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가 발굴한 배우들, <성균관스캔들>처럼 성장할까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 종영했다. 끝났지만 보내지 못했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보인다. 그만큼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는 뜻이다. 최고 시청률은 23.3%(닐슨 코리아). 화제성은 단연 갑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남긴 자산은 이 작품이 발굴해낸 만만찮은 배우들의 가능성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 중심에 박보검이 있다. 사실 박보검을 신인이라 말하긴 어렵다. 그는 tvN <응답하라1988>의 택이 역할로 주목받고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미 그 이전에 <각시탈>, <원더풀마마>, <참좋은시절>, <내일도 칸타빌레> 같은 작품들을 거쳤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그가 여러 작품을 통해 쌓고 <응답하라1988>을 통해 단단해진 연기의 결을 비로소 제대로 펼쳐낸 작품이 되었다.

 

여전히 소년 같은 이미지, 하지만 어딘지 소년답지 않은 슬픔 같은 것이 담긴 눈빛, 그래서 그 슬픔이 눈에 머금은 채 환하게 웃을 때 느껴지는 그 복합적인 감정들. 일찌감치 어른의 세계에 들어와 그 아픔을 알아버린 아이 같은 그런 애틋함이 이 예사롭지 않은 가능성을 가진 배우의 결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조정대신들이 만들어내는 살벌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가 제대로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대항하며 성숙해가는 모습을 200% 시청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었던 건 그가 갖고 있는 결이 이영이란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박보검의 상대역을 한 김유정은 남장여자 콘셉트를 제대로 소화해낸 여배우들이 그랬듯이 이제 소녀의 틀에서 성인역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를 잘 치러냈다. 아역 이미지가 강했던 그녀가 홍라온이라는 인물을 통해 비로소 보다 성숙해진 여성의 느낌을 갖게 됐다는 건 그래서 김유정으로서는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아역시절부터 충분히 쌓아온 연기 공력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이미지 변신과 만나게 된 김유정의 앞으로의 연기가 더더욱 기대되는 지점이다.

 

김윤성 역할을 연기한 진영 역시 B1A4의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연기 소화력을 보여줬다. 사실 아이돌들은 연기에 대한 부담감이 타 배우들보다 크기 마련이다. 게다가 특히 사극 같은 경우는 본격 연기자들조차 적응이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그런 상황을 감안해보면 진영이 보여준 연기는 놀라울 정도로 단단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연기돌로서 발전 가능성이 높은 면면을 충분히 그는 보여줬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데뷔해 <돌아와요 아저씨>, <피리부는 사나이> 같은 작품을 거치며 조금씩 성장해온 곽동연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주목받았다. ‘갓동연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을 정도. 이영의 호위무사이자 친구로서 그 선을 넘나드는 김병연이란 인물을 그는 괜찮은 액션 연기와 내면 연기를 통해 보여줬다. 역시 향후가 기대되는 배우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그 퓨전사극의 틀이 <성균관 스캔들>과 비교되곤 했다. 그런데 그 <성균관 스캔들>이 만든 최대의 성과는 역시 연기자들의 탄생이었다. 그 작품으로 박유천, 송중기, 유아인이라는 만만찮은 배우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모두 한류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 역시 훗날 이런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남지 않을까. 여기서 발굴된 배우들이 <성균관 스캔들>의 배우들처럼 좀 더 넓은 세계에서 훨훨 날 수 있기를.

박보검과 김유정, <구르미>의 어른 아이들

 

사실 대본만 놓고 보면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 왜 이토록 화제가 되는 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남장여자 코드의 사극 버전 멜로는 이미 <성균관 스캔들>이나 <바람의 화원>을 통해 충분히 익숙해진 스토리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스토리는 여기서 그다지 새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남장여자로 자신을 숨긴 채 내시로 궁에 들어온 홍라온(김유정)이 왕세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멜로 이외에 사극이 갖기 마련인 정쟁 구도도 그리 신선하다 여겨지지는 않는다. 왕이 있지만 모든 실세를 쥐고 있는 세도가 김헌(천호진)이 그 정쟁의 중심에 서 있다. 대리청정을 받아들인 왕세자 이영(박보검)은 그 김헌과 대립한다. 이미 뽑힐 사람이 정해져 있는 말 뿐인 과거시험을 치르지 않겠다던 이영은 정약용(안내상)의 조언으로 시험은 치르되 다른 시제를 냄으로써 시험의 초심을 공명정대하게 지켜낸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사실 너무 소소해 보여 이 사극이 보여주는 멜로와 견줘보면 그리 집중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이 사극의 이야기는 이영과 홍라온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멜로가 거의 대부분이다. 남장여자라는 콘셉트는 내시와 여인 사이를 오가는 홍라온을 통해 이영과의 멜로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장치다. 물론 홍라온이 홍경래의 여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멜로구도는 정치적 사안과 맞물려 긴장감을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극의 특성상 그 이야기 역시 정치적인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멜로적 긴장으로 갈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이야기는 익숙한 것들이 어느 정도는 그 향방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르미 그린 달빛>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그리고 그 뜨거운 반응의 중심에는 박보검과 김유정이 있다. 이 두 사람의 연기에 한 마디로 심쿵하고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이들의 연기가 무엇이 특별하길래 이토록 마법을 부리는 걸까.

