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이 현재와 맞닿았던 지점들

 

KBS <징비록>이 종영 한 회를 남기고 있다. <정도전>을 이을 화제작으로 떠올랐지만 <징비록>은 생각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거기에는 <징비록>만의 난점들이 있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벌어지는 그 과정들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만들지만, 그것이 이순신이나 곽재우 같은 전장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기록을 남긴 류성룡(김상중)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징비록(사진출처:KBS)'

즉 시청자들로서는 좀 더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클한 임진왜란의 이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지만 이 사극은 그것보다는 류성룡이 피를 토하듯 써내려간 기록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당쟁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고 왕과 신하들의 무능함에 대한 질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쾌한 전쟁의 장면들을 기대하던 시청자라면 이 답답하고 심지어 분노를 일으키는 무능한 조정의 이야기에 가슴을 치게 됐을 것이다.

 

결국 <징비록>은 바로 그 답답함과 무능함에 대한 기록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바를 되새기는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스펙터클을 보며 통쾌해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순신 장군의 해전들을 저 뒤편으로 보내고 대신 전면에 무능한 왕 선조(김태우)의 이야기를 아프게도 바라보게 만든 건 시청률에는 불리할지 몰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징비록>의 힘은 류성룡이나 이순신(김석훈)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조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조는 한 마디로 드라마의 핵심적인 힘을 만들어내는 암 유발자로서의 면면을 보여주었다. 물론 실제 역사는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도주에 도주를 계속한 이유가 왕이 붙잡히면 끝나게 되어버리는 전쟁의 결과를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기록하지만,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춰지는 선조는 무능한 권력자가 만들어내는 국가의 비극으로 다가온다.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메르스 공포로까지 이어지며 드러난 콘트롤 타워의 부재는 신 징비록을 백서로 남겨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니 선조가 하는 일련의 선택들은 백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것이라고 읽힐 수밖에 없었다. 류성룡은 그런 선조 앞에서 그 답답함에 무릎을 꿇고 통탄하기도 하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고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바뀌지 않는 선조 앞에서 류성룡의 마음은 시청자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징비록>9할은 결국 선조가 이끈 셈이 되었다. 그의 무능과 답답함은 시청자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그 감정을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드라마는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상황을 빚어낸 선조의 실정을 통해 지금의 현실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백성들이 그토록 힘겨운 현실을 살게 된 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선조를 연기한 김태우는 그 역할을 200% 소화해냄으로써 드라마가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흘러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측은하고 한편으로는 복장 터지게 만드는 소심함을 보여주면서 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자가 왕의 자리에 있게 됨으로써 벌어지는 국가적 비극을 제대로 그려냈다



<징비록>, 선조에 실망할수록 광해를 희망하게 되는 까닭

 

세상에 이런 통치자가 있을까. KBS <징비록>의 선조(김태우)는 임진왜란의 전란 통에 도성을 버리고 개성으로, 또 개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심지어는 평양마저 버리고 의주로 도주했다. 그것도 모자라 명나라로의 망명을 시도하려는 선조는 명나라 황제가 관전보(여진족과의 국경지대)의 빈 관아를 빌려주겠다는 굴욕적인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다.

 

'징비록(사진출처:KBS)'

자기 안위만을 위해 도망치며 절치부심운운 변명만 늘어놓는 선조에게 가까운 신하들조차 등을 돌렸다. 명나라 망명에 극렬하게 신하들이 반대하자 선조는 급기야 광해군(노영학)에게 조정을 맡기고 떠나는 분조(조정을 둘로 나눔)를 단행한다. 이런 선조에게 류성룡(김상중)필부처럼 행동 한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을 하기도 했다.

