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법정’, 사이다 정려원과 반가운 김여진의 등장만으로도

“내가 부장님을 흥하겐 못해도 망하겐 할 수 있죠. 어차피 나도 못 들어가는 특수부 부장님도 못 들어가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발로 정강이를 걷어차며)웁스 쏘리. 죄송한 김에 야자타임도 잠깐 하겠습니다. 야 오수철. 만지지 좀 마. 너 왜 내가 회식 때 맨날 노래만 하는 줄 알아? 니 옆에 앉기만 하면 만지잖아. 그리고 굳이 중요한 일도 아니면서 굳이 귓속말 하면서 귀에 바람 좀 넣지마. 무슨 풍선 부니? 아 맞다. 너 처음에 회식할 때 내 얼굴 뽀뽀하면서 딸 같아서 그랬다고? 어우 이걸 친족 간 성추행으로 확 그냥.”

'마녀의 법정(사진출처:KBS)'

일상화 되어 있는 성추행과 성폭력. KBS 새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이 첫 회에 꺼내놓은 화두는 그 시작부터 강렬하다. 성추행과 성폭력을 막고 그런 짓을 저지른 자들에게 단죄를 해야 할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이라니. 회식 자리에서 찾아온 기자의 다리를 주무르고 어깨에 손을 얹고 피해서 나온 그 기자를 쫓아가 강제로 입맞춤을 하는 부장 검사. 자신도 그런 일상적 성추행을 당해왔지만 상사이기 때문에 덮고 넘어가려 했던 마이듬(정려원)은 그렇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분명히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실감하곤 그간 억눌렀던 공분을 터트린다. 

결국 이 일로 마이듬이 좌천된 부서가 예사롭지 않다. 검찰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부서인 여성아동범죄 전담부서인 것. 거기서 그가 만나게 되는 여진욱(윤현민) 검사는 소아정신과 출신으로 타자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남다른 공감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 역시 부장검사의 성추행 사건에 피해자 쪽을 대변하다 이 부서로 오게 되었고, 그 부서를 직접 만든 인물은 민지숙(김여진) 부장검사로 마이듬의 엄마가 과거 성고문 사건을 폭로하려던 그 검사다. 

<마녀의 법정>이 첫 회의 포진만으로도 하려는 이야기는 명백해졌다. 그것은 여성과 아동 관련 범죄를 본격적으로 세우는 법정드라마다. 부장 검사마저도 그게 범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듯 일상화된 폭력. 그래서 더더욱 잘 보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그 어떤 범죄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건들을 이 드라마는 정조준하고 있다. 

많은 법정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검사는 최근 드라마들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직업일 게다. 이 모든 것이 적폐청산에 대한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법정 드라마들이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부분이 바로 이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는 범죄들이다. 심지어 그것이 범죄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가던 사건들. 

이런 점은 <마녀의 법정>이 그 어떤 사이코패스가 등장해 연쇄살인을 벌이는 드라마들보다 더 강렬한 이유다. 그런 사건들보다 더 빈번하게 일상 속에, 통상적인 관례라는 이름으로 혹은 그것이 당연한 사회생활이라고 치부되며 남모르는 피해자들을 양산해왔던 사건들이기에 더 피부에 와 닿는 것. <마녀의 법정>은 그래서 마이듬과 여진욱이라는(이 두 성의 조합이 마녀다) 남다른 검사들이 마녀처럼 사회의 악과 싸우는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와 사이다 검사로서의 면면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정려원도 반갑지만,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한동안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김여진이 돌아왔다는 건 더더욱 반갑다. 게다가 이들이 KBS 새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 또한 반갑다. 그토록 많은 성폭력이나 성추행, 아동학대 같은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 많았음에도 어째서 이제야 이를 정면에서 다루는 드라마가 나왔는지 그게 의아할 지경이다. 물론 드라마가 비뚤어진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것이 범죄인가는 확연히 보여줄 거라는 점에서 <마녀의 법정>에 거는 시청자들의 기대는 적지 않다.

