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가대표>, 최현석의 승부보다 멋진 예의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한국시리즈라면 <쿡가대표>는 국가대항전이다. 물론 한 예능 프로그램의 요리 대결을 갖고 국가대항전이라고까지 말하는 건 과잉일 것이다. 하지만 <쿡가대표>는 다름 아닌 스포츠를 요리대결에 접목시키고 있고, 그것도 국가대항전이 갖는 긴장감과 예측불허의 다이내믹한 전개를 재미의 주요 요소로 채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쿡가대표(사진출처:JTBC)'

대결이 들어가기 전 서로의 각오와 전략(?)을 얘기하는 모습은 그래서 의외로 비장하다. 예능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해설을 하는 김성주, 안정환, 강호동을 빼고 출전(?)하는 요리사들은 웃음기 쏙 뺀 긴장감을 드러낸다. 한일전, 게다가 원정경기(?)라는 특성은 시청자들에게 많은 걸 상기시킨다. 스포츠 경기도 아니고 실제 국가대항전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실제 스포츠 경기 같은 프로그램의 구성들은 마치 진짜 한일 원정경기를 보는 것만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셰프들이 벌이는 요리 대결은 마치 전쟁 같다. 시간의 한정이라는 긴박감은 축구 경기가 가진 그 박진감을 만들어낸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칼과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익혀지는 재료들 그리고 끓는 물과 기름에 의해 삶아지고 튀겨지는 재료들은 주방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요리하는 그들이 마치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드리볼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컷 수를 빠르게 나눠 속도감을 높인 연출과 그 위에 덧붙여지는 진짜 스포츠 중계 같은 김성주의 목소리는 15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쿡가대표>는 이처럼 스포츠 국가대항전의 많은 재미요소들을 요리 대결로 끌어왔다. 하지만 대결요소만 볼거리로 집어넣은 건 아니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만들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창의적인 요리들이 만들어질 때의 그 놀라움과 상대방이라고 해도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요리에 대한 열정을 보게 되는 순간이 주는 경외감 같은 것이 이 프로그램에는 깔려 있다.

 

전후반 11 상황에서 연장전에 대결을 벌인 최현석 셰프와 상대편 모토가와 셰프의 요리는 이연복 대가가 말하는 것처럼 승패를 떠나 모두 존경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그려졌다. 모토가와 셰프는 그 짧은 시간에 4개의 불을 다 활용하면서 닭을 활용한 북경오리요리를 선보였다. 반면 최현석 셰프는 닭고기 사이에 푸아그라를 끼워 넣어 만든 치킨 샌드를 만들었다.

 

허세 셰프로까지 불리던 최현석 셰프에게서 웃음기나 허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때론 손이 떨릴 정도로 긴장한 채 요리하는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모토가와 셰프 역시 여유 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주방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일전이라고 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식의 승패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가까이서 그들의 요리에 대한 진정성을 들여다보게 되자 승패는 그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다.

 

결과는 41로 최현석 셰프의 승리. 하지만 최현석 셰프는 결코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함께 요리를 한 모토가와 셰프에 대한 예의였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는 이겼는데도 고개를 숙이게 된다고 말했다. 모토가와 역시 최현석의 요리를 맛본 후, “이 요리에 진다면 승복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보기 힘든 승부보다 멋진 예의가 빛난 한 장면이다.

 

사실 요리를 갖고 대결을 한다는 발상은 자칫 잘못하면 비판받을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요리는 누구를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또 실력을 뽐내기 위해 하는 건 더더욱 아닐 것이다. 다만 대결이라는 형식을 통해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요리에 대한 열정이나 생각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되는 묘미가 더 중요할 뿐. 아마도 이런 순간이야말로 스포츠경기의 방식을 요리 대결로 가져와 흥미진진해진 <쿡가대표>라는 프로그램이 진정 가치 있어지는 때가 아닐까.

'아빠' 업은 MBC 월드컵 중계, 승승장구하는 까닭

 

지상파 3사의 월드컵 중계 경쟁은 어느덧 예능경쟁이 되어버렸다. 과거 <이경규가 간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월드컵과 접목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적이 있지만 최근의 양상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이경규가 간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월드컵이라는 소재를 끌어와 주목을 받던 것과는 정반대로, 요즘은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주목이 월드컵 중계방송의 관심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MBC 월드컵 중계(사진출처:MBC)'

MBC <아빠 어디가>는 그런 점에서 월드컵 중계 경쟁의 신호탄을 올린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민국이 아빠 김성주가 보인 성과는 방송사들에게는 일종의 교육효과를 가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월드컵 중계 경쟁에서 방송3사는 너나 할 것 없이 예능 프로그램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냈다.

