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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MBC 드라마, 두 여왕(?)의 성공과 주목할 실험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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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사진출처:MBC)

2009년 MBC 드라마는 대중적인 성공으로만 보면 두 여왕(?)이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상반기 3월부터 5월까지 방영된 ‘내조의 여왕’과 5월부터 12월까지 방영된 ‘선덕여왕’이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성공한 두 여왕(?)의 성격이 상반된다는 점이다. 하나는 현대극이고 다른 하나는 사극이며, 하나는 소소한 기획물이며 다른 하나는 야심찬 대작이었다는 점이다. 성공 포인트 또한 사뭇 다르다. ‘내조의 여왕’이 현실에 대한 철저한 공감을 그 포인트로 하고 있다면, ‘선덕여왕’은 물론 현실을 담고 있지만 사극이 갖는 성공 판타지를 중심으로 삼고 있다.

두 여왕은 성격 또한 다르다. ‘내조의 여왕’의 천지애(김남주)는 맹렬 여성이지만 그 활동은 결국 남편 뒷바라지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현모양처로서 가지는 최고의 위치, 즉 남편을 성공시키는 것이 그녀가 꿈꾸는 최상의 목표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왕비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왕이 되려는 목표를 세운다. 그것은 여왕이 된 덕만(이요원)은 물론이고, 좌절된 꿈이었지만 여왕을 꿈꾼 미실(고현정)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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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사진출처:MBC)

‘내조의 여왕’이 우리와 공감한 것은 학연 지연 혈연 같은 줄로 연결된 사회가 가진 벽 같은 절망감이고, 그 사회 속으로 편입되지 못한 자들의 절규였다. 반면 ‘선덕여왕’은 여성적 카리스마를 내세워 현 여성성의 사회가 꿈꾸는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줌으로써 여성들은 물론이고 남성들까지 지지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두 편이 모두 ‘여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드라마가 이제 주시청층인 중년 여성층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남성적인 이야기들이 대중적으로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이러한 작금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2009 외인구단’은 그 시대착오적 시각이 가진 거부감을 극복해내지 못했다. 한편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참신한 실험성과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의 결과에 머물렀다. 결국 완성도만큼 중요해진 것이 드라마 주 시청층의 취향이라는 것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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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사진출처:MBC)

또한 실험성이 돋보인 상대적으로 젊은 드라마들 역시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탐나는도다’는 17세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만화적인 설정과 이야기로 사극적인 친숙함이 아니라 실험적인 현대극이 갖는 낯설음을 그려낸 문제작이지만 편성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드라마가 되었다. 이것은 ‘돌아온 일지매’나 ‘혼’ 같은 파격적인 드라마 실험을 한 작품들과도 결을 같이 한다. 만화적 상상력이 실험적으로 가미된 이들 작품들의 미완의 성공은, 아직까지는 이런 실험이 드라마의 주시청층들에게는 낯선 체험이라는 것을 잘 말해준다.

올 한 해 MBC는 드라마에서 다양한 실험들을 했다고 보여지지만 성공은 두 여왕을 빼놓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편중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불황이라는 시대적 정서, 드라마 주 시청층으로 자리한 중장년 여성들, 그리고 여성성을 강조하는 사회로의 변화 등이 만들어낸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9년 MBC 드라마에서 두 여왕의 성공이 햇볕이었다면, 거꾸로 남성드라마들의 실패, 그리고 실험작들의 미완의 성공은 그 그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빛과 그림자는 언제든 그 상황이 바뀔 수 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올 한 해는 ‘여왕의 해’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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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극의 정점을 찍은 ‘선덕여왕’, 사극의 향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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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와 '제중원'(사진출처:KBS,SBS)

1999년 ‘허준’에서 비롯된 사극의 퓨전화는 2003년 여성사극 ‘대장금’을 통해 그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여성사극의 등장과 성공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적인 사극의 시청층이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버렸고, 여성들이 즐기는 사극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또한 선 굵은 남성사극들(주로 전쟁사극이나 정치사극)과 달리, 섬세함이 주 무기가 되면서 여성 사극 작가들의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대장금’, ‘선덕여왕’의 김영현 작가가 대표적이고,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대왕세종’의 윤선주 작가, ‘이산’, ‘동이(2010년 방영예정작)’의 김이영 작가 등이 모두 여성 사극 작가들이다.

여성들이 그리는 여성 사극은 당연히 여성성을 담아낸다.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고, 남성이 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그 남성 속에는 여전히 여성성이 들어가 있다. 사극은 인물의 심리나 사건 전개가 보다 디테일해졌고, 감성 또한 풍부해졌다. 일련의 여성사극들은 과거에는 다루지 않았던 역사의 뒤안길에 서있는 여성들을 역사로 끌어냈다. ‘대장금’이 그랬고, ‘황진이’가 그랬으며, ‘이산’(이 작품은 정조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모습과 성송연이라는 여성이 역사 위로 올라왔다)이 그랬다. 이러한 여성 사극 속의 인물들이 성장드라마를 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억압받는 존재가 여성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성장은 여성이라는 한계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지만.

