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이동건과 정지훈, 흥미진진한 대결 뒤 남는 의구심

인과론.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그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된다는 이론. 그렇다면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 원인을 제거하는 건 정당한 일일까. JTBC 금토드라마 <스케치>는 스케치로 예고된 살인을 막으려는 이들이 등장한다. 미래를 그리는 유시현(이선빈)과 그와 사건에 함께 뛰어들게 된 강동수(정지훈)가 그들이다. 그 스케치를 통해 강동수의 약혼녀 지수(유다인)가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 유시현은 그래서 강동수가 하려는 행동을 바꾸려고 한다. 그렇게 하려는 행동을 바꾸면 원인이 달라지게 되고 그것이 결과도 바꿀 수 있으리라 여기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과론을 뒤집으려는 행동이다. 일어날 사건에 피해자가 연루되지 않기 위해 하려던 행동을 바꾸는 것. 하지만 이런 대응으로 미래를 바꾼다는 건 소극적인 행동일 수 있다. 당장 피해자는 사건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전히 남아있는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인과론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역시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가진 장태준(정진영)이다. 장태준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잠재적 범죄자’를 미리 처단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그가 김도진(이동건)에게 술을 마시는 한 사내를 죽이라고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 사내는 음주운전으로 결국 무고한 모녀를 죽게 만든다. 그런데 과연 이건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일까. 

‘잠재적 범죄자’는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그런 일을 벌일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를 살해하는 건, 그 자체가 범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케치>가 그리는 유시현과 장태준, 그리고 강동수와 김도진의 대결은 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능력 앞에 놓여진 딜레마의 대결이 된다. 

성범죄자 서보현(김승훈)이 지수를 물에 빠뜨리고 도주했을 때, 강동수는 그를 추격하라는 유시현의 말을 따르지 않고 지수를 구하려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래서 강동수는 간신히 지수를 구조해내지만, 서보현을 쫓아간 유시현은 그에게 맞아 쓰러지고 결국 그를 놓쳐버린다. 하지만 강동수가 지수를 구하기 위해 유시현과 함께 서보현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그의 공범자는 홀로 김도진의 집에 침입해 그의 아내를 살해하게 된다. 강동수의 개입으로 결과가 바뀐 것이지만, 이 바뀐 결과는 원인이 되어 다시 지수가 살해되는 결과로 돌아온다. 지수를 해하려는 서보현을 사전에 알게 된 김도진이 살해했고,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강동수는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지수를 안고 오열하게 되는 것.

이처럼 원인이 바뀌고 그래서 결과도 바뀌지만, 그 결과가 다시 부메랑처럼 돌고 돌아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흥미롭다. <스케치>가 그저 예지능력을 소재로 가져와 벌어질 사건을 막기 위한 형사들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일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건 이 드라마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2회 마지막 장면에 김도진이 서보현을 죽이고, 지수에게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한 말에 담긴 뉘앙스는 어떤 의구심을 남긴다. 그는 진정 지수마저 살해한 것일까. 그건 어쩐지 김도진이라는 캐릭터의 과잉된 행동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내의 복수를 한 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할 일이 남았다”며 무고한 지수를 살해한다는 게 납득될 수 있는 일일까.

물론 그 장면이 삭제되어 있는 점으로 보면, 지수의 죽음이 김도진에 의한 살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일말의 예감을 갖게 만든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수의 죽음이 너무 의도적인 강동수와 김도진의 대결구도를 위한 설정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설정이 중요한 건, 이 드라마가 인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결구도나 갈등을 위해 인물을 소모적으로 다루는 것이라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가 어렵게 될 수 있다. 만일 결국 김도진이 지수를 살해한 것이라면, 그만한 납득할 이유가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사진:JTBC)

기막힌 교집합 ‘크로스’, 범죄와 의술 사이 생명은

이 교집합이 실로 흥미롭다. tvN 월화드라마 <크로스>는 바로 이 드라마가 가진 많은 경계의 접점들에서 나온 제목 같다. 범죄와 의술이 겹쳐지고, 살인과 활인(活人)이 겹쳐진다. 장르로 보면 의학드라마와 범죄물이 겹쳐지고, 공간으로 보면 감옥과 병원이 겹쳐진다. 그리고 이렇게 ‘크로스’되는 지점에 놓여진 건 다름 아닌 ‘생명’이다. 