 

선조의 행동은 백성들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명나라 황제가 위로조로 보내온 은자를 신하들에게 포상으로 내리자 오히려 신하들은 이를 거부했다. 그 포상은 왕과 함께 도주하고 있는 자신들이 아니라 왜군과 싸우고 있는 병사들에게 가야 하는 것이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구휼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걸 선조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 전쟁과 기아로 고통 받는 백성들이 관아를 털어 군량미를 탈취하자 그들을 회유해 그 죄를 사해주는 대신 군량미를 회수한 류성룡의 처사에 선조는 발끈하는 모습이었다. 관아를 턴 백성들이 왜 그랬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들의 죄를 처벌하지 않은 류성룡의 처사와 이를 허한 광해군의 결정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

 

자신이 해야 할 소임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왕으로서의 존중을 받으려는 통치자. 도대체 그 누가 이런 통치자에게 지지를 표할 것이며, 존경을 표할 것인가. 게다가 선조는 백성들의 마음이 점점 광해군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불안해하며 분조를 거두고 자신이 국사를 맡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신하들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이런 행동은 이미 광해군을 중심으로 민심이 모여 국난 극복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터에 찬물을 뿌리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조를 보면 왜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게 됐는가 하는 이유가 명백해진다.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제 안위만을 살피는 통치자가 위에서 군림하는 한 그 국가가 온전할 리가 만무다. 심지어 평시에 그를 따르던 신하들조차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은 전시에 그 통치자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조의 무능을 넘어선 무개념은 새롭게 등장한 광해군의 행보를 하나의 희망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는 도망치기 보다는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진을 혼란시키고 관군을 독려하는 길을 선택하려 한다. 그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류성룡의 마음은 아마도 당대의 백성들의 마음이자 지금 현재 이 사극을 바라보고 있는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것이다.

 

MBC 사극 <화정>은 바로 그 선조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죽어가는 선조 앞에서 광해는 절규한다.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 선조에 대한 깊은 원망을 광해는 드러낸다. 역사는 광해를 이라는 호칭을 붙여 폭군으로 기록하지만 <징비록>을 통해 선조의 행위를 보다 보면 광해의 깊은 고통이 이해가 된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선조는 도대체 무얼 했단 말인가. 그러면서 그 위기에 맞섰던 광해를 내치려 한다는 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징비록><화정>이 기묘하게도 선조에서 광해군에 이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그 이야기에 지금의 대중들이 호응하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들이 이 두 사극을 통해 많은 것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선조에 대해 실망할수록 광해에 대한 지지의 마음이 커져가는 건 그래서 당대의 백성이나 지금의 시청자들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화정>의 새로움, MBC 사극 되살릴까

 

어느 입장 하나 공감가지 않는 게 없다. MBC 월화 사극 <화정>이 그리는 캐릭터들의 특징이다. 먼저 이 사극의 중심에 서 있는 광해군(차승원)을 떠올려보라. 역사가 기록한 폭군의 시각을 벗어나 이 사극은 왜 광해군이 그렇게 냉혹한 결정들(친족들을 제거한 일)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화정(사진출처:MBC)'

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박영규)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세워졌으나 끝내 인정을 받지 못한 왕. 그로 인해 그를 따르는 대신들도 없는 상황에 지지 없는 왕좌 위에서 어린 영창대군을 앞세워 시시각각 용상을 넘보는 이들을 보며 서운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왕. 영창대군과 정명공주가 잠시 궁을 빠져나간 일로 그들을 제거하려 했다는 누명까지 쓰는 왕. 광해군이 왜 냉혹해졌는가 하는 그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광해군과 맞서 있는 영창대군의 모친 인목대비(신은정)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의 선택들 역시 공감할 수밖에 없다. 광해군 스스로도 잘 알고 있듯이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영창대군의 안위다. 그래서 선조가 독살 당하던 날 영창대군을 제거하려 한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녀로 하여금 광해군을 믿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결국 이 시도를 한 주범인 임해(최종환)를 내침으로써 광해군은 비로소 인목대비로부터 왕위의 재가받을 수 있게 된 것.