 

사실 박보검은 매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을 정도로 그가 들어가는 프로그램마다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응답하라1988>에서 그 연기가 주목받았다면 <꽃보다청춘>, <12>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의 심성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닿았다. 연기력과 심성. 이 두 요소는 요즘 드라마와 예능에서 가장 요구되는 자질들이다. 어린 나이지만 그는 <스틸사진>의 아역에서부터 <각시탈>, <원더풀 마마>, <참 좋은 시절>, <내일도 칸타빌레>를 거쳐 <응답하라1988>까지 꽤 많은 작품들에서 연기공력을 쌓았고, 파산으로 어려운 형편 때문에 쉽지 않은 청소년 시절을 겪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연기 경험을 했던 것과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은 점은 결과적으로 보면 연기자 박보검에게는 큰 자산이 됐다고 보인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이영을 연기하는 박보검은 여전히 아이 같은 순수한 눈빛을 갖고 있지만 어딘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슬퍼 보이고 그러면서 때론 서슬 퍼런 왕세자의 눈빛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려보이지만 어른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래서 그것이 꽤 슬픈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김유정 역시 이런 관점으로 보면 박보검과 비슷한 점들이 있다. 그녀는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연기를 하며 성장해왔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30여 편에 달하는 작품에 출연한 그녀는 벌써 연기경력이 10년이 되는 셈이다. 아역의 이미지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지만 그녀는 그것을 깨기 위해 최근 무던한 노력을 해왔다. <우아한 거짓말>이나 <앵그리맘>에서의 연기변신은 단적인 사례다.

 

아역이 성인역으로 넘어가는 성장통은 의외로 깊을 수밖에 없지만 놀라운 건 김유정은 아역 시절부터 벌써부터 성인역에 가까운 감정과 내면 연기를 선보였다는 사실이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 구미호와 인간 사이의 반인반수인 연이 역할을 연기하는 김유정이 그랬고, KBS단막 스페셜 <곡비>에서 기생 역할을 연기하는 그녀가 그랬다. 그녀에게도 박보검처럼 아이 같은 면면과 동시에 어른스러움이 갖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게 느껴지는 건 이런 남다른 필모그라피 덕분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면면을 갖고 있지만 어른들의 세계에 서서 어른들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박보검과 김유정의 눈빛이 더 아련한 느낌을 주는 건 당연하다. 특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살벌한 어른들 세계에 온전히 아이 둘이 서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지 않던가. 두 사람이 서로 애절한 눈빛을 나누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더 쥐어짜는 건 그래서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이토록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고 또 찾아보게 만드는 것도.

<구르미> 김유정, 남장여자 캐릭터의 진수

 

박보검 매직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의 시청률이 19.3%(닐슨 코리아)로 치솟았다. 8.3%로 다소 저조하게 시작했던 시청률은 16%로 뛰어오른 후 이제 20%를 목전에 두고 있다. 경쟁작으로 등장했던 SBS <달의 연인>7.4%로 시작해 5.7%까지 떨어진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 중심에 박보검이 있다. 사실 <구르미 그린 달빛><달의 연인>은 장르적으로도 또 스타일 상으로도 유사한 점이 많은 작품이다. 사극이지만 청춘 멜로를 바탕에 깔고 있고 현대극에 가까운 시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유사한 성격의 두 작품이 이렇게 극적으로 희비쌍곡선을 그리게 된 건 아무래도 연기자들의 몫이 크다.

 

박보검은 아직 사극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어리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의외로 이영이라는 왕세자의 다양한 면면들을 잘도 끄집어내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릴 때면 한없이 아이처럼 슬퍼하다가, 어딘지 무기력한 아버지인 왕(김승수) 앞에서는 반항적이면서도 동시에 그 아버지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권력의 실세로 조정을 농단하는 김헌(천호진)과는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홍라온(김유정)에게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끌림을 천연덕스럽게도 연기한다.

