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보다 넘치는 사직, '알쓸신잡2' 서울에 채워야할 것들


tvN <알쓸신잡2>가 본 서울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야기는 조선에 한양을 수도로 세운 정도전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북방 외세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천혜의 요새(?) 같은 한양에 수도를 세운 정도전. 당시만 해도 텅 비어있던 한양은 이제 몇 백년 만에 인구 천 만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유시민 작가는 숙정문과 남산에 올라 아마도 당시 정도전이 내려 봤을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만일 이 달라진 모습을 정도전이 봤다면 “인생 최대의 희열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구 천 만이 모여 살게 된 그 변화된 서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건 뿌듯함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황교익이 지적한 대로 서울은 과거 정도전이 꿈꿨던 모습과는 달리 ‘이주민의 도시’가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외지인들이 들어와 사는 곳이 되었고, 그렇게 인구가 집중되면서 효율은 떨어지는 도시가 되었다. 유현준 교수는 이런 근대화를 가능하게 한 건 ‘보일러’였다는 흥미로운 관점을 말했다. 과거 온돌 생활에서는 2층 이상의 집이 불가능했는데 보일러가 들어와 고층 아파트가 가능해졌다는 것.

유시민 작가 역시 서울이 ‘화석에너지와 대량생산시스템’으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걸 지적했다. 고층 아파트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인구를 수용하고, 그들이 모두 같은 패턴으로 일하고 쉬고 움직이기 위한 교통시설이 만들어진 것이 모두 화석에너지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고, 그 시스템은 대량생산을 지향했다는 것. 이 이야기는 유현준 교수가 지적하는 서울의 도시계획 실패 이야기와 맞닿는 것이었다. 이렇게 주거와 일터를 나누고 일제히 동시에 같은 시간에 일하고 같은 시간에 쉬는 시스템 속에서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서울의 시스템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이었다. 피맛골을 예로 들어 사라져가는 골목길들은 그저 길만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이 갖던 많은 추억들이나 인간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미국의 경우 건물은 고치거나 바꿀 수 있어도 도로는 함부로 바꿀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유현준 교수의 지적은 그래서 그저 자본화되어가고 있는 서울이 보존해야할 것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하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장동선 박사가 다녀온 세운상가의 재탄생은 이런 과거와 현재의 공존 그리고 지향할 미래를 모두 품어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의 한 예처럼 보였다. 한때는 부의 상징이었던 곳이었으나 강남이 개발되고 용산전자상가가 생기며 점점 낙후되어가던 그 곳이 지금은 ‘청년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과거의 장인들과 현재의 청년들이 콜라보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변화란 단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변용할 건 변용해야 한다는 걸 이 사례는 보여줬다.

유시민 작가는 이러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가치’의 관점에서 새롭게 풀어냈다. 정도전이 처음 한양을 수도로 세웠을 때 만들었던 종묘와 사직이 각각 당대의 ‘도덕적 가치’와 ‘세속적 욕망’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는 걸 먼저 지적한 유시민 작가는 그렇다면 21세기의 우리에게 종묘와 사직은 무엇인가 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유시민 작가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21세기의 종묘일 것이라며 민주화를 상징하는 한국기독교회관, 명동성당 등을 언급했다. 그리고 황교익은 광화문 광장이 그런 가치를 하나로 모으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한편 21세기 사직에 대해서 유시민 작가는 ‘마천루’라고 말했고, 유현준 교수는 ‘아파트’라고 했으며 황교익은 식당이라고 해서 저마다 현재적 욕망을 상징하는 것들을 각각의 입장에서 거론했다. 유시민 작가는 우리가 저마다의 사직단을 품고 살아가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돈’이라는 걸 짚어냈다.

