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스>, 이쯤 되면 믿고 보는 박신혜

 

이쯤 되면 믿고 보는 배우의 탄생이다. SBS 월화극 <닥터스>에서 박신혜는 지금껏 해왔던 이미지의 익숙함에 새로움을 더했다. 익숙함이라 하면 교복 입은 모습에 어딘지 동정이 가는 힘든 가정 형편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고, 새로움이라 하면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는 조폭들을 일거에 진압(?)해버리는 조금은 반항기 있어 보이는 걸 크러시의 모습이다. 결국 연기자의 성장이 기존의 이미지를 가져와 어떤 새로운 이미지를 더해 가는가가 관건이라면 박신혜는 확실히 <닥터스>를 통해 그 성취를 보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닥터스>의 혜정이라는 캐릭터는 아픔이 많은 과거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새 엄마를 만나 새 가정을 꾸렸고, 그녀를 할머니 댁에 맡겼다. 하지만 그녀가 유일하게 기대며 살아왔던 할머니는 수술 도중 사망했다. 혈혈단신으로 세상과 마주하며 살아왔을 혜정. 의혹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할머니의 죽음은 그녀가 의사가 되는 이유가 된다. 의혹을 밝히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의사의 입장을 이해해보겠다는 의도로 시작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럴수록 의혹은 더 깊어진다.

 

즉 혜정이라는 인물은 바로 이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어두움이 그 밑에 깔려 있어 어떤 우울을 만들지만, 동시에 그녀 주변을 감싸고 있는 홍지홍(김래원)이나 절친 천순희(문지인)에 의해 조금씩 마음이 풀어져간다. 혜정 앞에 갑자기 나타난 새 엄마와 그녀의 딸 유나(한보배)는 그녀에게는 없는 가족에 대한 애증을 이끌어낸다. 결국 <닥터스>는 혜정이라는 리트머스지에 주변인물들이 서로 화학반응을 함으로서 그녀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 가는가를 들여다보는 드라마다. 그리고 이러한 혜정의 성장과 치유는 <닥터스>의 의사들이 환자들을 고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다.

 

혜정의 성장은 박신혜라는 연기자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교복 입은 여고생으로 시작해 어엿한 의사로 성장하고 그러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서 변화해가는 모습은 박신혜가 지금껏 해왔던 연기 히스토리와 또 앞으로 성장해갈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박신혜라는 연기자의 이미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청순함과 선함이다. 여고생 복장으로 나와도 여전히 풋풋함이 느껴지는 그 건강한 매력.

 

<미남이시네요>가 해외에서 반응을 보이며 한류스타로서 주목받게 된 박신혜는 <상속자들><피노키오>를 통해 이 본연의 매력 위에 절절한 눈물 연기를 더하면서 더 깊어진 연기를 보여줬다. <미남이시네요>부터 보여줬던 달달하면서도 풋풋한 멜로연기와 <상속자들><피노키오>를 통해 보여준 공감 가는 눈물 연기. 여기에 <닥터스>에서 박신혜는 액션 연기까지 소화 가능한 연기자라는 걸 증명해내고 있다.

 

젊은 여성 연기자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즉 믿고 보는 여배우들을 이야기하면 김희애나 김혜수 같은 중견 연기자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연상연하 커플이 많이 등장한 것도 어찌 보면 주목할 만한 젊은 신인들이 많이 배출되지 않아 믿고 보는 여배우들의 연령대가 높아져서 그렇다고도 볼 수 있다.

 

박신혜라는 연기자는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네 드라마가 가진 젊은 여배우에 대한 갈증을 확실히 풀어주는 면이 있다. 처음에는 여전한 여고생 같은 그런 풋풋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녀는 훌쩍 성장해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가진 연기자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닥터스>는 그런 그녀의 면면을 혜정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벌써부터 심상찮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 드라마로 우리는 확실히 믿고 보는 로코 퀸의 탄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닥터스>의 박신혜-김래원, <운빨>의 류준열-황정음

 

지상파들의 드라마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다. tvN 드라마의 급성장이 주는 자극은 지상파들의 위기감을 높이고 있고 이 헤게모니 싸움에서 밀리게 되면 끝없이 추락할 거라는 공포감마저 생겨나고 있다.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그만큼 중요해진 것이 있다. 바로 캐스팅이다. 누가 캐스팅되었고, 그 연기자가 얼마만큼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또 팬덤을 갖고 있는가는 드라마의 성패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닥터스(사진출처:SBS)'

월화드라마에서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는 SBS <닥터스>는 박신혜와 김래원이라는 두 배우의 힘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2003<천국의 계단>에서 아역으로 시작해 2009<미남이시네요>로 확실한 한류스타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넌 내게 반했어>, <상속자들>을 거치면서 배우로서의 색깔을 점점 채워나간 박신혜는 이번 <닥터스>에서는 조금은 반항적이면서 여성들도 선망할 멋진 걸 크러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혜정이란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간 착하고 밝은 소녀로서의 이미지만 보여왔던 그녀의 이런 변신은 <닥터스>라는 어찌 보면 전형적일 수 있는 의학 성장드라마를 매력적으로 만든 중요한 요인이다.

