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주도권 쥔 이지은이 주는 묘한 카타르시스

이 드라마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기대된다.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첫 회는 한 마디로 짠 내가 풀풀 진동했다. 이지안(이지은)은 사채업자에게 폭행까지 당하며 돈을 갚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고, 박동훈(이선균)은 엉뚱하게 상무와 이름이 비슷해 잘못 배달된 뇌물봉투로 모든 걸 잃을 위기에 처했다. 특히 아르바이트에서 손님이 남긴 음식을 싸와 배를 채우고, 운신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할머니(손숙)를 보살펴야 하는 이지안의 상황은 너무나 가혹해보였다.

하지만 단 2회 만에 이 모든 상황이 뒤집어졌다. 회사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관계를 눈치 채고 도준영 대표(김영민)가 박동운 상무(정해균)을 퇴출시키려 뇌물을 보냈으며, 박동훈의 아내 윤희(이지아)와 불륜 관계라는 것까지 알게 되면서 이지안이 모든 주도권을 쥐게 된 것. 이지안이 박동훈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책상 서랍에 넣었던 뇌물 봉투를 훔쳐간 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지안이 그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박동훈이 뇌물을 거부한 모양새가 된 것. 

회사 내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이지안이 도준영과 마주하는 장면은 그래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대표이사지만 이지안은 그런 건 아랑곳없이 그에게 맹랑한 제안을 한다. 자신이 박동운 상무와 박동훈 부장을 모두 처리하겠다는 제안이다. 어찌 보면 황당할 수 있는 제안이지만 이지안이 보여준 때론 과감하고 때론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들을 떠올려 보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제안이다. 그 순간 대표이사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권력관계는 역전된다. 

<나의 아저씨>는 그래서 ‘아저씨’가 아닌 ‘나’ 즉 이지안이 모든 상황을 쥐고 흔드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여기서 아저씨에 해당되는 박동훈은 한 마디로 착해빠진 데다 어딘가 늘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뇌물 봉투를 받았을 때도 그냥 갖기보다는 양심 때문에 머뭇댔던 인물. 그냥 성실히 자기 하는 일을 해가며, 노모와 형제들을 부양하다시피 하는 가장이고, 아내가 도준영과 불륜관계이며 곧 이혼을 요구할 거라는 것도 까마득히 모르는 인물이다. 

그래서 부장 직책을 가지고 있지만 힘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아저씨 박동훈과 당장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할 것 같은 영악한 청춘 이지안의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다. 박동훈이 이지안을 챙기거나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위치로 보이지만, 이 관계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어딘지 불쌍하고 억울해 보이는 박동훈을 이 영악한 이지안이 도와주기를 시청자들이 오히려 바라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아저씨>는 우리 사회에서 밀려나거나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두 세대를 주인공을 내세웠다. 하나는 이제 곧 퇴출될 위기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아저씨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희망조차 찾기 힘든 삶을 버텨내며 그 살벌한 현실 속에서 단단해진 청춘이다. 과연 이 청춘은 아저씨를 구해주는 존재가 될까 아니면 그가 대표이사에게 제안한 것처럼 그를 퇴출시키는 존재가 될까. 그 모든 주도권이 이 작고 가녀리게 보이는 청춘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지금껏 봐왔던 대부분의 빈부와 세대와 성별의 구도를 훌쩍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사진:tvN)

