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이’, 시대를 관통하는 상처받은 이들의 사랑 

이 드라마 첫 방부터 심상찮다. 그저 평범한 청춘 멜로인 줄 알았는데,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과 아픔 그리고 위로 같은 것들이 첫 회부터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저 가슴 설레는 알콩달콩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아픈 상처의 응어리를 지그시 들여다보며 그 따뜻한 응시로 풀어헤치는 그런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랑이야기다. 

JTBC가 새롭게 편성한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쇼핑몰 붕괴 사고로부터 시작한다. 48명이나 죽은 그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문수(원진아)와 강두(이준호). 하지만 살아남은 그들은 여전히 그 사고의 충격과 후유증 속에서 파괴된 삶을 버텨내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동생을 잃은 문수는 그 트라우마와 죄책감 속에서, 술로 세월을 보내는 엄마와 그 엄마와 헤어져 국수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아빠 사이를 오간다. 

강두는 무너진 건물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지만 온몸이 망가져버리고 그가 재활하는 동안 집안이 망가진다. 결국 아빠도 잃고 엄마도 잃은 강두는 동생과 덩그라니 세상에 던져지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건물 붕괴로 인한 끝없는 트라우마 속에서 건설현장 잡부가 되어 살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진통제로 고통만을 잊은 채 살아가는 삶.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다루는 사랑이야기는 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세월호 참사 같은 우리네 기억 속에 저마다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아픔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불쑥불쑥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와 우리를 건드리는 사고의 기억들. 그것은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이 시대의 아픈 정서 같은 것일 게다.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 그 상처를 보듬어야 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 나가야 하는 것일까.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그 곳에서 살아남은 문수와 강두가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보듬는 사랑이야기면서 동시에 시대의 상처를 위로하는 이야기다. 창이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16층을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다 문득 마주치게 된 두 사람은 그래서 어쩌면 그 사고의 상처가 엮어준 운명처럼 서로를 만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과거 사고현장을 중심으로 다시 얽히게 된다는 점이다. 무너졌던 건물에 새로 올라가는 바이오타운 건설에 문수는 건축사무소 건물 모형 만드는 일을 하면서 참여하게 되고, 강두는 건설현장 인부로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그 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고픈 서주원(이기우)이 있다. 즉 이미 무너졌던 건물의 흔적들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지만, 그 곳에서 이들은 다시 과거의 기억들과 마주하게 된다는 것.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그래서 그 청춘 멜로의 관계들 속에 상처받은 시대의 그림자를 드리워놓는다. 그들은 그저 평범하게 사랑할 나이의 청춘들이지만 과거의 아픈 기억들은 그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대단한 사랑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일이 쉽지 않은 이들에게 먹먹한 아픔과 위로의 마음이 생겨나는 건 그래서다. 그저 드라마의 밑그림일 수 있는 첫 회를 슬쩍 본 것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 느껴지는 둔중함. 이 드라마 어딘가 심상찮다.(사진:JTBC)

‘휴먼다큐 사랑’, 그 아픈 사랑이 묻는 국가의 존재이유

여러 권에 이르는 엄마의 노트는 빼곡한 글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노트 안에는 성준이의 하루하루의 기록들이 담겼다. 의사 선생님은 그 노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성준이가 어떤 상태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해 산소통을 끼고 살아야 하는 성준이. 엄마는 그 성준이를 끼고 살았다.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성준이의 상태를 살피고, 성준이와 놀고, 학교를 가서도 교실 문 밖에서 혹여나 아이가 아플까봐 노심초사 들여다봤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MBC <휴먼다큐 사랑> 4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산소통을 끼고 살아야 하는 성준이와 그 가족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살아서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고 감사한 일이라는 엄마. 그 엄마가 보여주는 성준이의 어린 시절 모습들은 그것이 왜 기적인가를 알게 해주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아이가 연습을 통해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생일 날 촛불도 끄지 못했던 아이가 드디어 촛불을 끄는 그 순간이 엄마에게는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삶 따위는 모두 지워버린 채 온전히 성준이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엄마. 그 빼곡한 노트에 채워진 글씨들에서 느껴지는 건 엄마의 아들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안전하다는 문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던 가습기 살균제. 그래서 믿고 사용했지만 그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 줄이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이를 잃은 다민이 아빠는 “이건 부모가 자식을 서서히 죽인 것”이라고 그 비통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납득되지 않는 법원의 판결들 앞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게 나라냐?”는 외침에는 부모 같아야할 나라가 자식 같은 국민을 내버리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담겼다. 

