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와 <개콘> 그리고 일인자 패러독스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 중 대표격을 꼽으라면 아마도 <무한도전(이하 무도)>과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를 지목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재미의 차원이나 시청률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네 전체 예능에 끼친 영향력이나 꽤 오랜 세월을 지켜낸 저력(<무도>는 8년, <개콘>은 무려 14년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위치까지를 모두 두고 봤을 때 이 두 예능은 확실히 우리 예능의 대표선수들임이 분명하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여전히 이 두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뜨겁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약간 다른 징후들도 포착된다. 그것은 과거에는 좀체 없었던 비판적인 시선들이 등장했고, 식상해졌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청률도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제작진들이나 출연진들 또한 어떤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무도>의 하와이 특집은 그 시작에서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길을 탈락시키는 것으로 충격적인 반전을 만들었다. 또 2편에서는 박명수와 길, 유재석, 노홍철이 글라이더를 타고 활강을 하면서 돈을 세는 강도 높은 미션을 수행하기도 했다. 특히 고소공포증을 호소했던 유재석은 글라이더에서 내리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기도 했다. 하지만 <무도>의 이런 미션들은 과거만큼의 흥미와 팽팽한 긴장감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하와이 특집에 이어 시작한 술래잡기 특집도 긴장감이 떨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제 <무도>의 추격전 미션이 갖고 있는 스토리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홍철은 늘 반전의 키를 쥔 배신자 역할을 자임할 것이고, 박명수는 고군분투하다 짜증을 폭발시킬 것이고, 그 와중에서도 유재석은 누구보다 열심히 뛰면서 미션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물론 조금씩 다른 상황들이 생겨나지만 그다지 큰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패턴이 조금씩 읽힌다고나 할까.

 

이런 사정은 <개콘>도 마찬가지다. 서수민 PD가 자리한 이후 <개콘>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거의 1년 넘게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았고, 출연 개그맨들은 심지어 광고계에서도 블루칩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콘>은 새로운 코너들을 꽤 선보였지만 과거만큼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미 뜬 코너와 개그맨들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졌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개그맨들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개콘>의 핵심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의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기리나 김대성, 이문재, 이희경 같은 친구들이 새 코너들을 통해 중심으로 들어오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존재감이 확실히 생기지는 못했다. 새 코너에 대한 화제도 그다지 높지 않고 시청률도 많이 추락했다.

 

<무도>나 <개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필자 같은 고정 팬들의 여전한 성원 덕분이 아닐까. 그것조차 경쟁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가 불안하다는 것은 프로그램으로서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하긴 이렇게 오랜 세월을 정상에 머무르면서 계속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일 게다. 그 기적의 길을 <무도> 같은 프로그램은 분명 걸어왔다.

 

<무도>나 <개콘>의 위기는 외부적인 것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꽤 오랜 세월동안 줄곧 일인자로 서왔던 것에서 비롯되는 힘겨움이다. 밑에 있을 때는 위로 올라갈 수 있지만 제일 꼭대기에 오르면 할 수 있는 게 지키는 것이나 내려오는 길밖에 없게 된다. 이른바 일인자 패러독스다. <개콘>의 서수민 PD는 그 일인자의 고충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때로는 2등이었으면 할 때가 있다”고.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나 예능인의 위치는 분명 낮은 위치에 있을 때 더 큰 폭발력을 내는 것이 사실이다. <무도>의 힘은 확실히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위치에 있을 때 더 폭발적이었다. <개콘>도 개그맨들이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울 때 더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무도>의 출연자들은 모두 지금 현재 예능계의 최정상의 위치에 서게 되었고, <개콘>의 개그맨들도 이제는 생계 걱정하지 않고 개그만을 해도 먹고 살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정상의 위치를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그만큼 주목도도 높아진 만큼 소비도 빨라진 면이 있다. 이제 과거랑 똑같은 강도의 웃음을 주어도 그 힘이 약하게 느껴진다. <무도>처럼 아예 형식의 무한도전을 해온 프로그램도 꽤 오래 지속되면서 패턴이 읽히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예능이든 패턴이 생기고 일찌감치 이야기가 노출되기 시작하면 요즘처럼 반전과 새로움에 목말라 있는 대중들에게는 흥미를 끌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무도>든 <개콘>이든 그 노력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겨운 지 아는 입장에서 이들이 처한 일인자 패러독스는 진정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일인자라는 위치가 갖는 무게감이 만들어내는 일인 것을. 의외로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만큼 대중들의 기대치가 조금 낮아지게 되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상승의 기회도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기적적인 노력으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반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든 힘겨워도 끊임없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그나마 가능한 일이다.