하지만 2009년 여성사극들은 이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했다. ‘천추태후’나 ‘선덕여왕’처럼 여성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남성들을 거느리는 여성 카리스마의 등장은 그간 여성사극들이 보여준 일련의 자신감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곳까지 올라간’ 이 여성들의 영웅담을 담은 작품들이 여성 사극의 정점이라는 야심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천추태후’와 ‘선덕여왕’은 결이 달랐다. ‘천추태후’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웠지만 남성적 세계를 반복한 ‘무늬만 여성사극’의 한계를 드러냈다면, ‘선덕여왕’은 여성적 카리스마가 무엇인가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여성 사극의 정점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이 때론 대결하고 때론 토론하면서 보여준 여성적 카리스마의 세계는 여성들은 물론이고 남성들까지 매료시켰다. 여성성의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는(혹은 여성성의 사회로 바뀌어가야 되는) 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성별을 넘어서 이 사극이 보여주는 여성적 카리스마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실의 억압적이면서도 적까지 끌어안을 줄 아는 포용력은, 남성적 사회의 잔재와 여성적 세계관이 공존하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사람들을 꿈꾸게 하고 때론 모성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덕만의 모습은 온전한 여성적 카리스마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덕만이 그 여성적 카리스마로 여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우리네 여성 사극 역시 어떤 정점에 오른 것이 분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여성사극이 일궈온 일련의 성장곡선이 여성사극 속에서 여성 주인공이 거치는 성장과정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여성사극에서 주인공의 성장이 어떤 정점에 올라갈 때, 그 사극은 오히려 위기를 맞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부터 내리막길을 밟았다는 것은, 이제 정점에 서게 된 여성사극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어쩌면 성별은 무의미해졌고, 오히려 여성사극이 가진 일련의 장점들, 예를 들면 성장드라마나 섬세한 심리묘사, 혹은 입체적인 캐릭터 같은 요소들이 오히려 여성적인 강박을 버리는 지점에서 새로운 사극의 진화가 시작될 거라는 점이다. 여성들만큼 남성들도 섬세하게 그려질 것이고, 왕에서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인물들이 신분적 위계에 갇히던 과거와는 달리, 동등한 눈높이에서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

퓨전사극으로 역사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버리고, 여성사극으로 신분과 성별이 가진 한계를 넘어버린 사극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다시 서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스타일을 입은 장르화의 길이 되기도 하고(‘추노’가 대표적일 것이다), 아직까지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중세와 근대가 섞여진 시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되기도 하며(‘제중원’), 여전히 여성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여성의 성장 드라마(‘동이’)가 되기도 한다. 2009년 ‘선덕여왕’이 여성사극의 정점을 찍음으로써, 2010년의 사극은 좀 더 다양한 실험의 장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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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터앤미디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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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것은 여성사극이 일궈온 일련의 성장곡선이 여성사극 속에서 여성 주인공이 거치는 성장과정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여성사극에서 주인공의 성장이 어떤 정점에 올라갈 때, 그 사극은 오히려 위기를 맞게 되는 경우가 많다.

    2009/12/24 11:30

'선덕여왕', 결국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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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사진출처:MBC)

지난 5월 봄에 시작한 '선덕여왕'은 12월 겨울에 끝이 났다. 마지막에서 덕만(이요원)이 "스산하다"고 말하고 유신(엄태웅)이 "곧 봄이 올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장면은 마치 이 '선덕여왕'의 처음과 끝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만 같다. 죽기 직전 덕만은 어린 시절 꾸었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꿈속에서 어린 덕만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던 여인. 덕만은 죽음 앞에서 바로 그녀가 성장한 덕만이었다고 생각한다. 성장한 덕만은 어린 덕만에게 앞으로 있을 시련에 대해 이야기 한다.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지만 사실 가진 건 없을 거야."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그래도 "견뎌 내"라는 것이었다.

이 엔딩 장면은 지금껏 봄부터 겨울까지 달려온 '선덕여왕'이 한 인물의 생에 있어서의 봄부터 겨울까지를 그려내고 있다는 걸 압축적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이야기는 꿈속으로 들어가면서 어린 덕만이 그녀의 앞에 놓여진 길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이 사극은 끝이 나지만 끝이 난 것이 아니다. 어린 덕만의 이야기로 다시 이어지면서 순환되는 것이다. 삶이란 이처럼 가진 것 같지만 가진 것 없이 사라지는 것이며, 그럼에도 견뎌 내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꿈이다. 꿈을 꾼다는 것, 그것이 있어 어린 덕만은 한 치 앞에 놓여진 시련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다시 반복된다.

'선덕여왕'은 결국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다. 미실(고현정)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서 절망적으로 그 벽을 두드리고, 그것이 오히려 희망이 되던 젊은 시절의 덕만은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그것을 현실 가능하게 만들어 놓는다. 결국 미실이 가고 여왕의 자리에 오른 덕만은 그러나 함께 꿈을 꾸었던 자들과 부딪치게 되고 그 자리가 주는 천형처럼 가까운 이들을 하나씩 잃게 된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긍정하게 된다. 봄의 희망과 여름의 열정을 거쳐 정점에 오르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씩 정리해야 하는 가을과 겨울의 조락이라는 것.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꿈으로 이어져 있어 다시 봄은 오고야 만다는 것을 이 사극은 보여주었다.

여성사극의 정점, 추리극적인 장치를 활용한 연출, 미실이라는 전무후무한 거대한 캐릭터 등등. '선덕여왕'에 대한 화려한 수사들은 많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자잘한 외관에 불과하다는 것을 '선덕여왕'의 마지막 몇몇 장면들은 말해준다. 이 사극이 보여준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꿈과 그 꿈을 향해 하나씩 달려 나가 성취했지만 결국은 다시 돌려줘야 하는 우리네 삶을 제대로 포착해내고 있다. 사극이 시간을 다룬다면 이러한 반복되는 우리네 삶에 대한 이야기는 사극이 결국에는 도달해야 할 길이 아닐까.

