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보고 나면 다른 드라마들 너무 느슨하게 느껴진다는 건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는 여러 모로 드라마 시장에 만만찮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비밀의 숲>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지만, 이수연 작가의 작품은 그 압축적인 밀도와 입체적인 접근이 기존 드라마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확인시킨 바 있다. 생각해보면 단 한 사람이 살해되는 <비밀의 숲>이 무려 16회 동안 긴장감을 잃지 않고 몰입감을 주었다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라이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밀도와 입체감을 선사하고 있다. 늘 봐오던 의학드라마가 아닌 자본주의가 침투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을 병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담아내고 있는 <라이프>는 이제 겨우 6회가 방영됐을 뿐이지만, 그 이야기 전개의 촘촘함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하고 있다. 잠깐 장면 몇 개를 놓치게 되면 그 이야기가 갖는 뉘앙스를 따라가지 못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밀도의 드라마다. 

밀도도 밀도지만 사건을 다루는 입체감 또한 남다르다. 단순히 구승효(조승우)라는 총괄사장이 부임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예진우(이동욱)로 대변되는 의사집단의 반발을 선악구도로 그리는 줄 알았던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 구승효가 꼬집는 의사들도 별 수 없는 사적 욕망의 치부를 보며 사건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는 실제 현실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사안들이 바로 그런 복잡성을 띄고 있어 단순한 선악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걸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 있다는 증거다.

절대적인 악인 줄 알았던 구승효가 어느 순간에는 선한 얼굴처럼 보이다가, 다시금 그것이 고도의 계산된 수읽기에 따른 것이라는 게 또 드러난다. 갑자기 병원에 적자를 내는 3과를 지방 전출 보내려던 걸 말 한 마디로 뒤집어 버리는 그는, 실제 원하던 것이 그것이 아니라 병원 내의 적과 아군을 판별하고 그 틈새를 찾아 이익이 날 수 있는 곳에 자기 식의 경영을 하려는 심산이었다는 걸 드러낸다. 

물론 시청자들로서는 이만큼 촘촘한 밀도가 다소 따라가기 힘겹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이 속내를 숨긴 채 자신들의 욕망을 추구하는 입체적인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복잡하게 다가올 수 있다. 구분선이 명쾌하지 않고 마치 미로에 들어간 것처럼 중첩되어 있는 사안들과 인물들 때문에 혼돈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라이프>라는 작품은 여타의 많은 드라마들이 쉽게 그려내곤 했던 이른바 ‘현실’이라는 걸 보다 정밀하게 담는 작품이 된다. 다소 시청률이 빠지더라도 이 작품이 갖는 남다른 가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건 일단 이 복잡한 미로 같은 <라이프>의 세계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하면 다른 드라마들이 너무 느슨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심지어 몇 편이면 끝날 이야기를 장황하게 멜로를 엮어 길게 늘이곤 하는 우리네 드라마들이 새삼 지루하게 여겨진다는 것. 이미 미드 같은 해외의 드라마들이 추구하는 그 밀도와 입체감은 이제 우리네 드라마에도 조금씩 요구되고 있다. 그래서 <라이프>가 만들어놓은 밀도와 입체감은 향후 우리네 드라마가 조금 더 깊은 완성도로 나아가는 길에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사진:JTBC)

‘라이프’ 조승우, 악역 같은데 단순 악역이 아닌 이유

이제야 왜 조승우가 이런 역할을 맡았는지 이해가 간다. 이수연 작가의 전작이었던 <비밀의 숲>에서 조승우는 황시목이라는 검사 역할을 연기했다. ‘첫 번째 나무’라는 뜻의 ‘시목’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이 검찰이라는 거대한 비밀의 숲의 숨겨진 적폐들을 드러내는 중심 역할을 해냈다. 그는 어느새 이수연 작가의 페르소나 같은 배우로 다가온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이수연 작가의 새 드라마 <라이프>에서 구승효라는 상국대학병원 신임사장 역할을 한다는 것이 어딘가 의아하게 다가왔다. 구승효는 사학재단을 인수해 실상을 병원으로 수익을 내려는 화정그룹이 그 ‘의료 서비스 사업’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 병원에 온 인물이다. 그는 만성 적자의 원인이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료센터를 지역병원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파견 보내려 한다. 그것이 경영적으로 유리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반발한다. 그것은 병원을 지나치게 ‘자본주의적 논리’로만 생각하는 일이라는 것. 이 과정을 보면 시청자들로서는 구승효가 악역이고 의사들은 그 악과 마주해 대적하는 인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승효가 병원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찾아낸 의사들의 비리는 이런 단순한 선악 구도를 깨버린다. 

