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빵생활'이 건드린 '노오력'과 최선 요구하는 사회“나 이제 그만 노력할래. 최선을 다하는 것도 이제 지겹다.” 프로야구 슈퍼스타인 김제혁(박해수)은 의외로 선선히 은퇴를 선언했다. 김제혁 선수가 슈퍼스타가 됐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인내의 아이콘’이고 ‘노력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위기를 맞았던 순간이 있었지만 인내와 노력으로 재기에 성공했던 그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깨에 이상이 있다고 해도 재활치료를 통해 재기할 거라 주변사람들은 믿고 있었지만 김제혁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심지어 “야구만 은퇴하면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김제혁의 이 은퇴선언이 담는 함의는 작지 않다. 대부분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포기보다는 노력을 통한 극복을 보여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왜 이렇게 선선히 포기를 선언하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김제혁이 어쩌다 듣게 된 의사와 팀 매니저들 사이의 대화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그 말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 만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그 노력의 아이콘이라는 굴레로 스스로 하고픈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왔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결국 은퇴선언 방송이 되어버린 감방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김제혁이 요구한 건 담배 한 대였다. 운동선수로서 모든 걸 절제하고 살아왔던 그가 담배를 피운다는 건 이제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온 김제혁이 마침 감방 동료들이 벌이는 술판에서 “저도 술 잘 마셔요”하며 합류하는 대목도 그렇다. 그는 담배도 필 줄 알고 술도 잘 마시는 사람이었다. 다만 ‘노력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그런 걸 극도로 절제했을 뿐.

김제혁이라는 인물이 어딘지 느리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알아채기 힘들게 된 것도 모두가 그에게 희망하는 슈퍼스타로서의 면면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보였다. 때 아닌 사건에 휘말려 구치소에 가게 되고 또 거기서 교도소로까지 오게 됐으며 심지어 자신의 존재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야구를 포기하게 된 상황. 이 드라마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제혁은 이처럼 끝없이 현실적인 추락을 거듭하는 인물이다. 어째서 이 드라마는 주인공을 성공하는 인물이 아닌 추락하는 인물로 선택했을까.

여기에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가진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담겨있다고 보인다. 그건 섣불리 성공이나 꿈같은 걸 이야기하는 게 어려운 현실이다. 물론 사회는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성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꿈과 노력으로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현실인가. 이런 현실을 마주한 청춘들은 그래서 그 노력을 ‘노오력’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김제혁은 자신이 그런 ‘노오력’의 아이콘이 되어 누군가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헛된 희망으로 남기보다는 소소해도 행복한 삶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면서 그동안 절제하며 살아오느라 놓쳐온 많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보려 한다. ‘노오력’을 해오느라 무표정했던 삶에 표정을 찾아보기로 한다.

김제혁의 선택은 사회가 보기에는 바보 같은 선택이고 패배자 같은 선택처럼 보일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최선의 ‘슬기로운 선택’이다. 없는 희망은 애써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빨리 포기하고 현실적인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의 청춘들이 막막한 현실과 맞닥뜨려 갖게 된 ‘슬기로운 선택’과 그리 다르지 않다. 도대체 현재를 희생시키고 포기하면서 얻는 미래의 성공과 꿈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것도 불확실한 미래의.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김제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건 ‘부정의 긍정화’다. 즉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이를 깨쳐나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것을 빨리 긍정하는 것이라는 걸 이 인물은 보여준다. 실로 감방생활을 닮은 현실이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슬기롭게’ 대처한다면 나름 저마다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따뜻하게도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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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싱어2’, 왜 시즌1보다 실력자들이 늘었나 보니

듣는 귀가 달라져서일까. 아니면 진짜 실력자들이 쏟아져 나와서일까.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2>는 시즌1보다 훨씬 많은 실력자들이 눈에 띈다. 이태리에서 날아온 세계적인 바리톤 김주택이나 독일에서 온 베이스 바리톤 김동현, 청량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조민규, 무대장악력이 놀라웠던 권성준 그리고 ‘팬텀 오브 더 오페라’를 남녀 파트를 넘나들며 불러 듣는 이들을 소름 돋게 했던 강형호가 등장한 첫 회는 그래서 시작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팬텀싱어2(사진출처:JTBC)'

건강한 목소리를 전해준 농부 테너 정필립, 뮤지컬 가수지만 생계를 위해 제주도 호텔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신명근, 전직 씨름선수였다가 성악을 하게 됐다는 안세권,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스스로를 밝히고 어딘지 어눌한 면이 있었지만 놀라운 완성도의 노래를 들려준 조민웅, 늘 형의 그늘 아래 있었다고 했지만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 박상돈의 동생 박상규, 야성미에 연기력까지 돋보인 개성파 보컬 이정수, 단단한 실력파 뮤지컬 조형균 등등. 출연자들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안세권 같은 성악가의 노래는 성악을 모르는 일반인이 듣기에도 너무나 잘 한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성량도 풍부한데다 힘도 좋고 고음까지 쭉쭉 치고 나가는 그 목소리에 심사위원인 윤종신은 가요를 하는 입장에서도 듣기 좋은 소리라고 극찬했다. 또 조진웅과 외모도 닮고 이름도 비슷해 실제 형제가 아닌가 착각하게 했던 조민웅이 들려준 차이코프스키의 노래는 러시아 가곡의 매력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 말뜻은 잘 와 닿지 않지만 왠지 모를 러시아 특유의 감성 같은 것들이 묻어났다. 