‘쌈마이웨이’, 송하윤의 눈물과 엄마의 피눈물

“결혼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 엎으고 우리 설희 앞에 다신 얼씬대지도 마러라. 그 따우 집구석에 나는 우리 딸 안 보낸다.” 이렇게 적으려던 엄마는 썼던 문자를 지워버리고 다시 적는다. “주만아, 잘 지내지? 본지가 오래 되었구나. 설희가 혼자 돌잔치에 가 있다. 설희가 너를 참 많이 좋아한다. 우리 설희 그저 많이 예뻐해다오.” 본래 쓰려던 문자와 보낸 문자 사이에,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느껴지던 본래 쓰려던 문자는 한껏 정제되고 차분한 문자로 바뀌었다. 엄마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엄마와 딸은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읽어내는 걸까. 딸 백설희(송하윤)는 엄마가 주만(안재홍)에게 보낸 문자를 읽는 순간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날 낮 예비시댁의 백일잔치에서 종업원처럼 일하던 자신의 모습을 엄마가 봤을 거라는 걸 그녀는 단박에 알아차린다. 한쪽으로 치워져 있던 쓰레기를 엄마가 치워놓았다는 것 역시.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이라고는 했지만 그걸 봤을 엄마의 마음이 설희를 눈물 흘리게 한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에서 백설희라는 청춘은 지나치게 저자세다.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 고기를 잘라준다. 그녀는 6년 동안이나 남자친구 주만의 뒷바라지를 해왔다. 그 덕에 주만은 홈쇼핑 회사에 들어가 대리를 달고 살아간다. 하지만 백설희는 여전히 주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습관처럼 살아가고, 그것은 그녀의 삶 전체를 저자세로 만들어버린다.

주만은 그녀에게 “네가 모자란 게 뭐가 있냐?”고 질책하며 제발 저자세로 그러지 말라고 한다. 누나네 백일잔치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설희를 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이나 주만의 집안사람들은 설희의 그런 희생에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는다. 늘 그래왔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주만의 집안사람들은 설희가 주만과 당연히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도 부정한다. 

그래도 온전히 그녀를 챙겨주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건 주만이다. 그는 집안 사람들에게 설희를 무시하지 말라고 호통치고, 설희와 결혼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아니면 자신은 결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에게 무작정 달려드는 인턴 장예진(표예진)에게 철벽을 치고, 혹여나 이를 신경 쓸 설희를 걱정한다. 

<쌈마이웨이>는 빈부 격차로 인해 태생적으로 스펙이 결정되는 사회 속에서 가지지 못한 청춘들이 겪는 현실을 멜로로 엮어낸 드라마다. 하지만 그 짠내 나는 현실은 청춘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 청춘의 부모들은 그 현실 앞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죄인이 된다. 백설희라는 청춘이 눈물을 흘릴 때, 그걸 바라보는 엄마는 피눈물이 흐른다. 

족발집을 하는 설희네 가게에서 족발을 자르는 남편에게 설희 엄마가 슬쩍 한 마디를 던져본다. “우리 족발집 때려치고 레스토랑이나 하나 할까?” 낮에 백일잔치에서 주만네 집 사람들이 설희네가 족발집을 한다고 한 말이 떠올라서다. 주만에게 선이 들어왔는데 그 집이 레스토랑을 한다는 이야기에 설희 엄마는 괜스레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왜 그러냐는 남편의 물음에 설희 엄마는 말한다. “그냥 설희가 족발집 딸이라는 게 싫어서.” 

힘겨운 청춘들, 어째서 부모가 죄인이 되어야 할까. <쌈마이웨이>가 던지는 질문이다.

개콘-아름다운 구속’, 막장과 범죄물 클리셰 버무리기

 

이 코너를 만든 개그맨들은 천재가 아닐까. <개그콘서트> ‘아름다운 구속은 평범한 경찰서의 형사와 범인의 취조현장을 다루면서 막장드라마의 패턴화된 멜로공식을 절묘하게 이어 붙인다. 형사와 범인은 마치 연인관계처럼 설정되고, 그들의 취조는 사랑처럼 그려진다. 그래서 서태훈 형사가 범인 김하늘(김대성)을 잊지 못하고 취조하고 싶어 하지만 이 취조는 안타깝게도(?) 늘 엇갈린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저 자수하러 왔습니다. 얼른 취조해주세요.” 저 스스로 취조 받으러 온 김하늘에게 서형사가 너 만나고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하고 외치는 장면이나, 김회경 형사가 김하늘에게 현장에서 나온 이 벽돌이 뭐냐고 묻자 마치 김하늘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안다는 듯이 중고 샀는데 사기 당했다고 말해주는 서형사의 진술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에서 자주 봐왔던 클리셰들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클리셰들의 패러디가 시작된다. 서태훈 형사가 취조해야 하는 류근지가 마치 멜로드라마를 보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재벌집 딸의 대사를 날리는 것. “서형사님 고작 이런 잡범 때문에 날 이렇게 무시하는 거에요?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러자 마침 등장한 서장인 송준근이 시어머니 같은 대사를 김하늘과 서형사에게 던진다. “뭐야. 또 너니? 서형사. 너 류근지 얘 잡으면 진급 탄탄대로야 알아 몰라?”