<알쓸신잡2>가 들여다 본 서울은 21세기 종묘와 사직단으로 표징되듯, 민주화의 흔적들이 중요한 가치로 남은 공간이면서 동시에 돈과 물질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는 곳이었다. 아쉬운 건 21세기 종묘의 가치들을 압도하는 사직단들에 의해 사라져가는 것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직단들이 과거를 밀어내고 전면에 포진하면서 이제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길로 자그마한 온기를 찾아 모여드는 도시인들의 모습이 못내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물론 그 곳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지는 또 다른 모습의 사직단이 되어가고 있지만.(사진:tvN)

‘뉴스룸’ 손석희도 머쓱, 숙연해진 이효리의 생각·노래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혀지기는 싫다. 어떤 뜻인지는 알겠는데 이거 가능하지 않은 얘기가 아닌가요, 혹시?”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이효리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순간 손석희는 기분 좋은 당혹감을 느꼈을 법하다. 그래서 농담을 섞어 질책하듯 이효리에게 말했다. “질문한 사람을 굉장히 머쓱하게 만드시네요...” 라고.

'뉴스룸(사진출처:JTBC)'

<뉴스룸>의 손석희와 이효리. 어찌 보면 쉽게 보지 못하는 조합이다. 과거 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비되곤 하던 이효리의 모습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4년 만에 돌아온 이효리는 그 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훨씬 자연스러워졌고 말하는 것에 있어서도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움과 편안함 속에는 듣는 이들을 공감시키고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천하의 손석희 앵커까지. 

새로 낸 신보의 선 공개곡인 ‘서울’이라는 노래를 소개하면서 전한 서울에 대한 생각은 그녀가 지난 4년 간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를 잘 드러내주었다. “서울을 미워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러면서 사실은 “서울이 어두웠고 나빴던 게 아니라 서울에 살 때 제가 뭔가 좀 어둡고 답답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울’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춤에 대해 이야기하며 손석희 앵커가 “요가 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하자, 이효리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수긍했다. 과거 같으면 그런 평가를 부인하려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보니까 요가랑 춤이랑 그렇게 완전히 다른 게 아니더라고요. 어쨌든 육체, 몸을 가지고 뭔가를 표현하는 거니까.” MBC <무한도전>에서 그녀가 춤 선생으로 소개했던 김설진 현대무용가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과거 그녀가 보여주려는 춤을 췄다면 이제는 자신의 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는 춤을 추고 있다는 느낌.

손석희 앵커는 새 앨범에서 ‘변하지 않는 건’이라는 곡의 가사를 소개했다. ‘변하지 않은 건 며칠 전 냉장고에서 꺼내놓은 식빵. 여전히 하얗고 보드랍기만 한 식빵. 변하지 않는 건 너무 이상해. 변하지 않은 건 너무 위험해.’ 손석희 이야기처럼 그건 마치 ‘환경문제’를 의미하는 가사처럼 들렸지만 이어지는 가사는 그것이 거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줬다. ‘얼마 전 잡지에서 본 나의 얼굴. 여전히 예쁘고 주름 하나 없는 얼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이상한 저 얼굴.’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과 자신을 동일선상에 놓고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걸 이야기하는 가사. 그리고 한 마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인다. ‘변하지 않는 걸 위해 우리는 변해야 해.’

손석희 앵커는 또 다른 곡인 ‘다이아몬드’를 소개하며 ‘그대여 잘 가시오. 그동안 고생 많았다오. 그대여 편히 가시오. 뒤돌아보지 말고 가시오.’라는 가사의 대상이 누구냐고 물었다. 어찌 보면 남녀 간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효리는 그 곡을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 기사를 읽다가 쓰게 됐다고 말했다. “어떤 권력이나 무슨 기업에 맞서 싸우시다가 힘없이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게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그분들에게 뭔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은 마음”으로 이 곡을 썼다고 했다. 

손석희 앵커는 굉장히 뭉클해하며 그 ‘숙연한’ 가사에 의미를 더해주었지만, 정작 이효리는 그것이 거창한 일로 비춰지는 걸 저어하는 눈치였다.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 전했을 뿐이라는 것. 사회적인 참여를 적극적으로 해온 이효리에게 왜 그렇게 했냐고 묻자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참여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이효리의 그 단순한 답변에 손석희 앵커는 또 한 수 배운 얼굴이었다. “사실 단순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죠”하고 덧붙였다. 

