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없는 주말예능, ‘두니아’가 가져온 신박한 낯설음

적어도 새로움 하나만으로 보면 MBC 새 주말예능 <두니아>의 실험은 독보적이다. 그건 그 시간대의 지상파 주말예능들과 비교해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KBS <1박2일>, SBS <런닝맨>은 한 마디로 장수예능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한 시대를 지나왔고,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MBC <복면가왕> 역시 이제는 오래된 트렌드인 육아예능과 음악예능이다. 새로 시작한 SBS <집사부일체>가 그나마 이 시대의 스승을 찾아가 이런 저런 체험과 이야기를 나누는 새 프로그램이지만, 그 형식이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두니아>는 다르다. ‘언리얼’을 주창한 것처럼, 이 예능 프로그램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새롭다. 물론 그 낯설음은 “도대체 저게 뭐지?”하고 물을 정도로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처음 만난 세계’라는 부제는 이 프로그램이 스스로 그 낯설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실로 처음 만난 세계처럼 익숙하지 않다. 

그 이유는 단지 도시에서 지내던 이들이 문득 두니아라는 곳으로 워프하게 되고 그 곳에서 생존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노윤호는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정혜성은 광화문 광장에서, 우주소녀 루다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권현빈은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두니아라는 곳으로 소환된다. 그것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설정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두니아라는 공간에 떨어져서 겪는 일정 부분의 일들은 실제가 아닌 연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연기가 미묘하게 실제와 연관되어 있다. 두니아라는 공간에 떨어지게 되고 저 나름대로 거기서 살아나가야 하며 어느 공간으로 이동해 다른 이들과 합류해야 한다는 것이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인위적인 설정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면 나머지 부분은 그들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바로 이 채워야 되는 경험적 부분들은 연기가 아닌 실제 리액션이 담겨지게 된다. 

프로그램이 미적 형식으로 차용하고 있는 게임의 틀은 바로 이런 가상과 현실이 더해진 두니아라는 공간이 바로 게임 속이라는 걸 드러내준다. 아마도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대단히 낯설게 다가왔을 두니아라는 공간은, 게임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을 게다. 결국 게임이라는 것이 가상공간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몰입이 가능한 것이고, 그 안에서 하는 자신의 행위는 일정한 목표는 정해져 있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리얼한 일들이 아닌가. 

<두니아>는 그 낯설음을 상쇄시키기 위해 첫 회부터 마치 게임을 연상시키는 자막과 편집을 연출의 틀로 제시했다. 마치 AI 모드가 작동되고 있는 것처럼 출연자가 어떤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자막이 다소 ‘병맛 코드’의 유머 섞인 멘트들을 덧붙인다. 자신을 보호할 나무 하나를 구하는 것도 아이템을 얻는 게임 속 방식으로 편집되어 보여지고, 심지어 멘트 없이 탐험에만 열중하는 권현빈에게는 ‘방송분량’을 걱정하는 자막이 더해진다.

<두니아>의 세계가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런 게임 속 세상을 경험하면서 느끼던 감정들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을 하면서 우리는 가상과 현실을 오고간다. 가상의 세계에 몰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몰입하는 자신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며 다른 유저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노윤호가 보여주는 과한 몰입에 연기와 실제가 섞여있다는 걸 보여주는 자막이 그렇다. 리얼한 상황 속에서 언리얼한 개입이 들어갔을 때 웃음이 터지고, 또 언리얼한 상황이지만 과하게 리얼한 몰입을 하는 출연자에게서 웃음이 터지는 이유다.

물론 이 ‘처음 만난 세계’는 지상파 예능들의 현 주소라고 할 수 있는 주말예능 시간대에서 더더욱 이질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은 첫 방 시청률 3.5%라는 수치를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새로운 세계가 변화 없는 주말예능에 ‘돌연변이’ 같은 신박한 자극을 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연 시청자들은 이 실험에 손을 들어줄까. 처음엔 낯설어도 기꺼이 적응기를 가지며 즐거움을 찾아내줄까. 대부분의 게임 적응기가 초반엔 어색하지만 차츰 몰입을 통해 더 큰 즐거움을 찾아주듯이.(사진:MBC)

<말하는대로>, 이들의 소소하지만 위대한 이야기들

 

어느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홍대의 한 카페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걸 듣고 느끼며 공감하는 시간. 이건 어쩌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눈 뜨면 늘 하는 것이 바로 그 말하고 듣는 일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이 그 말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는 건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각자 다른 사람들이지만 때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어떤 알 수 없는 위로나 위안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하는대로(사진출처:JTBC)'

