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두 얼굴, 벌써 팽팽한 ‘라이프’의 긴장감 

사람을 살리는 곳 혹은 엄연한 사업체. 병원의 두 얼굴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건 단지 천명에 달린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은 돈에 좌우되기도 한다. 물론 당장 생명 앞에서 의사는 최선을 다하려 한다 할지라도, 병원이라는 자본의 무생물은 시스템으로 삶과 죽음을 가른다. 이수연 작가가 <비밀의 숲> 이후 돌아온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메스로 갈라보는 드라마다. 

드라마는 옥상에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 응급실 앞으로 도착했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한 이보훈 원장(천호진)에서부터 시작한다. 구급차에서 이 원장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던 듯 보이는 부원장 김태상(문성근). 카메라는 그 구급차에서 죽은 원장을 확인하고는 넋이 나가버린 예진우(이동욱)에서 조금씩 빠져나와 상국대학병원 건물을 훑으며 올라간다. 그리고 병원 저편으로 보이는 어둑한 도시를 비춘다. 

그건 마치 이 드라마가 담아내려는 이야기의 구조를 압축하는 듯 보인다. 처음에는 원장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에서 시작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 병원을 감싸고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 불러온 어떤 비극적인 사건을 예고하고 궁극적으로 이 병원의 시스템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드러낼 거라는 예감이다. 

술에 취해 부원장의 집을 찾아와 술 한 잔을 더하다 담배를 피운다며 옥상에 올라갔다가 추락사했다고 했지만, 예진우는 그 날 원장과 다퉜다는 부원장을 의심한다. 그 의심을 확증이라도 하듯 곧바로 지역병원으로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과가 파견을 가라는 지침이 내려온다. 당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병원에 채산성이 없는 과들을 치우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원장의 죽음이 단순한 추락사가 아니라고 의심하게 되는 건, 대학재단이 사기업으로 바뀌면서 병원에 내려진 성과급제 확대 시행 지침서에 원장이 극렬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환자가 돈줄로 보이기 시작하면 그 의사는 더 이상 갈 데가 없어. 배우려는 학생한테 돈 뜯어내기만 궁리만 하는 선생을 선생이라고 할 수가 있나? 학생은 선생이 푼 문제의 답이 잘못된 걸 알지. 우리가 하는 수술 우리가 내리는 처방 일반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몰라. 그래서 의술이 무서운 거야. 그래서 우리가 더욱더 독하게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 근데 이딴 걸 지침이라고 내려보내? 아무리 사기업이 대학재단을 통째로 먹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야. 이래선 안 되는 거야.”

원장의 이 말은 <라이프>가 담아내려는 병원의 두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병원도 자본의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래서만은 안 된다는 것. 자본의 현실을 말하는 병원의 새로운 총괄사장 구승효(조승우)와 원장과 뜻을 함께 해온 예진우는 그렇게 대립하게 된다. 

역시 <비밀의 숲>이 스릴러 장르를 가져오면서도 검찰의 내부 시스템의 문제를 건드렸던 것처럼, <라이프>도 의학드라마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시스템의 문제를 다룬다. 의술이 부족해서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 구조를 지목하는 것. 역시 괴물 신인 작가로 불렸던 이수연 작가 특유의 진중한 색깔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그래서 <라이프>는 그 흥미진진한 원장의 죽음을 둘러싼 추리와 스릴러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보이게 되는 자본화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전망이다. 만일 돈이 되지 않는다며 병원이 환자를 외면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또 자본이 밑받침이 되지 않아 병원 자체가 무너질 위기에 놓이게 된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라이프>는 단순한 선악구도로 이야기를 끌고 갈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이 작품이 기획의도에서 담아놓은 것처럼, 이 이야기를 우리 몸에 바이러스가 침범했을 때 벌어지는 ‘항원-항체 반응’의 구조로 풀어내려 하기 때문이다. 상국대학병원이 우리의 몸이라면 이제 구승효로 대변되는 항원이 침범한 그 몸에서 문득 깨어난 예진우라는 항체는 어떤 반응을 일으키며 이 병원이라는 몸의 상태를 변화시킬까. 첫 방이지만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JTBC)

뻔한 ‘훈남정음’과 울림 있는 ‘이리와 안아줘’의 희비를 가른 건

SBS <훈남정음>과 MBC <이리와 안아줘>가 같은 날 종영했다. 두 드라마는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훈남정음>은 훈남(남궁민)과 정음(황정음)이 결혼을 약속했고, 정음은 훈남의 도움을 받아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갔다. <이리와 안아줘>는 지옥 같던 살인자 윤희재(허준호)가 납치한 한재이(진기주)를 채도진(장기용)이 구해내고, 자기 같은 괴물로 아들을 만들려는 윤희재의 도발 앞에서 윤나무는 스스로가 다르다는 걸 증명해냈다. 

