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저씨’ 신구 캐릭터는 어째서 갑질 재벌들 비판처럼 보일까

현실에도 이런 회장님이 있을까. 성폭력으로 시작됐던 미투 운동이 이제 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로 확산되고 있는 현실이어서일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장회장(신구)이 마치 이런 현실을 에둘러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삼안 E&C라는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회사는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만 같다. 건물을 설계하고 그 위험을 진단하는 일을 하는 회사라는 설정 자체가 그렇다. 우리네 불행한 현대사의 대부분이 이른바 ‘성장 지상주의’와 더불어 생겨난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그렇다. 실제로 이 회사에서 윤상무(정재성) 같은 인물은 실적을 위해 건물의 안전진단도 적당히 하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한다. 그것이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도 않고.

이 회사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제대로 일을 하는 인물이 주인공 박동훈(이선균)이다. 그는 건축구조기술사로서 경영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일은 건물에 대한 ‘구조적 판단’을 내리는 것뿐이라는 소신을 지켜나간다. 모두가 라인에 붙어 자리보전을 위한 암투에 몰두할 때 그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그런 그를 눈여겨보는 인물이 바로 장회장이다. 왕전무(전국환)가 쥐락펴락하며 자기 회사인 양 힘을 넓혀가자 그를 견제하기 위해 로얄패밀리의 아들인 도준영(김영민)을 대표로 세우긴 했지만 그는 그가 미덥지 못한 인물이라는 걸 알아본다. 실제로 도준영은 이 회사 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람의 뒷조사를 하거나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와 바람을 피우고, 장회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캠핑장에서의 ‘불 피우기’를 하는 게 그가 하는 일의 전부처럼 보인다.

장회장이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건 사실상 이 회사의 전권을 쥐고 있는 회장님이지만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봐온 회장님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자신의 손으로 일군 회사라서 그런지 애사심이 남다르고, 진짜 일을 하는 박동훈 같은 인물에게 선선히 다가가 “밥 한 번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가 남다른 회장님이라는 게 드러나는 대목은 회사의 비정규직이었던 이지안(이지은)이 그의 과거를 뒷조사하는 이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자 버럭 화를 내며 그를 찾아오라고 하는 부분에서다. 이지안은 박동훈의 상무 심사를 위한 부하직원의 인터뷰 자리에 나가 그가 얼마나 따뜻한 인물이었는가를 피력하며 이 회사에서의 몇 개월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말한 바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장회장은 그래서 이지안의 진심을 들여다보게 됐고, 그런 그가 회사를 떠나게 됐다는 소식에 “사과라도 해야겠다”며 찾아오라 했던 것.

스펙과 자기 측근만을 챙기고, 직원들을 거의 노예처럼 부렸다는 재벌가 회장님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요즘 이런 회장님은 아마도 판타지일 것이다. 그저 모닥불을 피우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낙으로 여기고, 저 비정규직 사원 하나의 일에까지 이토록 마음을 쓰는 회장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장회장의 면면이 갑질 재벌들의 비판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다.(사진:tvN)

<상속자>, 현실의 축소판을 보는 재미 혹은 끔찍함

 

SBS가 새로 파일럿으로 내놓은 <인생게임-상속자(이하 상속자)>9명의 일반인들이 한 공간에 모여 네 계급으로 나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일종의 리얼리티쇼다. 과거 <>이 애정촌에 모인 남녀들의 관계를 리얼리티쇼로 담아냈다면, <상속자>는 태생()적으로 정해진 계급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양상들을 역시 리얼리티쇼 형식으로 담아낸다.

 

'상속자(사진출처:SBS)'

룰은 간단하다. 운으로 금수저를 뽑은 인물이 초대 상속자가 되어 계급의 맨 꼭대기에 서고 그가 바로 밑 계급 집사 1명과 그 밑 계급 정규직 3명을 뽑는다. 그리고 남은 인원 4명은 비정규직이 된다. 상속자는 이들이 지내는 방세와 식비를 받아 돈을 벌 수 있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방세와 식비를 내야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이 룰에서 집사는 예외적 존재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가장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자가 우승자가 되는 게임.

 

아주 간단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계급으로 구성된 룰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금수저 흙수저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기고, 권력을 가진 상속자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거의 폭군에 가까운 방세와 식비를 가져가려 한다. 조악한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는 비정규직들은 연합하여 다음 선거에 권력을 잡으려 하지만 이게 만만치가 않다. 상속자와 정규직들이 이미 더 공고한 연합을 만들어 비정규직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한 게임이지만 어떻게든 계급을 넘어서기 위해 배신과 야합이 난무하면서 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아직 방영되지 않은 다음 편 예고에서는 눈물을 쏟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지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이 게임에 머물지 않고 감정을 건드리는 건 그것이 고스란히 현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등록금 대출금에 허덕이며 알바를 전전해 살아온 닉네임 샤샤샤라는 여성출연자가 상속자가 되어 그 호사와 권력에 취하는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라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지기까지 한다.

