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이러니 적폐청산이 어려울 수밖에

“이원장이 왜 그렇게 죽었냐구? 그걸 밝혀달라구? 그래. 이상엽이. 네가 보고를 해? 원장님한테? 환자가 죽었다니까 원장님이. 덮자 그러셨다구? 내 두 눈 똑바로 보고 다시 얘기해봐. 나 원장님께 보고했다? 김정희. 너. 네 환자 죽었을 때 어떻게 했어? 누가 네 대신 유족 찾아가서 흠씬 두들겨 맞았지? 어떻게 그 와중에 코빼기 한 번 안 비칠 수 있었냐? 서지웅이. 너 요새도 여자환자 만져? 간호사한테 문자 계속 보내? 네 와이프가 원장님께 울고불고 매달려서 너 겨우 안 잘린 거 너 알고 있어? 야 장민기. 누가 네 가족부터 이식수술 해주래? 원장님이 영원히 모를 줄 알았냐? 이 중에 이보훈이 피 안 빨아먹은 인간 어딨는데? 주경문이. 넌 혼자 고고한 척 관심 없는 척 하면서 원장이 챙겨주는 건 잘도 받아먹더라. 네가 정말 자리에 욕심이 없어? 이보훈한테 왜 심근경색이 왔을까? 너, 너, 니들 모두 니들이 갉아먹었잖아? 늙어가는 심장 한 웅큼씩 한 웅큼씩 니들이 필요할 때마다 떼 갔잖아. 근데 뭘 물어?!”

마치 연극의 한 대목을 보는 것만 같은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의 이 장면에서 김태상 전 부원장(문성근)은 거기 앉아 있는 의사들 하나하나를 지목하며 그 과실들을 끄집어낸다. 마치 공개 재판이라도 하듯 이보훈(천호진) 원장이 김태상 전 부원장의 집에서 죽은 일에 대해 예진우(이동욱)가 추궁하지만, 그는 원장의 죽음에 모두가 유죄라는 사실을 끄집어낸다. 그들은 과연 몰랐을까. 자신들에게도 저마다의 죄가 있다는 것을.

결코 떳떳한 인물이 아니지만 김태상 전 부원장의 말은 아프게도 틀린 게 없다. 그래서 그 아픈 일침 앞에 그 누구도 뭐라 반박하지 못한다. 한참을 듣다 못한 예진우가 그에게 묻는다. “스스로에게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대리수술도 그래서 하신 건가요? 다른 분들과 형평성을 맞추려고?” 타인의 죄를 끄집어내지만 그렇다고 그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명백히 한 것이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죄가 없는 이들은 없다. 모두가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잘못을 떠안아준 건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이보훈 원장이었다.

상국대학병원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이 장면은 확장해서 보면 우리네 국가와 정치, 사회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보훈 원장이 김태상 부원장의 집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그 장면은 우리네 정치사의 안타까운 죽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을 김태상 같은 인물이 단독으로 저지른 일인 양 단죄하는 일 역시 우리가 정치사에서 흔히 봐왔던 일들이다.

잘못된 행위를 한 그들을 ‘적폐’라 부르고 그것을 ‘청산’하려 하는 일은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진정 적폐가 모두 사라지게 될까. <라이프>가 김태상 부원장의 아픈 일침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좀 다르다. 그 적폐는 김태상 부원장 같은 외부의 적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도 그 시스템 속에서 저마다의 ‘적폐’에 일조한 면이 있다. 그것까지 끄집어내고 ‘청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적폐청산이 가능하다는 것.

<라이프>가 다루는 인물들이 때론 인간다워 보이면서도 때론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타인을 아프게 만드는 냉정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건 작가가 가진 인간관을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공과 과를 모두 함께 갖고 있다. 적폐는 바깥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적폐’ 또한 청산하지 않는 한 잘못된 일은 또 다시 반복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째서 적폐청산이 어려운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외부의 적폐를 제거하는 일만이 아니라 내 안의 적폐 역시 끄집어내 깨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을 공간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루는 드라마가 이런 우리 사회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의 근원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사진:JTBC)

‘라이프’, 조승우의 진짜 얼굴은 도대체 어떤 걸까

도대체 구승효 총괄사장(조승우)의 진짜 얼굴은 뭘까. 경영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된 응급센터,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를 지방병원으로 파견 보내겠다는 방침으로 의사들의 반발과 파업 결의까지 일으켰던 그는 돌연 그 방침을 뒤집었다. 지방병원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한 것. 그렇게 쉽게 결정을 번복할 거였다면 왜 그토록 강경하게 의사들을 몰아세웠던 걸까.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의 구승효 사장이 가진 오리무중의 행보를 보다 보면 새삼 자본주의의 두 얼굴이 느껴진다. 그가 의사들을 몰아붙였던 건 실제로 지방 파견을 보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숨겨진 노림수들이 들어 있었다. 첫째는 상국대학병원이 의사들만의 힘으로 굴러가는 곳이 아니고 이제 화정그룹의 경영 하에 움직인다는 걸 실력행사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지방 파견이라는 한 마디에 병원 전체가 시끌시끌해지는 그 상황을 통해 의사들이 경영진의 존재를 확실히 느끼게 됐던 것.

