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법정’의 사회적 의제 vs ‘사랑의 온도’의 사적 멜로

사실 액면으로만 봤을 때 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토록 차갑게 식어버릴 줄 누가 알았을까. <따뜻한 말 한 마디>, <상류사회>, <닥터스> 같은 작품을 통해 믿고 보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하명희 작가의 작품이고, 작년 <또 오해영>에 이어 <낭만닥터 김사부>로 스타덤에 오른 서현진과 신인배우답지 않게 급성장하고 있는 양세종이 출연한 작품이다. 

'마녀의 법정(사진출처:KBS)'

실제로 이 드라마는 초반 괜찮은 반응을 이끌었다.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였고 드라마의 색깔에 맞게 따뜻한 연출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서현진, 양세종, 김재욱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그 인물의 섬세한 심리변화를 제대로 표현해줘 잔잔하면서도 결코 약하지 않은 극적인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해줬다. 

반면 KBS <마녀의 법정>은 방송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기대감을 주는 작품은 아니었다. 정도윤 작가는 시청자들에게 낯설었고, 물론 전광렬이나 김여진의 출연이 드라마에 무게감을 주었지만 주인공들인 정려원이나 윤현민은 <사랑의 온도>와 비교해보면 그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는 배우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첫 회에 6.6%(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이 나온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로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첫 회에 좋은 인상을 남긴 <마녀의 법정>은 2회에 9.5%의 시청률로 반등했고 4회만에 최고 시청률 12.3%를 찍었다. 그리고 줄곧 월화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반전의 주인공이 됐다. <사랑의 온도>의 추락과 <마녀의 법정>의 상승곡선은 시청자들의 이동을 명확히 보여준다. MBC <20세기 소년소녀>는 논외의 작품이 되었다. 줄곧 2%대의 시청률로 역대 최하의 기록을 세우며 시청자들의 관심에서는 멀어진 지 오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희비쌍곡선이 말해주는 건 뭘까. <마녀의 법정>이 던지고 있는 사회적 의제가 <사랑의 온도>가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사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압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드라마가 가진 세련미는 <사랑의 온도>가 훨씬 나은 면이 있지만, 소재나 이야기만을 두고 보면 <마녀의 법정>이 다루는 사건들이 훨씬 더 다채롭다. 

<마녀의 법정>은 직장 내 성추행 사건은 물론이고, 최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일반인 동영상 유출사건, 아동 성폭행 사건 그리고 성폭력 살인사건까지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들을 다루고 있다. 성 평등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는 요즘, <마녀의 법정>의 이야기들은 그 소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마이듬(정려원)과 여진욱(윤현민)이라는 통상적인 남녀 캐릭터의 선입견을 깨는 검사들이 사건을 해결해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성 역할을 뒤집어보는 묘미를 선사한다. 승소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이듬과 오히려 피해자의 입장을 깊이 공감하며 사건 해결만이 아니라 그 아픔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진욱의 합은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의 결합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다시금 보게 되는 건 마이듬을 연기하는 정려원이라는 배우가 가진 저력이다. 꽤 오래도록 여러 작품을 연기해온 그 공력이 이제는 훨씬 자연스럽게 그의 연기에서 묻어나오고 있다. 냉철하면서도 때론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마이듬이라는 캐릭터를 정려원은 충분히 공감하게 연기해 보여준다. 

반면 ‘사랑의 온도차’를 보여주겠다던 애초의 의도에서 점점 치정으로 치닫고, 결국 부모와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딪쳐 흔들리는 <사랑의 온도>의 인물들은 너무 뻔한 구도 앞에서 그 연기조차 퇴색된 모양새다. 좋은 연기는 좋은 캐릭터에서 나오고, 좋은 캐릭터는 좋은 이야기에서 나오기 마련인데, <사랑의 온도>는 그 이야기가 너무 뻔하다. 물론 섬세한 심리묘사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먼저 다채롭고 신선한 이야기가 담보됐을 때 이야기다. 

결국 <마녀의 법정>이 <사랑의 온도>를 압도한 건 그 다양한 사건들이 현실적인 사회적 의제를 건드리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반면 <사랑의 온도>가 가진 그 사적인 멜로는 갈수록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멜로라고 해도 그것이 함의하는 사회적 관계의 문제들을 ‘온도’라는 시점으로 풀어냈다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시청자들은 이제 지극히 사적인 사랑이야기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싶은 것이다.