<뉴스룸>을 통해 보여진 이효리의 모습에서는, 지난 4년 간 그녀가 말한 ‘모순덩어리 삶’에 대한 깨달음과 그것을 받아들이며 훌쩍 성장한 그녀가 느껴졌다.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때론 그렇게 꿈꿀 수 있는 것이 불가능을 가능하게도 한다는 걸 그녀는 어느새 알아차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발표한 노래 속에 그녀의 삶이 담겨지는 것이 가능해졌으니.

안희정의 ‘말하는대로’, 공약보다 소신과 철학 왜 중요할까

“우리는 국토로 치면 10%. 그 좁은 문을 향해 모두 스펙을 쌓기 위해 등허리가 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 인 서울(in Seoul)이라는 천정부지의 높은 임대료와 그 아파트의 성냥갑 속에서 우리는 치열한 스펙경쟁에 하루하루를 우리 인생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헬조선이지요. 지난 20세기까지 중앙집권화된 그 국가권력을 모아서 그 권력을 향해서 모든 사람이 충성을 하라고 그랬고 모든 개성을 잠재우라고 했습니다. ‘닥치고 따라와.’ 그러나 21세기 우리의 행복은 이 집중화된 중앙집권화된 체제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답게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새로운 인생 한 번 안 살아볼랍니까?”

'말하는대로(사진출처:JTBC)'

JTBC <말하는대로>에서 안희정 도지사의 목소리는 거침이 없었다. 우리 사회가 왜 헬조선이 됐는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명쾌했다. 그는 그 원인을 ‘중앙집권화된 체제’로 명명했다.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는 서울에 전체 50%의 인구가 몰려들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사회. 그 곳에 가야만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암묵적인 강박이 하루하루를 스펙경쟁에 내몰고 그것으로 우리네 인생 대부분을 소모하게 만드는 사회. 그것이 그가 본 헬조선의 실체였다. 

안희정은 그러나 그것이 20세기의 삶의 방식이었지 21세기 우리의 삶은 달라야 한다고 강변한다. 사실상 압축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개인적 삶의 행복 따위는 접어든 채 달려오게 했던 건 강력한 중앙집권 체재를 통해서였다. 우리에게는 군사독재라고도 불리는 그 체재 속에서는 질문 따위가 용납되지 않았다. 안희정이 그 중앙집권화된 권력의 목소리를 “닥치고 따라와”라고 명명한 건 그래서다. 

그리고 그 군사독재는 끝났지만 그 잔재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진 것이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드러난 것이 아닐까. 대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공적 권력의 사적 착복 같은 군사독재 시절의 통치방식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정부의 실체가 드러남으로써 달라졌다 착각해온 그 환상을 여지없이 깨고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이 아닌가. 

<말하는대로>에서 안희정은 이 여전한 중앙집권화된 체제의 문제를 메르스 사태를 거론하며 확인시켜 주었다. 지방에서 생겨난 메르스 의심 환자들의 검사를 반드시 서울에서 확인해야 하는 그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국가 위기 상황을 더 위기로 몰아넣는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AI에 이어 구제역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가적 사태에 속수무책인 통제 불능의 정부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말하는대로>에서 안희정이 던진 “새로운 인생 한 번 안 살아볼랍니까?”하는 그 질문이 더 가슴에 와 닿은 건 그래서다. 물론 중앙집권화된 권력의 예를 인 서울(in Seoul)을 예로 들어 말했지만, 사실 이건 지역분권의 문제를 넘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에 대한 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만이 옳고 그래서 그렇게 권력화된 한 가지에 모두가 몰두하는 몰개성한 사회가 아닌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소신 있게 해나갈 수 있는 다원화된 사회. 실로 안희정이 ‘말하는 대로’의 사회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희정은 공약보다 중요한 게 소신과 철학이라고 했다. 공약은 언제든지 속임수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공약을 보고 뽑게 되면 돌아오는 건 배신감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대신 중요한 건 소신과 철학이 보여주는 그 후보의 ‘방향성’이라는 것이다. 철학은커녕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이는 권력자들의 민낯을 목도하고 있는 현재, 그리고 조기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재 곱씹어봐야 할 말이 아닐까.

