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파’, 장혁은 공감 가는데 어째 손여은은 영

한 때는 존경받던 챔피언이었지만 승부조작 사건으로 협회에서조차 영구제명 된 권투선수 유지철(장혁). 먹고 살기 위해 심지어 신약 임상실험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 이 인물은 그 약물이 가진 괴력을 도박 격투기장에서 경험한다. 부작용 때문에 피실험자들이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걸 이겨낸 유일한 그는 온갖 비난을 다 받으며 다시 격투기 선수로 링 위에 오른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사실이다.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는 몇 가지 이야기 코드들이 합쳐져 있다. 하나는 한 집안의 남편이고 아빠라는 ‘가장’의 무게감을 담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격투기 소재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아드레날린24>처럼, 약물 투여를 통해 변신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더해져 있다. 

이미 헤밍웨이가 매료됐던 것처럼, 사각의 링은 하루하루 세상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가장들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기에 적당한 장소다. 그 위에 선 유지철은 가족을 위해 두드려 맞아도 결코 쓰러질 수 없다. 자신이 쓰러지는 순간, 가족이 무너진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자신이 욕을 먹어도 가족이 살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족의 행복은 딸이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또 아내가 그 글 쓰는 재주를 돈을 벌기 위해 야설을 쓰는데 소모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어다주는 일이다.

이것은 다소 과장되게 그려진 ‘가장 판타지’다. 돈이 좋은 가장의 최우선 조건으로 대두되는 건,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그는 그 흔한 드라마의 클리셰들 중 하나인 친구에게 재산을 전부 투자했다가 망했고, 딸은 이미 연예인급으로 알려진 친구와 다투다 그를 다치게 해 그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물어줘야 할 처지가 되었다. 게다가 아내에게 옛 친구이자 자신의 라이벌인 성공한 격투기 선수 이민우(허준)가 자서전을 미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유지철을 둘러싼 이 모든 불운들은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유지철은 ‘돈’을 벌기 위해 또다시 부정한 방법을 쓰기로 한다. 해서는 안 될 신약을 복용한 후 그 힘으로 경기에서 이기는 것. 무슨 일인지 종합격투기 프로모터인 주국성(정만식)은 그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7번의 경기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마치 유지철 앞에 나타난 구세주처럼 보이지만 그는 어딘가 유지철의 뒤통수를 칠만한 사연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어쩌면 신약의 비밀을 알고 있고 그 약의 부작용을 유지철이 이겨냈다는 걸 알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인물일 지도 모른다. 

돈에 의해 불운해지고, 그 돈을 벌어 다시금 행복을 찾으려 링 위에 오르는 유지철이라는 가장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소 과장되고 극화된 면들이 있지만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아마도 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가장들이라면 이 유지철이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선택들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바로 이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대한 짠한 공감을 위해 희생되는 주변인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주변인이 바로 그의 아내인 최선주(손여은)다. 다시 시작하려는 남편을 말리는 최선주가 이민우의 자서전을 빌미로 강릉까지 함께 가고, 바닷가에서 서로 물을 끼얹으며 까르르 웃는 장면은 이 인물이 유지철이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불륜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을 세우는 건, 유지철과 이민우 사이에 대립각을 세우기 위함이다. 

또 승부조작 사건으로 이름만 올라와도 구설에 시달리는 아빠 때문에 발레를 포기했지만, 댄서의 꿈을 꾸고 있는 딸 유영선(신은수)도 마찬가지다. 명품가방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딸의 이야기는 사실상 유지철이라는 가장을 위한 에피소드로만 처리된다. 모든 이야기가 ‘배드파파’ 유지철에게 집중되어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를 위해 주변인물들이 능동적으로 보이지 않고 소비되는 건 너무 작위적인 느낌을 만든다. 