 

혹자는 <구르미 그린 달빛>이 정통사극이 아니고 현대적인 감각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연기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사극이 주는 진중함을 가져가면서도 그것을 살짝 무너뜨리며 현대적인 유머와 시각을 집어넣는다는 건 어쩌면 온전한 정통사극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두고 보면 박보검의 진지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그 균형감각은 연기자로서 탁월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박보검만큼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다름 아닌 상대역인 홍라온 역을 연기하고 있는 김유정이다. 아직 만 16세로 우리에게는 아역으로 더 많이 기억됐던 그녀가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지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그 아역의 껍질을 깨고 어엿한 여인으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아역 시절부터 이게 과연 아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 해냈던 김유정이다. 그녀가 해온 연기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은 연기공력을 쌓아왔는가가 한 눈에 드러난다. 현대극들은 차치하고라도 사극만, <일지매>, <바람의 화원>, <탐나는도다>, <동이>, <계백>, <해를 품은 달>, <비밀의 문>, <구미호 여우누이뎐>까지 무려 8편에 달한다. 이미 아역 시절부터 사극이 제 옷처럼 잘 맞을 정도로 연기 경험을 해온 그녀다.

 

그런 그녀에게도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은 각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남장여자 콘셉트의 사극은 여성 연기자들에게는 연기 변신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인 경우가 많다. <성균관스캔들>의 박민영이 그랬고,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이 그랬다. 기존의 이미지를 남장여자 캐릭터로 가리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와 멜로 연기로 넘어가는 과정은 그래서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의 김유정에게도 똑같은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 같던 이미지는 내시 역할을 하며 슬쩍 친구처럼 다가왔고 그러면서 이영의 마음을 조금씩 흔들며 시청자들에게도 그 매력을 드러낸다. 그녀가 연희를 위해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해 춤을 추는 장면은 김유정이 어엿한 여인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한없이 귀엽다가도 어느 순간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드는 그녀가 아닌가.

 

<구르미 그린 달빛>이 승승장구 하고 있는 데는 분명 박보검과 김유정이라는 두 배우의 집중력있는 연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진중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박보검도 놀랍지만, 아이 같은 귀여움과 여인의 설렘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김유정은 더 대단하다. 구름 사이로 교교히 비추는 달빛처럼, 이들이 매력은 어느덧 시청자들의 가슴에 와 닿고 있다.

군대가 키워낸 송중기, 소년 얼굴의 상남자

 

군 제대 후 바로 찍은 드라마라서 그럴까. 아니면 군 생활을 통해 갖게 된 새로운 면모일까. KBS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준다. 물론 2011년 찍었던 <뿌리 깊은 나무>에서 이도 역할로 의외의 강단을 보여줬던 그다. 2012<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서도 웃는 얼굴 뒤로 쓸쓸함을 느끼게 해줬던 그였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에게서는 강한 남자가 갖는 여유 같은 것이 느껴진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이미 <성균관 스캔들>에서부터 꽃미남이라 불렸던 그 소년의 얼굴은 여전하지만 아마도 군대에서 만들어졌을 그의 몸은 군살 하나 보이지 않는 상남자의 그것이다. 칼 하나를 들고 북한 군과 대치해 싸우는 장면이나, 맨 몸으로 덩치가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미군과 맞붙는 장면에서는 그의 거친 면모가 도드라진다. 웃을 땐 소년 같은 얼굴이지만 자못 진지해지는 대목에서는 남자의 진중함이 묻어난다. 소년 얼굴의 상남자. <태양의 후예>가 송중기를 통해 그리려고 하는 유시진이라는 군인 캐릭터에 딱이다.

 

멜로드라마에서 남자 캐릭터는 절대적이다. 그 캐릭터의 면면은 그래서 당대의 이상적인 남성상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태양의 후예>가 유시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제시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은 늘 상처 입고 피를 흘리며 일터(?)에서 전쟁을 치르는 남자지만 여자 앞에서는 그토록 부드러울 수 없는 그런 남자다. 오랜만에 만난 여자가 내 생각 많이 했어요?”라고 묻자, “많이 했죠. 남자답게.”라고 말하는 그런 남자.

 

하지만 군인이라는 직업은 갑자기 걸려온 출동 명령 전화 하나로도 그를 굳게 만들어버린다. 영화를 보러 왔다가 전화 한 통에 먼저 영화관을 나서는 유시진은 그래서 결코 다가서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여기에 강모연(송혜교)이 의사라는 점은 군인 유시진과 직업적으로 부딪치는 면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직업이다. 하지만 유시진은 무고한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직업을 갖고 있다. 의사로서 생명은 누구에게 존엄하고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강모연이 유시진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유시진과 강모연이 다시 우르크에서 만나게 되면서 이 군인과 의사라는 직업의식은 그들 사이에 벌어질 화학작용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는 군인으로서의 유시진의 행보는 모든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의사로서의 강모연과 부딪치겠지만 그러면서 서로가 지켜주고 치료해주는 관계로 발전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중요해지는 것이 유시진이라는 캐릭터다. 사실상 우르크라는 거친 분쟁 지역은 유지진이라는 캐릭터를 공간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멜로드라마는 그래서 거친 남자들의 전쟁 같은 삶 속에서 그 반대급부로 피어나는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유시진이 전쟁과 사랑을 모두 껴안는 이미지를 가져야 하는 이유다.

