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그 이상, ‘당잠사’의 반 발짝 앞선 예측 깨기

그저 조금 특별한 예지몽 이야기일 줄 알았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이야기는 점입가경이다. 갈수록 변수들이 계속 생겨나고 그래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지며 당연히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해졌다. SBS 수목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반 발짝 앞선 예측을 깨는 방식으로 상상 그 이상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사진출처:SBS)'

시작은 홍주(배수지)의 예지몽. 꿈꾼 것이 모두 현실이 되는 걸 알게 된 홍주는 꿈속에서 피를 흘리며 재찬(이종석)과 마주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는 재찬 역시 예지몽을 꾸는 전개로 곧바로 이어지며 두 사람만의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낸다. 

재찬의 예지몽에 등장한 홍주가 유범(이상엽)이 대신 몰다가 벌어진 차사고로 크게 다치고, 혼수상태인 홍주가 차사고로 우탁(정해인)을 죽인 인물로 둔갑해 그 어머니인 윤문선(황영희)까지 사고로 죽게 된 것. 그러자 재찬은 그 꿈이 현실이 되는 걸 막기 위해 고의로 유범의 차를 박아 사고를 냄으로써 홍주와 우탁 그리고 윤문선 모두를 구해낸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이 정도에서 홍주와 재찬 사이의 멜로와 두 사람이 꿈꾸는 예지몽을 함께 막아가는 사건들이 이어질 것이라 예측하게 된다. 하지만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이 예지몽이라는 판타지 설정은 훨씬 더 깊이 있게 천착한다. 그들이 왜 예지몽을 꾸는 두 사람이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것.

결국 홍주와 재찬의 연결고리는 두 사람의 아버지들의 선택과 그로 인해 맞이하게 된 죽음과 맞닿아 있다. 홍주의 아버지는 버스 운전을 하다 마주하게 된 탈영한 군인들로부터 손님들을 안전하게 대피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선택을 한다. 재찬의 아버지는 바로 그 탈영병이 버스에서 폭탄 테러를 하기 전 역시 그에게 총에 맞아 사망한 의인이다.

홍주와 재찬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이들의 부모인 두 사람의 의인의 선택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 판타지를 차용한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즉 누군가의 작은 선택 하나가 사실은 누군가의 삶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 의인이 선택한 자기희생이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되었듯이 이제 예지몽으로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게 된 홍주와 재찬은 부모들이 했던 것처럼 눈앞에 벌어질 사건들을 외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확장되어 나아간다. 그것은 재찬이 홍주와 어머니를 구하는 과정에서 고의로 사고를 냄으로써 구해내게 된 또 한 명의 생명, 우탁 역시 예지몽을 꾸게 된다는 것. 경찰인 우탁은 박준모(엄효섭)라는 가정폭력을 일삼는 인물이 저지르는 폭력을 막으려다 오히려 살인 혐의로 붙잡히게 되는 재찬의 동생 승원(신재하)이 나오는 꿈을 꾼다. 그리고 간신히 이 사건을 막는 홍주와 재찬을 돕게 되며 인연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건 왜 그들이 예지몽을 꾸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재찬과 홍주가 그랬듯이 우탁 역시 이미 과거의 그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예지몽으로 누군가의 미래를 바꿔놓으면 그 당사자 역시 예지몽을 꾸게 되는 것인지. 그것이 무엇이든 예지몽이라는 하나의 설정을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하며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의 전개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드라마가 가진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를 예감하게 한다. 

놀라운 건 이런 전개 속에서 캐릭터들의 매력 또한 갈수록 커진다는 점이다. 멜로가 주가 아니어도 사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재찬과 홍주의 멜로가 이어지고, 브로맨스가 목적이 아니어도 재찬과 우탁의 우정이 생겨난다. 연기자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은 그래서 이종석에서 수지 그리고 정해인으로 점점 확장되어 간다. 판타지를 붙여도 그게 흔한 설정이 아니라 흥미진진해지고 그 안에서 인물들의 매력이 갈수록 커져가는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작품이 놀라운 이유다.

‘병원선’, 그저 오지 소재의 의학드라마 같지 않은 이유

“치료가 아니라 실험이겠지. 논문에 칸 채우고 싶어 몸살 났잖아.” 송은재(하지원)가 국내에서는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엑시투 간절제술’을 통해 직장암 말기환자 설재찬(박지일)을 수술하려고 하자 이를 막으려는 김도훈(전노민)은 비꼬듯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송은재는 오히려 그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논문에 칸 채우는 게 뭐가 나쁩니까? 언제나 처음은 있죠. 두려워해야 하나요?”