'병원선' 하지원 뜬금 키스, 차라리 러브보트라고 하던지

기승전멜로. 우리네 드라마에 대한 비판에 항상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다. 물론 멜로 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문제는 특정 장르물로 흘러가는 듯 싶었던 드라마가 어느 순간 갑자기 흐름을 멈추고 멜로로 빠져드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이런 ‘멜로의 틈입’을 허용했고, 어느 정도는 시청자들도 이를 즐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 시청자들은 확실히 달라졌다. 장르물은 장르물 특유의 긴장감으로 즐기고 싶어 하고, 멜로라면 차라리 제대로 된 멜로를 그리라고 한다. 

'병원선(사진출처:MBC)'

그런 점에서 보면 MBC 수목드라마 <병원선>이 갑자기 앞으로 나가다 멜로로 방향을 틀어가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지난 회 마지막 부분만 보면 <병원선>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의학드라마가 가진 긴박감이 드디어 제대로 펼쳐지는가 싶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소풍을 떠나던 버스가 사고로 구르면서 ‘병원선’ 사람들의 응급 처치 상황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긴박한 상황은 의외로 빨리 정리됐다. 버스 안에 남아 있던 한 아이를 구조하러 들어간 곽현(강민혁)이 송은재(하지원)의 도움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기도 삽관에 성공하는 장면이 흘러나왔지만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마침 현의 생일을 맞아 두 사람은 아름다운 섬의 정원을 돌며 조금씩 마음을 열고, 급기야 곽현은 송은재에게 입을 맞춘다.

물론 의학드라마가 오로지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만을 담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르적 특성을 살려 주된 사건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남녀의 멜로로만 한 회가 거의 채워지는 건 장르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 시청자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특히 ‘병원선’이라는 지금껏 의학드라마가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독특한 소재를 다루면서 좀 더 그 특수한 상황에 천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병원선>이지만 러브보트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병원선>이 아쉬운 건 어디선가 봤던 상황들이 자주 클리셰로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송은재의 상황은 이미 <낭만닥터 김사부>의 윤서정(서현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밀려나 오지로 가게 된 의사가 결국 그 곳에서 진정한 의사의 길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캐릭터가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전편에 깔려 있는 서울의 병원과 시골 오지의 병원 사이에 만들어지는 대결구도도 그렇다. 그것이 제아무리 지금 우리네 의료의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는 이미 너무 시청자들에게 익숙하다. 

<병원선>이 그 제목처럼 달리 보였던 건 초반 배 위에서 벌어진 몇몇 수술 장면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바다 위를 떠다니며 의료 사각지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내는 그 소재에 비해 특이점들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는 키스와 같은 멜로의 급 전개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곽현의 약혼녀로 소개하는 영은(왕지원)의 등장은 그나마 남았던 기대감마저 빼버린다. 

멜로를 하려면 차라리 그냥 제대로 멜로장르로 정면승부를 하는 편이 낫다. 굳이 ‘병원선’이라는 특이한 배 위에까지 올라가서 멜로를 할 필요가 있을까. 과거에도 의사 가운 입고 멜로 한다며 ‘무늬만 의학드라마’라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지만, 요즘은 더더욱 통하지 않는 게 바로 이 기승전멜로다. 시청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무도-어느 멋진 날’, 재미와 감동에 배려까지 모두 잡은 콩트 콘셉트

초등학생이 단 한 명인 초등학교. 주민 대부분이 어르신들인 섬, 녹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이 섬을 배경으로 한 특집을 한다는 사실은 섣부르게도 그 감동적인 풍경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1박2일>이나 <무한도전>이 찾아와주면 소원이 없겠다던 한 할머니는 이제 죽어도 원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생이 달랑 한 명이고 주민 대부분이 어르신들인 그 섬은 많은 이들이 떠나는 섬이고 외지인의 방문도 별로 없는 곳이 아닌가. 그 곳에서 <무한도전>이 ‘어느 멋진 날’을 보내겠다는 그 선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일 수밖에.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실제로 녹도의 유일한 초등학생 찬희와 껌딱지처럼 그와 붙어 다니는 여동생 채희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었고 한 편으로는 가슴 찡하게 했다. 오빠가 하는 걸 똑같이 따라하는 동생. 또래 친구가 오빠밖에 없어 어디든 따라다니는 동생의 모습은 한없이 귀여우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게 느껴지게 했다. 

