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토록 <너의 이름은>의 공감에 간절해졌을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에 대한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겨우 개봉한 지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애니메이션이고 그것도 우리 대중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런 흥행은 이례적인 느낌이다. 물론 대중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있어서 국가 간의 정서가 앞세워질 필요는 없을 것이지만.

 

사진출처: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이런 국가 간의 정서를 떼놓고 오로지 작품만으로 들여다보면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꿈을 통해 타인의 몸과 자신의 몸이 바뀐다는 판타지 설정은 사실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스위치> 같은 영화가 그런 소재를 다룬 바 있고, 우리에게도 <시크릿 가든>으로 익숙해진 소재가 아닌가.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해온 일련의 작품들이 가진 극도로 현실적이고 섬세한 감정들이 심지어 문학적으로까지 느껴지던 전작들을 염두에 놓고 보면 이런 판타지 설정은 조금은 과하게 다가온다. 몸과 몸이, 그것도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바뀌는 그 상황은 유머러스하게 전개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으로 보면 너무 복잡하고 장황하다.

 

물론 그런 변화는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만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 중 <언어의 정원>이나 <초속5센티미터>를 본 관객이라면 너무나 스펙터클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게다. <언어의 정원> 같은 작품이 놀라웠던 건 사실 그 안에 담겨진 스토리가 지나치게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거기 있는 인물들의 감정표현이 그 어떤 스펙터클보다 더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초속5센티미터>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는 같은 학교에서 지내던 두 아이가 어쩌다 서로 떨어져 멀리 전학을 가게 되고 서로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다 어느 눈 오는 날 그 먼 거리를 달려가 서로 만나는 이야기가 전부다. 하지만 그 단순한 이야기 속에 여자 아이를 만나러 가는 남자 아이의 감정은 마치 문학작품 속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깊게 요동친다. 이런 내적인 감정 표현들이 빛의 마술사라고도 불리고 배경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섬세한 붓놀림에 의해 완성된다. 그의 작품은 실로 인물이 내면을 직접 말하기보다는 그 인물이 서 있는 배경을 통해 말하는 것으로 놀라운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이런 점을 두고 보면 <너의 이름은>은 이런 내면의 이야기보다는 훨씬 행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이건 아마도 단편과 장편의 차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문학적인 그림들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너의 이름은>이 우리네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그 나마 이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추구하는 또 하나의 지점으로써, ‘타인에 대한 공감이라는 주제의식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의 몸이 바뀌어진 것을 알게 된 남녀가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그 과정은 사실 이 애니메이션이 그리고 있는 스펙터클의 스토리보다 더 우리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이 서로에 대한 공감은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벌어지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사적인 차원을 넘어 공적인 차원으로까지 나아간다. 세월호 참사 같은 아픈 기억을 가진 우리에게 바로 이 부분은 특별히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그 마지막 장면의 간절함은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적인 사랑의 차원을 뛰어넘어 공적인 마음으로까지 간절하게 읊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우리 안의 말들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하다.

 

공감에 대한 간절한 마음. 아마도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에게 이만큼 큰 건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워버리려 하고 또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지울 수 없고 기억 하겠다 다짐하게 되는 그 간절한 공감의 마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도호쿠 대지진을 겪으며 갖게 된 트라우마를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내려 했다고 한다. 그건 그가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지금껏 들여다봤던 바로 그 방식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들도 알고 있다. 바로 이 트라우마 역시 공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통해 겨우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김은숙 작가의 PPL, 놀라울 때 있지만 과도할 때도

 