 

그 거침과 부드러움을 모두 겸비한 존재로서 송중기는 확실히 독보적이다. 과거의 그 꽃미남의 얼굴이 이제는 상처가 나도 잘 어울리는 단단함을 갖게 됐으니 금상첨화다. <태양의 후예>는 이 송중기가 가진 미소년과 상남자의 면면이 가진 힘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송중기, 나쁜 남자도 착한 남자로 만드는

 

송중기는 독특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여리디 여릴 것 같은 꽃미남의 외모를 갖고 있지만 앙다문 입술과 살짝 미간이 좁혀지면서 나오는 대사의 톤을 들어보면 강한 내면이 느껴진다. 밝게 웃으면 착하디 착한 미소년의 모습이지만, 분노에 한껏 일그러진 얼굴은 순간 분노의 화신으로 변신한다.

 

'착한 남자'(사진출처:KBS)

이 이중적인 이미지는 송중기를 그저 꽃미남에 머물지 않게 하면서도, 동시에 배우라는 무게에 침잠하지 않게 해준다. 그는 <뿌리 깊은 나무>의 폭력적인 아버지이자 왕인 태종(백윤식) 밑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진지한 왕이었지만, 동시에 <런닝맨> 같은 가벼운 예능 프로그램에서 꽃미남을 무기로 기분 좋은 웃음을 전하는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이하 착한 남자)>는 송중기의 이중적인 이미지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는 작품이다. 제목이 드러내듯 <착한 남자>의 강마루(송중기)는 ‘착함’과 ‘나쁨’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이다. 강마루는 자신을 버린 한재희(박시연)에게 복수하기 위해 서은기(문채원)에게 접근하는 나쁜 남자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재희에게 버림받고 서은기를 통해 구원받는 착한 남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착한 남자>라는 드라마의 핵심은 바로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들이 겪는 내면적인 갈등에 있다. 서은기 역시 아버지가 새 여자(한재희)를 끌어들이자 못 견디고 도망치다 결국 죽게 된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까칠할 정도로 강한 자존심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을 보듬어줄 그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자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 이것은 한재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욕망을 위해 뭐든 하는 인물이지만, 그러면서도 최후의 보루처럼 강마루를 마음에서 지워내지 못하는 천상 여자다.

 

결국 <착한 남자>의 인물들은 욕망으로서의 나쁜 존재와 사랑으로서의 착한 존재가 공존한다. 이 모든 인물들의 이중적인 욕망과 사랑의 변주곡을 그 중심에서 잡아주고 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송중기가 연기하는 강마루라는 캐릭터다. 그는 욕망에 눈먼 한재희에게 사랑이라는 무기로 복수하려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송중기에 의해 욕망이 점점 지워져버린 서은기라는 가녀린 내면의 여자를 통해 한재희에게 복수의 형태로 보여진다.

 

사실 꽃미남이라는 표현이 그렇듯이, 여자처럼 곱상한 얼굴은 송중기가 가진 배우로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오히려 가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의 초창기 작품들인 <트리플>에서도, 심지어 <성균관 스캔들> 같은 사극에서조차도 그는 꽃미남의 이미지 속에 갇혀 있었다. 그것이 깨진 것은 바로 <뿌리 깊은 나무>에서 그가 젊은 이도의 역할을 해냈을 때부터다. "내가 조선의 왕이다! 감히 왕을 참칭하지 말라!"고 아버지 태종에게 소리치는 순간, 그 유약해 보였던 꽃미남의 껍질은 드디어 깨져버렸다.

 

그래서 <착한 남자>라는 드라마가 가능한 것은 이 꽃미남의 껍질이 깨지면서 ‘착함’과 ‘나쁨(혹은 강인한)’의 이중적 스펙트럼을 완성한 송중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쁜 짓을 해도 착하게 여겨지는 그 마술 같은 이미지가 없었다면 이중적인 의미의 <착한 남자>가 탄생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얘기다. 이로써 송중기는 <착한 남자>를 통해 자기만의 확고한 연기영역이 생긴 셈이다. 앞으로 이 장래가 촉망되는 배우는 얼마나 더 넓은 연기의 영역을 갖게 될까.


