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의 현실 비판의식 어째서 여타 드라마와 다를까

문유석 판사가 아니었다면 이런 작품이 가능했을까.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는 법정물로는 이례적이다. 대부분의 법정물이 특정 사건을 통한 스릴러와 반전에 집중한다면, <미스 함무라비>는 사건을 통한 현실 비판에 더 집중한다. 그런데 그 비판의 방식도 사뭇 다르다. 그것은 잘못된 현실을 꼬집으면서도 자신 또한 그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는 자아 성찰적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다. 

‘전관예우’는 우리가 법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떠오르는 단어가 됐다. 대부분의 대중들은 ‘전관예우’가 판결의 향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스 함무라비>에 등장하는 판사들은 바로 이런 생각에 발끈한다. 한세상(성동일) 부장판사는 “요즘 같은 세상에 전관예우가 어디 있냐”고 쏘아붙인다. 

그런데 마침 재벌에게 후한 판결을 내린 권세중(김정학) 판사가 자신이 판결을 내리기 전에 다양한 ‘국민 여론’을 수렴했다고 하자 박차오름(고아라)은 도대체 그 국민은 누구를 얘기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국민 여론’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가진 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 서민들의 여론은 거기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람 좋아 보이기만 하던 감성우(전진기) 부장이 박차오름이 맡은 사건에 은근슬쩍 청탁을 하고, 그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감성우 부장이 법원에서 쫓겨나게 되는 과정은 없다고는 하지만 저 밑바닥에 항상 존재해온 ‘전관예우’가 존재한다는 걸 씁쓸하게 알려줬다. 이러니 수임자들은 돈을 더 주고도 전관 변호사를 쓰려고 하고 심지어 브로커들까지 생겨나게 된 것.

하지만 <미스 함무라비>는 그저 이 문제를 저들의 잘못으로 치부하지 않고 내 문제일 수 있다는 자아 성찰을 담아냈다.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는 엄마를 업고 응급실로 달려온 임바른(김명수)이 바빠서 의사들이 엄마를 봐주지 않자 그 병원을 소유한 집안의 친구에게 전화를 해 부탁을 하는 장면이 그렇다. 결국 엄마의 증세가 요로결석으로 통증은 심해도 위급하지는 않다는 의사의 말에 담겨진 차가운 냉소를 알아차린 임바른은 자신 때문에 먼저 처치 받지 못한 더 위중한 환자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는다. 

그토록 전관예우를 비판적으로만 바라보던 자신이지만 자신 역시 위급한 상황에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 임바른은 이 문제가 저들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걸 성찰하게 된다. “돈도 연줄도 없는 이들은 막연한 분노로 거리로 나서고, 돈이라도 좀 있는 이들은 브로커 말만 믿으며 전관을 찾는데, 정말 힘 있는 사람들은 굳이 로비할 필요도 없다. 이미 그들 중 한 사람이 된 판사가 그들을 재판할 테니까.” 실제로 결혼식장에 갔다가 그 빌딩 소유주인 재벌3세 민용준(이태성)을 만나게 된 임바른은 그가 법원 내부의 움직임까지 모두 꿰뚫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러한 정보는 법원 내부 사람들과의 결탁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전관예우를 소재로 다룬 이야기에서 드러나듯이 <미스 함무라비>는 판사들이 맡는 사건들을 통해 세상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본다. 법정은 그래서 사건이 판결되는 곳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처럼 그려진다. 이전 회에서 등장했던 과중한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로 정신을 놓아버린 한 회사원의 이야기에서 우리 사회에 내재된 1등 지상주의의 씁쓸한 단면을 볼 수 있었던 건 그래서다. 

하지만 법정을 통해 그려내는 현실 비판을 담아내면서 <미스 함무라비>는 그것이 또한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걸 지적하는 것 또한 피하지 않는다. 법정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아무래도 그 안에서 생활해온 문유석 판사의 경험과 생각이 녹아있어서가 아닐까. 문유석 판사는 자신이 그 자리에 있으면서 생각했던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미스 함무라비’인 박차오름 같은 판사를 통해 이야기를 통해서나마 어떤 해법을 모색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진심어린 성찰의 과정이 아니었다면 <미스 함무라비> 같은 괜찮은 드라마가 탄생하기는 어려웠을 게다.(사진:JTBC)

‘미스 함무라비’, 우리가 보던 흔한 법정물과 다른 지점

억울한 피해자와 공분을 일으키는 가해자. 증거를 찾아 가해자를 검거하려는 검사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변호사. 혹은 공명정대한 사이다 판결로 정의를 구현하거나, 아니면 권력과 결탁해 약한 자들을 짓밟는 판사. 대체로 우리가 법정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많이 봐왔던 캐릭터들이 아닐까. 