둘째 노림수는 그 혼돈 과정을 통해 인물들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가 그 혼돈 속에서 드러나게 됐던 것. 예진우(이동욱) 응급의학센터 전문의는 조용히 지내던 모습에서 구승효와 대적하는 인물로 등장했다. 주경문(유재명)은 상국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병원 내부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의사라는 본분을 지키려 구승효와 맞서게 되었다. 

반면 김태상(문성근) 부원장은 간에도 붙었다가 쓸개에도 붙었다 하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구승효와의 독대를 통해 자신이 원장이 되려는 일에 서로가 도움이 된다는 걸 확인시키면서, 동시에 병원의 실세들인 오세화(문소리) 신경외과 센터장, 이상엽(엄효섭) 암센터장, 서지용(정희태) 안과 센터장을 만나 자신을 밀어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이 원장이 되어 사장을 몰아내겠다는 것. 그는 과연 사장 편일까 아니면 의사들의 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원장이 되고픈 욕망을 위해 어느 쪽이든 활용하는 인물일까.

김태상과 손을 잡은 듯한(?) 구승효는 슬쩍 약품을 독점적으로 납품하는 자회사를 설립할 거라는 걸 그에게 말한다. 사실상 불법이지만 비영리법인처럼 만드는 편법으로 그렇게 하면 화정그룹으로서는 큰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승효가 이 자회사를 통해 약품은 물론 건강보조식품까지 납품하게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순차적이다. 

먼저 병원 각 부서들의 감사를 통해 약물 투약이 잘못되어 사망한 환자의 기록을 찾아내 의사들을 압박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언론에 알려 공론화함으로써 의사들 역시 저마다의 욕망을 가진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걸 드러내면서 궁지로 몰아넣는다. 의사들도 반발한다. 그것이 너무나 인력이 부족한 시스템 때문에 생겨난 문제라는 것. 구승효 사장은 그것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 다음 단계를 진행한다. 이른바 바코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바코드로 찍기만 하면 환자가 어떤 약물을 투여받아야 하는지 또 약물 투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가 쉽게 확인된다. 

그런데 그 바코드 시스템에 의해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 편리함에 빠져들게 되자, 그 시스템을 제공한 제약회사의 약품과 건강보조식품이 들어온다. 의사들은 건강보조식품까지 영업해야 하는 상황에 반발하지만, 이미 바코드 시스템에 적응되어 이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구승효 사장은 반발하는 의사들에게 확실하게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각인시킨다. 그저 병원의 의사가 아니라 화정그룹이라는 기업에 돈을 받고 일하는 의사들이라는 것. 

구승효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에 이노을(원진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그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궁금해한다. 소아병동에 데려갔을 때 아기들을 보던 그 모습이 진짜인지, 아니면 돈벌이를 하려 병원 내에서 벌인 일련의 조치들이 진짜인지 헷갈리는 것. 갑자기 유기견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서는 일도 마찬가지다. 수행비서인 강경아(염혜란)가 우연히 반려견의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엄청났던 병원비용을 얘기한데서 구승효는 이것이 돈이 될 거라는 걸 직감했던 터다. 

구승효에게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그 하나는 무심한 듯 친절해 보이는 모습이다. 서산의 땅 주인을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마치 그 분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를 통해 얻어가려는 자신의 이익이 존재한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처해있는 자본주의의 두 얼굴이 아닐까. 편리함이라는 부드러움으로 다가오지만, 거기에 종속되고 나면 이익이라는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라이프>가 구승효를 통해 보여주는 놀라울 만큼 치밀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얼굴.(사진:JTBC)

‘라이프’, 우리는 얼마나 사태를 단순하게만 봤던 걸까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사태를 단순하게만 봐왔던 걸까.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를 보다 보면 언론에 나오는 일면적인 기사에 일희일비하는 우리들의 성급한 단정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본래 사태란 여러 욕망들이 뒤섞이고 부딪치면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작금의 병원이 처한 문제를 다루는 <라이프>는 이러한 단순함을 성급하게 담으려 하지 않는다. 의사들의 입장과 경영진의 입장이 부딪치고 그 어느 쪽이 완전히 옳고 그르다 성급히 판정하지 않는다. 어느 쪽도 공과 과가 공존하고 그것은 그런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는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처음 상국대학병원에 등장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응급센터와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지방 전출 명령을 내리는 구승효(조승우) 총괄사장은 의사들과 대립하게 되면서 마치 자본주의의 대변자처럼만 그려졌다. 그래서 의사들은 어딘가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숭고한 존재들처럼 여겨졌지만, <라이프>는 이야기를 이 단순한 구도로 끝내지 않는다. 