봄에서 겨울 사이, 이 사극 속에서 어떤 이는 대업을 꿈꾸었고 어떤 이는 작은 행복을 꿈꾸었으며 어떤 이는 권력을 탐하였고 어떤 이는 사랑을 꿈꾸었다. 시간이라는 도저한 물결 위에서 그 어느 것 하나 가질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우리는 결국 '불가능한 꿈' 속에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설레고 누구에게나 두렵고 누구에게나 아픈 이 길 위를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이 사극은 "견뎌 내"라고 말하며 어깨를 두드린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힘이 된다. 드라마가 반짝 반짝 빛나는 순간은 이처럼 삶의 한 자락을 잡아내 "삶은 다 그런 것"이라며 우리네 힘겨운 어깨를 두드려줄 때이다. 이 사극이 있어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우리는 설레는 꿈을 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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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터앤미디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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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꿈꾸게 한 사극> '선덕여왕'은 결국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다. 미실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서 절망적으로 그 벽을 두드리고, 그것이 오히려 희망이 되던 젊은 시절의 덕만은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그것을 현실 가능하게 만들어 놓는다.

    2009/12/23 12:29

연장방영이 드라마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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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사진출처:MBC)

'선덕여왕'에서 미실(고현정)이라는 존재는 절대적이다. 이 사극의 구조 자체가 미실이라는 거목을 세워두고 그것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면서, 동시에 여왕이라는 자리까지 성장해가는 덕만(이요원)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애초에 '삼한일통'을 목적으로 세워지지 않은 것이라면, 미실의 죽음과 함께(즉 덕만의 여왕즉위와 함께) 극은 끝나는 것이 정상이다. 극의 절정과 결말 사이가 길어지면 극이 흐트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의 선택은 연장방송이었다. 그리고 이 연장이 방송사에는 일정의 혜택으로 돌아간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네 사극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선덕여왕'에게는 불운이었다. 연장방송 속에서 미실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여운도 사라져갔고, 그러자 거기에 바락바락 대들면서 때론 그녀를 닮으려하고 때론 그것을 넘어서서 여왕의 자리에 오른 덕만 역시 매력을 잃게 되었다. 이것은 덕만을 도와주던 일련의 인물들, 예를 들면 유신(엄태웅)이나 비담(김남길), 춘추(유승호), 알천(이승효), 월야(주상욱) 같은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연장에 들어가면서 이 미션사극이 가진 최대의 난점은 바로 미실 같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입 꼬리만 조금 틀어도 위기상황이 연출되는 적수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즉 미션사극은 주인공을 끝없이 위기상황 속으로 밀어 넣고 그 위기를 헤쳐 나오면서 생겨나는 국면전환을 반복하면서 드라마의 추진력이 생기는 것인데, 이미 미실 같은 품격 있는(?) 위기상황을 경험해본 터라, 새롭게 제시되는 위기가 그다지 매력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비담을 그 자리에 세워 유신을 몰아내는 위기상황을 연출한 것 역시 "사랑한다면 아낌없이 빼앗으라"는 미실의 한 마디가 실어준 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유신의 위기와 백제의 침공, 염종(염효섭)의 책략으로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그 안에 소소한 수수께끼 같은 에피소드들(흑(黑)자로 시작되는 백제 스파이 에피소드나 일거에 백리를 가는 백제의 기마부대 에피소드 같은)을 집어넣지만, 그것이 극을 팽팽하게 하기보다는 어딘지 산만한 느낌을 주는 것은 미실 같은 진중하고 매력적인 위기를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미실의 빈 자리를 채우려는 강박적인 느낌마저 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이 과도해지는 것은 여전히 그 약해진 스토리의 힘을 보충할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방증인 셈이다.

당장의 위기 상황 만들기에 급급하다보니, 미실이라는 거목 아래 만들어진 여유 속에서 위기가 가진 대의나 현실풍자, 시대정신을 두고 벌이는 논쟁 같은 품격 있는 과거의 대결구도는 찾기가 어려워졌다. 드라마가 여유를 잃은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은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 같은 캐릭터들의 극의 긴장을 풀어주는 유머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의 존재 역시 팽팽한 긴장감이 먼저 전제된 후에라야 빛을 발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렇게 되자, 그 빈 자리를 차고 오는 것은 비담과 덕만이 뒤늦게 만들어가는 멜로다. 물론 이 멜로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덕만은 여왕이라는 존재로서 한 개인의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그러니 덕만에게 사랑으로서 접근하는 비담은 여왕으로서의 덕만에게는 위기상황이 아닐 수 없다. 즉 덕만의 여왕와 여인 사이에서의 갈등은 이 사극에 새로운 위기를 제공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비담이 덕만에게 밀서를 통해 순정을 보임으로써 온전히 멜로의 틀로 바뀌었다. 대신 이 사실을 안 비담의 무리들이 그를 자기 편에 세우기 위해 모함하게 되면서 위기는 덕만의 위기가 아니라 비담의 위기로 바뀌었다. 비담의 절절한 사랑이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지금껏 '선덕여왕'이 달려온 이야기 틀거리에 잘 맞는지는 의문이다. 이들의 갑작스런 멜로가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 미실 사후에 '선덕여왕'은 또 하나의 새로운 사극을 쓰고 있다. 덕만의 성장을 다루는 사극으로서의 '선덕여왕'은 미실이 죽는 지점에서 일단락되었다. 여왕이 된 후에 겪게 되는 공신들 사이의 갈등과 새로 왕이 된 자가 겪게 마련인 신하들과의 갈등,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백제와의 갈등은 또 한 편의 사극으로 만들어도 충분한 소재거리가 된다. 기계적으로 보면 미실이 죽기 전과 죽은 후의 이야기가 연결은 되지만, 안타깝게도 드라마에는 그것이 추구하는 일관된 통일성이라는 것이 있어 감성적으로는 앞과 뒤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극이 그리는 세계가 현실과 다른 점이다. 현실의 역사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흘러가지만, 사극은 그 역사의 한 단면을 하나의 이야기 맥락으로 꿰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미실 사후부터 삼한일통까지의 과정을 '선덕여왕' 시즌2로 그릴 수는 없었던 것일까. 미실의 죽음과 함께 끝났으면 하나의 신화로서 미실도 살고 덕만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이 '선덕여왕'의 연장방영이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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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담의 비는 슬플 悲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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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덕여왕, 미실의 죽음 이후부터 가장 크게 캐릭터의 변화가 오는 것은 아무래도 비담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미실이 살아있을 때만해도 나름대로 냉정하면서도 멋진 캐릭이었던 그는 미실의 죽음 이후 마마보이의 환상에 빠졌다가 이제는 순애보의 남자가 되었다가, 결국 어제의 방송에서는 위기의 남자의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정말 자유로워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처럼 보였던 그는, 이제 마치 바람앞에 촛불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비..