JTBC <말하는대로>는 아주 소소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필요로 하는 건 마이크 하나면 충분하니까. 누군가 초대된 인물이 그 마이크를 들고 어떤 생각을 이야기하면 모여든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반응한다. 카메라는 그들을 담담히 담아내고 그 공감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 담담하고 소소한 프로그램은 바로 그렇기 때문인지 갈수록 더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이재명 시장은 이미 유력한 대권 주자로까지 거론되는 인물이지만, <말하는대로>에서는 그리 거창한 정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우리 현실이 그것을 상식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담담히 전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또 그 국민 중 가장 미래에 대한 꿈을 펼칠 이들이 바로 청춘들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는 그 청춘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좌절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가장 고통받고 있는 청춘들이 직접 나서서 세상을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샘 오취리는 방송에서 늘 보여주던 그 쾌활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의 화두는 우리’. 아프리카에서 온 이 청년은 물론 한국말이 여전히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에게 우리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을 받으며 겪은 그 아픔이 있었지만, 또한 그 아픔을 보듬어주는 우리가 있었다고 했다. 결국 한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드는 건 바로 이 우리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김윤아는 소소한 행복과 성공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이른바 소행성토크를 보여줬다. 그녀는 자신 역시 어린 시절 많은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고, 바로 그런 결핍 때문에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창한 행복이 아닌 작은 행복들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고, 거기 앉아 있는 청중들로부터 그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하고 듣는 순간에 그들의 얼굴은 똑같이 행복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혹자는 <말하는대로>가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시국을 겪으면서 새삼 주목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는대로>에 나온 연사들이 시국 이야기만을 줄창 늘어놨던 건 아니다. 오히려 소소한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자리.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에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들은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정치는 말에 의해 구현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지금 같은 시국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는 이른바 말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큰 목소리와 거창한 이야기들이 힘 있는 권력자들에게서 흘러나와 세상을 농단한 현실이어서인지 우리는 오히려 작고 소소하지만 진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더더욱 갈급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거짓이 난무하는 연설과 담화가 쏟아지는 지금, <말하는대로>는 그것과는 정반대의 진짜 말이 가진 가치를 드러내주고 있다.

게스트가 묻힌다고? 그것이 <비정상회담>의 묘미다

 

요즘 대세로 불리는 조세호지만 <비정상회담>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터키 대표인 에네스 카야가 한국의 조직문화의 장단점에 대해 열정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때 조세호는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이었다. 회식자리 상황극에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나선 조세호가 보여준 반전 춤 실력도 가나 대표 샘 오취리가 나서 의외의 춤 실력을 보여주자 잊혀져 버렸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조세호가 주목된 시간은 엉뚱하게도 춤을 추다 장운동이 과도하게 됐다며 중간에 화장실을 갔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도 그런 조세호에 대해 메인 MC들이나 외국인 대표들이 그걸 언급해주는 모습은 없었다. 만일 지상파의 토크쇼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자리를 비웠다 다시 온 조세호에 대한 토크가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에서 그런 건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 토크쇼의 주인공은 한국대표가 아니라 외국인대표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메인 MC들인 전현무, 유세윤, 성시경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얘기하는 걸 시청자들이 그리 바라지 않는다는 걸 셀프 디스 코드로 언급해 웃음을 주었다. 메인 MC가 이 정도니 게스트는 오죽할까. 한국대표로 출연한 게스트지만 조세호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건 처음 소개를 할 때뿐이었다. 이것은 조세호뿐만 아니라 이국주가 나왔을 때도 신해철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간에서는 <비정상회담>의 게스트 활용법이 잘못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성 토크쇼들의 틀로 <비정상회담>이라는 새로운 토크쇼를 재단하는 일이 될 것이다. <비정상회담>에서 게스트는 그 날의 화두를 던져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가끔 우리의 입장을 게스트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준다. 하지만 이런 역할은 메인 MC들도 똑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게스트가 상대적으로 잘 보일 수가 없다.

 

이것은 <비정상회담>의 게스트가 가진 한계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아직까지 이 토크쇼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적응을 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기존 토크쇼들을 보면 게스트가 나와 자신의 신변잡기를 늘어놓고 때로는 개인기를 선보이는 것이 하나의 공식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지금의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인가를 미지수다. 이미 시청자들은 연예인들의 홍보의 장이 되고 있는 지상파 토크쇼에 식상해하고 있다.