 

MBC<아빠 어디가>에 출연하고 있는 김성주와 안정환을 전면에 내세웠고, 여기에 시즌1에 참여했던 송종국을 참여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스포츠 중계와 예능을 연계시켰다. <라디오스타>에 나란히 출연한 이들은 특유의 예능감을 선보이며 보다 친근하고 재밌는 스포츠 중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SBS<정글의 법칙>을 통해 배성재 아나운서와 차범근 해설위원을 선보이고, <런닝맨>을 통해 차범근과 박지성 해설위원을 띄운 것도 같은 맥락이며, KBS<우리동네 예체능>에 이영표 해설위원과 조우종 캐스터를 참여시킨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 월드컵을 지원하는 예능 경쟁에서 단연 MBC가 우위를 보이게 된 것은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의 존재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아빠 어디가>는 주말 예능의 선두를 이끄는 프로그램인데다 단지 이번 월드컵 특수를 겨냥해 기획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타 방송사들의 월드컵 지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이미 작년에 런칭하면서 김성주와 송종국을 투입시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2년 가까이 월드컵 중계전을 준비해온 셈이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이 브라질편을 기획하고 배성재 아나운서를 투입시킨다거나, <런닝맨>이 특집으로 차범근과 박지성을 게스트로 초대하는 것, 또는 <우리동네 예체능>이 축구편을 만들어 이영표와 조우종을 출연시킨 것은 홍보를 통한 이벤트적인 성격이 강하다. 스포츠 중계를 하는 이들의 친근한 이미지도 자연스러운 방송 흐름 속에서 만들어져야 더 효과를 발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빠 어디가>MBC 월드컵 중계의 신의 한수임에 틀림없다.

 

물론 예능의 이미지나 예능감이 스포츠 중계를 보는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다. 스포츠 중계는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전문적인 해설위원들이 투입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김성주, 안정환, 송종국이 하는 MBC 월드컵 중계에 대해 만담 중계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안정환 특유의 톡톡 쏘는 멘트와 김성주의 노련한 진행 그리고 안정적인 송종국의 합은 잘 맞아떨어지며 재미를 주지만, 스포츠 중계가 예능 같다는 뉘앙스도 들어있다.

 

하지만 월드컵 중계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 또한 많이 달라진 것이 현실이다. 중계방송의 정확한 정보 전달은 이제 방송3사의 차별화 포인트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좀 더 특징 있는 개성을 가진 중계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시청자들로서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차범근 해설위원을 통한 관록의 해설이 안정환이나 이영표 같은 재미를 주는 해설에 어딘지 밀리고 있는 인상은 전체적으로 예능화 되어가는 방송경향이 이제는 스포츠 영역에도 밀어닥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분명 우려스러운 점은 있다. 월드컵 중계방송과 월드컵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지만, 바로 그래서인지 정작 월드컵 경기는 소외되는 인상이다. 월드컵 예능이 월드컵 자체를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하지만 어쩌랴. 방송의 흐름이 이제는 정보에서 재미로 바뀌고 있는 것을. <아빠 어디가>가 만들어낸 MBC 월드컵 중계의 승승장구는 그래서 지금 달라지고 있는 스포테인먼트의 징후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인선 감독이 말하는 <우리동네 예체능>

 

덕장이라는 표현이 아마도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현재 <우리동네 예체능>의 농구팀을 이끌고 있는 최인선 감독은 유독 을 강조했다. 한두 명 잘 하는 친구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팀 전체가 다 같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경기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물론 이기려는 경기를 해야 하지만 너무 거기에 집착하다보면 더 큰 걸 놓치게 되요. 한두 번 당장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즉 모두가 자기 역할을 하게 되고 만족스런 경기를 해냈을 때 승리는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실제로 이번 <우리동네 예체능>의 농구팀은 실력 편차가 크다. 줄리엔 강이나 서지석, 김혁이 에이스 중에 에이스라면, 부상으로 주춤한 최강창민이나 아예 농구공을 잡아 본 경험이 별로 없던 강호동은 말 그대로 구멍이다. 아마추어의 강호인 창원팀을 만나 1쿼터에 무려 170이라는 스코어를 내줬을 때 최인선 감독은 골고루 선수들을 뛰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남겼다. “가비지타임이라 그러죠. 이미 패했어요. 그걸 그냥 버리면 말 그대로 쓰레기가 되는 거죠....기량이 약하다고 해서 그걸 무시하면 농구 경기가 짝짝이가 되요.”