이태리는 물론이고 독일에서 음악활동을 하는 현역 성악인이 참여하고, 한 때는 성악가였지만 시골 농부로서 살아가는 사람이나 뮤지컬 배우를 꿈꿔왔지만 현실을 위해 호텔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 박상돈처럼 실력이 충분하지만 어쩐 일인지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다는 동생 박상규, 그리고 덕후로 시작해 실력자가 된 사람이나 그들을 보며 꿈을 키워가는 대학생까지. 도대체 이 많은 실력자들이 어디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게 된 걸까. 

아마도 그건 <팬텀싱어> 시즌1이 일종의 물꼬를 터준 덕분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음악에 있어서 성악가나 오페라 가수 그리고 뮤지컬 배우만큼 실력자들이 없다. 물론 뮤지컬은 최근 몇 년 간 대중화되면서 그 저변이 넓어졌지만 성악이나 오페라를 하는 이들은 아직까지 일반 대중들과의 접점이 많이 없었다. 실력은 충분하지만 그 실력을 일반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대가 없었던 것. 

시즌1이 대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이들에게는 <팬텀싱어2>가 꿈의 무대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실력자들이지만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그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제대로 들려준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겠나. 무엇보다 이 무대는 우리가 잘 몰랐던 성악이나 오페라 같은 세계를 대중들에게 알려준다는 좋은 취지가 있었다. 그러니 세계적인 실력자도 또 그들을 보며 꿈을 키워왔던 아마추어도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수밖에.

어째서 이토록 놀라운 실력에 감성까지 더해 우리의 귀까지 고급지게 만들어주는 음악을 어째서 우리는 잘 모르고 지내왔을까. 그것은 아마도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고 있기보다는 특정 장르에 편중되어 그 부류의 음악들만 대중들에게 전해진 탓이 아닐까 싶다. <팬텀싱어2> 같은 그 어떤 장르보다 실력자들이 넘치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무대가 더더욱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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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식당’ 이진주 PD와 ‘신혼일기’ 이우형 PD가 말하는 나영석

물론 성공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한 번 정도 성공하는 일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매번 할 때마다 성공을 거둔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고, 그것도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내놓아 거둔 성공이라면 더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려운 걸 해낸 인물이 바로 ‘나영석 사단’이다. 여기서 나영석 PD가 아니라 나영석 사단이라고 지칭한 건, 이제는 그의 성공이 그만의 것이 아니며 또 그렇게 여럿이 함께 머리를 모아서 그런 연속적인 성공 또한 가능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윤식당> 이진주PD와 <신혼일기>의 이우형PD

나영석 사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PD는 세 명이다. 지금 현재 <윤식당>을 하고 있는 이진주 PD, <신혼일기>를 했던 이우형 PD 그리고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편>부터 <신서유기2>, <삼시세끼 어촌편3>에 참여하고 현재 곧 방영될 새로운 예능을 준비하고 있는 양정우 PD가 그들이다. 이진주 PD와 이우형 PD, 그리고 따로 나영석 PD를 각각 만나 이들이 현재 일궈가고 있는 연전연승의 신화가 어떤 동력에 의한 것인가를 들여다봤다. 

-“올해는 목표가 후배 PD 세 명과 세 편의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었어요.”

나영석 PD의 이 이야기는 그의 현재 위치가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져 있다는 걸 말해준다. 과거에는 홀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런칭하는 연출가로서의 위치였다면 지금은 그걸 하면서도 tvN이라는 텃밭에 자신의 뒤를 이을 새로운 PD들을 발굴하고 관리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간 조금은 뒤로 밀어두었던 관리자라는 역할을 스스로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 “최종 결정을 하는 일. 그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후배인 이진주 PD는 나영석 PD가 하는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일이라고 했다. 발리 여행을 하다 문득 이런 곳에서 가게를 열고 며칠 간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기획안으로 내밀었을 때, 나영석 PD는 바로 “이건 된다”고 확신을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는 것. 후배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갖게 되는 어떤 감정과 느낌 같은 것들은 그렇게 이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의 아이템들을 다채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나영석 PD 개인보다 나영석 사단이 훨씬 유리해지는 대목이다.

- “명한이 형에게 배운 것이 많아요.” 