‘도봉순’, 어째서 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진 걸까

본격 장르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본격 장르물에도 멜로나 가족극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멜로의 틈입에 대해 시청자들은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최근 방영됐던 <피고인>이나 <보이스> 같은 본격 장르물이 멜로 없이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그래서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JTBC <힘쎈 여자 도봉순>의 경우는 멜로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커지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본격 장르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여러 장르들, 이를 테면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와 코미디, 게다가 가족드라마적 요소들과 멜로까지 복합적인 장르를 보인다. 

그래도 그 메인으로 깔려 있는 건 여자들만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사이코패스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 사이코패스와 맞서는 강력계 형사 인국두(지수)와, 재벌가의 승계를 두고 벌어지는 테러 앞에서 위협을 느끼는 안민혁(박형식)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도봉순(박보영)이 양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로 서 있는 구도. 

이미 도봉순은 자신이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힘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 걸 각성했고, 안민혁과의 트레이닝을 통해 그 힘을 조절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러니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사실상 이 드라마 상의 어떤 악역들에게도 없다. 수십 명의 조폭들을 단신으로 상대하며 모두를 병원 중환자실로 몰아넣는 그녀가 아닌가. 백탁(임원희)은 그래서 그녀 앞에 일찌감치 무릎을 꿇는다. 

그렇다면 이미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도봉순에게 진짜 목표는 무엇일까. 드라마는 결국 주인공의 결핍을 욕망으로 삼아 그것을 어떻게 쟁취하는가에 따라 동력을 얻기 마련이다. 물론 여자들을 감옥 같은 철창에 가둬두고 마치 전리품처럼 여기는 사이코패스가 버젓이 살아있지만 그를 잡는 건 이 드라마의 한 과정일 뿐, 목표 그 자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봉순은 사실 정의의 실현 같은 것에 목을 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에 더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 힘이 세다는 것을 그녀는 숨기며 자라왔다. 여자가 힘이 세다는 것을 마치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인 양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그녀는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 

우리가 <힘쎈 여자 도봉순>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도봉순의 멜로를 더욱 기대하게 되는 건 바로 그것이 그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숨기고 왔던 괴력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그런 그녀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남자의 등장은 바로 도봉순이 꿈꾸는 것일 테니 말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의 멜로는 그저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남녀 간의 성별로 나뉘어지는 역할이나 선입견들을 깨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남녀의 성역할에 따라 누가 누구를 보호해주고 보호받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멜로가 그려내려는 것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스릴러 장르물의 틀을 가져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는 건 그래서다.

악역이 뭐길래...이준호·김재욱·엄기준, 주인공만큼 빛나는 존재감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에서 펄펄 나는 건 주인공 남궁민만이 아니다. 악역으로 등장해 이제는 남궁민과 짝패가 된 이준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제대로 얻었다. 그는 서율 이사라는 캐릭터를 통해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에게 안하무인격으로 반말을 하고 필요하면 폭력까지 일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윤하경(남상미) 대리 앞에서는 부드러운 면면을 드러낸다. 김과장과 대립하다가도 그가 죽을 위기에 몰리자 그를 구해주는 의외의 인간적인 면을 갖고 있어,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다. 

'김과장(사진출처:KBS)'