그래서 제목부터 대놓고 법정물을 기대하게 하는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그 장르 중 하나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스 함무라비>는 이들 법정물들이 그려내는 그런 장르적 이야기나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른 지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것이 그런 법정 사건들 자체가 가진 이야기성에만 기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보다 이 드라마가 더 주목하는 건 그 사건을 바라보는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미스 함무라비> 2회는 이 드라마가 지향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초반부터 다양한 사건들이 왜 더 자세히 등장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가졌을 수 있다. 박차오름(고아라)이라는 열정적이고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진 신입 판사가, 바로 그 개인의 열정 때문에 조직원들이 힘들어하는 과정을 꽤 오래도록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차오름의 이런 순수한 열정과 전면적으로 부딪치는 인물은 바로 부장판사인 한세상(성동일)이다. 재판정에서 눈물을 흘리는 박차오름에게 지청구를 날리는 한세상. 결국 박차오름은 바로 이런 남다른 동정심과 공감능력으로 인해 사고를 친다. 채무자 할머니의 사연에 마음이 움직인 박차오름은 판사라는 직업의 본분을 망각하고 도움을 주려 했던 것. 하지만 결국 할머니는 박차오름과의 관계를 이용해 상대방을 협박하는 일을 벌인다.

한세상은 그런 열정과 지나친 공감능력이 판사로서의 직업적 본분을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박차오름은 그 소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후반부에 잠깐 등장한 음식점 주인과 종업원 그리고 손님 사이에 벌어진 법정 소송에 있어서 감동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그저 대충 합의로 끝내라는 한세상의 명을 어기고 제대로 잘잘못을 판결하겠다고 나선 그 법정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인 그 손님의 마음을 들여다 본 박차오름으로 인해 주인과 종업원이 모두 사과를 하고 손님도 소송을 취하하게 되는 결과를 얻어낸 것.

결국 판사가 하는 일이란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판단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내막을 깊이 들어주고 그 사연에 공감해줌으로써 오해가 있다면 풀어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드라마는 박차오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다. 판사라 표정을 보여서는 안되는 직업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마음까지 지워서는 안된다’는 것. 

작가가 현업에 있는 문유석 판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판사라는 직업이 갖는 현실적인 고민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해야할 이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미스 함무라비>에는 자연스럽게 담겨져 있다. 법정물이라고 하면 끔찍한 사건과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런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 드라마는 훨씬 더 우리네 일상에 다가와 있는 느낌을 준다. 판사가 특이한 직업이긴 하지만 그것 역시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것. 이렇게 사람 냄새 가득한 법정물이라니.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JTBC)

‘함무라비’ 김명수와 고아라, 그 냉정과 온정 사이

판사라면 어떠해야 할까. 모든 사건들을 냉정하게 다루고, 오로지 법의 틀 안에서만 바라봐야 할까. 아니면 그 사건들 이면에 존재하는 사람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야 할까. JTBC 새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첫 회는 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판사 임바른(김명수)과 박차오름(고아라)이 한 사무실에서 부딪치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임바른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판사로서의 바른 길을 고집하는 인물. 하지만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암울하다. 고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그에게 사람이란 믿을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판사라는 직업이 좋은 세상을 꿈꾸기보다는 세상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그는 월급을 기다리는 샐러리맨과 판사라는 직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렇게 된 건 해직기자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아마도 ‘입바른’ 소리를 하며 살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지만, 그렇게 기자로서 입바른 소리를 하던 아버지는 해직되어 여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만을 추구하는 무능력자처럼 살아간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임바른은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렇게 튀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같은 사무실로 박차오름이 나타난다. 지하철에서 쩍벌남과 시끄럽게 통화하는 아주머니를 그냥 넘기지 않고 일침을 가하고, 성추행범에게는 일격을 가하는 박차오름의 모습은 여러모로 임바른과는 다르다. 그 일이 문제가 되어 첫 날부터 한세상(성동일) 부장판사에게 끌려가 말도 안되는 “여자가 조신해야지” 같은 성차별적 소리까지 들었지만 박차오름은 다음 날 더 튀는 옷을 입고와 부장판사와 맞섰다. 조신하지 못하다는 소리에 히잡으로 갈아입고 나선 박차오름은 어느 것이 낫냐고 물어 부장판사의 뒷목을 잡게 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지내지만 “인간들이 싫다”고 생각하는 임바른과 그 인간들을 공감하는 박차오름은 너무나 달랐다. 인간의 죄를 담아낸다며 고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임바른에게 아예 대놓고 보라는 듯 다음날 이중섭의 가족 그림을 붙이고, 눈을 가린 채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책상 앞에 놓아둔 임바른과 달리, 천수대비의 상을 책상 앞에 두는 박차오름이다. 임바른이 판사로서 냉정을 덕목으로 생각한다면, 박차오름은 세상의 많은 약자들의 아픔에 손을 내미는 온정을 덕목으로 생각한다. 