두 드라마가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종영을 맞는 두 드라마의 입장은 완전히 다를 법하다. 애초의 기대작이었던 <훈남정음>과 별 기대가 없었던 <이리와 안아줘>가 거둔 성과가 너무나 상반됐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작 전 두 드라마의 액면만을 보면 당연히 <훈남정음>에 기대감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연기력으로 차곡차곡 팬덤을 만들어온 배우 남궁민에 그와 과거 <내 마음이 들리니>로 연기호흡을 맞췄었던 황정음이 아닌가. 반면 <이리와 안아줘>의 장기용과 진기주는 사실상 신인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기경력이 적었다. 

이런 캐스팅에 대한 상반된 기대감은 두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첫 회에 <훈남정음>이 5.3%(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했던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3.1%로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를 보면 두 드라마의 시청률은 희비쌍곡선을 그었다. <훈남정음>은 2.1%까지 떨어지며 역대 SBS 미니시리즈 중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5.4% 시청률로 마무리했다. 

물론 2%나 5%나 지상파 수목드라마로서는 충격적으로 낮은 시청률이지만, 두 드라마의 체감이 달리 느껴지는 건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훈남정음>은 첫 회 방영된 이후부터 줄곧 너무 뻔하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이 지적받았다. 한강다리에서 자살을 하는 장면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은 대목으로 논란까지 이어지게 된 건, 이 드라마가 가진 가벼움의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희대의 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 요소를 통해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새로운 멜로 구도로 멜로 그 이상의 울림 있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살인자의 아들은 결국 그 악을 계승받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긴장감이 끝까지 이어졌다. 특히 엔딩에서 이제 모든 과거의 아픈 고리들을 끊어낸 채도진과 한재이가 12년 전 끔찍한 사건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그 시간에 머물러 있던 어린 자신들을 껴안아주는 장면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는 스릴러 요소를 더한 멜로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휴머니즘이라는 더 큰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는 것.

작품의 희비를 가른 건 이런 가벼움과 진중함의 차이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저 가볍기 만한 뻔한 로맨틱 코미디는 이제 더 이상 어렵다는 걸 <훈남정음>은 예시적으로 보여줬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재치 있고 코믹한 대사들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울림이 없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한계였다. 물론 남궁민의 연기는 역시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였지만, 황정음의 늘 봐왔던 그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식상하게 다가온 것도 마찬가지였다. 연기를 잘해도 새로움이 없다면 시청자들에게 호평받기 어렵다는 것.

한편 장기용과 진기주는 <이리와 안아줘>를 통해 아직 무르익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신인 배우로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보인다. 물론 이 작품은 허준호의 악마 같은 괴물 연기가 드라마 전체의 힘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만, 장기용의 몰입은 이 배우의 성장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밖에도 윤현무 역할을 연기한 김경남이나 역대급 눈물연기를 소화해낸 엄마 채옥희 역할의 서정연 같은 배우들이 돋보였다. 

워낙 많은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들이 방영되었던 터라 이제 시청자들은 그 작품만의 독특한 새로움이 없다면 굳이 봐야할까 하고 의구심을 갖게 됐다. 하루에도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고, 심지어 외국 드라마들을 시청하는 일도 이제는 일상화단계로 접어드는 요즘이다. 뻔한 드라마보다는 실험작이 차라리 낫고 멜로 안에서도 진중한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시도가 효용성을 갖는 이유다.(사진:MBC)

‘리턴’, 스릴러의 쫄깃함에 담아낸 사회적 메시지

도대체 이 드라마의 무엇이 이토록 시선을 잡아끄는 걸까. SBS 수목드라마 <리턴>은 스릴러 장르가 가진 고유한 특징인 반전의 묘미를 극대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와인바를 운영하던 염미정(한은정)이 살해됐고, 그로 인해 그와 내연관계를 가져온 강인호(박기웅)가 구속되었다. 하지만 강인호는 무고함을 주장하고 대신 그의 악당 친구들, 오태석(신성록), 김학범(봉태규) 그리고 서준희(윤종훈)가 의심을 받는다. 