 

그렇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인목대비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끝없이 그 불안감을 부추기며 영창대군을 왕위에 세우려는 외척들은 그녀가 왕좌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모성애만큼 잔인한 게 없다고 하던가. 인목대비의 선택은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욕망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어린 시절 광해군을 세자라 부르기 보다는 줄곧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자라났던 정명공주(정찬비)는 광해군과 인목대비 사이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광해군이 임해를 살해하고 자신과 영창대군까지 죽이려 할 것이라는 백성들의 이야기에 그녀는 불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야기 사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그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정명공주가 광해군을 오라버니가 아닌 전하라고 부르자 광해군은 그녀의 변화를 직감하고는 쓸쓸해진다. 하지만 돌아서는 길, 정명공주가 오라버니라 부르며 대보름날 더위를 사가라고 하자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렇게 오래오래 매년 더위를 사가라는 정명공주의 이야기에 두 사람이 모두 눈물을 글썽이게 된 건 그들의 애틋한 오빠 동생 관계를 확인하는 동시에 그들이 처한 외적인 상황들이 겹쳐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찔한 성벽 위에서 발을 헛디딜 뻔한 영창대군의 손을 잡아주며 광해군은 너무 위험한 곳에 올라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괜스레 두려운 영창대군이 뒷걸음질을 치자 광해군은 내가 두려우냐?”고 물으며 자신도 네가 두렵다고 고백한다.

 

고립무원 광해군의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 이해되는 반면, 인목대비의 모성애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또한 정명공주의 갈등 역시 공감이 간다.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캐릭터들이 이렇게 저마다의 입장을 설득하고 있다는 건 <화정>이라는 사극의 새로운 면모다.

 

사극이라고 하면 역사를 다룰 수밖에 없고, 그 역사는 어떤 식으로든 한 사람의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구시대적 관점이다. 지금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들이 공유되는 시대다. 그러니 <화정>이 제시하는 이 다각적인 입장들의 충돌은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도로서 다가온다.

 

MBC 사극은 지금껏 1인칭 시점의 이야기들을 풀어온 바 있다. <대장금>이나 <상도>, <허준>, <선덕여왕>, <이산> 등등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사극은 그들의 관점으로 일대기를 다루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극의 관점은 이제는 조금 패턴화된 면이 있다. 따라서 이 문법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화정>의 시도는 참신하게 다가온다. 그간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던 MBC 사극. <화정>은 그 MBC 사극을 되살릴 수 있을까.

 

풍자 세진 <개콘>, 현실을 떠올리는 <징비록>

 

지금 대중들의 마음이 꼭 저렇지 않을까. KBS <징비록>이 공교롭게도 보여준 선조(김태우)의 파천 장면은 대중들로 하여금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음에도 제 한 목숨 살기 위해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선조. 그를 막아 세운 백성들은 이럴 거면 나라는 무슨 소용이고 임금이 왜 있어야 되느냐고 토로했다.

 

'징비록(사진출처:KBS)'

사극의 힘은 과거의 박제된 역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명백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그저 임진왜란 당시 벌어졌던 기록이지만, 재현된 기록은 지금 현재를 상기시킨다. 세월호 1주년에 성완종 리스트로 시끌시끌한 현 시국이 아닌가. 대중들에게 <징비록>의 이 한 장면이 새롭게 읽히게 된 데는 그만한 민심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민상토론이라는 코너 역시 마찬가지다. <징비록>이 역사를 가져와 현실을 상기시킨다면, 이 개그 코너는 현 시국의 문제를 개그의 무대 위로 올려놓았다. “지금 이 시기에 외국에 나가셔야겠습니까?” 물론 이 질문은 유민상이 해외라도 나가야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 이 토크쇼의 진행자 역할인 박영진이 추궁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 질문이 집권 3년차 박근혜 정부 중간평가라는 말과 어우러지면 현 시국에 대한 뉘앙스를 갖게 된다. 외압이 들어올까봐 현실과 무관하게 몸으로 웃기거나 바보 행세로 웃기는 개그맨들을 앉혀놓고 시국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민상토론은 그래서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 시국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특정한 단어들의 조합이 에둘러 현실을 풍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첫 방송에서부터 무상급식 중단 논란’, 수지와 이민호 열애설 기사에 묻힌 이명박 전 대통령의 2800억 기업특혜 의혹같은 뜨거운 사안들을 개그의 무대 위로 끄집어냄으로써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코너는, 그간 동혁이형이나 용감한 녀석들’, ‘사마귀유치원등에서 현실 문제를 직설적으로 거론했던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직접 비판하지 않아도 청년실업이라는 단어가 중동을 만나는 것이나, ‘리스트라는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현실적 의미를 확보하는 풍자.

