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와이프’, 한지민을 보면 우리의 착각이 깨진다

저 사람이 내가 아는 그가 맞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 때가 있다. 지금 삶의 맥락 바깥으로 살짝 벗어났을 때 우리가 안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사람이나 삶은 의외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에 의해 부추겨진 세속적인 욕망과 클리셰에 빠져버린 일상 속에서 진짜를 보지 못했던 삶이 그 바깥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건 서우진(한지민)이라는 인물이 다른 상황에서 얼마나 다른 인물로 다가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남편 차주혁(지성)에게는 분노조절 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숨 막히는 아내였지만, 과거를 되돌려 첫사랑에 성공함으로써 재벌가 딸인 이혜원(강한나)과 결혼해 살아가게 된 차주혁이 다시 만난 그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랑스럽고 건강한 인물이다.

그렇게 바뀐 운명을 살게 된 차주혁의 시선을 통해 <아는 와이프>는 과거의 서우진과 현재의 서우진이 어째서 그리도 다른가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서우진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차주혁이 현실에 지쳤다는 핑계로 놓치고 있던 것들이 그를 달라보이게 하는 것이다. 흔해져버려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일터에서의 갑질과, 집으로 돌아오면 마치 자신만이 전담해야 하는 일처럼 의무가 되어버린 독박육아. 남편은 자신도 힘들다고 자그마한 숨 쉴 공간 하나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지지고 볶는 워킹맘으로서 숨막혀하고 있던 서우진이었다. 

그 때 차주혁은 서우진이 얼마나 힘겨워 하고 있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자기만 힘든 줄 알았다. 하지만 과거의 운명을 되돌려 이혜원과 결혼하게 된 그가 자신이 다니는 은행에서 다시 서우진을 만나고 그가 얼마나 밝고 건강한 사람이었는가를 새삼 발견하면서 그는 깨닫는다. 본래 서우진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그래서 이 드라마는 차주혁이라는 남성의 시선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어찌 보면 지금 현재 평균치 남성들의 시선을 가진 차주혁은 전형적인 남성 판타지의 한계를 가진 인물로 시작한다. 차주혁은 돈 많은 아내 덕분에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아가는 드라마 속 남성들의 로망처럼 그려지지만, 정작 그는 조금씩 그것이 허망한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재벌가 장인 댁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살아왔던 배경이 완전히 달라 이혜원의 삶의 방식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오랜만에 상경해 집을 찾은 자신의 부모에게 호텔을 잡아주겠다는 혜원의 말은 이해는 되지만 남편에 대한 배려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서 사서 내놓은 듯한 스테이크보다 그는 우연히 찾았던 서우진의 집 어머니가 싸준 갓김치가 더 당긴다. 그는 문득 서우진과 함께 갔었던 분식집의 떡볶이와 돈가스 그리고 빙수가 그립다.

<아는 와이프>는 틀에 박힌 막연한 판타지들이 가진 허구성과 일상 속 깊이 스며들어 있어 체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우리네 삶의 불평등 같은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재벌가 사위로 살아가는 차주혁이 게임 전용 소파까지 구비된 거실의 풍경이나, 은행에서 여직원들에게 당연하다는 듯 커피 심부름을 하는 그런 일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허구와 불편한 풍경들이 등장하는 건 그것이 당연한 삶이라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판타지들이나 불편한 풍경들이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던 것들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차주혁의 시선에서 가장 그 편견을 깨는 인물은 바로 서우진이다. 어떤 진상 고객 앞에서도 당당하고, 분노 조절 장애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졌다. 뒷얘기에조차 뒤끝 없이 풀어내는 털털함이 있고, 무엇보다 명랑하고 밝아 주변 사람들까지 밝게 만드는 건강한 에너지가 있다. 차주혁은 그를 보며 그가 알고 있던 그 아내가 맞나 다시금 눈을 의심하게 된다. 

서우진의 이러한 상반되어 보이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가 가진 핵심적인 메시지와 연결된다. 그래서 서우진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한지민은 우리가 알던 그 한지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귀여운 고등학생과 삶에 찌든 억척스런 워킹맘 그리고 그 누구보다 밝고 사랑스러운 직장인의 모습을 넘나들며. 