    2009/12/15 08:03

‘아이리스’의 이병헌, ‘선덕여왕’의 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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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한류스타들의 연이은 드라마 참패 이후, 연기자 파워는 거품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올 최고의 연기자 파워를 보여준 두 인물이 있다. 바로 ‘아이리스’의 이병헌과 ‘선덕여왕’의 고현정이다.

‘선덕여왕’의 성공은 물론 모든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지만, 그 중 미실 역할을 백 프로 이상 해낸 고현정의 힘이 컸다의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사극은 간단하게 말해, 미실이라는 권력을 세워두고, 그 권력을 빼앗아가는 덕만(이요원)의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극의 힘은 전적으로 미실에서 비롯되고 미실에 의해 추진력이 생기며, 미실의 패배로 인해 마무리된다고 볼 수 있다.

고현정은 미실을 연기하면서, 냉혹할 정도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고, 심지어 주인공의 반대편에 선 역할이면서도 주인공이 흠모할 정도의 매력을 발산했다. 덕만의 멘토 같은 역할을 해주고, 결국 덕만을 여왕의 자리까지 올려준 것은 결국 미실이었다. 그러니 그 냉철함 속에 합리적인 사고방식까지 갖추고, 때로는 여성으로서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보여주는 미실이라는 역할이 어찌 무겁지 않을까.

고현정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앉아서 세치 혀와 눈 꼬리를 올리고 입 꼬리를 꼬는 몇 가지만으로도 이 사극을 거의 장악해나갔다. 50부까지 팽팽함을 잃지 않고 사극이 흘러온 힘은 바로 이 미실과 그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의 호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미실의 죽음과 함께 그 드라마의 힘을 책임져야 하는 덕만의 모습이 정치지도자로서의 미실을 닮아간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드라마에서 미실은 사라졌지만, 그 아우라는 여전히 남은 분량 내내 극 속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아이리스’의 이병헌은 드라마 시장에 영화적 실험성을 가미한 이 한국형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다소 모험적인 세계를 대중적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냈다. 이 드라마의 소재나 스토리텔링, 그리고 연출은 결코 쉽거나 대중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의 대중적 인기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이병헌이 보여준 멜로와 액션을 넘나드는 연기에서 비롯되었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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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사진출처:MBC)

고현정이 한 자리에 앉아서 몸이 아닌 말로 칼바람 나는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였다면, 이병헌은 온 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강력한 액션을 통해 카리스마를 보여주면서도 다른 한 편 촉촉이 젖은 눈빛으로 여성 시청층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몸을 아끼지 않는 폭발적인 액션과, 그 몸이 심지어 슬프게까지 느껴지는 처연한 멜로가 아우러지자, 드라마는 끝없이 달리면서도 그 안에 감정을 포획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이병헌의 존재감이 반가운 것은 그간 우리네 드라마 속에서 점차 사라져가던 남성 카리스마의 부활을 보여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 남성 카리스마는 과거의 마초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감성적인 면이 어우러진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것은 향후 우리 드라마가 그려나갈 남성 캐릭터들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병헌이 가진 연기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병헌과 고현정. 이 두 배우가 올해 최고의 연기자 파워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요인은 뭘까. 그 핵심은 연기자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는 끝없는 새로운 연기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현정은 청순한 이미지 틀에서 벗어나 털털한 이미지를 거쳐 이제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까지 소화해내면서 명실공히 연기자로의 확고한 자리를 만들어냈고, 이병헌은 멜로에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자신만의 연기영역을 확보했다. 이것은 과거 일부 한류스타들이 이미지의 반복을 보여주던 양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즉 이제는 연기의 질만이 연기자 파워를 만들어내는 시대라는 것을 이 두 배우는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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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터앤미디어의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

    이병헌과 고현정. 이 두 배우가 올해 최고의 연기자 파워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요인은 뭘까. 그 핵심은 연기자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는 끝없는 새로운 연기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병헌과 고현정, 연기자 파워란 이런 것!>

    2009/11/30 17:35

대중은 지금 서민들의 영웅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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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의 후예'(사진출처:어나더라이프컴퍼니)와 '전우치'(사진출처:영화사집)

영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선덕여왕'은 대부분의 사극이 그러하듯이 수많은 영웅들의 탄생과 성장을 그려냈다. 그 중 덕만(이요원)과 미실(고현정)은 난무하는 칼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세 치 혀만으로도 충분한 정치적 지도력을 선보이며 여성 영웅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여성성의 시대, 이 여성 영웅들의 리더십은 꿈꾸지 않는 작금의 현실 정치가 희구하는 것으로, 대중들은 그 강력한 판타지 속으로 빠져들었다.