그런데 드라마는 돌연 이 악당들의 시선으로 그들 역시 이 살인사건에 갑자기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이 살인범이 아니었다는 것. 김학범이 오태석에게 보낸 차 트렁크에서 염미정의 사체가 발견되었고, 그들은 그 사체를 오태석의 사유지인 강원도 채석장에 묻어버리지만, 사체는 엉뚱하게도 어느 도로 위에 놓여진 트렁크 속에서 발견된다. 이 악당들 이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걸 드라마는 은연 중에 보여준다.

한편 절친인 강인호가 살인누명을 쓰고 검거된 상황을 자백하기 위해 나섰던 서준희가 오태석과 김학범에 의해 붙잡혀 싸움을 벌이고, 김학범이 돌로 내리쳐 쓰러진 서준희를 아직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태석은 일부러 사망한 걸로 속여 차에 태워 벼랑으로 밀어버린다. 사체 유기 사건을 덮으려 오태석이 서준희를 제거하려 한 것. 하지만 드라마는 또 서준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스토리 진행 방식은 <리턴>이 가진 특징이다. 악당들에 의해 사건이 벌어지지만 그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악당들이 진범일 거라 추적하는 최자혜(고현정) 변호사와 강인호의 아내이자 변호사인 금나라(정은채) 그리고 형사 독고영(이진욱)은 그래서 그 엉뚱하게 흘러가는 사건에서 새롭게 연루된 인물들을 하나씩 만나게 된다. 그 첫 번째는 독고영의 파트너 형사인 김동배(김동영)이고, 두 번째는 악당들의 펜트하우스 아래층에 살고 있는 김정수(오대환)다. 

진실에 다가갈 때 엉뚱한 진실이 다시 등장하고, 진범인 줄 알았던 악당들이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사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걸 발견하게 만들며, 전혀 무관해 보였던 김동배 같은 인물이 사건에 연루된다. 이렇게 사건은 점점 갈수록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가지만 드라마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의문의 인물을 투입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더 점입가경으로 만든다. 스릴러 장르가 가진 진실에 대한 궁금증을 끝없이 뒤집는 것으로 <리턴>은 고유의 동력을 만들어간다. 

흥미로운 건 <리턴>이 가진 여러 관점들의 교차다. 이 드라마는 복잡해 보여도 어느 정도는 사건의 윤곽을 예측할 수 있다. 즉 가진 재력을 바탕으로 갖가지 갑질과 악행을 저질러온 악당들, 즉 강인호를 포함해 오태석, 김학범, 서준희를 누군가 살인사건의 곤경 속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 사건의 ‘설계자’는 그들이 스스로 파국에 이르게 만든다. 그 설계자는 분명 과거 이들에 의해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리턴>에는 악당들의 시선과 이 사건을 쫓는 변호사와 형사의 시선 그리고 이 전체를 관망하는 ‘설계자’의 시선이 교차된다. 변호사와 형사는 그래서 악당들을 추적하고 그 와중에 드러나는 설계자를 통해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을 만나게 된다. 즉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악당들이 가진 권력과 금력으로 저질러온 갑질과 사건은폐 같은 사회적 사안들이 드러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리턴>은 스릴러로서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 전개가 주는 재미는 물론이고 그 궁금증으로 파고들어가는 사안들이 진실을 드러낼 때 보여주는 사회적 의미까지 담아내는 작품이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 이토록 집중하게 되는 건 그래서 스릴러 장르의 반전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사회적 사안들(권력과 재력으로 자행되는 사회의 시스템)의 진실이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사진:SBS)

‘반드시 잡는다’, 스릴러도 따뜻하게 바꾼 백윤식의 아우라

스릴러가 어떻게 이리도 따뜻할 수 있을까. 영화 <반드시 잡는다>는 그 예고편만 보고 나면 “또 연쇄살인이야?”하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나면 그 선입견이 틀렸다는 걸 확인하게 되게 나아가 스릴러라는 장르 속에서도 이토록 따뜻한 이야기와 사회적 함의를 던져줄 수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배우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심덕수 역할을 연기한 백윤식이다. <반드시 잡는다>가 색다른 스릴러가 될 수 있었던 건 출연자들의 특별함 때문이다. 이 영화는 백윤식을 비롯해, 성동일, 천호진, 배종옥, 손종학 같은 중견 배우들이 대부분의 역할을 채우고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어른’에 대한 남다른 시선 덕분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들이 살아갈 것 같은 허름한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벌어지는 연쇄살인. 처음에는 어르신들의 고독사이거나 비관자살로 위장되어 있었지만 차츰 그것이 연쇄살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범인을 찾아 나선 심덕수와 전직 경찰 박평달(성동일). 영화는 살해된 피해자들의 가난하고 고독한 삶의 편린들을 훑어내며 우리 사회가 마치 없는 존재로 여기거나 혹은 ‘꼰대’로 치부하곤 하는 노인들의 자화상을 아프게도 잡아낸다. 