 

<비정상회담>이 꾸준히 시청률이 상승해 4% 시청률에 육박하고 동시간대 지상파 토크쇼들과의 경쟁에 돌입하게 된 그 원동력이 사실 거기에 있다. <비정상회담>은 연예인 신변잡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회식문화를 외국인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집중하고, 또 상하관계가 뚜렷한 조직문화에 대해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토론을 벌이는 장면에 시간을 더 할애한다. 메인 MC들은 사실상 이들의 이야기에 효과적인 추임새를 넣거나 리액션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비정상회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대표 게스트들은 어떤 자세로 이 토크쇼에 임해야할까. 일단 스스로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그리고 그저 한국 대표로 거기 앉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외국인 출연자들이 얘기하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며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전형적인 토론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비정상회담>의 다른 게스트 활용법은 여타의 지상파 토크쇼들이 참조할만한 일이다. 일단 연예인이 게스트로 섭외되면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방송분량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치가 정해진다. 하지만 이런 기대치 정도로는 무언가 의외의 이야기를 바라는 지금의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시청자들은 한 사람의 인생사보다는 좀 더 다양한 이야기와 의견을 원한다.

 

다양화된 사회는 온리 원(Only one)에서 원 오브 뎀(One of them)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것은 연예인처럼 과거 온리 원의 입장에 늘 있던 이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시선의 변화다. 하지만 많은 사람 중의 하나라는 인식의 변화는 우리의 소통방식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되고 있다. <비정상회담>은 그러한 달라진 소통방식을 통해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게스트가 묻힌다고? <비정상회담>은 오히려 그걸 즐기는 토크쇼다. 그리고 이것이 온리 원으로 출연하는 게스트에 대해 집착하는 여타의 토크쇼들과 다른 점이다.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는 샘 해밍턴의 진정성

 

바야흐로 외국인 예능 전성시대다. 이제 예능 프로그램만 틀면 출연자 중 한 명은 외국인인 경우가 다반사다. MBC <나 혼자 산다>의 파비앙은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우리나라 사람 같은 입맛에다 우리 문화 전도사 같은 인상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끌었다. <진짜사나이>는 샘 해밍턴에 이어 헨리를 투입시켜 그 이질적인 군대문화 체험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JTBC <비정상회담>은 아예 여러 나라의 비정상들을 출연시켜 화제가 되고 있다. 여기 출연하는 터키 출신의 에네스 카야나 가나 출신의 샘 오취리는 준 연예인이다. 에네스 카야는 영화 <초능력자>에 출연한 바 있고 샘 오취리는 tvN <황금거탑>에도 출연하고 있다. SBS의 강제 처가살이 프로그램인 <백년손님 자기야>에도 이제 외국인 사위 마크 테일러가 출연해 장인 장모와의 흥미진진한 동거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인들이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에 대거 출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인 근로자들이나 다문화 가족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글로벌 지구촌 사회가 되다보니 해외를 찾는 일도 잦아졌고 당연히 외국인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과거라면 막연한 부담감과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지구촌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외국인 예능 전성시대가 열린 직접적인 원인은 그것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효과를 가장 먼저 보여준 인물은 다름 아닌 샘 해밍턴이다. <진짜 사나이>의 구멍병사로 등극한 그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우리네 군대를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사실 외국인이 군대에서 유격 훈련을 받다가 구토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구급대에 실려가는 장면은 흔한 것이 아니다. <정글의 법칙>에서 리키김이 정글 생존을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다. 정글이야 외국인도 가겠지만 군대야 어디 그럴 수 있겠는가.

 

이 색다른 그림 하나만으로도 샘 해밍턴은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구멍병사로서 웃음을 주면서도 정작 진지한 그의 모습은 심지어 대중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특히 그가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거나 그들 못지않게 열심히 훈련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줄 때 그 감동은 더 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 샘 해밍턴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 문화라면 빠질 수 없는 군대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건 이 이국의 젊은이가 우리나라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외국인 예능 전성시대에 외국인들은 대체로 능숙한 우리말로 우리 못지않게 우리나라에 적응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투리를 쓰거나 사자성어를 쓰고 술 마신 다음날은 뜨끈한 국물이 최고로 시원하다고 하거나 감기 걸렸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면 시청자들은 한국사람 다 됐네라며 반색한다.

 

하지만 샘 해밍턴이 보여주는 모습은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 육중한 몸으로 우리의 문화가 있는 곳으로 뛰어든다. <진짜 사나이>에서의 병영 체험이 그러하고 <섬마을 쌤>에서 섬의 분교를 찾아 들어가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요즘은 점점 외국인 출연자들이 현장으로 뛰어드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그것은 예능 프로그램 자체가 야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온 몸을 던져 그 진정성을 보여주는 외국인 출연자를 생각하면 먼저 샘 해밍턴이 떠오른다.