과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안다 착각하며 살아가는 걸까. <아는 와이프>는 그 이야기를 차주혁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가진 채 살아온 남성의 시선을 통해 질문한다. 그가 봐왔던 것들과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표피적인 것들이었으며, 비뚤어진 것인가를 그가 서우진을 달리 바라보게 되는 시선을 통해 담아낸다.(사진:tvN)

‘미스티’, 만일 김남주가 범인이 아니라면 어째서 우리는

과연 강태욱(지진희)이 케빈 리(고준)를 죽인 범인일까.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 또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강태욱이 케빈 리의 차를 뒤쫓아 가다가 신호위반으로 교통카메라에 찍혀 날아온 고지서를 우연히 발견한 고혜란(김남주)는 놀라워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강태욱이 범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아직 이르다. 그 눈물은 어쩌면 당일 케빈 리와 고혜란이 함께 있는 장면을 남편 강태욱이 봤으면서도 눈감아주려 했었기 때문에 흘리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진 것을 그가 봤을 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많은 정황들은 강태욱이 케빈 리를 죽인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건 하명우(임태경)가 강태욱에게 한 말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명우는 강태욱이 고혜란을 사랑하는 건 알겠지만 보호해줄 수 있는 지는 아직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건 하명우가 강태욱에게 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 역시 고혜란과 얽힌 어떤 사건 때문에 살인죄로 감방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마치 하명우와 강태욱은 평행이론처럼 닮아 있다.

게다가 강태욱이 드라마 초반 그처럼 고혜란에게 냉담했던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가 갑자기 이런 극적인 변화를 보인 어떤 터닝포인트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건 케빈 리가 나타나면서 생긴 질투로 인해 촉발된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됨으로써 고혜란을 변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건 물론 가정이지만, 형사가 의심하고 서은주(전혜진)가 거의 확신하는 범인이 고혜란이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즉 고혜란은 커리어우먼으로서 버텨내기 힘든 현실 속에서 사력을 다해 고군분투한 것이고, 그래서 다소 술수를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진실 보도’라는 자신의 소명을 다한 것뿐일 수 있다. 제 아무리 성공해 어떤 위치에 올라가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시아버지의 끝없는 욕망이 더해져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 안간힘을 쓴 것일 수 있다. 

우리는 고혜란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현실의 압박을 깨치고 나오는 통쾌한 인물로 받아들이면서도 어떤 악녀가 아닐까 의심한다. 그가 법 정의까지 무너뜨리고 언론을 탄압하는 세력과 맞서 싸울 때 어떤 통쾌함을 느끼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가 성공하기 위해 남편의 사랑보다 일을 더 우선시 하는 모습이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심지어 그가 진범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왜 이런 의심을 하게 되는 걸까. 혹 거기에는 여성들이 가정이 아닌 일을 선택하고, 사회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백안시하는 편견과 선입견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지금껏 많은 드라마들이 남성들의 성공에 대한 욕망들을 드러내는 것에, 심지어 그것이 부정한 방법으로 시도되었다고 해도 지지해왔던 것과 어쩌면 이렇게 다른 감정과 생각을 갖게 되었던 걸까. 고혜란이 진범이든 아니든 이 커리어우먼이 보여주는 욕망의 질주를 어딘가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그 비뚤어진 시선이 어쩌면 <미스티>가 궁극적으로 꼬집으려는 우리 사회의 편견은 아니었을까.(사진:JTBC)

‘감빵생활’ 박해수, 첫 회부터 빠져드네 이 캐릭터

뭐 이렇게 따뜻한 감방 이야기가 있나. tvN 새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우리가 감방을 소재로 한 장르물들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그런 클리셰들을 뒤집는다. 동생을 성폭행하려는 괴한을 제압한 것이 뭐 그리 큰 죄일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슈퍼스타 프로야구선수인 김제혁(박해수)은 정당방위가 아닌 과잉방위 판결을 받아 구치소에 수감된다. 일단 감방에 들어오게 되는 계기 자체가 우리가 흔히 뉴스 사회면에서 발견하는 그런 사건이 주는 뉘앙스와는 사뭇 다르다.

판결을 받으러 법정으로 가는 길 형이 태워준 차를 타고 가는 김제혁은 자신의 삶이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맑은 날 기상예보가 말하는 눈이 오겠냐는 생각을 깨버리고 눈이 내리듯, 금세 빠져나올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길게 느껴질 감방생활이라는 터널 속으로 김제혁은 빠져 들어간다. 

구치소에 수감된 김제혁에게 벌어지는 일들도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예상을 뒤집는다. 구치소 풍경은 마치 갖가지 인물들이 모여 난장판이 되곤 하는 파출소 풍경을 닮았고, 수감되기 전 있을 것으로 여겨지던 비인권적인 몸수색은 의외로 인권을 고려한 몸수색을 바뀌어 있다. 이러한 클리셰 뒤집기는 그가 신참으로서 감방에 처음 들어가 고참들에게 당할 것으로 생각됐던 신고식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신고식이라며 눈을 가리고 손목을 그어 그 피를 나눠 마실 것처럼 꾸몄지만 사실은 김칫국물을 떨어뜨려 그를 놀려먹었던 것. 