구승효는 병원 내에 있었던 약물투여가 잘못되어 벌어진 환자의 사망사건을 끄집어내 그런 잘못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의사집단의 어두운 면을 폭로한다. 물론 그것은 구승효가 의사들과의 대결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조처지만, 그 폭로로 인해 의사들이 그렇게 숭고한 존재들만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해준다. 그들 역시 저마다의 욕망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한편 차가운 독종으로만 알았던 구승효가 이노을(원진아)과 함께 소아병동을 돌면서 보여주는 마음의 흔들림은 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보통의 인간이라는 걸 드러내준다. 집으로 돌아와 잠든 어머니를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그 옆에 누워 보는 그의 모습은 여느 집의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 소아병동에서 봤던 아이를 떠올리며 “나도 어릴 때 많이 아팠냐”고 어머니에게 묻는 구승효는 채산성만 얘기하던 그 독종이 아니다.

그런데 의사들도 사정이 없는 건 아니다. 잘못된 약물투여로 죽은 환자에 대한 추궁이 이어지는 회의에서 주경문(유재명) 흉부외과장은 그런 사망사고까지 벌어지게 되는 자신들의 현실을 토로한다. 그는 불친절하고 낡아 폐쇄된 병동 때문에 많은 환자를 잃었던 과거를 얘기하며 그 병동의 이유가 바로 ‘재정적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 병동은 매년 3,40억의 재정적자를 내고 있었다는 것. 물론 3,40억은 큰돈이지만, 도 전체의 1년 예산 12조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돈이었다. 

“전 늘 묻고 싶었습니다. 그 돈 3,40억이 그렇게 아까웠어요? 그 돈이 그렇게 목말랐습니까? 진짜 문제는 폐쇄 자체가 아닙니다. 당시 의료원 문제 많았습니다. 예 인정합니다. 하지만 문제점은 고쳐서 어떻게든 개선시켜서 다시 쓸 수 있는 나름의 기회였는데, 고민대신 날려버렸어요. 지방의료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냥 없애버렸습니다.” 혈세 낭비라는 성급한 여론에 밀려 지방 공공병동 하나가 사라져버린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주경문은 설파한다.

“구승효 사장님. 저희 흉부는 늘 인력이 부족합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너무나 쉽게 말하죠. 요즘 젊은 의사들이 돈 되고 편한 데로만 몰려서라고요. 하지만 우리 젊은 후배들 전부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헌데 왜 한 해에 나오는 흉부 전문의가 전국에 스무 명이 되지 않을까요. 병원이 흉부에 투자를 안해서입니다. 적자 수술이 많아서. 병원이 채용을 안해서입니다. 일할 데가 없어서요. 그래도 우린 오늘도 수술장에 들어갑니다. 만분의 일의 사고 위험도로 환자를 죽인 의사라는 비난을 들어도.”

이것은 ‘환자를 죽인 의사’라고 섣불리 매도했던 그 의사가 처한 현실이다. 경영진의 입장과 의사들의 입장 그리고 그 일면만이 기사화되어 보도됐을 때 우리들이 보였던 입장들이 <라이프>라는 드라마를 통해 드디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비단 병원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던 무수한 사안들을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단순하게만 판정해온 건 아니었을까. <라이프>의 다각적인 시각은 우리의 성급함을 반성하게 만든다.(사진:JTBC)

‘라이프’, 강력한 항원 조승우 vs 만만찮은 항체 이동욱

놀랄 만큼 입체적이다. 병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만이 아니라, 그것이 병원 밖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고, 생명을 살린다는 그 의사의 본분을 담는 병원이 또한 자본이라는 괴물의 시스템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시킨다. 병원을 소재로 하는 의학드라마가 이토록 입체적으로 병원을 보여준 적이 있던가.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가 담아내고 있는 병원이다. 

구승효(조승우)는 물류센터 사장으로 화정그룹이 인수한 상국대학병원을 맡게 되면서 각 과별 경영실적부터 챙겨본다. 가장 적자 폭이 큰 과가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그리고 응급과. 그 과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차에 ‘지방병원 파견 근무’ 제도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세 과를 모두 지방으로 파견 보낸다는 통보를 내린다. 파견 근무를 시키면 임금을 해당 지방병원이 해결하게 할 수 있고 정보 보조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영자로서는 병원의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경영적 선택인 셈이다. 

대신 구승효는 돈 되는 센터를 건립하려 한다. 암센터, 검진센터, 장례식장이 그것이다. 화정그룹 임원 회의에서 구승효는 병원 환자 기록을 계열사인 보험사에 팔려고 한다. 그것이 직접적인 보험사 수익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회장은 병원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그가 관심이 있는 건 서산에 있는 땅이다. 그 곳에 병원 센터 건립이라는 명분으로 땅을 매입하라고 구승효에게 지시한다. 물론 병원의 돈으로. 그러자 구승효는 회장에게 거꾸로 제안한다. 암센터, 검진센터, 장례식장 건립에 돈을 투자해달라고. 확실한 ‘캐시 카우’이기 때문에 자신 있다고. 

