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족, 성별구분 없는 사회의 징후

예쁜 남자, 강한 여자 신드롬
예쁜 남자, 즉 꽃미남 신드롬이 솔솔 불어오는 와중에 몸짱 아줌마가 등장한 사실은 사회적으로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왕의 남자’에서 동성애자 역할을 했던 이준기가 꽃미남 열풍을 이끌면서 여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CF(예를 들면 화장품 같은)에 남성들이 속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이 운동으로 다져진 몸짱 아줌마의 출연은 여성들의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이어트 비디오를 찍어왔던 그간의 연예인들이 주로 요가 같은 부드러움과 유연성을 강조하는 운동을 했다면, 몸짱 아줌마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져 왔던 헬스클럽에서 근육으로 다져진 몸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과거 미스코리아는 미용실로 가고 미스터코리아는 헬스클럽에 모이던 시대에서, 이제는 남녀가 모두 헬스클럽이라는 공간에서 만나 똑같은 덤벨과 벤치프레스로 근육을 만드는 시대로의 이행을 표상하는 인물이 되었다.

동성애 코드 속에 숨겨진 성별의식의 변화
이러한 남성과 여성의 성별의식의 변화는 어떤 중간지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양상이다. 그리고 바로 그 중간지대에서 발견되는 것은 동성애 코드 컨텐츠들에 대한 달라진 시선이다.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지지층을 얻은 이안 감독의 동성애 영화, ‘브로크백마운틴’은 사실상 마초적인 남성성의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대표적인 영화였다. 마초의 상징이었던 카우보이들의 동성애를 다룸으로써 그 마초 이미지가 사실은 조작된 것이라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동성애 영화들에 대한 지지가 동성애 자체에 대한 시각의 수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에 대한 선입견의 벽은 여전히 견고하며 따라서 본격적인 동성애 컨텐츠는 대중적인 기호와는 거리가 멀다. ‘브로크백마운틴’이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국내에서 동성애 코드(동성애를 직접 다룬 것이 아닌 그걸 차용한) 컨텐츠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은 분명하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동성애 컨텐츠는 아니지만 동성애 코드를 잘 활용해 대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되는 것은 역시 예쁜 남자들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말 그대로 프린스들이 커피를 파는(전적으로 여성들을 위해!) 공간 속에 여성을 포진시키기 위해 남장을 시킨 드라마다. 하나도 아닌 여럿의 프린스들과 동료로서 연인으로서 일한다는 이 설정이 수많은 이 땅의 달라진 성별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이다.
여성들에게 간택받는 남자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남성들을 이렇게 변화시켜 놓았을까. 그 변화의 요인은 육체노동이 점점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정보화 시대 속에서 달라진 남녀의 위상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찰스 다윈은 성 선택 이론을 말하면서 ‘남자는 과시하고, 여자는 선택한다’는 말로 인류 진화의 비밀을 소개한 바 있다. 흔히 마초적인 사회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선택하는 것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여성은 늘 남성을 선택해왔고 단지 그 기호가 마초적인 강한 남성에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남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디어에 의해 교육되는 성별 없는 사회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지나치게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본 결과일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속박하는 관계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라는 공평한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혹은 바라보길 원하는) 존재가 맞을 것이다. 지금까지 외적인 야생조건 속에서 그 균형이 깨져 있었다면 지금은 바로 그 균형이 맞춰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엘리자베스 바댕테르는 그녀의 ‘남성의 여성성에 대한 편견의 역사’에서 “남성이 된다거나 여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종의 지위, 사회적 위치, 문화적 역할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성별의식이란 사회적인 교육의 산물이지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재 미디어들이 보여주는 달라진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들은 그 자체가 성별 없는 사회를 향한 교육적 기능을 어느 정도는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카우보이들의 상징이자 전유물이었던 청바지가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이 되었듯이, 이제 성별 의식이란 점점 과거의 유물이 되어갈 것이 분명하다. 그루밍족은 바로 그 성별구분 없는 사회로 가는 변화의 징후를 보여준다.
<본 원고는 삼성홈페이지(www.samsung.co.kr) 미디어 삼성에 게재되었던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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