 

헨리가 <진짜 사나이>에 들어오면서 샘 해밍턴은 위치가 애매해졌다. 외국인 병사로서의 방송분량을 거의 헨리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샘 해밍턴은 그 안에서 헨리를 챙겨주고 자신만의 위치를 찾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마 이런 면은 그의 인성과 관련된 것일 게다. 그는 여전히 우리 문화가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아저씨 같은 인상이다. 물론 가끔씩 발끈하는 모습에서 자존심 강한 남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비정상회담>, 이런 기적 같은 토크쇼가 있나

 

점점 이 외국인들의 매력에 빠져든다. JTBC <비정상회담>에 가나 대표 샘 오취리처럼 이미 예능 프로그램으로 익숙해진 웃기는(?) 외국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차츰 그 옆에 앉아 있는 자못 진중하고 신뢰가 가는 중국 대표 장위안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더 보수적인 터키 대표 에네스 카야의 까칠함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지적인 미국 대표 타일러 라쉬나, 여성을 예술작품처럼 대한다는 이태리 대표 알베르토 몬디, 또 멋진 영국 신사 제임스 후퍼도 빼놓을 수 없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세계 남자 실체 보고서라는 주제로 나누는 대화는 마치 <마녀사냥>의 글로벌판 같은 흥미로움을 안겨준다. 거기에는 나라는 달라도 남자라는 똑같은 지점이 주는 국가를 초월한 공감대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 간 문화의 차이에 따라 너무나 다른 의견의 충돌이 생겨나기도 한다. 마치 워밍업을 하는 듯 각 국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늘어놓고 각국 비정상 대표들이 그 편견에 대한 반박을 하는 과정에서는 솔직한 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또 여자의 핸드백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서 여자처럼 행동하는 남자는 여자들이 싫어한다며 진심으로 발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터키 대표 에네스 카야와 그래도 여자가 원한다면 들어줘야 한다고 말하는 샘 오취리의 설전은 물론이고, 갑자기 벌어진 샘 오취리와 기욤 패트리의 자존심을 건 팔씨름도 흥미롭다. <비정상회담>이 이토록 별거 아닌 이야기와 상황에도 흥미로움을 주는 건 여기 출연하는 외국인들이 예능을 한다기보다는 진짜 진지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한 번 입을 열 때마다 큰 반향을 몰고 오는 장위안의 경우, 중국에 대한 편견을 하나하나 들어보며 어이없어 하다가도 스스로 중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에는 겸허하게 도덕의식의 부족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는다. 자칫 보수적인 이미지가 될 수도 있는 에네스 카야가 괜찮게 다가오는 것도 그가 말하는 대목이 진짜 자신들의 문화이며 생각이라는 걸 솔직하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태리 남자들이 여자를 밝힌다는 말은 발끈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대해서도 이태리 대표 알베르토는 어느 정도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고는, 그렇게 남자들이 여자를 좋아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준다. 우리나라에 노인 공경이 있듯이 이태리에는 여성 공경(?)’이 있다는 것. 여성을 먼저 배려하고 챙기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결과라는 것이다.

 

사랑 표현에 대해 이야기 하다 갑작스레 제안된 일본 대표 타쿠야의 중국 대표 장위안을 상대로 한 사랑고백 상황극은 이전에 이 토크쇼에서 만들어졌던 일본과 중국의 심상찮은 기류를 떠올려 보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타쿠야의 사랑고백에 장위안이 역사를 들고 나오자 타쿠야가 상황극일 뿐인데 그걸 그렇게 진지하게 받으면 어떡하냐고 장위안을 질책하고, 그 말에 장위안이 미안해하는 모습은 이 토크쇼가 가진 특별한 점을 잘 드러낸다. 국가 간의 다소 껄끄러운 문제들도 <비정상회담>이 추구하는 지극히 비공식적인 토크쇼에서는 충분히 풀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 두 사람이 토크쇼가 끝난 후 소주를 기울이는 장면이 살짝 들어간 것은 이 토크쇼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놀라운 건 이들이 이렇게 때론 의견충돌을 일으키고 때론 공통분모를 찾아내고는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반복되면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외국인들에 대한 생각의 변화다. 물론 요즘은 해외여행이 그만큼 자유로워져서인지 외국인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외국인하면 어딘지 나와는 다른 존재로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을 통해 보여지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더 이상 그런 존재가 아니다. 문화적 차이는 조금 있어도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그들은 언제든 우리와 소통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준다.

 

이것은 <비정상회담>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백 번 외국인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며 함께 공존할 것을 외치는 것보다 이렇게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특정한 화제를 갖고 벌이는 토크의 용광로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라. 지금 여기 출연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서 왠지 정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가.

