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남><캐리녀>, 동반 추락하는 까닭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 걸까. MBC 월화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그래도 초반 9.6%(닐슨 코리아)까지 시청률이 오르기도 했지만 7.1%까지 추락했다. KBS <우리집에 사는 남자> 역시 10.6%까지 올랐던 시청률이 7.4%로 폭락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끝난 후 반사이익을 얻어 5.9%에서 9.8%까지 폭등했던 <달의 연인> 역시 9.0% 시청률로 주춤하고 있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사진출처:MBC)'

<달의 연인>이야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청자 유입이 여의치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캐리어를 끄는 여자><우리집에 사는 남자>는 다르다. 중반에 접어든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본격적으로 드라마가 힘을 발휘해야 하는 시점이고, 이제 시작인 <우리집에 사는 남자>는 초반의 관심을 이어나가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어째 이 두 드라마는 점점 힘이 빠진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이야기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함복거(주진모)의 과거에 얽힌 복수극을 그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시험 공포증으로 변호사가 되지 못하고 사무장으로 살아가는 차금주(최지우)의 성장드라마를 그리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함복거와 마석우(이준) 사이에서 차금주와 벌어지는 삼각멜로를 그리려는 것인지 너무 애매모호하다.

 

사실상 이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욕망이지만 그것이 썩 자연스럽게 엮어져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드라마 중간 중간에 갑자기 나타나 드라마를 스릴러로 만드는 강프로 같은 캐릭터는 너무 뜬금없이 등장해 드라마의 몰입을 떨어뜨린다. 멜로와 스릴러, 성장드라마가 갖는 감정적 느낌은 잘 어우러지지 않으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기 마련이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그래서 마치 여러 개의 드라마를 억지로 묶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니 드라마가 순항할 수가 없다.

 

새로 시작한 <우리집에 사는 남자>는 웹툰 원작답게 그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이 초반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수애의 연기 변신도 주목할 만했고, 김영광의 가벼움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연기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이 발랄한 느낌이 어떤 굵직한 한 가지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고 자잘한 에피소드로만 이어지면서 드라마가 마치 시트콤 같은 느낌을 주게 되었다.

 

새 아빠라고 갑자기 나타난 고난길(김영광)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그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는 홍나리(수애)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는 궁금한 대목이 맞지만, 그 한 가지 에피소드에만 맞춰져 홍나리와 고난길이 벌이는 좌충우돌은 너무 지루하게 이어진다. 어머니의 기일에 맞춰 제사상을 차리는 고난길과 그가 가진 열쇠를 복사하기 위해 옛 남자친구인 조동진(김지훈)을 불러 그와 술을 마시고 취하게 만드는 설정은 아무리 코미디라고 해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매회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메인 스토리가 절실한 시점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건 이런 새로운 드라마들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캐리어를 끄는 여자><우리집에 사는 남자> 모두 메인 스토리가 중심을 잡아주지 못한 데서 생긴 일이다. 동반 추락하고 있는 두 드라마는 과연 부족한 그 지점들을 채워 넣고 다시 반등할 수 있을까

<우사남>, 김영광은 오해와 편견을 넘을 수 있을까

 

KBS 월화드라마 <우리집에 사는 남자>에서 고난길(김영광)이라는 이름은 의미심장하다. 웹툰 원작답게 장난스런 작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인물이 격을 오해와 편견은 말 그대로 고난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사는 남자(사진출처:KBS)'

젊은 남자가 나이든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하는 것이 흠인 세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 여자의 딸인 홍나리(수애)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젊은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새 아빠라고 나서게 되는데 그 누가 당혹스럽지 않겠는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 호칭 자체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새 아빠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자신에게 상속될 집과 가게가 그의 소유로 되었다면 더더욱 오해와 편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지역에 부동산을 사들여 사업을 벌이려하는 덕봉(이수혁)이나 홍나리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조동진(김지훈)의 눈에 그 새 아빠라는 고난길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 당연하다. 의도적으로 나리의 엄마에게 접근해 재산을 뜯어내려 했다는 의심.

 

하지만 홍나리는 그것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믿고 싶지는 않은 일이다. 그것은 사고로 죽은 엄마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양갈래로 나뉜다. 고난길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닌가 싶어 그의 방을 뒤져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동진이나 덕봉이 의심을 할 때는 엄마의 선택을 존중하고 믿고 싶어 하는 속내를 드러낸다. 그러면서 조동진이나 덕봉의 의심이 너무나 속물적이라고 치부한다.