하지만 이 곳은 그냥 물건 파는 기업이 아니다. 병원이다. 의사들은 만만찮은 반발을 일으킨다. 특히 파견이 결정된 세 과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의사들이 모두 모여 대책회의를 하는 곳에서 ‘환자를 돈 줄로만 보는’ 새 경영진을 질타한다. 그런데 그 곳에 나타난 구승효는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의 반발을 오히려 의사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 것으로 몰아붙인다. 지방 같은 소외 지역에서 죽어나가는 환자들을 구하는 게 의사의 소임이 아니냐는 것. 

별 탈 없이 그럭저럭 지내오던 상국대학병원은 원장이 갑작스레 사망한 후 공교롭게도 등장한 총괄사장 구승효에 의해 병을 앓기 시작한다. 구승효는 마치 몸에 침투해 들어온 항원처럼 상국대학병원 전체를 아프게도 뒤 흔든다. 그러자 그 동안 나서지 않던 예진우(이동욱)가 일어나 구승효에게 질문을 던진다. “흑자가 나는 과는 그럼 파견대신 돈으로 된다는 뜻입니까? 지원금을 낼 수 있으면 안가도 된다 그겁니까?” 그 질문은 본래 정부에서 요청한 건 지원금인데 구승효 사장이 파견을 얘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문 제기이고, 또한 이 문제가 결국은 적자와 마이너스로 불리는 과들을 퇴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구승효는 그 질문이 영 기분 나쁘다. 어딘지 만만찮은 반발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사내 게시판에 ‘파견 3과 = 적자 3과’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 ‘인도적 지원이 아닌 자본 논리에 의한 퇴출’이라는 글이 그것이다. 구승효라는 ‘항원’이 들어오자 드디어 예진우라는 ‘항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구승효과 예진우의 항원-항체 반응처럼 대결구도로 그려지고 있는 <라이프>는 그래서인지 그 과정을 통해 병원의 실체에 다가간다. 그 곳은 우리들에게는 아플 때 찾아가 병을 고치는 곳으로만 여겨져 왔지만 실제의 병원은 사업체이기도 했다는 것. 그래서 돈을 버는 일과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어찌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그 조합이 바로 병원의 실체라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러한 대결구도를 선악 개념으로 다루지 않는다. 예진우가 선이고 구승효가 악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단지 현재의 병원 시스템 안에서 예진우가 맡은 역할과 구승효가 맡은 역할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수술실을 찾은 구승효가 거기서 쪽잠을 자고 있는 주경문(유재명)에게 덮을 것을 챙겨주고 나온다. <라이프>가 구승효를 이런 인물로 굳이 그리는 건 이러한 문제들이 구승효라는 악인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병원 시스템 자체가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강력한 항원으로 등장한 구승효과 만만찮은 항체로 맞서는 예진우. 두 사람의 대결을 통해 드라마는 우리가 막연히 바라봤던 병원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환자와 의사간의 관계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사업으로 연결되어 있는 병원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병원이 처한 상황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가를 보게 될 지도.(사진:JTBC)

병원의 두 얼굴, 벌써 팽팽한 ‘라이프’의 긴장감 

사람을 살리는 곳 혹은 엄연한 사업체. 병원의 두 얼굴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건 단지 천명에 달린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은 돈에 좌우되기도 한다. 물론 당장 생명 앞에서 의사는 최선을 다하려 한다 할지라도, 병원이라는 자본의 무생물은 시스템으로 삶과 죽음을 가른다. 이수연 작가가 <비밀의 숲> 이후 돌아온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메스로 갈라보는 드라마다. 

드라마는 옥상에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 응급실 앞으로 도착했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한 이보훈 원장(천호진)에서부터 시작한다. 구급차에서 이 원장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던 듯 보이는 부원장 김태상(문성근). 카메라는 그 구급차에서 죽은 원장을 확인하고는 넋이 나가버린 예진우(이동욱)에서 조금씩 빠져나와 상국대학병원 건물을 훑으며 올라간다. 그리고 병원 저편으로 보이는 어둑한 도시를 비춘다. 

그건 마치 이 드라마가 담아내려는 이야기의 구조를 압축하는 듯 보인다. 처음에는 원장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에서 시작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 병원을 감싸고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 불러온 어떤 비극적인 사건을 예고하고 궁극적으로 이 병원의 시스템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드러낼 거라는 예감이다. 