 

<상속자>는 이처럼 리얼리티쇼가 보여주곤 하는 사람들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거기에 우리 사회의 현실을 투영시킴으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대단히 자극적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즉 누군가가 연합할 것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혼자 잘 살기 위해 배신을 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마저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이 계급의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작동방식 그대로다.

 

그런데 이 <상속자>에서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 그건 방영 전부터 예고편에 등장해 기대감을 높였던 김상중이다. 그리고 그는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이 프로그램의 이면에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방송분량이 일반인 출연자들의 리얼한 행동들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 마스터 김상중의 모습은 뒤편으로 슬쩍 빠져 있다. 도대체 김상중은 이렇게 전면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왜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인물로 서 있는 걸까.

 

그건 바로 그가 이러한 끔찍한 현실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조장되고 만들어진 현실이라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계급사회라는 시스템 속에서 불공평한 삶을 살아가며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루하루가 힘들고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며 밟고 밟히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사실은 누군가 조장한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삶이라는 것. 김상중은 그런 존재가 현실에도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잘 보이지 않던 우리네 현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드는 인물이다.

 

김상중이라는 외부적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상속자>는 그래서 인간군상을 보는 재미를 선사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적나라함이 주는 끔찍함 같은 걸 느끼게도 해준다. 물론 이 같은 시스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당사자들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실제 현실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이 가상 시스템 안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다른 스토리를 전해줄 가능성도 높다. <상속자>라는 파일럿의 확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무한도전>과 차승원의 만남, 왜 늘 특별했을까

 

무려 9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무모한 도전>에 나왔던 차승원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대중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연탄을 옮겨 쌓는 당시의 미션에서 차승원이 던진 연탄을 노홍철은 끝없이 받아냈다. 잘 생긴 모델에 잘 나가는 배우가 우스꽝스런 쫄쫄이복을 입고 얼굴에 탄칠을 잔뜩 한 채 그게 뭐라고 그리도 열심히 하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그건 마치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된 <무한도전>이 지향하는 세계의 전조를 보는 것만 같았으니까.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리고 9. 차승원이 다시 돌아왔다. 역시 그답게 그의 앞에 놓인 건 극한의 일의 세계였다. 이름 하여 극한 알바’. EBS에서 방영되고 있는 극한직업의 패러디다. <무한도전>극한 알바라는 특집을 기획한 데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가 있다. 그건 물론 최근 <미생>처럼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직장인콘텐츠가 보여주는 일의 세계를 다룬다는 면도 있고, 또 최근 <카트> 같은 영화가 보여준 비정규직의 문제(여기에서는 알바의 문제도 다뤄진다)를 환기시키는 의미도 있다.

 

250미터 상공에서 63빌딩의 유리창을 닦는 일을 무려 10년 간이나 해온 분이 던진 높은 곳보다 돈이 가장 무섭다는 말 한 마디에는 그 살풍경한 일의 세계 속으로 살기 위해 매번 뛰어들어야 하는 생업인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고소공포증을 말하는 출연자들에게 힘이 드니까 아무 생각이 안 난다는 생업인의 한 마디는 그래서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무한도전>극한 알바라는 아이템을 들고 온 것에는 이런 외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올 한 해 길과 노홍철이 모두 음주운전으로 하차하는 내홍을 겪은 <무한도전>이 다시금 초심을 새롭게 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로 시작했던 그들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결국 최고가 되었다. 하지만 그 꼭대기는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위기가 된 셈이다. <무한도전>이 갑자기 <무모한 도전>으로 되돌아간 데는 그 초심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차승원은 그 <무한도전>의 초심을 떠올리게 하는 <무모한 도전>의 아이콘처럼 떠오르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진지함 속에는 우스우면서도 동시에 가장의 짠함이 느껴진다. “이럴 줄 알았어. 또 탄광이야.”라고 탄식하는 차승원의 모습은 그래서 웃음과 애잔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는 온 몸을 던져 웃음을 주면서도 그 성실하게 망가지는 모습 속에 어떤 페이소스를 만드는 그런 인물. 그가 바로 차승원이다.

 

차승원은 최근 뜬금없이 친자 확인 소송으로 아픔을 겪기도 했다. <최고의 사랑> 독고진으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차승원에게는 뼈아픈 상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차승원은 노아를 마음으로 낳은 자신의 아들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공식입장을 밝혀 오히려 대중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해도 차승원 역시 상처받는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에게 <무모한 도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극한 알바라는 세계는 그래서 어쩌면 차승원 스스로 자신의 초심을 다잡는 계기일 수 있다.