 

물론 팬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워도 기다려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싶다. 하지만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는 이 시간이 달리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보여준 박성호의 맨 얼굴

 

“괜히 마음이 불안하곤 했죠. 그런데 안 불안한 상황이 있더라구요. 분장할 때.” 개그맨 박성호는 얼굴에 분장을 하지 않으면 울렁증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모습에 이입돼서 하는 게 가장 편하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그램은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분장 속에 감춰졌던 자신의 맨 얼굴을 가감 없이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우리가 <인간의 조건>에 출연한 박성호를 보면서 어딘지 낯선 느낌을 받았다면 그가 늘 어떤 캐릭터로서 우리에게 자리했었기 때문일 게다.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PD는 이렇게 말했다. “박성호는 일상적인 연기를 안 해요. 예를 들어 ‘미필적 고의’ 같은 거 절대 못하죠. 원래 센 캐릭터라...” 박성호 스스로도 그런 캐릭터는 “한 세 번 환생해야 가능할 것 같다”고 농담 섞어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통해서 박성호는 분장을 지우고도 조금씩 편안해진 얼굴을 보이고 있다.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다 벌칙으로 재활용 센터를 찾게 된 박성호는 직접 분리수거를 해보기도 했고, 스키장 행사를 가서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쓰레기를 줄이자”는 간이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갸루상 분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심지어 집까지 그러고 돌아왔지만, 거기에는 갸루상 캐릭터가 아닌 박성호의 진심이 묻어났다.

 

맨 얼굴을 드러내면서 진통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인간의 조건> 첫 번째 파일럿에서 박성호와 김준호가 불편한 관계(?)를 드러냈을 때가 그랬다. 김준호는 그 때 방송이 나가고 자신이 너무 미안했던 마음을 전했다. “<인간의 조건> 처음 나가고 성호 형한테 악성 댓글이 너무 많이 붙었어요. 정말 미안하더라구요. 형수님도 볼 텐데...” 그런 마음은 서수민 PD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저도 미안하더라구요. 근데 와이프가 쓴 편지를 보여줬는데 대단하시더라구요. 그랬구나 우리 남편 힘들었구나. 불편했구나.. 그렇게 썼는데 참 찡 하더라구요.”

 

실제로 박성호는 말없이 후배를 챙기는 선배로 잘 알려져 있다. 많은 개그맨들은 박성호를 그래서 ‘선배 같지 않은 편안한 선배’라고 부르곤 한다. 허경환이 전한 CF 뒷얘기에는 박성호의 속 깊은 마음이 느껴졌다. “‘거지의 품격’이 뜨면서 CF를 많이 찍었는데요, 그 때마다 마지막 최종 클라이언트에게 올라갔던 게 거지와 갸루상이었어요. 결국 거지가 뽑히곤 했죠. 박성호 선배 너무 고마운 게 거기에 대해서 내색도 하지 않더라구요. 좀 미안하기도 했어요.”

 

박성호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하나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지금껏 캐릭터에 가려져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은 때론 자신도 낯설다고 했다. “방송 하면서 몰래카메라 설치해서 자신을 보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저를 보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 개인적인 세계를 구축하려면 또 해야 될 것들이 있지만 그래도 대인관계도 챙겨야 할 게 있더라구요. 그걸 알게 됐죠.”

 

하지만 그것은 박성호가 생각하는 개그맨의 모습과 거기에 몰두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늘 캐릭터에만 집중하다 보니 조금 소원했던 적도 있었다는 것. 박성호는 이 프로그램이 자신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호, 김대희와 함께 이른바 <개콘> 원로(?) 술자리를 처음 가지게 된 것도 이 프로그램 덕분이라고. 그간 한 번도 같이 술자리를 한 적이 없었던 그들이었다.