 

펑범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재벌집 딸과 결혼시키려는 시어머니의 반대. 막장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조를 그대로 패러디로 가져온 아름다운 구속은 그 이야기가 경찰서의 그것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맥락을 담아낸다. 빈부 격차의 이야기는 멜로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즉 범죄자들에게도 이른바 범털과 개털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어디서 천한 잡범 주제에 감히 우리 서형사한테 취조를 받으려 들어? 넌 내가 안 된다고 했지?”

 

멜로드라마의 클리셰와 경찰서 취조현장의 클리셰가 패러디로 겹쳐지면서 기묘한 웃음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패러디의 웃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유사한 구조가 던져주는 풍자적인 웃음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구속이 그저 막장드라마를 패러디하는 대사의 재미에만 머물지 않고 어떤 통렬한 비판의식의 속 시원함을 동시에 던져주는 이유다.

 

멜로드라마에서 그토록 많이 나오는 빈부 격차의 집안이야기는 아름다운 구속에서는 조직의 이야기로 바뀐다. “이게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너희 조직에선 그렇게 가르치니?” 송준근 서장이 그렇게 말하자, 김하늘은 저를 욕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 조직은 욕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막장드라마의 공식 중 하나인 얼굴에 물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김하늘이 마치 멜로드라마에서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서장님하고 부르자 송준근이 누가 니 서장이야?” 하고 발끈 하는 것.

 

막장드라마에 역시 단골로 나오는 긴박한 음악이 흐르면서 뒷목 잡고 쓰러지는 서장이 물러난 후, 역시 식상할 정도로 많이 봐온 사랑을 포기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엔딩에 들어간다. 일부러 김하늘을 놓아준 김회경이 빨리 가서 잡아요라며 서형사에게 거수경례를 올리는 장면이 그것이다.

 

아름다운 구속이 취조현장을 통해 패러디하는 건 막장드라마와 늘상 비슷한 패턴만을 보여주는 멜로드라마의 클리셰들이지만, 거기에는 또한 법 정의에 있어서도 빈부격차로 나뉘는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도 들어가 있다. 게다가 이 개그에는 남남커플의 게이코드 또한 들어있다. 최근의 패러디들 중에서 이토록 다양한 의미망을 가진 개그 코너가 있었을까 싶다. 이 코너를 볼 때마다 코너를 만든 이들이 천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풍문>, 상류사회의 전근대성, 그 시대착오의 쓴 웃음

 

이건 왜 사극을 보는 느낌일까. SBS <풍문으로 들었소>는 알다시피 지금 현재가 시대적 배경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어딘지 사극을 닮았다. 한인상(이준)이 사는 집은 마치 조선시대의 거대한 권문세가를 연상시킨다. 한정호(유준상)와 최연희(유호정)는 이 권문세가의 주인들이고 그들의 비서들인 양재화(길해연)나 이선숙(서정연)은 사극으로 말하면 하인들 중에서도 집안의 대소사를 꾸리는 수노(首奴)에 가깝다. 물론 이 집에는 운전기사부터 유모까지 하인들(?)이 수두룩하다.