시청자들이 장혁 때문에 보긴 보는데, 불륜 설정까지 들어가 있는 것에 영 공감하지 못하는 건 그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작위성의 문제 때문이다. 최선주라는 인물이 능동적인 선택으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라, 유지철의 이야기를 전제로 해서 이리저리 동원되는 캐릭터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가장의 이야기라 반가운 면이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 남는 아쉬움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들이 겪는 어려움을 링 위의 극적인 이야기로 담겠다는 그 의도는 좋지만, 그러기 위해 지나치게 그 가장을 중심으로 세워두고 주변인물들을 거기에 맞춰 배치하는 건 전체적인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공감하면서도 남는 아쉬움이다.(사진:MBC)

'드림'이 전하는 결코 작지 않은 메시지

헤밍웨이가 권투에 매료된 것은 그것이 대결하는 세상을 그대로 압축해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림'은 바로 그 대결이 벌어지는 사각의 링을 드라마로 끌어들였다. 외형으로 보면 이 드라마는 저 '제리 맥과이어'의 이종격투기 버전으로 보이고, 어떤 면에서는 '록키'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비정한 스포츠 에이전트의 세계와 볼거리로서의 이종격투기, 그리고 쓰레기가 아닌 인간임을 증명하고 싶은 한 마이너리티의 성장스토리가 이 드라마에는 잘 엮어져 있다.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에이전트 회사인 슈퍼스타코프 사장 강경탁(박상원)은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힘을 갖춘 CEO. 그는 청춘을 바쳐 일 해왔지만 자신의 충실한 개가 되지 못한 남제일(주진모)을 바닥으로 내친다. 남제일은 아버지 때문에 소매치기 전과까지 갖게 된 길거리 파이터 이장석(김범)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저마다의 재기의 꿈을 꾼다. 남제일은 강경탁을 무너뜨리고 스포츠 에이전트로 다시 서려하고, 이장석은 쓰레기 인생에서 벗어나 자신도 인간임을 증명하려 한다.

전형적인 스포츠 드라마의 스토리 구조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대결구도가 흥미롭다. 강경탁을 대척점으로 하여, 그에게 쫓겨나 바닥으로 내팽개쳐진 남제일과, 그에게 자식처럼 키워온 맹도필(김웅)을 빼앗긴 박병삼(이기영)과 그 가족들, 그리고 바로 그 맹도필과 대결을 벌이는 이장석. 이렇게 그려진 구도 속에는 승자 독식의 비정한 사회가 투영되어 있다.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에이전트 회사가 지방의 작은 체육관에 있는 선수를 돈으로 빼내오는 모습은 우리네 대기업들의 싹쓸이 행태를 축소해보는 것만 같다. 자신의 잘못을 부하직원에게 뒤집어씌우고 비정하게 버리는 행위도 그렇다.

스포츠에이전트의 세계는 사실 좀 더 확대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스카우트되고 키워지고 때론 버려지기도 한다. 스포츠에이전트의 세계가 극명하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선수가 인간이면서도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의 양념처럼 등장하는 꽃미남 격투단은 바로 이런 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격투라는 본질과 멀어져 외관만으로 상품성이 포장되는 현실은, 우리가 이미 상품의 세계에서 충분히 경험해왔던 일들이다.

인간과 상품. 강경탁과 남제일이 선수를 보는 궁극적인 관점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강경탁은 선수들을 철저히 상품으로 관리하고, 남제일도 그렇게 배워왔지만 이장석을 만나면서 차츰 인간으로서 선수를 대하게 된다. 강경탁이 서 있는 곳이 주로 회사라는 공적 공간인데 반해, 남제일이 있는 등대체육관의 풍경이 가족적인 공간인 점은 이 관점의 차이를 공간적으로 잘 표현해낸다.

'드림'은 이처럼 단순히 스포츠에이전트의 세계를 그리거나, 이종격투기의 볼거리를 제공하기만 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것은 스포츠에이전트로 대변되는 인간과 상품의 문제를 바탕에 깔고서 그 서로 다른 세계관이 링 위에서 부딪치는 드라마다. 강경탁과 남제일의 대결, 그리고 이장석과 맹도필 같은 선수의 대결은 그 밑에 이런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다. 어쩌면 살과 살이 부딪치는 이종격투기의 세계가 주는 처절함은 그 자체로 이 세계의 비정함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대결은 삶을 사는 이들의 숙명인 것을. '드림'이 꿈꾸는 세상은 그러니 대결 없는 세상이 아니라, 그 세상 속에서 인간으로 대접받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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