특히 우편배달부가 되어 편지를 전하는 양세형이 육지에서 섬으로 전해진 딸의 편지를 어르신에게 읽어주는 대목은 먹먹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한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오셨고 또 자식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홀로 섬에서 지내시는 어르신. 물론 자신은 그 곳에서 이웃들과 언니 동생 하며 살아가는 그 삶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하시지만, 그런 말에서조차 자식들을 위한 배려가 묻어난다. 

그런데 이 녹도를 배경으로 한 특집을 <무한도전>이 ‘어느 멋진 날’이라는 콩트 콘셉트로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사실 감동을 전하기 위해서였다면 ‘방문자’의 입장에서 녹도 주민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그들의 사연을 들려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무한도전>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대신 콩트 콘셉트로 애초부터 녹도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로 <무한도전> 멤버들과 게스트로 찾은 서현진이 일종의 역할극을 했던 것. 바로 이 지점은 이 특집이 녹도 주민들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장치가 되어 주었다. 그들의 삶을 그저 바라보며 눈물을 뽑아내기보다는 그 삶 속에 살아가는 일원으로 좀 더 담담하게 그 따뜻한 녹도에서의 하루를 전할 수 있었던 것. 

유재석과 서현진이 찬희와 채희의 선생님으로 ‘산중호걸’을 안무와 함께 부르고, 정준하가 <윤식당>을 그대로 패러디해 ‘전식당’을 차려 마을 어르신들에게 파전과 김치전을 내놓으며 수다를 떨고, 박명수가 간호사로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해 일종의 ‘웃음치료’를 선보이며, 양세형이 우편배달부로 어르신들에게 뭍에서 온 편지를 전하는 그 장면들이 훨씬 명랑해질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콩트 콘셉트 덕분이었다.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예능이 감동을 전할 때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집을 지어 주거나 선물을 주면서 그 반응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공익적인 느낌을 주는 예능을 할 때 너무 관찰자의 시점으로 접근하면 자칫 대상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멋진 날’의 콩트 설정은 그런 점에서 보면 배려가 돋보인 선택이었다. 외부자의 시선이 아닌 동문의 시선으로 녹도의 삶을 전할 수 있었다는 그 지점이 이 특집의 웃음과 감동을 더 깊게 해주었다.

<낭만닥터>, 이것이 진정한 엔딩의 정석

 

본래 20부작이지만 충분히 연장도 고려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시청률이 30%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었고 실제로 지금 같은 흐름으로 몇 회만 더해져도 그 수치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연장방송은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답답한 고구마 현실에 한 사발 사이다 같은 드라마였으니.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하지만 <낭만닥터 김사부>는 연장방송을 선택하지 않았다. 제 아무리 안팎으로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제대로 준비해놓은 밥상이 20부작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을 하려면 20부작에 맞춰진 꽉 짜인 밥상의 요리들을 흩트리거나 빼서 다음 밥상에 올리는 식이 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연장방송된 드라마들이 그러한 것처럼.

 

하지만 그렇다고 시청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낭만닥터 김사부>는 연장이 아닌 번외편을 선택했다. 기존에 준비한 이야기들을 마무리 짓는 대신 일종의 팬서비스 차원에서의 커튼 콜을 선택한 것. <낭만닥터 김사부>의 메인 스토리인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의 대결구도는 그래서 김사부(한석규)가 이끄는 돌담병원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고, 번외편에서는 김사부의 옛사랑인 이영조(김혜수)와의 이야기가 짧은 단편처럼 방영되었다.

 