 

<인간의 조건>을 하면서 박성호는 실제 생활에서도 변화를 느낀다고 한다. “체험 주제에 대한 부담 같은 게 있죠. 공인 같은 느낌을 갖는 것 같아요. 운전을 하면서도 조심하게 되고 쓰레기 줄이기를 미션으로 하고 있으니 음식 남기는 것도 눈치가 보이죠(웃음).” 이것은 <인간의 조건>에 출연하는 모든 개그맨들이 겪고 있는 부담감이다. 심지어 뷔페에 가서도 음식 남기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자신들을 발견한다고 하니 말이다.

 

캐릭터 분장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박성호는 천상 개그맨이었다. <인간의 조건>을 통해 편안하고 유쾌한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개그맨 분장이 더 어울리는. 박성호는 <인간의 조건>의 마지막 미션으로 실제로 머리 깎고 ‘스님 되기’를 하면 어떻겠냐며 허허 웃었다. 속으로는 울어도 겉으로는 늘 웃음으로써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이가 바로 박성호다. 그래서 그의 “사람이 아니무니다”라는 유행어는 빵 터지면서도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만든다.

김준호, 김대희, 박성호, <개콘> 선배로 산다는 것

 

“‘갑을컴퍼니’는 한 달 내내 김준호 없이 하다가 반응이 별로 없어서 내리려 했던 거였는데 어느 날 김준호가 와서 자기가 살려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결국 살려냈죠.” 서수민 PD는 ‘갑을컴퍼니’가 다시 살아난 것이 김준호 덕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초반 ‘갑을컴퍼니’는 전반부의 홍인규와 희숙대리(김지호)가 끌어나갔지만 지금 현재는 상무와 함께 술취해 횡설수설하는 사장으로 등장한 김준호가 중심이 되어 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연출자 입장에서 이 친구들을 보면 코너를 살리는 노하우가 있어요. 일찍 죽은 코너들을 떠올려보면 만일 김준호가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그러면 더 오래갔을 거라는 거죠.” 서수민 PD가 여기서 말하는 이 친구들이란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선배들을 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개그맨들이 김준호를 위시해, 김대희, 박성호가 그들이다.

 

사실 최근 코너를 내리게 되어 많은 대중들의 아쉬움을 남겼던 ‘어르신’이라는 코너를 살려낸 것도 결국은 김대희였다고 한다. 초반에는 김원효의 “욕봐래이”가 주목을 받았지만 차츰 힘이 빠지기 시작할 때 갑자기 소고기 할아버지 김대희가 등장해 다시 기사회생했다는 것이다. ‘소고기 할아버지’는 지금껏 <개콘> 개그들 역사상 가장 관조적이고 철학적인 개그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었다. 비록 소재 고갈로 코너를 접게 되었지만 김대희라는 <개콘> 대선배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 코너였던 것.

 

이 연장선에서 보면 ‘멘붕스쿨’의 빛나는 존재감, 갸루상의 박성호 역시 <개콘> 선배의 저력을 보여주는 개그맨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멘붕스쿨’이라는 코너명보다 ‘갸루상’을 더 기억하게 된 것은 박성호의 독특한 개그 캐릭터가 가진 힘이기도 하다. 그는 이전 코너였던 ‘사마귀 유치원’에서도 거침없고 속 시원한 풍자로 대중들의 답답한 마음을 속 시원히 풀어주기도 했다.

 

박성호만의 노하우를 허경환은 이렇게 표현했다. “귀가 열려 있어요. 지나가다가 우리가 뭐 회의 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어 그거 괜찮은데 나 들어가면 안 되냐? 이런 걸 되게 많이 하세요.” 결국 자기 캐릭터를 확실히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설 자리 또한 잘 찾아낸다는 것이다. 박성호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는 다른 개그맨들은 소화하기 힘든 독보적이 면이 있다. 그 캐릭터를 후배들과 조화시켰을 때 시너지가 생겨난다는 것.