암센터에서 발견된 약물투여 오류(?)로 인한 환자의 사망을 사실상 덮어버린 의사들의 비리가 드러났던 것. 그리고 그런 일은 예외적으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자주 벌어지는 일들이란다. 그런데 구승효가 이 사건을 추궁하자 암센터장인 이상엽(엄효섭)이 하는 변명이 흥미롭다. 그는 갑자기 전공의들의 근무여건을 꺼내들고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승효는 그것이 치졸하고 비겁한 변명이라고 일축한다. 전공의들의 근무여건을 핑계로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 구승효는 그렇게 바쁜 전공의들을 위해 이상엽 암 센터장은 무얼 했냐고 묻는다. 골프채 잡을 시간에 그들을 도울 수도 있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 부분은 우리가 막연히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고 그러니 그들의 행위는 정의롭고 선할 거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깨는 대목이다. 그들 역시 그런 숭고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심지어 환자의 생명을 앗아간 잘못을 덮어버리기도 한다는 것. 

또 이 집단 역시 어디 출신이냐를 따져가며 누군가를 왕따 시키기도 하는 그런 부조리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걸 주경문(유재명)이란 인물을 통해 드러낸다. 유일하게 상국대학병원 출신이 아닌 주경문은 죽은 병원장 이보훈(천호진)의 천거에 의해 흉부외과 센터장을 맡아 일해오고 있었지만, 병원장이 죽고 나자 마치 끈 떨어진 연처럼 다른 센터장들에 의해 은근한 따돌림을 당한다. 

결국 <라이프>가 다루려 하는 건 그래서 이제 파업 결정이 내려진 의사들이 정의롭고 그런 결정을 내리게 만든 경영주들은 부정하다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의사들은 때론 생명 앞에 고귀한 그 직업정신을 드러내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개인적 욕망에 의해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병원은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곳이지만 그 잘못된 관행들에 의해 억울하게도 환자가 난데없는 죽음을 맞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잘못은 숨겨진 채. 

그러니 구승효라는 인물의 입체적인 면모가 드디어 드러난다. 그는 사학재단을 인수해 병원으로 돈을 벌려는 자본의 전면에 선 부정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병원이 가진 비리들을 끄집어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경영적인 선택을 하는 구승효 같은 사장도, 또 입만 열면 환자의 생명을 운운하는 의사들도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은 없다는 것. 어떤 면에서는 사장의 선택이 옳고 어떤 면에서는 의사들의 선택이 옳다. 

그래서 애초에 이수연 작가가 의도한 대로 이 드라마는 마치 몸에 항원이 들어와 항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 아니라, 항원–항체 반응으로 상보적인 결과가 나오는 그 과정을 담는다는 것이다. 왜 구승효 역할에 조승우여야만 했는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구승효라는 인물만큼 병원이 가진 양면을 온전히 드러내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비밀의 숲>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라이프>에서도 온전히 드라마의 중심에 서 있다. 병원이라는 시스템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주는 역할을 맡은.(사진:JTBC)

‘황금빛 내 인생’으로 신혜선의 황금빛 시대 열리나

아직 20대에 이처럼 복합적인 연기 스펙트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사실상 주인공인 서지안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신혜선이라는 배우가 떠올리게 하는 생각이다. 흙수저 청춘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지만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인물이 주는 건강함을 보여주면서도,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고 속물적인 욕망을 드러내면서 또한 그것에 대한 죄책감까지 느끼는 인물. 서지안이라는 인물은 그 연기가 만만하지 않은 다양한 면면을 가졌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이렇게 된 건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작품이 보여주는 극적인 상황 전개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코드를 가져왔지만 그 전형적인 활용을 벗어나 한 회 한 회 빠른 전개를 통한 상황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황금빛 내 인생>이 가진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빠른 전개 속에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인물들의 심경 변화는 무엇이 진짜 ‘황금빛’ 인생인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급변하는 감정들을 연기를 통해 보여줘야 하는 연기자들로서는 이 작품이 그리 호락호락할 수 없다. 전 회에서는 짠내 나는 비정규직의 삶을 보여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재벌가의 숨겨진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재벌가에 입성하지만 그 삶이 생각만큼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또한 그러한 든든한 백이 있어 정규직 채용에서 밀려났던 그 자리에 떡하니 들어가 제 능력을 발휘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그 즐거움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은 자신이 아니라 동생이 그 친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자신의 모든 일상이 지옥으로 변해버리고, 그 와중에 부모를 생각하며 어떻게든 대신 속죄하려 안간힘을 쓰는 인물. 그러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최도경(박시후)과 오빠 동생 사이가 아닌 연인의 감정을 갖게 되는 그 감정변화들을 보여줘야 하는 인물이 바로 서지안이다. 

