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의 숨 막히는 몰입감,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다소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일단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가 없다. SBS수목드라마 <리턴>에 쏟아지는 관심은 호불호로 극명하게 나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몰입감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범죄를 다루는 장르물이 새롭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거기에 변호사와 열혈형사가 공조하는 내용 역시 특별하다 얘기하긴 어렵다. 하지만 <리턴>에는 이 익숙한 소재들에도 시선을 잡아끌게 하는 힘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에게서 나온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주인공인 최자혜(고현정)가 드라마에 중요한 동력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오태석(신성록), 김학범(봉태규)가 주축인 악역들이다. 드라마는 바로 이 오태석과 김학범 그리고 서준희(윤종훈)와 강인호(박기웅) 4인방의 갖가지 문란한 행위와 폭력 그리고 결국 이어지는 살인사건과의 연루로 인해 힘을 얻고 있다. 

그 촉발점은 이들과 아주 오래 전부터 인연을 이어왔고 강인호와 내연관계까지 가졌던 염미정(한은정)의 죽음이다. 아직까지 누가 그를 살해했는가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어느 날 김학범이 오태석에게 보낸 차량 트렁크에서 발견된 그의 사체는 이들을 모두 곤경에 빠뜨린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염미정과 연관되어 끄집어져 나올 수도 있는 악행들 때문에 그들은 신고를 하지 못한다. 대신 염미정의 사체를 묻어버리고, 그의 살해용의자로 지목되어 검거된 강인호를 희생시키려 하는데, 거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평소 자신을 챙겨줬던 강인호를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한 서준희가 자수를 결심하게 되고 그걸 막기 위해 오태석과 김학범이 나서는 과정에서 오태석은 서준희를 차에 태워 벼랑 끝에서 밀어 버린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그렇게 불타버린 차 속에서 나온 사체가 서준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서준희가 살아있으며 그를 돌보고 있는 인물이 의외로 이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독고영(이진욱)의 파트너인 김동배(김동영)라는 걸 보여준다. 

<리턴>은 그래서 아직까지 이 사건이 어떻게 해서 벌어지게 되었고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양상을 보여준다. 아직도 누가 염미정을 살해했는지 알 수 없다. 또 동배가 어떤 일로 오태석 일당과 연루되어 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궁금증들이 하나씩 밝혀져 나가는 과정이 <리턴>이 주는 재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들이 지루하게 흩어지지 않으려면 전체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동력이 필요하다. 그 힘을 발휘하는 건 다름 아닌 오태석 일당들이다. 특히 오태석과 김학범은 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몰입을 만들어내는 악역임에 틀림없다. 오태석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섬뜩한 느낌을 주고, 김학범은 언제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폭력성으로 보는 이들의 불안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공분으로 인해 동력을 얻기 시작한 드라마는, 그 대척점으로서 이들과 대적해 가는 독고영의 존재감을 조금씩 키워내고 있다. 오태석 일당은 그들의 실체에 조금씩 접근해오는 독고영을 일단의 무리를 시켜 그 차량마저 전복시키는 위협을 가하지만 독고영은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 서준희의 사체를 검증하지 않고 장례를 치르려 해온 오태석 일당에 맞서 결국 검시를 통해 그 사체가 서준희가 아니라는 걸 밝혀낸 독고영은 향후 이 드라마가 가질 팽팽한 대결구도를 예감케 만든다. 

무엇보다 <리턴>을 기대하게 하는 건 이들 연기자들의 연기력이다. 신성록이야 본래 젠틀맨과 범죄자의 양면을 오가는 연기를 자신만의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바 있지만, 코미디 연기로 더 각인되어 있던 봉태규의 살벌한 존재감은 확연히 눈에 띈다. 또한 부드러운 이미지가 강한 이진욱이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근성의 형사로 열연하는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리턴>은 확실한 몰입감을 주지만 그 자극적인 전개가 불편함을 남기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건 다분히 범죄자의 시선으로 진행된 전반부의 이야기 전개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보면 향후 독고영과 최자혜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이들이 전면에 나서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이 이런 불편함을 다소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사진:SBS)

시청률 따위론 평가할 수 없는 <원티드>의 가치

 

드라마는 적당한 멜로에 코미디를 섞고 때로는 자극적인 설정을 반복해 시청률을 가져가면 그만이다? 아마도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는 제작자는 없을 게다. 하지만 막상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실제로 시청률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가 의외로 많고 그래서 주제의식 따위는 잘 보이지도 않고 또 추구하지도 않는 드라마들이 마치 공해처럼 방영되고 있는 현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원티드(사진출처:SBS)'