 

기량이 약한 선수를 무시하면 팀은 균형을 잃는다는 것. 이것은 최인선 감독이 말하는 팀스포츠 농구에 대한 철학이다. 그가 말하듯 농구는 기록만 갖고 선수를 평가했을 때 큰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기록 바깥에서 열심히 뛰어주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기록을 내는 선수들도 있다는 것이다. 최인선 감독의 이 말은 농구라는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 울림을 준다. 우리 사회를 하나의 팀으로 생각해보라. 세계 몇 위의 경제를 수치적으로 자랑하며 몇몇 대기업들의 위상을 말하곤 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노동자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우리사회는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가.

 

최인선 감독의 농구 철학이 단지 농구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또 다른 대목은 그가 강조하는 로컬에 대한 애정이다. 즉 그는 과거 농구대잔치가 농구 붐을 만들었던 이유가 우리 식의 농구와 우리 식의 팬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식축구가 미국에서만 하지 다른 나라에서는 안하잖아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인기가 있다는 겁니다. 즉 농구도 꼭 해외랑 겨루려고 할 게 아니라 우리 식으로 재밌게 하면 되는 거죠.” 해외 용병들이 들어오면서 몇몇 용병들의 기량에 따라 성패가 좌지우지되면서 다른 선수들이 전부 가려졌다고도 했다. “그런 용병들은 사실은 팀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죠.”

 

최인선 감독이 말하는 로컬은 90년대 우리네 사회가 온통 글로벌로 들썩거리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화가 화두였던 그 시절, 결국 우리가 놓쳤던 것은 로컬이 가진 가능성들이 아니었던가. 결국 세계화의 끝자락에 IMF라는 철퇴를 맞았던 것처럼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최인선 감독은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 식의 농구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변했다. 실로 우리가 굳이 NBA를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게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슬램덩크가 아니라 어쩌면 슛도사슛쟁이가 아닐까.

 

최인선 감독의 이 로컬은 그래서 <우리동네 예체능>이라는 프로그램의 취지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생각이다. 생활체육이 살아야 스포츠가 살아난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동네 예체능>이 보여주는 건강한 로컬 스포츠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로 스포츠라고 하면 늘 거대한 국가 스포츠로만 생각하던 우리에게 이 프로그램은 우리동네라는 일상 속의 스포츠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국가 스포츠가 오로지 승패와 메달 수와 순위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동네의 스포츠는 함께 하는 팀워크나 그를 통한 배려 같은 스포츠 이상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진정한 스포츠 정신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최인선 감독의 리더십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하나의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안녕들 하십니까운동이 보여주고 있는 안녕하지 못한 사회는 어쩌면 팀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잘못된 팀 운용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오로지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으로 국가경제 몇 위의 순위에만 집착하면서 정작 로컬을 챙기지 못하는 잘못된 국가 운용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건 어쩌면 최인선 감독 같은 덕장의 리더십인지도 모르겠다.

승패가 아닌 스포츠의 즐거움 알려준 <예체능>

 

“지는 건 당연한데 어떻게 지느냐가 문제였다.” <우리동네 예체능>이 88 서울올림픽 특집으로 마련한 김기택과 유남규의 재대결에서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펼친 뒤 패배한 김기택은 이렇게 말했다. 88 서울올림픽 당시의 데자뷰를 느끼게 할 정도로 25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명승부를 펼친 그들이었다.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현 탁구 국가대표 감독인 유남규와 현역에서 멀어진 김기택의 경기는 어쩌면 결과가 뻔한 경기일 수 있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그저 그런 경기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자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졌다. 유남규는 허벅지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열심히 경기에 임했고 김기택은 명불허전의 과감한 드라이브를 선보이기도 했다.

 

88 서울올림픽 당시 김기택과 유남규가 금메달을 놓고 벌인 대결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되었다. 김기택이 탁구채의 손상된 러버에 집착하느라 경기에서 지게 됐다는 이야기와, 경기가 끝나고 유남규가 김기택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자 김기택이 “잘했다. 수고했다”고 격려해줬다는 이야기는 명승부만큼 훈훈한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해주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고 벌이는 대결과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벌이는 한 판 승부는 같을 수 없다. 하지만 거의 똑같은 명승부를 펼쳐 보이면서도 올림픽과는 다른 스포츠의 묘미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대결은 <우리동네 예체능>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스포츠를 소재로 하지만 스포츠 프로그램과는 다른 <우리동네 예체능>만의 차별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배드민턴 경기는 몇 개월 연습한 걸로 몇 년씩 연습한 동호회와 경기를 펼쳐 이긴다는 것이 실로 어렵다는 걸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뻔히 질 경기라는 것. 하지만 김기택이 말하고 실제로 보인 것처럼 ‘지더라도 어떻게 지느냐’가 <우리동네 예체능>이 역시 나가야할 방향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또한 엘리트체육과는 다른 생활체육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이기기 위해서 스포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한다는 것.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려고 노력해야겠지만 못 이긴다고 해도 생활체육의 목표는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를 늘 누가 이기고 지느냐에만 몰두해서 바라봤던 우리의 시각은 <우리동네 예체능>이 보여준 일련의 경기들을 통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본 경기만큼 준비하고 연습하는 과정 역시 스포츠로서는 충분하다는 것.