성준이의 안타까운 사연 속에 어른거리는 건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의 이야기에 담겨진 특별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파양에 학대 그리고 추방까지 당한 신성혁의 사연이 그랬고, 세월호 참사로 인해 바다만큼 많은 눈물을 흘리며 3년 간 딸들이 유해로나마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해온 다윤, 은화 엄마들의 사연이 그랬다. 

그들은 마치 그 가슴 아픈 일들이 자신들이 잘못해서 생긴 일인 것처럼 무거운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가난을 벗어나 잘 살라고 입양시켰지만 결과적으론 고통스런 세월을 보낸 신성혁의 부모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고,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웠던 아이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에 다윤, 은화 엄마는 가슴을 쳤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성준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하지만 그 가슴 절절한 사랑을 들여다보면 그 아픔을 보듬어줘야 할 국가의 부재가 느껴졌다. 도대체 이 부모들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럼에도 어째서 그 부채감을 부모가 온전히 떠안고 알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국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은 특별한 사랑의 이야기 속에 사적인 차원을 넘어서 공적인 질문들까지 담아내는 기존과는 다른 면들이 주목되었다. 

사랑은 그래서 국가의 존재이유를 물었고, 정의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것은 거꾸로 말해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고 정의를 묻는 그 질문들이 그저 갑자기 터져 나온 분노만이 아니라 결국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 그 상식적인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 안에서 눈물 속에 그 희생어린 사랑을 멈추지 않고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 우리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을 보며 느낀 먹먹함과 아픔과 함께 그 안에 어른거리던 분노의 실체가 아닐까.

'SBS스페셜', 삐뚤어진 권력을 차단하기 위한 제언

[SBS스페셜] ‘시크릿공화국’ 편은 왜 하필이면 ‘정보공개’에 대한 문제를 들고 나왔을까. 그것은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무수한 사건 사고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투명하지 못한 권력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SBS스페셜(사진출처:SBS)'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의 구절을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우리는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SBS스페셜]이 얘기하는 주권이란 정부와 공직자들이 하는 일들을 ‘아는 것’이고 ‘감시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국민이 그것을 모른다면 그 순간부터 ‘삐뚤어진 권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보공개’가 필요한 일이지만 [SBS스페셜]이 직접 실험해본 것처럼 정부와 공직자들에게 어떤 정보공개를 요구할 때마다 돌아오는 건 그런 정보가 없다는 답변이나 공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겨우겨우 기자들이 이를 문제 삼고 들어가면 비로소 공개가 되는 이 상황. 그런데 이건 정상적인 일일까. 

해외의 경우 국민이 요구하면 빠른 시간 내에 그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있고, 그런 요구가 있을 필요도 없이 스스로 공직자들은 자신들의 정보를 공개 한다고 한다. 하다못해 식사 자리를 가진 것 하나도 무슨 음식을 얼마를 주고 먹었는지까지 낱낱이. 그래서 자녀에게 주려고 법인카드로 초콜릿을 샀다는 이유만으로도 해직당하는 게 그들의 경우였다. 

우리의 경우는 참담할 정도로 정보가 차단되어 있다는 걸 최근의 무수한 사건 사고들의 이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위안부 합의가 한일 정부 간에 이뤄졌다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인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 따위는 무시된 지 오래고, 그들이 요구하는 합의사항 공개는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황당한 답변으로 돌아왔다. 

월성 원전 주변에서 방사능에 피폭된 주민들이 암에 걸리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그 진실을 묻는 피해 주민들에게 그저 믿어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심지어 그런 이야기들을 해서 집값만 떨어졌다는 식의 말이 돌아오는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구사일생으로 생존한 학생은 여전히 당시 왜 우리를 구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거기에 대한 답변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동안의 대통령 행적을 국민들은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통화기록 같은 증거자료가 부재 한 믿기 힘든 내용들로 채워졌다. 