<내 귀에 캔디>가 끄집어낸 매력적인 감성들

 

마치 분위기 있는 멜로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건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리얼 예능이다. ‘폰중진담이라는 콘셉트로 방영되고 있는 tvN <내 귀에 캔디>는 오로지 스마트폰 하나로 배터리가 소진될 때까지 남녀가 소통하는 어찌 보면 단순한 설정의 예능이다. 제목만 보면 마치 과거의 폰팅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프로그램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과는 사뭇 다른 매력적인 감성들이 묻어난다.

 

'내 귀에 캔디(사진출처:tvN)'

장근석과 유인나가 이른바 캔디폰을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각자 다른 공간인 서울과 상하이에서 동시간대의 일상을 공유하는 장면은 사실 마법 같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들. 상하이의 동방명주 타워 근처를 돌아다니는 유인나와 서울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는 장근석이 서로 있는 장소의 사진을 주고받고, 때로는 화상 통화를 통해 연결되는 장면들이 그렇다. 유인나도 장근석도 얘기했듯 서로 다른 장소에 홀로 있었지만 그들은 마치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 귀에 캔디>라는 기획은 다분히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서로 목소리와 문자로 마음을 전하는 전화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있는 곳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의 기능도 갖고 있다. 그러니 과거라면 이 기획에 꽤 많이 필요했을 장치들이 스마트폰 하나로 다 해결되는 셈이다. 물론 그들을 따라다니며 동행 취재할 PD와 작가는 필요하겠지만 오롯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두 사람이 나누는 소통에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스마트폰이다.

 

영상으로 모든 걸 공유할 수도 있는 시대에 굳이 서로의 존재를 블라인드 처리하고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게 한 건 그 베일에 가린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려는 예능적 의도만은 아니다. 영상으로 모든 걸 드러내는 것보다 오히려 목소리로만 대면할 때 훨씬 더 진솔해지고 내면에 있던 진짜 속내가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근석은 그래서 자신의 어려웠던 청춘시절부터 최고의 주가를 올려 쉴 틈 없이 살았던 시절까지를 유인나에게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그것은 연애 감정처럼도 여겨지지만, 그것보다 큰 건 누군가와 진심을 나눈 경험이 주는 즐거움이다.

 

<내 귀에 캔디>는 소통의 즐거움과 함께 여기 대상으로 등장하는 연예인들에 대한 궁금증 또한 중요한 재미요소로 들어가 있다. 연예인들은 직업적 특성상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들은 그래서 어쩌면 진심을 주고 받는 일에 누구보다 갈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들의 이런 욕구는 <내 귀에 캔디>라는 프로그램이 그들의 진솔함 면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배우 지수와 대화를 나눈 개그우먼 이세영은 자신이 직업적 특성 때문에 늘 과장된 모습으로만 비춰져온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걸 드러냈다. 지수와의 대화에서 온전히 한 여성으로서의 따뜻함과 귀여움을 그녀는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었다. 새로 등장한 경수진은 처음 연결된 상대남에게 낯설음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유인나가 얘기했듯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대나무숲 같은 존재로 상대방을 만들어준다.

 

<내 귀에 캔디>는 스마트폰 시대에 반전의 묘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누구나 스마트폰에는 수백 개의 전화번호들이 있지만, 그들 중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오히려 계속 울려대는 스마트폰에 관계의 피곤을 느끼는 게 현대인들이 아닌가. <내 귀에 캔디>는 이 상황을 뒤집어 스마트폰을 통한 진솔한 대화와 소통이 주는 묘미를 선사한다. 장근석의 진심과 그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그 과정을 보며 어떤 설렘을 느꼈다면 그건 우리 자신 역시 그런 소통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어벤져스2>, 도대체 왜 이렇게 설레발이었을까

 

