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더 게스트’가 그리는 분노가 지배한 사회의 혼돈

갈수록 충격적이다. 한 사람씩 빙의되어 벌어지는 사건들을 하나씩 다루던 OCN 수목드라마 <손 더 게스트>는 이제 한 마을을 뒤덮어버린 빙의자들이 마치 좀비 떼처럼 창궐하는 이야기로 그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 최종 목적지는 박일도 큰 귀신이 처음 빙의자를 낳았던 바닷가 마을 계양진. 구마의식을 하며 점점 몸도 영혼도 어둠에 피폐되어가는 신부 최윤(김재욱)과 정직 징계를 받게 된 형사 강길영(정은채) 그리고 부상을 입은 채 할아버지를 찾아 나선 윤화평(김동욱)은 함께 그 계양진을 찾았지만 이미 마을을 뒤덮어버린 양신부(안내상)의 어둠이 사람들을 부마자로 만들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하고 있었다. 

슬쩍 최종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깔린 복선에는 최윤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구마의식을 하려할 거라는 것과, 그를 구하기 위해 영매인 윤화평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박일도를 봉인한 채 죽음을 택함으로써 영원히 그를 제거하려 할 거라는 암시가 담겼다. 결국 좀비 떼처럼 변한 부마자들 하나하나를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양신부를 해결하는 것만이 마을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됐다는 것. 

거의 공포에 가까운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 전개 때문에 시청자들 역시 계속 벌어지는 사건에 빙의된 채 볼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한 걸음 물러나 <손 더 게스트>가 무얼 이야기하려 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손 더 게스트>는 이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을 표방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어떤 문제들을 건드린 걸까.

그 단서가 되는 건 여기 빙의된 자들이 벌인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한 집안의 가장이 “돈” 얘기만 하는 아내와 딸들 앞에서 갑자기 변해 골프채를 들고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나, 약자들을 지켜야할 경찰이 오히려 창문을 깨고 들어와 폭력을 저지르는 장면, 주유소에서 툭하면 구박하고 손찌검을 하는 사장을 죽인 아르바이트생이나, 고장 난 버스를 고치는데 짜증을 내며 비하하기까지 하는 손님들을 모조리 죽인 관광버스 운전기사 같은 이들을 촉발시킨 ‘어둠’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가 가끔씩 신문 사회면에서 “어떻게 저런 짓을 저질렀지”하고 다시 보게 되는 사건들 속에서 발견되곤 하는 것들이다. 갑자기 툭 터져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건의 이면 속에는 우리네 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게 조금씩 누적되며 쌓여온 ‘분노’의 감정들이 어느 비등점을 넘어 폭발하며 생겨난 일들이다. 너무 끔찍한 일들이라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그 사건들을 <손 더 게스트>는 그래서 ‘빙의’라는 상징적인 소재로 풀어내려 했던 것이다. 

최종회가 펼쳐질 계양진 마을의 좀비 떼처럼 들고 일어난 빙의된 부마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꽤 상징적인 장면들이다. 분노가 지배한 우리네 사회가 맞닥뜨릴 수 있는 혼돈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마지막 회에 담겨지게 되겠지만 분노는 제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누군가의 사랑이 전제된 숭고한 희생 같은 것들이 오히려 해결책이 된다. 분노와 악의 화신이 된 양신부를 막기 위해 제 한 몸 기꺼이 던지려는 윤화평과 최윤 그리고 강길영의 희생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주제의식에 해당하지 않을까. 충격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손 더 게스트>가 담은 메시지가 만만찮게 다가온다.(사진:OCN)

<상속자>, 현실의 축소판을 보는 재미 혹은 끔찍함

 

SBS가 새로 파일럿으로 내놓은 <인생게임-상속자(이하 상속자)>9명의 일반인들이 한 공간에 모여 네 계급으로 나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일종의 리얼리티쇼다. 과거 <>이 애정촌에 모인 남녀들의 관계를 리얼리티쇼로 담아냈다면, <상속자>는 태생()적으로 정해진 계급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양상들을 역시 리얼리티쇼 형식으로 담아낸다.