 

'풍문으로 들었소(사진출처:SBS)'

신분제가 사라진 지 백년이 넘게 흘렀지만 어찌된 일인지 <풍문으로 들었소>의 풍경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신분제의 틀에 멈춰져 있다. 물론 그 신분제는 태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태생으로 이미 빈부가 결정되는 자본주의의 시스템 안에서 태생적으로 결정되는 것과 그다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과거의 신분제보다 더 나빠진 건 이들 상류사회의 일원들인 현대판 양반들에게는 거기에 걸맞는 소양이나 예의 또한 별로 기대할 게 없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엔 번지르르하게 보이고, 교양 있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토록 속물이 없다. 이성을 강조하는 이 집안에서 최연희가 용하다는 점쟁이를 불러 부적을 붙이는 건 그 속물근성을 여지없이 폭로하는 장면이다. 체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은 뒤로는 돈이면 뭐든 다 해결해줄 것처럼 행동하지만 앞에서는 교양인인 척 하느라 속내를 숨기고 어색하게 웃기 바쁘다.

 

이런 집에 간판 집 딸 서봄(고아성)이 배가 남산만한 체 들어와 그 날 안방마님(?)의 침대에서 아기를 낳는 이야기는 그래서 대단히 흥미롭고 우스꽝스럽게 다가온다. 거기에는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작품이 가진 상류사회의 위선에 대한 신랄한 폭로가 들어있다. 아기를 낳은 서봄에게 흥분한 최연희가 교양 없이 쌍소리를 해대고 그러면 안 된다는 비서의 이야기를 듣고는 얼굴을 바꿔 교양인인 척 다시 찾아와 사과하는 모습은 그래서 섬뜩하면서도 우습다.

 

게다가 서봄으로부터 한인상을 떼어놓으려고 거의 감금에 가까운 일을 벌이는 한정호나, 거기서 탈출해 마치 도둑놈처럼 자기 집에 몰래 들어오는 한인상은 그 비정상적인 상황 때문에 웃음을 준다. 한인상과 서봄 본인들은 실로 절절한 비극의 주인공들이지만 그 상황은 희극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 집에 자기가 못 들어가고, 시댁에서 아이를 낳은 후 거의 갇혀 있으며 혼인신고를 마치 007 작전 치르듯 하는 이런 상황이 어디 정상적인가.

 

유배 갈 처지에 몰린 애 아빠가 몰래 집에 들어와 애 엄마에게 마치 감옥이나 되는 듯이 집안 구조를 가르쳐주며 그 감옥살이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장면은 또 얼마나 황당한가. 이런 장면들이 우습게 다가오는 건 그것이 조선시대에나 가능할 법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현재 상류사회의 전근대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 얼마나 기발한 착상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이 드라마의 제목이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점이다. 이것은 이렇게 교양 있는(?) 상류사회의 집안에서 벌어져서는 도저히 안 되는 일들을 주인들이 감추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코 그것이 감춰지기 어렵다는 걸 말해준다. 우선 그들 자신이 이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 첫 번째지만 그 많은 현대판 하인들의 시선과 입소문은 이 풍문들을 집 바깥으로 퍼져나가게 만들 것이다.

 

우리네 서민들이 가끔씩 보게 되는 상류사회에서 벌어진다는 전근대적인 일들(이를 테면 왕처럼 살아간다는 재벌가 이야기 같은)의 부조리가 풍문으로 떠돌 듯이 이 드라마는 그 풍문의 실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점은 이 사극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전근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가 현실에 던지는 도발일 것이다.

 

 

'개콘-젊은이의 양지’, 웃긴데 슬픈 건...

 

그깟 떨어지는 면접은 안 보면 되고, 직장은 안 가면 되며, 돈은 안 벌면 된다?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젊은이의 양지의 백수 김원효가 면접에서 떨어진 후배 취업준비생 이찬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행복을 묻는 이찬에게 김원효는 취직해 대기업 들어간다고 뭐가 행복하냐며 잘 돼봤자 빌 게이츠라고 말한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뭐가 좋은데? 빌 게이츠가 친구랑 피시방을 가봤겠나. 지 이름 넉자를 한자로 적을 줄 아나. 물냉 비냉을 구분할 줄 아나.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마을버스 타고 환승을 해봤겠나. 인생의 낙이 없다. 그렇게 살라 해도 그렇게 못살겠다.”