이 영화로 과연 4000억원의 직접 홍보효과와 2조원의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2주간 교통을 통제하면서까지 진행된 <어벤져스2>의 서울 로케이션에 대해 찬반 논란이 벌어졌을 때, 한국관광공사가 내놓은 장밋빛 전망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역시 876억 원의 경제효과를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디서 이 어마어마한 수치의 경제적 효과가 가능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사진출처 : 영화 <어벤져스2>

국내의 관객이라면 당연히 궁금했을 서울 로케이션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잠깐 등장한다. 상암동에 새로 지어진 MBC 신사옥 위로 비행선이 날아가고 대로와 골목길을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은 그 액션만으로는 훌륭하다. 게다가 질주하는 지하철 안에서 벌어지는 캡틴 아메리카와 울트론의 대결도 볼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액션 신이 서울이라는 공간을 얼마나 특징적으로 잡아내주고 있는가는 알 수 없다.

 

그 장면들은 거기 길거리에 간간히 보이는 한글로 된 간판들을 떼놓고 보면 도무지 어디서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서울의 특징을 나타내주지 못한다. 차라리 고궁 같은 공간을 활용했다면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어벤져스2>가 보여주려 한 서울의 이미지는 조스 웨던 감독이 캐스팅 이유로 밝힌 것처럼 최첨단 과학기술 연구가 진행되고, 유전공학으로 주목받는 곳으로서의 서울이다. 이것이 무슨 관광 효과를 가져올 거라는 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액션 신들이 워낙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터라 배경은 잘 보여지지도 않는다. 짧은 로케이션 시간, 서울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공간, 현란하고 속도감 넘치는 CG로 덮여져 빠르게 흘러가기만 하는 장면들은 서울 로케이션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만일 외국인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거기가 어디인가는 새빛 둥둥섬이 연구소로 잠깐 등장하는 장면 밑에 쓰여져 있는 서울이라는 자막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애초에 기대했던 우리 배우 수현의 존재감 역시 영화 속에서는 그리 드러나지 않는다. 유전공학 연구원으로서 자기만의 역할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이 영화를 봐야 될 이유만큼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우리 배우가 출연했다는 것 정도가 의미가 있을 뿐이다.

 

물론 영화는 오락물로서 그만한 재미를 선사하는 면이 있다. 그런데 그 재미도 슈퍼히어로물의 캐릭터 액션이 주는 차원 그 이상을 선사하진 않는다. 즉 헐크가 도시에서 난동을 피우는 장면이나 아이언맨이 갖가지 로봇 액션을 보여주는 것 또 블랙 위도우의 멋진 카리스마가 주는 묘미는 전편에 이어 충분한 만족감을 주지만 그것은 시각적인 만족에 그칠 뿐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나 새로움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이 영화는 마치 다양한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의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서사와 로케이션에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캐릭터들의 화려한 액션 향연만이 머릿 속에 남을 뿐, 마블 특유의 생각 외로 깊은 주제의식이나 독특한 이야기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그래도 팝콘 무비로서 아이와 함께 두 시간 남짓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영화의 로케이션을 갖고 미리 2조원의 국가브랜드 가치 운운하며 설레발을 치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오히려 로케이션을 통한 우리네 관객 동원이 오히려 마케팅 포인트였을 것이다.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예매율이 90%를 넘었다는 건 그걸 증명하지 않은가. 로케이션에 섣부르게도 천문학적인 국가브랜드 가치를 얘기하는 것은 마치 고질적인 전시행정의 전형을 보는 듯한 씁쓸함을 남긴다.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비즈니스는 그래서 단지 애국주의에 호소하거나 국가경제를 호명해오는 식의 단순한 접근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해프닝이 잘 말해주는 것만 같다.

 

<트랜스포머4>의 중국, <어벤져스2>의 한국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이하 트렌스포머4)>에는 홍콩에서 시드를 갖고 도주하던 조슈아 박사(스탠리 투치)가 엘리베이터에서 괴한들의 습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이를 막는 인물이 중화권 배우인 리빙빙이다. 리빙빙의 격투실력을 본 조슈아 박사는 갑자기 그녀에게 빠진 듯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기도 한다.