만만치 않은 이야기 전개이고, 그 속에서 쉴 새 없이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지만 이를 연기하는 신혜선은 그다지 큰 이물감 없이 이를 소화해내고 있다. 어떤 면으로 보면 너무 급변하는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계속 몰입할 수 있게 된 데는 신혜선이 보여주는 이 복잡 다변한 캐릭터에 대한 몰입연기가 한 몫을 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사실 신혜선의 가능성은 전작이었던 tvN <비밀의 숲>을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청렴결백했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후배 검사들에게 조사를 받았던 그 충격적인 경험을 했던 명문가 출신의 수습검사 영은수 역할을 그는 놀랍도록 깊이 있게 연기해 보여줬다. 스릴러 장르가 가진 어딘지 의심이 가는 그런 면면들까지 캐릭터에 담아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주면서 이 배우의 존재감은 확실히 강렬해질 수 있었다. 

그런 가능성이 <황금빛 내 인생>을 통해서는 제목처럼 활짝 열리는 느낌이다. 20대 여자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현 대중문화의 현장 속에서 신혜선이라는 확실한 선을 보이는 배우가 특히 반가운 건 그래서다.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이라는 인물은 이제 본격적인 멜로와 함께 뒤틀려진 출생을 바로잡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그 과정을 설득시켜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여겨진다. 그 과정들이 어딘지 믿음이 가는 신혜선이라는 신예에게는 연기자로서의 ‘황금빛’을 열어줄 길처럼 보이니.

‘비밀의 숲’이 남긴 여운, 진정한 적폐청산이 가능하려면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이 종영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시즌2를 요구하는 등, 이 작품이 엔딩까지 남긴 여운은 지금도 계속된다. 첫 회부터 이토록 숨 가쁘게 달려온 작품이 이렇게 완성도 높은 엔딩까지 보여줬고, 또한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에 남긴 울림도 결코 작지 않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비밀의 숲>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마지막 회에 이르러 이 모든 사건의 설계를 했던 장본인이 이창준(유재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밀의 숲>이 하려는 이야기는 확실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관계와 검찰이 엮어진 오래된 유착과 그로 인해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적폐청산의 문제였다. ‘밥 한 끼’로 시작하는 관계들이 얽혀 거대한 욕망으로 변질되며 그로 인해 탄생하게 되는 괴물들. 한두 명의 검사가 뜻을 갖는다고 해도 결국 그들만 배제되는 ‘비밀의 숲’. 그 비밀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비리의 숲’. 

이 문제를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해결해보기 위해 이수연 작가가 필요로 했던 건 이창준 같은 자기희생까지 해버리는 괴물과 심지어 뇌수술로 인해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이 제거되어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황시목 같은 검사였다. 특히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평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황시목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적폐청산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 한계를 넘어설 정도의 냉철함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결국 이 모든 적폐들이 쌓이게 되는 그 시발점은 <비밀의 숲>이 말했던 것처럼 별거 아닌 것처럼 하게 되는 ‘밥 한 끼’가 만들어내는 부적절한 관계다. 그 관계에서부터 청탁이 시작되고 그 청탁은 법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검사들의 본질을 흔들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린 본질은 가해자들의 죄를 덮어버리고 대신 무고한 희생자들을 남긴다. 

그래서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황시목 같은 다소 과장된 캐릭터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폐쇄된 조직으로서 여전히 수장의 한 마디가 법이 되는 검찰과,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밥 한 끼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검사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들. 그 뒤엉킨 욕망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일이 이만한 무감함이 아니면 해낼 수 없다는 걸 이수연 작가는 통감했으리라. 

검사가 등장하는 많은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황시목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세워뒀다는 사실은 이수연 작가의 만만찮은 공력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신인 작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작가는 캐릭터가 바로 주제의식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비밀의 숲>에는 저 조연들에 이르기까지 허투루 처리된 캐릭터가 없었다. 