'병원선(사진출처:MBC)'

MBC 수목드라마 <병원선>의 이 대화는 마치 새로운 수술을 두고 모험이라도 시도를 해보려는 의사와 이를 위험하다고 막는 의사의 진보-보수 논쟁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송은재가 그토록 위험한 수술을 하려는 건 환자를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실적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렇게 큰 케이스를 성공시켜 쫓겨난 서울대한병원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물론 이런 속사정은 김도훈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환자의 생명을 걱정해서 송은재를 말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만일 그 수술을 성공이라도 하게 돼서 다시 서울대한병원으로 복귀하면 자신의 입지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겉으로는 도전이니 모험이니 생명이니 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 

이런 송은재에게 곽현(강민혁) 역시 반대의사를 드러낸다. 그는 송은재에게 “선생님이 실패하면 설재찬이라는 사람이 죽는 거예요”라며 그 도전의 대상이 다름 아닌 생명이라는 걸 환기시킨다. 그러자 송은재는 “과학은 실패를 통해 진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곽현은 거기에 대해 “이런 비정한 진보라면 거절합니다.”라고 응수한다. 

병원에서 환자의 수술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고, 그것도 진보와 보수의 논쟁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그 실상은 저마다 ‘생존하기’ 위한 안간힘이라는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보며 정치권의 진보 보수 대립을 떠올리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렇게 대립할 동안 이제 죽을 지도 모를 누워 있는 환자는 어쩌면 그들의 생존 게임 아래 방치된 국민들이라는 느낌마저 들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송은재가 왜 이렇게 실적에 목숨을 걸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권력 시스템의 문제다. 저들만의 공고한 권력 시스템 안에서 내부고발자가 된 그는 남다른 실력에도 불구하고 변방으로 밀려났다. 애초에 실력만으로 온전히 자신을 세울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역시 김도훈의 밑에서 그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도무지 환자의 생명을 두고 진실을 덮을 수 없었던 그의 마지막 양심이 그를 이런 변방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서울대한병원이라는 권력시스템은 우리네 사회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그 권력 구조를 더 명쾌히 보려면 거기에 ‘여성’이라는 관점 하나를 더 집어 넣어보면 쉬워진다. 송은재는 그 남성성의 공고한 권력 시스템이 작동하는 곳에서 저 스스로도 남성성의 작동방식대로 살려하다 어느 날 엄마의 죽음을 통해 최후로 남은 여성성의 한 자락이 밖으로 나오게 되고 그래서 밀려나는 캐릭터라고도 읽을 수 있다. 

반면 이 섬마을을 다니는 오지의 병원선이 가진 시스템은 이런 남성성의 권력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권력을 쥐기 위해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눈앞에 촌각을 다투는 환자가 있는 것이고 그들이 하나하나 소중한 생명이며 자신은 다름 아닌 그 생명을 지키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의사이기 때문에 의료행위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저 남성성의 권력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서울대한병원이 생명을 소외시키고 있다면 이 병원선은 그 소외된 생명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여성성의 공간이다. 

<병원선>이 가진 대결구도는 그래서 단지 송은재와 김도훈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이 서울대한병원의 시스템과 병원선의 시스템 사이의 대결이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결이기도 하다. 송은재는 그 중간에 서 있다. 다시금 실적을 통해 그 권력 시스템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곳에 남아 생명을 돌보는 의사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 선택 하나에 따라 환자가 대상이 되느냐 아니면 목적 그 자체가 되느냐의 차이가 생긴다. 

진보 보수 논쟁을 하면서도 정작 국민이 소외되어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그 남성성이 지배하는 권력 시스템 안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면서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실적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네 현대인들에게 <병원선>의 이야기가 낯선 오지에서 벌어지는 의학드라마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뉴스룸>, 손석희 앵커브리핑이 만든 울림

“적어도 저희들이 생각하기에 언론의 위치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중간에 있으며 그 매개체로서의 역할은 국가를 향해서는 합리적 시민사회를 대변하고 시민사회에는 진실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뉴스룸(사진출처:JTBC)'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 앵커는 저널리즘에 대한 소신을 그렇게 밝혔다. 사실 이 이야기가 그리 특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스스로도 밝혔듯이 “교과서적인, 뻔한 얘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석희 앵커의 이 교과서적인, 뻔한 얘기가 주는 울림은 컸다. 그건 심지어 비장하기까지 했다. 지난 주말 홍석현 회장의 사임으로 불거진 대선출마설은 JTBC <뉴스룸>으로서는 소문이라고 해도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앵커브리핑을 통해 말하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공적 영역이지만 사적 영역”이기도 하다. 이것은 JTBC <뉴스룸>이 삼성 관련 사안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과연 제대로 보도를 할 것인가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던 이유다. 그 때마다 <뉴스룸>은 그런 의구심을 불식시키라도 하듯이 할 이야기를 당연히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모습은 시청자들이 <뉴스룸>에 신뢰를 갖게 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뉴스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객관적인 사실 보도를 해야 하는 소임을 맡고 있지만, 결국 그 뉴스를 하는 방송사는 하나의 회사이고, 그 회사는 방송을 허가하는 정치권력과 그 방송사가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광고료로 지탱된다. 그러니 정치권력이나 그 광고를 내는 광고주를 비판한다는 건 자칫 뉴스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도 있는 일이다. 