 

한편 상대역으로 등장한 김래원은 <천일의 약속><펀치> 같은 다소 무거운 캐릭터의 옷을 벗어버리고 따뜻하고 자상한 이미지의 홍지홍 역할을 선보이고 있다. 교사이자 의사 역할인 극중 홍지홍의 모습은 김래원의 훨씬 더 자연스러운 연기의 면면들을 끄집어내주기에 충분했다. 선생과 제자로 만나 서로에 대한 연정을 키워가는 쉽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박신혜와 김래원이라는 두 배우가 가진 그 자체의 매력은 이 멜로에 대한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닥터스>와 경쟁작으로 동시에 시작된 <뷰티풀 마인드>는 그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다 여겨지지만 아쉽게도 장혁과 박소담의 힘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장혁이 하는 공감 제로의 의사 역할은 쉽지 않은 것이다. 때론 카리스마가 느껴지지만 때론 아픔이 느껴지는 그 면면들을 연기해내야 한다. 하지만 장혁에게서는 여전히 <추노> 대길이의 이미지가 느껴진다는 목소리들이 많다. 또한 드라마가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영화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박소담의 연기는 어딘지 어색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배우에 대한 호감도나 몰입은 <닥터스>와의 대전에서 <뷰티풀 마인드>가 힘을 좀체 발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수목드라마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지상파 수목드라마의 성적은 전반적으로 추락해 있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미니시리즈 편성시간대로 자리해있는 수목드라마가 이처럼 10% 시청률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지상파 드라마가 처한 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 <운빨로맨스>가 그마나 수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류준열과 황정음이라는 두 배우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운빨로맨스>의 스토리는 너무나 단순하다. 초반의 을 중심으로 이어가던 이야기들도 중반으로 들어오면서 상당부분 사라져버렸고, 대신 심보늬(황정음)와 제수호(류준열)의 달달한 로맨스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 이것은 스토리의 힘이라기보다는 황정음과 류준열이라는 배우들의 팬덤과 그들 팬덤이 요구하는 장면들을 충족시켜주는 데서 나오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캐스팅의 힘이라는 것이다.

 

종영한 <국수의 신>이나 새롭게 시작한 <원티드> 모두 스토리의 힘을 강조한 작품들이지만 캐스팅의 힘만으로 보면 <운빨로맨스>를 이기기가 어렵다. <국수의 신>은 주인공 천정명보다 악역인 조재현의 힘이 더 많이 느껴진 드라마로 종영했고, <원티드>의 김아중은 엄마 연기에 대한 몰입도가 그리 강하게 어필되지 못하고 있다. <운빨로맨스>의 선전은 그나마 황정음과 류준열에게서 기대되는 캐릭터들이 작품을 통해 보여지고 있고, 그들이 또한 연기자로서의 열정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생겨났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캐스팅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까닭은 작품의 편차가 압도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어느 정도는 평준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이렇게 팬덤을 갖고 있는 배우들의 작품 선택이 그만큼 신중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는 그래서 갈수록 더 드라마의 성패에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우빈, 준호, 강하늘, <스물>이 보여준 가능성들

 

이들에게 이런 면들이 있었나. 영화 <스물>에서 우리가 늘 봐왔던 김우빈이나 준호 그리고 강하늘의 모습은 조금 낯설어진다. 어딘지 반항기 가득한 김우빈이 이토록 병맛 코드로 웃길 줄 누가 알았으랴. <상속자들>에서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들던 그 대사도 멋지게 소화해내던 그 김우빈은 <스물>에서는 입만 열면 섹스하자고 외치는 반전의 허당으로 관객들을 웃긴다.

 

사진출처:영화<스물>

2PM 준호 역시 낯설긴 마찬가지다. 물론 <감시자들> 같은 영화에서 이 친구 연기 가능성이 좀 있다고 생각했던 관객이라면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무릎을 쳤을 지도 모른다. 준호는 <스물>에서 힘겨운 청춘의 삶에서도 순수하고 순진하며 긍정적인 동우 역할 그 자체처럼 보인다. 그가 이유비(소희)와 만들어가는 풋풋한 이야기 속에서 준호라는 괜찮은 연기자의 틀을 발견하게 된다. 연기톤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은 준호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어딘지 조금은 재수 없던 <미생>의 스펙남 장백기로 강하늘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분들 역시 <스물>을 통해 그가 천상 연기자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 한 번 못해본 쑥맥 경재라는 청춘을 연기하며 강하늘은 한없이 망가진다. 그 망가짐이 장백기의 이미지를 무너뜨리고 강하늘의 연기 스펙트럼이 의외로 넓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스물>은 코미디다. 물론 청춘의 고달픔을 그 이면에 깔고 있지만 그걸 영화는 그다지 전면에 내세워 쓸데없는 진중함에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청춘을 다룬 영화의 패턴이 초중반까지 시종일관 웃기다가 후반에 이르러 눈물로 마무리 짓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 영화는 끝까지 코믹함과 경쾌함을 잃지 않는 추진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영화가 청춘의 문제를 지나치게 무겁게도 또 가볍게도 다루지 않으려 고민했다는 증거다.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은 그래서 우습지만 그 이면에 짧은 페이소스 같은 걸 남긴다. 물론 결말은 통상적인 성장 드라마를 취하고 있다. 스물이라는 청춘의 고단한 터널을 넘고 나면 거기서 새로운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걸 영화는 밝은 전망으로 그려낸다.