결국 [SBS스페셜]이 ‘시크릿공화국’을 통해 던진 화두는 이렇게 국민의 당연한 권리인 알권리가 당연히 거부되고 그것에 대해 점점 둔감해져가는 이 상황이 부패와 사고와 사건들을 만든다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국민들이 무지하길 바란다는 것. 그래야 권력이 공고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는 어떠한가. 참담할 정도로 국민들을 유린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의 구절이 실제가 되려면 국민들의 알권리가 제대로 실행되어야 가능하다고 [SBS스페셜]은 말하고 있다. 그래야 공권력이 좀 더 투명하게 행사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현실화되지 않으면 우린 또 다른 참담한 사건 사고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

‘푸른 바다’, 멜로와 현실은 어떻게 공명했을까

잊지 말아야 될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허준재(이민호)의 기억을 지우고 바다로 돌아간 인어 심청(전지현)이 다시 돌아와 사랑을 이어가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그렸다. 허준재는 청이 자신의 기억을 지웠지만 자신의 심장에 새겨진 사랑은 지울 수 없었다며 그녀를 기억하고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그런데 여기서 허준재가 지웠졌던 기억을 다시 복원하는 그 방식이 흥미롭다. 그는 훨씬 이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예감이라도 한 듯, 청이와의 일들을 일기로 기록해놨다고 했다. 결국 청이가 그의 기억을 지웠어도 그는 다시금 그 일기를 통해 그녀와의 추억들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건 전형적인 멜로물의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그간 기억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왔던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조금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엔딩이다. 물론 멜로물로서 바다와 육지로 각각 태어난 서로 다른 존재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지만 다시금 돌아와 둘 사이에 생명을 잉태하고 그 존재가 바다와 육지 사이의 소통자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는 로맨스 판타지물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완결성이 있는 엔딩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작금의 우리네 현실과 마주하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바다와 기억으로 환기되는 세월호 참사의 이미지들은 이 엔딩이 ‘진실을 담은 아픈 기억’에 대한 메시지로 다가오게 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조난당했다 살아 돌아온 이들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그것이 인어 심청의 도움이라고 생각하며 바다를 찾았던 허준재의 그 마음은 어쩌면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의 가족들이나 그들을 위해 기도해온 많은 대중들의 바람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희미해지는 기억을 아파도 애써 기억해내려는 허준재의 사랑 또한 남다르게 느껴지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절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은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기억의 기록’이 갖는 무게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사랑의 기억 같은 진실을 잊지 않고 보존한다면 그 애끓는 사랑은 영원할 수 있다고 마치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 기록으로 영원히 남을 기억은 차츰 그 아픈 상처들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사랑이라는 걸 말해준다. 드라마 속 지나가는 듯한 에피소드의 대사로 등장했던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기억하겠다던 한 엄마의 절규처럼, 아픔은 사랑의 증명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영원한 벌로서의 기억 또한 존재한다. 계모 강서희(황신혜)의 기억에 잊혀지지 않을 아들의 자살이 그것이다. 강서희의 기억은 사랑이 아니라 죄의 기억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우리에게 기록으로 남는 기억이란 이처럼 어떤 것은 바람직한 사랑으로, 어떤 것은 또 다시 벌어져서는 안될 반면교사로서의 죄로 남겨진다.

허준재는 전생에서 바닷가 마을에 지방관으로 부임했던 담령으로 인어를 만났던 그 때의 기억 그대로 이생에서의 심청과의 미래를 준비한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검사가 되어 지방검찰청에서 일하며 심청과 ‘소소한 삶’을 꿈꾼다. 사실 우리네 삶이 꿈꾸는 것들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소박하고 소소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런 기억들을 많이 남기는 것일 테니.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은 그래서 더더욱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진실의 은폐, <솔로몬의 위증>이 건드리는 것들

 

저희 반에 빈 책상만 네 개예요. 그게 어른들의 보호고 도움이에요? 그럼 전 안 받을래요. 필요 없어요.” 고서연(김현수)이 말하는 빈 책상 네 개. 어째서 이 빈 책상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더 큰 잔상으로 남을까.