김은숙 작가는 확실히 드라마 장인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를 보면 그녀가 거두고 있는 성취가 그간 지속적인 작품 활동으로 쌓여온 공력의 결과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때 연인 시리즈로 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그녀는 또한 그 커다란 성공 이후에 그 멜로 코드의 반복으로 슬럼프를 겪기도 했었다. 드라마가 너무 대사빨로만 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그녀는 확실히 성숙했던 것 같다. 올해 그녀가 내놓은 <태양의 후예>는 그녀 작품의 본판인 멜로를 액션과 전쟁과 재난 장르로까지 접목시켜 확장시켰다. 그리고 <도깨비>는 이를 판타지까지 넓혀 동서를 뛰어넘는 다양한 서사들을 자유자재로 엮어내는 장인의 경지를 보여줬다. 멜로와 대사에 있어 어떤 경지를 성취한 작가가 이제는 서사와 세계관까지 갖게 됐으니 이보다 강력해질 수가 있을까.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하지만 김은숙 작가가 장인의 경지에 오른 건 드라마의 서사를 짜는 것만이 아니다. 그녀는 또한 PPL에 있어서도 장인 경지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크릿 가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김주원(현빈)의 서재에 놓였던 다섯 권의 시집 즉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진동규)’, ‘가슴 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홍원철)’,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황동규)’,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황인숙)’, ‘너는 잘못 날아왔다(김성규)’가 화제가 되며 서점가에 이상돌풍을 일으켰던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책이 PPL로 들어왔지만 그것이 작품 캐릭터와 어우러지고 또 독특한 시적 정서를 만들어냄으로써 드라마의 밀도를 높여주었고, 또한 책 역시 불티나듯 팔려나갔으니.

 

이런 상황은 <도깨비>에서도 반복된다. 드라마 속에 짧게 등장했던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은 이 드라마의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내며 서점가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이 시가 들어 있는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 지도 몰라라는 김용택 시인이 선별한 여러 시인들의 시를 모아놓은 시집은 단박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가끔씩 드라마 속에 회고조로 들어가는 지은탁(김고은)이 밝게 웃으며 통통 뛰는 장면은 이제 사랑의 물리학의 시 구절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PPL을 이토록 작품의 내용과 어우러지게 배치하고 그것을 드라마의 정서로까지 만들어내는 건 김은숙 작가의 PPL 경지가 보통 수준을 넘어섰다는 걸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경지가 놀라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하다는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다. 생각해보면 <도깨비>라는 작품은 PPL을 넣는 것이 그 설정 상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인물들이 거의 없다. 도깨비(공유)와 저승사자(이동욱)가 등장하고, 도깨비 신부로서의 지은탁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현실적인 인물들이 아니다. 즉 작품 속 판타지적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작품 속 인물들조차 PPL이라는 상품과 어우러지는 대목이다.

 

이름도 없고 그 흔한 휴대폰도 없는 저승사자가 스마트폰을 구입해 새로 만난 연인 써니(유인나)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그 상황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PPL로 연결된다. 사실 없는것이 캐릭터인 저승사자이기 때문에 스마트폰 작동법도 익숙하지 않다는 점은 그 PPL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에게 해당 스마트폰의 기능을 설명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놀라운 것이 이 상황의 액면은 저승사자가 스마트폰의 PPL을 하는 장면이라는 점이다. 이게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지지만 김은숙 작가의 세계에서는 가능함을 넘어서 심지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상황까지 나아간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극대화가 과도함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물 한 방울이 더해져 넘쳐버리는 잔처럼 아슬아슬하다. 도깨비가 특정 커피를 마시고 숙취해소 음료를 선전하는 건 아무리 봐도 과도하다. 때때로 시청자들은 그래서 어떨 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PPL을 필요악이다. 드라마가 일정 부분의 제작비를 거둬가기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과도해지면 작품 자체를 망가뜨린다. 드라마가 상품이 아니고 작품이 되는 건 그 작품 속의 이야기들이 어떤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 너무 많은 상품들이 들어가 공감을 방해하고 거대한 상품 전시장 같은 느낌을 주기 시작하면 작품은 상품의 이미지가 압도하게 된다. 시청자들은 지속적으로 상품을 봐야 하는 그 피로함과 불편함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김은숙 작가가 드라마의 장인이 되었다는 건 의심할 여지없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PPL의 장인이라는 점은 그 명성에 남는 위태로움이 아닐 수 없다. 적절한 선을 유지하는 것. 작품이 제작될 수 있기 위해 최소한의 PPL을 유지하는 건 모두가 공감할 수 있지만, 아예 이걸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작정하는 순간 작품은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제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이런 상품에 공감을 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제발 해도 너무 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실장님부터 초능력자까지, 남자주인공들의 진화사

 