두 사람의 부딪침은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고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할머니를 두고 벌어졌다. 증거가 없어 억울한 판결을 받은 할머니에게 이렇게 시위를 할 게 아니라 항소를 하시라고 권하는 임바른과 달리, 박차오름은 그 할머니의 사연을 눈물을 흘리며 들어주고 있었다. 판사라는 직업으로서의 정상과 비정상을 이야기하는 임바른에게 박차오름은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정상이고 비정상인가를 되물었다. 

<미스 함무라비>는 문유석 판사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그가 판사로서 갖게 되는 이상과 현실에 대한 딜레마를 첫 회부터 잘 담아내고 있다. 박차오름이 이상을 보여준다면 임바른은 현실을 대변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임바른과 박차오름의 멜로는 단순한 사랑이야기의 차원을 넘어서게 해준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딪치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멜로의 구도 속에 법 정의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캐릭터를 통해 녹여내고 있다는 것. 냉정한 임바른과 온정 가득한 박차오름의 케미가 특히 기대되는 이유다.(사진:JTBC)

‘라이브’가 집단 트라우마를 겪는 경찰을 담은 까닭

우리는 흔한 형사물에서 사건현장에 끔찍하게 살해된 사체를 아무런 감흥도 없이 들여다보고 심지어는 손을 넣어 만져보기까지 하는 베테랑 형사와 그걸 보는 신참 형사가 막 도망치듯 달려가 토를 하는 장면을 흔한 클리셰로 볼 수 있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장면이지만 그건 현실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게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다. 

바로 눈앞에서 사제총에 맞고 쓰러져 죽은 동료와, 계속해서 총을 쏴대는 범인과 대치하며 벌벌 떠는 경찰들. 그리고 가까스로 범인을 제압했지만 그 죽음을 목격한 충격 때문에 지구대 전체가 일종의 ‘집단 트라우마’를 보이는 그런 모습이 진짜다. 사람의 죽음은 익숙해질 수가 없다. 베테랑 경찰인 오양촌(배성우) 같은 인물조차 그렇다.

그러니 신참 경찰들인 한정오(정유미)나 송혜리(이주영) 그리고 염상수(이광수) 같은 이들이 온전할 리가 없다. “우리 모두 죽는 줄 알았다”며 눈물 흘리는 한정오는 그간 자신이 사건 현장에서 봤던 끔찍한 사체들을 떠올린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사건들을 눈으로 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암담하게 다가왔을 게다.

자칫 잘못했으면 자신이 그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 그래서 강남일(이시언) 같은 그래도 경험이 있는 선임 경찰 또한 “가족들의 얼굴이 생각났다”며 펑펑 눈물을 흘리게 된다. 선임들은 괜스레 그 충격을 잊고자 술이라도 마시자고 나선다.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그 순간의 기억은 내내 그들을 멍하게 만들어놓는다.

굉장히 강인해 보이는 오양촌도 예외일 수 없다. 그는 아내 안장미(배종옥)에게 가장 힘든 게 “내가 안죽어 다행이다. 우리 지구대 애들이 죽은 게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그나마 위안 삼는 건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이제 퇴직을 앞둔 이삼보(이얼)에게 기한솔(성동일) 지구대장이 사건에 잘 대처한 일에 대해 “잘하셨다”며 “안 다치신 건 더더 잘 하셨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신참으로 들어온 송혜리나 한정오는 아마도 자신들이 선택한 경찰 일이 이런 것이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을 게다. 어디서도 그 실상이 보여지기 보다는 그 막연한 이미지들만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실상을 마주한 그들은 흔들린다. 계속 이 지구대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만두려고도 마음먹고 국비유학으로 해외에 나갔다 돌아와 다른 곳에서 일하고도 싶어진다. 