그런 점에서 종영한 SBS <원티드> 같은 드라마는 대단히 참신하고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저 아이를 유괴당한 엄마가 어떻게든 리얼리티쇼를 통해 범인이 요구하는 미션을 수행함으로써 아이를 찾는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방송과 미디어의 선정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었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 이를 테면 아동학대나 불법적인 임상 실험, 모방범죄 나아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가습기 살균제 같은 사안을 이 드라마는 정면으로 끌어들여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들의 절규는 우리가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그 사안의 충격적인 심각성을 절감한 바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던가. 가해자는 분명히 눈앞에 있는데 피해자들만 눈물 흘리고 있는 현실이 아니었던가. <원티드>가 주목되는 건 이러한 현실 문제를 피하지 않고 드라마로 풀어내 시청자들에게 경각심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결국 리얼리티쇼는 선정성으로 시작했지만 진정성 있는 정혜인(김아중)의 각성으로 끝을 맺었다. 사안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관심했고, 자신의 일에 매몰되어 타인의 아픔을 쳐다보지 않았던 그녀의 진심어린 사과는 어찌 보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안들이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잊고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원티드>는 문제의식을 단순한 판타지 결말로 마무리하지 않았다. 그것이 현실을 호도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게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법적인 무죄를 주장하고 아무런 사과도 없는 현실이 아닌가. 그러니 드라마가 나서 섣부르게 그들을 단죄하는 모습을 담아낸다는 건 실제 피해자들에게는 더 큰 아픔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드라마는 과연 현실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적당한 판타지에 빠뜨려 잠시 현실을 지워버리는 마취적이고 도취적인 어떤 것만이 과연 드라마의 역할일까. 때로는 현실 문제에 과감히 뛰어들어 그 문제를 각성시키는 것도 드라마의 또 다른 기능이 아닐까. 그저 시청률 따위만 추구하는 드라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원티드>는 그 가치를 보여주었다

가수보다 소녀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걸 그룹

 

JT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잘 먹는 소녀들>에 대한 이승한 칼럼니스트가 쓴 이게 여성 아이돌에게 방송국이 할 짓인가라는 냉엄한 비판에 대해 대중들은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최근 대중문화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겹쳐져 부정적인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었다. 이른바 먹방걸 그룹 방송이 그것이다.

 

'잘 먹는 소녀들(사진출처:JTBC)'

먹방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기 이전부터 음식 프로그램들은 이미 푸드 포르노의 양상들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 <결정! 맛대맛>이나 <찾아라! 맛있는 TV> 같은 식욕자극 프로그램들은 먹방이 트렌드가 되기 훨씬 이전인 2006년에도 이미 푸드 포르노의 징후들을 보여준 바 있다. 그나마 <6시 내 고향>류의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던 음식 소개가 시장을 살린다거나 농촌을 살린다는 취지를 내세워 수위를 조절했다면, 당시 식욕자극 프로그램들에서는 점점 노골화되는 방송의 선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잘 먹는 소녀들>은 먹방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이러한 푸드 포르노적인 성격에 걸 그룹 소녀들을 수많은 시선들 속에 세워 두었다는 점에서 더 노골화된 먹방의 선정성을 드러냈다. 걸쭉한 음식이 소녀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클로즈업하고 슬로우 모션으로 자세히 보여주는 장면들은 만일 그것이 식욕과 성욕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은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기막힌 컷으로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그런 영화가 아니다. 실제로 먹방이라는 허울 아래 소녀까지 등장시켜 푸드 포르노를 극대화한 장면일 뿐이었다.

 

그것은 먹방이 본태적으로 갖고 있는 선정성은 물론이고, 최근 걸 그룹들이 방송에서 어떻게 선정적으로 소비되고 있는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미 이런 기형적으로 되어가는 걸 그룹 소비방식이 주는 불편함은 도처에서 그 징후를 드러낸 바 있다. 여름철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걸 그룹들의 섹시 경쟁은 이제는 식상해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의 실종이나 꿀벅지베이글이니 하는 입에 담기도 불편한 표현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에서 통용되는 용어처럼 되어버렸고, 이러한 섹시 이미지에 더해 오빠애교로 대변되는 귀여운 이미지까지 걸 그룹들은 동시에 수용해야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프로듀스101>은 걸 그룹들이 어째서 노래만으로 승부할 수 없는가를 우리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채 피라미드형 삼각대형 무대에 올라가 군무를 추며 픽미!”를 외치는 그들의 절박함을 방송은 온전히 활용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호통치고 면박을 주고 경쟁에서의 탈락을 통해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경쟁하면서도 같은 위치에 서 있는 그 아픔들을 보듬는 선의까지 방송을 통해 소비되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 안에서 노래와 춤 같은 음악 자체는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 <슈퍼스타K><K팝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거기 출연한 이들의 음악에 집중하게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다. 대신 방송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소녀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되었다. 누가 누구를 도와줬고, 누구는 자신만 살기 위한 이기심을 드러냈다가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것이 본래 오디션 형식을 갖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의 생리일 수 있지만, 특이하게도 이 소녀들은 음악 자체보다 이미지로 더 많이 소비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것은 어쩌면 경쟁의 소산일 수 있었다. 즉 경쟁적으로 걸 그룹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또 그네들의 음악이라는 것이 확실한 변별력을 갖기보다는 너무 비슷비슷해 이른바 섹시와 큐티 사이의 이미지를 반복하는 걸 그룹 노래라는 틀로 뭉뚱그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음악 이외의 방법으로 자신들을 드러낼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결국은 방송이다. 이제 방송에 나가게 된다면 무엇이든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토크쇼에서 뜬금없이 춤을 춰달라는 요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자리에서 민망할 수 있는 춤을 춰야 하고, 당당한 자신의 직능으로서의 가수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로해줘야 하는 그런 존재로서 이미지 메이킹 되어야 한다. 심지어 그들이 누군가의 선물로 소비되는 방송 속에서 걸 그룹이 갖고 있는 가수로서의 존재감은 희석되어 버린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그들의 절박함을 미끼로 섹시와 큐티와 정숙까지를 요구받으며 끊임없이 기형적으로 소비되는 소녀 이미지.