미소년의 얼굴에 어린 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카리스마. 독특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 김수현에게 <드림하이>의 송삼동은 잘 맞지 않는 옷이었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의 군왕이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는 남파간첩(거의 아이돌에 가깝다)을 거쳐 <별에서 온 그대>의 초능력 외계인 캐릭터는 그의 아우라를 완성시켰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지금 현재 김수현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을 보장받는 남자주인공의 끝판왕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라는 캐릭터가 사실상 지금껏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들이 여성들에게 주던 판타지를 거의 모두 가진 인물이며, 그 복합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을 아무런 이물감 없이 그가 연기해내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외계에서 와 조선시대부터 4백년을 산 인물 도민준. 그는 일찍이 사둔 잠실벌과 압구정의 땅으로 어마어마한 재벌급의 재산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다, 4백년 동안 의사에서부터 변호사까지 안 해본 직업이 없는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의 집 한 켠에 마련된 도서관을 방불케하는 서재는 그의 지적이고 감성적인 능력을 표상하고, 시간을 멈추고 사물을 움직이는 초능력은 실현 불가능한 일들까지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핵심은 이런 재산, 능력, 지성, 감성 게다가 초능력까지 가진 인물이 오로지 천송이(전지현) 한 사람만을 마음에 두고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해도 인류를 위해 한 목숨 바치는 영웅을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판타지를 제공해줄 수 있는 인물. 게다가 4백년의 공력으로 이 모든 걸 갖추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늙지 않는 미소년 외모의 소유자. 그가 바로 도민준이라는 남자 주인공의 정체다.

 

초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 캐릭터는 작년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수하(이종석)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그 매력이 입증된 바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인 박수하는 그 놀라운 소통능력으로 억울한 이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장혜성(이보영)이라는 한 여성을 위한 일이다. 천송이와 도민준, 장혜성과 박수하라는 커플의 공통점은 남자주인공이 미소년에 초능력자라는 점이다. 여성들은 젊고 아름다운 육체와 함께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남자주인공은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에서부터 <시크릿 가든>의 현빈, <상속자들>의 이민호로 이어지는 김은숙표 멜로의 재벌이거나, 주상욱이나 이동욱 같은 성공적인 실장님 캐릭터, 혹은 전문분야에 능력을 갖췄으나 성격은 모난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나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범수 같은 인물들이 얼굴을 달리 하며 반복해서 등장해왔다. 하지만 이종석과 김수현에 이르면 이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판타지로까지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남자주인공이 이처럼 점점 초능력을 갖춘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현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점점 커져간다는 걸 말해준다. 슈퍼히어로들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이 만들어낸 상징들이 아닌가. 하지만 서구의 슈퍼히어로들이 전 지구적인 위기와 맞서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 우리네 슈퍼히어로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적인 삶에 오히려 집중한다는 것이 완전히 다른 특징이다. 이것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일단 국가나 인류 같은 거창한 꿈에 대한 허무주의가 그 안에는 들어 있다. 정치인들이나 국가 지도자들이 말해온 거대 담론들이 정작 서민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단 말인가. 그러니 퇴행적이라고 비판받을지언정 바로 직접적으로 나를 돕는 슈퍼히어로를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 변호사를 돕는 박수하는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변호인>이 서민들을 신뢰하게 한 점은 국가와 국민을 얘기해도 그것이 거대담론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친조카 같은 한 국밥집 아들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주인공 도민준이라는 슈퍼히어로는 국가나 인류 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극도의 허무주의를 보여준다. 그가 천송이라는 한 여성을 위해서만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다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거기서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4백년을 살다보면 그도 그럴 것이다.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뀌고 일제와 남북분단을 경험한 인물이라면 세상의 변화에 초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인물 속에 담겨진 사적인 욕망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허무는 씁쓸함을 남긴다.

 

김수현이라는 배우는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욕망과 좌절을 모두 함께 캐릭터를 통해 껴안고 있는 셈이다.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미소년의 여전한 장난기와 때로는 어른스럽게 여성을 보호해주는 카리스마, 그리고 한 편에 느껴지는 어두운 허무의 그림자는 그래서 그가 도민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는 이 시대의 징후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얼굴 속에는 그간 남자 주인공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던 수많은 캐릭터들의 면면들이 혼재되어 있다.

신데렐라 없어도 더 쫄깃한 '응답1994'의 멜로

 

멜로는 신데렐라가 있어야 된다? 적어도 <응답하라 1994>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상속자들> 같은 드라마가 초거대 재벌가들 사이에 들어간 신데렐라 이야기로 너무 뻔하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응답하라 1994>는 신데렐라 없고 심지어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멜로만으로도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과거 <시크릿 가든>의 현빈과 하지원이 그랬고, <최고의 사랑>의 차승원과 공효진이 그랬듯이 잘된 멜로의 연기자들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 <응답하라 1994>의 멜로는 정우라는 배우에 대한 신드롬을 만들고 있고 또한 늘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고아라까지 매력적인 연기자로 재탄생시켰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처럼 촌스런 멜로의 주인공들이 이토록 주목받게 된 것은.