 

'솔로몬의 위증(사진출처:JTBC)'

JTBC 금토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은 학교에서 의문의 추락사를 한 학생 이소우(서영주)로부터 시작한다. 평소 그를 괴롭혀온 최우혁(백철민)과 그 친구들에 대한 미심쩍음이 있었지만 학교는 서둘러 이를 덮으려 하고 경찰은 자살로 사건을 종결하려 한다. 사실 학내 폭력사태나 혹은 자살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걸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학교 이야기는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너무나 많이 읽어온 것들. 그래서 <솔로몬의 위증>은 일본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어쩐지 우리의 이야기 같은 현실감을 준다.

 

물론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평소 최우혁과 그 친구들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이주리(신세휘)가 그를 따르는 박초롱(서신애)과 함께 최우혁이 이소우를 죽였다는 고발장을 만들어 서연의 집 앞에 놓아두게 되고, 이를 입수한 언론이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터트리자 두려움을 느낀 초롱은 주리와 말다툼 끝에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가 된다. 즉 한 학생이 죽고, 다른 한 학생은 혼수상태가 되며 다른 학생은 그로 인해 심각한 충격을 받는다. 물론 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고서연은 친구들의 책상이 하나씩 비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학교에서 벌어진 한 학생을 둘러싼 추리극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사회 고발극에 가깝다. 드라마가 고발하려는 건, 한 학생의 죽음이라는 중차대한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그 진실을 제대로 알려 하기보다는 자기들 유리한대로만 처리하려는 어른들이다. 그 어른은 다름 아닌 학교와 경찰과 언론이라는 탈을 쓰고 있다.

 

학교는 그럴 듯한 추모식을 거창하게 열었지만 그건 죽은 학생을 진심으로 추모하려하기보다는 서둘러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함이었다. 경찰은 고발장을 보게 된 후 이 사건으로 갖게 된 학생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심리 상담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아이들에게서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한 구실이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박기자(허정도)흥미에 더 관심이 많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보도를 내기 위해 그는 금수저 천지인 정국고에서 위선과 허위를 폭로하면서 정의를 수호하는” ‘정국고 파수꾼이라는 가명의 SNS 계정을 추적하려 한다.

 

박기자는 본래 사람은 자기 유리한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학생들은 가만있는 게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2학년은 어른들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나이라며 너 네가 어른들 도움 없이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서연은 안다. 어른들의 보호와 도움이라고 했지만 결국 자기 반에 빈 책상만 늘어가게 됐다는 것을.

 

결국 <솔로몬의 위증>은 그래서 이렇게 진실을 덮으려고만 하거나 혹은 자기들 유리한대로만 하려는 어른들에 대항해 아이들이 직접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담는 드라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네 부끄러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부끄러운 현실들을 염두에 둔다면 아이들의 이런 반발에 심정적 지지가 가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그래서 <솔로몬의 위증>은 광화문 촛불 집회 현장에 나온 학생들이 또박또박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던질 때 어른들이 갖게 되는 어떤 부끄러움 같은 것들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특히 교실에 빈 책상을 볼 때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아이들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낭만닥터>, 어째서 모든 게 현 시국으로 읽힐까

 

SBS 수목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탄핵 정국을 미리 읽었던 걸까. 마치 현 시국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처럼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야기들은 그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드라마가 아무리 빨리 기획되고 제작된다고 해도 최소 1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 작품이 읽어낸 우리 사회의 치부들이 놀라울 정도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병사외인사냐를 두고 진실을 밝힐 것인가 아니면 눈 한 번 감는 것으로 출세를 지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강동주(유연석)의 이야기는 지금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병사로 기록된 사망진단서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낭만닥터 김사부>가 이런 일을 예상했을 리 없다. 하지만 인터넷 창에 외인사를 치면 이제 백남기라는 이름과 함께 낭만닥터 김사부도 연관 검색어로 뜨게 됐다.

 

출세 만능의 시대. 출세를 위해서라면 양심도 생명도 이해타산에 밀려버리는 시대.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타인의 희생조차 정당화해버리는 사람들. 힘이 없다는 이유로 힘 있는 자들에게 찍히고 싶지 않아서 반쯤 눈감은 채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그러한 이들의 비겁한 결속력이 기득권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군림하고 있었으니.” 지난 5회에 등장했던 이 내레이션에서 비겁한 결속력’, ‘기득권’, ‘군림같은 단어들은 우리에게 최순실 게이트로 낱낱이 드러난 그 비겁한 결속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10회에는 도로에서 벌어진 6중 추돌사고로 인해 현장과 돌담병원 응급실이 긴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드라마는 그려냈다. 절체절명의 순간들 속에서 김사부(한석규)는 감사팀에 의해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진료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 그는 외친다. 환자들을 살리는 게 자신의 룰이라고. 이 장면 속에서 우리가 떠올린 건 지금 현재 다시 이슈화되고 있는 세월호 7시간 부재했던 콘트롤타워와의 비교점이다. 김사부 같은 리더만 있었더라도.