처음에는 가난한 서민들의 처지는 아랑곳없이 그저 월세나 독촉하는 구두쇠 영감으로만 알았던 인물이 차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위협받는 그들의 생명을 위해 죽을 위기 속으로까지 뛰어드는 그 면면들은 그래서 스릴러 장르 속에서도 어떤 따뜻한 감동 같은 걸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스릴러의 해결과정은 마치 진정한 어른이 어른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 나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그 과정처럼 보인다.

놀라운 건 이 작품에서 젊은 용의자들을 추격하고 범인과의 사투를 벌이는 그 심덕수를 연기하는 백윤식이다. 70세의 노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몸을 던지는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이 배우는 그 안에 깊은 페이소스 같은 걸 새겨 넣는다. 그래서 조금은 힘겨울 수 있는 추격과정이나 추리가 오히려 스릴러로서의 긴박감을 더욱 높여주는 장치로서 활용되고, 동시에 순간순간 나이든 어른이 갖는 삶에 대한 경의 같은 것이 뭉클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반드시 잡는다>가 그런 휴먼드라마적인 요소가 부각된 스릴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작품은 스릴러로서 가져야할 긴박감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또한 잘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시작은 다소 걷는 느낌으로 흘러가지만 차츰 달려가는 이야기의 속도감에 빠져들게 되고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적절한 자극을 제공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건 인생 경험이 풍부한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와 ‘여유’ 같은 것들이 특별한 스릴러의 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의 긴장감 속에서도 심덕수라는 어른의 관점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관객들은 조금은 느긋한 시점이 가능해진다. 스릴러지만 이 작품이 이렇게 따뜻하고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인 통찰까지 담아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심덕수라는 독특한 캐릭터와 그걸 200% 연기해낸 백윤식이 있어서가 아닐까. 실로 ‘노장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낸 작품이 아닐 수 없다.(사진:영화 '반드시 잡는다')

‘블랙’, 소재는 독특한데 어째서 이리도 어색할까

비행기를 탄 강하람(고아라)이 갑자기 옆에 탄 아이의 뒤편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는 경악하고, 기내의 많은 승객들에게도 그림자들이 있는 걸 알고는 미친 듯이 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은 OCN <블랙>이라는 드라마에 시선을 집중시키게 하기에 충분했다. 죽음을 보는 소녀가 타인의 죽음을 알면서 막지 못하는 그 능력을 ‘저주’라고 여길 때 그의 앞에 나타난 형사 한무강(송승헌)이 그건 ‘축복’이라고 말해주는 장면에서는 이 두 사람이 누군가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벌어질 사건들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블랙(사진출처:OCN)'

이처럼 <블랙>은 최근 들어 특히 많아진, 타임리프 같은 장르적 장치를 가진(타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재의) 드라마의 참신한 변주처럼 다가왔다. 그 많은 타임리프들이 그러하고 최근 방영되고 있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예지몽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다가오는 죽음’을 막기 위한 노력을 담은 드라마들과는 또 다른 색깔을 가진 드라마. 게다가 한무강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죽은 줄 알았던 그가 다시 살아나는 대목은 향후 저승사자가 빙의된 그와 타인을 죽음을 보는 강하람과의 또 다른 모험담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살아난 한무강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속이 다 보이는 환자복에 잠바 하나를 걸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그 장르적 애매함으로 인해 드라마가 만들어놓은 긴장감을 흩어 놓았다. 마치 속을 다 보이겠다는 듯 쩍벌을 하고 앉거나 롱코트만 걸친 채 바바리맨처럼 여자화장실에서 옷을 열어젖히는 장면은 코미디를 의도한 것이지만 죽음이라는 무게감을 가진 이 드라마의 장르적 긴장감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즉 어느 정도의 유머는 괜찮을 법 했지만 이런 식의 ‘화장실 유머’가 가진 가벼움은 드라마의 성격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니 가뜩이나 연기로 해석하기 힘든 이 낯선 캐릭터 역시 어색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연기 변신을 의도한 듯 작정하고 뛰어든 모습이 역력한 송승헌이지만 그 장면들이 어떤 매력을 드러내기보다는 그저 망가진 느낌을 준 건 아쉬운 대목이다.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고아라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비행기 신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경악하고 오열하는 그 장면이 주는 충격파는 충분했지만, 그 후로 이 캐릭터는 너무 울거나 자책하는 장면들이 반복됐고, 때때로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응답하라 1994> 이후 늘 보였던 익숙한 모습들이 보였다. 이건 연기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문제도 적지 않다. 한무강이나 강하람의 캐릭터가 시청자들이 몰입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블랙>이 독특한 소재의 드라마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소재가 독특할수록 캐릭터는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어야 시청자들에게 그 이야기가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코미디와 스릴러가 상생하지 못하고 있는 장르적 혼재와 매력적인 캐릭터가 제시되지 못해 어색하게 느껴지는 연기. <블랙>이라는 괜찮은 소재의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결해야할 숙제가 아닐까.

