽팽하게 만들었고, 그 비밀 속에 사회와 정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집어넣음으로써 이야기가 통속 치정극으로 흘러가게 하지 않았다. 결국 참신한 드라마란 전혀 새로운 소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치밀하게 다루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야기로 변주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걸 <비밀>은 보여주었다.

 

또한 <비밀>은 드라마의 성패가 단순히 작가의 시청률로 만들어진 지명도나 원고료 액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시청률에 올인하면서 자기복제나 심지어 막장도 서슴지 않는 중견작가들의 세상 속에서, 신인작가의 과감한 발굴이 얼마나 드라마를 참신하게 만들어주는가를 <비밀>의 작가들을 통쾌하게도 알려주었다. 이로써 입증된 단막극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비밀>은 그래서 주제의식이 그러하듯이 가지려 애쓰지 않았기 때문에 완성도를 가져갈 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만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고, 그 시청률만을 위해 이름 있는 작가들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으며, 연기가 아닌 스타성만을 앞세운 연기자를 세우려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비밀>이 가지려 했던 것은 작품의 완결성이고 그걸 통해 추구하는 대중들과의 공감대였다. 그것은 결국 <비밀>이 시청률에서도, 무명작가의 이름을 알리는 데도, 또 그동안 평가절하 되었던 연기자를 재발견하는데도 성공한 이유가 되었다.

 

이제 <비밀>은 종영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들에게 던진 질문은 끝난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스타작가와 스타배우에 힘입어 그저 시청률만 나오면 다라는 식의 드라마 제작 패턴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시청률을 위해서 자극적인 코드를 계속 복제해 사용하는 퇴행적인 드라마를 반복할 것인가. 몇몇 스타작가와 스타배우들에게 과도하게 집착함으로써 생겨나는 드라마 제작의 양극화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비밀>은 이 많은 질문들에 이미 스스로 답을 보여주었다. 집착이 오히려 비뚤어진 결과만을 가져오듯 놓아야 산다. 이 반복되는 드라마 패턴에 대한 집착을.

분노, 연민, 죄의식까지 <비밀> 지성 연기 놀라워

 

역시 좋은 드라마는 좋은 캐릭터를 통해 좋은 연기자를 재발견하게 한다. <비밀>에서 유독 주목받는 연기자는 황정음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불행 속에서 미칠 듯이 오열하는 황정음의 눈물 연기는 분명 <비밀>이 재발견한 그녀의 가능성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황정음만큼 놀라운 연기는 지성에게서도 발견된다.

 

'비밀(사진출처:KBS)'

이것은 지성이 연기하는 조민혁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놀라운 복합심리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지금껏 드라마에서 좀체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내면을 보여준다. 처음에 그 감정은 분노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뺑소니 사고로 죽게 한 이가 강유정(황정음)이라고 알게 된 그는 그녀의 남자친구로 하여금 그녀를 심판하게 해 감옥에 보낸다.

 

하지만 감옥에 보낸 것으로 조민혁의 분노는 멈추지 않는다. 가석방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강유정은 아이를 잃게 된다. 출소한 후에도 조민혁은 스토커처럼 그녀를 따라다니며 사사건건 괴롭히는데 이상한 것은 그토록 처절한 복수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그것이 그녀에 대한 자신의 연민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분노가 조금씩 연민이 되는 이유는 강유정이 하는 일련의 행동들, 이를테면 피해자 어머니를 매번 찾아가 끝까지 사죄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자신이 생각했던 파렴치한이 아니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는 모습에서 길바닥에 사고자를 버리고 도망가는 뺑소니범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는 것. 대신 그는 강유정의 옛 남자친구인 안도훈(배수빈)을 점점 의심하게 된다. 그녀가 진범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복수심과 얽혀 묘한 연민이란 감정의 형태로 생겨난다.

 

그러나 결국 뺑소니 사건의 진범이 안도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조민혁은 그에게 분노하면서 동시에 강유정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녀가 저지른 일도 아닌 일로 자신이 그녀를 비극의 끝단으로 밀어부친 것에 대한 죄책감. 조민혁의 죄책감은 그래서 그녀에 대한 극단의 사랑으로 바뀌어나간다.

 

“네가 신경 쓰여서 미치겠어! 그러니까 내 옆에 붙어있어!” 이 대사 한 줄은 실로 조민혁이 갖고 있는 복잡한 감정들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거기에는 어디로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분노가 깔려 있고 그녀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동정심 그리고 무고한 그녀를 망가뜨렸다는 자신의 죄책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가 결국 그녀에게 배우는 마지막 감정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지키고 싶은 게 뭐지?”하고 그가 그녀에게 물었던 것. 그녀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모든 걸 끌어안는 진정한 사랑을 그는 알고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복잡한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연기로 표현해냈을까. 지성이 연기한 조민혁의 초반 모습과 지금 현재의 모습은 거의 180도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을 죽인 살인자에 대해 분노했던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지금은 그 살인자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극단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점이다. 지성이 얼마나 다채로운 감정의 결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비밀>에는 유독 웃으면서 우는 연기가 자주 보인다. 배수빈이 미친 듯이 웃으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장면에서 실로 악마적인 느낌마저 주었다면, 차도에까지 뛰어들며 비밀을 지키려하는 강유정을 보며 웃으며 눈물 흘리는 지성에게서는 답답함과 연민, 분노, 사랑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묻어난다. 이것은 아마도 이 작품의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작가는 인간이 한없이 흔들리는 갈대처럼 갸녀린 존재라 여기는 게 아닐까.

 

하지만 제 아무리 좋은 캐릭터가 있다고 해도 그걸 소화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황정음은 물론이고 지성, 그리고 배수빈과 이다희까지 이 작품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이 작품의 성공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지만 좋은 작품에 좋은 캐릭터 그리고 좋은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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