김제혁이라는 감방이 낯선 인물의 시점으로 들여다보는 감방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감방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장르물들이 하나의 상투적인 소재들로 활용됐던 그런 내용들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따뜻한 물에 샴푸를 하고, 소고기뭇국을 먹으며, 원하면 사과를 얻어먹을 수도 있는 곳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보여주는 감방의 정경이다. 

그래서 김제혁은 이 낯선 감방생활에서 고충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갑자기 구치소로 들어오게 되어 집에 택배로 온 전복과 문을 열어놓고 나온 일과 보일러를 켜놓고 온 일, 카드 값 같은 것들을 더 걱정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우리와는 유리된 세계로 생각되던 감방이 사실은 우리 일상 바로 옆에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곳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이렇게 감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클리셰를 여지없이 깨버리고 그곳 역시 일상적인 공간이라고 보여주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들로 다가온다. 물론 같은 방에서 지내는 할아버지가 ‘묻지마 살인범’이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지만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강자와 약자의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의 차이가 드러난다. 물론 수감자에 대한 교도관의 체벌 같은 폭력은 없지만, 조주임(성동일)처럼 대놓고 돈을 요구하는 권력을 유용한 부정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 현실감을 준다. 

그런데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도대체 왜 감방을 이토록 보통의 ‘사람 사는 공간’이라고 그려내고 있는 걸까. 그것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곳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래서 엄청난 일이 또 벌어질 것 같지만 사실은 또 그 곳 역시 하나의 일상적 공간이라는 걸 통해 우리네 삶에 공존하는 일상과 비일상을 말하려는 건 아닐까. 

김제혁이라는 인물의 캐릭터가 흥미로운 건 그래서다. 그는 야구는 잘하지만 일상생활은 어딘가 모자라는 듯 습득력이 느린 인물이다. 그래서 자신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충격적이어도 다소 무디게 덤덤히 그걸 받아들이는 인물이며, 그러면서도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켜나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조금 모자란 듯 보이지만 돈을 요구하는 교도관에게 뇌물을 주기보다는 감방 동기의 어머니 수술비를 대신 내주는 그 행동에서 이 캐릭터가 굼뜨긴 해도 명쾌한 자기만의 사리분별을 갖고 있고 이를 거침없이 행동에 옮기는 인물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요즘 사람 같지 않은 훈훈함은 아마도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그려내려는 감방으로 축소된 살풍경한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아닐까.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고,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꿋꿋이 지켜나가며 살아가는 김제혁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사실상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이자 주제 그 자체처럼 보인다. 그래서 왜 신원호 PD가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박해수라는 배우를 주인공으로 세웠는지 이해가 된다.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을 통해 어떤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라면 오히려 캐릭터에 어떤 선입견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별로 없는 하얀 도화지 같은 박해수는 그래서 이 작품의 김제혁이라는 인물 그대로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단 첫 회만으로 작품이 가진 인간적인 훈훈함을 그 무뚝뚝한 표정을 통해 드러내줄 정도로.(사진:tvN)

‘고백부부’, 무엇이 이 드라마에 대한 열광 만들었나

사실 ‘예능 드라마’라는 지칭에는 약간 이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를 낮춰보는 시각이 있다. 그래서 정통적인 드라마 형태라기보다는 예능적 요소를 덧댄 드라마라는 측면에서 코미디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현실성은 조금 떨어질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있기 마련이다. 

KBS <고백부부> 역시 그 시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먼저 청춘시절로의 타임슬립을 한다는 그 설정이 그런 선입견을 더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물론 타임슬립 장치를 사용해서도 얼마든지 진지한 이야기를 담는 드라마들도 많았지만, 예능 드라마라는 지칭과 타임슬립이 만나니 조금은 어설픈 코미디 설정의 드라마 정도를 예상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백부부>는 의외로 처절한 현실 부부의 고통스런 삶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다. 가족을 위한 삶이라는 이유로 현실에 치여 점점 마모되어가는 부부의 삶. 그래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어떻게 젊은 날 살아왔으며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족을 꾸리게 됐던가 조차 잊어버린 채 결국 이혼을 결정하는 최반도(손호준)와 마진주(장나라)의 이야기.

그렇게 현실적인 면들을 깔아놓고 이뤄진 청춘으로의 타임슬립은 그래서 단순히 젊음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의 신기함과 놀라움, 즐거움의 차원을 뛰어넘어 그 때의 시간을 다시금 여행함으로써 현재를 되돌아보는 장치가 되었다. 