지금의 그를 이끌어준 tvN 이명한 본부장의 행보는 나영석 PD에게는 일종의 지표처럼 보였다. 주로 제작 쪽에서만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던 나영석 PD는 스스로도 자신은 사람 관리가 어렵다고 말한 바 있지만, 지금은 그 영역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등대처럼 저 앞에 서 있는 이명한 본부장 덕분이다. 

- “이명한 본부장님이 하는 일에 대한 무한신뢰가 있어요.”

나영석 PD는 물론이고 tvN 사람들 대부분이 이명한 본부장에 대해 갖고 있는 무한신뢰에 대해 이진주 PD는 이런 사례를 들어 얘기해주었다. 맡고 있던 업무가 바뀌어서 “왜 내가?”하고 묻던 사람도 “명한 선배가 지시한거야”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 대부분은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감은 나영석 사단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 되고 있었다. 나영석 PD에 대해 이진주 PD도 또 이우형 PD도 갖고 있는 신뢰 또한 이명한 본부장에 대한 그것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힘들어도 믿고 하다 보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이우형 PD가 <신혼일기>를 하게 된 건 사실 본인이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위에서 해보라는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사실 구혜선, 안재현 실제 신혼부부가 리얼리티쇼 형식으로 방송에 참여한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새로운 영역 하나가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고 했다. 필자가 신혼만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관계들, 이를 테면 친구나 고부, 부자 등등의 관계들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이우형 PD는 그런 다양한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 “이제 공력의 30%만 써요. 나머진 후배들이 채우죠.”

나영석 PD는 현재 3명의 후배들과 세 개의 프로그램을 연달아 동시에 돌려왔다고 했다. 그것이 가능한 건 한 프로그램에 자신의 공력을 100% 투입하지 않고 30% 정도 쓰고 나머지는 후배들의 영역을 남겨 놓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30%의 역할이 무언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중요성이 낮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배분은 결과적으로 보면 1년 후 tvN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영석 선배는 권력욕이 여전하죠(웃음)”

사실 이렇게 후배들에게 일정 부분의 자기 영역을 내어주는 건 어찌 보면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나눠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농담으로 “잘되면 내 탓, 안되면 후배 탓” 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라고 말하며 허허 웃었고, 이진주 PD와 이우형 PD 역시 농담 반으로 “영석 선배가 권력욕이 강하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이들의 농담이 그만큼 스스럼없는 편안한 관계에서 나오는 좋은 긴장감으로 보였다. 선배와 후배 사이의 이런 긴장감은 시스템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었다. 

- “저나 후배들이나 하는 일은 그리 다르지 않아요.”

나영석 PD는 자신이 하는 일이 과거와 그리 달라지지 않았고 또 후배들이 하는 일도 자신과 마찬가지 일이라고 했다. PD, 작가, 스텝 할 것 없이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내고 행동에 옮기는 나영석 사단이 일을 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위계가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참여해서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나영석 사단이 연전연승하는 비결이 아닐까.

- “미술감독님 없었으면 큰 일 날 뻔했죠.”

마지막으로 특별한 에피소드 하나. 이번 <윤식당>의 경우 가게를 오픈하고 하루 만에 철거당하는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을 수 있었던 건 현장에서 함께 했던 미술감독과의 일의 차원을 넘어선 돈독한 관계 때문이었다. 나영석 PD도 또 이진주 PD도 이구동성으로 미술감독이 마침 없었다면 프로그램은 좌초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뒷얘기를 들어보니 그것 역시 이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가게를 오픈하고 미술감독은 귀국해도 됐지만 제작진들이 너무 고생하셨다며 며칠 더 머무르게 했다는 것.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남게 된 미술감독이 있어 1호점이 철거된 후 2호점을 바로 열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일화는 나영석 사단이 어째서 그리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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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닥터>,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의 대결구도가 말하는 것

 

복수하려면 저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돈 없고 빽 없어 아버지의 죽음을 맞게 된 어린 강동주(윤찬영)에게 다가와 남긴 김사부(한석규)의 그 말 한 마디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한 편의 복수극이라는 것. 하지만 그 복수극이 여타의 복수극들과는 사뭇 다르리라는 것.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이 예감을 보다 확실하게 만드는 건 이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이라는 대결구도다. 어찌된 일인지 거대병원에서 예사롭지 않은 실력을 가진 외과의였던 김사부는 산 속에 위치해 환자들이 전혀 찾아올 것 같지 않은 돌담병원의 외과과장으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프로포즈를 받는 날 난 사고로 남자가 죽고 상심한 윤서정(서현진)이 등산을 하다 낙상해 손을 다친 채 이 병원에서 살아가고,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보려 무리하게 VIP 수술을 하다 사망한 환자 때문에 좌천하게 된 강동주(유연석)가 이 병원으로 온다. 결국 이 구도는 거대병원에서 어떤 사정들로 인해 밀려나게 된 인물들이 돌담병원을 통해 무언가를 이룬다는 이야기의 전제처럼 보인다.