덕만과 미실이 그 시대의 정점에 서서 그 통치를 통해 현실을 개척해나가는 영웅이라면, '아이리스'의 현준(이병헌)은 시대가 꺾어버린 개인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래서 그것이 결국은 시대를 바꿔버리는 그런 영웅이다. 그 시대란 다름 아닌 남북분단의 상황이고, 현준은 그것을 고착화시키려는 아이리스와 홀로 대결하는 영웅이다. 남북이라는 소재 때문에 현준은 구태의연한 냉전시대의 영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리스'가 현준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남북의 대결이 아니라 집단과 개인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히어로'의 도혁(이준기)은 서민들의 영웅이다. 삼류잡지사 기자였다가 잡지가 폐간되자 전직 조폭이었던 용덕(백윤식)과 용덕일보를 창간하는 도혁이 싸우고 있는 것은 대세일보라는 거대 언론이다. 물론 도혁은 장총찬 같은 주먹도 아니고, 그렇다고 필력이 뛰어난 기자도 아니지만 그를 '영웅'이라 부르는 것은 대세일보로 상징되는 정의가 사라져버린 시대에 사라진 영웅을 거꾸로 말해준다. 도혁은 정의 하나를 쥐고 있는 인물로서 이 시대의 영웅이 된다. 현실에 존재하는 많은 대세일보 같은 언론사들의 정치적 행보들은 도혁 같은 맨주먹의 정의로운 행동을 대중들이 희구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대중들의 영웅에 대한 희구는 안방극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고전 속의 영웅을 현대로 불러들인다. 홍길동의 후손들이 살아남아 아직도 홍길동이 하던 '대도의 길'을 걷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홍길동의 후예'가 그렇고, 설화 속의 인물이 현대에 깨어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전우치'가 그렇다. 이것은 홍길동과 전우치 같은 이야기가 당대 서민들의 억압을 풀어주는 시대의 영웅으로서 탄생한 것과 맥락이 같다. 이들은 현 시대의 억압 속에 답답해하는 대중들의 마음 한 구석에서 탄생한다.

'홍길동의 후예'는 이른바 '좋은 도둑과 나쁜 도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겉으로 보기엔 착한 일을 하는 것 같은 경제인 이정민(김수로)은 사실은 대중들의 피를 빠는 이 시대의 탐관오리 즉 나쁜 도둑이고, 홍길동의 후예인 홍무혁(이범수)은 그의 금고를 털어 사회에 기증하는 좋은 도둑이다. 이 영화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 사이에서 취하고 있는 자세는 흥미롭다. 이정민은 피규어 매니아로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예를 들면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이나 재패니메이션의 로봇들을 수집하는데, 그의 캐릭터는 종종 이 슈퍼히어로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니 홍무혁이 이정민과 벌이는 대결은 한편으로 보면 이들 할리우드와 일본의 영웅들과 우리네 서민적인 영웅이 벌이는 대결로도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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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사진출처:MBC)

이러한 영웅의 서민적인 면모는 우리네 영웅상의 한 특징이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이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는 자들이라면, 우리네 서민적인 영웅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들은 지구적인 고민보다는 당장 서민들이 갖고 있는 고민들을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서민이 삭제된 정치이기도 하고(선덕여왕), 집단이 꺾어버린 개인(아이리스)이기도 하며, 정의가 사라진 사회(히어로)이기도 하고, 나쁜 도둑들이 판을 치는 세상(홍길동의 후예)이기도 하다. 이 영웅들의 서민친화적인 모습은 그 권위적인 모습을 던져버리는 것에서부터 아예 코믹한 영웅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우리네 영웅을 다루는 영화들이 대부분 액션과 함께 코미디를 장르적 특성으로 갖고 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네 영웅은 볼거리라기보다는 시대적 공감에서부터 탄생하고 있다는 징후일 것이다. 이러한 서민적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날라 다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날카롭게 숨겨진 풍자의 칼날이 이 시대의 억압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이야기 속에서 영웅들이 쏟아져 나오는 양상은 이 시대가 가진 억압들을 말해주기도 한다. 대중들은 지금 영웅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서민적인 영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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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어로, 이쯤되면 비극이다! [히어로]

    Tracked from 연어군의 파닥파닥  삭제

    - 본격적으로 펼쳐질 <히어로>의 이야기들 <히어로>가 오늘로 4회까지 방영되었는데요. 어느정도 큰 흐름들이 자리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세그룹과 용덕일보의 대립구조인데요. 이 대립구조는 룸싸롱 박사장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방송된 내용을 가지고 미루어 짐작해보면, 룸싸롱 사장이 대세그룹 최일두 회장의 아이를 가졌고, 대세그룹 회장은 아이의 출산을 반대했을 것입니다. 아이의 출산 여부를..

    2009/11/27 07:39

미실의 죽음에서 '모래시계' 태수가 떠오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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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이 아름다운 최후를 맞았다. 이제 드라마 속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인물이지만,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우리네 드라마史에 남을 족적을 남겼다. 먼저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사극 속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드라마 전체에 힘을 부여하고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힘을 지닌 캐릭터였다. '선덕여왕'의 시작이 덕만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미실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미실이라는 강력한 여성 카리스마를 세워두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서 덕만(이요원)과 유신(엄태웅), 비담(김남길), 춘추(유승호) 등의 캐릭터가 세워질 수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자결한 미실 앞에서 덕만이 하는 말, "당신이 없었다면 자신도 있을 수 없었다"는 그 말은 캐릭터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바로 덕만이 술회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미실은 단순히 악역으로 치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때론 강력한 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덕만의 멘토 역할을 해주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면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미실은 악역이라기보다는 시대를 잘못 만난 안티 히어로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상적인 덕만과 상반되게 현실 정치 감각을 가진 인물이 미실이다. 덕만이 곧잘 하는 말, "미실이 하는 방식으로 해야겠다"는 말은 이 인물이 가진 뛰어난 능력을 말해준다.