 

'상속자(사진출처:SBS)'

룰은 간단하다. 운으로 금수저를 뽑은 인물이 초대 상속자가 되어 계급의 맨 꼭대기에 서고 그가 바로 밑 계급 집사 1명과 그 밑 계급 정규직 3명을 뽑는다. 그리고 남은 인원 4명은 비정규직이 된다. 상속자는 이들이 지내는 방세와 식비를 받아 돈을 벌 수 있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방세와 식비를 내야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이 룰에서 집사는 예외적 존재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가장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자가 우승자가 되는 게임.

 

아주 간단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계급으로 구성된 룰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금수저 흙수저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기고, 권력을 가진 상속자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거의 폭군에 가까운 방세와 식비를 가져가려 한다. 조악한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는 비정규직들은 연합하여 다음 선거에 권력을 잡으려 하지만 이게 만만치가 않다. 상속자와 정규직들이 이미 더 공고한 연합을 만들어 비정규직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한 게임이지만 어떻게든 계급을 넘어서기 위해 배신과 야합이 난무하면서 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아직 방영되지 않은 다음 편 예고에서는 눈물을 쏟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지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이 게임에 머물지 않고 감정을 건드리는 건 그것이 고스란히 현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등록금 대출금에 허덕이며 알바를 전전해 살아온 닉네임 샤샤샤라는 여성출연자가 상속자가 되어 그 호사와 권력에 취하는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라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지기까지 한다.

 

<상속자>는 이처럼 리얼리티쇼가 보여주곤 하는 사람들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거기에 우리 사회의 현실을 투영시킴으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대단히 자극적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즉 누군가가 연합할 것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혼자 잘 살기 위해 배신을 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마저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이 계급의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작동방식 그대로다.

 

그런데 이 <상속자>에서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 그건 방영 전부터 예고편에 등장해 기대감을 높였던 김상중이다. 그리고 그는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이 프로그램의 이면에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방송분량이 일반인 출연자들의 리얼한 행동들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 마스터 김상중의 모습은 뒤편으로 슬쩍 빠져 있다. 도대체 김상중은 이렇게 전면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왜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인물로 서 있는 걸까.

 

그건 바로 그가 이러한 끔찍한 현실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조장되고 만들어진 현실이라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계급사회라는 시스템 속에서 불공평한 삶을 살아가며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루하루가 힘들고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며 밟고 밟히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사실은 누군가 조장한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삶이라는 것. 김상중은 그런 존재가 현실에도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잘 보이지 않던 우리네 현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드는 인물이다.

 

김상중이라는 외부적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상속자>는 그래서 인간군상을 보는 재미를 선사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적나라함이 주는 끔찍함 같은 걸 느끼게도 해준다. 물론 이 같은 시스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당사자들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실제 현실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이 가상 시스템 안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다른 스토리를 전해줄 가능성도 높다. <상속자>라는 파일럿의 확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리멤버>, 아들들이 아버지를 위해 전쟁을 치르는 까닭

 

아버지들은 모두 실패했거나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아들들은 그 아버지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 한다.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유다. 서진우(유승호)는 억울하게 강간살인죄로 잡혀 들어간 아버지를 위해 전쟁을 벌이고, 박동호(박성웅)는 서진우의 아버지에게서 권투선수였지만 초라하게 죽어간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서진우와 박동호는 그렇게 아버지를 위한 아들의 전쟁에 뛰어든다.

 


'리멤버(사진출처:SBS)'

그렇다면 그 전쟁의 상대는 무엇일까. 서진우의 아버지를 무고하게 철창에 갇히게 만든 건 남규만(남궁민)이라는 금수저 재벌 후계자다. 돈이면 뭐든 다 되는 줄 아는 인간. 그래서 사람 하나쯤 죽는 것이 뭐 대수냐는 그런 인간이다. 게다가 서진우의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서 필요한 건 제대로 된 변호사다. 법정 불안증이 있어 말조차 더듬는 국선변호사로는 백전백패. 서진우는 박동호에게 매달리지만 박동호가 서진우에게 요구하는 건 돈이다. 결국 이 전쟁의 궁극적 상대는 돈인 셈이다.