‘터널’, 인간 냄새 최진혁과 지적인 악역 김민상 돋보이는 이유

배우 최진혁의 이런 면이 있었던가. OCN 주말드라마 <터널>에서, 때론 허술하기도 하고 성정이 급해 행동부터 옮기는 박광호라는 형사 캐릭터를 연기하는 최진혁에게서는 늘 봐오던 완벽한 이미지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 완벽한 이미지란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지나치게 상투적이라 시청자들에게 어떤 인상적인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터널>은 드디어 배우 최진혁의 진면목을 드러내게 해준 작품이라 할만하다. 

'터널(사진출처:OCN)'

사실 배우에게 있어서 잘 생긴 얼굴은 딱히 좋은 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 이미지에 의한 선입견이 오히려 다양한 역할을 하는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진혁이라는 배우가 딱 그랬다. 준수한 외모를 갖고 있어서 보기에는 좋았는데, 무언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캐릭터로 기억되지는 못했다. 배우의 외모가 갖는 딱딱한 이미지의 껍질은 그래서 캐릭터보다 더 강하게 드러날 때 캐릭터의 빛을 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OCN 주말드라마 <터널>에서의 최진혁은 다르다. 늘 곱상한 외모에 귀공자 스타일로 소비되던 그가 이 드라마에서는 어딘지 빈구석이 많고 정에 약하며 때론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적인 면들을 가진 형사 그 자체처럼 보인다. 박광호라는 인간 냄새 물씬 풍기는 역할은 그래서 최진혁에게는 배우로서의 전기를 마련해준 인생 캐릭터가 되고 있다. 

박광호라는 인물은 다양한 결들을 보여준다. 형사로서 누구보다 범인을 잡고 싶은 열망에 시달리고, 그러면서도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저편에서 기다리는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피해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은 물론이고, 동료들과 다시 만난 딸에게 형사 특유의 무뚝뚝하면서도 굵직한 정을 드러낸다. 아날로그적이고 따뜻한 느낌. 그것이 이 캐릭터를 입은 최진혁을 재발견하게 만든 요인들이다. 

그런가하면 최진혁과 대립점에서 목진우라는 부검의이자 연쇄살인범 역할을 하는 김민상 역시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사실 몇몇 보조적인 역할로 기억되던 배우였고, 최근 들어 <김과장>에서 코믹한 연기를 보이며 주목되던 배우였지만 <터널>은 그의 잠재력을 확실히 드러내주었다. 김민상은 최진혁과는 달리 평범해 보이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따라서 김민상이 배우로서 넘어야할 벽은 그 지나치게 평범한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지점일 게다. 그런 점에서 <터널>에 등장하는 희대의 연쇄살인범 목진우는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늘 봐오던 김민상의 정이 가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시작했지만,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이미지의 반전 효과는 더 극대화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연쇄살인범은 이지적이고 치밀하며 대담하다는 점에서 그 어떤 스릴러 장르의 악역보다 더 강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범 속에 숨겨진 야만이 더 섬뜩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터널>의 목진우라는 캐릭터가 가진 섬뜩함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워낙 좋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김민상에게 역시 이 작품은 좀 더 비상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진혁과 김민상. 사실 이처럼 주인공과 악역이 모두 돋보이고 그것이 그 역할을 연기한 배우들에게 인생 캐릭터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터널>이라는 작품이 제대로 서고 있다는 뜻이다. 캐릭터가 살아있고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으니 작품이 안 살아날 수가 없다. 역시 통상적인 이야기지만 좋은 작품은 좋은 캐릭터를 갖기 마련이고, 그 캐릭터는 좋은 배우들을 발굴하기 마련이다.