 

차승원은 노홍철의 빈 자리를 확실히 채워주었다. <무한도전>은 차승원과 함께 연탄을 나르던 그 <무모한 도전> 시절로 돌아가 초심을 되새길 수 있었고, 차승원 역시 그 때의 그 경험 속에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초심을 저 살풍경한 극한의 일터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통해 찾으려 했다는 건 <무한도전>의 진심을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그 마음은 더 낮은 곳으로 향하는 것. 거기에 <무한도전>의 초심이 있으니 말이다.

 

<인터스텔라> 광풍에 가려진 <카트>의 현실

 

영화 <카트> 상영관이 팍 죽었어요. <인터스텔라> 흥행 광풍에 직격탄을 맞고 휘청이다가 빌빌거리는 중입니다. 제작자로서 뼈가 아프네요. 가늘고 길게라도 오래 가고 싶습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해 절박한 맘으로 만든 영화, 많이 봐주세요. 힘이 돼주세요.”

 

'카트(사진출처:명필름)'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마치 <카트>라는 영화의 처지가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외된 노동자의 처지처럼 다가왔다. 자신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것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지금 우주 스펙터클의 광풍 속에서 들리지 않는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는 감독의 이름처럼(?) 놀라운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토록 우주로 날아가 심지어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었던가. 심지어 작은 스크린에서 본 관객들은 영화를 제대로 본 게 아니라며 아이맥스 영화관에 줄을 서는 기현상이 벌어질 정도다. 이 정도면 스펙터클의 새 장을 연 것이나 마찬가지다.

 

놀란 감독이 대단한 것은 이 우주적인 스펙터클을 다시 가족애와 같은 인간적인 끈으로 묶어낸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복잡한 과학 지식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우주 반대편에서 모니터 하나를 통해 저 편에서 날아온 자식의 메시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복잡하고 신비한 우주의 스펙터클 속에서도 우리는 길을 잃지 않게 된다.

 

하지만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당장 처한 현실만큼 중요하다 여겨지지는 않는다. <카트>의 제작자 심재명 대표가 최근 상영관 축소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은 그래서다. 비정규직의 문제. 어찌 보면 지나는 길에 누구나 한 번쯤을 봤을 지도 모르나 내 현실이 더 급박해 서둘러 발길을 돌렸던 그네들의 이야기.

 

<카트>는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은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걸 들려주는 영화다. 대단한 주장을 하는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념적인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우리 옆집 아줌마가 어느 날 갑자기 겪게 된 이야기를 어떤 편향 없이 담담히 보여주는 그런 영화. 그래서 그것이 누구나의 코앞에 닥칠 현실이라는 걸 알려주는 영화.

 

물론 영화가 어떤 당위에 의해 봐야 하는 그런 것일 수는 없다. 하지만 <카트>는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고 또 의미도 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드러내고, 그걸 통한 각성을 일깨워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 영화가 블록버스터들의 광풍 속에 가려져 많은 이들에게 보여질 기회조차 조금씩 박탈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이야기다.

 

우주의 스펙터클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현실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스펙터클이 주는 잠시 간의 마취적인 매혹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이 자칫 가려버릴 우리네 현실은 저 여전히 존재하는 비정규직들의 절규조차 들리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듣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될 그 현실을.

 

<카트>, 염정아와 디오가 보여준 자본의 얼굴

 

사실 엑소 디오에 열광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카트>라는 영화는 그가 나오니 봐야하는 영화정도로 생각될 지도 모른다. 이미 SBS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그의 괜찮은 연기를 본 대중들로서는 그 이전에 찍었던 <카트>에서의 연기 또한 궁금해질 터. 실제로 이 영화에서 디오는 첫 연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사진출처:영화 <카트>

하지만 <카트>에서 디오가 연기한 태영이라는 인물에 점점 빠져들면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건 돈 앞에 치졸해지는 살풍경한 현실이다. 물론 더 마트라는 대형마트의 비정규직의 무단 해고사태를 다루는 이 영화에서 그가 주인공은 아니다. 하지만 고등학생으로 분한 태영이라는 인물이, 비정규직으로 해고되어 회사와 싸워나가는 엄마 선희(염정아)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는 에피소드는 영화의 의미를 훨씬 확장시킨 면이 있다.

 

<카트>는 생계를 위해 더 마트에서 아무런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도 철저히 로서 살아가는 비정규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디테일들이다. 진상부리는 고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 그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하는 비정규직. 정규직을 미끼로 야근을 시키는 회사. 스스로도 가장으로서 회사의 부당함을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관리자들. 그리고 관리의 편의성이나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아무 때나 해고되는 현실. 그걸 그저 담담하게 보여준다.