 

<리멤버>의 윤현호 작가는 영화 <변호인>의 작가답게 그 작품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져왔다. <변호인>의 송우석(송강호) 변호사는 본래 세테크를 하는 속물변호사였다. 그러다 국밥집 아주머니와 인연을 맺으면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난다. <리멤버>의 박동호는 좀 더 극화된 송우석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역시 돈 밝히는 속물 변호사였지만 서진우와 그 아버지를 만나면서 인권이라는 걸 생각하게 된다.

 

돈이냐 인권이냐. 이 문제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양면적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은 자본이냐 정의냐는 질문과도 다르지 않다. 무수한 변호사들이 등장하는 작품들 속에서 그들은 양쪽 어느 한 쪽을 선택한다. 자본을 비호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가 되거나, 가난이 죄가 되어 억울하게 잡혀온 이들을 위해 정의를 세우는 변호사가 되거나.

 

특이한 건 서진우와 박동호라는 캐릭터다. 이들은 지금껏 우리가 무수한 콘텐츠 속에서 봐왔던 그런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아니다. 서진우는 아버지를 구해내려는 순수한 선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다. 아무런 힘이 없을 것 같은 서민의 모습이지만 숨겨진 능력이 있다. 박동호도 마찬가지다. 그는 겨우겨우 변호사가 된 인물이지만 다른 변호사들에겐 없는 주먹의 세계가 있다. 그저 그런 서민 같은 서진우나 돈만 밝히는 박동호가 변화하는 동기는 아버지다. 서진우는 아버지를 구하려하고, 그를 도우려는 박동호는 그 일이 마치 자신의 아버지의 삶을 복권하는 일인 양 여긴다.

 

좋은 기억이 많으면 부자야.” 사고로 죽기 전 서진우의 엄마가 한 이 말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가진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갑질 하는 세상, 돈이면 인권 따위 짓밟히는 세상에서 돈의 힘은 무소불위처럼 보인다. 남규만이라는 악당은 그런 세상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 이 드라마가 말하는 진정한 부자란 좋은 기억이 많은 사람이니까. 서진우나 박동호는 그래서 어떤 면으로 보면 좋은 기억을 더 많이 갖기 위해 뛰고 또 뛰는 인물이다.

 

좋은 기억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그건 어쩌면 사회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좋은 기억들이 많은 사회가 진정 부유한(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우리 사회는 그런 면에서 진정 부유한 사회일까. 툭하면 터져 나오는 갑질 논란과 서민들을 한숨짓게 만드는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들, 반복해서 터지는 사고들, 불의들 그리고 그런 분노조차 잠시 지나면 잊어버리고 살게 만드는 각박한 삶들.

 

<리멤버>가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들을 가져왔어도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이 좋은 기억에 대한 대중들의 희구가 그 판타지들을 허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돈이 아닌 인권을 선택하는 변호사나 자본의 힘을 이겨내는 좋은 기억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잡아끈다. 좋은 기억을 찾기 힘든 현실에서 드라마 속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좋은 기억을 만들어보려는 소망. 그런 것이 <리멤버>에서는 느껴진다.



<용팔이>의 갑질 폭로 그 어떤 것보다 센 까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 병원이라고 다를까. <용팔이>의 김태현(주원)이 돈만 주면 어디든 달려가는 속물의사가 된 건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휴머니즘? 사람을 살리는 건 의사의 의지이지 돈이 아니다? 그런 선배의사의 말이 그저 순진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걸 <용팔이>는 보여준다.