 

그래서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자락의 의심을 접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럴 때 보이는 고난길의 모습은 사뭇 진지해진다. 홍나리가 엄마를 떠올리고 싶을 때 어떻게 하냐고 묻자 고난길은 눈을 감고 생각하면 그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또 자주 엄마의 산소를 찾느냐고 묻자 엄마가 좋아하는 시각에 찾곤 한다고 말한다. 한없이 가볍게 상황들을 보여주던 드라마는 고난길의 이런 장면에서는 굉장히 진중해진다. 그것이 바로 그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 그의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집에 사는 남자>가 엄마가 갑작스런 사고로 죽고 젊은 새 아빠를 맞게 된 홍나리의 로맨틱 코미디로서 시종일관 달달함과 유쾌한 웃음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어떤 따뜻하고 위로받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건 바로 이 고난길이 홍나리의 엄마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의 마음을 드러낼 때나 그녀의 딸인 홍나리를 마치 딸 바보처럼 챙기는 마음을 드러낼 때다.

 

진상 손님들이 수시로 진상을 부려도 네 고객님하며 깍듯하게 응대해야 하는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피곤과, 갑작스런 엄마의 사고사 그리고 오래도록 사귀어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남자친구가 회사 후배와 바람이 난 상황, 게다가 자신의 집과 가게가 고난길이라는 새 아빠에게 넘어간 상황은 홍나리가 처한 힘겨운 현실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길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지는 보호받고 지지받는 듯한 느낌은 이 드라마가 왜 힐링드라마가 되는가를 잘 말해준다. 결국 그건 그 오해와 편견을 넘어서는 고난길의 진심에서 생겨나는 따스함이다

수애의 연기 변천사, <우사남>에서는 또 어떤 모습이

 

이번에는 허술한 매력인가. 새로 시작한 KBS 월화드라마 <우리집에 사는 남자>에서 수애가 연기하는 홍나리라는 인물은 허술한 매력을 갖고 있는 여자다. 일에 있어서 똑 부러진 면을 보이지만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대로 제 의지와 상관없이 꼬여버리는 삶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우리집에 사는 남자(사진출처:KBS)'

프로포즈를 받는 날 엄마 정임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사망 소식을 듣게 되고, 결혼날짜까지 잡아놓은 오랜 남자친구가 직장 후배와 내연관계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엄마의 산소 앞에서 그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젠 끝이라는 선언을 할 때 하필이면 그 자리에 있던 낯선 남자 고난길(김영광)에게 자신의 상황을 다 들키고, 나타나 사과하는 남자친구에게서 뒤늦게 자신의 외삼촌이 몇 차례 돈을 빌려갔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래서 술에 잔뜩 취해 찾아간 외삼촌집은 바로 그 낯선 남자 고난길이 살고 있고, 그는 자신이 그녀의 새 아빠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한다. 술에 취한 채 수면제를 먹고 잠든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고 그런 그녀를 고난길은 병원까지 데려다준다. 1회만에 홍나리라는 인물이 겪은 일들은 파란만장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일들은 그녀의 뒤통수를 치는 일들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인생. 그것이 그녀의 삶이다.

 

<우리집에 사는 남자>는 연하남이 새 아빠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갖고 있다. 그 나이 차를 거스르는 부녀관계는 그래서 향후 홍나리와 고난길 사이의 꼬이고 꼬인 로맨틱 코미디를 예고하게 만든다. 딸을 위해 모든 걸 해주려는 새 아빠라는 설정에서, 만일 홍나리가 부녀관계라는 선을 명쾌하게 그어버리는 성격이라면 그 관계가 특수하다는 것 이상의 이야기는 진전될 수 없다.

 

하지만 사람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고, 또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라 스스로 겪어오며 살아온 홍나리라는 인물은 그래서 삶 앞에 어떤 허술함을 허용하게 된 인물이다. 그래서 새 아빠지만 자신을 챙겨주는 그에게서 어떤 애정 같은 것이 싹트는 상황이 가능해진다. 그 애정과 부녀 관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적 갈등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로맨스와 코미디의 핵심적인 동인이 된다.

 

첫 회는 그래서 이 홍나리라는 인물의 파란만장한 삶으로 온전히 채워졌다. 여기서 주목되는 건 수애라는 연기자에게 의외로 이런 허당기 가득한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술에 잔뜩 취해 빨갛게 홍조를 띤 얼굴로 마트에서 산 삽자루를 질질 끌고 외삼촌집 근처를 어슬렁대는 장면은 그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웃음을 만든다. 술에 취해 스릴러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모습을 보이는 여자.