 

지금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생각해보면 너무 경쾌한 것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청춘이 가진 긍정을 비관적으로만 다룰 필요는 없는 일 아닌가. 적어도 스물이라면 그 때만이라도 아픔마저 좋은 시절로 기억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니까.

 

영화의 힘은 다름 아닌 김우빈, 준호, 강하늘 같은 출연자들에게서 나온다. 이들이 보여주는 스물의 풋풋함은 그 시절을 한참 지나온 중년들에게도 훈훈한 미소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성격도 너무나 다르고 사는 환경도 제각각이지만 우정이라는 관계로 똘똘 뭉쳐져 있는 이 세 사람의 모습은 청춘만이 가진 힘이자 특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아직은 현실 깊숙이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벗어나 끈끈한 우정으로 묶여질 수 있는 그들이 하나의 판타지처럼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성공에는 청춘의 면면들을 각자 가진 색깔로 연기해낸 김우빈, 준호, 강하늘의 지분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화다.

 

열애보도, 이민호보다 수지 후폭풍이 거센 까닭

 

이민호와 수지. 대한민국 청춘 남녀들에게 이 두 사람의 열애보도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이민호의 경우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비상한 관심을 보일 정도다. 홍콩 여배우 원영의는 이 열애보도가 나간 후 기쁘면서도 슬프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국내를 넘어 범 아시아적인 팬덤을 가진 스타들이다.

 

사진출처: 영화 <건축학개론>

그만큼 이 두 사람의 열애사실이 가져올 파장은 적지 않다. 그것은 이 두 사람이 만인의 연인처럼 이미지화되어 있고 그 이미지가 그들의 상품적인 가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해온 일련의 광고 속에는 이런 이미지들이 상품 속으로 투영되어 소비되는 그 화학작용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 이제 만인의 연인에서 특정인의 연인이 된 두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파장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번 열애보도에서 그 후폭풍은 수지에게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열애사실이 보도된 이후 수지의 소속사 주가는 요동을 쳤다. 열애설이 나온 후 주가가 뚝 떨어졌고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주가는 다시 회복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간에 수지는 JYP엔터테인먼트를 먹여 살리는 존재처럼 알려지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수지가 JYP의 실적에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열애보도가 이민호보다 수지쪽에 더 많은 후폭풍이 생기는 이유는 이 두 사람의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이민호는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로 자기만의 콘텐츠 영역을 구축해왔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로 스타덤에 오른 이민호는 이후에도 <시티헌터>, <상속자들> 등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게다가 최근에는 영화 <강남1970>을 통해 새로운 연기영역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된 건 다 이런 연기에 몰두한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수지는 사정이 다르다. 그녀는 <건축학개론>을 통해 단순에 국민 첫사랑으로 등극한 이래 이렇다 할 콘텐츠를 선보이지 못했다. 드라마 <>, <구가의서>에 등장했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만들지 못했고 그렇다고 본업인 미스에이 활동 역시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수지는 <건축학개론>의 그 국민 첫사랑이미지를 CF를 통해 반복 소비해온 것이 그녀의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이번 열애 보도로 인해 무너져버린 국민 첫사랑의 이미지가 가져올 후폭풍이 이민호보다 훨씬 클 수박에 없는 결과를 만든다. 건강하고 젊은 남녀가 만나고 사랑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고 심지어 바람직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들이 이미지를 통해 상품화되는 연예인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이런 파장들이 만들어진다. 결국 이럴 때 중요한 건 이미지만이 아니라 자기만의 직능적인 영역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수지는 이미지는 있으되 콘텐츠는 부족한 상황이다.

 

이것은 수지의 활동이 지금껏 상당 부분 왜곡되어 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콘텐츠 없이 이미지로만 굳어지는 경우 그 이미지가 언젠가 사라지는 상황이 오면(이런 순간은 당연히 도래한다) 연예인이로서의 생명 또한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연기 영역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라면 힘겹더라도 연기에 대한 보다 진지한 접근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이미지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오래 지속되면 족쇄가 되기 마련이다.

 

이미 열애 보도는 나왔고 그 사실은 인정되었다. 남은 건 그 파장을 제대로 수습하는 일이다. 수지로서는 이제라도 지금껏 가져왔던 국민 첫사랑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본격적인 연기 영역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거기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다면 수지는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 첫사랑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지현 효과, 박신혜 효과보다 컸다

 

<별그대>노믹스.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의 경제효과를 지칭하는 말이다. 전문가들이 <별그대>의 경제효과를 추산하는 건 무려 3조원. 이 드라마 한 편으로 중국인들은 김수현과 전지현의 일거수일투족을 구매하게 되었다. 이들이 입는 의류와 화장품은 물론이고, 전지현이 드라마 속에서 했던 치맥(치킨과 맥주) 문화에 빠져든다. 성지가 되어버린 <별그대> 촬영지는 중국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물론 중국에 진출했거나 관련 사업을 하는 이들도 <별그대> 특수를 누리기 마련이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도대체 무엇이 다른 드라마와 달리 <별그대>의 경제효과를 이토록 크게 만들어냈던 걸까. 지난 23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는 이색적인 컨퍼런스가 열렸다. ‘<별에서 온 그대> 열풍으로 본 중국사회의 이해.’ 이 거창한 제목의 컨퍼런스에는 중국 전매대학 연극영상학부의 리셩리 교수, 북경방송국 드라마센터 마케팅부 샤오제 주간 그리고 CJ E&M China 드라마부문 책임 프로듀서인 정태상 PD가 발표자로 나왔다.