 

물론 선배로서 힘든 점도 있다고 한다. 김준호는 선배들이 아무래도 트렌드에는 재빠르지 못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후배들과 자주 만나고 술 마시고 하면서 소통했기 때문에 새로운 트렌드를 바로바로 습득하고 응용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너무 바빠서 그런 자리도 쉽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준호는 현재 KBS에서 하는 코너만 다섯 개다. <개콘>, <인간의 조건>, <해피투게더>, <남자의 자격>, <퀴즈쇼 사총사>. 여기에 개그맨들 매니지먼트 회사까지 운영하다 보면 밤새는 일이 일상이 됐다는 것. 하지만 이 선배들의 모든 행보가 개그맨들에게는 하나하나 새로운 길을 내는 일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갑을컴퍼니>를 살려낸 김준호, <어르신>을 살려냈던 김대희, 그리고 <멘붕스쿨>의 아이콘이 된 갸루상 박성호. 이 죽어가는 코너도 살려내는 저력이야말로 최고참 선배들인 이들이 <개콘>의 든든한 기둥인 이유일 게다. 흔히들 <개콘>의 선배라는 자리를, 토크쇼의 단골 농담으로 등장하는 후배 코너에 빨대 꽂기 같은, 그저 고참으로서 누리기만 하는 자리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김준호와 김대희, 박성호는 <개콘>에서 그들의 존재이유를 확실히 보여주는 선배 개그맨들이다.

서수민 CP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

 

“신미진 PD의 뛰어난 고집이 통했습니다. 제가 부탁한 건 딱 하나예요. 개그맨들이 뜨면 버라이어티에 한 번씩 넣어주잖아요. 근데 그렇게 하게 되면 개그맨들의 버라이어티 MC 따라 하기가 되요. 그래서 <개콘>이나 다른 버라이어티가 보이지 않았던 자연인 개그맨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죠. 근데 그게 잘 살았어요. 제가 이 프로그램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하는 건... 사실 처음엔 맘에 안 들었거든요. 그런데도 암말 안했다는 거(웃음). - 서수민 CP”

 

사진:전성환

<인간의 조건>의 서수민 CP는 요즘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인간의 조건>이 이렇게 잘 나오고 반응이 좋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개그맨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짜보라고 신미진 PD에게 숙제를 내주면서였다고 한다. 신미진 PD는 무려 10개의 아이템을 가져왔는데 결국 전부 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수민 CP나 예능국 총괄 프로듀서인 박중민 EP 입장에서는 MC도 없이 개그맨들만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미진 PD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4부작 파일럿 얘기가 나오자 “하지 말란 얘기 아니냐”며 반 포기 상태였다고 한다. 그 때 가져온 기획안이 <인간의 조건>이었던 것. 그것도 그다지 마음에 차지는 않았지만 서수민 CP는 박중민 EP에게 이번은 그냥 아무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있자고 했다는 것이다. 후배 기를 살려주는 차원에서.

 

“그래서 박중민 EP와 농담으로 방송 나갈 때 첫 방이 괜찮으면 우리 이름을 넣고 아니면 빼자고도 했어요. 결국에는 이름 들어가는 게 자랑거리가 됐지만(웃음).”

 

막상 나온 프로그램이 너무 괜찮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이 프로그램의 불안 요소였던 MC가 없이 개그맨에 최적화시켰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콩트에 익숙한 개그맨들은 설정에 더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에 들어가면 자꾸 설정을 하고 상황극을 하려다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망치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의 조건>은 거꾸로 갔다. 개그맨들에게 뭔가를 하라고 하기보다는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왔고 더 잘 될 수 있었던 것.

 

“박성호는 설정이 없으면 불안해해요. 갸루상 같은 분장을 해야 편안해지는 편이죠. 그래서 <인간의 조건> 들어갈 때도 너무 불안해 했어요. 그런데 아무 설정 없이 그냥 들어가더니 오히려 김준호와 케미(관계)를 만들어 내더라구요. <개콘> 이면에 이런 불편한 관계도 있구나 하는 걸 시청자분들도 흥미롭게 보아주셨죠. 사실 이 둘의 관계는 진짜예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해가는 모습이 훨씬 진정성 있는 재미를 만들어내죠.”