 

이러한 허술한 매력을 선보이는 수애에게서 새삼 이 연기자가 가진 참 다양한 얼굴을 읽게 된다. 한 때는 그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 때문에 왠지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명성황후 같은 역할이 제격이라 여겨졌던 그녀지만, 그녀는 <님은 먼 곳에>에서 월남까지 간 순이 역할로 변신했고, <심야의 FM>에서는 그 목소리의 편견을 깨겠다는 듯 욕설을 해대는 날카로운 성격의 MC 역할을 소화했던 바 있다.

 

드라마에서도 변신은 이어져 <아테나>에서는 니킥을 날리며 액션수애라는 닉네임을 얻었고, <가면>에서는 12역의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를 소화해내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번 <우리집에 사는 남자>에서는 조금은 모든 걸 내려놓은 허술한 캐릭터를 편안한 제 얼굴처럼 갖고 돌아왔다.

 

KBS 정성효 드라마 센터장은 <우리집에 사는 남자>유쾌한 힐링 드라마라고 소개한 바 있다. 로맨틱 코미지 장르지만 그 안에서 힐링의 느낌을 전해줄 수 있다는 건 아무래도 이 파란만장하고 허술하게 당하는 홍나리가 새 아빠인 고난길과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삶의 가치관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권덕봉(이수혁)을 통해 어떤 따뜻한 감성을 느끼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기변신을 통해 수애가 보여줄 수 있는 허술한 매력이 이 드라마의 관건이 되는 이유다

<오마비> 신민아, 살찌우자 비로소 보이는 연기

 

최근 여성연기자들은 예쁨을 감추려 안간힘이다? KBS <오 마이 비너스>의 신민아는 살을 주체할 수 없는 뚱뚱이로 분장했다. 대학시절에는 남자들을 줄줄 달고 다니는 말 그대로 비너스였지만 역변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아랑사또전>의 아랑이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구미호 역할을 하며 미모를 뽐낼 때는 전혀 드러나지 않던 연기가 이 뚱뚱이 분장을 하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오 마이 비너스(사진출처:KBS)'

최근 종영했던 <그녀는 예뻤다>의 황정음은 물론 <킬미 힐미><비밀> 같은 작품에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정점을 찍은 느낌이다. 그저 연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스러움이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 그녀 역시 <그녀는 예뻤다>에서 주근깨투성이의 얼굴에 폭탄머리를 하고 나왔다. 그랬더니 오히려 그녀의 연기는 더 돋보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여성 연기자들에게 미모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거기에 속박될 수 있는 족쇄가 된다. 특히 출중한 외모를 가진 여성 연기자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주목받지만 대신 연기를 해도 그 연기가 미모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그 미모가 그 연기자의 이미지로 굳어져버려 새로운 연기를 할 때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는 괜찮을 수 있지만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 미모의 여성 연기자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굳어진 이미지를 어떻게든 벗어나야 연기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외모를 가려버리는 캐릭터들은 이들 여성 연기자들에게 매력적인 기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한때 이런 장치로 가장 많이 쓰인 건 남장여자였다. <커피프린스1호점>의 윤은혜는 그 남장여자 캐릭터로 대중들의 새로운 주목을 받았고,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은 늘 따라붙던 국민여동생 이미지를 그 남장여자 캐릭터로 깨버릴 수 있었다. 또 이렇게 이미지를 깨는 데 유용한 역할이 바로 악역이다. 수애는 <야왕>의 주다해 같은 악역을 통해 자신의 고고한 이미지를 깨려 노력한 연기자다.

 

<오 마이 비너스>의 신민아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녀에게는 절호의 기회를 주는 캐릭터를 얻은 셈이다. 뚱뚱이 강주은이라는 캐릭터는 보기 불편할 정도로 뚱뚱한 몸과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갖고 있지만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일단 강주은이라는 뚱뚱이 캐릭터가 가진 씩씩하고 밝으며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면 그녀가 어서 살을 빼고 제 모습의 비너스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이건 놀라운 변화다. 대체로 신민아가 연기를 한다고 하면 시청자들은 흔히 그 외모를 오히려 불편해한다. 왜냐하면 마치 그 외모 때문에 캐스팅된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 마이 비너스>는 정반대다. 그 외모를 뚱뚱이 캐릭터로 가리고 연기를 먼저 보여주고 나니 오히려 본래 신민아가 갖고 있던 그 외모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

 

여러모로 <오 마이 비너스>는 극중 캐릭터인 강주은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신세 마일리지라는 표현처럼, 신민아에게 신세 마일리지를 갖게 하는 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뚱뚱한 얼굴에서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참 많은 걸 표현해내는 신민아를 보게 되다니. 연기자로서 < 오 마이 비너스>는 신민아에게 어떤 분수령이 될 만한 작품이다.