그런데 그 커튼 콜이 본방만큼 짜임새가 있었다. 사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워낙 시국을 정조준한 김사부의 일갈에 시청자들이 목말라했기 때문에 본래 병원 이야기의 한 축으로 구성되어 있던 멜로 부분은 상당부분 그 분량이 적어졌다. 이야기는 그래서 김사부가 거대권력과 싸워나가는 쪽에 무게중심이 세워졌다. 강동주(유연석)는 그래도 이 싸움 속에서 도윤완(최진호)이 과거사를 끄집어내오는 과정을 통해 훨씬 더 많이 다뤄졌지만, 윤서정(서현진)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진 건 이런 멜로 부분이 뒤로 갈수록 많이 다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외편은 이런 갈증을 제대로 채워주었다. 김사부와 이영조의 현재로 이어지는 옛사랑 이야기와 동시에 강동주와 윤서정의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병치되면서 묘한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과거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각자 의사의 길을 걸어가다 헤어지게 된 두 사람이 다시 돌담병원에서 재회하고 그 때를 회고하는 이야기는, 강동주와 윤서정 사이의 사랑과 평행이론을 이루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과거 그들과는 달리 이들은 현재의 사랑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어찌 보면 정의와 진실 같은 거대담론의 이야기들로 달려온 <낭만닥터 김사부>가 이제 개개인들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번외편을 통해 들려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짧은 분량이고 말 그대로 본편이 아닌 번외의 이야기지만 본편의 스토리와 잘 연계되어 있었고, 또한 그 와중에도 에이즈 환자와 총상 환자 수술 장면 같은 <낭만닥터 김사부> 특유의 긴박감 넘치는 의학드라마의 색깔 역시 빼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짧게 등장했지만 본편부터 쭉 함께 해온 듯 자연스럽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사한 김혜수의 출연은 번외편의 신의 한수가 아니었나 싶다. 그녀의 출연과 그녀가 오랜만에 다시 한석규와 호흡을 맞춘다는 소식 역시 시청자들의 기대를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보통 잘 되면 연장방송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잘 되던 작품을 망치는 길이기도 하다. 분량을 늘리면 드라마의 극적 흐름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작품의 긴장감도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낭만닥터 김사부>가 보여준 번외편은 드라마가 연장방송을 고민할 때 작품의 완성도도 지키고 시청자들의 요구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안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보다 좋은 엔딩을 꿈꾼다면 <낭만닥터 김사부>처럼.

현 시국을 예감한 듯, <낭만닥터>가 정조준한 것들

 

참 이상하죠? 우리 모두가 도윤완이 틀렸다는 걸 아는데, 지금 누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다 아는데, 왜 그는 지금도 저 자리에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걸까요?”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돌담병원의 여원장(김홍파)이 툭 던지는 이 말 한 마디는 의외로 현 시국과 중첩되면서 묘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가끔 이런 대사를 누군가의 캐릭터를 통해 던질 때마다 문득 문득 놀라게 된다. 이 드라마는 현 시국을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돈이 실력이고 부자 엄마가 스펙이고 다 좋은데, 그래도 최소한 양심이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니?” 6중 추돌 사고 에피소드에서 사고를 내고도 부모가 권력자라고 그 치마폭에 숨는 2세에게 윤서정(서현진)이 던지는 이 일갈은 또 어떤가. 현 시국에서 누군가 SNS에 올렸다는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던 그 기가 막힌 문구가 떠오르지 않는가.

 

병사’. 군대에서 구타가 의심되는 환자의 사망진단서에 병사라 적어놓고 주치의인 강동주(유연석)에게 사인을 하라고 내미는 도윤완(최진호) 원장의 그 장면에서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최근 물대포에 맞아 안타깝게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기막힌 사망진단서가 떠오르지 않던가.

 

우리 모두가 이렇게 명명백백하게 잘못된 것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저들은 지금도 저 자리에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걸까. 여원장의 토로는 마치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현실을 두고 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어째서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야기들은 그저 드라마가 아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정조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걸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현실이 믿기 힘들 정도로 드라마 같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낭만닥터 김사부>가 애초부터 우리 사회가 가진 부조리한 점들을 조목조목 담아내려 작정을 했었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시국은 사실상 우리 사회가 가진 부조리의 총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낭만닥터 김사부>가 정조준한 것들의 과녁이 되고 있다.

 

어떻게든 권력으로라도 몰아붙여 김사부(한석규)와 돌담병원을 무너뜨리려는 도윤완 원장의 기도는 신회장(주현)이 깨어남으로 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상황을 뒤집기 위해 도윤완 원장은 이제 김사부와 강동주를 이간질하기 시작한다. 강동주 부친의 사망과 김사부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것.

 

이것 역시 탄핵의 사유가 명명백백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거짓 진술과 말 바꾸기로 시간 끌기를 기도하며 마지막까지 상황을 뒤집으려 하는 현 정권을 고스란히 닮았다. 극한으로 몰리자 병원폐쇄를 기도하는 도윤완 원장 같은 이들에게 애초부터 환자나 생명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다. 다만 권력을 유지하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일 뿐. 도의나 명분이 없는 그들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물불 안 가리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를 지키는 것.