'해품달', 하이틴 로맨스 사극의 탄생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잊어 달라 하였느냐? 잊어주길 바랐느냐? 미안하구나. 잊으려 하였으나 너를 잊지 못하였다." 왕세자 훤(여진구)이 연우(김유정)에게 애틋한 마음을 고백한다. 10대의 어린 나이지만 어딘지 이 고백에는 절절한 훤의 진심이 느껴진다. 그 고백을 듣는 연우의 마음 또한 그 진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 어둠 속에서 그들을 아프게 바라보는 이가 있다. 바로 훤의 이복형이자 존재자체가 위협이 되는 라이벌 양명(이민호)이다. 그는 일찍이 "모두가 세자의 사람이 되어도 좋다"고 했다. 연우만 그의 사람이 된다면 말이다. 한편 연회에서 홀로 멈춰선 윤보경(김소현) 역시 끈 떨어진 연처럼 어딘가 사라져버린 훤을 찾는다.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 이것은 이 사극의 제목이기도 한 '해를 품은 달'이 가진 스토리의 기본전제이다.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인이 갖게 되는 운명적인 사랑. 현대극의 멜로였다면 그저 그런 사각관계에 지나지 않았을 지 모르지만, 사극 속으로 들어오자 이 네 명의 운명은 진중한 무게를 갖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왕과 왕후가 될 사람들의 멜로가 아닌가. 하늘에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이 공존할 수 없기에 멜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는 두 사람뿐이다. 멜로의 끝이 생사를 가름하는 이 구조는 드라마에 극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것이 엇갈린 운명이라면? 대왕대비 윤씨(김영애)에 의해 왕후의 상을 점쳐달라는 명을 받은 성수청 국무 장씨(전미선)는 연우와 윤보경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왕후의 상을 지녔으나 교태전의 자리를 가질 수 없고, 왕후의 상은 아니나 교태전의 자리를 가질 운명.' 이 말은 이 멜로가 엇갈린 운명의 비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연우가 아닌 윤보경이 왕후가 되는 이 예정된 운명이 만들어낼 파국은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 것인가. '달을 품은 해'가 아니라 '해를 품은 달'이란 제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루어지지 못한 연우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깊이 품고 살아가는 훤의 미래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성균관 스캔들'이 역사 바깥으로 과감히 뛰쳐나와 멜로 사극의 가능성을 열어 보여준 것처럼 '해를 품은 달'은 그 연장선에 서 있다. 비극적인 운명을 가진 여자 주인공 연우와 그 주변을 감싸는 훤, 양명, 허염(송재희), 운(송재림)은 저 F4의 사극 버전으로 읽혔던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 4인방을 떠올리게 한다. 꽃선비 허염이 지나갈 때마다 과장되게 쓰러지는 궁녀들이나 그에게 빠져 위신이고 뭐고 상관없이 달겨드는 민화공주(진지희), 또 연우의 뇌구조를 그려놓고 7할이 오빠 허염이고 2할이 양명이며 1할이 운이지만 훤은 점에 지나지 않다고 설명하는 내관 같은 현대적인 설정은 사극이지만 하이틴 로맨스가 갖는 발랄함을 잊지 않는다.

어른들의 정치 세계가 갖는 어둡고도 무거운 기운이 이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지만 이들은 아이들 특유의 천진함과 순수함으로 이 어두운 세계와 대적하려 한다. 정치적인 가식과 계급적 주종관계를 떠난 순수한 진심의 대결. 이것은 감히 궁 안에서 벌이는 로맨스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비록 적이라도 입속의 혀처럼 지내거라. 그것이 정치다."라고 말하는 이판 윤대형(김응수)의 조언에 어린 나이에도 가식어린 정치의 행보를 보이는 윤보경과,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려는 연우의 대립구도는 그래서 멜로의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

사극이라는 틀에 박힌 구조를 떠올린다면 '해를 품은 달'의 파격에 놀랄 수밖에 없다. 일단 역사라는 틀거리 자체를 과감하게 무시해버리고 그저 과거라는 그 완벽한 빈 도화지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10대에서 시작해 20대를 넘기지 않는 청춘들의 로맨스가 아닌가. 이것이 가능한 것은 가슴 설레는 로맨스가 저항하는 것이 저 틀에 박힌 정치판의 이전투구이기 때문이다. 수평적 동무관계인 아이들은 어떻게 계급적 서열과 정치적으로 다른 노선에 서 있는 어른들에 의해 그 운명이 유린될 것인가. 그 아픔을 바라보는 만큼 그만큼 순수하게 여겨지는 이들의 사랑은 우리네 가슴을 울리게 할 수밖에 없다.