 

사뭇 진지하게 진행된 이 컨퍼런스는 <별그대> 열풍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중국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였다. <별그대>의 중국 성공에 대해 리셩리 교수는 이미 한국 트렌디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형성되어 있었고 특히 여성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는 점과 인터넷의 힘을 강조했다. 중국의 경제가 급부상하면서 생겨난 경제적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 불균형은 지금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양극화와 유사한 정서를 만든다는 것. 그것이 나라는 달라도 <별그대>라는 작품 하나가 양국에서 동시간대에 열광을 만든 이유라는 것이다.

 

동시간대에 한국과 중국에서 비슷한 열풍이 불었다는 점은 중요한 지점이다. 즉 과거 <겨울연가>로 인한 욘사마 열풍이나, <미남이시네요>로 촉발된 장근석 열풍은 국내와 해외의 온도차가 컸다는 점이다. 그래서 거꾸로 해외에서 먼저 터지고 그 다음에 국내에서도 관심을 갖는 순서로 한류바람이 불었다는 것. 하지만 <별그대>는 다르다. 국내와 해외가 동시적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리셩리 교수가 얘기하는 양국이 비슷하게 겪는 양극화와 그 정서가 바탕이 됐다는 얘기다.

 

중국은 하나의 나라라기보다는 하나의 대륙에 가깝다는 정태상 PD의 이야기는 리셩리 교수가 남방과 북방이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정서가 다르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남방의 정서가 따뜻한 멜로의 분위기를 가진 우리네 한류 드라마에 더 열광적인데 반해 북방의 정서는 정치 같은 딱딱한 이야기에 더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적인 정서의 남방과 남성적인 정서의 북방으로 설명될 수도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별그대>의 열풍이 드라마에 머물지 않고 산업적으로 더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로 여주인공 천송이의 캐릭터가 주효했다는 지적이었다. <상속자들>에 비해 <별그대>가 더 마케팅적으로 효과를 발휘했던 이유는 여주인공이 화려한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상속자들>의 여주인공은 가난한 신분이기 때문에 여성 소비자들의 구매에도 그다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인들은 한류 드라마의 힘을 여전히 장르적으로는 멜로의 힘으로 보고 있었다. <상속자들>의 이민호 열풍이나 <별그대>의 김수현 열풍 등 멋진 남자 주인공에 대한 주목은 한류 드라마가 중국의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이번 <별그대>가 특이했던 점은 전지현이라는 여자 주인공에 대한 열풍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수동적인 존재로서의 여주인공에서 벗어나 이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워너비가 됐던 점이 작용했다.

 

<별그대>는 종영했지만 여전히 <별그대>를 얘기하는 것은 중국에서 새롭게 촉발된 한류드라마의 열기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장태유 감독은 지금껏 드라마를 갖고 이런 진지한 자리는 처음이라며 하지만 대단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종영했지만 <별그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여운은 또다른 한류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막장드라마들 속 <참 좋은 시절>의 가치

 

착한 여잔 나쁜 남잘 좋아해 왜. 나쁜 남잔 나쁜 여잘 좋아해 왜. 그래서 난 너를 이렇게 사랑해. 근데 너는 이런 내 맘을 몰라 왜.’ 최근 발표된 2NE1착한 여자라는 곡이다. 노래가 말해주듯이 요즘 착하다는 것은 어딘지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차라리 나쁘다는 것이 쿨하고 세련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한때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줄곧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가치로 세워지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드라마 속에서도 착한 남자보다는 나쁜 남자에 대한 열광이 더 두드러진다. <학교 2013>에서 이종석만큼 주목을 끈 김우빈은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다. 반항아의 이미지를 가진 그는 무언가 꽉 막혀 있는 듯한 세상에 대한 속 시원한 울분 같은 걸 보여준다. 김우빈의 나쁜 남자 이미지는 <상속자들>을 통해서 그 매력을 폭발시켰다. 최근 <사남일녀> 같은 가족 버라이어티에 출연하고 있는 김우빈은 오히려 이 나쁜 남자 이미지로 고정되는 자신을 부담으로까지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나쁜 남자라고 표현되지만 이들이 진짜 악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나쁘게 행동하고는 있지만 속내는 상처받은 착한 영혼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나쁘다는 건 캐릭터의 능력과도 연관되어 있다. <파스타>의 이선균이나 <나쁜 남자>의 김남길처럼 재력이든 능력이든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나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쁘게 행동해도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것. 즉 나쁘다는 건 성공한 자, 혹은 가진 자의 자신감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선의 가치가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른바 착한 드라마들은 독하디 독한 막장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KBS의 새 주말극 <참 좋은 시절>에 대해 낯설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거꾸로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독한 드라마들에 중독되어 왔는가를 말해준다. 이전 동시간대 드라마였던 <왕가네 식구들>은 그 자극적인 설정과 전개 때문에 막장 논란이 쏟아져 나오면서도 꽤 높은 시청률을 가져갔다. <왕가네 식구들>의 자극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그래서 <참 좋은 시절>의 이 착함이 너무 밋밋하다고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의 세컨드와 함께 가족을 이뤄 생활하면서도 싸우기는커녕 서로를 챙겨주기 바쁜 며느리와, 권위라고는 손톱만큼 발견하기 어려운 자애롭다 못해 연민마저 느껴지는 시아버지, 자신처럼 살지 말라며 이 집에 맡긴 아들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사는 여인이나, 어찌해 갖게 된 아이들을 제 자식이라 못하고 동생이라 부르며 사는 그 여인의 아들 또한 그 밑바탕에는 따뜻한 사람 냄새가 느껴진다. <오로라 공주>처럼 툭하면 작가의 손에 의해 인물이 죽어나가는 드라마와는 정반대다. <참 좋은 시절>에는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작품을 쓴 이경희 작가의 전작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였다. 이미 <고맙습니다>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이경희 작가는 선의 가치를 믿게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는 마치 세상에 매력적인 착한 남자는 없다는 세태와의 정면대결을 벌이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참 좋은 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주말극이고 일일극이고 할 것 없이 막장이 창궐하며 선의 가치보다는 악의 가치를 세련됨의 상징이나 되듯이 보여주는 요즘의 세태에 이 드라마는 어딘지 투박해보여도 정감이 가는 참 좋음의 가치를 새삼 드러내준다. 선하다는 건 진정 한물 간 가치가 아니다. 다만 난무하는 자극이 우리를 둔감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제대로 던진 SBS드라마의 승부수, 그 의미