 

<응답하라 1994>는 <응답하라 1997>이 그랬듯이 현재의 여주인공이 과거 1994년의 어떤 인물과 결혼을 했는가를 찾는 다소 단순한 멜로를 그린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멜로가 의외로 힘을 발휘한다. 누가 누구와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어떻게 관계가 발전됐는가 하는 점은 마치 첫사랑의 추억담처럼 우리를 아련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친오빠처럼 다가와 점점 가슴 뛰게 만드는 오빠로 느껴지게 되는 쓰레기 정우나, 그저 하숙집을 들락거리다 점점 가까워지게 되는 칠봉이 유연석은 그 설정 자체가 신데렐라 멜로와는 다른 <응답하라 1994>의 특별한 멜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은 연세대라는 괜찮은 학벌의 소유자에다 직업적으로도 향후 의사가 될 의대생이거나 프로야구의 에이스가 될 야구선수다.

 

이것은 나정이(고아라)네 하숙집에 들어와 그녀와 장차 결혼할 지도 모를 다른 후보군들도 마찬가지다. 해태(손호준)는 순천시 버스회사의 막내아들이고, 빙그래(바로)의 부모는 충북 최대 규모의 양계장을 운영하며, 삼천포(김성균)는 한번 나가면 기름 값 1500은 드는 배를 가진 집의 아들이다. 물론 이들은 초재벌도 아니고, 드라마는 오히려 이 ‘잘사는 촌놈들’이라는 설정을 신데렐라 이야기로 활용하려 들지도 않는다. 유머 코드라면 모를까.

 

이들 촌놈들이 상경해 벌이는 멜로는 특별할 것 없는 당대 대학생들의 그것이다. MT를 가고 미팅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팬클럽 활동을 하며 하숙방에서 술내기 게임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그들이 보여주는 멜로란 오지 않는 삐삐를 밤새워 기다리거나 게임을 빙자해 뽀뽀를 하거나 혹은 아플 때 꼭 껴안아주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등장하는 그 흔한 결혼 반대하는 부모들도 보이지 않고 백화점을 통째로 쇼핑하듯 과시하는 남자의 모습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94>의 멜로가 그 어떤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쫄깃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멜로 속에 존재하는 평등한 시선과 특유의 공감대 덕분이다. 이 드라마에는 1994년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어딘지 촌스럽고 능숙하지 못한 인물들의 행동들이 오히려 멜로를 더 아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정이를 좋아하면서도 표현은 친오빠처럼 무뚝뚝하게 던지는 쓰레기가 그렇고, 또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애써 속내를 감추려는 칠봉이가 그렇다. 해태와 조윤진(도희)의 관계를 보라. 그들은 대부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면서 가까워진다.

 

<응답하라 1994>가 신데렐라 이야기 없이도 더 아련한 멜로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은 1994년이라는 과거의 한 지점이 가진 힘 때문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 그것도 첫 사랑의 추억이 있는 그 청순의 한 기억이란 현실적인 것과 일정부분 거리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첫 사랑의 설렘에 집안 형편이나 학벌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것은 또한 어쩌면 1994년만 해도 지금처럼 극심한 양극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초재벌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와 거의 하녀처럼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을 보호해주는 이야기는 그것이 판타지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치졸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돈이 많으면 많았지 그것이 사랑도 넘을 수 없는 계급이 되는 현실, 얼마나 치졸하고 치사한가.