 

거대병원과 돌담병원. 이 대결구도는 그래서 이 작품이 리얼리티를 추구한다기보다는 한 편의 우화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걸 잘 말해준다. 물론 김사부를 중심으로 어린 강동주와 청년이 된 강동주가 인연을 이어 돌담병원에서 다시 만나고, 또 산에서 낙상한 윤서정을 하필이면 김사부가 발견해 돌담병원에서 치료해주고 함께 지내게 되는 이야기에 개연성 부족을 지적하는 건 타당한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개연성보다는 이 구도가 가진 우화적 메시지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대결구도는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고 구축된 것일까. 이미 강동주가 겪음으로써 알게 된 것들이지만, 그는 현실이 실력보다는 스펙이나 집안 같은 관계에 의해 다른 대우를 받는 차별의 시대라는 걸 드러내는 인물이다. 제 아무리 수석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는 집안 좋은 친구에게 늘 밀리게 되는 현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런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도 성공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했을 바에는 차라리 힘 좋은 VIP와 친분을 쌓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래서 무리하게 시도한 수술에서 그는 실패해 좌천하게 되지만.

 

거대병원이 권력과 성공을 지향하고 그 시스템은 실력이 아닌 스펙과 집안 같은 태생이 무엇이냐는 것에 의해 굴러간다면, 돌담병원은 그런 권력이나 성공 따위는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고 오로지 환자를 살린다는 목적이 중요하며 나아가 실력만이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곳이다. 그래서 김사부라는 캐릭터는 권력과 성공 같은 욕망이 아닌 의사의 본질적인 직업적 소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의사로 상징되는 인물이다. 그의 밑에서 진정한 의사의 길을 배워나가는 강동주와, 트라우마를 극복해내는 윤서정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중요한 스토리다.

 

돌담병원 같은 우화적인 공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역시 우화적인 인물들을 이 드라마가 굳이 구축해 보여주는 이유는 그것이 거대병원 같은 현실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다. 어딘지 성공지향적인 과거의 시스템에 머물러 있으며, 생명보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굴러가는 거대병원은 어쩌면 우리네 현실의 축소판 같은 뉘앙스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시스템을 벗어나 온전히 생명으로서의 인간에 집중하는 돌담병원의 휴머니티는 그 자체로 비판적 우화의 틀을 만들어낸다.

 

김사부에게 어떤 힐링과 위로를 기대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부조리하고 비뚤어진 욕망의 시대에 김사부가 전하는 휴머니즘이 만만찮은 의미를 던져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실력 있는 그들이 저 산골로 좌천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우화가 가진 웃픈 현실의 단면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복수하려면 저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는 말은 단순한 복수를 뜻한다기보다는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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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는 왜 500회 특집을 좀비로 마무리 지었을까

 

어쩌다 보니 좀비를 등장시키게 된 걸까 아니면 500회 특집에 맞게 의도한걸까. MBC <무한도전>500회 특집으로 마련한 무도리go’ 게임의 마지막 라운드는 지금은 텅 비어있는 여의도 MBC사옥에서 벌어졌다. 이른바 꼬리잡기형식을 따온 무도리잡기게임.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각 층에 한 명씩 내려놓고 시작한 게임은 갑자기 좀비들이 출현하면서 좀비 특집이 되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부산행>의 좀비 연기를 했던 연기자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실감나는 좀비들의 출현은 출연자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고, 깜짝 놀라고 쓰러지고 무서워하는 모습만으로도 큰 웃음을 주었다. 특히 산만한 덩치를 갖고 있는 정준하는 시종일관 말을 더듬을 정도로 긴장하며 좀비들이 나타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역시 리액션 왕 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결국 이 게임은 하하가 이겼지만 전체 무도리go’ 게임의 우승은 유재석에게 돌아갔고, 그에게 부상으로 1000회 출연 프리패스가 돌아갔다. 500회를 넘어 1000회까지 계속 쭉 가자는 김태호 PD의 뜻이 담긴 센스 있는 포상(?)이었다. 그런데 궁금해지는 건 왜 하필 이 게임의 마지막을 좀비 특집으로 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건 진정 우연이었을까.

 

이번 500회를 맞아 <무한도전>이 한 무도리go’ 게임은 사실상 그간의 많은 특집들을 회고하고 추억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래서 그 게임을 하며 자연스럽게 장기프로젝트로 했던 조정경기나 에어로빅, 댄스스포츠 등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고, 63빌딩에서 했던 무한알바나 역대급의 몰래카메라를 선보였던 퍼펙트센스게다가 <무모한 도전> 시기에 시도했던 오리배로 유람선 따라잡기같은 도전들을 추억할 수 있었다.