미실은 또한 여성으로서의 카리스마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캐릭터이기도 하다. 미실은 이 사극 속에서 움직임이 거의 없는 캐릭터다. 그녀는 칼을 휘두르거나 전쟁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저 한 자리에 앉아 판세를 읽고 거기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 칼의 힘보다 더 강력한 말의 힘만으로 상대방을 오금을 저리게 만들 수 있는 인물이 미실이다.

이 정적인 상태에서 온전히 카리스마를 보여야 하는 미실이라는 캐릭터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고현정이라는 연기자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틀고, 눈꼬리를 조금 올리는 것만으로 미실이 가진 힘을 온전히 표현해냈다. 즉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고현정이라는 연기자에게도 큰 의미가 되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고현정은 청순한 이미지에서 탈피해 털털한 이미지로의 변신을 꾀해왔고, 이번 작품을 통해 요염하면서도 악마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비극적인 복잡한 캐릭터를 소화함으로써 연기 스펙트럼을 더욱 넓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빛나는 캐릭터의 하차가 아쉽기 때문일까. 미실의 죽음 앞에 '선덕여왕'의 인물들은 저마다 예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5년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은 청순한 모습으로 최민수와 연기 호흡을 맞추며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고현정에서 당시 최민수가 보여주었던 카리스마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실의 최후에, 드라마史에 길이 남게 된 모래시계' 태수(최민수)의 죽음이 연상되는 것은, 미실이라는 캐릭터가 일궈낸 여성 카리스마의 절정과 그것을 연기한 고현정의 변신이 놀랍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한 시대는 흘렀고, 카리스마 역시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겨져 왔다. 미실은 바로 그 지점을 표상하듯 서 있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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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보여주는 완성도와 시청률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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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26회 만에 40%에 도달한 ‘선덕여왕’은 여러 징후들이 50%를 손쉽게 넘길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사극이라는 장르가 가진 힘과 '선덕여왕'이 소구하고 있는 3,40대 여성 시청층, 그리고 김영현, 박상연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가진 힘이 삼박자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선덕여왕’의 시청률은 40%를 넘기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뭘까.

먼저 지목되어야 할 것은 드라마가 진행과정에서 점점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선덕여왕'은 사실 그렇게 쉬운 드라마는 아니다. 전쟁 사극 같은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형적인 멜로가 낯선 이야기들 속에 감초처럼 존재하는 사극도 아니다. 초반부에 중국에서부터 신라로 넘어와 낭도로 성장하는 덕만의 이야기는 스펙터클을 보여주었지만, 덕만이 궁으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미실과 대적하는 이야기부터는 정치사극으로 넘어가면서 볼거리는 줄어들었다.

게다가 이 정치사극은 심리극에 가깝고, 그 연출 또한 추리극에 가깝다. 따라서 인물들의 대사를 듣다보면 처음 보는 이들은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추리극 같은 구조의 연출은 당장 대사를 통해 사건의 정황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궁금증을 한참 증폭시킨 후에 뒷부분에 가서 정황을 터뜨리는 것으로 드라마에 이미 몰입된 시청자들에게는 즐거움을 줄 지 모르지만, 새로 드라마를 보려는 이들에게는 장벽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마치 추리극을 중간부터 보는 것과 같다.

대결구도에 있어서도 이 드라마는 결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극이 내세우는 선악구도는 그 옳고 그름이 명백한 게 단점이자 강점이다. 너무 단순해보이지만 누구나 보면 척 알 수 있는 그 선악구도의 대결 속에서 시청자들은 쉽게 몰입될 수 있다. 하지만 '선덕여왕'의 대결구도는 옳고 그름의 차이라기보다는 사고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악 개념을 넘어서 있다.

미실은 주인공 덕만의 대립자이지만 또 한 편으로 보면 훌륭한 여성 지도자로도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덕만은 미실을 그렇게 인정하고,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를 미실에게 가져가 물어본다. 미실이 종종 덕만의 멘토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물론 미실과 덕만 두 인물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대결구도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상대방에서조차 배우려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각자 가진 사고관의 대결을 갖는 이 이야기는 물론 매력적이다. 하지만 시청률 면으로 보면 그다지 쉬운 설정은 아니다. 각각의 사고관을 이해시켜야 하며 그 사고관의 부딪침을 극적으로 만들어내고 거기서 한 인물의 승리와 성공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 수 있을까. 게다가 선악대결구도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그 대결이 갖는 의미를 읽어내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일 수 있다.