이것은 어쩌면 언론인들 대부분이 공감하는 딜레마일 것이다. 즉 언론인들이라면 손석희 앵커가 말하는 것처럼 “시민사회에 진실을 전하는 것”이 그 소임이지만, 그들 역시 자신이 속한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그저 교과서적으로 진실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딜레마에 대해 손석희 앵커는 명확한 소신을 밝혔다. “저희는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모두가 동의하는 교과서 그대로의 저널리즘은 옳은 것이며 그런 저널리즘은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 존재하거나 복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자신이 그 소신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면 할 선택에 대해서도 쐐기를 박았다. “저나 기자들이나 또 다른 JTBC의 구성원 누구든. 저희들 나름의 자긍심이 있다면, 그 어떤 반작용도 감수하며 저희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지키려 애써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비록 능력은 충분치 않을지라도, 그 실천의 최종 책임자 중의 하나이며, 책임을 질 수 없게 된다면 저로서는 책임자로서의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비장하기까지 한 소신의 고백.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정답 같아 보이지만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이 어떤 울림을 만든 건 그것을 공공연하게 밝혔다는 점이다. 그것은 스스로도 밝혔듯 “저널리즘의 실천”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지금까지 <뉴스룸>의 성취가 어느 한 순간 불쑥 이뤄진 것이 아니라 매번 한 걸음씩의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굿와이프>의 시도와 성취 그리고 남는 한계

 

종영한 tvN <굿와이프>의 엔딩은 파격적이다. 김혜경(전도연)과 이태준(유지태)는 이혼하지 않고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로 남게 된 것. 김혜경의 이런 선택은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던 결말이다. 그것도 <굿와이프>라는 제목에 이런 결말을 낸다는 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해온 좋은 아내라는 이미지에 대한 도전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우리네 드라마에서였다면 어땠을까.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이혼을 해서 김혜경이 온전히 홀로 서는 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그것이 윤리적으로도 또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니 말이다. 하지만 <굿와이프>는 보다 실리적인 선택을 하는 여성으로서의 김혜경에 한 표를 던지고 있다. 윤리니 진심이니 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위한 실리적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것.

 

<굿와이프>가 보이는 인간관은 확실히 이 실리에 맞춰져 있다. 처음 변호사 일을 다시 하기 시작했던 김혜경이 직업적 프로로서가 아니라 동병상련의 공감으로 의뢰인을 대하던 모습을 이 드라마는 순수함이나 열정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그런 자세는 실리가 없는 아마추어적인 행동이라고 일침한다. 김혜경은 차츰 일에 빠져들면서 이 직업적 프로로서 지극히 실리적인 변호사가 되어간다. 설사 의뢰인이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변호하는 일이 자신이 하는 일이라는 걸 자각한 프로의식.

 

이 일에 있어서의 프로의식은 또한 김혜경의 부부생활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즉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순진한 사랑이나 신뢰 같은 걸 추구하던 김혜경은 마지막에서는 마치 파트너십처럼 서로를 이용하는 실리적 관계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태준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도와주는 건 그래서 부부 간의 사랑 때문도 아니고 그를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그녀에게 유리한 선택이라는 것뿐이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열린 결말이 아니다. 작품이 하나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그 결론을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은 양갈래로 나뉜다. 개인의 성장을 이뤘으니 해피엔딩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런 실리적 선택이 성장이 아닌 지독한 현실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새드엔딩이 되는 셈이다.

 

어째서 이런 파격적인 결말을 내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이 작품이 미드 원작 리메이크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적인 실리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굿와이프>의 선택은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선악과 윤리를 추구하는 삶이 현실적으로 개인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굳이 왜 그걸 선택한단 말인가. <굿와이프>는 그래서 쇼윈도부부라도 이용가치가 있다면 그걸 활용하면서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문제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하지만 이건 미국 정서이고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개인적 실리보다는 가족과 부부간의 신뢰 그리고 지켜져야 할 것들을 지키면서 얻는 행복에 더 가치부여를 하고 있다. 그러니 <굿와이프>의 선택은 성장이라기보다는 타락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어쨌든 미드 원작이기 때문에 그것을 수용하면서 이런 도발적인 선택의 드라마를 시도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천편일률적인 좋은 아내의 이미지들을 내놓는 여타의 드라마들 속에서 문제적 인물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여겨진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정서적 차이는 한계로 지목될 수밖에 없다. 완성도 높은 좋은 드라마였던 건 분명하지만 미진한 아쉬움 같은 게 남는 건 그래서일 게다.