 

그래서 이러한 양극화로 인한 수직적인 계급구조가 잘 보이지 않는 나정이네 하숙집에서 벌어지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멜로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다가온다. 돈이나 현실이나 집안이나 학벌과 상관없이 누군가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 설레며 하는 사랑.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사랑은 그러나 심지어 치사한 신데렐라 스토리에마저 빠져들게 만드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랑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요즘 청춘들은 학비 마련하랴 취업 준비하랴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응답하라 1994>가 보여주는 이 너무나 편안하고 때로는 낭만적으로 여겨지는 청춘과 사랑이 왜 판타지가 되지 않을까. 이것은 양극화를 더 첨예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멜로의 극성을 만들어내는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응답하라 1994>의 평범한 멜로가 더 강력한 이유다. 양극화 자체를 지워버린 완전한 평등의 멜로라니. 대단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대중을 잡아끄는 하지원만의 특별함

'더킹투하츠'(사진출처:MBC)

역시 하지원이다. 단지 연기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서는 무언가 대중들을 잡아끄는 특별함이 있다. 아마도 치열하게 벌어진 방송3사의 수목극 대전에서 '더킹 투하츠'가 기선제압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다름 아닌 바로 이 하지원만이 가진 특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모'에서부터 '발리에서 생긴 일', '황진이', '시크릿 가든'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에서의 성공 보증수표가 된 하지원만의 그 특별함, 그것은 도대체 무얼까.

그 첫 번째는 우리가 여배우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를 가차 없이 깨고 들어오는 하지원의 특별한 연기투혼에 있다. 물론 최근 들어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투혼을 발휘하는 여배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주인공이라면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말로만 씩씩한 캔디형 신데렐라다. 하지원 역시 '시크릿 가든' 같은 작품에서 캔디형 신데렐라 캐릭터인 길라임을 연기했지만, 그녀가 달랐던 점은 대사만이 아닌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 몸으로 보여주는(?) 진정성은 '다모'에서부터 '황진이', '시크릿 가든'까지 계속 이어지는 하지원만의 차별점을 만들어냈다. '시크릿 가든'에서 스턴트우먼으로서의 멋진 액션 연기를 통해 그녀만의 매력을 드러냈던 것처럼, '더킹 투하츠'에서도 북한특수부대 여자1호 교관 김항아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그녀는 강렬한 액션으로 시선을 끌어 모았다. 바로 이 여배우로서 몇 안 되는 액션 연기가 자연스럽다는 점은 하지원만의 온몸을 던지는 연기를 가능하게 하고, 그것은 그녀의 연기에 진정성을 더해준다.

액션 연기가 더해진 하지원이라는 존재는 그래서 단지 예쁜 여배우가 아니라 멋있는 여배우로 자리매김한다. 이 점은 하지원이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 팬층까지 폭넓게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한 지점이 된다. 하지원만의 두 번째 특별함, 즉 중성적인 매력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더킹 투하츠'에서 데이트를 나간 하지원이 남자와 키스를 하려다 못하게 되는 장면은 그녀의 이 중성적 매력을 잘 드러낸다. 다가오는 남자를 기다리는 하지원의 얼굴은 소녀 같은 설렘을 던져주지만, 한 순간 무의식적으로 남자의 턱을 잡아채는 그녀의 동작에서는 소년 같은 털털함이 묻어난다. 이 여배우가 뿜어내는 중성적 매력은 여성 시청자들이 주도권을 쥐게 마련인 드라마 시청에 있어서 중요한 유인 포인트가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때론 이 과격하게까지 느껴지는 털털함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한없이 여성스럽게 변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외강내유형 캐릭터는 하지원의 멜로 연기가 특별해지는 세 번째 이유가 된다. 겉이 단단할수록 속의 부드러움이 더 빛나는 법.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입을 앙다물고 투혼을 드러내던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말 한 마디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때 그 감정이 전하는 강도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바로 이 하지원의 멜로가 갖는 힘은 그녀와 연기한 남자 연기자들이 모두 주목받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은 '다모'의 이서진,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 '시크릿 가든'의 현빈에 이어서 '더킹 투하츠'의 이승기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승기와 그가 연기하는 이재하라는 인물과의 궁합도 잘 맞는데다가, 하지원의 리드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온 몸을 던지는 연기투혼, 남녀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중성적인 매력, 게다가 상대 배우마저 빛나게 해주는 연기의 조합. 이것이 하지원이라는 배우만이 가진 특별함이다. 여기에 이미 '다모'를 통해 호흡을 맞췄던 이재규 감독과 '베토벤 바이러스'를 쓴 홍진아 작가의 탄탄한 대본까지 가세했으니 그녀의 캐릭터가 빛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더킹 투하츠'가 기대되는 건 어쩌면 이 하지원이라는 특별한 배우가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프'의 공주 이야기, 현대인과 공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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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프린세스'(사진출처:MBC)