 

<징비록><개그콘서트>에 최근 다시 집중된 이런 관심은 대중문화의 힘이 어디서 생겨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드라마나 코미디라는 틀 안에 매몰되지 않고 결국은 대중정서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현실 공감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힘이다. 항간에는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그간 대중들과 함께 걸어가지 못하던 KBS가 이제 대중들 곁으로 돌아오고 있는 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물론 그것은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현재 대중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또 어떤 것들을 원하고 있는가가 이런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서도 명백하게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지금의 민심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징비록>의 고충, 김태우의 명연기와 제작비 압박

 

드디어 이름과 얼굴만 잠시 등장하던 이순신(김석훈)이 옥포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는 장면이 등장했다. 하지만 KBS <징비록> 시청자들의 갈증을 풀어주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전투장면이 그다지 정교하게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징비록(사진출처:KBS)'

장군들의 얼굴과 육성으로 전투장면을 가름해온 건 KBS 사극이 늘 해왔던 관습이긴 하다. 제작비에 대한 압박이 심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해전신을 찍고 거기에 CG를 얹으려면 지금 현재 <징비록>의 제작비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징비록>의 전체 제작비는 고작 110억 원으로 이건 과거 <불멸의 이순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징비록>이 겨우 110억 원을 들여 임진왜란이라는 소재를 다루겠다고 나선 것은 이 사극을 전쟁 스펙타클이 아닌 정치 사극으로 그리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의 승리로서가 아니라, 류성룡(김상중)의 고군분투와 선조(김태우)의 잘못된 일련의 선택들 그리고 왕을 둘러싼 동인 서인 간의 붕당 등이 만들어낸 비극으로서 임진왜란을 다루겠다는 의도.

 

하지만 임진왜란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시청자들의 이순신에 대한 갈증을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에 대한 일종의 참회록에 가깝다. 그러니 끝없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당하기만 하는 조선의 상황들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청자들로서는 당시의 조선 백성들이 그러했을 법한 이 답답함을 풀어줄 한 줄기 희망으로서 이순신을 기다리게 된 것.

 

여기에 김태우가 그리는 선조라는 인물에 대한 섬세한 연기는 시청자들의 갈증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유약하고 때로는 고집스럽기까지 한 우매한 왕.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면서도 끝없이 명분만을 세우는 왕. 그래서 뒤늦게 백성들이 왜적에 의해 도륙당한 후에 겨우 눈물 몇 방울 흘리며 자책이나 하는 왕. 무엇보다 중차대한 시기에 혼자만 도망치는 왕의 모습은 지금의 대중들에게 혀를 차게 만든다.

 

김태우가 선조 연기를 더 실감나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이순신이나 곽재우(김영기)의 승전보를 보고 싶어하게 된다. 이것은 <징비록>이 처한 딜레마다. 적은 제작비로 정치 사극을 그리려 했던 <징비록>은 그 정치가 그려내는 무능함에 대한 답답증 때문에 이를 풀어내줄 스펙타클을 기대하게 되었다.

 

선조가 임진강에 배수진을 치고 왜적과 싸워 패전하는 장면은 그래서 몇 마디 대사로 처리되어 버리는 결과를 보여줬고, 이순신의 옥포 해전도 일방적인 화포 공격으로 이렇다 할 저항도 없이 무너지는 왜군의 모습을 보여주고는 단 한 척의 배도 단 한 명의 병사도 다치지 않았다는 대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러니 이 정도의 장면으로 시청자들이 만족할 수 있었겠는가.

 

김태우에 의해 실감나게 재연된 선조의 무능함을 계속 접하는 시청자들은 그 분통터지는 모습 때문에 심지어 왜군측을 응원하고 싶어질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 또한 선조를 위시한 당대의 정치인들의 모습이 지금 현재의 실망스런 정치와 맞닿아 생겨난 정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제작비는 한정되어 있는 걸. <징비록> 제작진의 미간에 골이 깊어지는 이유다.