수목극, 여주인공 3인의 성패를 가른 건

 

과연 누구의 선택이 옳았을까. 지상파3사의 수목극 대전의 중심에는 33색의 여주인공들이 있다. KBS <함부로 애틋하게>의 수지, MBC <W>의 한효주, SBS <질투의 화신>의 공효진이 그들이다. 같은 장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세 드라마가 모두 갖고 있는 멜로 속에서 이 세 명의 인물들은 너무나 다르다. 다른 만큼 반응도 제각각. 세 인물들은 어떤 매력과 한계를 갖고 있을까.

 

'W(사진출처:MBC)'

먼저 KBS <함부로 애틋하게>는 무거운 멜로와 복수극을 보여주고 있어 수지가 연기하는 노을이라는 캐릭터는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벌써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 세상의 을의 아픔과 고통을 거의 모두 껴안고 있는 듯한 캐릭터. 가난하고 부모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사채 빚에 쫓기며 사랑하는 남자 또한 불치병에 거려 이제 곧 그녀를 떠나게 된다.

 

노을이란 캐릭터가 이처럼 세상의 거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염치없는 세상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몰염치한 세상은 없는 이들을 더욱 힘겹게 만들어놓고 그들끼리만 잘 살아간다. 노을에 대한 연민과 그녀를 그렇게 만든 어른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들이 꾸미는 그들만의 복수는 <함부로 애틋하게>가 그녀를 가장 밑바닥의 캐릭터로 만들어낸 이유.

 

하지만 너무 힘든 현실 때문인지 이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사이다 전개와 캐릭터를 요구할 정도로 답답한 현실이지만, 노을이란 캐릭터는 그 답답함에 고구마를 더해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수지의 연기는 괜찮은 편이지만, 수지가 가진 풋풋한 이미지를 이 드라마가 전혀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건 아쉬운 점이다. 이건 이 캐릭터를 선택한 수지라는 배우에게도 그리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MBC <W>의 한효주가 연기하는 오연주라는 캐릭터는 수지와는 상반되게 엉뚱발랄하다. 이렇게 된 건 웹툰과 현실을 오가는 이 드라마의 독특한 설정 때문이다. 어찌 보면 너무 황당한 설정이기 때문에 주인공 캐릭터가 지나치게 진지해지면 자칫 우스워질 수 있다. 그러니 오연주라는 캐릭터는 조금은 과장된 모습으로 때로는 웃음을 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야 그 비현실적인 느낌이 코미디적 설정을 통해 조금은 상쇄되기 때문이다.

 

오연주의 엉뚱발랄함은 이미 <동이> 같은 사극에서 한효주가 보였던 연기 이미지지만 이번 <W>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강도가 높아졌다. 게다가 점점 웹툰 속 인물인 강철(이종석)에 몰입하고 그 세계에 빠져들면서 코믹 이미지는 진지해지는 면모를 띄게 된다. 한효주로서는 이러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연기하게 만드는 오연주라는 캐릭터가 꽤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게다가 이런 엉뚱발랄한 캐릭터는 지금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코믹함과 장르적 긴장감 게다가 멜로까지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면이 있다.

 

새로 시작해 수목드라마 대전에 뛰어든 SBS <질투의 화신>의 공효진이 연기하는 표나리라는 인물은 조금은 전형적인 느낌을 주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녀는 예뻤다> 이후, 일터에서 일과 사랑을 동시에 쟁취하려는 여주인공에 대한 열광은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 <질투의 화신>은 방송국 내에서 천대받고 세상에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기상캐스터 표나리라는 여성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평범해보여도 의뢰로 강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 설정이지만 표나리를 연기하는 공효진의 이미지는 어딘가 과거 드라마에서 봤던 듯한 느낌을 준다. 여전히 공블리라 불리는 그녀의 로맨틱 코미디 연기는 매력적이지만 그것이 너무 비슷한 캐릭터로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은 대중들로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래도 공효진의 한 방이 기대되는 캐릭터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나온 수목극의 양상을 통해 보면 드라마의 인기와 배우들의 선택은 비례관계를 보이고 있다. 즉 괜찮은 연기변신을 보여준 한효주의 선택이 가장 탁월해 보이며, 전형적이지만 그래도 매력적인 공효진이 그 다음, 안타깝게도 지금의 트렌드와는 잘 어울리지 않고 또 본연의 풋풋한 매력도 드러내지 못한 수지의 선택이 그 마지막이다. 물론 드라마야 취향이니 보는 시청자들에 따라 그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태양의 후예>라는 상황극, 우리의 선택은?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배경은 우르크라는 곳이다. 우르크는 지구 어디에도 없는 곳, 가상공간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가상공간이라는 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역시 하나의 상황극이라는 걸 말해준다. 막연히 국제분쟁지구라고 얘기되는 곳이고 그래서 우리나라 군인이 파견된 곳이다. 동시에 한 병원의 팀이 의료봉사로 파견된 곳이기도 하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이러한 상황극은 누구나 어렸을 때 한 번쯤 상상을 통해서라도 했을 법한 것들이다. 만일 이런 곳이 있다면 거기서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꿈꾸는가. 아마도 여성이라면 멜로를 꿈꿀 것이다. 하지만 남성이라면 총알이 날아다니고 때로는 지뢰가 터지고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린 차에서 여자를 구하고 지진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며 창궐한 전염병과 싸우고 나쁜 놈들을 물리치는 블록버스터를 꿈꿀 지도 모른다. 우르크는 이 남성과 여성의 판타지를 모두 그려낼 수 있는 최적의 가상공간이다. 멜로를 꿈꾸지만 블록버스터가 되는 최적지.