영화에서나 보던 액션 히어로 경찰? 그런 건 없다.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서 계속 보게 되는 이들은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이삼보가 말하듯, “그래도 어쩌겠어. 경찰인데 사건 사고 나면 가야지”라고 말하며 현장으로 뛰어간다. 아기가 유기되었다는 제보를 듣고 그토록 힘들어 도망치고픈 현장을 뛰고 또 뛰는 모습을 통해 한정오는 어떤 의문을 느낀다. 그건 단지 직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생명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더 앞서 나오는 행동이 그 트라우마조차 이겨내게 한다는 걸 보여준다.(사진:tvN)

‘라이브’ 배성우·배종옥, 최고의 경찰부부가 중징계라는 건

“짜증나 진짜. 앞으로 나보고 열심히 살란 소리 하지마. 맞잖아. 엄마 아빠처럼 열심히 살면 뭐하냐? 결과가 고작 이건데. 솔직히 말해서 엄마 같은 정직한 경찰이 어딨냐? 근데 그런 사람들한테 조직이라는 게 상은 못줄망정 중징계나 주고.”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에서 오양촌(배성우)의 딸 오송이(고민시)의 볼멘소리에는 잘못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부모에 대한 존경이 들어있다. 표현은 제 아버지를 닮아 퉁퉁거리지만 그 말 속에는 열심히 살았고 정직하게 살아온 경찰로서의 아빠, 엄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있는 것. 

동네에 출몰한 연쇄강간범을 힘겹게 잡았지만, 너무 늑장수사를 했다는 여론에 경찰이 질타를 받자, 수뇌부는 비겁하게도 이 사건을 해결한 안장미(배종옥)를 희생양으로 내세운다. 자기들 모가지 지키려고 안장미에게 모든 책임을 떠안겼던 것. 사실상 특별수사팀을 일찌감치 꾸리자고 했던 건 안장미였고,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던 건 그 윗사람들이었다. 

물론 남녀 성차별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안장미를 희생양으로 세우는 그 자리에 있는 윗사람들이 모두 남자들이라는 점은 에둘러 이 문제를 부각시킨다. 현장을 뛰며 힘겹게 그 자리까지 올라온 안장미지만 비겁한 윗사람들의 책임 떠넘기기로 그는 그간의 고과들을 모두 날리게 되어버렸다.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 안장미를 이혼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후로 더 살가워진 전 남편 오양촌이 위로한다. 그러고 보면 오양촌 역시 억울하게 중징계를 먹었다. 바다에 뛰어든 사람을 구하러 뛰어들었지만, 그가 잘못된 줄 알고 따라 들어간 사수가 목숨을 잃고 그는 억울하게도 음주상태였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썼다. 오양촌은 “대한민국 최고의 경찰부부”가 둘 다 “중징계”라며 허탈한 마음을 애써 웃음으로 털어내려 했다. 

<라이브>는 물론 경찰들의 ‘실상’을 담는다는 기획의도에 따라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로 다뤄지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여기서 한 가지 보이는 점은 분명하다. 일선에서 뛰는 경찰들이 힘겨워지는 건 그 사건현장도 현장이지만 경찰들에게 불리한 법 조항이나 경찰 내의 부조리한 시스템들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나쁜 놈들을 때린 죄로 독직폭행으로 경찰직을 파면당하고 경비원을 전전하며 살아가다 주민의 차를 대신 주차하려다 사고까지 내자 비관해 자살을 시도하는 경찰의 이야기나, 경찰서에서 자해한 주폭 때문에 독직폭행 누명을 쓰게 된 경찰 때문에 병원을 찾아가 무릎까지 꿇는 경찰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이들이 이렇게 된 건 어찌 보면 열심히 일했던 것 때문이 아닌가.

대장암에 걸렸지만 동료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얘기하지도 못하는 지구대장 기한솔(성동일). 그가 수술을 통해 말기가 아니라 1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소식을 들은 경찰들이 모두 환호하는 장면은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남긴다. 암을 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가 기뻐하는 모습. 거기에는 암 걸리게 만드는 현실에 억울해도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그들의 쓸쓸한 모습 같은 게 묻어난다. 

그런데 이게 어디 경찰사회에서만의 이야기일까. 아마도 권력이 스며들어 있는 우리네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어디서나 발견되는 일일 게다. 저 오양촌의 딸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하지 않을까. “열심히 살아봐야 뭐하냐”는 이야기를 우리의 후세들의 입을 통해 듣지 않으려면.(사진:tvN)

‘감빵생활’, 박해수에게 배우는 슬기로운 위기대처법

주인공인데 이토록 무뚝뚝하기도 참 어려울 듯하다.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주인공 김제혁(박해수)은 말보다는 행동을 더 많이 보여준다. 그래서 침묵 속에서 표정조차 잘 변하지 않는 이 인물은 평상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없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무뚝뚝하고 어떤 면에서는 무뎌 보이는 인물이 이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김제혁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어쩌다 감옥까지 오게 됐지만 그는 마치 바보처럼 무덤덤해 하고 그다지 아픈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그가 무감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런 아픔들이 있어도 그걸 버텨낼 만큼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라서다. 자신보다 오히려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이 더 아플 것을 먼저 생각한다. 