 

<화정>이 흥미로워지는 지점, 욕망하는 존재들

 

차승원이 연기하는 광해군은 무엇이 다를까. MBC 월화 사극 <화정>이 다루고 있는 광해는 최근 들어 수차례 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재평가됐다. 역사에서 광해군은 사후에 이 붙여졌고 죽었을 때 붙는 묘호도 갖지 못한 왕이다. 하지만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최근 다뤄지는 광해군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훨씬 더 부각되는 면이 있다.

 

'화정(사진출처:MBC)'

<화정>의 광해군이 여타의 사극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그가 일면으로 그려지기보다는 다양한 입장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인 존재로서 그려진다는 점이다. <화정>에서 광해군은 어린 정명공주(허정은)에게 둘만 있는 자리에서는 세자저하가 아니라 오라버니라 부르라고 말할 정도로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어린 공주 앞에서 한없이 자애로운 눈빛을 보내는 광해군은 아버지 선조(박영규)가 죽어가는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독을 마시고 목이 타는 듯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선조에게 이를 거부하며 그는 외친다. “결국엔 이렇게 될 것을, 어찌 그토록 소자를 미워하셨습니까. 나는 전하와 다른 임금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 나라의 왕은 접니다. 아버지.” 즉 공주와 사적인 자리에서 보여준 광해군의 모습은 일면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죽어가는 선조 앞에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낸다.

 

광해군의 이런 모습은 <화정>이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화정>은 형제와 남매로 엮어진 사적인 관계에서의 모습과 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공적인 관계에서의 모습이 공존하는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광해군과 그의 형인 임해군(최종환)의 관계가 그렇다. 임해군은 광해군을 돕는 인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영창대군(전진서)을 제거하려 해 오히려 그 어머니인 인목대비(신은정)의 숨겨진 생존본능을 건드렸다는 것 때문에 광해군에 의해 내쳐진다.

 

임해군은 결국 역모로 붙잡히게 되지만 그를 믿어준 광해군 때문에 명나라 사신단 앞에 나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모습을 일부러 보여준다. 장자인 자신이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 광해군의 즉위의 정당성을 만들어주려 한 것. 이를 고맙게 여긴 광해군이 사적으로 임해군을 찾아가 자신도 그가 역심을 품었다 생각한 걸 미안하다고 말하자, 의외로 임해군은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걸 털어놓는다.

 

부왕의 장자는 나였으니까. 그 자리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더냐. 그래서 나는 네가 보위에 오르면 날 세제로 삼을 줄 알았다. 당연히 다음 자리는 나였을 터. 날 그렇게 내칠 줄은 몰랐다.” 형제로서 눈물을 흘리던 임해군 역시 그 왕좌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 광해군은 이 사실을 알고는 충격에 빠진다. 즉 제 아무리 형제라 하더라도 왕좌라는 욕망 앞에서 적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

 

광해군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임해군, 능창군, 영창대군과 그의 세력들까지 냉혹하게 처리한 인물이다. 그래서 훗날 폭군으로 기록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화정>은 광해군을 그리면서 그가 왜 그렇게 냉혹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으로 다루고 있다. 왕좌를 놓고 벌어지는 제거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 용상에 오르려는 욕망의 분출은 그래서 사적인 관계의 살가움과는 사뭇 다른 광해군의 모습을 그려낼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모두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용상은 욕망의 끝 이제 곧 지난 16년의 시간보다 더한 것을 아시게 되겠지요. 인간의 다짐이란 허망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단 것을. 왕좌는 뜨거운 불처럼 강하고 아름답지만 전하를 삼킬 수도 있다는 걸요.” 광해군의 책사 역할인 김개시(김여진)의 이 말은 <화정>이라는 사극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이 사극이 드러낼 각각의 인물들의 욕망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기대된다.