물론 이준호는 드라마 <기억>이나 영화 <스물> 등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연기력을 갖춘 아이돌로 평가받은 바 있다. 하지만 <김과장>의 서율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하게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것은 악역이 주는 힘일 것이다. 드라마에 긴장감과 갈등을 부여하는 역할로서 악역은 제대로만 연기해내면 주인공만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지금껏 풋풋한 청년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준호가 서율이라는 안하무인 악역 캐릭터로 만든 반전 이미지는 그에게는 연기자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처럼 악역은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연기자의 새로운 결을 드러내게 해준다. 종영한 OCN <보이스>에서 중반 이후부터 등장해 마지막회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준 김재욱 역시 악역을 통해 새로운 면을 보여줬다. 등장만 해도 살벌한 느낌을 주는 모태구라는 악역은 조각 미남 김재욱의 이미지를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 여성적인 느낌마저 주는 그 미남의 이미지가 거꾸로 살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재욱은 꽤 많은 작품들을 해왔다. 하지만 잘 생긴 외모는 오히려 연기자로서는 어떤 장애요소로 작용한 면이 더 크다. 다양한 연기를 해내기에는 그 외모가 주는 선입견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재욱 역시 모태구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이러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종영한 드라마 <피고인>에서의 엄기준 역시 차민호라는 악역을 통해 새삼 주목받았다. 사실상 <피고인>은 주인공인 지성과 악역인 엄기준이 서로 치고 받는 그 힘에 의해 끝까지 탄력을 잃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소 과한 설정들과 개연성이 부족한 면들이 있었지만 그나마 끝까지 힘을 유지한 것도 지성과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도면밀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살인자 재벌2세라는 캐릭터는 지금의 대중정서가 공분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그 요소들을 통해 엄기준은 냉철하고 냉혹한 악역을 만들어냈다. 어딘지 선해 보이는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그래서 더 잔혹해지는 행동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 강렬해질 수 있었다. 

악역은 그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연기자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깨는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만든 배우들을 보면 저마다 확실한 악역의 필모그라피가 있다. 남궁민이 주목을 받았던 것도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보여준 악역의 힘이 있었고, 유아인 역시 영화 <베테랑>에서의 악역이 있었다. 이준호, 김재욱, 엄기준 역시 이제 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악역이 부여한 연기자로서의 면면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은 어째서 ‘보이스’에 눈을 뗄 수 없었나

“모든 사이코패스들이 살인마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가정과 환경 사회에 영향을 받는 후천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한 인물의 예를 들어보죠. 선천적으로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유년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를 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이후에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되어서 아주 걷잡을 수 없는 끔찍한 살인마가 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회에 가장 감추고 싶었던 비밀들이 이 시대의 범죄자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보이스(사진출처:OCN)'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에서 강권주(이하나)는 도주한 모태구(김재욱)를 격동시키기 위해 방송을 통해 그를 자극하는 말을 남긴다. 그런데 이 대사 속에는 살인마의 탄생이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선천적인 것보다 후천적인 요소에 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즉 선천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어떤 후천적인 악영향이 촉발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살인마가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태생 그 자체보다 그 부모나 사회 같은 주변적 상황들이 중요하다는 것. 

모태구라는 희대의 살인마가 탄생하게 된 건 결국 어린 시절 아버지 모태범(이도경)이 살인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서다. 모태범과 모태구의 잔학한 살인의 연대기는 그 이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살인마가 되어버린 모태구가 저지르는 살인들이 자신 탓이라고 여기는 모태범은 아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면서 그는 끝까지 아들 모태구에게 그가 ‘살인마’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라고 교육시킨다. 누군가를 죽여도 되는 특별한 존재로 교육받는 모태구는 이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결국 모태구라는 희대의 살인마는 강권주의 이 격동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무진혁(장혁)에 의해 검거된다. 하지만 모태구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자신은 피해자라고 여길 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이 부모와 사회 탓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타인의 고통을 공감 못하는 인물이 심지어 재계인물이나 고위 공무원 그리고 검찰이나 경찰총장까지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갖게 되는 일은 실로 끔찍한 결과를 만든다. 