 

SBS 드라마가 제대로 승부수를 던졌다. 지금껏 월화수목 드라마에서는 좀체 보기 힘들었던 본격 장르물을 연달아 라인 업시킨 것. <신의 선물-14>은 스릴러에 타임슬립이 덧붙여진 드라마이고 <쓰리데이즈>는 추리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액션 스릴러다.

 

'신의 선물 14일''쓰리데이즈'(사진출처:SBS)

미드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우리도 이런 드라마를?”하며 반색할 만하다. 흔히들 장르라고 하면 정해진 문법이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네 장르드라마는 일종의 변칙을 보여 왔던 게 사실이다. <응급남녀> 같은 의학드라마를 해도 멜로가 빠지지 않고 가족이 빠지지 않는다. 아니 이 드라마는 사실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학드라마가 아니라 멜로, 즉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 <별에서 온 그대> 같은 복합 장르 드라마도 일단 메인은 멜로다. 화제가 됐던 <상속자들>도 그렇고 심지어 <감격시대> 같은 남자들의 드라마에서도 멜로는 빠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장르물들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멜로드라마는 우리네 드라마의 근간이자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된 데는 장르 드라마의 시도를 통해 얻게 된 일종의 타협의 결과다. 한때 <하얀거탑>이 나왔을 때 대중들은 멜로 없이도 재밌다는 얘기를 꺼내며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시청률로 옮겨지지 못했다. 멜로 없이 본격 장르물로 달린 <하얀거탑>은 그래서 호평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다.

 

이 학습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 이후에 나온 장르물들은 여지없이 멜로와 가족을 끼워 넣었다. 한 때는 가운 입고 연애만 한다는 무늬만 의학드라마에 대한 비판으로 장르물에 대한 갈증이 생겼지만 막상 장르물이 시도된 이후에는 역시 멜로를 넣어야장사가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알고 보니 멜로였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세련됨을 보장하는 적당한 장르물과 드라마에 빠지게 해주는 익숙한 멜로의 교집합을 오히려 즐기는 시청자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과 사정을 두고 보면 <신의 선물-14>이나 <쓰리데이즈>를 월화수목에 배치한 것은 시청률면에 있어서는 무모해 보인다. 이들 본격 장르물은 기존 드라마 시청 패턴과는 사뭇 다른 관전 포인트를 요망하기 때문이다. 이 두 드라마가 드라마라기보다는 영화 같다고 여겨지는 것은 기존 우리네 드라마 시청 패턴의 독특함을 말해준다. 극장과 집이라는 공간의 차이 때문에 드라마는 확실히 영화만큼 몰입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본격 장르물이 가진 이야기의 촘촘함은 시청자들에게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패턴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이것은 기존 지상파들의 방영 패턴이 수동적인 본방사수에서 점점 선택적 시청으로 바뀌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IPTV나 티빙 같은 모바일 시청은 직접 선택해서 원하는 시간에 본다는 점에서 몰입도가 훨씬 높다. 물론 극장이라는 몰입을 극대화한 공간을 가진 영화만큼의 몰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저 채널 돌리다 무심코 세워두고 보는 시청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게다가 현재는 안방극장이 점점 시스템화되어가는 추세다. 점점 대형TV가 일반화되어가는 건 이런 변화를 잘 말해준다.