 


'용팔이(사진출처:SBS)'

김태현이 일하게 된 한신병원 12층은 이런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한신그룹의 회장 아내인 이채영(채정안)의 동선을 따라가 보자. 아무 데나 차를 세워두자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주차요원을 발로 차고, 곧바로 12VIP 병동으로 와서는 자신의 전용 방에 다른 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버럭 화를 낸다. 백화점에서 벌어지곤 하는 VIP의 갑질 논란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지 않은가.

 

그 곳의 코디네이터 신씨아(스테파니 리)VIP병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CS(customer satisfaction) 즉 고객만족이라고 한다. 그들은 병원 가면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언제나 준비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기만 하면 되는 고객님들이다.

 

의사가 환자를 고치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이 세계에서는 돈으로 좌우된다는 것이 차이다. 고객님들이 부르는 곳으로 왕진을 간 김태현이 재벌가 자제가 휘두른 깨진 병에 찔려 쓰러진 연예인을 고쳐주는 일은 의료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범죄 사실을 덮는 또 다른 범죄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재벌가 자제의 폭력을 덮어주고 돌아온 김태현에게 병원장은 또 다른 의료상품이 생겼다며 칭찬해준다.

 

영화 <베테랑>이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재벌 3세의 갑질 폭력을 폭로함으로써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다면, <용팔이>의 갑질 폭로 역시 결코 약하지 않다. <베테랑>이 그리는 건 조폭과 그리 다르지 않는 재벌가의 갑질이지만, <용팔이>는 그것조차 돈만 주면 다 덮어주기도 하는 VIP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갑질 세계의 또 다른 실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곳은 병원이 아닌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의료행위조차 돈에 의해 좌우되는 거래행위로 구현되는 현실을 바라본다는 건 실로 씁쓸한 일이다.

 

<용팔이>의 김태현은 서민의 눈으로 그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 곳은 멋진 옷에 잘 빠진 자동차, 게다가 야외 경관이 뛰어난 창을 가진 개인 진료실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돈에 의해 덮여진 포장지일 뿐이다. 그 포장지를 떼어내면 추악한 욕망들이 꿈틀댄다. 무려 3년이 넘게 그 12VIP 층의 제한구역에 누워 있는 한여진(김태희)이 그 욕망의 실체다.

 

그녀는 그녀를 대신해 한신그룹 회장의 일을 하고 있는 배다른 오빠 한도준(조현재)에 의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한신그룹의 상속녀이지만 그녀를 병원에 묶어두고 대신 그룹을 장악하려는 한도준의 욕망이 만들어낸 범죄다. 그녀에게 병원은 생명이 아니라 감옥이다.

 

하지만 어둠의 세계에서 용팔이(용한 돌팔이)로 불리는 김태현은 이들과는 다른 존재다. 그 역시 멋진 옷에 멋진 차 그리고 화려한 진료실을 포장지로 갖게 되고 무엇보다 돈이면 다 하는 속물 의사의 겉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포장지 이면에는 가난하든 부자든 모두 똑같은 생명이라는 진정한 휴머니즘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그가 이 VIP 층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워질 수밖에 없다. VIP 층은 용팔이가 대결하고 있는 돈으로 갑질 하는 세상의 축소판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은 한여진에게 왜 용팔이가 구원의 존재로 다가오는가를 설명해준다. 모든 것이 자본이라는 철창으로 둘러싸고 있는 한여진에게 그것을 거두고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줄 인물은 용팔이 같은 자본의 갑질을 극복하려는 인물 밖에 없기 때문이다.

 

VIP 병동에 들어간 서민 의사(겉으론 속물의사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라는 설정은 지금껏 우리가 의학드라마에서 좀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면들을 가능하게 한다. 마치 폐쇄공포증을 일으킬 정도로 병원과 병실 그리고 환자와 의사의 관계 속에서만 뱅뱅 돌던 의학드라마는 VIP 병동 의사라는 설정을 통해 병원 밖으로 나와 웬만한 범죄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의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팔이>가 괜찮다고 여겨지는 건 물론 극화된 면이 있지만 이 드라마가 지금 현재 병원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를 고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의료민영화가 본격화된다면 이 빈익빈 부익부는 가속되어 생명, 나아가 범죄까지 돈 앞에서 거래되는 현장을 당연하듯 바라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용팔이>가 그려내고 있는 씁쓸한 세계처럼.