 

 

선조의 내우외환, 통지자의 자격은 어디에 있나

 

새롭게 시작한 MBC 사극 <화정>은 광해군(차승원)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광해군의 비극을 낳은 선조(박영규)로부터 시작된다. 임진왜란을 전혀 예측하지도 못하고,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도성과 백성들을 버리고 파천을 거듭한 왕. <화정>에서 광해군이 선조의 사후에 그토록 불안정한 집권 속에서 가까운 이들까지 숙청해버리는 일을 하게 된 건 선조가 광해군을 세자로 앉히고도 든든한 지지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정(사진출처:MBC)'

독살이 의심되는 선조의 죽음 앞에서 광해군은 그 숨겨놓았던 울분을 토해낸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면서 왜 자신을 그렇게 밀쳐내려 했는가 토로하며 죽어가는 선조에게 자신은 아버지와는 다른 왕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선조가 자신을 그렇게 미워했던 이유가 자신이 아버지와는 달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임진왜란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고 또 백성들의 지지를 한 몸에 얻은 세자 광해군. 반대로 왕이지만 백성의 손가락질을 받는 선조. 선조의 질투가 이런 비극을 낳았다는 것.

 

선조의 무능함이 어떤 비참한 결과로 국가를 이끄는가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징비록>에서의 선조의 모습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해온 일련의 잘못된 선택들을 하나하나 아프게도 꺼내 놓는다. 파천을 그토록 반대하는 류성룡(김상중)을 결국 좌천시켜버리고,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거둔 신각(박경환)을 상관의 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참수시킨다. 뒤늦게 그 사실은 안 선조는 이를 되돌리려 하지만 이미 형은 집행된 후였다.

 

무능한 왕을 대신해 승전보를 가져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왕의 그늘 바깥으로 밀려나 있던 인물들이다. 전라좌수사로 바다를 지켜 왜군의 보급로를 끊어버린 이순신 장군이 그렇고(그는 심지어 무고를 당해 훗날 백의종군하게 되지 않던가), 의병으로 분연히 일어나 전세를 바꾸어버린 곽재우 장군이 그렇다. 이렇게 되니 왕에 대한 지지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조가 이순신을 질투했다는 얘기가 그저 풍문만은 아니라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중요한 건 왜 이 무능한 왕 선조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두 사극에서 동시에 다뤄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두 사극에서 선조는 중심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극들이 갖고 있는 비극적인 이야기의 어떤 시발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 이토록 무능한 왕의 실정이 지금 현재 사극의 어떤 배경이 되고 있는 걸까.

 

<화정>의 김이영 작가가 밝힌 것처럼 사극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다.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기 때문에 굳이 그 시점의 이야기가 다시 그려진다는 것이다. 선조의 시대가 전쟁과 정쟁으로 피폐된 나라 살림과 이로 인해 굶주리는 백성들의 시대로 기록된다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한 일이다.

 

<화정><징비록>은 그런 점에서 다른 시각으로 보면 통치자의 자격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왕은 한 사람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한 사람의 무능함은 엄청난 비극을 불러온다.

 

<징비록>, 류성룡보다 강한 이순신의 존재감

 

어쩔 수 없이 이순신이 주인공인건가. KBS <징비록>의 주인공은 이 제목의 책을 쓴 류성룡(김상중)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가면 갈수록 이순신에 대한 갈증이 깊어진다. 단 한 번도 출연하지 않은 이순신 역할을 누가 연기할 것인가가 벌써부터 초미의 관심사다. 거북선 건조를 선조(김태우)가 후원한 걸로 알고(사실은 류성룡이 왕의 이름으로 보낸 것) 이순신이 감사의 서신을 보내온 장면에서 잠깐 등장한 목소리에 시청자들이 귀를 쫑긋 세운 건 그래서다.

 

'징비록(사진출처:KBS)'

지주들만 배를 채우고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과 이를 바로 잡지 못하는 왕과 신하들, 전운이 감돌고 있음에도 나라살림이 엉망이라 축성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 심지어 선조는 수군을 폐지하자는 얘기까지 꺼냈다. 수군을 폐지하자는 건 고스란히 바닷길을 열어주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발끈한 이산해(이재용)는 이를 매국이라고까지 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

 

이 혼돈의 시기에 당파나 왕, 백성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소신 있게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가는 인물은 류성룡이 유일하다. 그러니 그는 선조가 반대한 거북선 건조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에게 왕의 이름으로 은밀하게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었던 것. 모두가 당파로 인해 이순신을 등용하려 하지 않을 때도 유일하게 그를 지지한 인물이 바로 류성룡이다.