<가면>, 현실성 사라진 드라마의 문제

 

만화 같다는 표현은 하나의 관용구가 되었다. 만화 자체의 가치를 비하하는 얘기가 아니다. 만화처럼 상상력의 나래를 한껏 펴다보니 현실성을 잃었다는 하나의 표현일 뿐이다. 지금 현재 <가면>이라는 드라마가 그렇다. SBS <가면>은 도플갱어라는 낯선 설정을 가져와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한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다보면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만화 같다.

 


'가면(사진출처:SBS)'

<가면>이 타인의 삶을 대신 사는 가면의 설정을 가져온 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태생으로 규정되는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가면을 쓰고 상류사회에 입성한 여인은 그 정체성의 혼란과 욕망 사이에서 벌어지는 고민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가면의 부부생활 속에서 피어난 달달한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것 또한 상류사회의 쇼윈도 부부가 보여주는 가면의 삶을 탈피하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여인이 본격적인 사업으로 뛰어들어 수완을 발휘하고 국회의원인 아버지(실제 아버지는 다른 이지만)의 정치적인 행보까지 밀어주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이 여인의 사랑과 성공의 판타지로 빠져들수록 이야기는 현실성을 점점 잃어간다.

 

<상류사회>라는 드라마를 생각해보라. 상류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건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뿌리 깊은 계급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니 <가면>의 변지숙(수애)이 서은하 역할을 척척 해내는 걸 뛰어넘어 사랑에 있어서도 또 사업에 있어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오히려 그녀가 살아온 변지숙의 삶을 통해 얻은 경험들 덕분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이 그렇게 순진한가.

 

<가면>은 막연히 서민들의 세계와 상류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마치 선과 악을 구분하듯 다루고 있다. 즉 서민들의 세계가 선이라면 상류사회는 악이다. 물론 그 상류사회 안에도 민우(주지훈) 같은 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민우는 그 세계에서 도태된 인물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는 석훈(연정훈)같은 절대 악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 민우를 오히려 챙기고 보호하는 건 변지숙이다. 이건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백화점의 평범한 직원이었던 그녀가 상류사회의 살벌한 이전투구의 세계 속에서 승승장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그토록 많은 재벌가 이야기들을 드라마를 통해 봐오면서 알게 된 것이다. 저들의 세계는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보여주는 상류사회에서는 돈이면 한 사람의 삶을 일으키기도 또 망가뜨리기도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상류사회>에서 사랑하는 남녀들은 그 절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계급의식의 차이 때문에 거대한 장벽 앞에 서 있는 듯한 암담함을 느낀다. 그런데 타인의 얼굴이라는 가면 하나를 쓰고 모든 게 그리 쉽게 된단 말인가.

 

변지숙이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고 자신의 본래 가족에게 그 사업장 하나를 덥석 안겨주는 이야기가 차라리 PPL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그러려니 할 것이다. 하지만 가면을 통한 상류사회의 이면을 보다 현실적으로 예리하게 드러내 보여지기 보다는, 한 서민의 상류층 가면 놀이 판타지에 빠져 있는 건 아무래도 너무 마취적이다. 달달한 판타지도 좋지만 좀 더 현실성 있는 드라마를 그리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가면>, 가면 놀이가 돼서는 곤란하다

 

SBS <가면>이 다루려는 건 정체성에 대한 문제다.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의 삶을 살아야하는 자(변지숙)와 죽었지만 타인의 욕망에 의해 유령처럼 떠도는 자(서은하)의 이야기. 도플갱어인 그들은 가면이란 장치를 통해 삶을 바꾼다.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변신 욕구는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재지만, 이러한 범죄에까지 와 닿는 변신에 대한 욕망은 그 사회의 건강하지 못함을 드러낸다.

 


'가면(사진출처:SBS)'

즉 이 드라마는 가면이란 설정 자체가 이미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특징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막상 가면을 씌우고 나니 거기 보이는 많은 놀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적으로 이런 놀이들은 극성을 높여주고 때론 달달하게 때론 자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해준다. 이를테면 가면을 쓴 당사자인 변지숙(수애)과 그 사실을 모른 채 조금씩 그녀에게 마음이 이끌리는 민우(주지훈)의 사랑이다.

 

가면이란 장치를 쓰자 두 사람은 서로 끌리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변지숙은 다가오는 민우에게서 한 걸음씩 물러나게 된다. 자신의 진짜 정체가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또 두 사람은 정략결혼을 한 사이로 한 방에서 지내지만 한 침대를 쓰지 않는다. 이것은 또 하나의 가면 장치다. 그들이 한 침대를 쓸 것인가 아닌가 역시 이 드라마의 달달한 자극 중 하나다.