 

따라서 김기택과 유남규 같은 한때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이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보여준 모습은 자못 상징적이다. 어찌 보면 엘리트 체육의 제일 꼭대기에 있던 그들도 이처럼 생활체육의 장으로 나오면 유쾌해지고 훈훈해질 수 있다는 것. 져도 어떻게 지느냐에 따라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는 것을 <우리동네 예체능>은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동네 예체능>과 우리네 스포츠가 이 앞으로 나가야할 길이기도 할 것이다.

예능에 부는 스포츠 바람, 왜?

 

스포츠는 연예인 예능의 극점인가. 최근 예능에 부는 스포츠 바람이 심상찮다. 강호동은 자신의 장기인 스포츠로 특화되는 양상이다. <우리 동네 예체능>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탁구로 시작했던 종목은 볼링을 거쳐 배드민턴으로 접어들었다. 또 <맨발의 친구들>이 ‘단점 극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이빙을 아이템으로 잡는 바람에 강호동은 다이빙도 하게 되었다. 그것도 그저 흉내 내는 정도가 아니라 김천시에서 벌어지는 국제 마스터스 대회에 출전까지 했다. 아마도 최근 강호동의 일주일은 스포츠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맨발의 친구들,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은 작년에 이어 박지성과 함께 하는 자선축구대회인 ‘아시안 드림컵’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는 박지성은 물론이고 그의 절친인 세계적인 축구선수 에브라도 참여했다. 유재석은 페널티 킥을 차는 기회를 얻었지만 골대를 맞추는 아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예능에서 축구를 다룬 것은 여러 번이지만 이처럼 해외에서 국제적인 스타들과 함께 하는 축구대회는 이례적인 일로 기록된다.

 

<정글의 법칙> 히말라야 편은 사실상 ‘등정’이라는 스포츠의 한 영역을 집중적으로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김병만을 위시한 병만족들은 고산병과 사투를 벌여야 했고, 고산지대에 살아가는 부족들과 즉석에서 축구대회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안정환이 게스트로 히말라야 편에 투입된 것은 여러모로 효과적이었다 여겨진다. 폐활량이 좋은 안정환에게 고산지대 적응은 훨씬 용이했을 수 있고 또 축구라는 아이템에 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 <파이널 어드벤처>는 최근 들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는 익스트림 스포츠와 서바이벌을 엮은 프로그램이다. 물론 우리 식으로 유화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카약이나 암벽등반 같은 스포츠가 주요 아이템이다. 또 <맨발의 친구들>이 일회적인 아이템으로 보여줬던 다이빙의 매력은 8월 정도에 MBC에서 <파이널 어드벤처>의 후속으로 편성이 잡힌 <스타 다이빙쇼 스플래시>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인 인기의 다이빙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셀러브리티 스플래시>의 포맷을 수입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야외에서 주로 벌어지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시도하는 소재가 스포츠다. 마라톤에서부터 사이클, 야구 등등. 심지어 <진짜사나이> 같은 군 소재 예능 프로그램도 체육대회를 통해 씨름과 군장달리기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의식해서 바라보면 스포츠 없는 예능 프로그램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고,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포츠를 주요 소재로 예능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는 단계다.

 

예능이 스포츠를 선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특별한 장치 없이도 ‘각본 없는’ 드라마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조미료 없는’ 예능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스포츠만큼 적합한 소재가 없는 셈이다. 어디로 튈지 그 결과를 전혀 알 수 없는데다가 그 과정 역시 대단히 역동적인 장면들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도전이 주는 용기가 있고 과정이 주는 땀의 가치가 있으며 결과가 주는 보람이 있다. 이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

 

스포츠가 예능의 트렌드로 자리하면서 스포츠 스타들을 예능에서 발견하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아빠 어디가>의 송종국, <정글의 법칙>의 안정환, <런닝맨>의 박지성과 구자철, 그리고 <파이널 어드벤처>의 유상철. 이 정도면 월드컵 대표팀을 꾸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상대적으로 은퇴시기가 빠른 스포츠선수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감안해보면 앞으로 이들의 예능 진출은 훨씬 더 본격화될 거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능이 스포츠(혹은 거의 스포츠에 가까운 게임이나 경기)를 다루면서 예능인들은 거의 운동선수화 되어가고 있다. 물론 요즘처럼 체력을 요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환경 상 몸 관리는 필수지만 여기에 예능인들은 이제 운동선수들의 기술을 익히는 단계까지 이른 것. 기존 스포츠 스타의 예능 진출이 본격화되고 예능의 리얼리티화가 더 진행된다면 앞으로 예능과 스포츠는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할 지도 모른다. 이미 서구에서 익스트림 스포츠가 예능의 주류 트렌드가 되고 있는 것처럼.