술에 취해 부원장의 집을 찾아와 술 한 잔을 더하다 담배를 피운다며 옥상에 올라갔다가 추락사했다고 했지만, 예진우는 그 날 원장과 다퉜다는 부원장을 의심한다. 그 의심을 확증이라도 하듯 곧바로 지역병원으로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과가 파견을 가라는 지침이 내려온다. 당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병원에 채산성이 없는 과들을 치우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원장의 죽음이 단순한 추락사가 아니라고 의심하게 되는 건, 대학재단이 사기업으로 바뀌면서 병원에 내려진 성과급제 확대 시행 지침서에 원장이 극렬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환자가 돈줄로 보이기 시작하면 그 의사는 더 이상 갈 데가 없어. 배우려는 학생한테 돈 뜯어내기만 궁리만 하는 선생을 선생이라고 할 수가 있나? 학생은 선생이 푼 문제의 답이 잘못된 걸 알지. 우리가 하는 수술 우리가 내리는 처방 일반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몰라. 그래서 의술이 무서운 거야. 그래서 우리가 더욱더 독하게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 근데 이딴 걸 지침이라고 내려보내? 아무리 사기업이 대학재단을 통째로 먹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야. 이래선 안 되는 거야.”

원장의 이 말은 <라이프>가 담아내려는 병원의 두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병원도 자본의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래서만은 안 된다는 것. 자본의 현실을 말하는 병원의 새로운 총괄사장 구승효(조승우)와 원장과 뜻을 함께 해온 예진우는 그렇게 대립하게 된다. 

역시 <비밀의 숲>이 스릴러 장르를 가져오면서도 검찰의 내부 시스템의 문제를 건드렸던 것처럼, <라이프>도 의학드라마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시스템의 문제를 다룬다. 의술이 부족해서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 구조를 지목하는 것. 역시 괴물 신인 작가로 불렸던 이수연 작가 특유의 진중한 색깔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그래서 <라이프>는 그 흥미진진한 원장의 죽음을 둘러싼 추리와 스릴러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보이게 되는 자본화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전망이다. 만일 돈이 되지 않는다며 병원이 환자를 외면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또 자본이 밑받침이 되지 않아 병원 자체가 무너질 위기에 놓이게 된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라이프>는 단순한 선악구도로 이야기를 끌고 갈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이 작품이 기획의도에서 담아놓은 것처럼, 이 이야기를 우리 몸에 바이러스가 침범했을 때 벌어지는 ‘항원-항체 반응’의 구조로 풀어내려 하기 때문이다. 상국대학병원이 우리의 몸이라면 이제 구승효로 대변되는 항원이 침범한 그 몸에서 문득 깨어난 예진우라는 항체는 어떤 반응을 일으키며 이 병원이라는 몸의 상태를 변화시킬까. 첫 방이지만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JTBC)

‘라이브’ 배성우·배종옥, 최고의 경찰부부가 중징계라는 건

“짜증나 진짜. 앞으로 나보고 열심히 살란 소리 하지마. 맞잖아. 엄마 아빠처럼 열심히 살면 뭐하냐? 결과가 고작 이건데. 솔직히 말해서 엄마 같은 정직한 경찰이 어딨냐? 근데 그런 사람들한테 조직이라는 게 상은 못줄망정 중징계나 주고.”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에서 오양촌(배성우)의 딸 오송이(고민시)의 볼멘소리에는 잘못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부모에 대한 존경이 들어있다. 표현은 제 아버지를 닮아 퉁퉁거리지만 그 말 속에는 열심히 살았고 정직하게 살아온 경찰로서의 아빠, 엄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있는 것. 

동네에 출몰한 연쇄강간범을 힘겹게 잡았지만, 너무 늑장수사를 했다는 여론에 경찰이 질타를 받자, 수뇌부는 비겁하게도 이 사건을 해결한 안장미(배종옥)를 희생양으로 내세운다. 자기들 모가지 지키려고 안장미에게 모든 책임을 떠안겼던 것. 사실상 특별수사팀을 일찌감치 꾸리자고 했던 건 안장미였고,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던 건 그 윗사람들이었다. 

물론 남녀 성차별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안장미를 희생양으로 세우는 그 자리에 있는 윗사람들이 모두 남자들이라는 점은 에둘러 이 문제를 부각시킨다. 현장을 뛰며 힘겹게 그 자리까지 올라온 안장미지만 비겁한 윗사람들의 책임 떠넘기기로 그는 그간의 고과들을 모두 날리게 되어버렸다.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 안장미를 이혼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후로 더 살가워진 전 남편 오양촌이 위로한다. 그러고 보면 오양촌 역시 억울하게 중징계를 먹었다. 바다에 뛰어든 사람을 구하러 뛰어들었지만, 그가 잘못된 줄 알고 따라 들어간 사수가 목숨을 잃고 그는 억울하게도 음주상태였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썼다. 오양촌은 “대한민국 최고의 경찰부부”가 둘 다 “중징계”라며 허탈한 마음을 애써 웃음으로 털어내려 했다. 