 

'사진출처:영화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더 나온다. 그것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한 중국인 청년이 괴한이 리빙빙을 가격하는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쿵푸 실력으로 괴한을 물리치는 장면이다. 어찌 보면 이 장면은 사족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인들이라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즉 이 장면은 누가 봐도 중국인 관객을 염두에 둔 서비스 장면이라는 점이다.

 

<트랜스포머4>의 주요 배경은 중국 상하이와 홍콩이다. 트랜스포머의 재료가 되는 트랜스포뮴을 생산하기 위해 시드를 투하시키려는 곳이 중국의 사막이고, 선사시대에 공룡을 모델로 트랜스포머가 된 다이노봇이 깨어나는 곳도 홍콩이다. 다이노봇을 타고 싸우는 옵티머스 프라임의 모습은 기묘하게도 중세 유럽의 용을 탄 기사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동양의 용을 탄 전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국 상하이와 홍콩은 트랜스포머들의 전장이 되어 초토화된다. 좁은 공간에 밀집된 고층 건물들을 마구 부숴버리며 싸우는 오토봇과 디셉티콘 그리고 그 사이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다이노봇은 압도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중국인들에게는 새로운 감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거기 배경이 자신들이 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다분히 염두에 둔 이러한 로케이션 덕분인지 <트랜스포머4>는 중국에서만 단 3일 만에 910억 원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이 수치는 전체 수입인 2천여억 원의 절반에 달하는 액수다. <트랜스포머3>가 중국에서 약 18백억 원의 수입을 올린 걸 생각해보면 이번 <트랜스포머4>가 그 수입을 뛰어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중국 로케이션이 가진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트랜스포머4>가 상기시키는 건 우리나라에서 촬영된 <어벤져스2>. 당시 2주간 교통을 통제하면서까지 진행된 이 로케이션으로 국내에서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이 <어벤져스2>의 서울 촬영으로 4천억 원의 홍보효과와 2조 원의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지만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았던 것. 즉 파괴되는 공간으로서 활용되는 서울시의 장면들이 해외 관광객을 끌어 들일만큼의 유인이 될 수 있겠냐는 의문이 일었다.

 

<트랜스포머4>의 중국 로케이션을 두고 보면 이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이 중국에 매력을 느끼고 관광을 하러 찾아올 가능성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트랜스포머4>의 중국 흥행을 통해 드러나듯이 오히려 관심을 끄는 쪽은 중국인들이다. 자신들이 사는 공간이 <트랜스포머> 같은 블록버스터 공간으로 어떻게 그려질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어벤져스2>의 서울 로케이션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내용보다는 압도적인 볼거리가 중심이 되는 <트랜스포머4>가 그러하듯이, <어벤져스2> 역시 그 볼거리 속에 들어가 있는 서울의 모습이 우리네 관객들의 호기심을 잡아끌 것이라는 점. 결국 <어벤져스2>의 서울 로케이션은 관광공사의 국가브랜드 이미지 제고보다는 할리우드의 마케팅 차원이 훨씬 강력할 거라는 점이다. 중국 로케이션이 만들어낸 <트랜스포머4>의 중국 열풍은 <어벤져스2> 서울 로케이션의 진면목을 새삼 바라보게 해준다.

<응답하라1994>, 왜 촌스러움을 전면에 세웠을까

 

기성 드라마와 비교해보면 <응답하라 1994>는 세련된 드라마는 아니다. 첫 회를 삼천포(김성균)의 상경기 하나로 오롯이 채워 넣은 것은 기존 드라마 문법으로 보면 모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체로 멜로드라마의 첫 회란 남녀 주인공에 맞춰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는 꽤 많은 시간을 삼천포의 상경기에 할애했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드라마에 시트콤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아마도 이런 선택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능을 해봤던 경험 때문일 게다. 드라마? 꼭 그 문법을 따라갈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응답하라 1994>는 그래서 예능이 그러한 것처럼 때론 조금은 과장된 시트콤적인 상황을 통해 캐릭터와 웃음을 만들어내면서 필요하면 내레이션으로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인물의 심리를 대놓고 드러내기도 한다.