맨발로 생고생 하는 <맨친>, 왜 안볼까

 

<맨발의 친구들>은 생고생 버라이어티를 자처하며 시작했다. 해외에 나가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그들과 소통하겠다는 좋은 의도가 있었지만 그것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일단 해외라는 공간이 우리네 서민들에게는 그다지 정서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런닝맨>이 아주 가끔씩 이벤트 성격으로 해외에 나가 한류 팬들을 확인하고 올 때만 해도 뿌듯했던 그 느낌은 <맨발의 친구들>에서 느끼기가 어려웠다. 마치 한류를 의도한 듯한 출연진과 연출이 의외성과 반전의 효과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맨발의 친구들(사진출처:SBS)'

베트남에 이어 인도네시아까지 간 <맨발의 친구들>이 숨고르기를 하며, 이효리와 함께하는 엠티 특집을 한 것 역시 그다지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고정 멤버가 아닌 이효리 혼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려 멤버들과 좌충우돌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강호동이 하는 <패밀리가 떴다>를 다시 보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아침에 갑자기 산행을 하면서 폭포의 물을 맞고 입수하는 장면들은 영락없는 <1박2일>이었다. 그리고 또 엉뚱하게도 이번에는 다이빙 대회 참가라는 전혀 새로운 소재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이제는 <출발 드림팀>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맨발의 친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아직까지 콘셉트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해외 체험에서 엠티를 가고 다시 다이빙을 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물론 나름의 이유가 붙여져 있다. 즉 엠티는 <맨발의 친구들>이 서로를 더 잘 알기 위해 하는 일종의 단합대회인 셈이고, 다이빙도 애초에 ‘단점 극복 프로젝트’라고 제목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의 이유가 개연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관성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맨발의 친구들>이 무슨 프로그램이냐고 물어보면 이제는 한 마디로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문화 소통인지, 멤버들 간의 여행인지, 아니면 스포츠 버라이어티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아이템이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이 프로그램의 이득으로 돌아오기가 어렵다. 이번 다이빙 프로젝트가 성공한다고 해도 다이빙을 주제로 계속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다른 스포츠에 도전을 한다면 그것은 너무 기존 프로그램과 유사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동네 예체능>이나 <출발 드림팀> 같은.

 

<일요일이 좋다>의 다른 짝인 <런닝맨>이 초창기 부진을 딛고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게임 버라이어티라는 한 가지 콘셉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 특히 주말 예능은 그 걸어온 길이 하나의 자산이 되는 셈이다. <런닝맨>은 단순한 게임에서부터 시작해 차츰 스파이가 투입되고 제작진과의 심리게임이 부가되면서 흥미로워졌다. 이제는 박지성이나 에브라 같은 세계적인 축구선수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차근 차근 하나의 콘셉트를 일관되게 밀어붙인 덕이다.

 

<맨발의 친구들>의 멤버들이나 제작진이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맨발로 땀만 열심히 흘린다고 프로그램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맨발의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관되고 줄기차게 밀어붙일 수 있는 한 가지 콘셉트를 정하는 일이다. <무한도전>도 <1박2일>도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도전과 여행이라는 분명한 색깔이 있었다. <맨발의 친구들>의 색깔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먼저 고민되어야 맨발의 노력이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강호동이 부활하려면

 