물론 대학시절이 주는 그 풋풋함과 첫사랑이 피어나던 시절의 설렘 같은 것들이 드라마에 청춘로맨스로서의 달달함을 선사했지만, 드라마는 동시에 돌아가신 엄마(혹은 장모)를 다시 만났을 때 느끼는 회한이라던가, 아이에 대한 남다른 감정 같은 걸 일깨웠고 나아가 잃고 잊었던 배우자의 소중함을 새삼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파경에 이른 부부가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물론 어찌 보면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살벌한 사회 현실의 문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사회 현실을 바꿔나가려는 노력보다는 변해버린 자신의 문제로 환원해 과거로 돌아가 그 자신을 되찾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이 드라마의 기조는 상당히 보수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보수적이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나, 부부 간의 사랑이야기 같은 것들은 세상이 바뀌어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잡아 끌 수밖에 없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KBS라는 방송사의 다소 보수적인 시청층에게는 이만큼 마음을 잡아끄는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큰 공적은 이 풋풋한 청춘의 모습과 동시에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의 아저씨, 아줌마의 면면을 한 몸으로 자연스럽게 끌어안은 장나라와 손호준에게 있지 않을까 싶다. 두 사람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타고난 동안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넘나드는 그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낸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이만한 몰입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KBS는 <프로듀사>의 성공 이래 금토 시간대에 여러 차례 예능 드라마라는 타이틀로 드라마를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다 이번 <고백부부>가 성공을 거둔 데는 역시 예능 드라마라는 선입견을 깨는 진지함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코미디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타깃층도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무엇보다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했다는 것. 그것이 <고백부부>가 이만한 반향을 일으킨 요인이 되었다.(사진:KBS)

‘해피 데스데이’, ‘사랑의 블랙홀’의 공포 버전이랄까

세상에 이렇게 발랄한 공포영화가 가능하다니. <해피데스데이>는 여러 모로 관객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려주는 영화다. 공포영화라고 해서 봤는데 한없이 발랄해지고 심지어 달달해진다. 게다가 죽는 장면에서 공포가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에는 웃음이 터진다. 통쾌함도 있고 가슴 뭉클한 감동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는 장르가 퓨전된 영화지만, 그 흐름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영화를 본 분들은 아마도 대부분 그 즐거운 당혹감에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게다. 도대체 이 영화 정체가 뭐야?

<해피 데스데이>는 아마도 1993년 작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을 본 관객분들이라면 반색할만한 공포영화다. <사랑의 블랙홀>은 매일 매일 똑같은 하루를 지내게 된 남자가 이를 통해 삶의 의미와 사랑을 이뤄가는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해피 데스데이>는 자신의 생일날 의문의 괴한에게 살해당하는 트리(제시카 로스)가 계속 같은 날 깨어나 같은 상황을 반복하는데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다. 

‘해피버스데이’를 뒤집어놓은 제목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해피 데스데이>는 공포영화가 갖는 많은 상투적인 방식들을 뒤집는다. 공포영화가 공포스러운 건 죽음 때문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지만, <해피 데스데이>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닌 살아나 다시 그 끔찍한 죽음을 겪는다는 것에 공포가 있다. 즉 죽음은 그 자체로 공포의 끝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이 그러하듯이 그 끝을 다시 처음으로 돌려 무한반복되는 상황의 공포를 그린다. 

<스크림>이 그 기괴한 마스크 하나로 공포를 유발하듯이 <해피 데스데이>에도 마스크를 쓴 괴한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름을 돋게 만든다. 하지만 마스크는 단지 공포 유발의 장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마스크를 쓴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트리는 계속 죽었다 살아나는 걸 반복하면서 그 범인을 찾으려 노력한다. 

흥미로운 건 이 반복되는 하루를 통해 트리가 조금씩 성장해간다는 점이다. 그는 그 특별한 생일날 계속해서 벌어지는 똑같은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 삶을 바꿔보려 노력하기도 하고,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고 있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 치유의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공포영화 속에서 이런 성찰적 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랍다.

공포영화가 영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멜로 취향의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는 꽤 특이한 멜로 경험을 하게 해준다. 공포 속에서 조금씩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의외로 발랄한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트리를 돕는 순수 청년 카터(이스라엘 브루사드)와 트리는 조금씩 마음을 나눈다. 공포영화에서 이렇게 풋풋한 멜로가 가능하다는 것도 흥미롭다.