 

하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일까. 배를 띄우는 것도 가라앉히는 것도 결국은 물이다. 환자나 진정한 의사가 없는 병원이 있을 수 없고 국민 없는 권력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를 통해 조금은 낭만적이지만 뒤틀어진 현실에 대해 거침없는 일침을 날리는 김사부에게 지지하는 마음을 갖는 건 그래서다. 한 환자의 부름에 의해 지어진 그의 이름처럼, 그는 우리 시대의 사부 역할을 하고 있다.

 

참 이상하죠? 우리 모두가 도윤완이 틀렸다는 걸 아는데, 지금 누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다 아는데, 왜 그는 지금도 저 자리에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걸까요?” 여원장의 질문 속에 답이 있다. 이미 우리는 그들이 틀렸다는 걸 알고 있고 또 잘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점점 많은 이들이 그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인해 배를 띄우던 물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또 현 시국이 어떤 결말을 낼 것인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낭만닥터>, 갈수록 팽팽해지는 까닭

 

갈수록 더 팽팽해진다. 많은 드라마들이 초반에 팽팽한 긴박감을 유지하다가 중반을 넘기면서 흐지부지되고 결국 용두사미라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이걸 가장 잘 말해주는 건 시청률 곡선이다. 첫 회 9.5%(닐슨 코리아)에 시작했지만 8회 만에 20%를 넘겼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더니 17회에서는 25.1%를 기록했다. 이제 남은 건 20회까지 3회 분. 어쩌면 미니시리즈에서는 기록하기 힘들다는 30% 시청률 돌파도 그리 불가능한 수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야기 구조는 매 회 하나의 에피소드로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전체 이야기가 점층적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런 점은 특별히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지 않은 시청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그저 한 편의 이야기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완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동시에 이를 계속 본방사수해온 시청자들 역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갈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성을 갖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강동주(유연석). 아버지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죽게 되자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냈던 소년 강동주를 떠올려보라. 그는 어떻게든 성공해서 힘 있는 자가 되어야 복수도 할 수 있다고 여기며 의사가 된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강동주는 그 때의 강동주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성장해 있다. 김사부(한석규)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환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생명에는 귀천이 없다는 생각에까지도 이르고 있다. 신 회장(주현) 수술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있었지만, 당장 수술이 위급한 환자를 외면하지 않고 김사부 모르게 수술을 시행한 그가 아닌가. 그에게 김사부가 잘 했다고 칭찬을 해주자 깜짝 놀라는 강동주는 스스로도 자신이 그렇게 변화했다는 걸 잘 모르는 눈치다.

 

강동주의 성장담과 함께 그가 첫 회부터 연정의 마음을 드러냈던 윤서정(서현진)과의 사랑이야기 역시 조금씩 무르익어갔다. 물론 드라마에서 이 멜로 부분은 다른 극적 상황들의 이야기에 비해 그리 강조된 건 아니었다. 그저 드라마를 보는 또 한 축의 재미로서 달달한 그들의 멜로가 조금씩 깊어가는 걸 보여줬을 뿐. 하지만 이 역시 드라마를 애청해온 시청자들이라면 계속 몰입해서 보게 되는 유인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갈수록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중요한 에피소드는 역시 김사부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과거 어떤 의료사고가 벌어졌고 거기서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변방으로 쫓겨나야 했던 김사부의 과거. 17회에 이르러 기자가 등장하고, 드디어 그 김사부의 과거 이야기가 본격화되며 그 진실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면서 시청률이 폭발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지금 같은 시국에 특히 진실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부용주라는 이름을 버리고 김사부로 살아가는 그 캐릭터는 애초부터 진실의 문제를 화두로 담고 있는 인물이었다. 진실이 무엇이냐고 추궁하는 기자에게 오히려 진실을 알면 세상에 전할 용기는 있냐?”고 되묻는 김사부의 일갈은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걸 제대로 전하고 그 진실에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준다.