 

과연 지금 우리에게 걸 그룹은 가수가 맞을까. 물론 음원차트 속에서 걸 그룹은 노래로 소비되지만 그 노래조차도 음률과 가사의 묘미라기보다는 섹시와 큐티와 정숙이 뒤범벅된 소녀 이미지들인 경우가 적지 않다. 모든 걸 그룹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치열해진 청춘들의 전선들처럼 이들 걸 그룹들은 가수로서의 본질 그 이상의 이미지를 소비하면서까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문제는 이것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즐기며 내재화하는 일이 가져올 악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지금의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거의 다 내포되어 있다. 자신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해진 경쟁사회와, 사적인 것들마저 무대 위에 올라 소비되는 투명사회, 우리에게 너무도 깊게 내재화되어 그것이 무슨 잘못인지도 모른 채 행해지는 기형적인 성 소비들 같은 문제들이 거기에는 뒤얽혀있다. 무엇보다 이런 방송들을 통해 어차피 세상은 다 저렇다고 체념하고 포기하며 나아가 순응하게 되는 청춘들의 냉소적인 시선은 어쩌면 가장 끔찍한 우리 사회의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걸 그룹은 어째서 온전히 가수로서 설 수 없게 된 걸까. 청춘들이 그 나이에 걸맞게 도전하고 즐기며 살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원티드>는 과연 시청률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까

 

미션으로 제시된 목표 시청률은 20%. 만일 이 시청률을 넘기지 못하면 아이가 죽는다. SBS 월화드라마 <원티드>에서 여배우 정해인(김아중)은 아들 현우의 유괴범이 제시한 라이브 방송에서 그런 미션 시청률을 달성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진다. 그녀는 아들을 구해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범인이 내는 미션들을 해결해야 한다.

 

'원티드(사진출처:SBS)'

그 미션에 목표 시청률 20%가 들어가 있다는 건 흥미롭다. 왜 하필 범인은 정해인으로 하여금 높은 시청률을 거두는 방송을 하게 만든 것일까. 추정되는 이유들은 너무나 많다. 범인이 방송관계자라면 높은 시청률을 통해 이익을 가지려는 것일 게다. 정해인의 스토커라면 그녀를 자신의 뜻대로 방송에서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기 위함일 수 있다. 어쩌면 정해인의 방송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려는 범인의 의도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드라마가 좀더 뒤로 가야 확실해질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목표 시청률 20%를 내세웠다는 건, <원티드>라는 드라마가 방송의 선정성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낸다. 20%를 무조건 달성하기 위해서, 그래서 아들을 무사히 구해내기 위해서, 정해인은 선정적인 방송도 불사해야 한다. 첫 번째 미션으로 차 트렁크에서 발견한 아이의 엄마가 학대받았다는 걸 굳이 증명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그 옷을 찢는 행위는 그래서 그 의도가 시청률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결국 이러한 방송의 선정성은 이 엄마와 아이가 받은 학대만큼 가혹할 수 있다. <원티드>에서는 방송이 표방하고 있는 아이를 구하려는 한 여배우의 간절함이라는 겉면 뒤편에 그것을 통한 저마다의 또 다른 목적들이 어른거린다. 사건을 추적하는 기자는 아이의 생명보다 특종을 얻고 그 르뽀를 책으로 출간하려고 하고, 형사는 사건을 해결해 진급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물론 방송의 목적 역시 아이를 구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시청률이다. 그 시청률 뒤에는 방송사의 이익과 방송사와 연결된 정치까지 엮어져 있다.