 

<비정상회담>의 논란, 정상회담의 화기애애보다 낫다

 

“KBS 아나운서 합격을 못했어도 YTN의 손석희가 되면 되는 거였다.” <비정상회담>에서 전현무는 굳이 손석희의 이름 석 자를 꺼냈다. 손석희와의 비교점을 만든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다분했던 발언이었다. 하지만 전현무가 그런 얘기까지 꺼낸 목적은 단 하나였다. 웃기겠다는 것. 벨기에 전현무 줄리안의 평가처럼 그는 늘 웃기려고 노력한다.

 

본래 비호감의 이미지를 캐릭터로 갖고 있는 전현무지만 최근 <히든싱어> 등을 진행하면서 훨씬 이미지가 나아졌던 전현무였다. 그것은 아나운서에서 프리로 선언해 이제는 예능인으로 인식되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생겨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뭔가 반듯해야할 아나운서로서의 전현무는 호감과 비호감의 극과 극으로 나뉘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예능인으로서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는(즐거움을 주는 일) 입장으로 그 요구되는 이미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을 하면서 전현무에 대한 논란은 또 불거져 나왔다. 제작발표회에서 했던 첫 방송 시청률 3%가 넘으면 샘 오취리 분장을 하겠다는 발언은 흑인 희화화라는 비난을 받았다. 또 지난 회 방송 중에 나왔던 미국 출신 타일러 라쉬에게 한 미국 사람이 키가 제일 작다거나 그래서 머리가 얼마 없나등의 발언은 인신공격성 비하 발언으로 지탄받았다.

 

<비정상회담>은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출연자들이 나오기 때문에 사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건 맞다. 따라서 전현무의 거침없는 발언은 때론 생각 없는 발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하나의 발언들을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비정상회담>이라는 토크쇼는 너무나 밋밋하고 재미없는데다 별 의미도 없는 예능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즉 전현무가 아니라도 이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출연자들이나 유세윤 같은 MC가 던지는 말이나 행동에서는 아슬아슬한 면이 많다. 이를테면 군인이 꿈이었다는 중국 출신 장위안에게 유세윤이 전쟁하려고?”하고 묻는 장면이 그렇다. 그것은 달리 들으면 중국에 대한 비하이고 군인에 대한 비하로 들릴 수 있다. 심지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놓여진 국가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대목에서는 심지어 보기 불편한 느낌마저 준다.

 

또 터키 출신의 에네스 카야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인물로 지난 방송에 나왔던 혼전 동거에서 그렇게 하면 자기 나라에서는 죽는다는 표현까지 썼다. 그 보수적인 입장은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 그냥 듣다보면 여성 비하 발언처럼 들릴 수 있다. <비정상회담>의 발언들은 그것이 마치 출연자들의 출신국을 대표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때문에 삐딱하게 들으면 모두 논란의 소지를 안을 수 있다.

 

즉 전현무에게 줄리안이 슬랩스틱같이 표정으로 웃기려고 한다고 말했을 때 전현무가 이게 코리안 유머다라고 응수하는 대목에 대해서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한국의 유머를 대표하는가하고 말이다.

 

물론 전현무는 프로그램을 이끌고 나가는 MC기 때문에 특히 발언에 있어서 조심해야 될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 보면 좀 더 자유분방하게 아무런 얘기든 툭툭 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다소 논란이 될 수 있는 것도 서슴없이 먼저 꺼내놓는 것도 MC의 역할일 수 있다. 많이 떨궈냈다고는 해도 여전히 그가 갖고 있는 비호감 캐릭터의 이미지가 논란을 가중시키는 면이 있지만 전현무의 발언은 어떤 면에서는 <비정상회담> 같은 토크쇼에 꼭 필요한 부분일 수 있다.

 

정상회담같은 공식적인 자리라면 말 그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의례적으로 연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은 제목처럼 정상회담화기애애한 겉치레를 추구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는 정상회담에서라면 웃는 얼굴로 포장되기 마련이지만 <비정상회담>에서는 솔직하게 그 속내를 드러내고 인간적으로는 친한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소통의 물꼬를 가능하게 만든다.

 

<비정상회담>이 만들어내는 논란은 그런 점에서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통과제의가 아닐 수 없다. 비하처럼 보이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를 만들지만, 동시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반복되고 당사자들이 비하로 전혀 느끼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어쩌면 <비정상회담>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일치할 것이다. 너무나 친해져서 피부색이든 나라든 언어든 구별의 시선을 염두에 두지 않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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