 

매 회가 완결성 있는 이야기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주고, 그 회의 연결이 인물들의 성장드라마와 멜로, 그리고 진실에 접근해가는 점층적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건 <낭만닥터 김사부>가 후반부로 갈수록 더 힘을 내는 이유다. 물론 30% 시청률이 결코 쉬운 수치는 아니지만 어쩌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다

<낭만닥터>도 피해가지 않는 멜로의 족쇄

 

사랑해요.”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강동주(유연석)가 윤서정(서현진)에게 불쑥 그렇게 말하자 윤서정은 오글거림을 못 참겠다는 듯 그러지 마라하고 정색한다. 타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공과 사는 구분하자는 윤서정. 그래서 병원사람들이 눈치를 챈 것 같다며 두 사람은 짐짓 대판 싸우는 모습을 가짜로 연출하기도 한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물론 드라마 첫 회부터 강동주의 마음이 윤서정에게 있었다는 건 다소 급작스럽게 키스를 하는 장면으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그러니 이런 달달한 상황이 언젠가 시작될 거라는 건 시청자들도 알고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달달해진 <낭만닥터 김사부>에 남는 아쉬움은 뭘까.

 

그건 아무래도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사회성 같은 것들이 이 달달한 멜로에 의해 희석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제목이 지시하고 있듯이 김사부(한석규)라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의사의 다소 낭만적이지만 지금의 현실이 귀기울여야할 이야기들을 그 기획의 의도로 갖고 있다. 그간 김사부가 던진 한 마디 한 마디가 답답한 현실에 대한 속 시원한 일갈이었으니.

 

<낭만닥터 김사부>는 돌담병원이라는 현실의 축소판 같은 공간을 통해 기득권 세력들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고발하기도 하고, 갑작스레 벌어진 위기 상황을 통해 제대로 된 콘트롤 타워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사람의 생명이라는 걸 거듭 강조했다. 요즘 같은 답답한 시국에 이런 이야기들은 그 울림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낭만닥터 김사부>도 역시 남녀 주인공의 멜로는 피해갈 수 없는가 보다. 그것이 이야기상 개연성이 없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이 멜로보다는 좀 더 사회성 짙은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펼쳐나가기를 바라는 건 왜일까. 사적인 멜로가 주는 달달함이 지독한 현실을 접하고 있는 작금의 시청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강동주와 윤서정의 달달한 멜로 전개가 펼쳐지면서 이야기는 느슨해졌다. 긴박하게 굴러가던 돌담병원의 응급실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물론 강동주와 도인범(양세종)이 수술 과정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보다 강동주와 윤서정의 멜로 상황과 그걸 눈치 채고는 눈을 찡긋 해주는 오명심(진경)이나 기묘한 눈빛을 던지는 장기태(임원희)의 다소 코믹스런 장면들이 더 많이 채워졌다.

 

이렇게 되면서 바로 드러나는 건 김사부의 분량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김사부는 신회장(주현)이 폐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심장수술을 접으려고 하고 그러다 결국 신회장 스스로가 수술 강행을 결정함으로써 상황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다. 강동주와 윤서정 멜로의 급 전개는 김사부를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게 했다.

 

물론 이건 잠시 쉬어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몰아치며 긴박감 넘치는 사건들을 통해 통쾌한 김사부의 일침을 봐왔던 시청자들로서는 너무 느슨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멜로는 당연히 존재하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이 드라마가 지향하려는 방향성을 매회 잊지 않고 밀고 나가는 힘이 중요하다. 드라마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과 조금은 쉬어가는 달달한 멜로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낭만닥터>, 위기가 보여주는 그 사람의 진가

 

메르스. 우리에게는 공포의 한 자락으로 남아있는 단어다. 바깥출입 자체를 꺼리게 만들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게 만들었던 중동 호흡기 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이라 불리는 감염증. 하지만 질환 그 자체보다 더 공포스러웠던 건 이런 위급상황에 드러난 콘트롤 타워의 부재가 아니었던가.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왜 하필 메르스 사태를 다시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인 걸까.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응급실에 갑자기 몰려든 환자들과 그들이 보이는 비슷한 증상들. 메르스 증상이 의심된다는 판단을 한 강동주(유연석)는 응급실을 폐쇄 격리조치하고 자신은 남아 간호사들과 환자들을 돌본다. 격리된 환자와 가족들 중에는 그 곳을 벗어나려 난동을 피우는 이들도 있지만 강동주는 이를 통제한다. 물론 힘겨운 상황이지만 적어도 이 응급실에서 강동주라는 콘트롤 타워는 제 할 일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본인도 감염 증상을 보이며 쓰러지지만.