 

기막힌 역설이다. 김원효라는 백수의 역설은 그 아무 것도 없는 처지에 빌 게이츠의 삶을 불쌍하게 여기는 모습에서 빵 터진다. 하지만 그 가진 것 없이 살아가는 것이 체화되어 이제는 나름의 행복의 논리(?)’로 가진 자들의 불행을 논하는 모습에서는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꿈꾸는 좋은 집에서 살아가는 그런 꿈조차 그는 좋은 집 살아봤자 펜트하우스라며 줄줄이 펜트하우스의 안 좋은 점들을 열거한다. “잠 좀 잘만하면 햇빛 엄청나게 들어오지. 환기 시키려고 문 열어놓으면 새 지나다니지. 혼자 전 층을 다 쓰니까 이웃 없지. 외롭지. 우울하지. 병 오지. 병 오면 죽지. 펜트하우스 살면 죽는다. 나는 그렇게 살라 해도 못살겠다. 인생에 낙이 없어요.”

 

하지만 이 말 뒤에는 햇빛 안 들어오는 반 지하에서 살아가며, 환기 시킬 창문조차 없는 방에 다닥다닥 붙은 이웃들과 지지고 볶으며 살아갈 법한 이 백수의 삶이 느껴진다. 백수의 허세. 게다가 그건 고착화되어 나름의 논리까지 세워져 있다. 소소한 행복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안 바뀌는 현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포기한 자의 넋두리처럼 들린다.

 

반면 재벌 2세 이문재는 면접에서 떨어진 취업준비생 친구 이찬에게 야 너는 이 회사 저 회사 면접 볼 자유라도 있지. 나는 그런 선택의 자유도 없어. ? 아빠 회사 물려받아야 하니까. 나 들어가자마자 사장이야.”라고 말한다.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2세가 취업준비생을 부러워하는 듯한 이 역설에 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회사 가면 오십 줄 넘은 직원들이 90도로 인사를 한다며 어른을 공경하려야 공경할 수가 없는그 상황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 줄 아냐고 되묻는다. 가진 자의 엄살이다. 그의 논리는 너는 뭐든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백수지만 난 기껏해야 미래가 정해진 불쌍한 재벌2라는 데서 나온다.

 

젊은이의 양지라는 코너는 이처럼 자기 상황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청춘들의 군상을 통해 반전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백수는 자신의 삶이 빌 게이츠보다 낫다는 식으로 말하고, 재벌2세는 취업준비생의 삶이 자신보다 낫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 말들에 관객들이 빵빵 터지는 건, 그 말이 냉혹한 현실에서는 얼마나 공허한 이야기인가를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이야기하고 태생적으로 정해지는 삶이 아닌 자기 스스로가 개척해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그 말이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태생적으로 정해지는 삶을 바꿔나갈 수 없는 냉혹한 현실에서는 그 자족적인 행복에 대한 이야기나 개척하는 삶의 이야기가 패배의식이나 위선으로 들리기 마련이다.

 

젊은이의 양지는 그 아픈 현실의 이야기를 웃음의 코드 속에 녹여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웃다 보면 어딘지 슬퍼지는 건 그네들이 그토록 말로써 빌 게이츠를 불쌍히 여기고 재벌2세의 불행을 논해도 달라지는 현실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일 게다. 그들은 여전히 취업준비생이고 백수이고 재벌2세다.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삶이 세워질 수 있는 세상. 우리네 청춘들에게는 사치인걸까.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과연 양지는 있는 것일까.

 

 '패션왕', 가슴 먹먹한 청춘들의 자화상

'패션왕'은 우리네 출구 없는 청춘들의 자화상 같은 드라마다. 비는 마치 그들의 처지처럼 추적추적 내리고 가영(신세경)과 영걸(유아인)은 우산도 없이 길바닥에 내쳐진다. 얼굴에 훈장처럼 상처를 달고 그들은 지금 맨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중이다. 살아남기 위해. 모욕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린 조마담(장미희)의 부띠끄에 의탁한 가영을 찾아온 영걸이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버스 안. 주머니에 있는 단돈 몇 천원.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 그 막막함. 아마도 지금의 청춘들이라면 이들이 흘리는 그 눈물에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을 것이다.