왼쪽 어깨를 다쳐 은퇴선언까지 했던 야구를 다시 오른쪽 투구로 바꿔 재기에 성공한 김제혁은 복귀 소식에 구단들이 전부 러브콜을 하는 상황에서 의외의 조건을 내건다. 계약금 같은 현실적인 부분이 아니라, 언론 플레이를 잘 하는 구단을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것. 알고 보면 그것이 결국 동생 제희(임화영)를 위한 일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성폭행을 당할 뻔했던 제희의 이야기가 자신 때문에 거론되는 걸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무뚝뚝하고 그래서 야구 빼고 나면 바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마음 씀씀이나 생각이 굉장히 치밀하고 섬세하다는 걸 이 에피소드는 말해준다. 이런 모습은 그가 처음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돈을 요구하는 조주임(성동일)을 뿌리치고 대신 법자(김성철)의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주는 이야기 속에서도 등장한다. 훈훈한 이야기지만 김제혁이 하는 일들은 이처럼 드러내지 않고 진행된다. 

하지만 일단 결심이 서면 무시무시할 정도로 자신을 밀어붙이고 준비하는 게 바로 김제혁이다. 오른손으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 그는 감옥에서 강행군에 돌입한다. 쉴 틈 없이 체력훈련과 투구훈련을 하고 친구인 교도관 준호(정경호)가 슬쩍 건네는 술 한 잔도 거부한다. 그만큼 무언가를 하기 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없이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혹독하다는 것. 

그러면서도 얻을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활용할 줄 아는 ‘인간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자신에게 팬심을 가진 소장을 ‘형’이라고 부르고 그가 그토록 원하는 언론플레이를 자신을 통해 슬쩍슬쩍 하게 해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해 얻어내기도 한다. 곰인 줄 알았더니 처세술에서는 여우였다는 것. 

하지만 무엇보다 김제혁이 가진 가장 큰 슬기로움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삶의 방식이다. 어머니의 병환을 도운 일로 법자는 영원히 그의 사람이 된다. 무엇보다 같은 감방에 사는 식구들의 마음을 얻은 김제혁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 상황 속에서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다시 돌아와 호시탐탐 김제혁을 노리는 똘마니(안창환)로부터 감방 사람들은 제혁을 보호하려 나선다. 장기수(최무성)는 완력으로, 한양(이규형)은 약에 대한 지식으로, 유대위(정해인)는 군인다운 주도면밀함으로 그를 돕는다. 타인을 도와 자신을 돕게 하는 김제혁의 삶의 방식은 그가 그 힘겨운 나락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된다. 

그런 그를 알아봐준 건 넥센 히어로즈였다. 스카웃 담당자는 준호가 보낸 김제혁의 투구영상을 통해 그가 완벽하게 재기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는 걸 확인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조건을 수락하고 계약을 진행한다. 김제혁이 가진 스토리가 사실 많은 구단들이 영입을 원하는 이유였지만 이들은 그의 실력을 먼저 본 것. 그는 자신들이 “신파가 아닌 실력”을 원한다고 말한다. 

신파가 아닌 실력. 어쩌면 이건 김제혁이라는 인물이 지금 같은 혹독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결심을 하면 무섭게 준비해 실력을 갖추는 것. 그리고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을 도와 자신을 이롭게 할 줄 아는 것. 현실을 한탄하는 신파에 빠져들기보다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으로 넘어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조금 독특한 주인공 김제혁에게 빠져들게 되는 그만의 매력이 아닐까.(사진:tvN)

‘반드시 잡는다’, 스릴러도 따뜻하게 바꾼 백윤식의 아우라

스릴러가 어떻게 이리도 따뜻할 수 있을까. 영화 <반드시 잡는다>는 그 예고편만 보고 나면 “또 연쇄살인이야?”하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나면 그 선입견이 틀렸다는 걸 확인하게 되게 나아가 스릴러라는 장르 속에서도 이토록 따뜻한 이야기와 사회적 함의를 던져줄 수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배우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심덕수 역할을 연기한 백윤식이다. <반드시 잡는다>가 색다른 스릴러가 될 수 있었던 건 출연자들의 특별함 때문이다. 이 영화는 백윤식을 비롯해, 성동일, 천호진, 배종옥, 손종학 같은 중견 배우들이 대부분의 역할을 채우고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어른’에 대한 남다른 시선 덕분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들이 살아갈 것 같은 허름한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벌어지는 연쇄살인. 처음에는 어르신들의 고독사이거나 비관자살로 위장되어 있었지만 차츰 그것이 연쇄살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범인을 찾아 나선 심덕수와 전직 경찰 박평달(성동일). 영화는 살해된 피해자들의 가난하고 고독한 삶의 편린들을 훑어내며 우리 사회가 마치 없는 존재로 여기거나 혹은 ‘꼰대’로 치부하곤 하는 노인들의 자화상을 아프게도 잡아낸다. 