‘추리의 여왕’, 어째서 스릴러 아닌 휴먼드라마를 선택했나

“뒤통수치는 사람만 있는 거 아냐. 목숨 걸고 당신 구하려던 사람도 있어. 당신 인생 그렇게 후지지 않아.”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에서 연쇄살인범으로부터 생매장될 위기에 처했던 호순(전수진)을 구해낸 완승(권상우)은 그녀에게 설옥(최강희)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마음을 줬던 사람이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에 황망해하는 호순을 위로하는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추리의 여왕(사진출처:KBS)'

끔찍한 살인사건이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이 갖고 있는 정서는 어찌 보면 너무나 편안하다. 물론 사람을 생매장하는 범죄자의 범죄 행각은 소름끼치는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그 자극적인 사건에 그다지 카메라를 집중시키지 않는다. 대신 호순을 구하기 위해 살인범의 동선을 추리하는 설옥과 그녀를 도와 범인을 잡고 호순을 구해내는 완승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그렇게 만조가 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작은 섬에서 열린 바닷길로 두 사람이 호순과 연쇄살인범을 손수레에 싣고 나오는 장면은 금세 이 스릴러적인 장르를 코미디로 바꿔놓는다. 완승은 은근히 자신이 설옥을 구해줬다는 생색을 내고, 설옥은 뭐하러 구했냐고 툴툴 대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살인사건이 터지는 드라마지만 긴장감보다는 인물들이 추리과정에서 엮어지는 알콩달콩한 관계가 드라마 전체의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면서 호순이 겪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완승과 설옥은 ‘사랑의 감정’의 정체에 대한 언쟁을 벌인다. 완승은 사랑은 알면서도 속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설옥은 사랑이란 호르몬 작용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또한 은근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자기도 모르게 완승은 설옥에 대한 감정이 생겨나고 있고, 설옥은 완승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어떤 완강한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점도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밝혀내는 그 자체보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는 양상이다. 그리고 사건 속에서 피해 당사자들이 겪는 어떤 인간적인 감정들이 <추리의 여왕>에서는 더 많이 드러난다. 바로 이전에 다뤄진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죽인 비정한 남편의 이야기 속에서도 사건의 끔찍함만큼 주목됐던 것은 남겨진 아이와 아들의 허물까지 덮으려 하다 결국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 부모의 그 감정들이다. 

<추리의 여왕>이 이러한 편안한 범죄물의 기조를 유지하는 건 KBS라는 보편적 시청층을 갖고 있는 플랫폼에 잘 어울린다. 끔찍한 사건들을 자극적인 틀로 보여주는 건 케이블에서는 통해도 지상파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줌마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고 사건 수사보다는 ‘추리’라는 요소를 넣어 훨씬 더 게임적인 재미를 부가하려 했다는 건 괜찮은 선택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사건에만 집중하지 않고 인물들의 감정변화나 관계변화를 보여주려다 보니 이야기가 너무 늘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첫 번째 사건으로 등장했던 장도장(양익준)의 마약사건이나 그 이후에 등장했던 보험금을 노린 남편의 아내 살인사건은 어떤 긴박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설옥의 시누이이기에 더 몰입될 수밖에 없는 호순의 납치사건은 사건 이야기보다 설옥과 완승의 밀고 당기는 부차적인 이야기들에 너무 많이 집중하다보니 긴장감을 전혀 느끼기가 어려웠다. 

물론 그러한 긴장감이 이 드라마가 추구하려는 방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런 늘어지는 전개는 너무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편안한 전개는 나쁜 게 아니지만 그래도 시누이가 납치되어 생매장 당할 위기에 처하는 사건마저 별다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문제가 아닐까. 휴먼드라마의 방향성을 선택했다고 해도 작품은 어느 정도의 리얼리티를 추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고소영과 조여정, 과연 세상에 '완벽한 아내'가 있을까

이 드라마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KBS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는 미스터리하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워킹맘 심재복(고소영)이 남편 구정희(윤상현)가 저지른 불륜 때문에 힘겨워하는 초반부에서는 그저 그런 불륜소재의 치정극 같은 느낌이더니, 그녀에게 살갑게 다가와 서서히 그 가족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이은희(조여정)의 비뚤어진 욕망이 드러나면서는 거의 스릴러에 가까운 긴장감을 만들었다. 

'완벽한 아내(사진출처:KBS)'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완벽한 아내>는 이은희라는 정신적 문제를 가진 인물이 엄청난 재력으로 심재복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하는 이야기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심재복이 께름칙하게 여기면서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이은희의 저택은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거대한 욕망이라는 괴물의 아가리였다고 여겨진다. 

이은희가 그렇게 비뚤어지게 된 이유가 그녀의 어머니 최덕분(남기애)에게서 어린 시절 당해온 학대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녀의 집착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가 비로소 납득이 되고 있다. 자존감이 사라져버린 그녀는 결국 심재복 대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가고픈 욕망을 갖게 된 것. 