 

가면을 씌우자 만들어지는 놀이는 이밖에도 많다. 변지숙에게 그 가면을 씌운 석훈(연정훈)은 그녀에게는 이 모든 사실을 터트릴 수 있는 두려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 범죄의 공모자로서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의 정체를 아는 동창을 그는 끝내 살해한다. 또 그녀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서 그는 등장해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해댄다.

 

가면이란 설정은 결국 두 가지 장치를 가능하게 해준다. 멜로의 장애물로서 정체를 숨기는 장치가 그 하나고, 스릴러의 요소로서 범죄 사실을 숨기는 장치가 나머지 하나다. 이 두 장치가 서로 얽히면서 굴러갈 때 드라마의 극적 전개는 가능해진다. 여기에 여전히 가난한 지숙의 집안과 병을 앓는 노모 그리고 사채 빚을 받는 일을 하는 동생의 이야기가 겹쳐지고, 지숙을 향한 석훈의 시선이 단지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죽은 서은하와의 비뚤어진 애정관계도 깔려 있다는 사실은 이 극적 전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좋다. 가면이란 장치는 이만큼 충분한 효용을 드러낸다. 하지만 드라마는 단지 그런 놀이의 쾌감 때문에 보는 건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 흐름이 메시지를 관통해야 하고 놀이의 쾌감 역시 그 흐름 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정도여야 한다. 그런데 <가면>은 이 장치를 활용한 놀이에 너무 깊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구성 또한 약간 패턴화되어간다. 즉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놓인 변지숙을 민우나 석훈이 등장해 구해주는 장면들이다.

 

변지숙의 캐릭터 또한 너무 수동적인 입장만을 만들어 놨다. 즉 그 범죄의 가면을 쓰게 된 그녀의 입장을 가족을 위한 희생 같은 선함에서만 찾다보니 너무 캐릭터가 일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저 밑으로 꾹꾹 눌러놓은 채 수동적인 위치에만 서려 한다. 누군가 그걸 건드려 주었을 때만 깨어나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이 너무 답답하게 여겨지는 면이 있다. 어차피 가면을 썼다면 그 가면이 주는 욕망을 끄집어내는 힘또한 무시할 수 없을 텐데도 그녀는 여전히 신파의 주인공처럼 그려진다.

 

<가면>은 그 장치가 가진 극성이 높은 드라마다. 그래서 시청률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라마가 가면이 가진 욕망의 변주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멜로나 스릴러적인 상황에만 빠져 가면놀이에 탐닉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막장의 유혹에 빠져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만 치닫는. 가면놀이에서 벗어나 좀 더 인물들의 과감한 변신과 그 파국을 그려내는 일은 어려운 일일까



<가면>이 드러내는 세 가지 가면

 

변지숙(수애)은 서민의 딸이다. 아버지 때문에 사채 빚 독촉에 내몰려 있는 그녀는 어느 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을 겪게 된다. 자신의 도플갱어인 서은하의 삶을 가면을 쓴 채 살아가라는 것. 대가는 어마어마한 재산과 지위다. 그거라면 지긋지긋한 빚쟁이들로부터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편안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악마의 유혹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본래 변지숙이었던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가면(사진출처:SBS)'

변지숙이 쓴 가면은 서민의 가면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절망적으로 선택한 거짓의 삶이다. 이것은 어쩌면 이 땅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이 가진 가면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출근할 때 그들은 누구나 저 마다의 가면을 꺼내 쓰고 나간다. 눈물이 나는 상황에서도 웃고, 웃음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무표정을 연기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변지숙의 가면과, 그 가면이 벗겨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건 그 설정이 서민들의 상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 변지숙이 서은하인 줄 알고 정략 결혼한 민우(주지훈) 역시 가면의 삶을 살고 있다. 쇼윈도 부부로서 기업 간 합병하듯 결혼을 선택한 그의 삶은 거짓이다. 게다가 그는 신경증을 앓고 있다. 언제 자신 속에 있는 괴물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어 그는 전전긍긍한다. 그는 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하다. 가면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민우의 가면은 상류층이라고 해도 쓰기 싫어지는 가면이다. 그 위치가 만들어내는 가면으로 심지어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씌워진다. 때로는 조작된 가면이기도 하다. 그를 전복시켜 부와 권력을 빼앗으려는 석훈(연정훈)이 정신과 주치의를 이용해 민우에게 씌운 가면은 정신병자의 그것이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민우는 그래서 이런 가면이 덧씌워져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민우가 가면을 쓴 채 정략 결혼해 만난 변지숙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가면을 벗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기막힌 아이러니다. 만일 변지숙이 아닌 진짜 서은하였다면 민우는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은하 가면을 썼어도 서민적 삶을 버리지 못하는 변지숙의 모습은 민우의 가면에 균열을 일으킨다. 정략결혼이 점점 사랑으로 바뀌는 과정은 그래서 두 사람 모두 가면을 조금씩 벗는 과정과 일치한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끼어 있는 메피스토펠레스 석훈은 문제적인 인물이다. 그는 너무 많은 가면을 쓰고 있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유능한 사업가이자 평범한 가장처럼 보이지만 내심으로는 이 세계를 장악하려는 야심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변지숙을 협박하고 이용하려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끔씩 비뚤어진 그의 사랑 내지 욕망이 엿보인다. 변지숙을 통해 과거 그가 사랑했던 서은하를 보는 까닭이다.