 

그런데 이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극에 대해 우리는 많은 현실적인 일들을 떠올린다. 해외파병 문제가 가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심각한 문제들을 얘기하고, 심지어 베트남의 한 기자가 이 드라마의 베트남 방영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공감한다. 지진과 전염병 같은 재난 상황들이 우르크라는 지역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장면들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겪은 세월호 참사부터 메르스 공포까지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심지어 이 드라마는 현실에서 훌쩍 벗어난 우르크라는 공간에서의 가상 스토리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극은 그 상황이 가상이라고 해도 거기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한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 질문을 던지는 면이 있다. 결국 모든 상황극들은 그런 점에서는 현실적이다.

 

<태양의 후예>를 이런 상황극과 거기서의 선택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바라보면 왜 우리가 유시진(송중기)이라는 이상화된 인물에 빠져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군인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단지 전쟁의 이미지와 상명하복의 계급문화 같은 군인에게서 막연히 피어나는 뉘앙스 때문만은 아니다. 군부독재를 겪어내고 민주화 과정을 통과한 세대라면 군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일 게다.

 

유시진은 이러한 막연한 군인의 이미지와 정반대에 서 있다. 그는 상명하복의 계급문화 속에 있긴 하지만 강모연(송혜교)이라는 여자 앞에서는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서조차 유머를 날릴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인물이다. 국가의 명령을 받는 군인이지만 생명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고, 특히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명령도 어기는 인물이다. 강력한 슈퍼히어로지만 약자들에게는 그토록 부드럽고 유머러스하며 자애롭기까지 한 인물.

 

유시진 신드롬이 벌어지고 있는 건 거꾸로 말하면 우리에게 이런 리더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재난이 벌어져도 책임지려는 리더는 없고 심지어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진상을 끝까지 파헤치는 리더십은 더더욱 없다. 전쟁의 위기 상황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무고한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이를 타개하려는 노력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거철만 되면 모두가 국민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말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은 없고 당리당략만이 가득해진다.

 

어떤 면으로 보면 우리나라라는 공간이 참으로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알고 보면 저 드라마 속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상황들은 우리에게도 벌어졌던 일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 때마다 우리는 어떤 선택들을 했나. 물론 유시진 같은 이상화된 리더가 있을 리 없고 그런 이상적인 선택들을 하는 경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몇 번에 하나라도 비슷한 선택들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이토록 빠져 있는 유시진 신드롬의 이면은 그래서 결코 달달할 수만은 없다

김구라 대상수상, 그에겐 위기가 기회가 되었다

 

<MBC 연예대상>의 대상은 김구라에게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유재석이 무관이 된 것에 대해 팬들은 깊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무려 10년 간이나 <무한도전>을 이끌어왔으니 당연한 아쉬움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유재석은 이제 대상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지 않았나 싶다. 대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는 김구라 역시 그에게 경외감을 느낀다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MBC연예대상(사진출처:MBC)'