 

물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이나 최순실 게이트같은 것들을 <낭만닥터 김사부>가 미리 예견했을 리 없다. 그리고 지금 같은 탄핵 시국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 드라마가 마치 지금의 고구마 시국을 읽어내듯 사이다 드라마로 쓰여질 수 있었을까.

 

이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이런 일들이 지금 갑자기 터진 사안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잠재적인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존재하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어떤 촉발점에 의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이전에도 우리는 이미 병사냐 외인사냐를 두고 벌어진 많은 논란들을 마주한 바 있고, 특히 군에서의 가혹행위로 인해 벌어진 사건사고들을 접한 바 있다. 그 당시 그 사건들은 과연 제대로 그 진실이 알려졌던가.

 

가진 자들이 기득권이라는 이름으로 갑질하는 모습들은 무수한 논란들로 터져 나왔던 바 있다. ‘땅콩 회항같은 사건들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건 가진 자들의 횡포 앞에 분노하는 서민들이 아니던가. 콘트롤 타워의 부재는 이미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그 많고 많은 사고들이 천재가 아닌 인재였다는 것에서 여러 번 지목됐던 것들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런 점에서 보면 독특한 의학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병원에서 벌어지는 의사들과 환자들의 이야기지만,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면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사이다 드라마로 자리해 있다. VIP 환자 때문에 먼저 왔지만 제 때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의 딸이 강동주를 살인자라고 지목하며 치를 떨 때, 그가 진심으로 그녀에게 사죄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더 깊은 감흥을 주는 건 진정한 사과라는 그 행위가 지금 같은 시국에는 더더욱 진중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고구마 시국에 이런 사이다 드라마가 없다.

<판도라>, 결국 위기를 해결하는 건 서민들 뿐

 

영화 <판도라>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재난영화다. 여기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의미 속에는 이 영화가 신파적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이 재난상황을 다룬 영화가 그저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우리네 현실을 담아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스러져간 많은 이름 모를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다.

 

사진출처:영화<판도라>

<판도라>는 영화 시작 전에 자막으로 이 영화가 드러내고 있는 것들이 허구일 뿐 특정한 사실과는 무관하다는 걸 고지한다. 하지만 그 고지는 오히려 거꾸로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허구를 통해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네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최악의 원전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최근 경주 인근에서 벌어진 지진 때문에 오히려 더 실감 있는 허구가 되었고, 콘트롤타워의 무능함으로 국민들을 위험 속에 몰아넣는 영화 속 이야기 역시 최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탄핵안이 의결되고 세월호 참사의 미스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짜 같은 허구로 다가온다.

 

영화는 재난영화들이 흔히 만들어가는 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진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냉각장치가 정지되고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서 결국 원자로의 노심까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의 지경에 이르게 되는 그 숨 가쁜 과정들 속에서 영화는 청와대의 상황과 사고 현장의 상황을 병치하며 콘트롤타워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일으키는가를 보여준다. 세월호 7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청와대에서의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라는 보고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입니다로 바뀌는 장면은 마치 전쟁이 터진 듯 처참하게 변해가고 있는 현장과 대비되며 관객들을 분노와 허탈감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판도라>는 이 통제 불능의 원전사고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그리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놀라운 통제력을 발휘하는 대통령이 나서거나 하다못해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간단히 문제를 해결하며 영웅이 되겠지만, <판도라>는 결코 이런 모습을 그려내지 못한다. 지금껏 무수한 재난을 겪어온 우리네 대중들에게 그런 이야기는 허황된 거짓말이라는 게 단박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판도라>가 그리는 건 통제 불능의 그 상황 속에서 그나마 스러져 가는 생명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는 평범한 서민들이다. 원전에서 일하던 재혁(김남길)은 그 무너진 원전 속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동료이자 선후배라는 점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결국 몇몇을 구해내지만 그 스스로도 피폭되어 쓰러져버리는 평범한 서민들.