 

'패션왕'(사진출처:SBS)

'패션왕'의 가영과 영걸이 태생으로부터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 있는 인물이라고 해서 이 드라마를 단순히 계급적 차이에 의한 빈부의 대립이나, 그 빈부를 뛰어넘는 신데렐라 스토리로 오해할 필요는 없다. 전혀 다른 계급에 속해보이는 재혁(이제훈)과 안나(유리) 역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니까. 겉보기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재혁이지만 그는 바로 그 태생의 덫에 걸려 있는 청춘이다. 그는 부모라는 이유로 재혁의 삶에까지 관여하는 정만호(김일우)와 윤향숙(이혜숙)의 그늘에서 숨 막혀 한다.

재혁은 엄마인 윤향숙을 CEO처럼 생각한다. "CEO 전에 네 엄마야."하고 말하는 윤향숙에게 재혁은 "엄마면 이래도 되는 거야?"하고 되묻는다. 그들은 편의에 의해 때론 부모 자식임을 내세우지만 재혁이 사업에 실패하자 가차 없이 뺨을 날리고는 "내 돈 함부로 굴리지 말라"는 엄포를 놓는 그런 CEO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인물들이다. 과장된 면이 있지만 돈과 물질 만능은 때론 자식마저 하나의 물건처럼 보게 만들기도 하나 보다. 그런 부모일수록 출신성분에 집착하는 법. 마치 물건 고르듯 출신성분을 따지는 그들에게 안나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일찍이 부모가 이혼하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 안나는 어떻게든 노력해 그 기득권자들의 세계로 들어가려 하지만 그것은 출신성분이라는 꼬리표에 의해, 또 부족한 실력에 의해 좌절된다. 마치 내세울 거라곤 그것밖에 없다는 듯 끊임없이 마이클이라는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을 인정했다는 것을 자랑하는 영걸에게 안나는 "좋겠다. 마이클이 인정해줘서..."라고 자조 섞인 푸념을 내뱉는다.

'패션왕'이 태생적으로 갈라진 두 개의 삶, 즉 영걸과 가영의 가난한 청춘과 재혁과 안나의 부유한 환경의 대립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두 삶 모두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참을 보다 보면 재혁의 그 까칠함 이면에 놓여진 우수와 힘겨움이 보이고, 안나의 꼿꼿함 이면에 숨겨진 안간힘이 보인다. 이 네 명의 청춘은 지금 모두 현실에 질식 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은 뭘까. 그것은 기성세대로 대변되는 부조리들이다. 실력이 아닌 태생으로 결정되는 삶,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물질 만능주의,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당연하다는 듯 밟고 서는 사회 시스템, 심지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 관계의 굴레 혹은 폭력... 이것이 진짜 '패션왕'이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태생과 빈부가 다른 네 명의 청춘들이 각자 위치는 달라도 마치 한 배를 탄 듯한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영걸이 은행에서 자금 대출을 하려 하자 대뜸 "담보 없어요?"하고 물으며 난색을 표하는 은행 직원. 그러자 영걸이 "중소기업 지원자금도 7천억이 풀렸다고 하는데 어디로 간 거예요?"하고 묻자 돌아오는 "고객님은 해당사항 없습니다" 라는 절망적인 답변. "그럼 저 같은 사람은 고리사채나 쓰라는 겁니까?"라고 외치는 영걸의 항변이 예사롭지가 않다. 또 정반대로 "엄마면 이래도 되는 거야?"하고 묻는 재혁의 목소리도 남달리 들린다. '패션왕'이 특별한 지점은 이 서로 다른 계급적 위치에 서 있는 청춘들이, 바로 그 청춘이라는 지점 하나로 기묘한 연대의식을 가질 때다. 재혁이 가영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이나, 영걸이 술 취한 안나의 신발을 벗겨주는 장면이, 가영과 영걸의 그 깊은 절망감을 보여주는 버스에서의 장면만큼 깊은 감흥을 주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1박2일' 폭포특집, 한 편의 우화 같았던 이유

'1박2일'(사진출처:KBS)