그렇게 보면 대저택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고, 대기업의 이사인 이은희는 외적으로 볼 때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녀는 갖고 있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집착하는 구정희 같은 남편도, 귀여운 아이들도, 또 자신을 제대로 보살펴준 엄마도, 또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해줄 친구들도 그녀에게는 없다. 

그래서 이 대저택에서 뭐든 척척 원하면 살 수 있는 재력으로 아이들의 선심을 얻고 구정희를 그녀 옆에 잡아두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모두 허망할 뿐이다. 제 아무리 호사스런 요리를 내놓아도 결국 그녀는 혼자다. 심재복과 그 가족, 친구들이 함께 모여 소박한 음식을 먹을 때 그녀는 쓸쓸하게 홀로 식탁에 앉는다. 

<완벽한 아내>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이것이 한 가족과 그 가족을 파괴하고 들어오는 정신질환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자본의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네 현대인들의 삶을 표상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길 때다. 즉 누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욕망에 뛰어들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이은희가 섬뜩하게 다가오는 건 돈으로 사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싼 임대료로 심재복 가족을 끌어들이고 재력을 이용해 구정희를 본부장으로 앉힘으로써 그와 약혼까지 하려고 한다. 이은희라는 괴물은 그래서 그대로 자본의 속성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은희가 사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실체를 드러내는 반면, 정반대로 별로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심재복이 사실은 많은 걸 가지고 있다는 걸 드라마는 말해준다.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지지하는 가족도 친구도 회사 동료도 있다. 그건 결코 이은희가 돈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완벽한 아내>는 그래서 이은희와 심재복의 대비와 대결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신분열적 욕망이 만들어내는 파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소시민들의 평범하지만 바람직한 삶을 얘기하고 있다. ‘완벽한 아내’는 그래서 ‘완벽한 삶’의 또 다른 표현처럼 다가온다. 세상에 ‘완벽한 아내’가 있을까. 있다면 그 기준은 도대체 뭘까. 무엇을 가져야 진정 ‘완벽한 아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 속에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의 진짜가 들어있다.

‘터널’, 이유영의 정체에 시선이 집중된 까닭

OCN 주말드라마 <터널>은 이 채널이 일관되게 그려왔던 스릴러 장르물이다.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고 그를 잡으려는 형사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적인 틀과는 다른 <터널>만의 차별화된 지점이 있다. 그것이 이 스릴러 장르물이 가져온 타임리프라는 장치에 숨겨져 있다. 3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1986년에서 현재로 시간이동한 주인공 박광호(최진혁)의 주변에 포진한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이 그것이다. 

'터널(사진출처:OCN)'

박광호의 30년을 뛰어넘는 타임리프가 그저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점은 과거 그가 추적했던 연쇄살인이 현재까지 어떤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걸 새로운 사건들로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야산에서 발견된 토막살인의 신체일부에 찍힌 다섯 개의 점이 그 단서다. 30년 전 그가 추적하던 살인범이 피해자들의 발에 남긴 점이 일종의 살인의 순서라는 걸 밝혀냈지만 찾지 못했던 다섯 번째 희생자가 30년 후 사체로 발견됐다는 점이 그렇다. 죽은 걸로 알았던 희생자가 30여 년을 숨어 살아왔다는 걸 말해주는 이 대목은 하필이면 그 사건이 박광호 앞에 놓여 있다는 점으로 인해 그의 타임리프와 30년을 넘어 이어지는 연쇄살인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박광호가 궁금해 하는 이 타임리프와 연관된 연쇄살인범의 소재와 함께 이 드라마를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그것은 그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1988년생 박광호가 도대체 누구이고 또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점이다. 그가 태어난 시점으로 보면 1986년 당시 임신을 했었던 박광호의 아내로 미루어 짐작해 그가 박광호의 아들이 아닐까 싶지만 아직 드라마는 그 구체적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미스터리한 인물들은 또 있다. 즉 박광호와 한 팀이 되어 수사를 하고 있는 김선재(윤현민)와 수사 고문으로 임명된 냉철하지만 어찌 보면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 같은 섬뜩함을 안겨주는 신재이(이유영)가 그들이다. 시청자들 중에는 그래서 박광호 2세가 김선재이거나 신재이일 수 있다는 추측을 내놓기도 한다. 