심각한 연쇄 살인도 살인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성운 통운 버스 사건 같은 비인권적 고용문제와 더불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형사고로도 이어진다. 사고가 나면 그 보험금을 사측이 가져가는 계약을 해놓고 사고 위험이 있는 버스를 방치한 채 버스기사로부터 운행하게 만드는 그 충격적인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안전불감증과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사이코패스적 권력자들의 문제를 드러낸다. 칼 들고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이들만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누군가 사고를 당할 위험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아무런 경각심 없이 방치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 

<보이스>는 어쩌다 사이코패스적인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에 ‘골든타임팀’을 투입해 희생자들에게는 절박한 그 골든타임을 지켜내기 위한 안간힘을 보여준다. 강권주와 무진혁의 절절함에 시청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건, 물론 그 끔찍한 사건들이 주는 충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우리 사회가 주는 불안감을 빼놓을 수 없다. 꽃다운 나이에 몇 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인재로 인해 세상을 떠났지만 그 골든타임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무엇을 했던가. 그렇게 안타깝게 세상을 버려도 지켜주지 못하고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는 사회란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이코패스는 끝까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희생자들의 목소리는 그 사이코패스의 귓가에서 울려 퍼지며 그를 죽을 때까지 괴롭힌다. <보이스>가 마지막에 보여준 최후장면은 그래서 정신병동에서 무수한 정신병자들의 손에 의해 난자되는 모습보다 어둠 속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끔찍하게 다가온다. <보이스>는 잔혹한 장면들의 폭력성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드라마가 하려던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굳이 자막으로 일일이 그간 드라마 속에서 희생됐던 이들을 적어 넣은 건 그래서다. 

‘허지혜씨도 강국환 경사도 복님이도 아람이도 은별이도 박복순(심춘옥) 할머니도 낙원 복지원 희생자 분들도 그리고 성운 통운 버스에서 희생되신 분들 모두 우리의 이웃이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골든타임 안에 그분들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억울하고 안타깝게 희생되는 분들이 더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뷰티풀 마인드>, 시청률로 결코 폄하될 수 없는 수작

 

도대체 진정한 의사란 어떤 존재를 말하는 걸까. KBS 월화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의 질문은 진지하고 통렬하다. 이영오(장혁)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우리가 흔히 사이코패스라 부르는 장애를 가진 인물. 이 드라마가 이런 문제적 인간을 병원의 의사로 세운 까닭은 분명하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인 이건명(허준호) 현성병원 센터장까지 괴물이라 부르는 그지만, 과연 진짜 괴물은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뷰티풀 마인드(사진출처:KBS)'

의사라는 직업은 이중적이다. 사람의 생명을 살려야 하는 직업이기에 환자의 고통을 공감해야 하지만, 동시에 수술대 앞에서는 한없이 냉정해져야 한다. 수술대 앞에서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는 이영오가 다른 의사들보다 출중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수술 중 환자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수술이 틀리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이영오의 모습은 그 인간적인 감정이 결여된 의사의 위험성을 드러낸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타인의 고통 앞에 연민과 동정 그리고 나아가 공감을 느끼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병원이라는 시스템은 저 사이코패스처럼 무감정하게 돌아가기도 한다. 신약 개발이 환자를 살리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함으로 변질될 때, 그 곳은 병원이 아니라 사업체가 되고, 환자는 생명이 아니라 매출액으로 표시되는 수치가 된다. 병원이 시스템으로만 기능할 때 그건 사이코패스와 다름없는 무감정한 괴물이 된다.

 

물론 의사들은 사람이다. 그래서 환자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레지던트 3년차 양성은(동하)은 이식할 심장을 제 때 가져가기 위해 병원까지 꽉 막힌 도로를 뛰어가고, 이시현(이시원)은 심장 이식을 앞둔 환자에게 튼튼한 심장을 주겠다며 희망을 품지만, 수술 중 이식할 심장에 감염이 있다는 걸 알고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절망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장에서 뜨거운 심장을 갖고 일하는 의사들과 달리, 저 꼭대기에 있는 현성병원의 수뇌부들은 환자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현성병원 이사장 강현준(오정세)에게 중요한 건 돈 벌이뿐이고, 그를 동조하는 기조실장 채순호(이재룡)는 임상실험의 부작용으로 환자가 죽어나가도 그다지 감정이 없다. 오로지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라는 게 밝혀지고 결국 현성병원에서 내쫓긴 이영오는 다르다. 그는 사이코패스지만 어떻게든 인간적인 감정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바디 시그널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려 하고,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려 한다. 어떻게 하면 보통 의사들처럼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한다. 이영오가 사이코패스지만 오히려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건 그래서다.