 

결국 회사의 부당해고와 맞서 싸우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더 마트의 선희나 싱글맘 혜미(문정희) 그리고 청소원 순례(김영애) 같은 이들도 닥치기 전에는 결코 실감하기 어려웠던 현실이다. 이들은 노조의 노자도 모르는 아줌마들이다. 이것은 아마도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TV 뉴스를 통해 가끔 보이는 노조의 농성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환기시킬 뿐 그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는 좀체 전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카트>가 보여주는 건 비정규직이라는 저들의 문제가 사실은 우리의 문제라는 전언일 것이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그 상황을 <카트>는 아프게도 가까이서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 대단한 어떤 의도가 아니라 그저 계약대로 회사를 다니게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일 뿐인데도 경제에 엄청난 불이익을 주는 것처럼 매도되는 그 현실이 몹시도 아리다. 우리는 아마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트의 고객 입장으로 그들을 봐왔을 것이다. 왜 자신들 문제로 고객이 피해를 봐야 하냐는 비난을 던지기도 하면서.

 

<카트>는 비정규직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이를 정규직의 문제로까지 확장시킨다. 정규직인 동준(김강우)이 이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과정에는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자본의 욕망 앞에서는 똑같이 무력한 존재라는 것이 드러난다. 결국 비정규직 다음은 정규직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규직, 비정규직의 문제로 비틀어놓은 시각을 자본과 노동자의 문제로 바로잡아 놓는다.

 

그리고 다시 엑소 디오가 연기한 태영이라는 인물이 조금씩 전면에 등장하면서 이것이 사회생활을 현실로서 겪고 있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나이 어린 고등학생들에게도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한창 공부해야할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그들은 그 생계의 현장에서도 착취당한다. 그래서 태영과 그의 엄마 선희가 서로를 이해하고 껴안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건 그것이 단지 모자 간의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같은 경험으로 생겨난 일종의 동지의식이 주는 뭉클함이다.

 

엑소 디오를 보러갔다가 거기서 현실이 보였다면 이 영화는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자본이 드리워놓은 어두운 그림자들과 부조리한 현실이 발견된다. 노동의 문제가 단지 노동자들의 전유물처럼 착각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 늘상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걸 태영이라는 인물은 보여준다. 그것이 더 마트라는 살풍경한 현실의 축소판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본은 이미 그렇게 우리 일상 어디든 침탈해 들어오고 있다.

 

<나쁜 녀석들>, 순간 <미생>보는 느낌을 받았다면

 

이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는 이에겐 정규직 채용의 기회와 대폭 연봉 인상을 약속드립니다.” <나쁜 녀석들>의 이 대사를 들으며 순간 <미생>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대사는 나쁜 놈들 잡는 나쁜 놈들이라는 기발한 설정의 드라마 <나쁜 녀석들>에 나오는 것이다. 이 대사를 던지는 황여사(이용녀)라는 인물은 인신매매는 물론이고 멀쩡한 사람의 장기를 빼내 팔아먹는 이른바 회사의 대표 정도 되는 인물이다.

 

'나쁜 녀석들(사진출처:OCN)'

이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비리 형사를 가장해 들어온 나쁜 녀석들은 그러나 정체가 들통 나면서 수십 명의 칼든 이 회사의 사원들에 둘러싸인다. 출입구는 통제되고 인터넷 사내전화 핸드폰을 비롯한 모든 통신기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이들을 도와줘야할 후위의 타격대들 역시 황여사에 월급(?) 받는 나쁜 놈들이다.

 

오구탁(김상중)은 황여사를 인질로 해서 회사를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칼든 회사원들은 끝없이 나타난다. 이것은 마치 좀비물의 새로운 해석처럼 보인다. 밀폐된 공간은 공포감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멀쩡한 사람의 장기를 빼내는 수술대는 좀비 영화가 갖고 있는 컬트적인 느낌마저 준다. 게다가 이 회사에는 아이들마저 그 끔찍한 현장 속에 붙잡혀 있다.

 