천재의사 강인규(고경표)라는 존재 자체가 여러 이질적 면면이 ‘크로스’된 캐릭터다. 그는 처참하게 장기가 적출된 채 살해당한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꿈꾸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의사가 된 인물이다. 그래서 그가 드는 메스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복수를 위해서는 ‘살인검’이 되지만 의사의 본분인 생명을 위해서는 ‘활인검’이 된다. 

이 의학드라마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장기이식 역시 두 가지 이질적 요소가 ‘크로스’ 되어 있다. 충격적인 범죄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장기밀매와 아름다운 미담으로 전해지는 장기기증, 장기이식 이야기가 그것이다. 둘 다 장기를 꺼내 다른 사람들에게 이식하는 것이지만, 하나는 심각한 범죄이고 다른 하나는 휴머니즘이 가득한 의술이다. ‘크로스’는 그 의미 자체가 장기이식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구지만, 거기에는 이러한 범죄와 의술로 나뉘어지는 상반된 관점이 들어 있다. 

강인규는 이 크로스 된 상황 속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수감 중인 아버지를 죽인 원수 김형범(허성태)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는 교도소에 자원하고 부적절한 약물 투여를 통해 조금씩 그를 고통스럽게 죽이려 한다. 강인규를 자신의 장기 밀매 조직에서 이용하기 위해 김형범은 ‘장기 적출’ 일을 제안하고, 그는 그 밀매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그 위험한 일을 수락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 발각되어 위기에 처한 강인규는 거기 누워 있는 소녀를 구해내 살려내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흥미로운 건 이 소녀를 구해내려는 과정에서 강인규가 보이는 절실함이다. 어린 시절 늘 병마에 시달리는 동생 때문에 부모들이 모두 힘겹게 살아가는 걸 목도한 그는 차라리 동생이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먹었고, 그 기억은 못내 그의 죄의식으로 남았다. 결국 길가에 버렸던 동생을 다시 구해내는 그 과거의 일이 그에게는 눈앞에 존재하는 생명을 어떻게든 구해내려는 절실함을 만들어낸다. 

복수를 위해 메스를 쥐었다고 하고 있지만, 메스를 쥔 그의 손은 어느 새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위해 재게도 움직인다. 아무리 두드려도 병원비가 없다는 이유로,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아픈 동생을 위해 병원 문을 열어주지 않은 그 절망감을 경험했던 그로서는 차가운 세상에 대한 복수심과 아픈 생명에 대한 절실함을 동시에 갖게 된다. 

멀쩡한 생명에서 장기를 적출해 팔아먹는 범죄자들보다 더 무서운 이들은 선림병원 이사장인 손영식(장광) 같은 권력자다. 범죄자들의 장기밀매는 공공연한 범죄이지만, 손영식 같은 사람이 권력에 줄 대기 위해 힘없는 이들보다 힘 있는 이들에게 장기이식의 우선권을 주려 한다거나 혹은 심지어 그들을 위해 실려 온 환자가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 범죄라는 점에서 끔찍하다. 

“적어도 의사에게 생명에는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고정훈(조재현) 같은 의사만이 이 돈과 권력으로 드러나지 않는 범죄가 벌어지는 현실에 희망이 된다. 세상에 복수하려 든 강인규의 메스를 생명을 위한 메스로 바꾸려 노력하는 그의 노력을 응원하고 지지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크로스>는 생명을 두고 벌어지는 양 갈래의 서로 다른 선택의 상황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거기에는 끔찍한 자본 세상의 추악함이 담기지만, 동시에 기꺼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해 누군가의 생명이 되려는 이들의 따뜻함 또한 그려진다. 그리고 그것은 강인규라는 인물을 양극단에서 잡아끄는 요소들이다. 그는 어떤 길을 선택할까. 강인규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크로스’를 그려보게 된다.(사진:tvN)

따뜻한 스릴러, 우리가 ‘터널’에 주목하는 이유

스릴러는 안 된다? 우리네 드라마의 오랜 공식이 깨져가고 있다. 그 시발점은 김은희 작가가 쓴 tvN <시그널>이었다. 연쇄살인범이 등장해 잔인한 살인을 이어가는 스릴러물이지만 <시그널>은 놀라운 시청률과 완성도에 대한 호평까지 얻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스릴러물이 어떤 잔인함과 공포 같은 자극적인 소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피해자의 절절한 감성과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는 형사들의 간절한 감정 같은 것들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시그널>은 그래서 스릴러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터널(사진출처:OCN)'