 

김사부(한석규)가 질병관리본부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그 곳은 이 돌담병원의 위급한 상황과는 너무나 다른 한가한 대처를 보인다. “중앙 콘트롤 타워가 왜 이리 말을 못 알아 처먹어!” 김사부의 이 일갈은 아마도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갖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게다. 아니 그건 메르스 사태만이 아니다. 지금 현재 전국적인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AI사태에 대한 늑장대응으로 2천만 마리에 육박하는 살처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 아닌가.

 

위기는 그 사람의 진가를 드러내준다고 했던가. 메르스로 의심되는 환자들이 응급실에 격리되면서 이 돌담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응급실 안에서 메르스 의심 환자들을 돌보다 쓰러지는 강동주 같은 의사가 있는 반면, 마치 도망치듯 시간 됐으니 퇴근하겠다며 의사도 사람이라고 변명하는 송현철(장혁진) 같은 의사 같지 않은 의사도 있다.

 

결국 격리된 응급실에서 쓰러져 버린 강동주를 보고는 그 곳으로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김사부에게 응급의학이 전문인 윤서정(서현진)은 자신이 적임자임을 밝힌다. 자신이 들어가겠다는 것. 신회장(주현)의 중요한 수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녀는 그것보다 더 위중한 상황이 저 응급실 안에 벌어지고 있다는 걸 외면하지 않는다. “환자는 먼저 온 순서가 아니라 위급한 순서부터 보는 것이라는 김사부의 말처럼 의사라면 응당 해야할 선택.

 

하지만 위급한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이들도 있다. 일부러 강동주가 응급실에서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리고는 신회장 수술의 퍼스트를 챙기려는 도인범(양세종)이 그렇다. 그는 강동주에게 마음이 있는 윤서정이 응급실로 들어갈 것을 알고는 그리 말하고 결국 모든 인수인계를 한 윤서정이 응급실로 가자 득의만만한 얼굴로 신회장의 병실에 들어선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이 자그마한 돌담병원을 무대로 다시금 메르스 사태를 재연하며 보여주려 한 것은 바로 이 위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들을 하고 또 그것들이 그 위기를 어떻게 만들며, 결국 그 위기를 진정시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어쩌면 그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다 스러져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있으나 마나한, 김사부 말대로 말을 못 알아 처먹는(어쩌면 아예 듣지 않는)” 중앙 콘트롤 타워와는 다른 선택을 했던.

<낭만닥터>, 의사의 윤리를 묻다

 

병사.’ 사망진단서에 적혀 있는 이 글자가 예사롭지 않다. 군대 내에서의 구타가 의심되는 환자임에 분명하지만 거대병원 원장인 도윤완(최진호)은 주치의인 강동주(유연석)에게 병사라 적힌 사망진단서를 내밀었다. 그 사망진단서 맨 밑에는 강동주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거기에 사인만 하면 환자는 병사로 처리되어버린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물론 이런 양심 없는 행위에는 도윤완 원장이 말하는 보상이 따른다. 병원 내에서의 지위나 지원금 같은 것들. 의사로서의 성공을 목표로 갖고 있던 강동주는 흔들린다. 물론 돌담병원으로 오게 되면서 김사부(한석규)를 만나고 진정한 의사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지만 돈과 권력 앞에 그는 여전히 갈등한다.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는 의사의 양심과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 그토록 많은 의문사가 말 그대로 의문사가 되는 건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의혹을 남길 때다. 모든 죽음 앞에는 의사가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그 죽음의 사인은 의사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릴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이런 조작된 사망진단서에 대한 이야기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벌어졌던 백남기 농민의 사망에 대해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가 내놓은 병사라는 사망진단에 의혹이 제기되고 학생과 노조가 나서 해임을 촉구하고 있는 사안이 그렇다. 의사는 이처럼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선택을 해야 될 입장에 놓인다.