 

그는 계진성(박소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렇게 가게 된 어촌마을에서 이웃에 사는 고부를 통해 병변이 아닌 환자를 봐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바디 시그널만이 아니라 그 환자의 생명 자체를 염두에 둬야 비로소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그래서 그는 자신이 누구냐는 질문에 의사 이영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인간적인 감정 역시 이중적이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래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만드는 욕망이기도 하다. 마취과 의사 김윤경(심이영)은 자신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다. 인간적 감정이 고통의 공감을 넘어 파국적인 욕망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무런 감정 자체가 없는 이영오는 그래서 이 의사와 병원이라는 이중적인 세계의 리트머스지 같은 존재로 서 있다. 그의 감정 없는 모습이 사이코패스라며 그를 병원 밖으로 몰아내지만, 정작 병원 시스템은 더더욱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을 보인다. 의사들은 심지어 아버지까지 그의 이런 장애를 괴물이라 말하지만, 그들은 때론 그보다 더 괴물 같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뷰티풀 마인드>3.5%(닐슨 코리아)라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평가 절하될 수 없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의학드라마로서 이처럼 통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이처럼 따뜻한 사이코패스의 성장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 있었던가

<미세스캅>, 자본기계는 사이코패스와 뭐가 다를까

 

물론 드라마가 극화한 이야기일 것이다. <미세스캅>에 등장하는 KL그룹 회장 강태유(손병호)는 기업의 회장이라기보다는 살인을 사주하는 조폭 두목처럼 그려진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비호하기 위해 비리 경찰을 매수하기도 하고, 자신의 부정을 덮기 위해 살인을 사주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데 그 힘은 모두 돈, 자본에서 나온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미세스캅>이 흥미로운 대목은 이 강태유가 살인을 사주하고 현장을 벗어나다가 같은 동네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에 쫓기는 연쇄살인범과 마주하는 장면이다. 짧은 순간 강태유와 연쇄살인범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한다.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기묘한 상황. 하지만 강태유는 자신의 살인 사주를 숨기기 위해 연쇄살인범이 찍힌 블랙박스의 메모리칩을 최영진(김희애) 형사에게 건네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은 이 사실을 알아채고 강태유라는 인물을 자신의 살인 게임 속으로 끌어들인다.

 

비뚤어진 재벌과 연쇄살인범. <미세스캅>에서는 이 두 인물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즉 비뚤어진 재벌이나 연쇄살인범이나 사람을 죽이는 건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도 별다른 동요나 감정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종종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이렇게 범죄와 결탁된 재벌들이 사이코패스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걸 우리는 자주 봐왔다. 왜 그럴까.

 

물론 재벌은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폭력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그걸 대신하는 건 자본이라는 무정한 기계다. 돈은 모든 걸 덮어버린다. 수치화해버리고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단순한 거래 관계로 치환해버린다. 자본에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4대강 사업처럼 사람의 터전은 물론이고 자연의 터전에까지 폭력을 행사하고, 버젓이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포크 레인을 드리우는 것 같은 그 많은 비인간적인 일들이 가능한 것은 그 앞에 자본이라는 기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 뒤로 숨어 그것이 자신의 죄라는 걸 애써 부정한다. 마치 연쇄살인마가 자신의 살인을 살인이 아닌 하나의 게임으로 치부하듯이.