그러고 보면 OCN <터널>은 <시그널>에서 시작한 한국형 스릴러의 신호가 이제 정착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터널>은 <시그널>의 그 인간적인 형사들이 주는 따뜻함이 전제되어 있고 연쇄살인범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들의 아픈 감성이 전편에 걸쳐 느껴진다. 그래서 이 3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온 박광호(최진혁)라는 인물이 어떻게든 살인범을 잡아 사건을 해결하고 본래 시간대로 되돌아가 그 후에 벌어졌던 많은 비극들을 되돌리기를 시청자들은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렇게 인물이 주는 인간적인 냄새는 박광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들이 더 편안하게 스릴러 장르를 보게 되는 이유가 된다. 어딘지 우직하고 빈틈도 있어 보이는 인물이고, 30년 전의 사람이니 지금 시대의 디지털 문화에는 거의 무식자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가 30년 후 다시 만나게 된 강력1팀장 전성식(조희봉)이 과거 막내였다는 사실은 상명하복의 딱딱해질 수 있는 경찰서의 풍경을 때론 우습고 때론 훈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런 점들은 스릴러 장르 속에서도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형사들의 입장에 빙의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스릴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범인을 잡기 위한 그 간절한 마음을 똑같이 느끼게 해준다. 

또한 스릴러 장르가 쉽지 않다고 여겨지는 건 일종의 연속극 개념으로 드라마를 봐온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이 장르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여러 사건들이 편편이 끊어지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의 캐릭터는 계속 쌓여질 수 있지만 이처럼 매 사건이 나오고 그것이 해결되면 다른 사건이 나오는 식의 전개는 드라마에 대한 점증적인 몰입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터널>은 여기서도 전개 방식에 있어서의 운용의 묘를 찾아낸다. 그것은 각각의 사건들이지만 그것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사건으로 연결시킨 점이다. 이를테면 신재이(이유영)라는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으로 입양됐다 돌아온 그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오빠의 죽음을 목격한 아이의 입을 열게 하는 이야기를 통해 설명된다. 어머니가 연쇄살인범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상처를 가진 김선재(윤현민)는 역시 군대에서 구타로 죽은 아들 때문에 아내까지 잃게 된 한 아버지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 그 사건을 통해 설명된다. 

과거에서 온 박광호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같은 이름을 가진 형사 행세를 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범행을 저지른 한 여자의 사건을 통해 설명된다. 즉 각각의 사건들이지만 그 사건들이 환기시키는 상황들은 주인공들의 상황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짐으로써 각각의 사건처럼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이들을 일관되게 하나로 모으는 건 바로 연쇄살인범이라는 존재다. 박광호도 김선재도 또 신재이도 모두 연쇄살인범이라는 한 인물을 잡으려는 공동의 목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사한 사건이 다시 벌어지고 과거에 잡았다 놓친 연쇄살인범 정호영(허성태)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며 그를 추적하기 시작하지만 새롭게 국과수 부검의인 목진우(김민상)가 연쇄살인범이었다는 반전에 시청자들은 일관되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사실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는 건 어떤 외부에서 들어온 형식이 우리 식의 정서에 맞게 제대로 변형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터널>을 한국형 스릴러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그 정서가 저 미드의 스릴러와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저 자극적인 장면과 허를 찌르는 반전만이 아니라 어떤 따뜻한 느낌과 나아가 가족적인 관계망이 주는 끈끈함 같은 것들이 <터널>에는 유기적인 구성을 통해 잘 보여지고 있다. <시그널>이 촉발한 한국형 스릴러는 <터널>에 와서 완성되어가고 있다.

애매모호한 봉합, ‘완벽한 아내’가 외면 받는 까닭

3.5%. KBS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는 5회 만에 최저시청률을 기록했다. 3회에 5.1%로 살짝 반등하는가 싶더니 다시 주저앉고 있는 것. 경쟁작인 SBS <피고인>이 워낙 펄펄 날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완벽한 아내>의 추락이 외적인 요인에만 비롯된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고 있는 걸까. 