 

콘텐츠의 수용패턴은 전적으로 시청자들의 기호나 취향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미디어 환경에 의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지금의 미디어 환경 변화 속도를 보면 이제 TV 시청 패턴이 바뀔 날도 머지않았고 이미 이 변화는 시작되었다. 다만 미디어 변화에 맞지 않는 시청률 추산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신의 선물-14>이나 <쓰리데이즈>의 시청률은 당연히 낮다. 이들 콘텐츠가 과거의 시청패턴을 반영하는 현재의 시청률 추산 시스템에서 좋은 시청률을 내는 드라마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도 IPTV와 다운로드를 포함한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 맞는 시청률 추산을 다시 내본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당면한 시청률이 광고 수익으로 연결되는 마당에 이런 시도가 결코 쉬울 리 없다. 하지만 향후 이 본격 장르물에 대해 SBS 드라마가 던진 승부수는 분명 시청률 그 이상의 기대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중국에서 <쓰리데이즈>의 인터넷 방영 판권이 사상 최고치의 가격으로 판매되었다는 것은 국내외를 막론해 달라지고 있는 방영 패턴의 징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누가 새로운 콘텐츠를 먼저 시도하느냐는 문제는 그래서 향후의 방송사 콘텐츠 헤게모니 전쟁에도 중요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시청률에 목매 과거에 기대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해 투자할 것인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는 이미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실장님부터 초능력자까지, 남자주인공들의 진화사

 

미소년의 얼굴에 어린 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카리스마. 독특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 김수현에게 <드림하이>의 송삼동은 잘 맞지 않는 옷이었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의 군왕이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는 남파간첩(거의 아이돌에 가깝다)을 거쳐 <별에서 온 그대>의 초능력 외계인 캐릭터는 그의 아우라를 완성시켰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지금 현재 김수현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을 보장받는 남자주인공의 끝판왕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라는 캐릭터가 사실상 지금껏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들이 여성들에게 주던 판타지를 거의 모두 가진 인물이며, 그 복합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을 아무런 이물감 없이 그가 연기해내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외계에서 와 조선시대부터 4백년을 산 인물 도민준. 그는 일찍이 사둔 잠실벌과 압구정의 땅으로 어마어마한 재벌급의 재산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다, 4백년 동안 의사에서부터 변호사까지 안 해본 직업이 없는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의 집 한 켠에 마련된 도서관을 방불케하는 서재는 그의 지적이고 감성적인 능력을 표상하고, 시간을 멈추고 사물을 움직이는 초능력은 실현 불가능한 일들까지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핵심은 이런 재산, 능력, 지성, 감성 게다가 초능력까지 가진 인물이 오로지 천송이(전지현) 한 사람만을 마음에 두고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해도 인류를 위해 한 목숨 바치는 영웅을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판타지를 제공해줄 수 있는 인물. 게다가 4백년의 공력으로 이 모든 걸 갖추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늙지 않는 미소년 외모의 소유자. 그가 바로 도민준이라는 남자 주인공의 정체다.

 

초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 캐릭터는 작년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수하(이종석)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그 매력이 입증된 바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인 박수하는 그 놀라운 소통능력으로 억울한 이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장혜성(이보영)이라는 한 여성을 위한 일이다. 천송이와 도민준, 장혜성과 박수하라는 커플의 공통점은 남자주인공이 미소년에 초능력자라는 점이다. 여성들은 젊고 아름다운 육체와 함께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남자주인공은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에서부터 <시크릿 가든>의 현빈, <상속자들>의 이민호로 이어지는 김은숙표 멜로의 재벌이거나, 주상욱이나 이동욱 같은 성공적인 실장님 캐릭터, 혹은 전문분야에 능력을 갖췄으나 성격은 모난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나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범수 같은 인물들이 얼굴을 달리 하며 반복해서 등장해왔다. 하지만 이종석과 김수현에 이르면 이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판타지로까지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남자주인공이 이처럼 점점 초능력을 갖춘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현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점점 커져간다는 걸 말해준다. 슈퍼히어로들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이 만들어낸 상징들이 아닌가. 하지만 서구의 슈퍼히어로들이 전 지구적인 위기와 맞서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 우리네 슈퍼히어로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적인 삶에 오히려 집중한다는 것이 완전히 다른 특징이다. 이것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일단 국가나 인류 같은 거창한 꿈에 대한 허무주의가 그 안에는 들어 있다. 정치인들이나 국가 지도자들이 말해온 거대 담론들이 정작 서민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단 말인가. 그러니 퇴행적이라고 비판받을지언정 바로 직접적으로 나를 돕는 슈퍼히어로를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 변호사를 돕는 박수하는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변호인>이 서민들을 신뢰하게 한 점은 국가와 국민을 얘기해도 그것이 거대담론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친조카 같은 한 국밥집 아들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주인공 도민준이라는 슈퍼히어로는 국가나 인류 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극도의 허무주의를 보여준다. 그가 천송이라는 한 여성을 위해서만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다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거기서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4백년을 살다보면 그도 그럴 것이다.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뀌고 일제와 남북분단을 경험한 인물이라면 세상의 변화에 초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인물 속에 담겨진 사적인 욕망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허무는 씁쓸함을 남긴다.

 

김수현이라는 배우는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욕망과 좌절을 모두 함께 캐릭터를 통해 껴안고 있는 셈이다.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미소년의 여전한 장난기와 때로는 어른스럽게 여성을 보호해주는 카리스마, 그리고 한 편에 느껴지는 어두운 허무의 그림자는 그래서 그가 도민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는 이 시대의 징후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얼굴 속에는 그간 남자 주인공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던 수많은 캐릭터들의 면면들이 혼재되어 있다.