처음에는 가난한 서민들의 처지는 아랑곳없이 그저 월세나 독촉하는 구두쇠 영감으로만 알았던 인물이 차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위협받는 그들의 생명을 위해 죽을 위기 속으로까지 뛰어드는 그 면면들은 그래서 스릴러 장르 속에서도 어떤 따뜻한 감동 같은 걸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스릴러의 해결과정은 마치 진정한 어른이 어른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 나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그 과정처럼 보인다.

놀라운 건 이 작품에서 젊은 용의자들을 추격하고 범인과의 사투를 벌이는 그 심덕수를 연기하는 백윤식이다. 70세의 노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몸을 던지는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이 배우는 그 안에 깊은 페이소스 같은 걸 새겨 넣는다. 그래서 조금은 힘겨울 수 있는 추격과정이나 추리가 오히려 스릴러로서의 긴박감을 더욱 높여주는 장치로서 활용되고, 동시에 순간순간 나이든 어른이 갖는 삶에 대한 경의 같은 것이 뭉클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반드시 잡는다>가 그런 휴먼드라마적인 요소가 부각된 스릴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작품은 스릴러로서 가져야할 긴박감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또한 잘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시작은 다소 걷는 느낌으로 흘러가지만 차츰 달려가는 이야기의 속도감에 빠져들게 되고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적절한 자극을 제공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건 인생 경험이 풍부한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와 ‘여유’ 같은 것들이 특별한 스릴러의 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의 긴장감 속에서도 심덕수라는 어른의 관점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관객들은 조금은 느긋한 시점이 가능해진다. 스릴러지만 이 작품이 이렇게 따뜻하고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인 통찰까지 담아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심덕수라는 독특한 캐릭터와 그걸 200% 연기해낸 백윤식이 있어서가 아닐까. 실로 ‘노장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낸 작품이 아닐 수 없다.(사진:영화 '반드시 잡는다')

‘감빵생활’, 힘겨운 상황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방법

왜 하필이면 감방생활이었을까. 그리고 거기에 ‘슬기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놓은 건 무슨 뜻이었을까. <응답하라> 시리즈로 우리에게 익숙한 신원호 PD의 작품 세계를 떠올려보면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이례적이다. 감방이라는 공간 자체가 어딘지 비일상적이고, 따뜻함보다는 차가움이 먼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질감을 신원호 PD는 단 첫 회만에 지워버렸다. 슈퍼스타 프로야구 선수 제혁(박해수)이 동생을 성폭행하려는 괴한과 격투를 벌이다 중상을 입혀 구치소에 수감되고, 그 곳에서 보내는 며칠간의 이야기가 의외로 일상적이고 심지어 따뜻한 느낌마저 줬기 때문이다. 물론 교도소와 구치소는 다를 수 있겠지만 구치소라고 해도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그런 곳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그 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

그렇지만 2심에서 풀려날 것으로 믿었던 제혁이 1심 구형인 1년 실형이 그대로 확정되는 판결을 받게 되면서 제혁이 앞으로 겪게 될 감방 생활이 생각보다는 파란만장할 거라는 걸 예감케 했다. 구치소가 아닌 교도소 이감 이야기가 나오고, 그 곳은 구치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살벌한 분위기라는 것.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것이 단지 고난으로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이 제혁이라는 인물이 그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혁이 가진 만만찮은 캐릭터 덕분이다. 야구만 잘 했지 어딘지 굼뜨고 어눌하게까지 느껴지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의외로 치밀한 면을 갖고 있는 인물. 그런 캐릭터를 보여준 건 이 구치소의 부정한 교도관 조주임(성동일)을 자신의 절친인 교도관 준호(정경호)와 함께 한 방에 날려 보낸 에피소드를 통해서다.

CCTV가 찍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어 그 곳에서 수감자들을 폭행하는 등 비리를 일삼아온 조주임이 자신의 돈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제혁에게 앙심을 품자 오히려 그의 뒤통수를 쳤던 것. 테니스공으로 CCTV를 맞춰 사각지대가 찍혀지게 돌려놓고, 그래서 찍힌 영상을 기자인 준호의 동생에게 제보해 결국 조주임은 파면을 당하게 됐다. 또 한 교도관이 요구한 사인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검방(감방 검사) 날짜를 미리 알고는 칼을 구한 건달(이호철)을 징벌방에 들어가게 만들기도 했다. 