<라이브>는 물론 경찰들의 ‘실상’을 담는다는 기획의도에 따라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로 다뤄지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여기서 한 가지 보이는 점은 분명하다. 일선에서 뛰는 경찰들이 힘겨워지는 건 그 사건현장도 현장이지만 경찰들에게 불리한 법 조항이나 경찰 내의 부조리한 시스템들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나쁜 놈들을 때린 죄로 독직폭행으로 경찰직을 파면당하고 경비원을 전전하며 살아가다 주민의 차를 대신 주차하려다 사고까지 내자 비관해 자살을 시도하는 경찰의 이야기나, 경찰서에서 자해한 주폭 때문에 독직폭행 누명을 쓰게 된 경찰 때문에 병원을 찾아가 무릎까지 꿇는 경찰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이들이 이렇게 된 건 어찌 보면 열심히 일했던 것 때문이 아닌가.

대장암에 걸렸지만 동료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얘기하지도 못하는 지구대장 기한솔(성동일). 그가 수술을 통해 말기가 아니라 1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소식을 들은 경찰들이 모두 환호하는 장면은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남긴다. 암을 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가 기뻐하는 모습. 거기에는 암 걸리게 만드는 현실에 억울해도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그들의 쓸쓸한 모습 같은 게 묻어난다. 

그런데 이게 어디 경찰사회에서만의 이야기일까. 아마도 권력이 스며들어 있는 우리네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어디서나 발견되는 일일 게다. 저 오양촌의 딸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하지 않을까. “열심히 살아봐야 뭐하냐”는 이야기를 우리의 후세들의 입을 통해 듣지 않으려면.(사진:tvN)

‘학교 2017’, 학교가 부조리한 현실의 축소판이라는 건

이걸 어떻게 청소년 드라마라고 볼 수 있을까. KBS 월화드라마 <학교 2017>은 어른들이 불편한 드라마다. 학교라고는 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대로 우리네 부끄러운 현실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학교. 그래서 공부를 못하면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학교. 심지어 공부를 못한다고 문제아가 되는 이 학교의 시스템은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현실 그대로다. 

'학교2017(사진출처:KBS)'

끝없이 이어지는 시험과 그렇게 나온 결과를 버젓이 벽보에 붙여 자신의 등수를 확인시키는 이 학교에서 은호(김세정)는 성적이 바닥이다. 공부에는 영 재능이 없지만 이 아이는 웹툰 작가가 꿈이다. 하지만 학교는 이 아이의 꿈 따위는 소중하게 바라봐주지 않는다. 애써 그려온 습작노트를 보고 그 꿈의 등을 두드려주지 못할망정, 선생님은 그 노트를 빼앗아가 버린다. 소중한 노트를 찾기 위해 교무실에 몰래 들어가게 된 은호는 마침 그곳에서 불을 지르고 있는 의문의 인물을 목격하고, 오히려 자신이 그 범인으로 몰려 퇴학 위기에 처한다. 

학교는 범인을 찾기보다는 희생양을 찾으려 한다. 범인 잡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른바 학교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호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음에도 그녀를 범인으로 몰아세운다.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 은호는 희생양으로서 최적의 인물이 된다. 제자를 구제하려는 담임선생님의 노력은 무시된다. 결국 그렇게 제자가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선생님과 그녀와 아빠 같은 힘없는 어른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자신들을 자책한다. 

학교 바깥은 더 살벌한 현실이라는 것을 선생님들조차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학교가 그 현실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바깥으로 내몬다. 과연 이건 학교라는 곳이 해도 되는 일일까. 학교가 너무 쉽게 아이들을 바깥으로 내몬다는 담임선생님의 한탄 속에 우리네 현실의 부끄러운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이 학교라는 단어를 사회로 바꾸면 그 굴러가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똑같다는 걸 우리는 알 수 있다. 공부를 못하면 있을 수 없는 곳이 학교라지만, 그 공부 또한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고가의 학원을 보내고, 심지어 족집게 과외를 시키는 부모의 아이들이 학교의 상위권을 형성하고, 그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만을 위한 학교가 되게 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세한다. 가진 것 없는 집의 아이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범인으로 몰린 은호에게 공부를 못한다며 그래서 문제아라는 선생님의 지적이 이어지고, 청문회를 예로 들어 결국은 사실대로 다 불게 되어 있다며 몰아세우자, 은호가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이 모두 수재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장면은 그래서 따끔하다. 그렇게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걸 몸으로 체득하며 자라나 이른바 성공이란 걸 한 어른이 어찌 제대로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학교 2017>은 그래서 그저 청소년 드라마가 아니다. 그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우리네 현실의 축소판이고, 그런 학교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청소년 드라마가 풋풋한 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이런 살벌한 현실을 담게 되었을까. 그것이 우리네 학교의 현실이기 때문이겠지만.