 

이런 콘셉트를 가진 <무한도전> 500회가 가장 아프면서도 레전드로 남은 좀비 특집을 빼놓았을 리가 없다. 무려 400명의 좀비 연기자들을 동원했고 카메라만 48대를 설치했으며 예산 자체가 평시에 2배 정도를 썼으나 박명수가 혼자 살겠다고 사다리를 밀쳐내는 바람에 단 28분 만에 실패로 돌아간 미션. 이 아이템은 <무한도전>의 대표적인 실패사례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만의 고유의 성격, 이를테면 실패해도 그 과정은 성공이라는 그 특징을 상징하는 사례가 되었다.

 

아마도 500회 특집의 마무리에 좀비를 등장시킨 건 그래서 다분히 의도가 깔려 있다고 읽히기에 충분하다. 그 좀비 특집의 실패사례가 보여주는 가치는 다름 아닌 <무한도전> 무려 500회를 달려올 수 있었던 초심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늘 도전에 실패하고 나서는 에이스가 아니었습니다라고 외치며 다시 도전하던 그들이 아닌가.

 

김태호 PD는 좀비 특집의 실패에 대해 묻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도전의 결과는 성공 혹은 실패예요. 성공하면 성공했으니 좋은 거고 실패하면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니 더 좋은 거죠.” 즉 안 되도 될 때까지 계속 도전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500회 특집 마무리를 좀비로 세운 건 아마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좀비들처럼 1000회까지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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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시대>의 성공, 청춘들에게 건네는 위안

 

JTBC <청춘시대>가 오늘 12회를 마지막으로 종영한다.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표한다. 이 소소해 보였던 작품이 어느새 슬금슬금 우리네 마음 속으로 들어와 깊은 여운을 남겼다는 걸 종영에 즈음해서야 비로소 새삼 느끼게 된다. 결국 좋은 작품은 시청자들이 알아본다는 걸 확실히 느끼게 해준 <청춘시대>였다.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사실 첫 시청률 1.3%(닐슨 코리아)에서 2회에 무려 0.4%까지 급락하면서 역시 신인 연기자들만을 캐스팅해 오로지 작품의 밀도 하나로 승부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여겨졌다. <청춘시대>는 한예리, 한승연, 박은빈, 류화영, 박혜수, 이렇게 다섯 명의 연기자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물론 한예리나 박은빈은 다른 작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연기자들이지만 다른 연기자들은 거의 신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한승연과 류화영은 아이돌 출신이 아니었나.

 

게다가 <청춘시대>가 경쟁해야 하는 금토 편성 시간대의 tvN <굿와이프>는 칸의 여왕이라 불리는 전도연에 역시 오랜만에 드라마로 모습을 보인 유지태가 주인공들이었다. 드라마의 첫 시청률을 이끌어내는데 있어서 이러한 톱클래스 배우들의 출연은 압도적인 우위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 <굿와이프>는 또한 미드 원작으로 탄탄하고 디테일한 대본이 변호사의 세계를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그러니 아예 <청춘시대>는 경쟁상대조차 되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0.4%부터 한 회 한 회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가며 작품의 가치를 알린 <청춘시대>는 시청률도 조금씩 회복했고 이 작품의 규모로 봐서는 성공이라고 봐도 좋을 2.5% 시청률을 넘어섰다. 드라마틱한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건 <청춘시대>가 그저 그런 청춘멜로물 정도일거라 가졌던 그 선입견과 편견을 작품을 통해 깨주었기 때문이다.

 

<청춘시대>는 달달한 청춘의 멜로만을 담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오히려 작금의 청춘들이 겪을 다양한 현실적 문제들을 극화한 작품이었다.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가고, 성추행에 치욕까지 겪으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며 버티는 청춘이 있었고, 사고의 트라우마로 미래를 꿈꾸지 않고 그저 현재를 막 살아가는 청춘이 있었으며, 부모의 죽음을 자신 때문이 아닐까 자책하는 청춘이 있었다.

 

또한 청춘들에게는 중대사라고 할 수 있는 연애 문제에 있어서도 <청춘시대>는 풋풋하고 달달한 사랑을 그려내면서도 현실을 잊지 않았다. 나쁜 남자와 헤어지지 못하는 청춘과 그녀가 겪게 되는 데이트 폭력의 이야기는 최근 들어 사회문제로까지 지목되는 소재였다. <청춘시대>는 청춘이라는 시기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지금의 청춘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들을 발랄한 감성으로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청춘 특유의 회복탄력성을 이 작품은 보여줬다. 그토록 힘겨운 현실들을 마주한 청춘들이 저마다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삶을 회복하는 모습은 그래도 버텨내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올 것이라는 작은 위안을 건네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청춘시대>의 성공이 의미 있는 건 스타 캐스팅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우리네 드라마 풍토에서 괜찮은 선전을 해주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여기 출연한 젊은 배우들의 발견은 요즘처럼 신인들이 설 자리가 사라진 현실에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실력도 의욕도 넘치지만 설 자리가 없어 그걸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지금의 청춘들이 한데 모여 작은 성취를 이룬 것 같은 느낌이다.