 

아이의 유괴라는 그 본질은 표방되고 있을 뿐 저마다 각자의 욕망들이 그 이면에서 꿈틀댄다. <원티드>에서 이런 허깨비들이 아닌 본질에 가까운 이들은 엄마인 정해인과 아이 그리고 유일하게 진심으로 아이를 구하려 노력하는 형사 차승인 뿐이다. 그들은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아이를 구하려 어떤 짓이든 하는 것이지만,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 이들은 심지어 정해인과 범인이 투톱인 드라마를 찍는 것이라 여기며 범인의 별명을 뭐라 지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 선정적인 방송의 신출내기 조연출 박보연(전효성)의 시선은 희비가 교차된다.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정해인의 원티드라는 방송에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것에 반색하다가, 방송국 앞에서 선정예능물러가라고 데모하는 이들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녀 역시 이래도 되는가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고민을 싹 지워버리는 건 방송국에 게시된 이 프로그램의 높은 시청률이다. 20.3% 시청률을 확인한 그녀는 다시 웃음을 짓는다.

 

이것은 시청률의 마법(?)이 아닐 수 없다. 그 수치를 위해서는 아이의 생명 따위는 선정적인 방송의 소재로 소비되어 버린다. 저 신출내기 조연출 박보연이 갖는 양가적인 감정처럼, 처음에는 방송이 지켜야할 어떤 선들이 시청률이 주는 쾌감들과 교차하며 심사를 복잡하게 했을 것이지만 점점 깊숙이 그 시청률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면 베테랑 작가 연우신(박효주)이나 신동욱(엄태웅) PD처럼 비정해진다.

 

어쩌면 이 세계는 비정한 어른들의 세계를 표징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이가 유괴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자신들의 게임만을 하고 있다. 아이에게 진술을 받던 형사 차승인(지현우)은 문득 이런 이야기를 건넨다. “네가 절대 잘못한 게 아냐. 어른들이 잘못한 거야. 내가 어른들을 대표해서 사과할게.” 그건 진심일 것이다. 시청률 지상주의처럼 저들만의 목표로 현실이 질주하고 있지만 정작 그 대상인 아이는 소외되고 있는 현실.

 

<원티드>는 그 시청률 지상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시청률 지상주의를 지향하는 자극적인 방송의 양상들이 드라마의 극성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에서 범인이 내세우고 있는 20% 시청률이라는 목적은 <원티드>라는 드라마 역시 벗어날 수 없는 목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티드>라는 드라마의 실제 시청률은 6%에 머물러 있다. <원티드>는 과연 이 시청률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까. 드라마가 메시지로 던지고 있는 것처럼, <원티드>는 시청률과 무관하게 끝까지 할 이야기를 해내는 드라마가 될 수 있을까. 모쪼록 좋은 메시지가 좋은 시청률로 이어지길 바라지만 현실이 그것을 받쳐줄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내부자들>, 더러워 보기 싫다면서도 기꺼이 보는 까닭

 

영화 <내부자들>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서 600만 관객 돌파란 기록은 놀라운 일이다. 이 흐름이라면 <아저씨(617)>, <킹스맨(612)>의 기록도 갈아치울 기세다.

 


사진출처: 영화 <내부자들>

<내부자들>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된 것은 이 영화의 폭력성과 선정성이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저 조폭들이 치고 박는 수준의 폭력성이 아니라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장면도 버젓이 나오고, 그저 베드신이 아니라 난잡하다 못해 더럽게까지 느껴지는 섹스 파티가 등장한다. 그러니 청소년 관람불가 딱지를 달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그래서 두 가지 반응을 보낸다. 너무 더러워 생각하기도 싫다는 반응이 그 첫 번째다. 폭력성이야 차치하고라도 나이 지긋한 재벌 총수와 언론인, 정치인, 법조인이 홀딱 벗고 나와 나체의 여성들의 시중을 받으며 파티를 벌이는 장면은 정말 볼썽사납다. 성기로 맥주잔 위에 놓인 위스키 잔을 때려 폭탄주를 제조하는 장면은 여성 관객들이 본다면 대단한 혐오감을 줄만한 장면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600만 관객을 돌파한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것은 이 영화의 두 번째 반응, 즉 폭로의 통쾌함에서 나온다. 이 영화는 거의 끝나기 직전까지도 너무도 단단해 결코 깨지지 않을 재계와 언론, 정계, 법조계의 카르텔을 보여준다. 그 카르텔은 물리적인 힘이면 힘, 정치력이면 정치력, 여론을 쥐고 흔드는 언론 권력, 그리고 불법조차 덮어버리는 사법의 부당한 권력까지 보는 이들이 절망적일 정도로 공고하다.

 

그래서 관객은 그 카르텔이 무너지는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보게 마련이지만 사실 그 결과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 영화가 주목하는 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기 힘든 그 판타지적 결말이 아니라 그들의 더러움 자체를 폭로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내부자들>인 것은 그 권력의 내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도대체 그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신문지상이나 뉴스를 통해 나오는 재벌총수나 언론인, 정치인, 검사의 모습은 단정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그 모습이 진짜인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자들>은 비리에 연루된 그들의 진면목에 천착한다. 그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추악한가를 폭로한다.