영화는 말미에 가서 <사랑의 블랙홀>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사실을 카터의 대사를 통해 알려준다. 트리의 상황이 <사랑의 블랙홀>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하지만 이를 공포 형식으로 패러디한 <해피 데스데이>의 재기발랄함은 <사랑의 블랙홀>의 장치를 가져왔다고 해도 그 이상의 여운을 남긴다. 공포영화라는 장르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선입견들을 보란 듯이 뒤집는 데서 오는 어떤 통쾌함마저 느껴지는.(사진출처:영화 <해피 데스데이>)

‘어서와’ 덕분에 갈수록 외국친구들이 늘어간다

우리에게 인도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하다. 여행자들에게는 편안히 여행하기가 쉽지 않은 곳으로 인식되어 있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 돼지고기는 아예 먹지 않는 곳으로 여겨지곤 한다. 카스트 제도의 영향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고, 빈부 격차는 심각할 정도로 큰 곳. 그런 곳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이고 실제로도 그런 모습을 갖고 있지만 그게 과연 전부일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사진출처:MBC에브리원)'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나온 럭키는 한국에서 지낸 지 21년이나 된 인도친구다. 그는 우리 사회의 문화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또 인도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도 알고 있다. 또한 인도에서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선입견 역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 중간에 서서 우리가 가진 인도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인도친구들이 우리나라에 가진 선입견을 깨주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했다. 

인도가 치안이 불안하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며 빈부 격차와 신분사회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부가 그렇지는 않다는 걸 럭키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초대한 친구들, 비크람, 샤샨크, 카시프 등은 우리의 이런 선입견을 깨주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편견 없이 우리 문화에 스며들었다. 특히 흥 많고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아이 같은 매력을 가진 비크람은 이번 인도 친구들의 여행을 더더욱 즐겁게 만들어준 존재로서 인도를 더 친숙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낯설 수 있는 한국음식을 선입견 없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나, 경복궁에서 한복 입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사진을 찍고, 한식 투어를 하며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그런 모습들은 우리가 상상했던 인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흥 많고 늘 농담을 던지는 그 낙천적인 사고방식은 오히려 인도가 가진 긍정적인 자산처럼 보였다. 종교적인 영향 하에서 생겨난 삶에 대한 긍정과 낙관.

비크람의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은 그의 시선으로 우리 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했다. 양평으로 떠난 캠핑 여행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날 비크람이 쓰레기 분리수거와 청소를 하는 우리네 문화를 영 이해할 수 없다고 한 점이 그랬다. 물론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할 일은 다 했지만, 비용을 치르고 하룻밤을 지냈는데 그런 일들을 스스로 한다는 것이 영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 사실 이런 문화는 우리에게도 가끔 낯설게 다가오는 면이 있었지만 그걸 굳이 이상하게 바라보지는 않았었다. 오히려 비크람의 행동은 그 문화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사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이제 어느 정도 이 색다른 여행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국인 친구들이 공항에 도착하고 낯선 한국음식과 교통을 경험하고 친구를 만나 즐거운 한 때를 보내며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여행을 하는 것. 물론 그것은 대부분의 외국인 여행자들의 여행경험일 것이지만 방송이란 그걸 계속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패턴이 주는 단조로움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이 패턴의 식상함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아마도 매력적인 외국친구들 덕분일 게다. 독일 편을 통해 우리에게는 지금도 기억에 남게 된 페터, 마리오, 다니엘은 물론이고, 러시아 편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레기나, 엘레나, 아나스타샤 그리고 이번 인도친구들까지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에게는 외국친구들이 늘어가고 있다. 

돌아가는 그들에게 다시 오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친숙함을 느끼게 됐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가진 많은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들이 이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중요한 이유다. 이번 인도편에서 우리는 비크람, 샤샨크, 카시프를 처음 만났지만, 떠나는 그들은 어느새 박구람, 서상구, 강씨가 되어 있었다.

'전체관람가', 메이킹부터 영화, 평가까지 전부를 본다는 건만일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봉만대 감독이 만든 <양양>이라는 영화를 봤다면 우리는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봉만대 감독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19금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중풍을 겪는 아버지와 두 아들의 짠한 여행기를 담은 이 영화가 주는 감흥을 100% 느끼긴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볕이 드는 곳을 의미하는 <양양>이라는 제목에서조차 ‘김양’을 먼저 떠올리는 게 봉만대 감독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내는 선입견일 수 있으니.