'완벽한 아내(사진출처:KBS)'

<완벽한 아내>는 그 장르적 경계가 애매하다. 물론 도입부분에 들어간 죽은 정나미(임세미)를 심재복(고소영)이 발견하는 장면은 제목과 달리 심리스릴러 같은 느낌을 줬지만, 곧 이어진 심재복이 로펌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은 인턴 채용이 되지 않고 밀려나는 이야기는 평범한 워킹맘의 성장담처럼 여겨지게 했다. 하지만 심재복의 남편 구정희의 정나미와의 불륜사실이 드러나며 불륜드라마의 틀을 가져가더니 이은희(조여정)라는 미스터리한 여인의 등장으로 다시금 심리스릴러의 느낌이 덧붙여졌다. 

물론 이러한 애매한 장르적 경계를 장점으로 지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평범한 워킹맘 성장스토리나 불륜 소재의 가족극에 심리스릴러와 미스터리를 섞어 긴장감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이러한 봉합된 장르들 속에서도 시청자들이 일관되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테면 주인공인 심재복이라는 워킹맘의 처지에 시청자들이 깊은 공감을 가질만한 인상적인 시퀀스가 있었는가나, 그녀와 살짝 멜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강봉구(성준)의 매력이 시청자들을 빠뜨릴만큼 강력했는가 하는 점들이다. 그게 아니라면 도입에 들어갔던 정나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가 만들어내는 호기심이 시청자들을 못내 궁금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라도. 

하지만 4회가 진행되면서 <완벽한 아내>가 끌고 온 힘은 이은희라는 미스터리한 여인이 만들어내는 궁금증이 대부분이었다. 그녀가 왜 심재복과 그 가족을 자신의 집안으로 끌어 들였는가 하는 점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5회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살짝 밝혀진다. 그녀의 남편이 첫사랑이었던 심재복을 줄곧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자신이 고통스러웠다는 것. 그래서 의도적으로 심재복에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설정이나 의외성 같은 것만 두고 보면 <완벽한 아내>는 이제야 조금 극적 긴장감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긴장감이 무려 5회 동안이나 진행되어서야 겨우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건 이 드라마의 전개가 너무나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런 전개 속에서 심재복이나 이은희 강봉구 그리고 구정희 같은 주요인물들의 매력이 저마다 풀풀 풀어져 나왔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수 있다. 하지만 느린 이야기전개에 매력적인 인물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은 시청자들이 도대체 어디에 집중해야 될 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완벽한 아내>가 여러 장르들의 봉합을 시도해 새로운 느낌을 만들려한 건 나쁘지 않은 기획이라고 보인다. 하지만 이질적인 것들의 봉합은 더 촘촘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제각각 흩어져 오히려 집중을 방해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확인시켜준다. 제목처럼 좀더 완벽하고 촘촘할 수는 없었을까.

‘피고인’, 다소 과한 설정도 지성과 엄기준의 연기라면

깨어보니 기억이 지워진 채 사형수가 되어 있는 검사. 자신의 쌍둥이 형을 죽이고 형 행세하는 살인자. 사실 SBS 새 월화드라마 <피고인>의 설정은 다소 과한 면이 있다. 물론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강력부 검사가 사형수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나 그렇게 벌써 감옥에서 4개월이 지나버렸지만 여전히 자신이 사형수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피고인(사진출처:SBS)'

한 명은 사업가지만 다른 한 명은 살인자인 쌍둥이 형제 설정도 현실적이라기보다는 극화된 면이 더 강하다. 폭행으로 사경을 헤매는 여자의 가해자로 쌍둥이 동생 차민호(엄기준)는 검사 박정우(지성)에 의해 쫓기게 되자 형 차선우를 때려눕히고 베란다에서 밀어 떨어뜨린다. 그리고 형 행세를 하며 유유히 건물을 빠져나가 형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는 형수에게 그녀의 아이가 형의 자식이 아니라는 약점을 폭로하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사실 제 아무리 쌍둥이라고 해도 이렇게 사업가와 살인자가 뒤바뀌는 설정이 쉽게 용인되지는 않을 것이다. 외모만 같다고 해서 모든 존재의 증명이 해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문 조사 하나만 해도 금세 들통 날 일이다. 하지만 <피고인>은 그런 디테일한 문제들은 다음으로 미루고 일단 사건들을 밀어붙이는 쪽을 선택한다. 