모두가 상황에 따라 ‘애매하게’ 움직이는 ‘인물들의 숲 속’에서 황시목처럼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 그 숲을 바꾸는 ‘첫 번째 나무’로서 나아갈 수 있었던 그 이유로 엄청난 두뇌나 힘이 아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의지’를 제시했다는 건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어느 때보다 적폐청산을 희구하는 요즘, <비밀의 숲>의 이런 문제제기는 한번쯤 모두가 생각해봐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입체적인 인물들의 반전, ‘비밀의 숲’이 남달랐던 까닭

첫 회에서부터 몰입하게 만들었던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이 어느덧 종영을 맞았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매회가 영화 같은 몰입의 연속이었던 <비밀의 숲>. 검찰의 비리를 담는 이야기가 이전에 없었던 것도 아니고, 스릴러물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도대체 이 괴물 같은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빨아들인 그 힘의 원천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이마에 착한 사람, 무서운 사람 써 붙여놨으면 좋겠어요.” 같은 특검에 있던 윤세원(이규형)이 박무성(엄효섭)을 죽인 범인이었다는 것을 못 믿겠다는 듯 김정본(서동원)이 그렇게 말하자 한여진 경위(배두나)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럼 여기도 애매한 사람 꽤 많을 걸요... 있습니다. 그런 사람. 범인 잡겠다고 먼지 뒤집어쓰고 애쓰는 거 보면 좋은 사람 같은데 남한테 몽땅 뒤집어씌우는 거 보면 이건 또 뭔가 싶은 사람.”

한여진이 지목하는 그 애매한 사람은 바로 팀장이다. 열심히 범인을 잡으려 뛰어다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이 문제에 연루되자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려 애쓰는 모습을 한여진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녀의 동료인 장건(최재웅)이 말한다. “사람들 다 거기서 거기에요. 막 죽일 새끼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고 그냥 흐르는 대로 사는 거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한여진은 그의 말에 또다시 의미심장한 반론을 달아놓는다. “그렇게 흐르기만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곳에 닿아 버리면요?”

아마도 이 짧은 대사 안에 <비밀의 숲>이 인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과 그로 인해 이 드라마가 얼마나 큰 몰입감을 만들어냈는가에 대한 비밀이 들어 있지 않을까. 그 비밀은 입체적인 인물에 있다. <비밀의 숲>은 우리가 스릴러 장르에서 늘 접하던 착한 사람과 무서운 사람의 경계를 세워두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든 이 양면을 갖고 있고,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면을 보인다는 것. 

이 점은 우리가 드라마를 보며 믿었던 어떤 인물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어떤 행동을 했다는 것에 놀라움과 충격을 받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영은수(신혜선) 검사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사건을 추적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버지가 불명예를 안고 물러나게 된 것에 대한 사적 복수심을 드러내는 인물로 그려진 면이나, 서동재(이준혁)처럼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캐릭터, 겉으론 황시목(조승우)을 지원하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를 이용하고 있는 이창준(유재명) 수석이나, 결정적인 반전을 보여준 윤세원 등등. <비밀의 숲>의 인물들은 한여진이 말하듯 어느 한 쪽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애매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저마다 갖고 있는 비밀들이 있어 평시에는 그토록 정의롭게 보였던 인물도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정반대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것. 그렇다면 <비밀의 숲>은 어차피 인간은 상황에 좌지우지되는 존재라는 걸 말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여진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흘러 다니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곳 깊숙이 닿아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그 흐름에 자신을 맞기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다. 

자신의 아이가 끔찍하게 죽게 된 사건으로 인해 윤세원이 박무성에게 복수하려 했다는 건 마치 그런 흐름을 이해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흐름이 잘못됐다는 걸 황시목은 지적한다. “윤세원 씨가 그걸 처벌할 권한이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그러자 윤세원은 자신의 선택이 어쩔 수 없었던 아픈 이유를 드러낸다. “그럼 권한을 가진 사람은 대체 뭘 했는데요?” 누군가의 잘못된 결정이 만들어내는 비극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결과로 돌아온다. 

<비밀의 숲>은 그래서 검찰 비리라는 그 원류가 얼마나 멀리까지 잘못된 흐름들을 계속 양산해내는가를 드러내준다. 그 흐름 안에서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그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그 흐름 속에서 인물들은 ‘애매해진다’. 그 애매함이 <비밀의 숲>에 시청자들이 빠져드는 이유였고, 그 애매함을 만들어내는 원류의 잘못된 흐름을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낸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었다. 재미와 의미가 입체적인 인물들의 면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작품. 우리가 <비밀의 숲>을 수작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크리미널 마인드', 어째서 쉽지 않은 작품일까

<크리미널 마인드>는 워낙 유명한 미드다. 그래서 애초에 이 작품이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우리네 시청자들 역시 그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일찌감치 성공은 힘들다는 의견들도 만만찮았다. 아무래도 원작이 있는 작품은 기본적으로 원작과의 비교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 마련이다. 첫 방송된 tvN 수목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드러난 것도 역시 바로 그런 원작이 있는 작품이 갖는 한계였다. 