 

그 와중에 원전을 지켜내려는 업주측은 가까이 있는 바닷물을 길어 끓어오르고 있는 원자로에 붓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바닷물이 들어가면 원전을 폐기해야 하기 때문. 현장을 뛰어다니며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소장(정진영)은 울분을 터트린다. 하지만 콘트롤 타워인 대통령은 노련한 총리(이경영)에 의해 실제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결국 원전은 2차 폭발의 위험 속에 빠져버린다.

 

<판도라>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물론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 표면적인 것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재난 상황 속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콘트롤타워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다. <판도라> 속 등장하는 총리의 모습에서 우리네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이 너무나 쉽다는 것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마치 진짜 일처럼 몰입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현실이 <판도라>라는 영화를 더더욱 실감나게 만드는 비극이라니.

 

결국 영화는 마지막 순간 위대한 한 서민의 희생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 마지막에 남겨져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이 현실에 던지는 일종의 경고이고 갖가지 사건 사고 속에서 스러져간 희생자들이 영화의 입을 통해 전하는 외침이다. 죽음을 앞둔 재혁이 기억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지우려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이를 위해 나서는 건 결국 서민들뿐이다. 위기 상황 때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들처럼.

<그것이 알고 싶다>, 결론보다 중요한 질문 그 자체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대통령의 시크릿편은 방송 전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 당시 7시간 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추적을 담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 시간 역시 현재 국민을 들끓게 만든 최순실 국정농단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 역시 이 방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만든 이유다.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출처: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묻고 또 물었고 이에 대해 많은 제보자들이 증언을 했다. 2010년 한 바이오 회사에서 일했다는 제보자는 이미 대통령 당선 이전에도 현 박근혜 대통령이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그 회사에서 “VIP들의 예약을 받아 정맥 시술 얼굴에 시술하는 일을 했었다.”지금 대통령으로 계신 분 또한 예약을 잡아드린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제보자의 이야기대로라면 그 자체가 심각한 불법이었다. 당시 회사 측에서 한나라당에 로비를 많이 했으며, 따라서 국회의원이나 연예인들도 많이 와서 시술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이 받은 시술은 자가지방줄기세포 주사로, 지방에서 자가 세포를 채취해서 배양해 정맥이나 얼굴에 주사를 맞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장 이희영 의사가 말하는 것처럼 명백한 불법이다. “줄기세포 수여나 판매는 법적으로 동일하게 여겨진다. 공짜로 줘도 법으로 금지돼있다. 명확한 불법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 바이오 업체의 이야기가 중요한 건, 그 업체가 2011년 사망사고를 내면서 문을 닫은 후 개원한 병원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차움 병원이라는 사실 때문이고, 세월호 7시간의 미스테리에서 의혹으로 제기되고 있는 부분이 병원과의 관련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증언들에 대해 청와대 측이나 병원 측에서는 무응답이거나 부인으로 일관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와 인터뷰를 한 차움 병원 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시 병원에 내방한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세월호 참사 앞뒤로 열흘 정도는 그와 관련된 인물이 병원을 찾은 기록이 없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병원의 숨은 제보자들의 증언들과는 엇갈렸다. 제보자들은 병원 측이 보도가 시작된 이후 기록을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 즉 증거 인멸이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의혹들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 상황은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속 시원한 해명을 청와대측에서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당시의 행적을 얘기하지 않았고 김기춘 당시 비서관 역시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지어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대통령의 당시 일 분 일 초까지 알려고 하는 게 잘못됐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처럼 대통령의 행적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 같은 경우는 늘 상 대통령의 행적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었고, 국가적 재난 상황 같은 것이 벌어졌을 경우에는 그 11초까지 대통령이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기록하고 공개한다고 했다.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정부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무려 90분 간 <그것이 알고 싶다>는 끊임없이 추적하고 여러 제보자들을 인터뷰하고 청와대와 관계자들에게 질문했다. 세월호 7시간의 행적에 대한 질문이지만 그것은 나아가 우리네 국정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그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답변은 나오지 못했다. 결국 대통령 스스로가 답할 때만이 그 의혹은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그 질문 속에 이미 현 국정운영의 잘못된 면면들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한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거나 회피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시청자들에게는 어떤 답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의혹에 대한 질문만으로도 충분한 언론의 가치. <그것이 알고 싶다>90분간의 질문을 통해 그걸 보여줬다