 

비뚤어진 재벌과 연쇄살인마를 둘 다 상대하는 존재가 그냥 형사가 아니라 미세스캅이라는 건 그래서 꽤 상징적이다. ‘미세스캅을 굳이 이 드라마가 캐릭터로 그린 건 아줌마라는 특징을, 국민을 보호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형사라는 직업과 연결시키기 위함이다. 그러자 거기에는 마치 엄마가 이 위험천만의 사회 속에 내보내는 딸을 걱정하는 모성애가 겹쳐진다.

 

15일 간격으로 가출한 여자 아이들을 납치해 게임을 하듯 잔인하게 죽이는 연쇄살인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 거래하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비뚤어진 재벌. 그 앞에 서 있는 미세스캅이란 인물은 그래서 다분히 우리네 살벌한 현실 앞에서 가족을 걱정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이끌어낸다.

 

그녀의 분노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지켜내려는 마음에 똑같이 절절함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우리는 모두 자본이라는 무정한 기계 앞에 매일 같이 맨살을 드러내고 떨어야 하는 현실을 경험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저 극화된 드라마일 뿐일 것이다. 그렇게 치부하면서도 마음 한 편이 몹시도 불편해지는 건 어찌된 일일까.




'로열패밀리', 그 인간과 괴물의 증명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 '인간의 증명'이라는 원작을 갖고 있는 '로열패밀리'의 질문이다. 이 드

'로열패밀리'(사진출처:MBC)

라마는 '로열패밀리'라는 자본의 기계가 되어있는 정가원 속에 스스로를 괴물로 치부하는 이질적인 존재를 통한 화학실험을 선보인다. 이 화학실험의 목적은 그 안에서 진정으로 누가 괴물이고 누가 인간인가를 추출해내는 일이다.

구박받는 며느리에서 18년 간을 절치부심 반전을 준비해온 김인숙(염정아)의 행보는 숨겨져 있던 정가원 사람들의 실체를 드러낸다. 가족관계라기보다는 하나의 기업을 연상시키는 정가원의 자본으로 말끔한 표면 아래 숨겨져 있던 더러운 비밀들이 김인숙이라는 촉매제에 의해 마구 밖으로 끄집어내진다. 가족이 아닌 그저 관계로서 아무런 감정조차 없이 살아가는 자본 기계로 전락한 정가원 사람들은 때론 목적을 위해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사이코패스의 면모까지 드러낸다.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인간 냄새를 풍긴 김인숙의 남편 조동호(김영필)가 의사였다는 사실은 그래서 우연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그나마 남아있던 정가원의 온기를 빼앗아버린 셈. 남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금치산자로 몰아 아들까지 빼앗으려하는 공순옥 회장 앞에서 김인숙의 변신은 시작된다. 무표정하게 감정을 숨기며 살아오다 어느 날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는 김인숙을 정가원 사람들은 '괴물'이라 부르지만, 이것은 어쩌면 반어법인 지도 모른다.

즉 감정 없이 사이코패스처럼 살아가는 정가원 사람들은 김인숙에게서 인간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을 지도.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존재하는 한 인간은 결국 그 괴물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괴물로 보게 만드는 위험한 존재가 아닌가. 결국 조니의 죽음을 김인숙의 살해로 몰아 그녀를 끌어내리려던 공순옥 회장이 백기를 들게 된 것은, 그녀가 들고 온 자술서가 사실은 정가원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스스로 괴물이라 하지 않지만, 자술서까지 들이대며 스스로 괴물임을 밝힌 김인숙은 그래서 인간임을 증명하는 마지막 한 자락을 손에 쥐게 된 셈이다. 드라마는 김인숙이 불행한 과거를 지우기 위해 자신의 아들인 조니마저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해 몰아가고, 스스로도 자신이 조니를 죽였다고 밝히게 만들지만, 바로 그것이 그녀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대목이 된다. 사실은 자해한 조니를 살리려 노력했지만 살리지 못했다는 그 자책감이 스스로를 살인자로까지 인정하게 만들었다는 그 사실. 그것이 김인숙이 괴물이 아니라는 증명이다.