즉 이 제혁이라는 인물이 의외로 이 낯선 감방에서도 잘 적응하고, 위기상황에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이런 에피소드들이 보여줬다. 또한 제혁은 고교시절 사고를 당하고도 지독할 정도의 재활훈련을 통해 재기에 성공했던 인물이다. 어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은 그래서 어떤 든든함마저 준다. 

2심 공판에서 예상과 달리 1년 형을 확정 받고 다시 구치소로 돌아올 때, 친구인 준호나 가족들 심지어 구치소 교도관들조차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지만, 제혁은 달랐다. 안타까워하는 교도관이 원하는 걸 말해보라고 했을 때, 그 날 운동을 빼먹었다며 운동을 하게 해달라고 하는 대목이 그렇다. 빗속을 뛰고 또 뛰는 그 모습은 힘겨운 상황에 그가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제목이 이해가 간다. 결국 누구나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방에 가게 될 수도 있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특히 지금처럼 힘겨운 현실은 감방이 주는 그 갑갑함이나 답답함과 조응하는 면이 있다. 그러니 그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라는 것. 흔들리지 않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삶이 결국은 그 힘겨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줄 거라는 이야기를 이 드라마는 제혁이라는 담담한 매력을 가진 인물을 통해 말하고 있는 중이다.(사진:tvN)

‘청년경찰’이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공권력

수사의 세 가지 방법을 묻는 시험에서 공부 잘 하는 카이스트 출신 희열(강하늘)은 정답인 ‘피해자 중심 수사, 물품 중심 수사, 현장 중심 수사’라고 적어 넣는다. 반면 공부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는 성격의 기준(박서준)은 고민 끝에 엉뚱하게도 ‘열정, 집념 그리고 진심’이라고 답을 적어낸다. 아마도 영화 <청년경찰>이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에 다 들어 있을 것이다. 시험이 원하는 정답은 아니지만 기준이 적은 열정과 집념 그리고 진심이야말로 진정한 공권력 수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덕목이라는 것.

사진출처:영화<청년경찰>

경찰대생이 실제 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아주 오래 전 봤던 할리우드 코미디영화 <폴리스 아카데미>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청년경찰>은 그 영화와는 정서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청년경찰>은 그 안에 우리네 현실적 상황과 정서들을 콕콕 박아 넣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웃음의 강도가 강하고, 학생이라 어설프지만 포기하지 않고 수사를 해나가는 이 청춘들의 좌충우돌에 대한 정서적 지지도 크다. 

<청년경찰>은 사실상 그 캐릭터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 이야기를 담으면서 굳이 부여한 ‘청년’이라는 캐릭터에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청년들의 어설픔은 오히려 영화 속에서 ‘순수함’으로 표현되고, 당장 성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응당 경찰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정직함’으로 그려진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렇지 못한 기성 경찰들에 대한 엄중한 비판이다. 

결국 사건을 해결했지만 학생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며 징계를 주려는 경찰 수뇌부들이 바로 그 기성 경찰들을 표상한다면, 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양교수(성동일)는 과거에는 자신들도 그렇게 열정에 넘쳤던 적이 있다는 말로 스스로 반성하는 어른이다. 넘쳐나는 사건들 속에서 우선순위를 따져가며 해왔던 수사가 결국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적인 오류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청년경찰들의 열정, 집념, 진심이 들어간 수사는 그 어설픔에 웃음이 터지면서도 그 진지함에 뭉클한 면들이 묻어난다. 

<청년경찰>이 흥미로운 건 이런 거창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주 일상적인 수준에서 농담처럼 잘 배치해놓았다는 점이다. 훈련을 받으며 다리를 다친 희열을 업고 내려오다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버리는 기준의 이야기는 사실은 고기를 먹게 해주겠다는 말에 한 행동으로 처리되며 웃음을 주지만 그 농담 속에 도움이 필요한 이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이 경찰의 본분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넣는다. 결국 길거리에서 우연히 한 소녀가 납치되는 걸 목격한 그들이 그걸 외면하지 않고 수사에 뛰어드는 이야기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앞부분에 보여진 에피소드와의 연결고리를 가지며 공감을 만들어낸다. 