'무도' 스피드레이서 특집, 왜 힘겨운 도전일까

 

MBC <무한도전>스피드레이서특집은 여러모로 힘겨운 도전이 되었다. 우선 카 레이싱이라는 소재 자체가 그렇다. 자동차 운전이 뭐가 그리 어렵겠냐 싶겠지만 좁은 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며 상대방의 견제를 피해 앞지르기를 해야 하는 건 웬만한 기술이 없으면 시도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우선 속도감과 가드 레일이 주는 압박을 이겨내야 하고 스틱이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라면 이 또한 넘어서야 할 벽이 된다. 노홍철의 경우, 익숙하지 않은 스틱 운전을 하기 위해 평소에도 꾸준히 연습한 결과 의외로 발군의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스타트에서 기어가 빠지는 실수를 연발하기도 하지만.

 

하지만 <무한도전>의 스피드레이서 특집이 특히 어려운 도전이 되는 건, 이 특집이 방송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재미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스피드레이서 특집의 영상은 자동차 안에서 운전을 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에 거의 집중될 수밖에 없다. 물론 가끔이 질주하는 차량과 앞지르기를 성공하는 장면이 쾌감을 주기는 하지만 영상이 단조롭기는 마찬가지다.

 

또 예능으로서 스피드레이서라는 소재는 웃음을 주기가 쉽지 않다. 가끔씩 만담하는 듯한 <무도> 특유의 찧고 까는 얘기들이 웃음을 주긴 하지만 막상 훈련에 들어가게 되면 웃음기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출연자들의 표정은 잔뜩 굳은 채 오로지 레이싱에만 집중하게 된다.

 

자동차 레이싱에 평소 관심이 많은 시청자라면 물론 이 경기 자체가 주는 묘미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싱을 잘 모르거나 관심이 별로 없는 시청자들에게는 <무한도전>에 대해 거는 웃음에 대한 기대가 상당 부분 사라진 것에 실망감을 느낄 것이다.

 

물론 과거 장기 프로젝트로 했던 댄스스포츠나 봅슬레이, 프로 레슬링, 조정 경기 같은 종목들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종목들은 그래도 예능적인 포인트들이 많이 살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 레이싱처럼 출연자들이 독립적으로 떨어져 함께 하는 시간이 적은 프로젝트에서 관계가 만들어내는 <무한도전>만의 독특한 웃음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게다가 이 특집은 몇 가지 프로그램 외적인 상황으로 난항을 겪기도 했다. 그 첫 번째는 갑자기 터진 세월호 참사로 인해 경기 자체가 미뤄진 것이고, 그 두 번째는 함께 도전을 준비해왔던 길이 음주운전으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됐다는 점이다. 함께 찍은 상당 부분의 방송분량이 길의 하차로 날아간 셈이 됐다.

 

게다가 브라질 월드컵 특집으로 스피드 레이싱을 준비하는 과정이 늦게 방영됨으로써 이미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의 경기결과는 나온 상태다. 물론 결과가 나왔다고 <무한도전>이 그간 해온 장기 프로젝트가 어떤 영향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늘 <무한도전>의 진짜 핵심 볼거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스피드 레이싱의 경우 줄어든 예능분량과 낯선 경기로 인해 결과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주요 볼거리가 된 것은 사실이다.

 

이 많은 난점들을 그나마 채워 넣은 것은 이른바 역발상 스폰서. 자동차 레이싱에서 으레 차량을 통해 진행되는 스폰서를 뒤집어 <무한도전>이 도움을 주고 싶은 스폰서를 무료로 대중들에게 알리겠다는 것. <무한도전>다운 역발상은 이 도전에 사회적인 의미를 덧붙임으로써 자동차 레이싱이 갖는 상업적인 느낌을 상쇄시켜주었다. 게다가 이 부분은 레이싱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까지 이들을 응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여러모로 이번 스피드레이서 특집은 <무한도전>에게 힘겨운 도전이다. 방송으로서의 소재가 가진 한계가 있는데다 방송 외적인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힘겨운 도전이 아름답게 마무리 될 수 있었던 건 <무한도전> 특유의 사회 참여적인 자세 덕분이었다. 물론 많은 팬들은 스피드레이서 특집으로 <무한도전> 본래의 웃음과 재미에 대한 더 큰 갈증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힘겨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 이것이 <무한도전>이 지금껏 걸어온 길이었다는 걸 스피드레이서 특집 역시 보여주고 있다.