이 시대에 공주 이야기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전형적인 공주 캐릭터에 대한 판타지는 물론 여전하겠지만, 현대인들에게 왕자님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왕자님에 의해 구원받는 그런 공주는 어딘지 공감이 잘 생기지 않는다. 이유는 당연하다. 현대여성들은 그렇게 수동적인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을 봐도, '라푼젤'이나 '슈렉'의 피오나 공주처럼 이제 전통적인 공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아예 제목에 공주를 달고 나온 '마이 프린세스'는 어떨까. 초반부까지만 해도 이 드라마가 그려낼 공주에 대한 기대감이 충분했다. 무엇보다 장차 공주가 될 이설(김태희)이란 캐릭터가 한없이 망가지고 무너지는 모습이 그랬다. 게다가 공주병까지 있는 공주라니. 얼마나 절묘한 캐릭터인가. 이 공주님 앞에 선 왕자님인 박해영(송승헌) 역시 기대감을 높였다. 초기에 이 왕자님은 어딘지 허당 기질이 다분해 보였다.

특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김태희의 망가지는 모습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이고, 김태희의 연기자로서의 기대감도 높였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이 무너진 건, 이설이 공주임이 밝혀지고 궁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궁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순하게 반복되었다. 즉 공주 되기의 어려움, 공주가 되는 걸 방해하는 오윤주(박예진), 이설을 보호해주려는 남정우(류수영) 교수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박해영과의 로미오와 줄리엣 식 로맨스. 이런 스토리는 전형적인 공주 스토리로 드라마를 회귀시켰다.

이설도 수동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오윤주의 방해와 모략에 늘 당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이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박해영이나 남정우의 도움을 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씩씩했던 캐릭터가 그저 대책 없이 눈물만 흘리는 캐릭터로 변하자, 박해영도 왕자 캐릭터로 회귀했다. 발랄함과 풋풋함이 사라지고 전체적으로 과거 전형적 공주 이야기로 돌아가면서 드라마는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시크릿 가든'이 신드롬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틀을 과감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존재로서의 신데렐라가 아니라 늘 당당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신데렐라. 길라임(하지원)은 늘 도도함과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김주원(현빈)과 늘 동등한 위치에 서 있었다. 이렇게 된 데는 길라임이나 김주원 모두 확실한 자기 직업, 즉 자기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마이 프린세스'에서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자기 세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설은 공주이고, 박해영은 외교관이지만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전문직 드라마일 필요는 없지만 주인공이 가진 일의 세계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랑만큼 중요하다. 당당함과 능동성 그리고 자존감이 그 일에서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이 사라진 멜로드라마는 반복적이고 틀에 박힌 사랑타령으로만 매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이 프린세스'가 초반부의 기대감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주인공들이 자기 세계를 빨리 되찾았어야 했다. 이설은 조금은 엉뚱해도 보다 적극적인 공주로서의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었고, 박해영 역시 이설 바라기로서만의 캐릭터에서 벗어났어야 한다. 그리고 본래 그리려 했던 이설의 성장과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멜로드라마는 물론 사랑을 그리지만, 요즘처럼 자기 성장에 주목하는 시대에는 사랑에만 목매는 드라마는 매력이 없다. 자기 성장으로서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사랑이 더 주목되는 시대다. '마이 프린세스'는 왜 처음의 기대감처럼 좀 다른 공주 이야기를 펼쳐나가지 못했을까.

타자를 다시 발견하게 만든 드라마, '시크릿 가든'

도대체 이 어메이징한 드라마가 우리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35%의 마지막회 시청률로 '시크릿 가든'의 모든 걸 얘기할 순 없을 것 같다. 정통 멜로드라마가 점점 퇴조하고 있는 요즘, 35%라는 시청률의 체감온도는 50% 이상의 국민드라마에 버금가는 것이니까. 그 체감을 말해주듯, '시크릿 가든'은 그 일거수일투족에 신드롬을 낳았다. "이 어메이징한 여자야." "이게 최선입니가? 확실해요?"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김주원(현빈)이 한 말은 그대로 유행어가 되었고, 그와 길라임(하지원)의 스타일은 유행이 되었으며, 심지어 그들이 읽었던 책들은 일거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도대체 '시크릿 가든'의 그 무엇이 이런 어메이징한 신드롬을 낳았을까. 먼저 지목할 것은 김은숙 작가의 보다 편안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대본이다. 연인 시리즈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은숙 작가가 '시크릿 가든'으로 다시 그녀가 잘 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들고 왔을 때, 많은 이들은 "또 재벌집 아들 이야기야"하고 의구심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신데렐라 이야기라도 전혀 다른 울림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김은숙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온에어'와 '시티홀'을 거치면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은 좀 더 의미가 깊어진 게 사실이다. 물론 시청률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었지만 '시티홀' 같은 작품은 멜로가 어느 정도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고, 무엇보다 이 작가가 이제는 하나의 공간과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어디 대중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국 다시 멜로로 돌아왔지만 '시크릿 가든'은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 편안한 세계 속에서도 충분히 새롭고 의미 있는 작품을 할 수 있었다.