화요일 밤이 왁자지껄해졌다. 강호동의 귀환.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강호동과 이수근의 재회다. 사실 강호동이 잠정은퇴 선언으로 <1박2일>을 빠져나가고 나서 그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역부족을 느꼈던 이수근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수근은 강호동이라는 비빌 언덕 안에서 강력한 개인기와 순발력을 선보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함께 해왔기 때문에 강호동의 행동이나 말투 하나하나가 익숙한 이수근은 때론 그를 무식하다며 몰아세우기도 하고, 때론 그에게 당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웃음을 만드는데 익숙하다.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그런데 이런 사정은 강호동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잠정은퇴에서 복귀 후 어딘지 옆자리가 허전한 느낌을 준 것은 강호동이라는 캐릭터에는 까불고 당하는 조력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릎팍도사>에서는 유세윤이, <1박2일>에서는 이수근이 그 역할을 해왔던 셈이다. <우리동네 예체능>의 첫 번째 미션으로 선정된 탁구의 본게임이 시작되기 전 그 준비과정을 그린 첫 방송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사람의 합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형 플래카드에 거대한 붓으로 그들이 이번 대회의 소원으로 선택한 ‘헹가래’라는 글자를 쓰는 과정에서 맨손으로 붓을 짜는 복불복(?)은 <1박2일>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가위바위보에서 계속 져 붓을 짜던 이수근이 새까매진 손으로 “장갑 좀 벗을께요”하는 식의 즉석 상황극이 그렇고, ‘헹가래’의 철자를 두고 딱밤으로 강호동의 이마에 점을 찍어 ‘정동남 만들기’를 선보이는 장면이 그렇다. “예능 아닙니까?”하는 이수근의 말은 <1박2일> 시절의 ‘버라이어티 정신’을 떠올리게 했다.

 

아직까지 최강창민의 두드러진 활약이 눈에 띄지 않지만 그의 역할은 강호동, 이수근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일단 프로그램에 비주얼적인 면을 책임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비주얼이 앞으로 만날 여성들과의 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고 때로는 강호동, 이수근과의 비교점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최강창민의 이런 가능성이 드러나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뛰어들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MC 조합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그 때 그 때의 미션에 맞게 함께 대결을 벌일 게스트를 잘 뽑는 일이다. 첫 번째 탁구 대회 미션 게스트 중 단연 눈에 띄는 게스트는 박성호와 조달환이다. 연예인 탁구단 회장으로 출연한 박성호는 탁구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선생 캐릭터를 즉석에서 만들어 강호동에게 면박을 주기도 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 게스트 중 최고의 존재감을 보여준 인물은 박성호가 추천한 조달환일 것이다.

 

얼굴은 익숙하지만 이름은 낯선 조달환은, 이름이 풍기는 어딘지 코믹함과 신비스러움(?)을 기대하게 만들다가, 거의 신기에 가까운 탁구 실력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동네 예체능>의 대결이 그저 동네 단합대회 같은 소소함에 머물지 않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우리동네 예체능>이 2회 정도의 분량으로 하나의 미션이 구성된다고 볼 때(물론 이건 미션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 1회분의 대결을 준비하는 과정은 예능적으로 풀어질 가능성이 높고, 2회분은 스포츠가 주는 팽팽한 대결의 맛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조달환 같은 인물은 2회분의 기대감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인물인 셈이다.

 

<우리동네 예체능>은 그 제목에서부터 풍기듯 예능(1회분에 주로 보여질)과 체육(2회분)을 결합한 데다 ‘우리동네’라는 일반인 참여 콘셉트를 포함시킨 프로그램이다. 확실히 <달빛프린스>의 정적인 분위기보다는 활력이 넘치는 동적인 이 분위기에서, 예능과 체육 그리고 일반인은 강호동에게는 최적의 상황을 제공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야심찬 기획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강호동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조달환 같은 화제의 인물 혹은 ‘우리동네’의 특별한 일반인들을 끄집어내는 일이다.

 

즉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은 ‘예체능’보다 ‘우리동네’라는 점이다. SM식구들의 대거 출연은 물론 같은 소속사인 강호동을 최적화시키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강호동이 해야 할 일은 예전 <1박2일>에서 여행 중 만났던 일반인들을 즉석에서 웃고 울리며 캐릭터를 만들던 모습이나, <스타킹>에서 참가자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큰 리액션을 보임으로써 그들을 올려 세우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프로그램이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우리동네 예체능>이 사는 길이고, 또 강호동이 살아나는 길이다.


'키앤크', 기술보다 과정으로 승부하다

'키스앤크라이'(사진출처:SBS)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는 여러 모로 불리함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김연아가 하나의 신화가 됨으로써 높여놓은 대중들의 눈 때문이다. 피겨 스케이팅 하면 이제 트리플 점프를 떠올리고, 김연아가 그랬던 것처럼 빙상 위를 물 찬 제비처럼 미끄러지는 장면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것은 전적으로 김연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일 뿐, 이제 갓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지난한 기술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포츠라는 소재는 진짜 스포츠 중계만큼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전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포착해내는 방식으로서의 스포츠 중계가 정착되어 있는 것은 그 형식이 가진 힘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키스 앤 크라이'는 분명 스포츠 중계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흥미진진함을 갖춘 프로그램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 힘을 만드는 것일까.