'전체관람가(사진출처:JTBC)'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JTBC <전체관람가>는 그저 영화만 달랑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물론이고, 영화 상영 후 이에 대한 감상과 평가를 나누는 자리까지 말 그대로 영화의 ‘전체’를 관람하는 시간이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체관람가>라는 제목은 누구나 다 관람할 수 있는 등급의 영화라는 뜻은 물론이고, 이 프로그램의 형식이 그러하듯 감독들 모두가 모여 함께 관람한다는 뜻과 어쩌면 메이킹부터 평가까지 영화 전체를 모두 관람한다는 의미도 들어있다고 여겨진다.

그 과정을 보니 봉만대 감독이라는 인물이 다시 보이고, 그가 만든 <양양>이라는 영화가 주는 감흥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19금 은퇴했다”고 강조하는 봉만대 감독이 이 영화는 ‘휴머니즘’이라고 말할 때 많은 이들이 웃음을 지었던 건 그게 과연 진짜일까 하는 생각들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 촬영에 들어가자 봉만대 감독은 그 제작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틱한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람 냄새’를 풍겼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던 촬영이 바닷가 장면에서 갑자기 몰아닥친 비바람으로 난항을 겪기 시작하자 봉만대 감독의 진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촬영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비바람 속에서도 지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스텝과 연기자들 하나하나를 챙기는 모습은 이 감독이 가진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런 봉만대 감독과 스텝, 연기자들의 마음이 통했던지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나오자 오히려 촬영 현장은 활기를 띠었다. 그것은 마치 이 영화의 제목이 그렇고 그 감성이 그러하듯이 따뜻한 볕이 들어오는 그 순간을 기적처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봉만대 감독의 두 아들이 참여한 마지막 환상 신에서 이 영화의 가장 찡한 명장면이 탄생했다. 아버지 역할을 하는 임하룡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아들들에게 그의 품에 안기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 갑작스레 자신의 품안으로 뛰어드는 두 아이들을 안으며 아마도 임하룡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그는 뭉클함에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을 흘렸고, 그걸 보는 감독도 눈물을 흘렸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을 시사하던 감독도 배우도 눈물을 흘렸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이어진 평가의 자리에서 감독들은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때문에 편집된 장면들로 인해 영화의 몇몇 디테일한 면들이 부족했다는 걸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그 영화가 준 감동과 그 영화 제작 과정에서 봉만대 감독이 보여준 훈훈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 전체의 제작과정과 상영을 더해 감상평까지를 담아내자 비로소 봉만대 감독의 면면들을 제대로 알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영화가 주는 감흥도 더해질 수 있었다.

이건 아마도 <전체관람가>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일 게다. 사실 단편영화가 주는 감흥은 그 짧은 시간으로 인해 슥슥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장편영화가 한편의 소설 같다면 단편은 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은 짧아도 그걸 곱씹어보는 과정이 없으면 너무 밋밋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것도 봉만대 감독 같은 이름만으로도 그 영화의 분위기가 어떨 것인가를 선입견으로 갖게 되는 감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전체관람가>는 그 영화 자체만이 아니라 그 앞과 뒤를 모두 보여줌으로써 그 영화 속 장면들을 곱씹게 해준다. 영화 진짜 전체는 바로 이런 모든 과정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봉만대 감독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또 그가 지금까지 찍어왔던 영화들 속에 우리가 19금이라는 딱지 때문에 사실은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 감성들을 이 프로그램은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청춘시대2’, 우리네 청춘들에겐 너무 많은 폭력들

<청춘시대2>에서 시즌1에 비해 두드러지는 건 폭력적인 사회 현실을 담은 풍경들이다. 이미 시즌1에서 데이트 폭력을 겪었던 예은(한승연)은 대표적이다. 그 때의 그 충격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예은은 밤길을 혼자 걷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그래서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의 하우스메이트들이나 친구들이 그를 에스코트해주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청춘시대2(사진출처:JTBC)'

그는 피해자지만 그 때의 사건으로 오히려 더 고통을 겪는다. 며칠 간 납치 감금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엉뚱하게 해석되며 누군가 자신의 사물함에 저주하듯 창녀라고 쓴 사진을 넣어둔 걸 발견한 그는 다시금 그 때의 가해자인 고두영(지일주)이 나타난 것이라 생각하며 두려움에 떤다. 하지만 피해자인 그에게 엄마는 도리어 그의 평소 행실을 운운하며 나무란다. 행실을 그렇게 해서 그런 일을 겪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은재(지우)는 그게 왜 예은의 잘못이냐며 발끈한다. “선배 엄마가 잘못한 거잖아요.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선배가 뭘 잘못했다고 엄마한테 그런 말을 들어요. 선배는 피해잔데 왜 선배 탓을 해요? 사과하라고 해요.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해요.” 성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에 대해 작가는 은재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예은을 ‘나쁜 사람’으로 덧씌우는 세상의 편견 속에서 유일하게 그를 챙기는 건 하우스메이트들을 제외하면 우연히 만나게 된 권호창(이유진)뿐이다. 그는 예은에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고 “예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 역시 지독한 왕따의 피해자로서 자폐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타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은 스스로도 그것을 겪은 이들 뿐이란 이야기다. 