청춘멜로의 가벼움과 사극의 진지함은 어떻게 만났을까

청춘 사극. 이 조어는 잘 어울리는 듯하지만, '청춘'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하이틴 로맨스적인 가벼움과 사극이 가진 어딘지 진중한 분위기는 부딪치는 점이 많다. 이 조어가 그다지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최근 사극이 가진 특유의 퓨전 가능성 덕분일 뿐이다. 즉 이 '청춘 사극'은 결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성균관 스캔들'을 단 한 마디로 말하라면 주저 없이 '청춘 사극'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어려운 조합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남장여자'라는 열쇠다. 이미 '커피 프린스 1호점'이라는 청춘 멜로에서 '남장여자'라는 콘셉트가 가진 힘을 우리는 이미 발견했다. 꽃미남들의 세계로 '남장여자'가 들어감으로 해서 벌어질 수 있는 우정과 사랑 사이의 소용돌이는 청춘 멜로로서의 한 극점을 그려냈다. '성균관 스캔들'이 이 청춘 멜로의 '남장여자'를 조선시대 성균관으로 끌고 온 의도는 명백하다. 사극이라는 공간에서 청춘 멜로를 극대화 해보겠다는 것. 꽃선비들이 넘쳐나는 그 곳에서 같은 기숙사 방을 써가면서. 그것도 옷깃만 스쳐도 두근거리는 조선이라는 시대적 정서 속에서라면 더더욱.

그 남장여자라는 마법의 열쇠로 인해 "나 구용하다"라는 말 한 마디로 여성보다 더 예쁜 미모(?)를 가진 그 유쾌한 구용하(송중기) 캐릭터가 탄생했다. 또 '걸오앓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겉은 짐승남이나 속은 수줍은 소년인 문재신(유아인), 그리고 앞뒤 꽉 막힌 선비에서 사랑을 알아가는 이선준(믹키유천)이 탄생했고, 그들이 서로 가슴 졸이며 사랑했던 여인 김윤희(박민영)와의 두근두근 청춘 멜로가 탄생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었다면 '성균관 스캔들'은 그저 사극판 '커피 프린스 1호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성균관 스캔들'은 남장여자라는 열쇠가 가진 또 다른 측면을 포착해낸다. 여자가 남장여자 행세를 해야 꿈이라는 것을 꿀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개혁의 의지를 꺾지 않은 것이다. 비록 남자 행세를 하는 여자로 대변되어 있지만 이 개혁의 그림은 이미 정조(조성하)가 화성천도의 뜻으로 말한 대로 '남녀귀천 없는 세상'이다.

이 주제의식은 김윤희가 금등지사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김윤희에게 배움을 주려 노력했던 그녀의 아버지가 단서로 제공한 퍼즐 위에 쓰여진 글귀 '문(門)'은 성별과 귀천에 따라 닫혀버리는 이 시대의 문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조가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찾았던 금등지사가 묻혀진 곳이 성균관에서 반촌으로 난 문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 문은 '조선의 가장 천한 이를 향해 열린 곳'이고 '배움이 향하는 곳'이며 '나라가 시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남장여자의 또 다른 측면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성균관 스캔들'은 청춘 멜로의 가벼움 위에서도 사극에 걸맞는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모든 일을 해결한 잘금4인방이 한 방에서 술을 마시고 한 방에 어우러져 잠을 자는 모습은 그래서 청춘 멜로의 한 장면처럼도 보이지만, 양반(이선준), 중인(구용하), 여성(김윤희), 혁명가(문재신)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성균관 스캔들'은 말 그대로 '청춘'에 '사극'을 잘 이어붙인 '청춘사극'의 새지평을 열었다.

걸오앓이와 중기홀릭, 그 이유

‘성균관 스캔들’의 이른바 잘금 4인방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은 지금껏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걸오 문재신 역의 유아인은 지금껏 걸오 만한 중량감을 연기한 적이 없다. ‘서양골동과자점 앤티크’에서도 또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도 그는 잘 생긴 소년이었다. 그것도 아주 여성적일 정도로 가녀린 느낌의. 그런 그와 현재 ‘성균관 스캔들’에서의 걸오 문재신은 이들이 과연 같은 연기자일까 의구심이 갈 정도로 다르다. ‘걸오하다’라는 말에서 따온 ‘걸오’의 뜻 그대로 그는 ‘성질과 심성이 거칠고 사나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화제의 또 한 축인 “나 구용하야”의 주인공 여림 구용하를 연기하는 송중기 역시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진가를 보였다. ‘트리플’의 지풍호가 그 특유의 기분 좋아지는 명랑함으로 가능성을 보인 것이 사실이지만, 송중기를 깨운 건 다름 아닌 구용하다. 송중기는 구용하라는 캐릭터를 통해 소년의 이미지에서 심지어 여성성이 엿보이는 성숙된(?) 연기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그의 빼어난 외모는 남장여자인 대물 김윤희(박민영)라는 존재에 사실성마저 부여한다. 여자보다 더 예쁜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송중기 본연의 중성적 매력이 구용하라는 유쾌한 캐릭터와 만나면서 이른바 ‘중기홀릭’은 생겨나게 되었다.