<청년경찰>은 영화에서 캐릭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실정서를 반영하는 잘 축조된 캐릭터가 주는 매력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드라마 <쌈마이웨이>로 기분 좋은 청춘의 면면을 드러냈던 박서준과 영화 <동주>로 역시 청춘의 초상을 그려냈던 강하늘의 손발이 척척 맞는 콤비 코미디가 주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코미디의 이면에 담겨진 의미 역시 작지 않다는 점에서 <청년경찰>은 부담 없이 보는 여름철 오락영화로서의 모든 구색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특히 <청년경찰>이 그려내는 청춘의 긍정성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그간 청춘의 쉽지 않은 현실을 담은 작품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작품들 속에서 청춘들의 고충이 주로 부각됐다면, <청년경찰>은 오히려 그 청춘이 가진 열정, 집념, 진심 같은 기분 좋은 가능성들을 영화의 에너지로 끌고 간다는 점에서 여타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 현실에 적응하기보다는 바로 그 부적응상태가 주는 긍정성. 이 영화가 주는 또 다른 통쾌한 구석이 아닐 수 없다.

<화랑>이 유골무죄 무골유죄 청춘을 보듬는 방식

 

유골무죄 무골유죄.” 골품이 있으면 죄가 없고 골품이 없으면 죄가 있다? 이 조어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삼국시대 신라의 골품제도에 빗댄 말이다. 지금으로 치면 금수저 흙수저의 신라 버전쯤 될까. KBS 월화드라마 <화랑>이 그려내는 청춘들은 당대의 골품제도라는 태생적인 틀에 묶여 꿈이 있어도 펼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화랑(사진출처:KBS)'

무명(박서준)은 그 골품제도에 의해 많은 상처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인촌에서 함께 자라온 둘도 없는 친구 막문(이광수)이 그 신분제의 틈바구니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누이를 찾기 위해 왕경을 넘었다는 죄로, 또 절대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는 성골 삼맥종(박형식)의 얼굴을 봤다는 죄로 막문이 죽음을 맞이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무명은 본래 안지공(최원영)의 아들이었던 막문의 진짜 이름 선우를 자신이 대신 쓰기로 한다.

 

꽃다운 청춘들, 화랑이 모이는 선문이 겉으로 표방하는 것이 골품의 차별이 없다는 건 그래서 흥미로운 대목이다. 물론 그 안에서 뼛속까지 골품의 틀에서 살아왔던 진골들이 선우 같은 반쪽(반만 진골)을 집단적으로 따돌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오로지 실력으로 판단하는 것 같은 기준들이 제시되는 건 <화랑>이라는 드라마가 현재에 어떤 판타지를 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골품의 차별이 없이 모두가 하나의 화랑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해야 하는(하다못해 빨래까지) 상황은 진골들에게는 힘겨운 일이지만, 애초에 천인으로 살아왔던 선우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건 여전히 귀천을 따져 자신을 능멸하고 나아가 여동생인 아로(고아라)까지 희롱하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류(도지한)는 마치 현재의 비뚤어진 상류층들의 갑질 행태를 고스란히 재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선우 역시 만만한 인물은 아니다. 반류가 선우에게 너 같은 반쪽이 시궁창이라고 말하자 선우는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시궁창은 너지. 스스로 뭘 해본적도 없고. 그 자리에서 썩고 있는 너 같은 고인 물.” 이 대사가 말해주듯 이 귀족 자제들이 화랑으로 모인 선문에서 선우라는 이질적인 인물은 그래서 향후 이들 화랑들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귀족이라는 골품의 틀에서 썩어가고 있는 그들을 다시 흐르게 만들어줄.

 

선우가 온 몸에 상처를 달고 다니는 인물이라는 건 이런 그의 캐릭터를 그대로 반영한다. 흥미로운 건 그에게 마음이 설레는 아로가 의원 아버지인 안지공에게 곁눈질로 의술을 배운 인물이라는 것. 아로의 캐릭터는 다친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이다. 아로를 구하다 손바닥을 칼에 베인 선우를 치료하면서 다치지 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건 그것이 마치 상처받은 청춘을 보듬는 치유의 손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선문에서 벌어진 화랑들의 집단 난투극으로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아로가 나서는 장면은 그래서 이 캐릭터를 보다 명확히 해준다. 또한 잠 못 드는 삼맥종을 옆에서 잠들 수 있게 해주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치유의 캐릭터 아로는 선우의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보듬어주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삼맥종을 잠시 쉬게 해준다.

 

이것은 <화랑>이라는 사극이 신라의 화랑들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청춘들을 보듬는 방식일 것이다. 물 수()를 보여주며 이것의 성격을 묻는 위화공(성동일)에게 삼맥종은 물은 선하다고 말한다. 늘 자신을 낮추고 밑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선우는 물이 고단하다고 말한다. 물은 몸속에서 금이면 금, 물고기면 물고기를 내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위화공이 물 수()자와 함께 내놓은 표제어 왕()의 역할을 묻는 질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우의 심경이 담겨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춘들의 고단함. 그 고단함을 없애줄 수 있는 건 더 고단하게 백성들을 위해 일하는 왕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그런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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