따라서 김구라의 대상 수상은 올 한 해 MBC새로운성과들을 놓고 봤을 때 그의 공헌도를 치하하는 의미가 크다고 여겨진다. 김구라는 오래도록 <라디오스타>의 터줏대감으로 앉아 있었고, 종영했지만 <세바퀴>에도 끝까지 앉아 있었다. 또 방송사를 떠나서 올해의 예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중심추 역할을 했고, MBC 주말 예능을 되살린 <복면가왕>에서도 연예인 패널로서 맹활약했다. 그러니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에 포진해 있는 그에게 MBC로서는 상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성격상 그것이 온전히 김구라 혼자만의 몫이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를테면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김구라가 콘텐츠쇼라는 형식을 줄곧 유지함으로써 이 방송의 색깔을 유지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 프로그램을 확 살려낸 인물들은 백종원이나 이은결, 김영만 같은 핫한 출연자들과 이들을 섭외해 방송으로 잘 만들어낸 박진경, 이재석 PD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부분의 예능 MC들에게도 다 해당되는 이야기다. 물론 유재석은 독보적이지만 <무한도전>의 강력한 지분은 역시 김태호 PD와 작가들에게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제 지상파 연예대상은 본인 혼자의 공적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을 대표해 받는 상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김구라의 대상 수상은 올해의 MBC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마이 리틀 텔레비전><복면가왕>의 성과를 인정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흥미로운 건 김구라가 이렇게 다작을 통해 대상 수상이라는 결과까지 얻게 되는 그 과정이다. 사실 김구라가 이토록 프로그램에 올인하고 마치 작정한 듯 여러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게 된 건 아내의 빚보증 문제로 공황장애까지 겪게 되고 결국은 이혼이라는 불운한 개인사에서부터 비롯됐다는 점이다. 결국 그는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이유였겠지만, 무엇보다 힘겨운 시기를 일에 빠짐으로써 넘어서려는 노력을 했다고도 여겨진다. 그는 최근 술도 끊고 간간히 하던 골프도 치지 않는다고 한다. 오로지 일에만 집중한다는 것. 그에게 불운은 오히려 운이 되는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이런 점은 그저 우연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사실 과거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위안부 관련 발언이 논란이 되어 방송 하차를 하게 되었던 시절도 지금 돌이켜보면 그에게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당시는 유재석-강호동 이원 체제로 대변되듯 예능 MC 전성시대였다. 하지만 김구라가 방송을 떠나 있는 사이 이런 환경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예능 MC에 있던 파워가 예능 PD로 옮겨져 갔고 스타 중심이 아니라 콘텐츠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던 것.

 

김구라가 다시 복귀하는 시기에 이러한 변화는 그에게 득이 되었다. 대부분의 자숙 후 방송 복귀를 하는 연예인들이 지상파가 아닌 비지상파를 통해 우회하는 것처럼 그 역시 JTBC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입지를 다졌다. 그런데 대부분의 스타 예능 PD들이 지상파에서 비지상파로 옮겨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가 선택한 프로그램들은 괜찮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썰전>은 그의 새로운 기반이 되어주었고 이를 통해 <라디오스타>로의 복귀가 이어졌으며, 향후 비지상파의 변화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새로운 예능들을 선보인 MBC에서 그의 입지가 마련되었다.

 

위기 혹은 불운의 상황에서 그것을 오히려 운으로 바꾸는 과정을 김구라는 줄곧 보여줘 왔지만 그것을 그저 행운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그가 해온 선택들이 나쁘지 않았다는데 지금의 결과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예능 MC들 중 거의 유일하게 비평적 시선을 갖고 있는 김구라는 아마도 변화하고 있는 환경을 본능적으로 읽어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설 수 있는 위치를 정확히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향후 달라지고 있는 예능 환경에서 이제 예능 MC들이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은 해답이 되지 않을까. 본인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고 그것을 선보이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중요해진 건 그 능력이 한 프로그램이라는 콘텐츠 안에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이다. 대중들은 이제 점점 더 한두 명의 예능 MC가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가 주는 그 정서와 느낌들을 중요하게 여기게 됐으니 말이다. 김구라의 대상 수상은 그래서 개인적인 공과라기보다는 현재의 변화하고 있는 예능 환경과 그 속에서의 예능 MC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만드는 일로 다가오고 있다.



<프로듀사> 김수현 바보 웃음에도 누나들은 심쿵

 