이들에 대한 궁금증은 실로 박광호의 타임리프 사건이나 그가 쫓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추격전만큼 흥미진진한 면이 있다. 그것은 그 독특한 캐릭터에서 나오는 관심과 기대감이 상당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어찌 보면 박광호는 저 <시그널>이 보여줬던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 형사의 전형처럼 보여지만, 그와 대비되어 이른바 과학수사라는 이름으로 미디어와 CCTV, 유전자 감식 같은 정보들을 당연하게 활용하는 김선재는 우리 사는 모습의 자화상처럼 그려진다. 그가 활용하는 과학들은 이제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이지만, 그 옆에 박광호라는 인물을 세워놓으니 그게 새삼스러워진다. 편리하긴 하지만 어딘지 차갑고 쓸쓸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김선재보다 더 독특하고 신선한 캐릭터는 신재이라는 인물이다. 범죄심리학 교수지만 어딘지 연구를 하다 범죄자의 마음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듯한 섬뜩함이 그녀에게서는 느껴진다. 물론 그래서 범죄자들의 심리를 마치 자기 마음처럼 알고 그래서 현장과 사진 몇 장을 갖고도 범행의 동기나 용의자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해내지만 그런 정확함이 그녀까지도 검게 물들여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범죄 심리 분석가와 범죄자 사이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다는 점은 이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도대체 김선재와 신재이는 어떤 인물들일까. 시청자들의 추측대로 그들 중 과연 박광호의 2세가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그들은 박광호와 어떤 인연으로 얽혀있는 것일까. 이 궁금증은 고스란히 박광호가 왜 30년의 세월의 터널을 통과했는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어쩌면 범죄 그 자체보다도 더 흥미로운.

웬만한 영화보다 낫다..OCN 무비드라마 빛 보나

OCN 새 주말드라마 <터널>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첫 회 2.8%(닐슨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는 2회 만에 3%를 넘겼다. 같은 시간대의 OCN 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보이스>가 첫 회에 2.3% 그리고 2회에 3%를 넘긴 후 5%가 넘는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이어졌던 걸 생각해보면 <터널>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터널(사진출처:tvN)'

<보이스>가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본격 스릴러 장르로 성공적인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비슷한 스릴러 장르를 갖고 있는 <터널>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즉 OCN이 무비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 10여년 간 지속해왔던 본격 장르물에 대한 투자가 이제 그 빛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스릴러 장르를 통해 보여준 <보이스>의 성공은 그만한 시청층이 이미 존재한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중요한 건 <터널>이 <보이스>와 유사한 스릴러 장르를 그리고 있으면서도 <보이스>가 갖고 있던 단점들을 상당 부분 보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보이스>는 한번 보면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와 구성은 호평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잔인한 살해 장면들이 반복됨으로서 지나친 자극으로 흐른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터널>의 경우, 여전히 연쇄살인범의 끔찍한 살인이 보여지긴 하지만 <보이스>처럼 자극적인 느낌은 덜 하다. 이런 차이는 드라마가 갖는 시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보이스>가 보다 자극적이고 끔찍한 느낌을 줬던 건 살인자나 피살자의 시점을 자주 차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널>은 같은 살인장면이라고 해도 그 시점이 사건을 추적하는 박광호(최진혁)에 주로 맞춰져 있다. 

여기에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박광호라는 형사 캐릭터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본격 스릴러물이라면서도 <터널>이 어떤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이 부분은 tvN <시그널>이 스릴러 장르를 그리면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가장 큰 요인이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형사들의 절절하고 뜨거운 이야기들이 드라마적 감성을 다르게 만들어줬다는 것. 

<터널>은 또한 박광호가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연쇄살인범을 쫓게 되는 이야기로 타임슬립 설정이 되어 있다. 타임슬립 설정은 자칫 그 시간여행 장치에 지나치게 빠져 게임처럼 활용되어 버리면 이야기만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터널>은 이 부분에서도 적절한 선을 유지하고 있다. 즉 타임슬립을 장치적 재미 자체로 보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벌어지는 인물의 감정선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으로 와버린 박광호와 1986년에 있는 그의 아내 사이의 거리와 안타까움 같은 것들이 <터널>에는 중요한 정서로 깔려있다. 

지금이야 영화 같은 드라마들이 많아졌지만 처음 OCN이 무비드라마를 주창하고 나왔을 때만해도 시청자들은 그런 영화 같은 드라마가 낯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장르물에 대한 기대감 역시 커졌다. 만일 <보이스>에 이어 <터널>까지 어떤 성취를 가져가게 된다면 이로써 OCN드라마의 브랜드는 의외로 공고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격 스릴러 장르 드라마하면 먼저 OCN이 떠오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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