 

캐스팅에 있어서 스펙이 아닌 이 청춘들의 실력을 믿어주었고, 막연한 판타지가 아닌 진솔한 현실들을 담아내려 했던 노력은 결국 <청춘시대>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가 되었다. 요즘 같은 현실에 <청춘시대>의 성공이 유독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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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어느 한 남자의 추락을 바라본다는 건

 

태석(이성민)의 하루는 한 마디로 지옥 같았다. 하루아침에 멀쩡했던 그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뇌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가방 대신 쓰레기를 들고 나오질 않나 심지어 자기 차를 찾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알츠하이머에 대해 멍청이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재벌3세 의뢰인 영진(이기우)의 말은 이제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기억(사진출처:tvN)'

영진이 가진 병원측을 대신해 태석이 내부고발을 하려는 의사의 사적인 약점을 들춰내고 그것으로 문제를 덮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의사가 덜컥 자살을 해버리고, 백지유서에 그의 명함을 남겨 놓는 일이 발생한다. 의사의 자살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거기 남겨진 태석의 명함 때문에 형사가 찾아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한 가지가 어그러지기 시작하자 모든 게 뒤틀어지고 나쁜 일은 함께 몰려온다고 태석에게 그간 아무렇지도 않게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일상들이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를 돕는 젊은 변호사인 정진(이준호)은 태석의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사사건건 문제 삼고, 같은 로펌의 한정원(송선미) 변호사는 어쩐지 태석과 직장 내에서의 정치 싸움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겉으론 무표정하지만 어려운 일들을 대신 태석에게 밀어내고 거기서 생겨나는 문제를 끄집어내 로펌에서의 입지를 약화시키려 한다.

 

그 와중에 결혼식장에도 보지 못한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한 태석의 아버지(장광)가 나타난다. 태석의 회사를 찾아온 아버지는 자기 친구가 처한 문제에 대해 태석에게 변호를 부탁하지만 그는 자신에겐 아버지가 없다며 그를 내쫓는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는 어쩐지 태석에게는 또 다른 걸림돌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거의 신경쇠약 직전에까지 이른 태석은 자기 스스로 머리에 물을 붓는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다. 1인 아들은 어찌 된 일인지 편의점에서 술을 훔치고 학교도 빠져버린다. 왕따 문제 같은 학교 문제에 연루된 것이 틀림없다. 아직 태석에게까지 이 문제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조만감 이 문제는 그에게 치명타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 밖에서의 문제야 그렇다 치지만 그나마 그것이 모두 가족을 위한 일이었다고 위안하며 살았을 그가 아닌가. 가족의 붕괴는 그를 절벽 끝으로 내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의사가 자살한 병원의 간호사가 나타나 사실 그 백지유서를 놓은 건 자신이라며 진짜 유서는 자기가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언니가 키운 아이를 생모가 돌려달라고 한다며 이를 막아달라고 태석을 협박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한 의사의 진짜 유서를 공개해버리겠다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라고 소리치는 태석이 먼발치서 엄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가 보낸 이 지옥 같은 하루와 겹쳐지면서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토록 힘겹게 버텨내고 심지어 세상과 타협하면서까지 얻게 된 지위와 부 그리고 그로 인한 가족의 평안함이 무너지는데 드는 시간이 고작 단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는 건 실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억>이라는 드라마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에서의 고군분투가 진정한 삶의 가치에서는 얼마나 벗어나 있는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 그래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진짜 중요한 것들을 찾아 해나가는 것. 이것은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태석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많은 드라마들이 성장과 성공 스토리를 그려낸다. 그 안에는 판타지가 뒤섞인다. 현실에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쟁취하는 인물을 통해 갖는 대리 충족. 하지만 <기억>은 거꾸로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오른 한 인물의 추락을 그려낸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그 성공을 위해 저당 잡혀 왔던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는 것. 모두가 성장과 성공으로만 달려가는 시대에 우리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의미 있는 충격요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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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이성민만 봐도 빠져드는 까닭

 

역시 이성민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드라마다. 새로 시작한 tvN 금토드라마 <기억>은 인물의 감정선이 드라마에 얼마나 몰입감을 주는가를 잘 보여줬다. 사실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알츠하이머라는 소재는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심지어 기억상실이란 소재는 과거 드라마에서 툭하면 나오던 설정이 아닌가.

 


'기억(사진출처:tvN)'

하지만 <기억>은 기억상실이란 소재를 그저 극성을 높이기 위해 활용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대신 이 드라마는 기억을 잃어가게 되면서 차츰 삶의 본질을 찾게 될 한 중년 사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결코 가벼울 수 없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진지한 삶에 대한 질문이 담길 드라마다.

 

드라마는 박태석(이성민)이 방송 녹화 도중 전화를 받고는 지금 농담 하는거야?”하고 소리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짜고짜 치고 들어오는 이 드라마는 한 시간 동안 그에게서 벌어졌던 며칠 전의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담아낸다.