나쁜 놈들의 끝장. 이것이 좀비물과 유사하게 여겨지는 건, 좀비라는 제거해야할 당위성을 두고 가장 잔인하게 그들을 제거하는 이 드라마의 방식이 좀비물을 빼다 박았기 때문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괴물들을 세워놓았기 때문에, 건드리기만 해도 사람이 날아가는 박웅철(마동석)의 폭력은 시원시원한 액션으로 돌변한다. 이정문(박해진)의 사이코패스적인 치밀함은 그 괴물들을 제거하는데 맞춤이고 마치 칼날 같은 날카로움을 보여주는 정태수(조동혁) 역시 저들 편이 아닌 우리 편으로서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돈이면 사람 장기든 뭐든 빼내는 이 괴물 같은 집단을 황여사의 회사로 비유해내는 장면은 <나쁜 녀석들>이 왜 그토록 대중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회사의 비정규직 문제와 사람 등골 빼먹는 노동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시 하나면 좀비처럼 달려드는 회사원들의 이야기와 맞아 떨어지며 이 만화 같은 드라마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사실 이 이야기가 어떤 정서를 담아내지 못하고 그저 보여주기 위한 폭력으로만 흘러갔다면 이런 대중들의 열광을 가져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쁜 녀석들>은 그 안에 샐러리맨이 봐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현실적인 상징들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조직폭력배에 연쇄살인범과 살인청부업자로 구성된 나쁜 녀석들에 자꾸만 동조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동조 끝에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쩌다 우리는 이토록 <나쁜 녀석들>에게 마음을 열게 된 걸까. 바로 그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번뜻 떠오르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괴물처럼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쁜 녀석들에게 갖게 되는 정서적인 지지와 거기서 발견하게 되는 살풍경한 현실. <나쁜 녀석들>을 보며 느껴지는 마음 한 구석의 시원스러움과 끔찍함의 정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포스트잇 세태에 던지는 질문

 

맞아요. 제가 김미영이에요. 진짜 흔하고 평범한 이름이죠? 제 얼굴처럼. 포스트잇 보면 꼭 저 같아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소중하진 않죠. 편하고 만만하고 쉽게 버려도 되니까.”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이런 저런 심부름과 잡무에 시달리던 평범해 보이는 한 여사원이 갑자기 카메라를 쳐다보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자신이 포스트잇을 닮았다고 말한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사진출처:MBC)'

그녀의 이름은 김미영(장나라). 너무 흔해서 보이스피싱의 대명사처럼 이용되는 그 이름(김미영 팀장)과 같다. 뭐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회사 일과는 상관없는 심부름까지 그녀가 도맡아 하곤 한다. 착하다기보다는 자신이 거절하면 상대가 민망해 할까봐 그녀는 거절을 못한다.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소중하진 않고 편하고 만만하고 쉽게 버려도 되는포스트잇 같은 존재. 그건 어쩌면 현대인들의 얄팍한 관계를 표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한 김미영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자존감 제로의 김미영이 운명처럼 만나는남자는 정반대로 자의식 과잉의 이건(장혁)이란 인물이다. 전주 이씨 9대 독자. 그의 회사에서 만든 샴푸 광고 촬영 현장에 등장하는 이건의 모습은 자신감을 넘어서 과장된 몸짓을 연발하는 판타지 속에 살아가는 인물 같다. 왜 그렇지 않을까. 그는 장인화학이라는 회사를 물려받아 무려 주가총액을 다섯 배나 올려놓은 인물. 돈이면 돈, 능력이면 능력. 안되는 게 없는 그런 인물이다. 그것이 작은 것의 가치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허세라는 함정을 만들고 있지만.

 

김미영과 이건의 만남은 어찌 보면 전형적이다. 왕자님 이건과 현대판 신데렐라 김미영. 우연 혹은 운명처럼 마카오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 두 사람. 이건은 자신의 옆에 피앙세인 세라(왕지원)가 아닌 김미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가 의도적으로 접근한 꽃뱀이 아니냐고 몰아세운다. 결국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이건은 맨발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그녀가 이 사건을 일으킨 형부와 사장 아저씨의 선처를 요구하는 걸 듣고는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 타인을 생각하는 그녀의 진심을 보게 된 것.

 

맨발인 그녀에게 신발을 갖다 주는 시퀀스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형이다. “착각하지마. 넌 그냥 네 별명처럼 포스트잇 걸이야. 필요할 때 잘 써먹다가 마음에 안 들면 금방 버리는. 나 변호사야. 변호사가 비정규직하고 연애하고 싶겠어? 귀족이 평민이랑 어떻게 사귀어.” 이렇게 김미영에게 모욕을 주는 민 변호사(김영훈)에게 이건은 니가 귀족이라고? 넌 그냥 레기야. 쓰레기. 너 같은 건 평민 축에도 못 끼는 개백정 망나니 같은 새끼라고!” 한 바탕 쏘아준다.

 

김미영이 그런 남자에게 모욕당하는 걸 이해할 수 없어 당신 바보냐고 쏘아대던 이건은 그녀가 흘리는 눈물 앞에 또 한 번 마음이 흔들린다. “이건 말도 안돼! 왜 상처 준 사람들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상처받은 사람들은 이렇게 가슴 터질 듯이 아파하고 비참해져야 하는 거야! 도대체 왜!” 그리고 김미영을 하룻밤의 신데렐라로 변신시켜 카지노에서 민 변호사를 무릎 꿇린다.