 

서수민 CP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배운 게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후배가 뭐 한다고 할 때 말리기보다는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겠다는 것이다. 나름 본인도 예능에 있어서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 나름의 경험과 기준으로 판단을 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통해 자신이 모르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예능PD들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게 있어요. 예능하면 꼭 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1,2,3가 있는데 이것 없이 과연 제대로 나올까. 메인 엠씨가 없고 게임이 없고 오락성이 없는데 과연 될까. 그런데 되는 걸 보면서 시청자가 원하는 건 다른 거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이건 지금 현재의 예능 트렌드와 <인간의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중들은 언젠가부터 예능의 양념들(서수민 CP가 말하듯 게임이나 메인 MC, 오락성 같은)에 질려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은 그 양념을 빼버림으로써 오히려 대중들이 원하는 담백한 예능의 맛을 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갈 수 있게 신미진 PD를 잡아준 건 나영석 PD였습니다. 사실 처음 휴대폰, TV, 인터넷 없이 살기 미션에 대해 저나 박중민 EP나 뭐 딱히 잡히는 게 없어 걱정이 많았죠. 그래서 신미진 PD는 꽤 신랄한 비판을 받았는데 그때 같이 회의를 했던 나영석 PD가 이거는 분명히 된다고 확신을 갖고 말하더라구요. 왜? 하고 물었더니 지금 국장님도 휴대폰 없이 사는 삶에 대해서 물어 봤을 때 아무런 그림이 안 떠오른다고 얘기하시지 않았냐고 하지 않았냐. 마찬가지다. 뭐가 될지 모르는 게 버라이어티의 시작이다. 게임이 있고 뭐가 있으면 뭐가 나올 지 다 예상이 되지 않냐. 그것보다는 뭔지 모르겠다는 궁금증이라도 생기고 그래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 고 얘기하더라구요. 후에 몇 번 촬영장에 찾아갔는데 그 때마다 나영석 PD가 말하더군요. 이건 대박이야!”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사실 박중민 EP나 서수민 CP의 걱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능을 하면서 예능적인 핵심 코드들을 다 빼겠다는 건 큰 실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영석 PD는 어떻게 <인간의 조건>의 성공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턱없는(?) 자신감이 <1박2일>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1박2일>은 결국 연출을 빼고 관찰을 통해 재미요소들을 발견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굳이 연출이나 기획하지 않아도 분량이 나오는 걸 늘 봐왔던 나영석 PD는 그래서 상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기존 멤버로 계속 갈 건지 아니면 조금씩 새로운 개그맨을 투입해서 바꿔나갈 건지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너무 같은 그림만 나오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고요. 하지만 일단은 지금 그대로 가려구요. 중요한 건 이야기지 굳이 새로운 그림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봐요. 지금 이대로도 박성호와 김준호처럼 그 멤버들 사이에 다양한 케미가 가능하거든요. 이 기본을 유지하고 중간 중간에 숙소를 자연스럽게 개그맨들이 찾아올 수는 있겠죠. <인간의 조건>이 좋은 게 이 프로그램으로 <개콘> 개그맨들도 자극이 된다는 거예요. 여기 들어오고 싶어 하는 개그맨들이 생긴 거죠.”

 

<개콘>이 늘 아쉬웠던 부분은 이 프로그램에서 성장한 개그맨들이 그 연장선 위에서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 <개콘>의 개그맨들은 성장하면 이 프로그램을 나와 버라이어티에서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은 다르다. <개콘>을 하면서 동시에 콩트 코미디 이상으로 개그맨이 성장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할 수 있다. 개그맨들로서는 확실한 발판이자 성장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개콘>을 잘 하면 또 다른 자기를 메이킹 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개그맨들에게는 중요한 것 같아요. <인간의 조건>은 그래서 <개콘>과 또 개그맨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예능인 셈이죠.”