왜 김수현이 KBS <프로듀사>를 선택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에게 이만큼 맞춤인 작품이 있을까. SBS <별에서 온 그대>로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최고의 한류스타로 떠오른 그였다. 불멸의 존재로서 동안에 지적 능력, 초능력까지 가진 완벽한 캐릭터 도민준을 연기한 그가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할 것인가는 한중 양국 대중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결국 그의 선택은 <프로듀사>. 어리버리하고 아직까지는 공부로만 예능을 아는 초짜 백승찬 예능 PD가 그 인물이다. 그런데 이 어리버리한 인물 묘한 매력이 있다. 심지어 바보처럼 웃어도 누나들의 가슴을 심쿵하게 만드는 마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프로듀사>는 실질적으로 이 백승찬이란 인물의 힘으로 굴러가는 작품이다. 그걸 증명하는 건 그가 이 로맨틱 코미디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드라마가 확실한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신디라는 아이돌 가수와 탁예진 예능 PD 사이에서 그가 보여주는 매력은 젊은 여성들부터 중년 여성들까지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신디에게 백승찬이라는 인물은 지금껏 이 업계에서 보지 못했던 특별한 별종이다. 뭘 몰라서 더 순수하고 곧이곧대로 인 이 인물은 친절하긴 해도 PD로서의 선을 딱 그어놓는 그 태도 때문에 신디를 더욱 애타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라고 부르지만 살인적인 스케줄을 만들어 사실은 돈 버는 기계처럼 자신을 대하는 변대표(나영희)에게 어눌하지만 자기 소신을 밝히는 이 PD의 모습에 신디는 홀딱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한편 선배 PD지만 백승찬이 사고 칠 것 같다고 고백한 탁예진이라는 인물은 중년 여성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캐릭터다. 그녀는 오랫동안 친구사이로 지내왔던 라준모(차태현)PD를 좋아하지만 어느새 불쑥 자기 앞에 남자로 나타난 백승찬을 느낀다. 라준모 PD에게 상처를 받고 혼자 공원벤치에 앉아 울고 있는 그녀를 살짝 안아주는 백승찬의 모습은 그녀에 빙의된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신디와 탁예진이라는 두 여자 사이에서 이 만큼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로 백승찬이 설 수 있다는 사실은 김수현이라는 연기자의 가장 큰 장점을 보여준다. 김수현은 어린 나이에 동안 외모에도 그 팬층이 상당히 두텁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과의 커플 연기가 자연스러웠던 건 어려보이지만 때로는 여성을 리드하는 독특한 매력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디와 탁예진을 모두 설레게 만드는 백승찬이란 캐릭터의 매력은 <프로듀사>가 좀 더 폭넓은 시청층을 소구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제아무리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을 만들어낸 박지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그가 <프로듀사>의 이 어리버리한 백승찬을 선택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선택이 그에게는 최선이고 최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도대체 죽지도 않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초능력을 사용하는 도민준 같은 캐릭터를 대치할 판타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그럴 바엔 차라리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백승찬 같은 캐릭터를 선택하는 게 최선일 수밖에 없다.

 

만일 김수현이 또 다른 도민준 같은 판타지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은 성공해도 실패해도 본인에게는 손실이 되는 일이다. 즉 성공한다면 기존 도민준 캐릭터 이미지가 깨지게 되는 것이고, 실패한다면 도민준 캐릭터 이미지에 대한 실망이 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백승찬처럼 심지어 바보 웃음을 짓는 캐릭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건 성공하면 그의 넓혀진 연기영역이 되는 것이고 실패한다 해도 도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수현의 선택은 옳았고 그 선택의 결과는 또 다른 백승찬 신드롬으로 이어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는 도민준처럼 능력자는 아니지만 따뜻하고 순수하며 인간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채 누나들의 마음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서고 있다.

 

<나가수3>, 문제는 선택이 아닌 과정에 있었다

 

MBC <나는 가수다3>의 이수는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이었다. 미성년자 성매수 사건에 연루된 가수를 지상파, 그것도 <나는 가수다>를 통해 복귀시킨다는 건 무리수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애초에 이수라는 이름을 꺼내놓지 않았다면 <나는 가수다3>는 좀 더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가져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가수다3(사진출처:MBC)'

하지만 첫 무대에서 선호도 1위를 차지한 박정현보다 방송에서 편집된 이수의 2위가 더 이슈가 되고 있다. 항간에는 이수에 대한 동정론이 나오고 심지어 안타깝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거꾸로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만일 방송 전부터 논란이 쏟아졌던 이수가 방송된 대로 방영됐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됐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수에 대한 비난과 함께 <나는 가수다3>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결국 하지 말았어야 할 이수의 출연을 번복한 것은 그마나 <나는 가수다3>의 차선책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성격이 강했다는 점이다. 하차 소식 전 이수 출연에 대한 대중들의 비난은 자칫 프로그램의 존폐를 가름할 정도로 거셌던 것이 사실이다. 그가 노래를 잘 할지는 몰라도 정서적으로 대중들이 그의 모습을 방송으로 보는 걸 그다지 원치 않는다는 건 분명했다.

 

즉 이런 뒤늦게나마 이수의 하차 선택이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 있었다. 녹화 후 방송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나는 가수다> 측은 너무 서둘러 녹화한 바로 다음 날 하차 소식을 발표했다. 이수 출연에 대한 논란 여론이 비등한 상황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빨리 하차를 발표한다는 것은 그래도 녹화까지 한 가수에 대한 충분한 배려를 담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일 논란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방송일에 임박해 하차 소식을 전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됐다면 상황은 또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최소한의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기 마련이고 결과적으로는 대중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나는 가수다3>의 이수 논란은 그래서 그 과정에 꽤 많은 만일에 이랬더라면...’하는 안타까운 선택의 순간들이 야기한 면이 크다. 즉 애초에 이수를 섭외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직까지는 요원한 그의 방송출연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좀 더 일찍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미 녹화를 했다고 만일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또 하차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만 더 고민의 시간을 갖는 모양새를 갖췄다면 어땠을까.