첫 회에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끌어야 하는 최근 드라마들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분명 스토리의 설정이 과하다는 느낌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지성과 엄기준이 보여준 연기대결에 가까운 절절한 연기 덕분이다. 사실상 지성이나 엄기준 모두 1인2역을 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성은 잘 나가던 강력부 검사에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한 순간에 사형수가 되어버린 그 절망감을 연기한다. 게다가 무슨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는지도 그는 전혀 가늠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이 사형수가 된 이유가 아내와 딸을 살해했다는 것이란다. 지성은 이 천상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박정우라는 인물의 처절함을 특유의 ‘미친 연기력’으로 보여준다. 결국 이 드라마는 어떤 누군가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사건으로 집으로부터 멀리까지 오게 된 박정우가 다시금 집으로 돌아가는 그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너무 다른 쌍둥이 역할을 1인2역으로 해내야 하는 엄기준 역시 만만찮은 배역을 맡았다. 특히 형을 죽인 동생 차민호 역할은 보는 이들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첫 회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베란다에서 떨어뜨렸지만 그래도 살아남아 병원까지 실려 온 형이 동생을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다 결국 죽는 순간, 웃으며 오열하는 연기는 가히 압권이었다. 

물론 <피고인>이 하려는 이야기는 그저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 극적인 상황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결국 진실을 찾아나가는 이야기고 그 과정은 정의를 구현해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또한 박정우가 처한 상황, 즉 4개월 기억의 공백은 그걸 채워나가며 진실에 접근해가는 과정들을 훨씬 더 긴박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첫 회이기 때문에 다소 과한 설정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가 어떤 힘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지성과 엄기준이라는 연기자들 덕분이다. 그리고 이런 대결구도는 향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점에서 이 두 연기자들의 연기대결을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수의 신>, 고구마는 가득한데 사이다는 언제쯤?

 

KBS <국수의 신>은 한 마디로 극성이 세다. 인물마다 자신의 욕망이 뚜렷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부딪침이 많다. 갈등은 도처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사람은 쉽게 죽고, 폭력은 도처에서 벌어진다. 지상파 드라마지만 심지어 성폭력이 등장하기도 하고, 성적 유혹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마스터 국수의 신(사진출처:KBS)'

1,2회에 김길도(조재현)라는 악마의 탄생을 촘촘히 그려내면서 네 사람이 그의 손에 죽고 한 명은 식물인간이 된다. 그런데 그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은 아버지고 다른 한 사람은 장인이며 무명의 부모는 아이의 눈앞에서 불타 죽었다. 이 정도로 세다. 목적을 위해 존속살인은 물론이고 청부, 아이도 마다않는 인간이다.

 

만일 이 드라마가 연출을 세련되게 만들지 않았다면 단박에 막장의 비난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 드라마는 이 정도의 자극을 갖고도 막장 논란이 안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연출에 공을 들였다. 어쨌든 이렇게 강력하게 악마 김길도를 세운 덕에 이 드라마는 복수극의 명분을 얻었다.

 

고아원에 들어간 무명이 친구인 태하(이상엽)와 재영(고길용)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 여경(정유미)을 만나는 건 이 복수극을 위한 사전포석이다. 이들은 함께 훗날 복수극으로 도와주거나 대결하게 되는 운명을 갖게 될 인물들이다. 이들이 함께 힘을 합쳐 김길도와 대결하는 건 기대감을 자아내게 하는 구도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밝혀진 바대로 여경의 어머니를 죽인 자는 태하의 아버지다. 태하는 이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김길도는 그런 태하에게 부하가 될 것을 권유했다.

 

복수의 대상인 김길도가 장인인 고대천을 식물인간 만들고 서울 강남에 짓는 궁락원은 무명과 그 친구들이 부숴나갈 악마의 소굴 같은 곳이다. 무명이는 어떻게든 궁락원으로 들어가 안으로부터 그 소굴을 무너뜨려 김길도에게 복수하려 한다. 들어가는 과정이나 그 속에서 복수하는 과정은 결국 국수 만드는 비법 대결 같은 틀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정도면 이야기가 촘촘하고 전개도 빠르며 극적인 상황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 시청률은 응답하지 않는 걸까. 화제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느껴지는 이상함이다. 인물들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정작 보는 마음은 무덤덤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 첫 번째는 아무래도 이런 식의 복수극과 음식 소재의 대결 이야기 같은 것들이 어디서 많이 봤던 기시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드라마 시작부터 나왔듯 <국수의 신><제빵왕 김탁구>가 만들어낸 음식 복수극과의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드라마가 지금까지 너무 게임처럼 흘러왔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아귀가 맞고 사건은 빠른 속도로 이어지지만 인물들이 느끼는 아픔 같은 감정들이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는 건 연출이 이야기 전개는 세련되게 하고 있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거기에 잘 얹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복수심은 알겠지만 다양한 감정들은 잘 묻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건은 실감이 느껴지기보다는 게임을 하듯 일정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또한 연기가 몰입이 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애초에 만화 원작이 갖고 있는 그 만화적인 느낌을 드라마로 가져오면서 좀 더 현실성을 바탕에 깔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무명은 그 당한 일들을 떠올려보면 쳐다보는 것조차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강렬한 느낌을 줘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너무 차분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도 보다 본격적인 복수극을 위한 하나의 포석일 수 있다. 실제로 이제 <국수의 신>은 무명이 궁락원에 들어가고 여경이 검사가 되어 사건을 파헤치는 등 본격적인 복수극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과정이 너무 길었다는 느낌이 짙다.