"5천원 더 갖고 가" 엄태웅은 대표로 제주행 비행기를 타는 이승기에게 5천원을 건네고는 식사라도 하라며 남긴 만 원마저 건네려 한다. "아니요. 만 원은 식사하세요.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죠." 극구 거부하는 이승기에게 이제 은지원은 간절한 자신들의 소원을 새삼 되새긴다. "우리 소원알지?" 그러자 이승기는 날 믿으라며 반드시 소원을 이루겠다고 말한다. 은지원은 거기에 대고 "돈 팍팍 쓰면서 아이스크림 같은 거 사먹으면서" 꼭 일등을 하라고 보챈다. 서로를 꼭 껴안고 떠나는 이승기의 바지주머니에 엄태웅은 슬그머니 만원이 든 꼬깃꼬깃한 봉투를 넣는다. 그리고 출국장을 떠난 이승기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 거기에 만원 넣었다."

이 풍경은 왠지 낯설지 않다. 과거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유학을 떠나고 보내는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 가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고, 그것으로 가난을 극복하고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던 그 희망. 그러니 당장 여기서는 굶더라도 보내는 이에게 주머니를 톡톡 털어주는 것이 뭐가 어려운 일일까. '1박2일' 폭포 특집은 '대한민국 1등 폭포를 찾아라'라는 미션으로, 제주도의 비가 올 때만 볼 수 있다는 엉또폭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먼저 찾아가는 세 명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 이야기는 그러나 갑자기 부자와 빈자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용돈을 받는 게임에서 돈을 많이 받은 김종민, 강호동, 이수근이 담합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담합을 바라보던 나영석 PD는 "여유 있게 들어가서 비행기타고 가셔서 여유 있게 찾아가서 여유 있게 1,2,3등 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줄 것이냐며 혀를 찼다. 그러자 강호동은 "이렇게 손 잡을 줄은 몰랐던 거지"라고 말했고, 이수근은 설명을 덧붙여 "예를 들어서 5만 원짜리랑 10만 원짜리랑 손을 잡아야 다 갈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여행경비 독과점을 마치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뽐냈다. 그러자 강호동이 현실을 얘기했다. "리얼 상황이 제일 좋은 게 뭔지 아니? 매번 9회말 투아웃에 역전홈런이 나올 수는 없는 거야. 가끔씩 1회 때부터 15대6으로 이길 수 있는 거야. 이것이 리얼이지." 이수근의 말처럼 현실은 어쨌든 나머지 세 사람, 이승기, 은지원, 엄태웅이 모두 제주도에는 못 온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빈자와 부자의 운명이 이미 태생에서부터 정해진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한 가지 변수가 있었으니 그것이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포기하고 한 사람을 밀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변수는 실제로 일어난다. 은지원과 엄태웅이 자신의 돈을 톡톡 털어 이승기의 주머니에 넣어준 것. 이로써 이승기는 결국 이 레이스에서 1등을 차지했고 부자팀은 서로 2,3등을 차지하기 위해 배신과 담합을 이어갔다. 강호동과 김종민이 이수근을 버리고 2,3등을 차지했지만 이승기는 이 이야기의 반전을 소원에 담았다. 이승기의 소원으로 2,3등을 은지원, 엄태웅으로 바꾸겠다는 것.

폭포 특집 미션은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연합으로 이어지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즉 돈으로 뭉쳐진 부자들은 결국 그 이기심 때문에 붕괴하고, 가난하여 마음으로 뭉치게 된 이들은 서로에 대한 간절함 때문에 서로 단합하게 된다는 걸 우화처럼 들려준 것. 어디 현실에서야 이런 일이 벌어질까 싶지만, 그것을 '1박2일'은 게임을 통해 판타지적인 우화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치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램프 같은 상징물로 다가온 엉또폭포가 비가 올 때만 볼 수 있는 폭포라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결국 비가 오지 않아 폭포의 자태를 보지 못했던 것. 하지만 결과가 뭐가 중요할까. 이미 과정 속에서 어떤 이들은 그 아름다운 폭포를 보았을 것이니까. 많은 우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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