 

어쨌든 이수 논란은 지금도 뜨거운 것처럼 함께 가져가서는 안 되는 것이 분명했다. 만일 그가 방송을 강행했다면 <나는 가수다3>라는 프로그램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끄럽지 못한 하차 발표의 과정은 이수에 대한 동정론과 <나는 가수다3>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온전히 음악으로만 충만할 수 있었던 무대가 아니었던가.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첫 방영된 <나는 가수다3>는 오로지 음악에 대한 몰입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역력했다. 이런 노력이 이수 이슈에 가려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일로 결과와 선택 그 자체만큼 중요한 것이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 상처를 딛고 <나는 가수다3>가 온전히 음악에 대한 진정성으로 대중들 앞에 다시 서기를 기대한다.

 

<개과천선>의 질문, 변화는 가능한가

 

시간

MBC <개과천선>은 시간에 대한 드라마다. 거기에는 과거가 있고 과거로부터 단절된 현재가 있으며 그 현재가 만들어갈 미래가 있다. 김석주(김명민)는 기억상실을 겪게 되는 사건을 통해 과거로부터 단절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과거 속에는 자신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이 있다. 차영우펌에서 에이스로 일하며 관계해온 대기업의 인물들은 김석주가 자신들을 대변해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하지만 과거와 단절된 김석주는 현재라는 시간대에 새로운 자신을 세우려 한다. 심지어 과거의 자신이 만들어놓은 것들을 현재 뒤집으려 한다. 현재는 과거와 대결한다. 그의 약혼자인 유정선(채정안)과 그녀의 집안인 유림그룹은 과거로부터 튀어나온 이들이지만 현재의 그와 약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과거의 김석주와 유정선의 관계는 이익관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의 김석주는 진정으로 유정선을 걱정하는 관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집안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위기에 처한 유정선을 구해주는 과정은 현재와 과거의 대결에서 그의 승리를 보여준다.

 

시간과 기억

기억으로 단절되어 있지만 시간은 단절되지 않는다. 병을 앓고 있는 김석주가 키우는 개는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인권변호사인 아버지 김신일(최일화)도 마찬가지다. 인권변호사의 삶이 가족을 고통스럽게 한 것에 대한 반발로 김석주는 과거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리나, 그 기억을 지워버린 그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 기억이 남아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변화에 이상함을 느낀다.

 

흥미로운 건 아버지 또한 치매를 앓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점점 그의 기억은 사라져간다. 만일 아들이 과거의 기억을 잃고 아버지 또한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얼마나 위태로워질까. 관계란 기억의 축적이 만들어낸 산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가냘픈 기억의 끈은 이제 과거의 기억을 잃고 현재의 기억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아들 김석주에 의해 이어져갈 것이다. 아버지를 도와 은행에 피해를 본 중소기업을 도우며 그는 아버지를 닮아간다.

 

시간과 기억 그리고 선택

시간은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기억으로 축적된다. 김석주는 차영우펌에 사직서를 내지만 그 시간에 강직한 판사였던 전지원(진이한)은 차영우펌에 들어온다. 김석주의 선택과 전지원의 선택은 그래서 이제 그들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고 기억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견고한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선택하려 하지만 시스템은 언제든지 그 사람을 바꿔치기 한다. 시스템에 입장에서 전지원은 김석주의 과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이 시스템과 대항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차영우펌이 가진 그 시스템의 견고함은 어쩌면 김석주 자신이 과거에 이룩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차영우펌을 나온 김석주는 그래서 또다시 과거 자신이 만들었던 이 괴물 같은 시스템과 맞서게 된다. 과거는 또다시 현재와 대결한다.

 

변화, 개과천선은 가능한가

<개과천선>이 김석주라는 문제적 인물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한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중대한 미래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점이며, 그 선택으로 만들어진 과거를 되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이다. 기억이라는 견고한 틀로 과거와 현재가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인간은 사실 변화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만일 과거를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김석주는 그 기억의 일관성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그냥 살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변화는 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김석주 변호사가 과거 그러했듯이 현실에서는 도대체 인간이 어쩌면 저런 끔찍한 선택을 아무런 가책 없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이 하는 것이다. 각종 금융시스템은 그 숫자들 뒤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은폐한다. 변호사들이 다루는 법조항들은 그 문구들 뒤에 달린 누군가의 인권을 지워버린다. 인간이 아니라 그저 숫자를 다루고 법조항을 다루고 있다는 착각은 끔찍한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은 기억의 조작이다. 시스템이 조장하는 일종의 치매다.

 

김석주 변호사는 그래서 그렇게 시스템에 연루된 과거를 지워버리고 시스템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과거의 기억을 잃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시스템이 잠시 인간성에 대한 기억상실을 조장했던 기억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로운 선택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시스템과 대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변화는 불가능하지 않다. 흔히들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이들이 느끼는 그 순간의 무한한 자유가 새로운 선택들을 가능하게 하듯이. 김석주 변호사가 차영우펌을 빠져나올 때 그를 향해 축복처럼 쏟아지는 햇살처럼. 변화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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