 

그래서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권력자들은 마치 괴물처럼 그려진다.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하고 심지어 누군가를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이 벌이는 파티는 마치 악마들의 파티처럼 보인다. 물론 그 내부는 단단히 봉인되어 있는 것이지만 <내부자들>은 영화의 권리로서 그 내부를 들여다본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그 봉인된 내부가 외부에 폭로되는 그 자체에 어떤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애초에 과한 폭력과 선정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의미 자체도 퇴색되는 영화다. 그 폭력과 선정성이 내부의 더러움으로 그려지고 그 더러움이 외부에 폭로되는 순간. 그 때가 <내부자들>이 폭발력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클라라에 가려진 이규태 회장이 의미하는 것

 

클라라 논란은 빙산의 일각이었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최근 클라라와의 진실공방 논란을 벌였던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의 실체를 추적했다. 대중들에게 남겨진 이규태 회장의 이미지란 클라라와 진실공방을 벌이면서 한 연예매체가 공개한 SNS의 문자 내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더 컸다. 이 문자 내용이 공개되면서 클라라가 주장했던 성적 수치심발언은 뒤집어졌다. 거꾸로 그녀가 마치 이규태 회장을 유혹한 것처럼 여겨지게 만든 것.

 

'그것이 알고 싶다(사진출처:SBS)'

연예매체가 문자 내용을 공개하면서 기사화된 내용에는 클라라의 화보 사진을 선정적으로 공개하면서 이런 사진을 왜 이규태 회장에게 보냈는가에 대한 의혹 제기도 들어있다. 이 기사가 나가고 클라라는 호된 역풍을 맞았다. 대신 항간에서는 이규태 회장이 점잖은 분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그 점잖은 이미지의 이규태 회장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추적했다.

 

사실 클라라와 이규태 회장 중 누가 잘 했고 잘못했는가는 여전히 알 수 없고 또 그것이 그리 중요한 사안도 아니다. 그것은 이규태 회장의 추적 과정에서 보여진 방산 비리의 흔적들이 그런 연예계 스캔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수 천 억에 달하는 국민들의 혈세가 무기 거래상인 이규태 회장의 비리에 의해 사적으로 유용되고 착복되었다면 그것은 국민의 공분을 살만한 일이다.

 

실제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추적 보도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클라라와의 스캔들 문제보다 큰 것은 그녀를 로비스트로 키우려 했다는 의혹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연예계 스캔들을 넘어서 거대한 비리의 한 단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규태 회장의 육성으로 공개된 클라라에 대한 협박내용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이면에 놓여진 그의 무소불위의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실로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여준 교회 한 가운데 마련된 이규태 회장의 비밀의 방은 마치 그의 실체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교회에 이러한 비밀의 방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규태 회장이 얼마나 치밀한 사람인가를 가늠하게 한다. 교회는 수사기관이라고 해도 결코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러니 그 안에 어떤 중요한 자료들을 숨기거나 아니면 문제가 생겼을 때 피신하고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발상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클라라 스캔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이규태 회장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을 다룬 것은 그만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대중들에게는 사실 연예계 스캔들에 가려져 그 이면에 있는 정치적 사안들이나 국가적 비리들을 놓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예 매체의 선정적인 보도는 그 자체로 실체를 흐리는 역기능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제기한 것처럼 클라라 스캔들에서 심각한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클라라 스캔들의 선정성 때문에 가려질 수 있었던 더 중대한 국민적 사안으로서의 이규태 회장의 실체에 대한 문제제기. 연예계 스캔들에 시선을 빼앗길 때 우리가 어떤 더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사안에 더 분노해야할까.

 

<앵그리맘>의 선정성, 논란이 되지 않으려면

 

MBC <앵그리맘>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학내의 폭력은 물론이고 교사와 학생 간의 원조교제 교사와 조폭과의 커넥션 심지어는 교사가 조폭을 시켜 청부살해를 요청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물론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명성고등학교처럼 심각한 폭력과 전횡에 노출된 학교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극화된 부분이 많고 과장된 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앵그리맘(사진출처:MBC)'

이처럼 극화를 통한 과장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그 학교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그 첫 번째다. 이것은 <앵그리맘>이 극화되어 있다고 해도 그 과장을 어느 정도 허용하게 만드는 근거가 될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가 사회의 현실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목적, 즉 그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상황을 이끌어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것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그것은 그저 드라마의 자극적인 소비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앵그리맘> 즉 분노하는 엄마라는 존재가 정당하려면 학교 문제에 대해 사적인 접근이 아니라 지극히 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 법적 정의가 아니라 사적 복수라고 하더라도 사적인 의미로 흐르게 되면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첫 회에 조강자(김희선)라는 엄마는 이러한 학교 폭력 문제에 분노하는 존재로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조강자가 학내 폭력의 뒤편에 서 있는 조폭 안동칠(김희원)과 사적으로 얽힌 사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드라마의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다.