 

문제가 무엇이든 드라마에 현실적인 느낌을 좀 더 실어내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사람을 몇 명씩 죽인다고 해도 시원찮은 반응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자극적인 장면보다 더 강력한 건 그 사람의 내면에 대한 깊은 공감이 아닐까. 이 불쌍한 청춘들이 그들을 짓누르는 어른들의 세계를 철저히 부숴버리는 그런 사이다는 언제쯤 등장할까.

손현주, 평범함을 가장 잘 연기해내는 배우

 

그는 <아저씨>의 원빈처럼 멋지게 달리지 못한다. 베테랑 스타 형사지만 달리는 폼은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 같다. 원빈은 <아저씨>라는 작품에서 전혀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지 않지만, <악의 연대기>의 베테랑 스타 형사를 연기하는 손현주는 오히려 편안한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이 점은 아마도 손현주라는 배우가 관객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지점일 것이다.

 

사진출처:영화<악의 연대기>

드라마 <추적자>는 그의 이런 친근한 이미지가 서민들의 정서와 만나면서 폭발한 드라마였다. 백홍석이라는 형사였지만 그는 형사라기보다는 한 평범한 아빠에 가까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무참한 죽음을 발견한 그는 아저씨 같은 몸으로 뛰고 또 뛰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힘겨움과 절박함이 오롯이 시청자들에게 느껴졌다.

 

<악의 연대기>에서 손현주가 연기하는 최창식 반장은 같은 형사지만 백홍석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그는 한 때 백홍석 같은 순수한 인물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권력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아줄이 거의 손아귀에 닿을 즈음 그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사건이 터진다. 무슨 일에선지 그를 죽이려 하는 인물과 사투를 벌이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

 

그가 백홍석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그것은 정당방위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맨바닥을 굴러 어렵게 올라선 자리에 서게 된 최창식 반장은 다른 선택을 한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안에서 조금씩 생겨난 악의 씨앗들이 어느 순간 표면 위로 솟아오른 것일 게다. 선과 악의 경계는 그렇게 얄팍하고 어떤 계기에 의해 불쑥 그 얼굴을 내민다. <악의 연대기>는 바로 저 한나 아렌트가 홀로코스트의 수송담당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에 관한 글에서 쓴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악인의 얼굴? 그런 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악의 연대기>라는 영화의 최창식 반장 역할에 손현주만한 연기자가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는 심지어 악역을 연기하고 있어도 어딘지 짠한 느낌을 주는 그런 배우다. 살인을 저질렀어도 여전히 옆집 아저씨 같은 그 모습과 때로는 동료들을 동생들처럼 끔찍이 챙기는 따뜻함을 가진 인물. 최창식 반장에서는 저 손현주라는 배우가 가진 인간적인 냄새 같은 것이 묻어난다.

 

<악의 연대기>는 꽤 잘 짜여진 영화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반전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긴박하게 만드는 장본인은 바로 손현주라는 배우다. 그는 영화 속에서 악역이지만 이상하게 관객들은 그 악역이 범죄를 은폐하려 하는 그 시도들을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걱정하며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러면 안되는데하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게 만든다.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물에서 인물에 이런 몰입을 하게 해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어떤 역할을 하든 일단 심정적인 동조나 동정을 하게 만드는 건 손현주의 연기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가 과거 누군가의 평범한 남편 같은 역할에서 완전히 다른 변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그는 여전히 그 평범함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연기자다. 다만 다른 역할이라는 옷을 바꿔 입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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