 

그래서 그가 변지숙과 민우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기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자신의 야심을 채워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옛사랑을 떨궈내야 하는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석훈이 쓴 이 이중적인 가면은 야망과 개인적인 행복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류사회에 이제 막 진입한 서민 야심가의 자화상이 담겨져 있다. 사랑과 야망 사이에서의 갈등.

 

SBS 드라마 <가면>의 관전 포인트는 그 복합적인 인물들 덕분에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이 세 인물을 등가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관점이다. 수애도 주지훈도 연정훈도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연기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 캐릭터들이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가면이라는 설정을 통해 이 이중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인물들이 서로 부딪치고 때론 분노하고 아파하며 때론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그 과정들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그것은 숨겼던 가면들이 하나씩 벗겨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수애와 주지훈 그리고 연정훈은 마치 연기 대결을 벌이기라도 하는 듯 극중에서 팽팽하다. 어딘지 맹한 듯 보이지만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수애나, 진짜 신경증 환자처럼 날카로워 보이지만 때론 허당처럼 따뜻해지기도 하는 주지훈, 그리고 마치 악마에 영혼을 판 듯한 연기하는 자아를 보여주는 연정훈의 연기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 흥미로워지는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 되어준다. 그들의 연기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어지는 이유다.

 

착시현상, 수애는 여전히 가면을 벗는 중

 

가면을 쓴 삶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요.” SBS <가면>에서 서은하와 변지숙, 두 인물을 오가는 수애는 배우로서 이 대사를 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면의 삶. 가난의 꼬리표를 떼고 가족들을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채 서은하의 삶을 살게 된 변지숙은 과연 행복할까.

 

'가면(사진출처:SBS)'

<가면>이라는 작품은 여러모로 연기를 하는 배우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담을 수밖에 없다. 연기라는 직업이 결국은 여러 개의 가면을 써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면에 대해 민우(주지훈)나 석훈(연정훈)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석훈은 가면을 써라. 그럼 세상은 당신 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민우는 가면을 쓰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했냐. 틀렸다. 가면을 써야 행복한 척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은하의 삶을 선택한 변지숙은 그러나 완벽한 가면을 쓰지 못한다. 그녀는 여전히 변지숙이란 인물로 서은하인 척 할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죽은 걸로 알려진 후 자신의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그녀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게 해준다. 그녀는 순간 가면을 벗어던진 채 엄마를 찾기 위해 폭주한다. 그런 그녀에게 어떻게든 다가가 다시 가면을 씌우려 하는 건 바로 석훈이다. 가면 쓴 변지숙은 석훈의 야망을 채워줄 도구다.

 

민우 역시 석훈에 의해 가면이 씌워진 인물이다. 지숙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고, 그것이 석훈에 의해 씌워졌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석훈에 사주 받은 정신과의사에 의해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의 가면이 민우에게 씌워졌다. 그 가면은 변지숙의 그것보다 더 견고하다. 스스로도 가면이 씌워진 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변지숙과 민우는 석훈의 마리오네트 같은 인물들이다. 석훈에 의해 두 사람은 가면의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중요한 건 가면을 쓴 삶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 가면 쓴 두 사람이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가면의 결혼생활은 차츰 두 사람이 진짜로 가까워지는 시간들로 변해간다. 쇼핑몰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격분한 재래시장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달려들 때 손을 잡고 도망치는 장면은 그래서 긴박하다기보다는 그 위험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된 것은 변지숙의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에서 민우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때문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가면의 삶을 벗어던지고 행복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메시지의 드라마가 수애라는 연기자에게는 각별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연기자 수애. 그녀는 꽤 오랫동안 자신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들로부터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왔다. 매력적인 굵직한 저음이 주는 신뢰감은 오히려 연기자 수애에게는 하나의 족쇄처럼 작용했다. 늘 단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만 이미지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심야의 FM>에서 목소리로 누군가의 판타지가 된 그녀가 연쇄살인범 앞에서 쌍소리를 해대는 모습은 그래서 자못 진지하게 다가왔다. 가녀리게만 보였던 그녀가 <아테나>에서 니킥을 날리며 순식간에 액션수애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마치 자신의 고정화된 이미지를 통쾌하게 부숴버리는 장면처럼 여겨졌다. <야왕>의 주다해라는 악녀는 그녀의 단아하게만 보였던 목소리가 때로는 악다구니를 들려주기도 한다는 걸 보여줬다.