결국 마지막 헬기에 한지훈(지성)과 함께 올라 그에게 자신을 구원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김인숙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승리자가 된다. 그것이 죽음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인지 모를 열린 결말로 드라마는 끝나고 있지만, 그 끝을 받아들임으로써 김인숙은 인간임을 증명하는 셈이고, 반대로 죽음에 이르러서까지 "혼자 갈 수 없다"며 김인숙을 헬기에 태워 죽음으로 내몰려는 공순옥은 괴물임이 증명된 셈이니까. '로열패밀리'의 희비극은 바로 이 죽음 앞에서 어떤 선택이 인간임을 증명하고, 또 어떤 선택이 궁극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혼',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다

블로거의 시선 2009.08.14 11:25 Posted by 더키앙
요즘 주목해서 보는 드라마 중 하나가 '혼'입니다. 사실상 공포물이란 것이 TV라는 매체에서 그다지 시청률을 담보하지는 못하는 장르죠. 특히 요즘처럼 여성 시청층의 입김이 세진 경우라면, 그저 보기만 해도 끔찍하게 느껴지기만 하는 공포물로 채널을 고정시킨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혼'을 처음 접하는 마음은 같았습니다.

처음 시작은 전형적인 귀신영화의 틀을 따라가죠. 거꾸로 자신을 바라보는 혼령과, 거울 속의 혼령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데 이와는 병렬적으로 사이코패스의 이야기가 끼어듭니다. 처음에는 혼령이 무서웠지만, 차츰 사이코패스가 더 무서워지는 것은 이 이야기의 의도 그대로입니다. 폭력이 넘치는 세상, 그리고 그 폭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법, 심지어 폭력을 감싸는 법은 공포의 대상을 뒤바꿉니다. 그 희생자인 혼령은 두려움의 존재에서 불쌍한 존재로 바뀌고, 대신 혼령에게 잔인하게 죽음을 당하는 사이코패스 혹은 범법자들은 오히려 무서운 존재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드라마는 조금 지나고 나면 무섭다기보다는 잔인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공포의 대상이 인간이기 때문이죠. 혼령의 등장은 오히려 권선징악의 차원으로 봤을 때, 이 도대체 어찌할 길 없는 악인들을 처단할 유일한 방법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어떤 면으로는 통쾌함마저 줍니다. 바로 이 부분, 혼령의 등장을 반기고, 혼령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부분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드라마가 이렇게 악인들과 싸우는 이들, 예를 들면 혼령에게 빙의되는 하나(임주은)나, 범죄심리학자인 신류(이서진)의 행위가 정당하냐는 질문까지 던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신류는 자신의 복수심을 억누를 수가 없고 그래서 혼령의 복수를 방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사이코패스의 죽음 앞에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장면은 실로 인간 자체를 섬뜩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죠.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종잡을 길 없는 상황. 오히려 선과 악이 공존하는 그 상황을 보면서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어떤 면으로는 복수를 즐기고, 어떤 면으로는 죄의식을 느끼는 그 경험은 이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은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는 점에서 절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하나가 보는 혼령이라든지, 그녀가 겪는 빙의라든지 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바로 인간이 가진 본능을 과학과 이성이라는 잣대로 합리화하려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즉 흔히들 말하는 '괴물과 싸우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이 괴물이 되는 것'이라는 명제를 이 드라마는 공포물과 범죄물을 엮어서 잘 보여주고 있죠.

'혼'은 그저 공포물이라고 하기에는 담고 있는 것들이 꽤 많습니다. 혼령의 출연이 무서움을 안겨주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드라마를 공포물로 바라보지 않게 만듭니다. 실제로 혼령은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이 변하지 않는 인간들이 더 무섭게 느껴지며, 그들을 처단한다는 것이 또한 방법이 되지 않는다는 인간의 조건을 이 드라마에서는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잔인한 장면들이 TV매체에서는 과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차치하고 보면 이 드라마는 분명 공포물 그 이상을 담고 있는 드라마가 분명합니다.