 

<인간의 조건>은 <개콘>의 이면 같은 느낌을 준다. <개콘>이 무대 위에서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개그맨들을 보여준다면 <인간의 조건>은 그 분장을 지우고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온 맨 얼굴의 개그맨들을 보여준다.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그래서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닌 <개콘>의 짝패 같은 느낌.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개그콘서트> 서수민 PD, 왜 위기감을 느꼈나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애정남', '비상대책위원회', '감사합니다' 같은 인기 코너가 사라졌고, '감수성'과 '사마귀 유치원'도 폐지 논의에 들어갔다. 파업이 끝나고 복귀한 서수민 PD가 마치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칼을 뽑아들었고, 코너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물론 아직까지 새 코너들이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과감한 폐지 선언에 대한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실제로 무리한 점이 없잖아 있다. 만일 서수민 PD가 파업으로 자리를 비우지 않고 있었다면, 코너들의 물갈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탔을 것이다. 잘 나가는 대표코너들이 있을 때, 새로운 코너들이 준비되고 그 중 몇 개가 두각을 나타내면 몇몇 반복되고 식상해지는 코너들을 폐지시키는 과정들을 서수민 PD는 물 흐르듯 진두지휘해 왔었다.

 

하지만 복귀해서 그간 변하지 않고 있던 <개콘>을 본 서수민 PD는 아마도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변화하지 않고 고여 있는 듯한 코너들, 긴장감 없는 분위기에서 사라져가는 헝그리 정신, 게다가 몇몇 개그맨들은 최근 들어 너무 잘 나가고 있지 않은가. 광고를 찍고 음원이 차트에 오르고 하는 건 물론 개그맨들에게 좋은 일이지만, 자칫 그 본래 터전인 <개그콘서트>만의 긴장감이나 헝그리 정신을 희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서수민 PD가 칼을 든 것은 아마도 개개 코너들에 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결과는 코너들이 재미없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거기에는 그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개그콘서트>라는 경쟁 시스템이 느슨해질 때, 코너들도 식상해지고 프로그램도 어려워지게 된다. 그것은 결국 개그맨들에게도 위기로 이어진다. 즉 당장의 편안함이 이 <개그콘서트>라는 시스템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서수민 PD의 칼날은 코너들을 살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바로 경쟁 시스템 자체를 복원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보면 웃기기는 하지만 이미 반복적으로 굴러간다 싶은 코너들은 그래서 <개그콘서트>에는 그 자체로 독이 될 수 있다. '애정남'은 그 폐지 수순이 너무 늦었다 싶을 정도로 반복적이었다. 이 부분은 서수민 PD 역시 알고는 있었지만 시청자분들이 챙겨준 아이디어들을 그저 버릴 수가 없어서 존속시키고 있었다고 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여전히 재미있지만 역시 그 패턴이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안돼!"와 "고뤠!"의 반복인 셈이다. '불편한 진실' 역시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패턴 반복의 고리에 빠져 있다.

 

'사마귀 유치원'도 신선함이 사라져버렸지만, 그나마 그 안에서 일수꾼 최효종이 브로커로, 쌍칼 조지훈이 작두 아저씨로 캐릭터를 바꿔 변화를 주고 있다. 하지만 결국 이 코너도 큰 틀은 그대로인 셈이다. '생활의 발견'은 아이디어적으로는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는 코너지만(지금껏 남녀 사이로만 국한된 아이디어에 머물러 왔다) 좀체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게스트를 통해 넘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감수성'도 마찬가지다. 다만 '감수성'은 엔딩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복안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새 코너들은 어떨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직까지 빈 자리를 제대로 채워줄 핫한 코너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무섭지 아니한가'나 '아빠와 아들' 같은 코너는 너무 과거에 무수히 써먹었던 개그의 반복처럼 여겨지고, '호랭이 언니들'은 개그우먼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기획적인 안목은 좋지만 개그로서는 너무 약한 게 흠이다. '박부장'은 공감은 가지만 한방이 부족해보이고, '하극상'은 너무 말장난으로 가는 느낌이다.