'시크릿 가든'은 도시인들을 위한 동화다. 현대판 백마탄 왕자님은 김주원이라는 백화점 사장이고, 신데렐라이자 인어공주이자 앨리스인 길라임은 맹렬하게 온몸을 부딪쳐 살아가는 현대여성들을 표징하는 스턴트우먼이다. 드라마는 신데렐라, 인어공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고전들에서 모티브를 끄집어와 도시인의 동화로 재구성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세계가 부딪치면서 때론 갈등하고 때론 공감하며 차츰 하나가 되어가는 그 과정을 그린다. 신데렐라와 인어공주의 왕자님과 공주들의 만남은 김주원과 길라임의 얘기로 들어와서는 때론 해피엔딩을 때론 새드엔딩을 예고하며 대중들을 울고 웃게 했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혼 체인지라는 마법적인 판타지로 재탄생되면서 내가 아닌 다른 나가 되고 싶은 욕망과 거꾸로 다시 나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의 변화를 이 계층도 성별도 다른 남녀를 통해 보여주었다. 이 일련의 고전들을 끌어들여 '시크릿 가든'이 그려낸 세계는 그래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를 겪어가며 갖게 되는 공감의 이야기다. '그 남자'는 '그 여자'가 되고, '그 여자'는 '그 남자'가 되는 그 과정은 계층으로 남녀로 구분되는 현대인들의 하나가 되고픈 판타지를 끄집어냈다.

무엇보다 이런 대본 속 캐릭터들을 완벽하게 연기해낸 현빈과 하지원, 윤상현과 김사랑을 비롯한 미친 존재감의 조연배우들의 연기가 있었기에 이런 세계의 구축이 가능해졌다. 현빈 없는 김주원, 하지원 없는 길라임을 상상할 수 없게 된 것은 그만큼 캐릭터와 일체된 그들의 연기 덕분이었다. 물론 이런 대본과 연기를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신우철 PD의 연출도 빼놓을 수 없다.

명작은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흔한 것 속에서 오히려 명작은 탄생한다. 그처럼 상투적인 삶이 우리네 일상이며, 작품은 그 상투적인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시크릿 가든'은 그렇게 늘상 우리가 겪기 마련인 나와 타자와의 관계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당신의 '그 남자', '그 여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 그 평범해보여도 특별한 존재들은 어쩌면 바로 당신 옆에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인식이 바로 어메이징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우리에게 저지른 짓이다.

'시크릿 가든'의 엔딩, 새드일까 해피일까

노트에 비가 올 날짜를 적고,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모습을 그대도 똑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편지를 쓰는 김주원(현빈)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시리게 만든다. 그는 뇌사 상태에 있는 길라임(하지원)과 영혼 체인지를 통해 그녀를 살리고 자신이 대신 죽으려 한다. 저 앞에서부터 밀려오는 검은 구름과 섬뜩하게 내리치는 번개. 그 속으로 길라임과 함께 차를 몰고 달려 들어가는 김주원. 비가 오기 직전, 하늘이 어둑해지고 쿠르릉 천둥소리가 울리는 그 전조만으로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처럼, '시크릿 가든'은 어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전조의 드라마'다.

사실 이 전조는 첫 회에서 길라임이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는 스턴트우먼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다. 왜 하필 스턴트우먼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본 시청자라면 그 직업이 갖는 위험성에 앞으로 그녀에게 벌어질 사고의 전조를 예감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스꽝스럽게 시작된 영혼 체인지라는 상황 역시 후반부에 김주원이 빗속을 뚫고 뛰어드는 장면의 전조가 된다. 두 사람의 영혼이 서로 묶여버리는 이 상황이 주는 코믹한 스토리들은, 그 영혼 중 하나가 죽음 앞에 서게 되면서 순식간에 비극으로 돌변한다.