<피노키오>, 이종석의 말, 윤균상의 칼

 

자신의 실제 이름을 숨긴 채 기자가 되어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과 거짓보도를 한 기자들을 밝히려는 최달포(이종석). 그리고 거짓말을 한 자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는 그의 형 기재명(윤균상). 이 두 사람의 교차편집으로 이뤄진 <피노키오> 5회의 마지막 몇 분은 팽팽함과 절절함이 극에 달한 시간들이었다.

 

'피노키오(사진출처:SBS)'

거짓말로 자신의 가족을 파탄 낸 세상에 대한 복수를 위해 한 사람은 펜()을 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칼을 들었다. 그토록 증오하던 기자라는 존재는 최달포에게는 결국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되어야 하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한편 아버지의 허망한 죽음을 알게 된 그의 형 기재명에게 남은 건 복수뿐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헤어진 형제라는 사실은 이들의 또 다른 비극을 예고한다. 최달포가 사회부 기자라는 점은 그가 앞으로 기자가 되기 위해 진실을 파헤치는 그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범죄자가 된 자신의 형을 만나게 될 거라는 걸 예상케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세상에 칼을 꺼내든 형 앞에서 과연 최달포는 진실의 말만을 전할 수 있을까.

 

<피노키오>가 세상에 문제의식을 던지는 방식은 이처럼 새롭다. 이 드라마는 한 가족의 비극을 처절하게 바닥까지 보여줌으로써 왜 누군가의 거짓말이, 또 그것을 받아 제 멋대로 과장한 언론의 거짓말이 얼마나 큰 폭력인가를 드러낸다. 억울하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형마저 복수의 삶을 살아가게 된데다 자신은 신분조차 숨기며 살아야 하는 최달포라는 주인공은 아마도 최근 드라마 속 주인공 중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피노키오>는 현실의 비극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신문 사회면 사건을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로 단순히 구분되어 보이지만 <피노키오>는 그 겉으로 보이는 면이 아닌 그들이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가를 보여준다. 따라서 가해자와 피해자 이면에 숨겨진 진짜 부조리한 현실이 무엇인가를 파헤친다.

 

이것은 박혜련-조수원 콤비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세계이기도 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역시 사건 이면의 이야기를 듣는 주인공을 통해 비극의 진짜 실체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던가. <피노키오>는 그래서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피노키오>의 기저에 깔린 감정이 분노라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왜 이들은 이렇게 분노하는가. 그들이 분노하는 그 이유를 찾아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잘못 흘러가는 시스템의 현실과 마주한다. 그 현실은 MSC의 송차옥(진경) 같은 인물로 드러나기도 하고, 이 가족을 한 순간에 파탄으로 몰고 간 거짓말을 한 화재현장의 작업반장의 얼굴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분노라는 감정은 어쩌면 지금 현재 대중들이 세상에 막연히 품고 있는 어떤 정서일지도 모른다. 왜 그저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뿐인데 이런 지독한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을 살게 되었던가.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것처럼 <피노키오>는 우리 앞에 그 감춰진 부조리의 얼굴들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고 던져지는 질문. 과연 이 시대의 말과 칼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말과 칼은 정의라고 이름 붙여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정의는 진실을 통해 실현되고 있을까. 이 드라마가 그토록 절절하게 우리의 마음에 닿고 있다는 것은, 세상에 난무하는 말과 칼이 거꾸로 아무 죄도 없는 서민들을 향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 말과 칼은 다시 제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피노키오>의 복수극이 그 어느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해지는 대목이다.