'선덕여왕'의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드라마가 너무 꽉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인물 또한 살리는 인물, 죽이는 인물 이렇게 나눠서 그려낸 것이 아니고, 각자 제 역할을 하는 인물들로 세워두었기 때문에,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각 인물들의 상황을 모두 이해해야 전체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는 불편함이 생기게 된다. 물론 이 불편함은 즐거운 것이고 완성도 면에서도 높게 평가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오는 대중적인 수치인 시청률에는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선덕여왕'이라는 꽉 짜여진 완성도를 가진 꽤 복잡한 사극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로 여겨진다. 최근 미실의 난을 통해 어떤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또한 미실이 가진 완벽함에 도덕적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은 '선덕여왕'이 완성도와 시청률 사이에서 처한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처럼 보인다. 이렇게 '선덕여왕'의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은, 물론 당연히 올려야만 하는 것으로 취급되는 시청률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자칫 시청률을 위해 지금껏 쌓아온 완성도에 흠집을 내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30%든 40%든 '선덕여왕'은 이미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쪼록 시청률에 대한 압박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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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이란 이런 것, '선덕여왕'의 대결구도가 시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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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사진출처:MBC)

"헌데 왜 진흥제 이후의 신라는 발전을 안한 겁니까?"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신라가 발전하지 못하고 그대로인가를 미실에게 묻는다. 미실은 거기에 대해 답변을 하지 못하지만, 이미 답은 마음 속에 갖고 있다. 그 생각에 골몰해있는 미실의 마음을 아는 건 설원공(전노민)이다. 그는 미실에게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신분 따위로 누구를 부러워하는 건 저로 족합니다." 라고 말한다. 미실은 그것이 자신의 태생적인 한계, 왕비가 될 수 없는 그 신분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꿈꾸는 것조차 한계가 그어지는 신분계급 사회 속에서 미실은 그 이상을 꿈꿀 수 없었다. 그것이 이유였다.

거기에 대한 답은 오히려 질문을 한 덕만이 던져준다. "새주님은 나라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주인이 아니시니 남의 아기를 키우는 듯 싶었겠지요. 주인이 아닌 사람이 어찌 나라를 위한 꿈을, 백성을 위한 꿈을 꾸겠습니까. 꿈이 없는 자는 절대 영웅이 되지 못합니다. 꿈이 없는 자의 시대는 한 발작도 전진하지 못합니다." 이 말은 미실에게는 뼈아픈 것이다. 그녀를 가로막는 태생적인 한계, 즉 성골이 아니라는 점은 꿈조차도 한계를 짓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질문을 던지는 덕만은 저 스스로 "왕비가 아닌 왕이 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것 역시 미실에게는 아픈 것이다. 자신은 이미 여성이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왕비 그 이상을 꿈꾼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실과 덕만의 100분 토론을 방불케 하는 설전은 그녀들이 처음 탁자를 가운데 놓고 앉을 때부터 예고되었던 일이다. 그 첫 번째 안건은 백성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견해였다. 미실이 백성들은 환상을 원하고 그 환상을 제공함으로써 통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덕만은 환상이 아닌 희망을 내세운다. 같은 현실 정치를 논함에 있어서 이 환상과 희망이라는 어감의 차이는 실로 크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미실은 "자기보다 더 지독한 짓"이라고 일갈한다. 어찌 보면 정치가가 제안하는 희망이란 그저 환상에 머물 수도 있기 때문에 저 스스로 동참하게 만드는 희망의 정치는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는 현실주의자 미실의 생각이다.

그 다음 토론의 주제로는 경제가 올랐다. 흉년이 들어 곡물 가격이 자꾸만 오르는데도 그것을 비싼 값에 매점매석하는 귀족들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덕만은 그것이 결국 자영농들을 몰락시켜 소작농으로 부리려는 귀족들의 속셈 때문이라는 것을 미실을 통해 알게 되고, 귀족들에게 그 행태를 비판하지만, 귀족들은 자기 돈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주장한다. 자유 시장 경제와 정부의 통제라는 두 시각이 부딪치는 지점이다. 요지부동인 귀족들을 되돌리기 위해서 덕만은 결국 시장의 논리로서 해법을 제시한다. 궁의 비축미를 풀고 군량미마저 풀 거라는 소문을 내자 가격이 떨어지고 거꾸로 귀족들은 싼 가격에 곡물을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실과 덕만의 설전이 흥미롭다. 백성들에게 철제로 만든 농기구와 황무지를 주어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농민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덕만에게 미실은 이렇게 말한다. "진실과 희망과 소통으로 백성을 다스린다구요? 백성은 진실은 부담스러워하고 희망은 버거워하고 소통은 귀찮아하며 자유를 주면 망설입니다. 백성은 즉물적이예요. 떼를 쓰는 아기와도 같죠.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처벌은 폭풍처럼 가혹하게, 포상은 조금씩 천천히." 그 말이 예언하듯 결국 농기구와 황무지를 받은 농민들이 도망을 치고 덕만은 저 스스로 미실이 얘기한대로 폭풍처럼 가혹한 처벌을 백성들에게 가하게 된다. 여기서 덕만은 "꿈을 꿔본 적이 없는 자들은 꿈꿀 줄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좀더 현실적으로 천천히 개혁을 진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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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사진출처:MBC)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100분 토론의 새로운 연사로 등장한 이가 김춘추(유승호)다. 그는 여성의 신분이지만 유일한 성골이라는 이유로 왕이 되겠다는 덕만을 가로막고, 또 미실 세력을 갈라놓기 위해 골품제도를 비판한다. 지금으로 치면 선거제도가 이 토론의 주제가 된 셈이다. 김춘추는 "골품제는 어느 나라에서도 본 적 없는 천한 제도"라고 일갈하며 덕만을 공격하고, 그 말에 미실은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 속에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한다. 절망은 자신은 왜 골품제에 대한 부당함을 넘어서보려 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회한이고, 희망은 이제 덕만이 깨버린 금기, 즉 여성이 왕이 되려는 것과 김춘추가 깨버린 금기 골품제라는 한계가 깨져버리는데서 오는 것이다. 덕만과 미실의 긴 100분 토론은 덕만의 일방적인 승리인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미실이 그 반사이익을 얻게 된 셈이 되었다.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덕만과 미실의 100분 토론은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느냐를 떠나서 그 토론의 과정이나 방향성이 흥미롭다. 팽팽한 대결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서로를 파트너처럼 여기며 스스로를 성장시킨다. 미실과 덕만은 서로가 던진 질문에 답을 구하며 성장해나간다. 그 선악구도가 어떻든 그 과정이 건전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우리 정치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대소신료들이 모여서 토론을 벌이다가 드잡이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국회의 모습을 풍자했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은 이 사극에서 얼마나 대중들이 정치, 경제적인 사안들에 민감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덕여왕', 덕만과 미실의 100분 토론이 흥미진진한 것은 물론 그 잘 조화된 극적 구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그 상생의 이야기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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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떠올리는 별자리 이야기