 

성나정(고아라)과 쓰레기(정우)의 멜로 라인도 그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이미 관계가 설정된 상황을 오누이처럼 살짝 가리는 것으로 처리했다. 2회에서 갑자기 쓰레기가 아픈 성나정의 옆자리에 함께 눕는 장면과 함께 이 둘이 오누이가 아니라 오래 만나다보니 오누이 같은 친근함을 가진 특이한 관계라는 것이 설명되었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해가는 과정도 드라마적인 스토리 전개보다는 시트콤에 가깝다. MT를 가서 술 마시기 게임을 하는 성나정이 오매불망 쓰레기의 삐삐만을 기다리는 장면이나 다음 날 아침 일찍 산책 나온 성나정에게 무심한 듯 살짝 애정을 표현하는 쓰레기의 모습은 이야기의 전개라기보다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의 심리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시트콤적이다.

 

이것은 칠봉이(유연석)가 어머니의 두 번째 결혼식을 찾아가려다 운전이 미숙한 성동일이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아다니다 늦게 되어, 결국 삐삐 음성으로 마음을 전하는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응답하라 1994>의 스토리는 어떤 일관된 흐름이나 전개를 갖기 보다는, 그 때 그 때의 상황과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 그 안에 캐릭터 하나 하나를 소개하고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조금은 단순해 보이고 심지어는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이 전개는 그러나 이 드라마가 가진 소재나 메시지를 떠올려보면 의외로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 드라마가 전면에 내세운 건 ‘촌스러움’에 대한 것이 아닌가.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하숙집(그 하숙집도 지방에서 갓 올라온 집안이 꾸린 것이다)에서 같이 생활하며 낯선 서울 살이를 체험하는 이야기.

 

이것은 왜 첫 회에 삼천포의 상경기에 그토록 시간을 할애했는가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4년으로의 초대. 삼천포라는 인물은 그 시절의 조금은 구식의 풍경과 정서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준 인물인 셈이다. 그런데 왜 굳이 1994년을 다루면서 촌놈들의 서울 체험을 주된 소재로 삼았을까. 이것은 자칫 지금 세대에게 낯설 수 있는 1994년의 공기를 ‘촌놈’이라는 공통된 시선을 통해 보다 자연스럽고 또 재미있게 전하기 위함이다.

 

지금 세대에게 1994년이 낯선 모험의 지대인 것처럼 촌놈들에게는 당시나 지금이나 서울이 모험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양상국이 ‘네가지’나 <인간의 조건>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이 촌놈의 시선은 또한 서울이 익숙한 이들에게도 서울을 낯선 모험의 공간으로 바꿔주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 표현한 ‘촌놈’이라는 조금은 비하적인 표현은 이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정감가고 아날로그적이며 세련됨이 밀어낸 따뜻한 정조를 드러내는 긍정적인 의미인 셈이다. 양상국처럼.

 

삐삐라는 지금은 너무나 투박하고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물건은 그래서 오히려 스마트폰 하나면 즉각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는 지금 시대에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관계의 아련함 같은 것을 전해준다. 누군가의 삐삐가 오기를 밤새도록 기다리는 경험이라던가, 직접 통화하지 못하고 메시지를 녹음해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마치 손 글씨로 한 자 한 자 마음을 적어나가던 편지처럼 애틋해지는 구석이 있다.

 

<응답하라 1994>는 분명 촌스러운 드라마다. 하지만 이 촌스러움은 오히려 이 드라마가 지금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단지 과거를 회고하거나 추억하는 향수 드라마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가 잃어버린 아날로그적 정조를 ‘촌놈’의 시선으로 끌어내는 것. 이만큼 현재에 괜찮은 의미를 던져주는 주제의식이 있을까. 이것이 이 드라마의 촌스러움에 기꺼이 빠져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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