 

그나마 주목되는 것은 '희극지왕 박성호'다. 박성호를 전면에 내세운 이 코너는 예상과 반전으로 웃음을 만든다. 이 개그는 박성호가 하는 개그를 평가하면서 그것이 개그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웃음의 틀이 탄탄하게 여겨진다. 즉 박성호가 웃기지 않으면 웃기지 않다는 걸 내세워서(그는 <개콘>의 최고참이다) 웃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박성호 특유의 언변이 돋보이는 개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코너마저 내린다고 한다. 그만큼 <개콘>의 분위기가 남다르다는 얘기다.

 

어쨌든 <개콘>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래서 코너들보다도 먼저 경쟁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그 팽팽한 긴장감과 경쟁구도가 살아난다면 코너들은 자연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역시 서수민 PD는 명장이다. 여전히 적지 않은 20%라는 시청률에 현혹되지 않고 문제를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변화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조만간 더 강력해진 <개콘>을 기대할 수 있게 했다.


김준호, 고참 개그맨으로 사는 법

김준호를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서수민 PD는 '연기파' 개그맨으로 분류한다. 제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살리지 못하면 도로아미타불. 개그에 있어 연기력이란 그래서 어쩌면 아이디어나 개인기보다 훨씬 중요한 덕목이다. 특유의 연기력으로 후배들과 만들어낸 개그를 척척 잘도 살려내고, 또 한 번 만들어낸 코너를 오래 지속시키기로도 유명하며, 최근에는 '코코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차려 후배 개그맨들의 뒷바라지를 자처한 '개콘'의 고참 개그맨. 김준호와 기분 좋은 만남을 가졌다. 먼저 최근 뜨고 있는 '꺾기도'라는 개그를 화제로 꺼냈다.

"뭐 그간 '개콘'에서 풍자 개그가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나이든 세대들에게 너무 맞춰지는 것 같다는 의견 때문에 좀 연령대를 낮출 수 있는 개그를 짜보려다가 나온 것이 '꺾기도'라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냥 한 겁니다. 누구든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개그죠. 의미부여 하지 않고. 처음에는 후배들이랑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 한번 추자는 생각으로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모았는데 다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게 뭡니까불이." 그랬는데 빵빵 터지고 난리가 난 거에요. 그렇게 생긴 코너죠. 이건 레퍼토리가 유치하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놀아서 살려야 하는 코너입니다. 그래서 쌍둥이(이상호, 이상민)랑 홍인규랑 같이 그냥 한바탕 놀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죠."

사실 '꺾기도'는 말장난 개그로 아이들에게는 빵빵 터지지만 어른들로서는 어디서 웃어야 할지 요령부득인 경우도 많다. 서수민 PD는 최근 전체 '개콘' 코너가 너무 시사적이고 풍자적으로 고정되는 것은 좋지 않게 여긴다고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좀 더 다양한 개그들이 포진될 수 있게 배분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변화 속에서도 김준호는 꽤 오래도록 코너를 유지하는 개그맨으로 유명하다(서수민 PD는 그가 오래할 수 있는 개그를 잘 짜온다고 했다). 그 노하우를 물었다.

"개그에도 생체리듬이란 게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집으로' 같은 코너를 할 때만 해도 1년 반씩 했었는데 요즘은 6개월이면 장수하는 코너가 됐죠. 그만큼 소비 속도가 빨라졌다는 겁니다. 오래도록 코너를 유지하는 노하우로 특별할 건 없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옛날 개그를 많이 우려먹는다(?)는 겁니다. 사실 슬랩스틱이나 콩트처럼 개그 공식은 거의 정해져 있죠.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을 요새 트렌드에 맞게 바꾸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그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꽤 오래 가죠. 제가 지금껏 해온 개그들을 보면 영화 '달콤한 인생'을 패러디한 '씁쓸한 인생', '이끼'의 '미끼', '평양성'의 '감수성', '집으로' 같은 패러디 형식이 많았는데요. 이게 오래 갔던 이유는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최효종이 하는 개그는 제가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뭐라 얘기하긴 어렵지만, 오래 지속하기는 훨씬 어려운 개그입니다. 캐릭터보다는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요즘 '개콘'은 확실히 몇 년 전에 비교하면 대중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고 있고 시청률도 훨씬 높아졌다. 서수민 PD가 새로운 연출자로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다. 서수민 PD체제로 들어서면서 생긴 다양한 시청층을 끌어안으려는 노력과 과감해진 수위 등등 다양한 원인을 들 수 있지만, 정작 서PD는 이것이 "자신이 개그를 잘 몰라서"라고 말했다. 즉 너무 잘 알았다면 시청자의 눈높이와 멀어졌을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더 큰 요인으로 김준호는 선수들(?)이 많아진 것을 들었다.