'크리미널 마인드(사진출처:tvN)'

시청자들은 원작에서의 캐릭터들과 리메이크작에서 재연된 캐릭터와 그 연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물론 우리식으로 해석된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이런 비교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은 있다. 하지만 이 유명한 미드를 본 시청자들이 적지 않고, 그만한 팬덤이 있는 작품이 갖는 부담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원작에 비해 캐릭터들의 매력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폭발로 인해 대원들을 잃고 트라우마를 겪는 김현준(이준기)과 그의 여동생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며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지만, 미드가 갖고 있는 쿨함과 우리네 장르드라마들이 줄곧 그려왔던 가족적이고 정적인 부분의 중간 어디쯤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런 비교점을 차치하고라도 이 드라마가 첫 회에 보여준 내용은 너무 클리셰에 가까웠다고 보인다. 본격 장르드라마들이 별로 보이지 않던 한 2년 전만 해도 이런 연쇄살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럭저럭 참신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시그널>에서부터 현재 방영되고 있는 <비밀의 숲>은 물론이고, <피고인>, <조작> 같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장르물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단순한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올 리가 만무다. 

한국적인 정서를 상당 부분 넣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그리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목된다. 도심 한 가운데서 폭탄이 터지고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프로파일러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면면이 우리가 봐왔던 형사들의 친근함을 주지 못하는 건 그들의 외형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가 추구하는 목적성의 문제라고 보인다. 

예를 들어 <비밀의 숲> 같은 작품은 비리로 얼룩진 검찰 조직 내의 적폐 청산이라는 목적성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전개가 꽤 복잡해도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힘이 생긴다. 그만큼 우리네 정서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드라마가 소재는 물론이고 주제적인 측면에서 끌어오지 않는다면 궁극적인 ‘정서적 공감대’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이제 겨우 첫 술을 뗐으니 모든 걸 판단하는 건 섣부른 일이다. 또한 적어도 손현주와 이준기라는 배우에 대한 믿음 하나는 여전히 기대감을 접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드라마에 대한 실망감들을 간단한 문제로 넘기기는 쉽지 않다. 첫 회에 대한 실망감은 물론 원작으로부터 생겨난 기대감에 미치지 못한 면에서 더 컸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2회에 이 드라마만의 강점을 제시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행보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제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도 <크리미널 마인드>처럼 원작이 있는 작품보다 <비밀의 숲>처럼 순수 우리 창작물이 훨씬 유리할 수 있다. 원작이 주는 권위는 있을지 몰라도 그 권위만큼의 부담을 넘어서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연 <크리미널 마인드>는 그 어려운 걸 해낼 수 있을까.

'비밀의 숲' 잠시 화장실도 가지 못할 긴장감 얼마 만인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반전이다.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이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예측을 하다보면 그 예측이 빗나간 자리에 어김없이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자리한다. 그러면서 그 반전은 의혹을 증폭시킨다. 윤과장(이규형)의 어깨에 새겨진 알파벳 글자 DJ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가영이 말한 0과 7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어째서 그가 가영을 납치했고, 또 그런 인물이 어째서 특임에 들어와 황시목(조승우)을 돕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이런 식의 반전은 이미 매회 거의 반복되었다고 보인다. 황시목을 돕는 것처럼 보인 영은수(신혜선)가 박무성(엄효섭)이 살해당하는 날 만났던 인물이라는 게 밝혀질 때도 그랬고, 간신히 살아남은 가영이 병원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할 뻔한 순간에 이창준(유재명)의 아내이자 이윤범(이경영) 회장의 딸 이연재(윤세아)가 현장에 있었다는 게 드러날 때도 그랬다. 그래서 이연재가 범인이 아닌가 의심하게 했지만, 그것 역시 사실이 아니고 진범은 김우균(최병모) 경찰서장이라는 게 밝혀졌다. 

<비밀의 숲>은 이처럼 황시목과 특임 팀이 추적하는 진실에 대해 끊임없이 시청자들이 추리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추리는 번번이 빗나간다. 그리고 의외의 인물이 범행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으로 충격을 주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게다가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욕망이 어디로 튈지 전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서동재(이준혁)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그는 황시목을 돕기도 하지만 이창준 밑으로 들어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윤범에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그의 비리를 캐고 다닌다. 그는 한 마디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하는 인간이다. 서동재 같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인간들이 득시글대고 있기 때문에 <비밀의 숲>의 이야기는 예측불가능한 생동감이 생겨난다. 