‘쌈마이’, 무엇이 이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가로막나

“왜 짐이 이것 밖에 안 되냐?” 이젠 헤어져 자신의 짐을 챙겨달라는 백설희(송하윤)에게 김주만(안재홍)은 화가 났다. 그건 아마도 그녀에게 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리라. 무려 6년 간 사귀면서 그녀가 자신을 위해 산 물건들이라는 것이 한 박스도 안 되는 싸구려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토록 살뜰히도 챙겼던 그녀가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백설희는 결국 김주만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그렇게 빠져나간 백설희의 빈자리를 김주만은 톡톡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매 순간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러니 그녀가 없는 자리가 마치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아프고 허전하고 멍할 수밖에. 

그들이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김주만이 자신을 따르던 인턴 장예진(표예진)의 집에서 어쩔 수 없이 외박을 하고 들어온 것이었지만, 그것만이 이별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이전부터 그들 관계는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지나치게 김주만만을 챙기고 자존감이 바닥인 백설희. 그녀의 사랑은 헌신적이지만, 그런 헌신은 김주만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온통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그녀를 현실적으로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6년 간을 뛰고 또 뛰었지만 그다지 바뀌지 않는 현실. 최고는 아니어도 “중간” 정도를 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녀가 말하는 ‘소소한 행복’은 그에게는 어떤 무력감을 주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김주만과 백설희의 이별은 서로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챙기려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서로 사랑하고 챙기는 것이 행복으로 이어지겠지만, 그것이 무거운 현실 앞에 서게 되자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 백설희를 위해 김주만은 전셋집 한 칸이라도 마련하려 애써왔고, 김주만을 위해 백설희는 그를 챙겨도 자신은 돌보지 않았다. 이들의 이별이 남다른 아픔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쌈마이웨이>는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쉽게 부숴버리는 현실을 담고 있다. 그들은 그저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하고픈 일을 하는 것을 꿈으로 여기고, 최고는 아니더라도 중간 정도의 행복을 원하지만 그건 번번이 갑질 하는 현실 앞에 무너진다. 그 현실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가진 것 없는 흙수저 청춘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비열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쌈마이웨이>는 이런 현실에 대한 청춘들의 ‘돌려차기 한 방’을 그리려 한다. 그래서 일찍이 가난한 현실 때문에 접었던 무도의 꿈을 고동만(박서준)은 다시 걸어가려 하고, 스펙이 없어 접었던 아나운서의 꿈을 최애라(김지원)는 다시 꿈꾼다. 그렇다면 김주만과 백설희는 이 현실 앞에 무너진 사랑 앞에서 어떤 ‘돌려차기’를 보여줄까. 그깟 현실 따위 훌훌 털어내고 다시 그들은 사랑할 수 있을까. 

고동만과 최애라의 꿈이 작게라도 이뤄지길 바라는 것처럼 시청자들은 김주만과 백설희의 사랑이 그 현실 앞에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성공과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바깥에서 얼마든지 꿈을 꾸고 사랑할 수 있기를. 저 부조리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시스템이 그들을 무릎 꿇게 하지 않기를.

‘품위녀’ 김선아, 통쾌한데 불편한 이유는 뭘까

저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강남의 부호들로서 뭐든 사고 싶은 건 사고 하고 싶은 건 하는 그들이다. 그들이 사는 집 자체가 서민들에게는 현실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문을 통과해 들어가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되는 대저택에, 도대체 방이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는 집안. 게다가 그 집에서 주인들을 위해 일하는 아주머니들.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가 보여주는 강남의 부호들이 사는 모양은 보통의 서민들에게는 위화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게다가 이 걱정 하나 없이 살아갈 것 같은 이들이 하는 짓들을 보면 가관이다. 불륜은 마치 공기처럼 퍼져 있고, 심지어 공공연히 아내에게 내놓고 내연녀 이야기를 하는 남편도 있다. 아는 언니의 남편과 바람을 피우고 자신의 레지던스에서 상습적으로 불륜을 저지르고, 딸의 미술선생과도 바람이 난다. 마치 일반적인 삶은 이제 지겹다는 듯 탈선은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니 이 세계 속으로 들어간 박복자(김선아) 같은 흙수저의 서민이 가진 알 수 없는 분노와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욕망을 채우려는 그 모습들에 시청자들은 양가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편으로는 저 위화감을 주는 세계를 파괴해가는 박복자의 행각에 통쾌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녀가 저지르고 있는 그 범죄가 주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건 그나마 이 세계에서 어떤 자신만의 룰을 지키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아진(김희선)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모두가 불륜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욕망을 분출하며 살아갈 때 그녀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모두가 집안일을 해주는 아주머니들을 하녀처럼 부릴 때 그녀는 그 분들의 자녀의 생일선물을 챙겨준다. 물론 그것 역시 그녀가 가진 허영일 수 있다. 자신은 충분히 가졌지만 또한 관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박복자에 의해 우아진의 세계가 깨져버리는 이 구도는 아마도 <품위 있는 그녀>가 의도하고 있는 자본화된 사회의 부박함을 잘 드러낸다. 이름처럼 박복한 여자의 도발로 인해 그 우아한 세계가 깨져갈 수 있는 건 이 모든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안태동 회장(김용건)이기 때문이다. 우아진은 박복자에게 멈추라고 했고, 급기야 “나가야 한다”고 명했지만 어느새 안태동의 마음을 사로잡은 박복자는 그 이야기를 듣지 않는 존재가 된다.