 

이미지와의 사투, 그 연장선에 <가면>은 연기자 수애에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서은하라는 우아하고 부유한 이미지의 인물을 연기하는, 사실은 소박하고 가난한 변지숙은 그래서 어쩌면 수애의 진짜 모습 같다는 생각도 든다. 눈물 많고 정 많고 소탈한 모습이 누군가 덧씌워놓은 이미지라는 가면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는 것. 그러니 그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모습으로 서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수애에게 더 절절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가면>은 수애가 그 덧씌워졌던 가면의 이미지를 벗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면>, 행복에 대한 갈망이 범죄로 이어질 때

 

자신의 결혼식 날 자신의 장례식을 보는 기분은 어떨까. SBS 수목드라마 <가면>은 변지숙(수애)이 서은하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도플갱어, <왕자와 거지> 모티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데렐라 판타지를 범죄적으로 풀어낸 <리플리>의 이야기에 가깝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변지숙은 그 절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존재 대신 서은하라는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가면(사진출처:SBS)'

그런데 이 서은하라는 인물의 삶이 수상하다. 겉보기에는 의원의 딸로 화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대기업 총수의 아들인 최민우(주지훈)와 정략결혼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정략결혼을 마치 기업 간의 계약을 치르듯 해치우려 한다. 그러니 서은하의 삶을 통해 행복을 찾겠다고 결심 한 변지숙은 또 다른 가면을 쓰게 된 셈이다. 서은하라는 인물 자체가 가면의 삶을 살던 인물이니.

 

바로 서은하라는 가면을 쓴 변지숙의 선택은 <가면>이라는 드라마가 그저 그런 변형된 신데렐라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고 흥미로워지는 지점이다. 상견례를 하며 변지숙이 건네는 말에는 그녀의 행복에 대한 갈증을 담아낸다. “가면을 쓰면 결국 행복해질 수 없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하는 척 가면을 쓰고 살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난 사랑하며 살 거에요. 진심으로.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우리 가족들 행복하게. 그렇게만 된다면 더는 바라는거 없어요.”

 

이것은 그녀의 진심이다. 서은하라는 가면을 썼지만 변지숙의 진심을 드러낸 것. 그렇게 다가오는 변지숙에게서 최민우는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는 결혼식장에 오면 죽이겠다며 변지숙에게 으름장을 놓지만 결혼식장을 찾아온 그녀는 그의 허물까지 덮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영장에서 있었던 일은 우리 이렇게 말해요. 내가 그냥 미끄러져서 빠졌다고. 민우씨는 아무 상관없다고. 우리 이제 부부잖아요. 가족이잖아요. 가족끼린 같은 편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무슨 짓을 저질렀더라도.”

 

변지숙은 서은하라는 가면을 썼지만 그럼으로써 서은하가 살아온 가면의 삶을 벗어버리려 한다. 그것은 그녀가 가짜 행복이 아니라 진짜 행복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최민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재산을 노리는 주변 인물들 때문에 정신병자라는 가면의 족쇄가 채워진 채 살아간다. 하지만 아마도 변지숙은 최민우의 가면 또한 깨버릴 것으로 보인다. 그것 역시 진정한 행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면>은 이중으로 얽혀진 가면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가난한 삶은 가면이라도 쓰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욕망한다. 그것이 비록 범죄적인 변신이라고 하더라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자의 삶 역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건 마찬가지다. 진심을 속이고 정략적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진짜 삶을 욕망한다. 이러한 다층적인 맥락은 <가면>을 그저 그런 변신 욕망을 다룬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으로 만들어주는 이유다.

 

<가면>은 그래서 이렇게 범죄를 통한 거짓의 삶이라고 하더라도 행복해지기를 갈망하는 변지숙이라는 인물에 대해 공감을 갖게 된다. 그녀의 선택은 그만큼 절망적이었던 그녀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녀는 그저 행복해지기를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과연 그녀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면의 삶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어쨌든 자신의 진짜 존재를 지워내고 산다는 건 불행일 수밖에 없다.