 

그는 성공한 변호사다. 하지만 그 성공은 그냥 된 것이 아니다. 가진 자들을 비호하기 위해 심지어 할 수 있는 비열한 짓까지 모두 동원해서 얻어낸 성공이다. 그는 의료사고를 덮으려는 병원 측을 변호하기 위해 내부고발을 한 의사의 자식이 과거 유학 중 마약을 했었다는 사실을 약점으로 잡아 거래를 하는 이른바 속물변호사다.

 

물론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주치의인 재민(최덕문)이 그 사실을 알고 그를 포장마차에서 나쁜 놈이라고 욕할 때, 본래 태석이라는 인물이 속물은 아니었다는 게 슬쩍 드러난다. 그는 변호사로서 별로 빛을 보지 못한 인물이었고 심지어 아들을 뺑소니로 잃고는 그 충격으로 이혼까지 하게 된 인물이었다. 결국 바닥까지 내려왔던 그는 어떻게든 성공하고 힘을 갖기 위해 속물이 되는 것조차 받아들였던 인물이다.

 

하지만 내부고발을 한 의사가 말했듯, “인생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단 며칠 사이에 로펌의 최고 승률을 달리는 변호사에서 알츠하이머를 앓고 기억을 잃어가는 중년 남자로 추락한다. 마침 그가 협박과 거래를 통해 무마시킨 의료사고 사건의 내부고발자였던 의사가 자살하게 됨으로써 태석은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속물변호사라는 자책감, 그러면서도 성공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 너무나 능숙하게 일처리를 해내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 아이의 죽음과 이혼이라는 깊은 상처, 재혼해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잊지 못하는 것 같은 옛 아내에 대한 감정, 재벌가 사람들에 빌붙어 살고 있지만 거기서도 슬쩍슬쩍 느껴지는 어떤 구토감 등등. 태석이란 인물은 굉장히 복잡한 감정선을 갖고 있다.

 

<기억>은 이 태석이란 인물이 계기를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 동기가 되는 여러 감정선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놀라운 건 이 복잡해 보이는 감정선이 하나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감정들이 뒤얽혀 있는 태석이란 인물의 여러 사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것이 그리 복잡하게 여겨지지 않는 건 역시 이성민의 믿음직한 연기력 덕분이다. 그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드라마는 그만한 몰입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갖게 되면서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된 태석은 어떤 삶의 변화를 겪게 될까. 속물이지만 성공한 변호사라는 위치가 주는 달콤함에서 벗어나 자신이 본래 서려 했던 그 자리로 돌아올 것인가. 그것은 추락인가 아니면 진정한 행복을 위한 길인가. 태석의 행보가 궁금하다. 그 행보를 일으키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 이성민의 연기를 통해 드러날 그 감정변화를 들여다보는 맛이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끌리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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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 박보검, 어른 아이가 감당하는 슬픔이란

 

<응답하라1988>에서 최택(박보검)이란 인물은 특이하다. 어린 시절부터 쌍문동 골목에서 함께 자라온 또래의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간다. 그들이 학교에 갈 때 택이는 기원으로 가고, 그들이 미래의 꿈을 이야기할 때 그는 이미 그 차원을 넘어서 현실 깊숙이 들어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에게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조차 친구를 위해 아무도 모르게 마음을 숨기는 어른스러움이 묻어난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택이는 이 쌍문동 골목에서는 이미 어린 나이에 성공한 인물이다. 최고의 바둑기사로서 부와 명예를 다 얻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소년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바둑 이외에는 젓가락질 하는 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이 소년에게 친구들이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처럼, 이상하게도 택이를 보고 있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보호본능 같은 것이 피어난다. 왜 그럴까.

 