 

하지만 한 생명 앞에서 종종 그 선택은 윤리가 아닌 돈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음주운전으로 6중 추돌사고를 낸 가해자의 부모가 오히려 사전 동의를 받지 않고 아들의 채혈을 했다는 이유로 윤서정(서현진)을 고소하겠다고 나서는 뻔뻔한 상황. 알고 보니 그 가해자는 강원도 도지사의 최측근이자 도의원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아픈 상처라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건 그들이 그 진상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돈과 법은 심지어 그들이 저지른 일조차 가리는 마법을 발휘한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지만 <낭만닥터 김사부>는 역시 낭만적인이야기를 보여준다. 가해자가 자신으로 인해 다리를 잃게 된 피해자와 가족들을 보고는 그들 앞에 나서 사과하는 것.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래서 현실에서 벌어지는 갑질 행태에 대한 사이다 일침을 담는다. “똑바로 쳐다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똑바로 알아야 반성도 할 거 아니야. 돈이 실력이고 부자 엄마가 스펙이고 다 좋은데, 그래도 최소한 양심이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니.” 윤서정의 이 대사는 드라마 속에서만 울리는 목소리가 아니다. 드라마 바깥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갑질과 그를 통한 진실 은폐로 또 한 번의 죽음을 안기는 가해자들에 대한 날선 비판이다. 외인에 의한 사망이 분명하지만 병사라고 기록하고 사인했던 어떤 이들의 비양심에 대한.

<낭만닥터>의 낭만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들

 

도로 위로 사고가 난 자동차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 사고 현장에는 차에 끼인 사람, 차가 뒤집혀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사람, 차에 튕겨져 나가 다리를 다친 사람, 충격으로 내상을 입은 아이 등등.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한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의사들, 강동주(유연석)와 윤서정(서현진) 그리고 도인범(양세종)이 응급조치를 하고 급한 환자부터 돌담병원으로 이송한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돌담병원의 콘트롤 타워는 다름 아닌 김사부(한석규). 본원에서 내려온 감사팀에 의해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김사부지만 그는 쏟아져 들어오는 환자와 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위험한 환자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그럼에도 감사팀에서 파견 온 직원은 규정을 내세우며 김사부를 가로막는다. 마침 그 사고현장에서 그 감사팀 직원의 딸이 위급한 상황으로 실려 오지만 그 앞에서도 그는 바보처럼 규정만을 얘기한다. 김사부는 결국 자신의 룰을 이야기한다. 그 병원에서의 룰이란 반드시 살린다라고.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 도로 위 연쇄교통사고와 이에 대처하는 김사부의 이야기에서 어떤 뭉클함을 느꼈다면 그건 우리가 이미 이런 일들을 겪었지만 그 속에서 김사부 같은 리더십을 보지 못했다는 회한 때문일 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위중한 상황, 김사부의 선택은 즉각적이고도 명쾌했다. 자신은 의사이고 그러니 사람을 살리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걸 명확히 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라고? 글쎄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이런 이야기가 당연한 것이 되지 않았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환자를 끝까지 살리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한 윤서정은 과잉진료혐의로 감사팀의 조사를 받았고, 심지어 과거의 사고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받았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감사팀이 김사부의 의료 행위 자체를 막아버린 건 그를 제거하려는 거대병원 도윤완(최진호) 원장의 지시 때문이다. 정략적으로 움직이는 도윤완의 행태 앞에서 김사부의 선택은 그래도 결국 환자의 생명이었다.

 

돌담병원이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의 축소판이라면 그 병원을 좌지우지하려는 도윤완 원장 같은 인물들이 그 피폐한 현실을 만들어내는 장본인이다. 돈이 없어 심지어 치료를 포기하는 서민들을 바로 돈이 없기 때문에 규정을 내세워 밖으로 내모는 인물. 그래서 병원이 본래 목적인 사람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돈을 버는 곳이라는 걸 공공연히 내세우는 그런 인물이 도윤완이다.

 

그 속에서 뜻있는 의사 김사부 같은 리더의 일갈은 그래서 그저 드라마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우리네 마음을 건드린다. 결국 딸을 살려낸 김사부에게 감사팀 직원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딸을 치료해줬는지 원하는 게 뭔지를 묻는다. 그에게 김사부는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살려는 건 좋은데 못나게 살진 맙시다. 무엇 때문에 사는지는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 결국 가장 소중한 건 생명이고 사람이다. 그런데 열심히 산다는 이유로, 또 성공하겠다는 이유로 그 본질을 잃어버리는 순간 못난 삶이 되어버린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왜 낭만적인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이토록 시청자들의 마음을 휘어잡는가는 이 우화 같은 드라마가 환기시키는 리더십 부재의 현실이 이 이야기에 대한 판타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 우리를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리더가 있는가. 아니 최소한 콘트롤 타워는 존재하는가. <낭만닥터 김사부>의 진중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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