 

막연한 사랑타령에 신데렐라 판타지만을 엮었다면 어쩌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공감이 그리 크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안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현실적인 부딪침을 멜로 구조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판타지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즉 김미영의 판타지는 그녀가 처한 비정규직 같은 서민적 정서로 인해 공감대가 넓어졌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단지 왕자님이 신데렐라를 구원하는 일방향적 스토리가 아니다. 자의식 과잉의 이건과 자존감 제로의 김미영은 각자가 갖고 있는 미숙함이 존재한다.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은, 한 사람은 너무 많고 한 사람은 너무 부족한 자존감과 자의식을 조금씩 나눔으로써 서로가 성장해가는 드라마를 그려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건과 김미영은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가를 배워나갈 것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한 여름 밤의 꿈같은 판타지다. 하지만 그 판타지가 건드리고 있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진정한 관계에 대한 질문이다.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소중하진 않고 편하고 만만하고 쉽게 버려도 되는포스트잇 같은 관계. 신데렐라 판타지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가 <빅맨>을 꿈꾸는 까닭

 

업무 도중 사망한 비정규직을 위해 자신의 연봉을 가불해 그 가족을 먼저 도와주고,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회사 차량에 새겨 고인을 기억하며, 가족을 찾아가 그 자식에게 이제 내가 너의 아버지다라고 말하는 사장. 회사의 쇼핑센터를 짓기 위한 시장 부지 매입에서도 먼저 시장 상인들의 입장을 생각하는 사장. 무엇보다 돈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가족처럼 챙기는 사장...

 

'빅맨(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빅맨>은 서민들의 판타지다. 이런 사장이 현실에 있을까 싶지만 그래서 서민들은 그런 사장을 더더욱 꿈꾸는 지도 모른다. 부유한 재벌가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라나고 해외에서 학위를 받아 머리도 좋고 배운 것도 많은 현성그룹 사람들과, 태어날 때부터 버려져 고아로 자라오며 시장통에서 시장 사람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잔뼈가 굵은 김지혁(강지환)은 그래서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현성그룹 사람들은 김지혁을 희생양으로 이용하려 들지만, 김지혁은 현성그룹 사람들을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졸지에 현성유통 사장이 된 김지혁이, 가짜 가족 행세를 하며 그를 곤란에 빠뜨리려는 현성그룹 사람들의 음모를 뛰어넘는 건 그의 사람이 우선인 사고방식 덕분이다. 돌아온 강동석(최다니엘)이 김지혁에게 건넨 것이 돈이라면, 김지혁은 그런 강동석에게 가족으로서의 손을 내민다.

 

왕자가 된 거지의 이야기는 그 안에 가난한 자들이 공유하는 소중한 가치의 의미를 부여한다. 김지혁이 졸지에 사장이 되어 보이는 일련의 행보들은 그 자체로 지금껏 가진 자들의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행태에 대한 비판을 담아낸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비정규직의 처우 따위나 시장 같은 골목 상권 따위는 아랑곳 않는 재벌가의 행태. 패션쇼를 모델들이 아닌 실제 옷을 입는 시장통 사람들을 통해 실제 삶의 현장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한 깊은 판타지를 드러낸다.

 

이 서민들을 위한 서민들의 리더 김지혁이 환기시키는 건 다름 아닌 진정한 리더를 찾기 힘든 우리네 현실이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시장 같은 골목 상권을 상인들의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쇼핑센터를 지으려는 모습은 마치 파괴되는 생태계는 고려치 않고 무작정 진행된 지난 정권의 4대강을 떠올리게 한다. 취업의 문제와 비정규직의 죽음에 대해 국민을 가족처럼 생각한 권력을 가진 리더가 있었던가. 세월호 침몰과 그로 인해 무너져 버린 신뢰는 먼저 제 한 몸 살자고 도망친 선장처럼 리더 없는 우리네 현실을 고스란히 상징한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리더십이 지워버린 것이 사람이 먼저라는 고귀한 가치다. <빅맨>의 김지혁이라는, 세상에 없는 리더의 판타지는 그래서 우리를 가슴 뛰게 하면서도 슬프게 만든다. 저런 리더가 있었으면 하는 희망과 저런 리더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때가 되면 빅맨을 꿈꾼다.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서민들의 편에서 서민들을 위한 리더십을 보여줄 빅맨. 이 배운 것 없고 변변한 학벌도 집안도 없는 김지혁이라는 리더를 굳이 빅맨이라 지칭하는 건, 진정한 빅맨이란 그럴 듯한 간판이나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세워 거짓말로 혹세무민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을 껴안을 수 있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자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전히 빅맨을 꿈꾼다.