반전의 반전, 게다가 끊임없이 던져지는 떡밥. 그래서 <비밀의 숲>은 자칫 그 미로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복잡성을 갖는다. 너무 많은 인물들의 감정들이 디테일하게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잠시 화장실도 가지 못할 만큼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그 장면 장면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보통 이런 정도의 복잡함과 디테일은 시청자들이 몰입의 피곤을 느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청자들은 <비밀의 숲>의 복잡함을 즐기고 있는 눈치다. 시청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비밀스런 이야기들의 숲이 끊임없이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목표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비밀의 숲’으로서의 진실이 가려진 검찰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가 엇나간 세계다. 그러니 그 진실을 파헤치고 숲의 전모를 드러내는 과정들은 쉽지는 않지만 드라마가 추구하는 목표와 맞닿아 있다. 복잡함이 있지만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 자체에 이미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녹아 있다는 것. 

그래서 황시목이 그 무심한 얼굴로 자신을 회유하고 때론 협박하는 권력자들 앞에서 자신이 갈 길을 가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비밀의 숲>의 이야기는 이제 정치권력과 대기업 그리고 외국기업까지 연루된 방산비리 이야기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어딘지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사건들에서 대중들은 아마도 누구나 분노의 감정을 느낄 것이다. 비밀로 자꾸 덮으려는 것들 속에서 그것을 걷어내려는 황시목의 행보가 특별히 사이다로 여겨지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현실 정서가 반영된 시청자들의 욕망은 이 복잡한 미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된다. 충격적인 반전이 계속 벌어지고, 너무 많은 반전이 등장해 머리가 복잡해져도 결국 그 과정들이 숲의 비밀을 드러내기 위한 통과제의라는 데 공감한다. 황시목에 의해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밝혀질 그 끝을 기대하며.

‘비밀의 숲’, 굉장한 액션도 없는데 뭐 이리 쫄깃하지

이렇게 무심하고 무정한 남자주인공이 있을까.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의 황시목(조승우)은 그 감정의 깊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겠는 인물이다. 그렇게 된 건 어린 시절 뇌수술을 받게 되면서 갖게 된 후유증 때문이다. 완전히 무감정한 상태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만큼 감정을 깊이 느끼지 못하는 상태.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그래서 이 인물은 그와 관계를 맺게 되는 여성들과 마치 감정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 같은 거리감을 준다. 검찰이라는 거대한 ‘비밀의 숲’에서 비리를 파헤쳐나가는 그 험난한 길 위에서 그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인 형사 한여진(배두나)이 때때로 호감을 드러내도 그는 무감한 얼굴이다. 그의 후배 검사로 들어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영은수(신혜선)가 그의 집까지 찾아와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제가 걱정되셨어요?”라고 물어도 이 철벽남은 그만 가라는 말만 남긴다. 

형사물이라고 해도 남녀 사이의 관계에 있어 생겨나는 멜로적 감성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드라마라는 세계는 우리네 삶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고, 거기 남녀가 등장하면서 사랑이 빠진다는 건 전혀 리얼하지 않은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아예 설정부터 황시목을 무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세움으로써 멜로에 대해 철벽을 쳐 놓는다. 

<비밀의 숲>이 이렇게 무감한 검사를 세워놓은 뜻은 따로 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황시목이라는 인물을 세워둠으로써 비리와 비밀로 얼룩진 검찰 조직의 ‘사적 감정과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그 비리들을 제대로 파헤치기 위함이다. ‘시목’이라는 이름이 ‘비밀의 숲’을 파헤치는 ‘첫 번째 나무’를 의미하는 것처럼, 이 무감한 검사는 검찰 조직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종의 리트머스지이자 진단 시약으로서 축조된 캐릭터다. 

유재명 검사장에게 스폰서가 연결해준 여자 가영(박유나)의 휴대폰을 갖고 있는 서동재(이준혁) 검사를 끝까지 추적해 그 증거물을 숨기려는 현장을 덮치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토끼몰이’가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된 건 어찌 보면 이 황시목이라는 인물이 가진 무감한 얼굴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은 주변인물들은 물론이고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까지도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결과가 나온 후에야 비로소 그의 행동의 이유가 밝혀진다. 

이를 테면 영은수가 서동재의 방에 들어갔다 나와 들키고 추궁 당할 때 굳이 황시목이 나섰던 건 알고 보면 그녀에게 어떤 사적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건 서동재가 황시목 역시 그 휴대폰을 찾고 있다는 걸 알려줘, 그로 하여금 스스로 그 증거물을 유기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결국 황시목의 계산대로 서동재는 ‘토끼 몰이’를 당하고 결정적인 순간 현장에서 체포된다. 