 

사실 변지숙의 욕망은 우리네 서민들이 모두 갖고 있을 법한 변신 욕망이다. 변신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는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노력하며 다른 미래를 희망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 변신 욕망이 범죄에 닿아있다는 건 그 사회가 얼마나 성장 혹은 변신의 사다리가 끊겨 있는가를 에둘러 말해주는 일이다. <가면>의 변지숙이 앞으로 겪을 그 많은 일들의 밑바닥에는 이처럼 정상적인 성장을 이뤄주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깔려 있다.

 

'아테나', 수애와 정우성의 액션 멜로 역학관계

'아테나'는 정우성이 아니라 수애와 차승원에서부터 시작됐다. 하와이에서 윤혜인(수애)이 정보 요원의 뒤를 쫓다가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 플라잉 니킥을 선보이는 액션은 그녀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인지시켰다. 또 화장실 변기와 유리 등이 마구 부서져버리는 추성훈과 차승원이 화장실에서 벌이는 사투 장면을 통해 손혁(차승원)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부각됐다. 하지만 정우성은 달랐다. 그가 연기하는 이정우는 상대적으로 유약해 보일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상대적으로 이정우(정우성)가 1회에 약하게 그려진 것은 어느 정도는 계산된 것들이다. 어딘지 빈 구석을 만들어놓아야 혜인과의 멜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테나'가 가진 재미의 핵심이 이정우와 혜인이 벌이는 팽팽한 액션과 멜로의 뒤섞임이라고 볼 때, 이정우라는 캐릭터에 대한 힘 조절(?)은 필수적이다. 천진난만하게까지 보이는 이정우의 초반 캐릭터는 '아이리스'에서 김현준(이병헌)이 그랬던 것처럼 혜인과의 어떤 계기를 통해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테나'는 그저 액션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장면의 흐름 속에 심리적인 고려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폭풍처럼 흘러가는 액션의 연속은 시청자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때론 불친절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장면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해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해하게 만들려는 연출의 의도가 엿보인다. 망명한 북한의 핵물리학자를 구출하려는 권용관(유동근) 국장이 요원들을 끌어 모아 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손혁과 혜인이 요원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장면에는 어떤 설명도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교차 편집된 장면 연출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서로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고 대결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만큼 연출에 있어서도 단지 그림을 찾기보다 심리적인 고려를 한다는 얘기다.

폭풍 액션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 이정우가 용의자(박철민)를 취조하는 우스꽝스런 장면을 배치한 것도 이런 심리적인 고려 때문이다. 한바탕 웃음으로 숨을 돌린 후에 드라마는 멜로 설정으로 들어간다. 놀이공원에서 우연히 이정우가 혜인을 만난 후, 다시 국정원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넣으면서, 동시에 손혁과 혜인과의 관계도 노출시킨다. 이들의 멜로적인 관계 속에 대결구도 역시 고려하는 것이다. 여기에 속을 알 수 없는 혜인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을 세워둠으로써 정우와 손혁 양쪽에 걸쳐진 멜로는 이중스파이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아이리스'가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본 아이덴티티'의 영상을 끌어냈다면, 2회의 첫 도입부 20분 간을 장식한 이탈리아에서의 액션신은 007 시리즈를 오마주한 듯한 영상을 선보인다. 클래식과 록이 배경음악으로 교차되면서 우아함과 강렬함이 뒤섞이고, 긴박한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유머까지 구사하며 총을 쏠 때는 사정을 두지 않는 냉혹함을 보여주는 이정우는 숀 코네리 시절의 007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 액션이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카메라의 과도한 흔들림을 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감성이 덧붙여진 액션 덕분이기도 하다. 물론 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이탈리아 액션 장면들이 이정우의 꿈이라는 설정 역시 의도적이다. 확실한 이정우의 액션 질감을 보여준 후, 다시 본래 목적이었던 혜인과의 멜로구도로 회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전반적으로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굴러가지만 전반의 폭풍 액션과 후반부의 멜로 구도를 병치하면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액션과 멜로의 교집합. 이것은 '아테나'라는 작품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액션이 앞에서 강렬하게 끌고 나간다면 멜로는 그 강렬함에 어떤 브레이크를 걸면서 부드러움을 집어넣는다. 정우성이 한 발 뒤로 물러난 상태에서 수애와 차승원이 확고히 자리를 잡고, 그 후에 정우성이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전면에 나서는 과정은, 바로 이 멜로와 액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킬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멜로와 액션의 병치는 다분히 우리네 드라마 시청 환경을 고려한 것이다. 너무 지나친 마니아적 액션들은 고른 시청층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테나'의 성패는 바로 이 액션과 멜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그 열쇠는 그래서 이 둘 사이에서 변화할 정우성에게 다시 돌아간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491)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280)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087,569
  • 362476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