신데렐라 없어도 더 쫄깃한 '응답1994'의 멜로

 

멜로는 신데렐라가 있어야 된다? 적어도 <응답하라 1994>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상속자들> 같은 드라마가 초거대 재벌가들 사이에 들어간 신데렐라 이야기로 너무 뻔하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응답하라 1994>는 신데렐라 없고 심지어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멜로만으로도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과거 <시크릿 가든>의 현빈과 하지원이 그랬고, <최고의 사랑>의 차승원과 공효진이 그랬듯이 잘된 멜로의 연기자들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 <응답하라 1994>의 멜로는 정우라는 배우에 대한 신드롬을 만들고 있고 또한 늘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고아라까지 매력적인 연기자로 재탄생시켰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처럼 촌스런 멜로의 주인공들이 이토록 주목받게 된 것은.

 

<응답하라 1994>는 <응답하라 1997>이 그랬듯이 현재의 여주인공이 과거 1994년의 어떤 인물과 결혼을 했는가를 찾는 다소 단순한 멜로를 그린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멜로가 의외로 힘을 발휘한다. 누가 누구와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어떻게 관계가 발전됐는가 하는 점은 마치 첫사랑의 추억담처럼 우리를 아련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친오빠처럼 다가와 점점 가슴 뛰게 만드는 오빠로 느껴지게 되는 쓰레기 정우나, 그저 하숙집을 들락거리다 점점 가까워지게 되는 칠봉이 유연석은 그 설정 자체가 신데렐라 멜로와는 다른 <응답하라 1994>의 특별한 멜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은 연세대라는 괜찮은 학벌의 소유자에다 직업적으로도 향후 의사가 될 의대생이거나 프로야구의 에이스가 될 야구선수다.

 

이것은 나정이(고아라)네 하숙집에 들어와 그녀와 장차 결혼할 지도 모를 다른 후보군들도 마찬가지다. 해태(손호준)는 순천시 버스회사의 막내아들이고, 빙그래(바로)의 부모는 충북 최대 규모의 양계장을 운영하며, 삼천포(김성균)는 한번 나가면 기름 값 1500은 드는 배를 가진 집의 아들이다. 물론 이들은 초재벌도 아니고, 드라마는 오히려 이 ‘잘사는 촌놈들’이라는 설정을 신데렐라 이야기로 활용하려 들지도 않는다. 유머 코드라면 모를까.

 

이들 촌놈들이 상경해 벌이는 멜로는 특별할 것 없는 당대 대학생들의 그것이다. MT를 가고 미팅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팬클럽 활동을 하며 하숙방에서 술내기 게임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그들이 보여주는 멜로란 오지 않는 삐삐를 밤새워 기다리거나 게임을 빙자해 뽀뽀를 하거나 혹은 아플 때 꼭 껴안아주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등장하는 그 흔한 결혼 반대하는 부모들도 보이지 않고 백화점을 통째로 쇼핑하듯 과시하는 남자의 모습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94>의 멜로가 그 어떤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쫄깃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멜로 속에 존재하는 평등한 시선과 특유의 공감대 덕분이다. 이 드라마에는 1994년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어딘지 촌스럽고 능숙하지 못한 인물들의 행동들이 오히려 멜로를 더 아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정이를 좋아하면서도 표현은 친오빠처럼 무뚝뚝하게 던지는 쓰레기가 그렇고, 또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애써 속내를 감추려는 칠봉이가 그렇다. 해태와 조윤진(도희)의 관계를 보라. 그들은 대부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면서 가까워진다.

 

<응답하라 1994>가 신데렐라 이야기 없이도 더 아련한 멜로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은 1994년이라는 과거의 한 지점이 가진 힘 때문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 그것도 첫 사랑의 추억이 있는 그 청순의 한 기억이란 현실적인 것과 일정부분 거리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첫 사랑의 설렘에 집안 형편이나 학벌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것은 또한 어쩌면 1994년만 해도 지금처럼 극심한 양극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초재벌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와 거의 하녀처럼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을 보호해주는 이야기는 그것이 판타지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치졸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돈이 많으면 많았지 그것이 사랑도 넘을 수 없는 계급이 되는 현실, 얼마나 치졸하고 치사한가.

 

그래서 이러한 양극화로 인한 수직적인 계급구조가 잘 보이지 않는 나정이네 하숙집에서 벌어지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멜로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다가온다. 돈이나 현실이나 집안이나 학벌과 상관없이 누군가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 설레며 하는 사랑.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사랑은 그러나 심지어 치사한 신데렐라 스토리에마저 빠져들게 만드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랑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요즘 청춘들은 학비 마련하랴 취업 준비하랴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응답하라 1994>가 보여주는 이 너무나 편안하고 때로는 낭만적으로 여겨지는 청춘과 사랑이 왜 판타지가 되지 않을까. 이것은 양극화를 더 첨예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멜로의 극성을 만들어내는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응답하라 1994>의 평범한 멜로가 더 강력한 이유다. 양극화 자체를 지워버린 완전한 평등의 멜로라니. 대단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폭력과 금력 미화하는 <상속자들>, 뭐가 문제일까

 