<비밀의 숲>은 사실 드러난 장면들만 꺼내놓고 보면 그다지 대단한 액션 신이나 하다못해 도심 추격전 같은 것도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스릴러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쫄깃함이 느껴지는 건 비밀에 접근해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몰입감의 요인으로서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가 한 몫을 차지한다. 검찰 조직이라는 비밀의 숲에 대한 호기심만큼, 이를 파헤쳐나가는 황시목이라는 비밀스런 인물에 대한 호기심도 크다는 것.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렇게 무감한 캐릭터로 세워놓고 멜로에 철벽을 쳐 놓자 거꾸로 이 인물과 관계를 맺는 한여진 같은 인물과의 감정 교류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의외로 설렘을 준다는 사실이다. 황시목이 순간 화를 내는 모습을 한여진 종이에 그림으로 그려 주머니에 넣어주며 “화를 냈다”고 좋아하는 장면이나, 그 그림을 집에서 펴보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이런 저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장면 같은 것에서는 그 철벽 사이에 조금씩 어떤 균열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보면 <비밀의 숲>에서 황시목이라는 무정한 캐릭터는 작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색깔이기도 하다. 또 그것은 비리로 얼룩진 검찰이라는 숲을 수사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생겨나는 멜로적 감정에도 효과적이다. 이토록 무정한 캐릭터의 남자주인공이 있었을까 싶지만, 그래서 더더욱 빠져드는 인물이 바로 황시목이다.

‘비밀의 숲’은 비밀의 늪, 한번 빠지면 나올 수 없네

끝없이 궁금하고 의심하게 하라. 아마도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의 동력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비밀의 숲>은 제목이 가진 뉘앙스처럼 끝없이 비밀로 가득한 숲을 헤매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헤매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오랜만에 자발적으로 빠지고픈 그런 몰입의 느낌. <비밀의 숲>은 그래서 마치 ‘비밀의 늪’ 같다. 한 번도 안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 보고 계속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스폰서의 죽음.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당일 케이블 수리기사. 하지만 자신이 그 집에 갔을 때는 이미 그 스폰서가 죽어있었다고 항변하는 수리기사는,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차의 블랙박스에 찍혀진 영상에 의해 그 증언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진다. 그 영상 속에는 수리기사가 마침 그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창가에 한 사내의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 그래서 수리기사는 살인자로 감옥에 가게 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신은 무죄이며 억울하다는 글을 남김으로써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에 대한 비판여론이 생겨난다. 

검사 황시목(조승우)은 경찰 한여진(배두나)과 이 사건을 수사하다 그것이 검찰의 스폰서 비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차츰 그 ‘비밀의 숲’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것들이 의심스러워진다. 그 배후에는 서부지검 차장검사 이창준(유재명)과 그의 오른팔인 서동재(이준혁)가 있다는 게 분명해지지만, 또한 신출내기 검사로만 알았던 영은수(신혜선)의 아버지가 전직 법무부장관이었다 비리 누명을 쓰고 물러난 영일재(이호재) 법무부 장관이었고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황시목은 이 모든 것이 영일재가 만든 완벽히 짜여진 시나리오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이창준 역시 이 사건의 배후에 그가 있다고 의심한다. 한편 이창준의 오른팔이었던 서동재는 자신이 팽 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창준의 성 접대를 했던 업소 여인을 찾으려 하고, 황시목 역시 그녀를 쫓지만 결국 그녀는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비밀의 숲>은 그래서 결국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수사 과정이 이어지지만, 거기에 대해 어떤 실마리나 단서들을 속 시원해 내놓지 않는다. 대신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 진실과 연루된 인물들이 오히려 죽어나간다. 게다가 진실을 좇는 황시목은 과거 폭력행위가 드러나기도 하고 또 용의자 누명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이 <비밀의 숲>은 마치 미로 같다. 부감으로 내려다보면 그 숲이 지목하는 방향이나 그림을 볼 수 있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나무들만 빽빽이 채워져 있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 복잡한 수수께끼를 숲 바깥이 아니라 그 숲 안에서 풀어내는 일. 그것이 황시목이 걷는 그 길 하나하나에 시청자들이 집중하는 이유다. 

보통 이런 정도의 복잡함을 가진 수사물이 좋은 시청률을 가져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4% 대의 괜찮은 시청률을 내고 있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시청자들이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독특한 상황전개와 그것에 몰입하게 만드는 각별한 연출력 덕분이다. 사실은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사안들조차 <비밀의 숲>은 집중하게 만드는 연출을 보여준다. 