 

안동칠의 동생과 조강자가 사귀는 사이였고 그걸 반대하던 안동칠과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그 동생이 칼에 맞아 죽는 사고를 당했던 것. 이런 사적인 상황의 우연한 연루는 드라마의 개연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공적인 존재로서의 조강자라는 엄마의 행동을 지극히 사적인 행동(과거의 사건과 연루된)으로 보이게 만드는 위험성이 있다.

 

신문지상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학교 폭력의 실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그러니 그런 실상을 조금 극화해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정당한 기획의도가 있다면 무리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기획의도가 엉뚱하게 흐르거나 공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사적인 이야기에 치중되기 시작하면 드라마는 학교 폭력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빌미로 자극과 선정성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심지어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교육효과를 만들 수도 있다. <앵그리맘>이 위험해지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딸의 복수를 위해 엄마가 주먹을 드는 이야기는 우리네 교육 현실에서 공감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흐를 위험성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박노아(지현우)라는 선생님의 존재다. 그의 아버지인 판사 박진호(전국환)는 분재를 하며 아들에게 자신은 이렇게 잘못된 가지를 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교사는 햇볕이나 비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잘못 자라고 있다고 해도 햇볕을 늘 비추고 비는 늘 내려주기 마련이라고. 즉 교사라는 존재가 아이들을 판정하고 재단하는 인물이 아니라 모든 걸 받아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얘기다.

 

<앵그리맘>은 학교 폭력에 대한 두 가지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 하나는 조강자로 대변되는 방식으로 부조리한 현실에 주먹으로 맞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박노아로 대변되는 방식으로 그런 학생들을 사랑과 배려로 끌어안는 것이다. 전자가 드라마적 판타지와 쾌감을 선사한다면 후자는 드라마의 의미를 담아낸다. 박노아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종말에 이른 학내 상황에 아이들을 태워줄 방주를 짓는 존재다.

 

<앵그리맘>은 자칫 선정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다분한 드라마다. 어느 순간 공적인 의미를 상실하거나 자극적인 상황으로 기울게 되면 드라마는 균형을 잃을 위험성이 크다. 조강자만큼 박노아가 중요해지는 건 그래서다. 이 두 인물의 균형이 적절히 이루어질 때 드라마는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김민준 논란, 그 선정성과 연예언론의 현실

 

기사를 먼저 접했던 이들이라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김민준이 버젓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있는 사진이 들어가 있고, 기사 내용은 그 욕이 기자는 물론이고 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상식적이다. 제 아무리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라도 팬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연예인이 있을까.

 

'나혼자 산다(사진출처:MBC)'

그것은 아마도 팬이 아니라 기자를 향해 날리는 불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도의 표현이 나왔을 정도라면 그만한 촉발의 이유도 있었을 법하다. 기자들의 요구에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다가 실랑이가 벌어졌다거나 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상식적이니까.

 

하지만 기사 내용은 거의 일방적이다. 김민준이 욕을 했다면 왜 그런 반응까지를 보이게 됐는지에 대한 전후 사정이 충분히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기사가 이유로 제시한 것은 김민준의 성격이 다혈질이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기사는 이전에 있었던 서브남주논란까지 덧붙여 이 모든 행동이 김민준이 본래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몰아세웠다.

 

연예인은 공인이라는 논리가 내세워졌다. 하지만 과연 연예인은 공인인가. 연예인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연예인에게 마치 정치인이나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공인의 책임을 무는 것은 과도하다. 여기서 공인이라는 논리에 여지없이 등장하는 건, 이른바 대중들의 볼 권리’, ‘알 권리. 하지만 언제 대중이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볼 권리를 주장했던가. 그것은 언론이 부추긴 욕망일 뿐이다. 대중들은 심지어 공해처럼 쏟아지는 사적인 사진들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연예인이 공인도 아니고, 그 자리가 공적인 자리도 아니었다면 김민준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린 것은 사적인 자리에서의 지극히 사적인 행동이라는 얘기다. 그것이 적절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사적인 행동에 대해 공적인 잣대를 드리워 매도하는 건 부적절한 일이다. 그리고 기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거기에는 악의적인 뉘앙스마저 묻어난다.

 

기사가 처음 올라왔을 때 대중들의 반응은 대부분 김민준의 행동에 대한 비난이 많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기사 자체가 그것을 상당부분 야기시켰기 때문이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린 김민준의 사진은 마치 그 기사를 읽는 대중들에게 욕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민준이 욕을 날린 건 대중들이 아니라 기자일 것이다. 즉 기사는 기자에게 날아온 욕을 대중들에게 날린 욕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초반에 비난하던 대중들이 차츰 김민준보다 기자와 언론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은 결국 이 사안의 실체를 조금씩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사화된 김민준 사진이 주는 충격이 조금씩 가라앉는 순간에, 기자들의 과도한 연예인 사생활 취재경쟁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던 것이다.