<스케치북>이 보여준 음악이 가진 또 다른 역할, 위로

 

그들은 모두 검은 정장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와 노래를 불렀다. 관객의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관객이 아예 없기 때문이었다. 악기 또한 피아노나 현악기 몇 개만을 사용했다. 자극보다는 편안한 위로와 진심을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화려함과 자극을 떼어내자 오롯이 가사 한 줄 한 줄이 새록새록 가슴에 와 닿았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6주 만에 돌아온 <유희열의 스케치북>. ‘작은 위로라고 이름 붙여졌지만 그건 큰 감동이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사진출처:KBS)'

이러면 안 되지만 죽을 만큼 보고 싶다-” 절제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해 반주 없이 시작된 김범수의 보고 싶다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와 가슴을 울렸다. 김범수의 절절한 목소리에 집중된 노래는 가사가 주는 힘을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어쿠스틱 버전으로 불려진 2NE1‘Come back home’ 역시 추모의 의미가 더해지자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해외 공연과 바쁜 일정 속에서도 위로가 되고 싶다며 한 달음에 달려온 2NE1의 그 진심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김윤아가 특유의 읊조리듯 절절한 목소리로 부르는 야상곡도 특별한 의미가 더해지자 그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흐느끼는 것처럼 들렸다.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동생을 위해 만든 노래라는 ‘Going home’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단지 내일의 일도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 그저 너의 등을 감싸 안으며 다 잘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그 가사는 힘겨운 현실에 위로와 작은 축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제이 레빗이 부른 조용필의 친구여는 먼저 간 그들을 향한 아련한 그리움을 담았다. 기타 선율과 멜로디언 위에 살짝 얹어진 노래는 한 소절 한 소절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며 마치 구름이 흘러가듯 헛되고 속절없는 삶의 무상함 속에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히 표현했다.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2NE1그리워해요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저 떠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는 이 노래는 마치 떠나는 혹은 떠나간 이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위로처럼 읽혔다. 윤종신, 조정치, 김동률 등 뮤지션들이 위로받는 가수 Kyo(이규호)가 부르는 영원한 길이나 뭉뚱그리다는 중성적인 이미지에서 나오는 나직한 미성으로 듣는 이들에게도 역시 위로를 전해 주었다. 피아노 한 대에 의지한 채 담담히 눈을 감고 부르는 제이레빗의 웃으며 넘길래나 김범수의 지나간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음악이 가진 또 다른 역할과 힘을 보여주었다.

 

가수들 역시 자신들이 힘겨울 때 위로받았던 노래를 소개했다. 김윤아는 신디 로퍼의 ‘Two colors’를 김범수는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2NE1의 민지는 리차드 막스의 ‘Right Here Waiting’을 또 제이 레빗은 영화 <모던타임즈>의 수록곡인 ‘Smile’을 소개했다. 위로받았던 노래가 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 그것이 노래의 또 다른 힘이 아닐까.

 

김범수는 작은 위로라는 주제의 프로그램에 기꺼이 참석한 이유에 대해 제가 지금 해야 될 일은 노래로 여러분들을 위로해야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유희열은 약은 사람의 몸을 고칠 수 있지만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고칠 수 있어라고 했다는 루시드 폴의 말을 인용했다. 새삼 가사가 주는 메시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 그 마지막은 가사 없이 피아노와 현악으로만 채워진 유희열의 추모곡 엄마의 바다로 채워졌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작은 위로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보여준 건 음악의 또 다른 힘이었다. 무려 6주 간이나 결방된 이 프로그램이 말해주는 것은 음악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다. 음악은 흥을 돋우는 것만큼 한을 위로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추모와 애도의 뜻을 담은 작은 위로는 그래서 그 편견을 깨는 시간이기도 했다. 힘겨운 삶과 현실을 보듬어주는 것. 그것 또한 음악의 얼굴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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