당신이 가끔 고개를 쳐들고 별을 보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가.
지금도 저기 당신의 별은 빛나고 있건만,
당신은 지금 왜 고개를 떨구고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별을 보던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꿈꿀 수 있었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그 별
매포 외할머니댁을 찾아가는 길은 늘 낯설고 두려웠다. 버스가 당도하는 시각은 늘 어둠이 내린 한밤중이었고, 외할머니댁으로 가는 나룻배를 타려면 빛 한 자락 찾기 힘든 캄캄한 길을 걸어야 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어머니는 어떻게 걸었던 것일까. 어린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그게 궁금했다. 배 건너 와요- 어둠만큼 깊은 정적 속에 어머니가 소리를 치면 한참 후에 저편에서 삐걱삐걱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도 모를 어둠 속에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나룻배의 움직임을 강물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겨우 알게 될 즈음, 문득 쳐다본 하늘 위에 펼쳐진 별들의 향연. 빛 한 자락 없는 두려움 속에서 오히려 더 반짝반짝 빛나며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던 그 별들은 지금도 저 하늘에서 빛나고 있을까.

물론 그 별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지만, 이제 도시의 빛에 멀어버린 눈은 그 별을 바라보지 못한다. 별들은 분명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고, 지금도 건네고 있지만 도시의 소음에 먹어버린 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어머니가 조곤조곤 들려주시던 하늘의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둠 속에 갇혀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꿈으로 채워주곤 했다. 그 때 알았다. 이야기는 바로 꿈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선덕여왕'의 별자리가 상기시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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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사진출처:MBC)

'선덕여왕'이라는 사극이 끊임없이 그 때의 그 별자리를 상기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덕만(이요원)이 태어날 때 화두처럼 던져진 "북두칠성의 개양성이 둘로 갈라져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대적할 자가 오리라"는 예언은 바로 별자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미실(고현정)과 덕만이 천문을 사이에 두고 권력의 대결구도를 벌이는 장면에서도 이 별자리의 이야기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다. 드라마가 끝날 때, 인물의 정지된 화면 위로 반짝반짝 빛나며 별자리들이 드리워지는 엔딩장면은 오래도록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별자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별자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것처럼 이야기일 뿐이다. 하늘의 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별들은 그저 그렇게 흩어져 있는 것일 뿐,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어머니처럼 그 별을 보고 이야기를 생각하는 사람뿐이다. 아무 의미 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것은 사람만이 가진 능력이다. 아주 오래 전, 하늘의 별빛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 두려움의 하늘을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하늘로 변모시킨 이야기꾼은 사실 세상을 바꾼 것이다. 그 이야기는 아무 의미 없이 죽어버리고 사라져버리는 덧없는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었을 테니까. 그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꿈이라는 것을 꿀 수 있었을 테니까. 이야기는 실로 꿈의 다른 말이다.

'선덕여왕'은 그 별자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미실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으로서 환상을 내세웠다면, 덕만은 희망을 내세웠다. 환상은 실체를 모르면서 이야기를 믿는 것이라면, 희망은 실체를 알면서도 이야기를 믿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별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별자리 이야기들을 통해 어떤 삶의 계획들, 덕목들, 꿈들을 떠올리곤 한다. 이야기는 사람을 꿈꾸게 하고 그 꿈을 실체로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당신의 별자리,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별자리 이야기는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리들이야말로 저 하늘의 별처럼 그저 흩어져 무엇이 될 지도 모르고 숨 쉬고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그런 존재들이 어떻게 삶의 목표를 만들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 우리는 인생이라는 커다란 빈 도화지를 하나씩 받았고, 그 위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이야기들을 써나갔던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별자리 이야기다. 당신 스스로 꿈꾸었던 인생이 이야기처럼 그 속에는 들어 있었고, 그 이야기가 일러주는 대로 당신은 부지불식간에 빛 한 줄기 없어 어디가 앞인지 어디가 뒤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암흑의 길 위를 한 발작씩 걸어왔다. 두려움조차 없이. 어떻게? 이야기가 당신의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이 힘겨워질 때, 고개 숙인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바로 그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는 일이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그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도시의 불빛에 멀어버린 눈을, 도시의 소음에 먹어버린 귀를 찾기 위해 한참을 달려 인적 드문 어딘가로 떠나도 좋을 것이다. 그 곳에 서서 어린 시절부터 늘 거기서 이야기의 빛을 쏟아내던 그 별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 그 상상의 힘을 복원하는 것. 당신이 힘겨운 것은 현실이 주는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어느새 상상하기를 멈춰버린 당신 자신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별을 보자. 적어도 하늘에 붙어 있는 별은 숙여진 당신의 고개를 꼿꼿이 쳐들게 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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