한편 이제 첫 연기에 도전한 이선준 역할의 믹키유천은 신인치고는 연기에 대한 집중력이 좋은 편이지만 확실히 연기가 미숙하다. 특히 감정 연기가 미숙한 그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나의 얼굴로 이선준의 역할을 해내면서도 연기력 논란이 아니라,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 이유는 이선준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 덕분이다. 이선준은 고집스런 선비로서 많은 얼굴 표정 변화는 오히려 캐릭터에 부합하지 않는다. 믹키유천의 변하지 않는 얼굴 표정은 이선준의 속내를 오히려 궁금하게 만든다.

‘성균관 스캔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연기자들을 화제의 중심에 서게 한 것은 단연 이들 캐릭터 덕분이다. 강하고 거친 이미지의 문재신, 어딘지 속없고 장난기만 가득해 보이는 구용하, 그리고 원리원칙만 강조하는 듯한 이선준. 하지만 한 걸음 다가가 보면 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진짜 그들의 속내를 훔쳐보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 즉 문재신은 거칠어보여도 여자 앞에서는 딸꾹질을 하는 부끄러움을 타는 캐릭터이며, 구용하는 장난처럼 행동하지만 알고 보면 문재신이나 김윤희에 대한 걱정이 지극하다. 고집불통 같던 이선준은 결국 대물 김윤식에게 “(사내라도) 널 좋아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원칙을 깨는 인물이다. 겉과 다른 속. 오해로 시작해 이해로 다가오는 캐릭터들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이 멋진 캐릭터들 사이에 놓여진 대물 김윤식(혹은 김윤희)을 연기하는 박민영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윤희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김윤희는 많은 드라마 속 남장여자 캐릭터들이 그러했듯이 남자들의 시선에 포획된 존재와는 사뭇 다른 능동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면면을 보여준다. 물론 남녀 간의 연애감정에 있어서는 전형적인 여성으로 돌아가지만, 남장여자로 서 있을 때 그녀는 그 어떤 사내보다 당찬 모습을 보인다. 어찌 보면 김윤희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그 이면이 다른 ‘성균관 스캔들’의 캐릭터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인다.

‘성균관 스캔들’이 우리를 앓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캐릭터들 덕분이다. 겉보기에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그 이면에 서로 다른 속내들을 감추며 부딪칠 때, 그걸 알고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안타까움이나 감동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동은 그걸 연기하는 연기자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되기 마련이다. ‘성균관 스캔들’을 앓게 하는 그 실체는 이 작품이 가진 놀라운 캐릭터들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스'와 '대물', 그녀들이 대물이 된 사연

'남장여자'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남자를 상위에 놓는다. 즉 여자지만 남자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왜? 남자여야 세상에 뜻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성균관 스캔들(이하 '성스')'의 남장여자 윤희(박민영)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문재를 가진 그녀는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고 싶지만 세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어떤 사내의 낙점을 받아 혼인해 살아가는 것뿐이다. 왜 그래야 하나. 윤희가 남장여자가 되어 금남의 지역인 성균관에 들어온 이유다.

'성스'가 조선 정조시대로 날아가 여자라는 존재가 갖는 한계를 남자들만 수학할 수 있는 성균관이라는 공간에서 풀어낸다면, '대물'은 지금 현재 여성이 마치 남자들의 세상인 양 치부되던 정치계에 입문하고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여자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물론 현재 이미 여성들의 정계 진출은 그다지 낯선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이라고 하면 말이 달라진다. 안될 건 뭐냐고 말은 하지만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성별에 대한 장벽은 남아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성스'의 조선시대나 '대물'의 현대나 성별에 대한 의식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한 셈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두 드라마는 주목받는다. '성스'는 남장여자라는 점 때문에 드라마의 판타지가 만들어진다. '걸오앓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터프하면서도 부드러운 걸오문재신(유아인)과 어딘지 꽉 막힌 듯한 올곧은 선비였으나 윤희를 만나면서 탈선을 시작하는 선준(믹키유천), 그리고 늘 유쾌함을 주는 미소년 용하(송중기)는 여성들의 판타지다. 그 속에 남장여자인 윤희가 들어가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며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의 나날을 보낸다. 즉 '성스'는 조선시대의 여자가 갖는 한계를 뒤집어 판타지로 제공한다. 애초 남장여자를 하게 되는 과정은 조선시대의 현실(남자여야 가능한 삶)이지만, 바로 그 남장여자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판타지가 존재한다. 남자가 아닌 여자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