을의 반란, 더 이상 <직장의 신> 같은 판타지 아닌 이유

 

“혼자서는 못가. 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 다 같이 가야 나 같은 고물도 돌아가는 거야. 그런데 김양은 맨날 혼자서 큰 바늘, 작은 바늘 다 돌리면 너무 외롭잖아. 내 시계는 멈출 날이 많아도 김양 시계는 가야 될 날이 더 많은데...” <직장의 신>의 만년 과장 고정도(김기천)의 이 대사는 늘 로봇 얼굴의 무표정했던 미스 김(김혜수)은 물론이고, 무수한 직장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거기에 권고사직, 정리해고로 점철된 우리네 파리 목숨 직장인들의 자화상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직장의 신'(사진출처:KBS)

오죽하면 직장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오로지 업무로만 무장하려는 미스 김 같은 캐릭터가 각광을 받겠는가. 스스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그녀의 말대로 작금의 직장인들은 심지어 “회사의 노예”로 취급되는 을 중의 을이 아니던가. 그러니 <직장의 신> 같은 드라마에 대한 열광과 미스 김 신드롬에는 우리네 아픈 현실이 묻어난다. “IMF 이후 16년 비정규직 노동자 8백만 시대에 이제 한국인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된” 아픈 현실.

 

하지만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을의 반란’을 보면 이제 이런 현실을 그저 한탄하거나 감내하면서 잠시나마 드라마 같은 판타지로 아픈 속을 달래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른바 라면 상무와 빵 회장에 이어 이른바 조폭 우유(?) 사태까지. 그간 이른바 갑에게 짓눌려 왔던 을의 정서는 최근 인터넷과 SNS를 통해 폭발하는 인상이다. 이러한 정서의 폭발이 드라마 같은 대리충족 콘텐츠 안에서 소극적으로 벌어졌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실제 현실을 바꾸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한 때 인터넷을 달궜던 ‘대나무 숲’ 열풍은 그래서 어쩌면 지금 같은 ‘을의 반란’의 전초전 같은 징후였을 지도 모른다. 이 누군지 이름을 숨긴 채 ‘대나무 숲’에 들어와 회사의 비리나 고충을 한껏 소리 지르고, 그 소리가 인터넷을 타고 일파만파 전파되는 그 소극적인 쾌감을 만끽했던 이 땅의 수많은 을들은 이제 현실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과 SNS라는 뉴미디어를 통해 집결된 여론들은 이제 말에 머물지 않고 어떤 실행력을 갖추기 시작한 셈이다. 이제 공감하거나 공분할 수 있는 대중정서가 밑바탕 된다면 인터넷 여론은 그간 갑으로 군림하던 이들까지 뒤집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항공기 승무원에게 폭언에 폭행을 한 상무는 결국 회사에 사표를 쓰게 되었고 호텔 종업원에게 장지갑으로 뺨을 때린 한 중소기업 회장은 결국 자신이 납품하던 코레일에 빵 납품을 못하게 되었다. 이 회장은 심지어 회사를 폐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 터진 이른바 조폭 우유 사건은 회사 대표의 공식사과문이 발표됐고 현재 제품 강매가 있었는지에 대해 검찰이 조사 중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회생활에서의 갑을관계는 이미 일상화된 지 오래다. 그래서 갑을관계를 다루는 풍자는 코미디의 단골소재가 되어오기도 했다. 일찍이 80년대 정치풍자 코미디의 대가였던 고 김형곤 개그맨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라는 코너를 통해 회장님 말이 곧 법인 회사의 갑을관계를 풍자한 바 있다. “딸랑 딸랑”으로 대변되는 김학래의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라는 유행어는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한 모양이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갑을컴퍼니’의 직장 내 풍경 역시 그다지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겉보기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속으로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이른바 ‘대중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갑을 관계를 깨는 진짜 힘은 ‘을’로 대변되는 대중들이 소비자의 위치를 넘어서 같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목소리를 점점 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상품만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 상품이 갖고 있는 기업이미지는 구매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 갑이라 생각하며 군림해왔던 이들은 이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진정한 갑이 누군가를 다시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직장의 신>에서 미스 김이나 고 과장 혹은 <무한도전> 무한상사의 정 과장 같은 존재를 만들어낸 시스템이 상정하고 있는 갑을관계는 이제 조금씩 역전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중의 시대에 슈퍼 갑은 대중일 수밖에 없다.

<직장의 신>, 능동적 비정규직과 파리 목숨 정규직... 눈물 난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저는 회사에 속박된 노예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직장의 신> 미스 김(김혜수)의 도발적인 말에 장규직(오지호)는 “예의가 없다”며 발끈한다. 그러자 미스 김이 한 마디 덧붙인다. “그런 예의는 정규직들끼리 지키십시오. 저에게 회사는 일을 하고 돈 받는 곳이지 예의를 지키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게 있을까 싶지만 그녀는 이른바 능동적 비정규직이다.