 

최근 들어 연예인의 사적인 생활을 찍어대는 이른바 파파라치성 기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그 책임이 해당 기자에게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마도 이번 김민준의 사진을 찍은 기자들 역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생각해보면 왜 자신이 그토록 경쟁적으로 셔터를 눌러대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기자들도 불편해 하는 상대방을 즐기듯이 사진을 찍는 이들은 없다. 그것은 연예인의 사생활 사진에 대한 언론사들의 과도한 경쟁구도가 부추겨 억지로 만들어진 일일 가능성이 크다.

 

기자를 기레기라고까지 표현하며 욕을 하지만 사실 기자들 역시 언론사의 방침에 의해 하기 싫어도 욕먹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생활인들이다. 결국 이런 문제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 위해서 변화되어야 할 것은 언론사들이다. 물론 연예 언론의 특성상 스캔들과 가십에 민감할 수 있다는 건 이해되는 일이지만, 그것이 경쟁적으로 이뤄지는 건 적어도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자제되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이번 김민준 논란에서는 안타깝게도 지금 현재 연예 언론이 처한 현실이 묻어난다. 어떤 기자도 파파라치식의 사진과 글을 쓰고 싶어 기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쟁적인 현실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김민준 논란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그 사진이 주는 선정성이 아니다. 그런 사진조차 찍혀 기사화되는 안타까운 우리네 언론의 현실이다.

예정된 논란을 먹고 사는 이상한 방송, <화성인>

 

지난 27일 방영된 tvN <화성인 X파일(이하 화성인)>에 나온 이른바 ‘시스터보이’는 도를 넘은 이 논란 방송의 정체를 보여주었다. ‘시스터보이’. 마마보이에서 따온 이 작명은 누나들이 동생의 엄마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포장되었지만, 그 실체는 ‘선정성’ 그 자체였다. 다 큰 남동생을 거의 업어 키우다시피 하고, 1분마다 뽀뽀를 해대며 엉덩이를 만지고 가슴에 입바람을 불어 넣는 등 지나친 스킨십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잠잘 때까지 꼭 껴안고 자는 모습은 이게 친 남매가 맞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자아내게 만들었다.

 

'화성인X파일(사진출처:tvN)'

사실 누나가 아니라 엄마라고 하더라도 다 큰 아들이라면 이러한 스킨십 자체가 어색했을 것이다. 물론 <화성인>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이렇게 ‘특이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넘어서지 않아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조작 논란까지 나오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것이 제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라는 화성인이라고 하더라도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화성인>의 조작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출연자들의 상당 부분이 쇼핑몰 관련된 일들을 하는 경우가 많아 끊임없이 홍보 목적의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논란이 생겨왔던 게 사실이다. 이번 시스터보이 논란에서도 이 대목이 빠지지 않는다. 시스터보이 도한봉씨가 2012년부터 인터넷 얼짱 출신으로 피팅모델 경력이 있다고 네티즌들은 주장하고 있는 것. 결국 ‘다른 목적’으로 조작방송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SNS 상에 조작을 주장하다가 이를 다시 부인한 것에 대해서 문태주 PD는 직접 만나 확인한 결과 “악성 댓글에 상처를 받아서 사실을 부인했다고 하더라”고 밝혔다며 방송은 조작이 아님을 설명했다. 또 문태주 PD는 모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화성인들은 일반인들로, 평범하게 살던 분들이다. 방송이후 악플에 시달리다보면 항상 논란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부인을 하는 것”이라며 “<화성인>이 조작 논란에 왕왕 휩싸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문태주 PD의 인터뷰 내용 속에는 이 프로그램의 성격이 은연 중에 드러나 있다. 즉 <화성인>은 그 방송 자체가 조작 논란이 생길 수 있고, 또 방송 이후에 출연한 일반인들이 악플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시스터보이 역시 방영되었을 때 이 정도의 노이즈가 만들어질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는 PD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미 밝혀진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굳이 그렇게 한 일반인에게 집중적인 악플이 쏟아질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하는 것일까.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논란을 먹고 자라는 프로그램. 그리고 이들은 논란이 나올 때마다 원론적인 이야기로 문제를 덮으려고 한다. 즉 <화성인>은 ‘남다른 사상과 가치관을 가진 분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며, ‘다르다는 것이 나쁘다거나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는 얘기다. 얼핏 들으면 다양성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다양성의 가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자칫 다양성을 빌미삼아 논란 방송을 일관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다양성의 가치를 호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시스터보이라는 화성인은 물론 존재할 수 있다. 진짜 엄마를 대신해 애틋한 마음을 가진 누나를 다루는 건 어쩌면 훈훈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송이 시스터보이라고 하면서 보여준 장면들을 보라. 대부분이 스킨십에만 집중적으로 맞춰져 있었던 것은 그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그대로 말해주는 대목이 아닌가. 다양성 운운하면서 적당히 포장해 선정적인 논란 방송을 추구하는 이 이상한 프로그램을 언제까지 참고 봐야 하는 것일까.