친구인 선우(고경표)와 택이가 그들의 부모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는 걸 알고는 나누는 대화에서도 택이는 역시 어른스럽다. 어느 날 기원에서 일찍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혼자 물에 밥을 말아먹는 걸 보고 이제 그 옆에 좋은 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선우의 엄마라서 좋다고. 다행이라고 말한다. “넌 괜찮냐엄마 생각 안나냐고 묻는 선우에게 택이는 너보다 오래돼서 괜찮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택이의 얼굴은 어른과 아이가 교차한다. 아빠의 쓸쓸한 저녁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마음은 아이의 그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식을 둔 어른의 세계를 슬쩍 들여다 본 듯한 마음도 묻어난다. 택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선우는 또래의 아이 같은 모습이다. 그는 엄마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괜찮지않다. 그래서 택이는 마치 선우에게 인생의 한 수를 얘기해주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택이에게서 느껴지는 이 어른스러움이란 아마도 바둑이라는 세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늘 눈이 반쯤 감긴 채로 피곤에 찌든 얼굴로 다니고, 방에 들어오면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드는 무기력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대회에 나가 바둑판 앞에 서면 위압감을 줄 정도의 신경이 곤두선 얼굴을 보여준다. 프로 기사로서의 바둑은 아마도 어른들의 세계일 것이다. 그가 이기고 지는 것에 심지어 나라가 들썩일 정도다. 그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일찍이 어린 나이에 성공해 어른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온 택이는 쌍문동 골목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아이에 불과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슬픔은 아마도 여기서 기인하는 일일 게다.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어른들의 세계가 주는 무게감을 묵묵히 버텨내고 있는 것이 그 얼굴에서 비춰지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조금씩 차오르던 슬픔이 수위를 넘어 눈물로 터져 나올 때 우리는 그의 슬픔이 왜 그리도 강렬하게 다가오는지를 눈치 채게 된다. 어린 나이에 독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그래서 어른의 세계 속에서 버텨내려는 아이의 안간힘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94년까지 흘러간 <응답하라1988>에서 쌍문동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꿈을 향해 걸어간다. 선우는 의대생이 되었고 정환(류준열)은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갔으며 덕선(혜리)은 스튜어디스가 되었다. 정봉(안재홍)은 법대에 드디어 입학했고 택이는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 나간다. 하지만 이 친구들의 성장 속에서 유독 택이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성취보다는 슬픔이다. 단지 오래돼서 이젠 괜찮다고 말하던 것처럼 슬픔이 조금 무뎌지게 느껴질 뿐.

 

배우 박보검은 택이라는 인물을 200% 소화해내고 있다. 아니 어찌 보면 그 인물이 자신의 분신이라도 되는 듯 자연스럽게 그 천진함과 슬픔을 연기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혹시 연기라는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와 있지만 여전히 소년인 자신을, 택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응답하라1988>은 웃음만큼 눈물도 많은 드라마다. 그리고 그 정조를 택이만큼 잘 보여주는 인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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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의 성취와 이병헌에 대한 호불호는 별개

 

영화 <내부자들>에 대한 관객 반응은 뜨겁다. 개봉 첫 주에 160만 관객을 동원해 역대 청불 영화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고 최단기간 100만 관객 돌파 기록을 세웠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지금이 영화 비수기로 불리는 시기라는 점이다. 이런 시점에 <내부자들>이 이런 결과를 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진출처:영화<내부자들>

<내부자들>은 확실히 이런 기록을 낼만한 영화적 성취를 갖고 있다. 그 첫 번째 힘은 윤태호 원작이 갖는 그 스토리에서 나온다. 이미 <베테랑>에서 우리가 확인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 현실 속에 상존하는 권력의 부조리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은 깊다. <내부자들>은 이 부조리의 심층부를 모두 도려내서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다. 정계, 재계, 언론계, 법조계가 <내부자들>의 도마 위에 오른다. 그것만으로도 대중들은 반색할 만하다.

 

두 번째 힘은 이런 스토리를 실제처럼 만들어버리는 연기자들의 빈틈없는 연기다. 백윤식이나 이경영, 조승우, 이병헌까지 착한 역할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욕망의 질주를 보여주는 연기들은 보는 이들을 공분하게도 하고 때로는 통쾌하게도 만든다. 이 정도면 악역 연기의 각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흥미로운 건 <내부자들>의 이런 성공과 함께 솔솔 피어나고 있는 이병헌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다. 마치 <내부자들> 하나로 그간 이병헌에게 쏟아졌던 비난들이 모두 잠재워지기나 한 것 같은 호들갑이다. 성급하게는 이제 모든 액땜을 한 이병헌이 <내부자들> 한 편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화는 영화고 이병헌은 이병헌이다.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영화에 대한 호평은 당연하다. 실로 잘 만들어진 영화니까. 또 연기에 대한 호평도 마찬가지다. 실로 이 영화 속에서 이병헌은 연기를 잘했다. 게다가 연기를 떠나서 그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악역은 지금 현재의 이병헌에게는 그토록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연기는 잘 했다고 칭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병헌에게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대중들은 여전히 지난 50억 협박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이병헌의 행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건 영화가 성공하든, 연기를 잘했든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침 그에게 딱 맞는 캐릭터가 <내부자들>에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다. 만일 그가 지금 시점에 깡패 역할이 아닌 순애보의 남자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같은 반응이 나왔을까. 제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대중들이 몰입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의 성공 때문일까. 이병헌은 광고에 공공연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제 논란이 만들어냈던 그 불편함을 스스로 털어 버린 듯한 모습이다. 여기에 공조해 언론들도 일제히 이병헌의 재기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 대해 대중들은 여전히 냉담하다.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이병헌이 오롯이 연기자로 다시 서게 되는 길은 더 멀어질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작품 하나 잘 한 것으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기자는 연기만 잘하면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연기자의 어떤 일상적인 행동이나 태도는 고스란히 그의 연기를 바라보는 대중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연기는 어찌 보면 그저 만들어서 가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섣부른 샴페인 터트리기보다는 자신을 한껏 낮추고 지금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연기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겠다는 그런 겸허함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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