'대물' 역시 평범한 여자 아나운서로서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아줌마가 서혜림(고현정)이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정계는 그녀를 주목한다. 이미 노회할대로 노회한 정치꾼들만 득시글거리는 정치판에 현실의 고단함을 서민들의 입장에 서서 소신 있게 얘기하는 서혜림은 참신해 보인다. 게다가 서혜림이 남편의 죽음으로 겪은 고통은 오히려 정치인으로서의 '호감 가는 스토리'를 만들어준다. 정치인으로서 여자라는 점은 약점으로도 지목되지만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라는 다양한 긍정적인 스펙트럼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녀가 출마한 이유는 아이에게 팔뚝만한 물고기가 뛰어노는 강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여성은 모두 드라마 속에서 '대물'로 불린다. '대물'이라는 지칭은 '성스'가 보여주는 성적인 의미에서나, '대물'이 보여주는 '여자 대통령'이라는 권력적인 의미에서나 모두 남성적인 의미를 더 갖고 있다. 즉 '대물'로 불리는 이 두 여성들은 여성이 가진 한계점을 넘어서 남성들의 영역으로만 치부되던 세계로 편입되려는 강한 욕망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이다. 여성들의 한계 지점으로 보였던 세계를 뛰어넘는 바로 그 지점에 이 두 드라마가 가진 판타지의 힘이 존재한다. "여자면 왜 안돼?" 하고 도발적으로 질문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그 때문이다.

남장여자 콘셉트를 용인하게 하는 '여자보다 더 예쁜' 송중기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4인방이 화제다. 보기만 해도 오줌을 잘금잘금 지린다는 꽃미남 4인방. 어찌 보면 '꽃보다 남자' F4의 사극 버전을 보는 듯 하지만, 사실 4인방 속에 김윤식(박민영)은 남장여자라는 점에서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더 닮았다. 드라마가 갖고 있는 메시지는 당파로 갈라진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청춘들의 도전 혹은 저항을 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드라마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이 4인방이 미션 속에서 보여주는 달달한 로맨스다.

마치 '캔디'의 안소니와 테리우스를 연상케 하는 이선준(박유천)과 문재신(유아인), 그리고 아치와 스테아를 합쳐놓은 듯한 구용하(송중기)가 남장여자로 성균관에 들어온 김윤식(본래는 김윤희)과 미묘한 관계로 엮어진다. 늘 삐딱하게만 구는 반항아 문재신은 김윤식이 사실은 여자라는 사실을 목도하고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이선준은 우정으로만 알았던 가슴 설렘이 어딘지 연애 감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구용하는 일찍부터 김윤식이 남장여자라는 심증을 갖고 있었지만, 바로 그 점에 흥미를 느끼면서 이들과 같은 편에 선다.

이야기는 이들 잘금4인방과 성균관 장의 하인수(전태수)와의 대결을 담고 있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들 뒤편에 왕과 권세를 장악한 노론 세력과의 대결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왕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미션을 내리지만, 그 미션은 또한 왕이 노론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즉 성균관은 대학이지만, 당대의 조정의 축소판이다. 이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사소해보여도 하나의 정치적인 행위로 그려진다.

재미있는 것은 잘금4인방 중에서 유독 구용하라는 캐릭터가 눈에 띈다는 점이다. 사실 구용하는 이러한 대결구도 속에 당사자로 서 있다기보다는 방관자처럼 주변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왜 이토록 주목받는 것일까. 그것은 먼저 이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상당히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이선준은 전형적인 사대부 자제의 모습이고, 문재신은 또 전형적인 그 극단의 반대편에 서 있는 반항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구용하는 깨방정에 가까운 가벼움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그에게 학문이나 정치 같은 것은 어딘지 우스워 보인다.

그가 삶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재미'라는 차원은 구용하라는 조선시대의 캐릭터를 작금의 젊은이들의 감성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다. 어딘지 세상을 일찍 알아버린 젊은 청춘들은 삶에서 유일한 위안거리로서 재미를 찾는다. 그는 유생들의 물건을 훔쳤다는 모함에 빠진 김윤식을 위해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해 탐정놀이를 하게 된다. 그는 여기서도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역할이다. 허무주의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구용하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에는 분명, 작금의 현실이 청춘들에게 부과하는 허탈감이 들어 있다.

물론 구용하라는 캐릭터를 깨우는 건 송중기라는 꽃미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대단한 연기력을 선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가진 이미지는 구용하라는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게다가 드라마적으로 볼 때 송중기는 이 자칫 이해할 수 없는 '남장여자 놀이'를 그나마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자보다도 더 예쁜' 그의 이미지가 있었기에 누가 봐도 여자인 박민영이 남장여자로 활동하는 것이 용인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구용하라는 캐릭터가 그저 허무주의에 빠진 청춘을 대변하는 것으로 주목받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뭐 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것 같지 않은 캐릭터가 김윤식을 만나 차츰 진지해지고 뭔가 삶에 의미 있는 일을 해나가는 그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그리고 이 기대감은 현실에 치여 방황하는 청춘들 스스로 현실을 넘어서려는 욕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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