그 연출은 시청자들 앞에 상황을 끝없이 던져 반전의 반전을 이어가며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상황들에도 카메라를 비춰 어떤 의구심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더 큰 몰입감을 주는 건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그 추리 과정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 냉철한 이성으로 똘똘 뭉쳐 있는 황시목의 시선으로 이 숲을 헤매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황시목이 선천적으로 뇌에 이상을 갖고 태어나 뇌 절제 수술을 받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 부분은 두 가지 차원에서 드라마에 잘 녹아든다. 그 하나는 검찰 내부에서 내부자로서 수사하는 인물로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수사를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냉철함을 갖춰야한다는 개연성과 공감대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수사과정에서 이를 방해하기 위해 들어오는 갖가지 모략들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감정 자체에 둔감한 캐릭터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는 그래서 거기에 몰입하는 시청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느껴질 힘겨움을 상쇄시켜주는 역할도 해준다. 

이처럼 냉정하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몰입감을 주는 드라마가 있었던가. 보통 “낚인다”고 하면 불쾌한 감정이 들어있기 마련이지만 <비밀의 숲>은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에 의해 약간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그 불쾌함을 상쇄시키고 대신 복잡한 퍼즐을 푸는 재미를 만들어낸다. 풀릴 듯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재미가 주는 일종의 ‘낚이는 즐거움’이라니.

tvN발 주말드라마 지각변동 첨병으로 나선 '비밀의 숲'

주말드라마의 새로운 풍경이다. 사실 지상파가 장악해왔던 주말드라마는 전통적으로 가족드라마 혹은 막장드라마 일색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가 30%를 넘기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MBC의 <당신은 너무합니다>, <도둑놈, 도둑님> 역시 과거만큼은 아니어도 10%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주말드라마의 ‘공식적인 틀’이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다. OCN과 tvN이 쏟아내고 있는 장르드라마들 때문이다.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최근 tvN이 편성시간대를 토일로 바꿔 방영하고 있는 <비밀의 숲>은 본격 장르드라마로서 2회 만에 4%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비밀의 숲>은 검찰 비리를 파헤치는 검사와 형사의 이야기로 드라마라기보다는 영화에 가까운 몰입감을 주는 드라마다. 주말드라마가 늘 갖고 있는 흔한 멜로, 결혼 반대하는 양가집 이야기, 그게 아니면 복수극 같은 상투적인 이야기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 들어가는 무정한 검사 황시목(조승우)과 그와는 정반대로 피해자에 공감하는 경찰 한여진(배두나)의 수사과정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집중하게 만든다. 

이것은 대본과 연출에 있어서 드라마적인 수준이 아니라 영화적으로 접근하는 ‘디테일’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이 벌어진 집을 주변에서부터 집안까지 그 행적을 따라가며 추리해가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시퀀스는 끊김 없이 15분 가까이 이어진다. 황시목은 살인현장에서 여러 가지 추론들을 해가며 시간을 재고 그것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런 집중적으로 보여지는 디테일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거의 현장에 함께 하고 있는 듯한 실감을 준다.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사의 깊이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 비리의 증거들을 향해 다가오는 황시목과, 그에게 자신과 스폰서가 아무 관계가 아니라는 걸 덮어주는 대가로 이창준 차장검사(유재명)가 그를 형사부장으로 앉히겠다고 제안하는 그 장면을 <비밀의 숲>은 대사로만 약 5분 가까이 이어간다. 단지 대사만 주고받는 시퀀스지만 그 말 속에 담겨진 갖가지 의미들과 그 말을 던지는 이들의 표정에 숨겨진 진짜 속내 같은 것들이 겹쳐지면서 그 시퀀스의 몰입도는 그 어느 액션장면보다 치열하게 보여진다. 

그간의 지상파가 장악해온 주말드라마를 염두에 두고 볼 때, 이런 영화적인 몰입의 경험을 주말드라마를 통해 할 수 있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tvN이 금토드라마를 통해 장르적 특성들을 갖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보여왔고, OCN이 늘 해왔던 대로 스릴러 장르드라마를 최근 괄목할 정도로 키우면서 우리가 생각해왔던 주말드라마의 선입견은 조금씩 깨져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토일 시간대로 맞춰져 케이블 채널이 주말드라마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변화다. 그 전면에 내세워진 건 장르드라마다. 

물론 갑자기 주말드라마의 시청자들이 취향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는 지상파 주말드라마의 패턴들에 대해 식상함을 토로하는 시청층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걸 온전히 받아주는 케이블 채널 장르드라마들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어떨까. 주말 하면 떠올리던 가족드라마, 막장드라마의 홍수에서 이제는 장르드라마로의 전환이 가능해질 수 있을까. 결과는 쉽게 장담할 수 없어도 현재 이들 장르물에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호평은 분명 어떤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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