그 차별점은 바로 과정에 있다. 스포츠 중계는 그 단판 승부의 결과만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 승부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점프를 보며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술인가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 힘겨운 과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스 앤 크라이'는 다르다. 이 프로그램에서 달인 김병만은 평발의 한계를 딛고 극한의 노력을 통해 거의 준 프로에 가까운 실력을 선보였다. 만일 그 과정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마 실망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정을 알기 때문에 그의 런지나 점프 동작 하나하나를 우리는 감동으로 바라볼 수 있다.

박준금의 나이를 잊은 스케이팅, 승부근성을 보여주는 손담비와 크리스탈의 팽팽한 대결, 몸치를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서지석과 아이유,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피겨 스케이팅으로 새로운 도전을 선보이며 개그맨 뺨치는 예능감을 보여주는 유쾌한 이규혁, 타고난 끼와 재능을 가진 유노윤호, 엄마의 도전이 돋보이는 이아현 그리고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진지희. 사실 우리가 '키스 앤 크라이'의 빙상 경연에 도전하는 출연자들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은 이러한 각자가 가진 사연과 어우러진 피겨 도전 과정의 스토리다. 기술? 물론 이 프로그램에서도 중요한 과제지만 그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 노력의 과정과 그로 인해 얼마만큼 변화되었는가가 더 관건이다.

즉 이 경쟁은 겉보기에는 상대평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절대평가에 가깝다. 타고난 재능으로 이미 어느 정도 단계를 넘어선 김병만 같은 도전자의 승부와, 몸치에 가까운 서지석의 승부가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이나 장미평가단들, 그리고 시청자들까지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진지희처럼 기술이 부족해 심사위원으로부터 최하점을 받은 팀도 장미평가단에 의해 7위가 될 수도 있는 게 '키스 앤 크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통해 실로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사실 그 누가 김병만이 3개월만에 이런 프로에 가까운 스케이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노력하는 손담비의 놀랄만한 기술에 대한 도전과, 타고난 선을 가진 크리스탈의 재능을 우리는 이 프로그램이 있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바로 이런 지점들이 '키스 앤 크라이'가 스포츠 중계 그 이상이 되는 이유다. 그 어떤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그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만큼 흥미진진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닥터 챔프'가 아시안게임에 미치는 영향

아시안게임에 나가는 선수들에게 있어서 태릉선수촌이란 어떤 의미일까.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무엇이고 부상이란 어떤 고통일까. 사실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선수들의 경기와 그들이 힘겹게 따낸 메달에 우리는 감동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값진 의미인지는 잘 실감하지 못한다. 물론 메달을 딴 선수라면 그 의미를 찾아 카메라가 다가가겠지만, 아깝게 메달을 놓친 불운의 선수들은 그저 잊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일 '닥터 챔프'라는 드라마를 본 시청자라면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들에 대한 마음이 사뭇 다를 것이다.

태릉선수촌 의무실이라는 이 드라마의 배경은 선수들의 고충을 온몸으로 그려내는 공간이다. 거기에는 부상을 입어도 티 하나 내지 않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있고, 우정으로 경쟁하지만 경기 중 불운으로 한 선수가 다른 선수를 영원히 뛰지 못하게 만드는 사고를 겪는 선수들도 있다. 거기에는 폐암이 의심되는 증상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정밀검사를 받지 않으려는 선수도 있고, 도핑테스트에 걸려 자칫 출전조차 못할 뻔한 선수도 있다.

물론 죽을 것 같은 훈련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나지 않는다면, 그래서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지옥훈련은 지옥이 아니다. 그들에게 진짜 지옥은 태릉선수촌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오로지 메달을 따기 위해 태어난 듯이 살아가는 훈련기계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들은 그 살벌한 경쟁 속에 살아가면서도, 아니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더더욱 누군가와의 사랑을 희구한다. 유도선수인 유상봉(정석원)이 박지헌(정겨운)에게 하는 말대로 이제는 "사랑이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더 힘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닥터 챔프'는 경기 무대 위에서만 보았던 선수들의, 무대 아래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슈퍼스타K2'를 닮았다. '슈퍼스타K2'라는 스포츠 형식을 무대화한 프로그램이 단순히 대결 자체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대결에 임하는 경쟁자들을 포착해 오히려 대결을 더 흥미진진하게 한 것처럼, '닥터 챔프'는 경기장 바깥의 이야기로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놓는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주목받았던 역도의 이배영 선수나 펜싱의 남현희 선수, 배드민턴의 이용대 선수, 유도의 최민호 선수 등등.. 그들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숨겨진 땀과 눈물을 우리는 '닥터 챔프'가 그리는 박지헌의 이야기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낼 수 있다.