걸그룹 섹시 경쟁, 과연 효과는 있었을까

 

걸그룹들의 섹시 경쟁에 대한 선정성 비판은 이제 너무 흔해서 식상해져버렸다. 제 아무리 비판의 목소리가 나와도, 너도 나도 벗고 벌리고 쓰다듬고 엉덩이를 대놓고 흔들어대는 통에 선정성을 비판하는 글들마저 마치 그들을 홍보하는 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정성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그 실효성에 대해 얘기해보자. 과연 이런 섹시 경쟁 마케팅은 효과가 있는 것일까.

 

'사진출처:애프터스쿨'

먼저 대중들을 주목시키는 방법으로는 분명 효과가 있다. 결국 걸그룹들이 노출 경쟁을 벌이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너무 많은 걸그룹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 있다. 따라서 아무런 콘셉트 없이 등장했다가는 그저 묻혀버릴 판이다. 적어도 인터넷에 화제가 될 만큼의 주목도를 확보한 후에야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음악이 비로소 들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티저나 뮤직비디오, 쇼케이스에서의 이벤트가 과감해지는 것.

 

애프터스쿨의 핫팬츠 차림으로 추는 봉 댄스, 달샤벳의 치마를 열어젖히는 동작, 걸스데이의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하의실종에 꼬리를 흔드는 동작은 과감하다기보다는 너무 과해서 보는 이들이 민망해질 정도다. 팬티에 가까운 의상이나 티저를 통한 팬티 노출도 마찬가지다. 이승철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민다리에 티저 팬티에 착시의상? 이런 식으로 활동시키는 건 옳지 않습니다.”라는 글까지 남긴 데는 이미 너무 포화상태가 되어버린 작금의 섹시경쟁을 에둘러 보여준다.

 

선정성은 퍼포먼스뿐만이 아니다. 몇몇 걸그룹의 노래는 가사가 지나치게 성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인상이 짙다. 대표적인 노래가 달샤벳의 ‘내 다리를 봐’다. 이 노래의 가사는 ‘눈말고 다리를’ 보라고 하고 ‘손을 놓고 나를 안으라’고 하면서 ‘고민은 그만’하라고 부추긴다. 시쳇말로 ‘진도 나가자’는 말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가사에 담아낸다는 것이 쑥스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걸스데이의 ‘여자 대통령’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 네가 먼저 다가가서 ‘키스하라’고 말한다. 도대체 여자 대통령과 키스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선정적인 가사를 이들은 ‘당당한 여성’이라고 포장하는 중이다. 하지만 성적으로 자신을 과감하게 노출하고 어필하며 때로는 공격적으로 애정 행위를 하는 것이 ‘당당한 여성’의 징표일까. 이것은 그냥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신을 성 상품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당한 여성’이란 그런 누군가의 시선이나 관계에 포획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 행위들을 ‘당당한 여성’이라 오도하는 것은 자칫 청소년들에게는 심각한 착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소위 당당한(?) 걸그룹들의 섹시 경쟁은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달샤벳은 처음 퍼포먼스를 보였을 때만 살짝 순위에 올랐다가 금세 잊혀져 버렸고, 애프터스쿨은 그 파격적인 봉춤 퍼포먼스로 시선을 끌었을 뿐 노래와 연동되지 않는 바람에 역시 금세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걸스데이는 이제 시작이지만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섹시 퍼포먼스나 의상, 티저를 보이고도 살아남은 이들도 있다. 김예림이나 이효리, 씨스타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살아남은 것은 섹시 콘셉트가 아니라 음악 자체의 힘 때문이다. 너무 많은 여자 가수들이 경쟁을 하기에 어떤 식으로든 주목시키기 위한 마케팅으로서의 섹시 콘셉트를 내세웠지만, 이들은 좋은 음악으로 그 주목도를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으로 이끌었다. 결국 제 아무리 벗고 나와도 음악이 받쳐주지 않으면 금세 시들해져버린다는 것이다.

 

이른바 섹시 콘셉트의 가장 큰 문제는 점점 높은 강도의 자극으로만 이어질 수 있을 뿐, 그 걸그룹의 음악적인 성취와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한 지나친 시각에의 집착은 오히려 음악이 들리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가수에게 남는 건 음악이다. 섹시 콘셉트가 모두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건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봉춤을 보여주기 위해 ‘첫사랑’이라는 곡이 맞춰진 듯한 느낌, 치마를 열어젖히는 동작을 보여주기 위해 ‘내 다리를 봐’라는 노래가 만들어진 듯한 이런 느낌으로는 이들 걸 그룹들의 미래는 지극히 어둡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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