 

<야왕>, 수애는 왜 그저 악녀로 전락했을까

 

<야왕>의 주다해(수애)는 왜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이나 <하얀거탑>의 장준혁이 되지 못했을까. 이들 캐릭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든 성공하려는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욕망은 비뚤어진 것이어서 이들은 모두 악역을 자처하지만 그렇다고 그 악역이 모두 비난받는 건 아니다. 미실은 악역이면서도 자신만의 현실적인 통치 철학을 보여줌으로써, 또 장준혁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그 역시 사회라는 경쟁 시스템 속에서의 희생자라는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그 죽음에 이르러 시청자들을 고개 끄덕이게 한 인물들이다.

 

'야왕'(사진출처:SBS)

하지만 <야왕>의 주다해는 다르다. 그녀에게는 일말의 동정적인 시선이 사라져버린 전형적인 악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첫 등장에서 죽은 어머니 사체 옆에 넋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던 모습은 이 가정폭력과 가난에 시달리는 여인이 앞으로 달려갈 욕망의 질주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후 주다해의 모습은 줄곧 시청자들의 이해를 받기보다는 안쓰러울 정도로 성공에 집착하는 악녀로 일관되었다.

 

의붓아버지를 죽이고는 하류(권상우)를 공범으로 만들어버리고, 그렇게 그녀에게 헌신하는 사실상의 남편이었던 그를 배신하고 심지어 감방에 들어가게 한데다 딸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재벌그룹 아들 백도훈(정윤호)의 약점(사실은 그가 누나 백도경(김성령)의 딸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그와 결혼하고, 하류(대신 쌍둥이형인 차재웅이 죽게 되지만)의 살인을 사주한다. 이것도 모자라 백도훈마저 사경을 헤매게 만드는 전형적인 악녀, 그녀가 바로 주다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스토리에 세계관이나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즉 한 사람이 악녀가 되어가는 과정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바라보지 않고 그저 개인적인 차원으로 되돌리는 간편한 선택을 하기 때문에 주다해는 아무런 이해도 받지 못하는 인물로 전락했다. 결국 이것은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잘못은 주다해가 나쁘기 때문으로 귀결되어 버린다. 어린아이 같은 순진하고도 단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남녀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때문이다. 즉 <야왕>이라는 작품에는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 시각이 들어가 있다. 물론 선악구도로 나누어 놓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여성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그 자체로 무언가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시각이 존재한다. 남성은 당연히 성공을 꿈꾸어야 하지만 여성은 그러면 안 되는 듯한 관점. 이것은 주다해의 성공 욕구에 대한 근거를 제대로 제시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편한 시선이다.

 

이렇게 주다해라는 악녀가 시스템이 탄생시킨 괴물이 아니라 그 나쁜 심성 때문에 생긴 인물이 됨으로써 <야왕>은 그저 온전한 복수의 게임으로 전락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때로는 마치 성공하기 위해 발악하는 여성과 그것이 무조건 잘못 됐다는 성차별적인 전제 하에 그녀를 막으려는 남성의 대결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만일 주다해를 좀 더 이해될 수 있는 악녀로 그렸다면 이 드라마는 훨씬 풍부한 관점을 가지면서 논쟁적인 이야기를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그나마 주다해를 수애라는 어딘지 도도하고 믿음이 가며 그 자체로 동정심마저 유발하는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일 수애가 아닌 다른 연기자가 주다해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생각해보라. 어쩌면 <야왕>은 그저 극악스럽기만 한 막장으로 굴러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엉성한 얼개의 스토리는 막장에 가깝지만 그래도 연기자들이 그것을 연기로서 커버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연기자들이 갖고 있는 힘은 세계관이 부재한 허술한 <야왕>의 대본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보게 만드는 힘이다. 권상우의 연기가 그렇고 김성령의 연기가 그렇다. 물론 정윤호는 연기력 부족에다가 그저 바보가 되어버린 백도훈이라는 캐릭터의 한계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야왕>은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 게임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시각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발견하지 않고 그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태도가 그렇고,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여성 차별적 시선도 그렇다. <야왕>의 이 문제를 집약적으로 갖고 있는 인물이 바로 주다해다. 그 어떤 사회의 문제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태생적인 악녀가 되어버린 인물. 볼수록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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