때로는 드라마 작가에게 능력이 오히려 독으로 비춰질 때가 있다. <상속자들>이 그렇다. 드라마만을 놓고 보면 <상속자들>은 재벌2세와 가난한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지금껏 김은숙 작가가 계속 해왔던 이야기의 반복이고 또 가장 잘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속자들(사진출처:SBS)'

“나 너 좋아하냐?” 같은 김은숙 작가 특유의 대사 톤도 여전하고, 밀고 당기며 때론 아프고 때론 달달하게 이어지는 멜로 역시 꽤 강한 극성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민호, 박신혜, 김우빈, 강민혁 같은 아이돌 스타들의 존재감은 어찌 보면 늘 봐왔던 김은숙 표 멜로의 역할 놀이에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어찌 보면 이들이 있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비현실적인 구석들, 이를 테면 지나친 우연의 반복이나 제국고등학교 같은 과장된 설정들이 그나마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속자들>은 전형적인 이야기에 비현실적인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가 있다. 마치 아이돌 팬시 상품 같은 느낌이랄까. 김탄(이민호)이 캘리포니아에서 서핑을 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풀빌라에서 사는 모습은 그가 아무리 유학이 아닌 ‘유배’라고 말해도 보통사람들에게는 판타지의 하나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김탄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제국고등학교는 ‘사탄들의 학교’라고 일컬어지지만, 가진 자들의 재수 없음의 이면에는 고등학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으리으리한 환경과 커리큘럼에 대한 막연한 동경 역시 깔아놓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 막연한 동경 속에 자꾸만 바라보게 함으로써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행동들마저 도취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최영도(김우빈)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그가 단지 가난하고 클래스가 다르다는 이유로 준영(조윤우)이 같은 아이를 구타하고 왕따시키며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장면은 사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시선은 왕따 당하는 준영이의 입장보다는 왕따시키는 최영도의 입장에 가 있다. 물론 현재는 달라졌지만 김탄 역시 과거에는 최영도와 다름없는 캐릭터였다. 이 드라마는 이 부유한 친구들이 소위 고통이라고 부르며 그것 때문에 폭력과 금력을 쓰는 것들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이미 제목에서 드러나 있다. <상속자들>에 붙어있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라는 제목에는 이들 태어날 때부터 왕관을 쓰게 되어 있는 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고통’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가 다루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그 고통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상속자들>의 김탄이나 최영도처럼 ‘왕관을 쓰려는 자’의 고통이란 대부분 아버지의 여성 편력과 그로 인해 콩가루 집안이 된 가족사에서 비롯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왕관을 쓰려는 자’들의 고통을 다루는 일이 과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 왕관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이 현실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아마도 이들 ‘왕관을 쓰려는 자’들은 드라마가 슬쩍 보여주는 것처럼 거의 상류층 1%에 해당할 것이다. 상류층 1%의 고통을 얘기하는 드라마는 어쩌면 그 자체로 나머지 99%를 그저 배경으로 치부하면서 이 1%의 세계가 가진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은상(박신혜)은 바로 그 99%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으리으리한 저택의 메이드룸에서 살고 있다는 공간 설정 자체가 이 인물이 처한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차은상이라는 인물이 이 부유한 저택에서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시키는 심부름을 해야 하고 명령에는 오로지 예스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드라마는 그녀에게 김탄과 최영도가 조금씩 빠져드는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이 왜 그녀에게 이토록 목매게 되는지는 잘 설명이 되어있지 않다.

 

그 이유를 드라마는 클리쉐로 넘겨버린다. 우연적인 만남의 반복과 왠지 모를 끌림이라는 상투적인 방식이다. 김탄은 갑자기 차은상에게 “나 너 좋아하냐?”고 묻고는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최영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략결혼으로 이복동생이 될 지도 모를 유라헬(김지원)을 열 받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인 차은상에게 갑자기 관심을 갖는 식이다. 즉 이 모든 멜로의 키는 가진 자들이 쥐고 있다. 그들은 사랑할 여유조차 없는 현실에 처한 차은상에게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혹자들은 결국은 신데렐라 판타지를 다루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해 너무 심각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벌가의 신데렐라 판타지를 즐기기에는 이미 현실이 너무 많은 재벌가들의 문제를 드러내주었다. 사모님의 수상한 외출이나 특목고 에서 벌어진 사배자 전형의 편법 운용 같은 사례는 심지어 대중들의 공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근 재벌가를 다루는 드라마들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아마도 이러한 대중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추적자>가 권력이 가진 힘과 싸우는 한 서민을 통해 정의의 문제를 제기했다면, <황금의 제국>은 그 재벌가가 가진 태생적인 비극을 다루었다. 하다못해 <결혼의 여신> 같은 드라마도 재벌가 판타지를 오히려 깨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던가.

 

김은숙 작가처럼 멜로를 잘 쓰는 작가도 없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잘 쓰는 것이 작가의 품격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자칫 능력은 오히려 잘못 사용되어지면 파괴적인 힘이 될 위험성이 있기 마련이다. <상속자들>에서 폭력과 금력이 이른바 그들의 고통이라는 근거로 미화되는 것은 그래서 제 아무리 판타지 설정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라고 말하지만 지금의 힘겨운 현실에서 왕관을 쓰려는 자의 고통이란 엄살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개념이 잘 보이지 않는 <상속자들>. 재미만 있다고 모든 게 다 용서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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