물론 '닥터 챔프'는 극화된 허구의 드라마일 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허구로 그려내는 이야기들 속에는 현재 우리네 선수들의 녹록찮은 삶이 묻어나 있다. 몸뚱어리 하나로 진솔하게 맞붙는 이들의 삶에서 단순하지만 명쾌한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은 꾸며질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 그동안 정직하게 흘린 땀과 그 날의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승운에 따라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결과가 무엇이든 이제는 알 수 있겠다. 거기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저마다 하나씩의 고개를 넘은 승자들이라는 것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아시안게임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건, 이 작은 드라마가 보여준 선수들에게 대한 따뜻한 헌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닥터 챔프', 공정한 기회의 세상을 꿈꾸다

그들이 원한 건 최소한 공정한 기회였다. 성공? 그건 일단 기회가 있는 사람이어야 꿈꿀 수 있는 거니까. 똑같이 6주 휴식을 요하는 부상을 입고도 어떤 이는 선수촌에서 쫓겨나고 어떤 이는 버젓이 훈련을 하는 상황. 의료과실을 보고 눈감아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다른 어떤 병원에도 발붙일 수 없게 된 상황. '닥터 챔프'가 그리는 세상은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돌아가는 그런 곳이 아니다. 선수촌이든 병원이든, 그들은 어떻게든 버텨내려 하지만 세상은 늘 이들을 쫓아내려고 한다. '닥터 챔프'라는 드라마 속의 갈등은 바로 이 기회조차 공정하지 않은 만만찮은 사회와 그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청춘들 사이의 대결에서 비롯된다.

스포츠 의학이라는 일반외과보다는 조금은 여유롭게(?) 느껴지는 의학 분야가 등장하면서도 이 드라마가 여전히 흥미진진한 이유는 태릉선수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메달의 꿈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연습을 하지만, 그렇다고 부상을 입게 되면 국가대표 선발에서 밀려나게 된다. 즉 일반외과를 다루는 의학드라마에서처럼 생사를 오가는 질환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태릉선수촌의 의료실에서는 죽음보다 더 한 퇴촌 명령이나, 선수 생명이 끝나는 부상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적어도 이 선수들에게 대회에 못나가거나 운동을 더 이상 못하게 되는 일은 죽음만큼 고통스러운 일일 테니까.

그런데 이토록 생명처럼 여기는 선수생활을 좌지우지하는 잣대가 공정하지 않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은 체급의 다른 선수를 찾기 위해 퇴촌의 명분을 찾는 감독이라면? 물론 이것은 극화된 것이지만, 작금의 우리네 청춘들이 겪는 '기회의 격차'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점점 태생의 조건에 의해 교육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사회로의 진입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고착화되어버린 사회 앞에서 청춘들이 느끼는 절망감 같은. 아무리 해도 이미 안 되는 것이 정해진 현실 앞에서 꿈이 더 이상 기회가 아니라 고통이 되는 세상. '닥터 챔프'의 지헌(정겨운)이 힘겨운 건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헌을 통해 차츰 선수들(청춘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연우(김소연)가 의료실장인 도욱(엄태웅)을 통해 배워가는 건 바로 이 공평함이다. 내부고발자인 연우를 선수촌 의료실의 의사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료과실을 알고 있는 연우를 해고시켜달라는 담당의에게 거꾸로 해고 통보를 내리며, 최고의 스타로 특별대우 받는 수영선수에게 다른 선수와 똑같이 대하는 도욱은 마치 공평함의 표본처럼 보인다. 그다지 남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던 연우가 차츰 타인들의 입장을 고려하기 시작하는 건 지헌이 보여주는 사랑과 도욱이 행하는 정의로움을 보기 때문이다. "이젠 포기하지?"라는 도욱의 말에 "포기하지 말란 말이죠?"하고 그것이 반어법임을 알아차리는 연우는 그래서 현실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지헌은 불공정하게 선수촌에서 쫓겨나고, 연우는 그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 선수를 치료해주는 것뿐이다. 이것이 냉정한 그들의 현실이다. 하지만 '닥터 챔프'가 꿈꾸는 세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쫓겨났지만 다시 선수촌으로 들어가겠다며 연우에게 치료를 구하는 지헌에게서, 그럼에도 꿈꾸기를 포기 않는 청춘의 건강함을 본다면 지나친 낙관일까. 그래도 도욱 같은 인물이 있어 '기회의 격차'를 줄여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드라마처럼 적어도 포기 않는 청춘이기를.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491)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280)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088,331
  • 127505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