"작년에 비해 '개콘'의 위상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여겨지는 건 개그맨들이 CF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공중파에서 하는 핸대폰 광고를 찍고 있죠. 작년에는 '감사합니다'가 뜨면서 정태호는 증권광고를 찍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된 건 확실히 과거에 비해 선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지금 '개콘'의 중추는 22기들인데 이제 30대 초반이 된 이들은 확실히 개그에 있어 숙성된 친구들입니다. 밑에서부터 아이디어 짜는 법, 살리는 법 같은 것을 착실히 배워왔기 때문에 지금 '개콘'의 전성기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개콘'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그맨들이 설 무대는 점점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개콘'의 고참 개그맨으로서 김준호는 무엇보다 이런 환경을 안타까워했다.

"처음 내가 시작했을 때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 때는 개그맨들이 할 수 있는 프로가 8개나 있었죠. 그러다 하나 둘 없어지더니 두 개만 남게 되어버렸습니다. '시사터치 코미디파일'과 '개콘' 이렇게 두 개를 했는데, '시사터치 코미디파일'도 없어졌죠. 중간에 '웃음충전소' 같은 프로그램이 생겨서 '타짱' 같은 코너를 하기도 하고, 참 여러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만은 않았죠. 하지만 그래도 개그맨들이 개그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시는 서수민 PD와 함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김준호는 최근 코코엔터테인먼트를 차려 '개콘' 소속 개그맨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그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원래는 매니지먼트 안하려고 했습니다. 갈갈이 패밀리나 컬투나 모두 수익사업을 못 만들어서 어려워졌죠. 그래서 수익사업이 생기기 전에는 안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따르는 20명 정도의 개그맨들이 있었고 그들을 먼저 데리고 해도 되겠다 생각하게 됐습니다. 요청도 있었고. 마침 경영하시는 좋은 분이 나타나서 동업으로 하게됐죠. 현재는 주로 스케줄 관리하는 정도입니다. 또 서수민PD님과 함께 작전 짜서 버라이어티에 넣어주기도 합니다. 수익 분배는 15%-20% 정돈데, 그걸 가져가도 코디비로 거의 쓰니까 수익사업은 아니죠. 공연이나 광고에서 조금 돈이 들어와 그걸로 재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MD사업 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김준호의 코코엔터테인먼트는 '개콘'의 서수민 PD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불편한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개그맨의 매니지먼트를 제안한 건 다름 아닌 서수민 PD였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많은 인원이 덜컥 김준호와 계약할 지는 몰랐지만. 하지만 내놓고 "우린 불편할 수도 있는 관계다"라고 말하는 두 사람을 볼 때, 그만큼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함이 느껴졌고, 또 위치가 갖는 입장차는 있지만 대의적으로 개그맨들의 비전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개그맨들이 개그만 하면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언젠간 개그맨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설 날이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버라이어티를 하려는 것은 물론 그것이 더 맞는 친구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선택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개그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다양한 무대와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굳이 '개콘' 같은 좋은 무대를 나갈 이유가 없죠."

김준호는 확실히 신망이 두터웠다. PD에서부터 후배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그는 '개콘'의 선배로서 든든한 믿음을 주는 개그맨이었다. 또 개그맨으로서도 뭐든 척척 살려내는 기량을 가진 베테랑이었다. 그래서 PD조차 콩트에 있어서는 김준호의 의견을 들을 정도로 신뢰감을 갖게 만들었다. 그것이 코너든, 개그맨으로서의 입지든 오래 버티는 그 노하우는 바로 그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후배들이 앞으로도 오래 버티는 그 길을 내주지 않을까.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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