 

그래서 <징비록>은 이렇게 백성들의 안위와 왜세에 대한 균형 잡힌 사고를 가진 소신 있는 정치가 류성룡을 다루는 것이지만, 그래도 지금의 대중들에게 더 희구되는 인물은 아무래도 이순신인 것 같다. 이순신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이렇게 된 건 <징비록>이 다룰 수밖에 없는 임진왜란이라는 소재에 걸맞는 스펙터클로서 이순신만한 인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벌어지는 그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인 실패가 있었고 어째서 외세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냉엄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니 정치적인 대결구도와 왕과 신하의 역학관계가 드라마의 주 골격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런 정치적인 입장과 대결에 일종의 혐오를 느끼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지금 현재의 정치 현실 안에서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흔하게 보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TV 뉴스만 들여다보면 지긋지긋하게 나오는 정치인들의 공방을 드라마를 통해서 또다시 보기 싫은 까닭이다.

 

대신 대중들이 드라마를 통해 보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이순신 같은 희망이다. 무능한 정치인들이 서로의 이권을 두고 다투고 있을 때 묵묵히 바다를 지키기 위해 준비에 준비를 다하는 그런 인물. 이순신에 대한 열망에는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판타지적인 해소에 머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지긋지긋해도 그 식상한 정치를 아프게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것을 통해 현재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어떤 해결의 실마리나 대중들의 각성을 이뤄내는 일은 이순신이라는 정해진 영웅담의 쾌감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징비록>이라는 책은 그래서 써진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이순신이라는 인물로 빨려 들어가는 건 그만큼 작금의 현실이 당대의 임진왜란 직전처럼 서민들의 마음을 실망감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오죽 지긋지긋하면 들여다보고 싶지 않겠는가. <징비록>에서 류성룡의 정치보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희망을 더 보고 싶어 하는 데는 이런 대중들의 헛헛한 정서가 깔려 있다.

 

<징비록>, 임진왜란을 통해 보는 국가의 위기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생겨날까. KBS 주말사극 <징비록>이 던지는 굵직한 질문이다.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벌어진 여러 국가적 사안들과 전쟁의 전조들, 피폐해진 나라 살림에 더해 붕당을 이뤄 권력에만 몰두하는 정치세력과 국제정세를 읽어내지 못하는 왕의 리더십 등 <징비록> 안에는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드러나는 다양한 증상들이 보여진다.

 

'징비록(사진출처:KBS)'

하필 지금 현재 <징비록>이 사극으로 만들어진다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한 일이다. 물론 당장 왜란과 같은 전쟁의 위기가 닥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이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 터질 위험성이 다분한 현재가 아닌가. <징비록>에 등장하는 몇몇 사례들이 그저 옛이야기로만 보이지 않는 건 그래서다.

 

선조(김태우)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물론 그것이 흩어진 민심을 다잡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지라도 왜란을 방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건 국가 지도자로서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선조는 군역을 통해 축성을 멈추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류성룡(김상중)에게 당장 먹고 살 것도 없는 백성의 고통만 가중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거기에 대해 류성룡은 지주들에게 제대로 된 세금을 받아 군역을 하는 백성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선조는 지주들 또한 백성이라며 갑작스런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금문제는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연말정산 문제만 두고 봐도 가진 자들이 더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들의 세 부담만 더 커졌다는 게 그 현실이 아닌가. 사실 국고가 여의치 않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서민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 생긴 일은 아닐 것이다. 4대강 사업 같은 나라 망치는 엄청난 사업에 엉뚱하게도 재원이 투입되는 것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군량미를 빼돌려 치부하는 양반들의 이야기는 최근 벌어진 방산비리로 구속된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을 떠올리게 한다. 클라라와의 개인 메시지 공방을 벌였던 일로 존재가 알려진 이규태 회장의 이 비리 규모는 무려 500억대에 달한다고 한다. 국가의 방위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국민의 혈세가 사적인 치부로 이어지는 상황. <징비록>이 그리고 있는 왜란 직전의 분위기와 무에 다를 게 있을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백성들에게 군역과 축성이 힘들다고 모두를 집으로 돌려보낸 선조의 조치는 마치 대선 때마다 흘러나오던 선심성 공약을 그대로 닮았다.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뒤집고,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공약을 내걸고는 결국 흐지부지 중단하는 상황들에 나오는 이야기는 당장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변명이다. 애초에 할 수 없는 공약을 왜 내건단 말인가.