공포물이 사회물이 될 때

공포물. 무조건 놀라게 하고 잔인하면 된다? 만일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이야기의 맥락이 없는 단순한 자극으로서의 공포란 물리적인 반응으로서의 소름을 돋게 할 지는 모르지만, 마음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진짜 무서운 것은 단순 자극이 아니라, 이야기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금기와 죄의식을 건드릴 때 저절로 피어나오는 두려움이다. 공포가 어떤 공감까지 불러일으킬 때, 우리는 그 이야기가 주는 무서움을 오래도록 느끼게 된다. 그런 면에서 MBC 수목드라마 ‘혼’은 공포와 공감을 둘 다 가져가는 공포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는 두 가지 장르가 혼재한다. 그 하나는 혼령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공포물이고 다른 하나는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범죄물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서로 다른 장르가 어떻게 한 가지로 엮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혼’은 법을 이용해 오히려 범죄자들을 보호하는 빗나간 법 정의의 문제를 건드리면서, 그 해결되지 않는 사회 정의를 혼령이 처결하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전설의 고향’ 같은 민간 설화에서 우리는 억울한 혼령들의 복수극을 늘 목도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원형을 현대적인 공포물로 다시 만드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다. 따라서 혼령과 사이코패스가 연결된 공포범죄물이란 사실상 실험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혼령의 이야기와 사이코패스의 이야기 중간에 혼령이 빙의되는 윤하나(임주은)라는 인물이 서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억울한 죽음을 목격하는 인물이고 심지어는 동생 두나(지연)마저 눈앞에서 죽는 장면을 보게 되는 인물이다. 그 충격으로 그녀의 눈에는 혼령들이 나타나고 심지어 혼령들이 그녀의 몸을 통해 복수를 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은 이 드라마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윤하나의 시선, 즉 혼령들을 보고 그 혼령들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 누군가를 죽이게 하는 그 과정으로 본다면 드라마는 혼령이 등장하는 공포물이 되지만, 윤하나의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그녀의 행동을 보면 이것은 그녀가 또 하나의 사이코 패스가 되어가는 공포범죄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진다. 사회정의가 지켜지지 않는 법이 존재하는 한, 사이코패스는 복수를 안고 피어나는 악의 꽃처럼 반복되어 악순환된다는 점이다. 두나는 사이코패스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 복수를 하는 언니 하나는 그 과정에서 사이코패스처럼 되어간다.

만일 ‘혼’이 그저 기괴한 혼령과 접신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었거나, 아니면 사이코 패스를 잡으려는 범죄 심리학자와, 법을 이용해 사이코패스의 죄를 덮어주는 변호사와의 대결구도로 갔다면 이처럼 박진감 넘치는 장면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는 공포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혼’은 이 두 지점을 엮어서 공포에 사회적 공감을 덧붙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먼저 잘 짜여진 대본의 힘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포물의 특성상 이 드라마가 갖는 연출의 힘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초반부 사거리에서부터 아파트 옥상까지 쫓고 쫓기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 확실한 추동력을 만들어준 것이 사실이다. 공포물이 갖는 디테일적인 영상들 역시 왠만한 공포영화보다 뛰어난 것은 모두가 다 이 연출이 힘을 발한 탓이다.

다만 이 잘 만들어진 드라마가 공포물이라는 점이, 대중적으로 어떻게 어필할 것인지 점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본래 공포물은 대중성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포의 측면만이 아닌 이 드라마가 가진 사회적인 함의나 주제의식을 들여다본다면 어쩌면 이 드라마는 공포물로서 성공할 수 있는 드라마가 될 지도 모른다. 공포와 공감이 공존한다는 점은 ‘혼’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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