<청춘시대2>는 그 인물 하나하나가 저 마다 겪고 있는 사회적 폭력들을 담고 있다. 벨 에포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듯 발랄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저마다의 폭력 앞에 놓여져 있다. 연예 기획사에 입사한 윤진명(한예리)은 회사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뭐라 항변할 수가 없다. 무려 5년간을 연습생으로 지내게 하고 가능성이 없어보이자 결국 계약기간 7년을 채우지 않고 해체시켜 버린 아이돌그룹을 보며 그 역시 부당함을 느끼지만 자신 또한 회사에서 생존해야하는 입장이다. 

벨 에포크로 오게 된 조은(최아라)은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아빠 때문에 고통 받는다. 그 다른 여자 사이에 낳은 딸을 데리고 와 학교 갈 나이가 되었다며 엄마에게 이혼을 설득해 달라는 아빠의 말에 그는 또 다시 상처받는다. 송지원(박은빈)은 이 벨 에포크에서 가장 걱정 없어 보이는 털털한 캐릭터지만 그 역시 어딘가 과거의 커다란 상처가 잠재되어 있다. 그 상처로 인해 오히려 너스레를 떠는 지금의 성격이 생겼을 가능성이 여러 복선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청춘시대2>는 그래서 ‘청춘’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들의 풋풋하고 발랄한 사랑이야기만을 그리기보다는 그들이 겪고 있는 상처들을 다루고 있다. 그 상처는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는 청춘들에게 마치 당연한 듯 가해지는 폭력으로부터 비롯된다. 마치 아파야 청춘이라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던지듯, 그런 정도의 폭력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현실. 세상에 청춘이어서 당해도 되는 폭력이 있을까. <청춘시대2>는 그 폭력들 앞에서 서로 연대하고 서로 안아주며 등을 두드려주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아프면서도 뭉클하게 다가오는 드라마다.

‘무도’, 김설진이 깨준 건 춤에 대한 선입견만이 아니다

애초 목적은 <무한도전> 멤버들의 식상한 춤을 고치겠다는 거였다. 방송 복귀를 공식 선언한 이효리가 현대무용가 김설진까지 섭외해 춤을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한 것은. 물론 여기에는 분명 <무한도전> 멤버들의 ‘예능에 최적화된 춤들’이 주는 웃음을 기대하는 면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효리, 김설진과 비교되는 멤버들의 말도 안되는 춤이 줄 웃음 폭탄.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래서 ‘효리와 함께 춤을’ 특집은 그 오래도록 반복해온 <무한도전> 멤버들의 ‘식상해진’ 춤들이 주는 웃음이 있었다. 자유롭게 추라는 김설진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전형적인 메뚜기춤으로 회귀하는 유재석이나 쪼쪼댄스로 돌아가는 박명수, 안면을 찡긋거리는 부담 백배 춤을 추는 정준하 그리고 ‘양세바리’ 춤으로 돌려 막기를 하는 양세형이 주는 웃음들.

하지만 그 와중에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춤에 대한 선입견들이 깨져나갔다. 그것은 김설진이 말하고 보여준 춤의 세계 덕분이었다. 보여주려는 춤과 표현하는 춤이 있다고 한 김설진의 지적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춤을 보여주려는 것으로만 안다는 것. 즉 김설진은 자신의 마음을 동작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춤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줬다. 

또 대부분 춤을 즐거운 흥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보여줬다. 춤은 슬픈 감정이나 분노, 기쁨 등등 다양한 감정들을 담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에너지가 춤의 3요소라며 직접 동작을 통해 그 의미를 전해준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박자 같은 의미를 담는다면 공간은 동작을 의미하고 에너지는 거기에 감정을 담는다는 것.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춤이 그 사람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지적한 부분이었다. 큰 동작을 반복하는 유재석의 경우는 ‘과한 에너지’를 보여준다고 했고, 끊임없이 동작을 이어가는 양세형의 경우는 ‘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 대목이다. 즉 춤은 그저 동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동작이 그 사람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이효리의 경우, ‘섹시 아이콘’으로 춤 역시 섹시한 면면이 강조되었지만, 김설진은 그것이 조금 과하다는 걸 지적했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과해진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말을 덧붙였다. 조금만 더 절제하면 더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 