 

이미 왜국에서는 전쟁준비에 돌입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은 동인 서인으로 나뉘고 또 그것도 모자라 남인 북인으로 나뉘어 각자 이권에만 몰두하는 상황 또한 지금의 정당 정치와 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늘 국민을 호명하지만 거기에 늘 국민들은 소외되는 아이러니한 현실. 양극화는 더 심해지지만 돈이 있어야 선거를 치르는 현실 속에서 지주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에게서 진정 서민들이 보이기는 하는 걸까.

 

<징비록>400여 년 전에 벌어진 임진왜란 전후의 역사를 다루지만 그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는 지금 현재에 닿아 있다.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반복되어 비슷한 양상으로 생겨나고, 그 결과는 또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이 사극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류성룡이 <징비록>을 써내려간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징비록>의 선조, 미화 아닌 입체적 접근이다

 

KBS <징비록>은 류성룡이 쓴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사극이다. 정통사극으로서 <징비록>은 역사적 사실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 중간 중간 내레이션을 통해 역사적 사료의 설명을 넣어주는 건 그래서다.

 

'징비록(사진출처:KBS)'

하지만 이 <징비록>은 최근 선조실록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선조라고 하면 대중들에게는 임진왜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무능한 왕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순신이라는 당대의 영웅과 비교되면서 선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더 크게 자리하게 되었다. 결국 당대에 왕은 임진왜란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 빈 자리를 채워 나라를 구한 건 백의종군을 한 이순신과 민초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사극으로 재현된 <징비록>은 초반부에 선조라는 인물에 대해 지금껏 많은 사극들이 다뤄온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을 보여주었다. 선조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이 들어 있는 것. “왜란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며 벌어진다면 그 본토를 친히 정벌하겠다고 한 호언장담은 후세들에 의해 비판받는 지점이지만, 드라마에서는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들어 있다.

 

즉 왜란이 터진다는 그 흉흉한 소문 하나만으로 하삼도를 떠나는 민초들의 움직임은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일 수 있었다는 것. 따라서 보다 강력한 선조의 대응만이 이런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하삼도를 떠나는 민초들을 잡아두고 나서야 군역을 통해 외세에 방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선조 시절 붕당정치가 임진왜란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이 붕당정치 또한 선조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차선책처럼 드라마에서는 그려진다. 즉 어린 나이에 즉위한 선조는 결국 신하들에 의해 휘둘리며 그 자리를 보전하게 된다. 그러니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당을 나눠 서로를 견제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선조로서는 당연한 정치술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징비록>에는 그간 다른 사극에서는 좀체 등장하지 않는 선조의 눈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류성룡이나 정철을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당파를 견제하기 위해 차도살인지계를 했다는 류성룡의 의심에 대해 그는 오히려 자신의 못남을 자책하며 눈물을 흘림으로써 충성을 받아낸다. 또 정철을 귀향 보내며 그 아픈 마음을 눈물 섞인 술 한 잔으로 그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이런 인간적인 면모들은 지금껏 무능함의 상징처럼만 여겨져 온 선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그것이 파격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선조에 대한 과한 미화가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평가에 있어서 선조를 좋게 평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극이라는 극적 전개 속에서는 역사 바깥의 선조의 인간적인 면모를 빼놓을 수도 없다. 그 인간적인 면모가 어쩌면 왜란에 대처하지 못한 무능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징비록>은 선조를 미화했다기보다는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평가가 더 맞을 것이다. 단선적인 선악과 호불호가 아니라 장단을 모두 함께 다루고 공적인 왕과 사적인 한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는 것. 그래서 선조 미화라는 비판은 이렇게 다른 식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징비록>을 통해 단선적으로만 그려지던 선조가 드디어 입체적으로 생생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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