 

'직장의 신'(사진출처:KBS)

“IMF 이후 16년 비정규직 노동자 8백만 시대에 이제 한국인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된” 시대에 그녀는 왜 능동적으로 비정규직을 고집하게 됐을까. 그것은 이른바 ‘미스 김 어록’이 되어버린 명대사들을 통해 미루어 알 수 있다. ‘업무의 연장’으로 끌려가 ‘몸 버리고 간 버리고 시간 버리는 자살테러’인 회식에 억지로 참석해야 하고, 우정이다 예의다 하는 사적인 말로 은근슬쩍 업무를 하게 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미스 김은 대신 모든 걸 ‘미스 김 사용설명서’의 계약조건 속에 기재했다. 회식에 나가 고기를 자르는 것도, 노래방에 가서 탬버린을 치는 것도 그녀에게는 그래서 ‘시간 외 수당’이 추가되는 일이다. 합리적이다. 하지만 회사 관계를 지나치게 업무 관계로만 만드는 차가움이 존재한다. 회사에서 절대로 사사로이 웃지 않는 미스 김은 그래서 ‘일하는 로봇’ 같다. 퇴근 하면 마추피추 같은 살사 바에서 사교를 나누며 웃음을 되찾지만 미스 김은 업무 속에서 늘 데드마스크를 쓴다.

 

미스 김의 이 극단적인 행동에는 좀 더 사적인 이유가 있다. 아직 정확히 그 이유가 나오진 않았지만 여러 차례 복선을 통해 그녀가 과거 은행원이었고 그 은행에 화재가 났었으며 그 화재로 인해 자신을 친동생처럼 챙겨주던 직장 언니가 사망했으며 무슨 일인지 그 은행에서 정리해고 당했다는 것이다. 그 트라우마가 그녀를 직장 내 로봇으로 만들었다는 것.

 

하지만 이것뿐일까. <직장의 신>이 미스 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한때 그토록 ‘가족’을 외쳤던 회사들이 어느 날 그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만들었던 IMF 시절 이후 생겨난 직장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다. 평생직장 개념이 끝장나버린 시대에 회사와 사원 사이에 그 어떤 가족 개념이 남아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차라리 모든 걸 계약관계로 환원하는 미스 김의 직장생활이 훨씬 합리적이란 풍자가 거기에는 녹아있다.

 

그렇다면 심지어 정규직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듯한 장마초 장규직은 어떨까. 미스 김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장규직은 과연 정규직으로서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까. 벚꽃잎이 떨어지는 어느 날 밤 장규직이 자신도 모르게 미스 김에게 입맞춤을 한 것에 대한 그녀의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그걸 “파리”라고 표현했다. 그저 자신의 입에 닿았다가 날아간 파리. 그런데 왜 하필 파리일까. 그것은 혹시 파리 목숨 정규직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장규직이 보이는 정규직 우월주의란 따라서 비정규직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직장의 신>은 미스 김과 장규직이라는 캐릭터들의 대결이 코미디로 그려져 있지만 이 두 사람(부류)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다. 모든 능력을 다 갖춘 미스 김은 과연 행복한가. 그녀의 절대로 웃지 않는 데드마스크는 그녀의 불행한 삶을 에둘러 말해준다. 이것은 살아남기 위해 늘 발을 동동 대는 장규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상한 일이지만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미스 김과 장규직이 어느 날 갑자기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 하나도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 두 인물 모두 회사라는 조직에 의한 희생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스 김과 장규직이 같은 기일에 같은 납골당을 찾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그건 화재로 인해 상처를 입은 건 미스 김만이 아니라 장규직도 마찬가지였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사실 미스 김과 장규직이 마치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대표선수가 되어 싸우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회사의 피해자다. 그 트라우마로 인해 한 사람이 절대 회사와의 사적 관계나 감정을 맺으려 하지 않는 데드마스크의 삶을 선택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어떻게든 그 시스템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그렇게 비인간적인 삶(로봇 같은 미스 김, 혹은 배려 없는 장규직)을 살게 만든 것일까. 그것은 그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끝없이 경쟁하게 만든 회사라는 시스템이다. 장규직이 회사의 논리를 들어 미스 김에게 “예의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예의가 없는 건 회사라는 시스템이다. 그렇게 우리를 비인간화하는 회사에 우리가 왜 예의를 차려야 하는가. 그건 예의가 아니라 굴복이 아닌가. 이것이 미스 김이 던지는 메시지다. 또 이것은 대립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장규직이 미스 김에게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쩌면 똑같은 피해자라는 동류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했으니까.

 

<직장의 신>의 능동적 비정규직과 파리 목숨 정규직이 그려내는 코미디는 그래서 아프고 슬프다. 그것은 회사의 시스템에 의해 상처 받은 두 인물이 꼭꼭 숨겨놓은 서로의 상처를 발견해가는 과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의 신>의 코미디가 이 땅을 살아가는 수많은 미스 김들과 정규직들에게 고하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고용불안이 일상이 된 삶 속에서는 더더욱.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72)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361)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132,616
  • 509760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