춤을 배우는 것이었지만 어찌 보면 김설진의 춤에 대한 교정은 <무한도전> 멤버들에 대한 조언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었다. 벌써 12년이다. 그 긴 세월을 쉬지 않고 달려온 그들이 갖고 있는 어떤 강박 같은 것들이 있었고, 그것이 춤 동작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났다. 그래서 김설진이 춤을 교정해주는 이야기는 고스란히 <무한도전> 멤버들이 좀 더 오래도록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유재석의 그 과한 에너지는 어쩌면 <무한도전>이라는 무게감을 버텨내기 위한 고군분투일 수 있었다. 양세형의 ‘쉬지 않음’ 역시 빈자리를 채우려는 그의 안간힘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그들의 강박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훨씬 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더 오래도록 시청자들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바라보면 김설진이 <무한도전>에 나와 깨준 건 단지 춤에 대한 선입견만이 아니었다. 춤으로 드러나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강박들을 발견하게 해주었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가를 알려주었다.

‘터널’, 인간 냄새 최진혁과 지적인 악역 김민상 돋보이는 이유

배우 최진혁의 이런 면이 있었던가. OCN 주말드라마 <터널>에서, 때론 허술하기도 하고 성정이 급해 행동부터 옮기는 박광호라는 형사 캐릭터를 연기하는 최진혁에게서는 늘 봐오던 완벽한 이미지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 완벽한 이미지란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지나치게 상투적이라 시청자들에게 어떤 인상적인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터널>은 드디어 배우 최진혁의 진면목을 드러내게 해준 작품이라 할만하다. 

'터널(사진출처:OCN)'

사실 배우에게 있어서 잘 생긴 얼굴은 딱히 좋은 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 이미지에 의한 선입견이 오히려 다양한 역할을 하는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진혁이라는 배우가 딱 그랬다. 준수한 외모를 갖고 있어서 보기에는 좋았는데, 무언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캐릭터로 기억되지는 못했다. 배우의 외모가 갖는 딱딱한 이미지의 껍질은 그래서 캐릭터보다 더 강하게 드러날 때 캐릭터의 빛을 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OCN 주말드라마 <터널>에서의 최진혁은 다르다. 늘 곱상한 외모에 귀공자 스타일로 소비되던 그가 이 드라마에서는 어딘지 빈구석이 많고 정에 약하며 때론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적인 면들을 가진 형사 그 자체처럼 보인다. 박광호라는 인간 냄새 물씬 풍기는 역할은 그래서 최진혁에게는 배우로서의 전기를 마련해준 인생 캐릭터가 되고 있다. 

박광호라는 인물은 다양한 결들을 보여준다. 형사로서 누구보다 범인을 잡고 싶은 열망에 시달리고, 그러면서도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저편에서 기다리는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피해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은 물론이고, 동료들과 다시 만난 딸에게 형사 특유의 무뚝뚝하면서도 굵직한 정을 드러낸다. 아날로그적이고 따뜻한 느낌. 그것이 이 캐릭터를 입은 최진혁을 재발견하게 만든 요인들이다. 

그런가하면 최진혁과 대립점에서 목진우라는 부검의이자 연쇄살인범 역할을 하는 김민상 역시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사실 몇몇 보조적인 역할로 기억되던 배우였고, 최근 들어 <김과장>에서 코믹한 연기를 보이며 주목되던 배우였지만 <터널>은 그의 잠재력을 확실히 드러내주었다. 김민상은 최진혁과는 달리 평범해 보이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따라서 김민상이 배우로서 넘어야할 벽은 그 지나치게 평범한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지점일 게다. 그런 점에서 <터널>에 등장하는 희대의 연쇄살인범 목진우는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늘 봐오던 김민상의 정이 가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시작했지만,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이미지의 반전 효과는 더 극대화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연쇄살인범은 이지적이고 치밀하며 대담하다는 점에서 그 어떤 스릴러 장르의 악역보다 더 강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범 속에 숨겨진 야만이 더 섬뜩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터널>의 목진우라는 캐릭터가 가진 섬뜩함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워낙 좋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김민상에게 역시 이 작품은 좀 더 비상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진혁과 김민상. 사실 이처럼 주인공과 악역이 모두 돋보이고 그것이 그 역할을 연기한 배우들에게 인생 캐릭터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터널>이라는 작품이 제대로 서고 있다는 뜻이다. 캐릭터가 살아있고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으니 작품이 안 살아날 수가 없다. 역시 통상적인 이야기지만 좋은 작품은 좋은 캐릭터를 갖기 마련이고, 그 캐릭터는 좋은 배우들을 발굴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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