돈줄이 모든 권력의 중심이 되고 그 중심을 쥐는 것으로 이 시스템의 권력을 쥐게 되는 박복자는 그래서 이제 우아진을 비롯한 그 집안을 장악하는 새로운 실세로 등장한다.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고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건이지만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이 공고한 시스템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드라마는 말해준다. 박복자에게 느끼는 동정과 분노는 이 시스템의 을로서 갖게 되는 이중적인 감정이다.

이로서 드디어 만들어진 우아진과 박복자의 대결구도는 그래서 흥미진진해진다. 시청자들은 때론 박복자의 도발 앞에 우아진이 그녀의 욕망을 멈추게 해주길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우아진의 그 위화감을 주는 세계가 박복자에 의해 깨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미 드라마 초반에 등장한 바 있다. 박복자의 죽음. 그것은 욕망의 끝을 말해주면서 동시에 파괴된 우아진의 세계를 말해주는 일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비극이지만 또한 우리 사회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는 이 대결구도가 가진 흥미진진함과 그 안에서 인물들이 일으키는 동정과 분노의 양가감정의 힘에 의해 팽팽하게 흘러간다. 그러면서 그 대결구도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축소판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담아낸다. <품위 있는 그녀>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가져가는 독특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역적’, 이토록 흥미로운 홍길동의 재해석이라니

난세는 영웅을 원하는 걸까. 1998년에 방영됐던 SBS 드라마 <홍길동>은 당시 IMF 외환위기라는 시국과 맞물리며 대중들의 열광을 이끌어냈던 바 있다. 그렇다면 2017년 현재 홍길동을 재해석한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이 시국의 어떤 지점들을 겨냥하고 있을까. 

'역적(사진출처:MBC)'

<역적>은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다루면서도 그 이름을 제목에 넣지 않았다. 대신 ‘역적’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달게 된 건 이 드라마가 홍길동을 소재로 가져왔지만 그 이야기는 우리가 알던 ‘홍길동전’과는 다를 거라는 걸 말해준다. 

실제로 <역적>은 홍길동(윤균상)을 서자 출신의 적서차별을 겪는 인물로 그리지 않고 아모개(김상중)라는 순수 노비 혈통의 아들로 탄생시켰다. 게다가 도술을 부리는 홍길동이 아닌 애기장수 설화를 가져와 홍길동을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로 그려냈다. 

길동이 시대의 역적이 되어가는 그 과정은 신분사회의 구조 안에서 물건 취급받으며 살아가는 노비들의 처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어머니가 죽음을 당하자 주인을 죽이고 익화리에서 새 삶을 살아가던 길동이네 집안과 이웃들은 복수의 칼날을 갈던 참봉부인 박씨와 그녀를 돕는 충원군(김정태)에 의해 갈갈이 찢어진다. 

아모개는 옥사에서 모진 곤욕을 치른 후 가까스로 목숨만 살려냈고, 길동의 형과 여동생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길동이 다시 아버지와 그를 형제처럼 따르던 무리들을 모아 충원군에게 복수를 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개인적인 복수이면서 동시에 신분사회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혁명적 행동이 된다. 

즉 1998년에 다뤄진 <홍길동>이 백성을 핍박하는 양반들과 싸우는 서민 영웅의 양상을 보여줬다면, <역적>은 제목과 이야기 설정에서부터 보이듯 훨씬 더 국가 체제 자체와 싸워나가는 영웅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양반들 곳간을 털어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것 정도로는 비뚤어진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이 드라마가 정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적>은 사건 전개만이 아니라 홍길동과 그 가족, 이웃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연산군(김지석)을 위시해 그 수직적인 권력 구조 속에서 백성들을 핍박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대비시킨다. 홍길동과 함께 하는 가족 같은 익화리 사람들의 차별 없는 삶은 그들이 밥을 지어먹는 장면에서부터 여실히 나타난다. 남자고 여자고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다 함께 밥을 짓고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은 그들이 강조한 ‘형제로서의 삶’을 잘 보여준다. 

<역적>이 세상의 오랜 적폐와 대결하는 방식은 그래서 훨씬 더 세련되어졌다. 즉 복수나 치기어린 협객 흉내가 아니라 자신들이 꿈꾸는 ‘형제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꿈꾸고 실행하는 것으로 세상과 대결하고 있다는 것. 마치 그래픽 노블을 보는 듯 어찌 보면 만화 같은 이야기를 사뭇 진지하게 풀어내는 <역적>의 방식은 그래서 지금의 시국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권력을 사유한 자들의 농단 앞에 촛불을 들고 있는 국민들이 그간의 적폐를 깨고 새로운 세상을 요구하고 있는 현재, <역적>의 울림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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