이 희비극을 넘나드는 사랑의 이야기 역시, 김주원이 길라임을 만난 뒤, 자꾸만 자기 주변을 서성대는 길라임의 잔상을 느끼는 장면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지만 거기 분명히 늘 존재하는 그녀. 그것은 축복이면서 비극적이다. 그리고 이건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은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영원히 물질적인 세계에 남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후반부에 길라임 대신 뇌사에 빠졌던 김주원이 깨어난 후, 엘리베이터 사고 이후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건 이 드라마가 결국 가야됐던 숙명처럼 여겨진다. 그들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분명 만났던 것 같은 기시감은 있지만, 마치 처음처럼 시작되는 사랑같이.

'시크릿 가든'의 엔딩에 쏠린 지대한 관심과 다양한 해석들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 때문이지만, 또한 이 드라마가 '전조의 드라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언가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역력한데다, 그 벌어지는 사건이 늘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어떤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한 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김주원과 길라임의 관계는 핑크빛으로 물들다가 핏빛으로 변하는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인다. 그러니 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스토리에 언뜻언뜻 보이는 전조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엔딩은 그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

아마도 이 사랑스런 커플의 해피엔딩을 요구하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통상적인 해피엔딩은 자칫 이 드라마가 구축해온 세계를 훼손할 수도 있다. 이 드라마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늘 그러하듯, 결혼에 골인하고는 "그래서 왕자와 신데렐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그런 스토리를 그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왕자와 신데렐라가 만나 완전한 소통에 이르는 길, 그래서 궁극의 행복에 도달하는 그 과정을 그리려 한 것이 '시크릿 가든'이다. 영혼 체인지는 바로 그 역지사지의 과정을 겪기 위해 동원된 방법이 아닌가.

만일 김주원이 길라임에게 몸을 내주고 대신 뇌사 상태가 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면 어땠을까. 그것은 과연 새드엔딩일까. '타자가 만나 완전한 하나가 되는 길'. '시크릿 가든'이 추구하는 이 주제의식을 두고 본다면, 김주원의 몸에 길라임의 영혼이 깃든 상태는 반드시 새드엔딩이라 치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길라임의 영혼이 차츰 세월을 겪으며 김주원의 몸과 완전히 동화되어갈 때, 그들은 비로소 완전한 하나가 될 테니까.

물론 이 드라마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김주원을 살려내고 청년 시절의 기억으로 되돌려 다시 길라임과의 사랑을 이어간다. 도대체 어떤 엔딩이 최선이 될까. 양자가 서로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거나 결혼에 골인했다는 식의 통상적인 엔딩이 과연 최선일까. 아니면 충격적일 수 있지만 오랜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새드앤딩 속에서 어떤 긍정을 찾아내는 게 최선일까. 이 '전조의 드라마'는 엔딩에 대한 어떤 전조를 미리 보여주었을까. 귀추가 주목되는 지점이다.

현빈의 눈빛이 저토록 깊은 줄 몰랐습니다. 장난기와 슬픔이 함께 깃들어 있는 그 눈빛은 마치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가 보여주듯, 희극과 비극은 같은 몸의 다른 표정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 합니다. 통렬한 웃음이 결국은 깊은 슬픔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 한없는 슬픔 속에서 오히려 헛헛한 웃음이 배어나오기 마련이죠. 희비극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우리네 삶을 가장 리얼하게 포착하는 면이 있습니다. 웃다가 울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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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가든'의 희비극, 현빈의 눈빛을 닮았다

현빈이라는 배우는 독특한 매력을 가졌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할 때만 해도 그저 미소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 눈빛에 우수가 깔리기 시작하더니 '시크릿 가든'에 와서는 이제 아예 장난스런 미소년에서 우수어린 눈빛의 남자를 넘나든다. 그 눈빛은 어딘지 여성적으로도 보이지만 때론 마초적일 정도로 강렬하다. 그저 지그시 바라보는 것만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배우, 현빈은 마성의 눈빛을 가졌다.

'시크릿 가든'에는 스킨십보다 더 많이 눈빛을 맞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윗몸일으키기를 하면서 하지원의 눈을 바로 코앞에서 바라보는 장면은 단박에 화제가 되었다. 누워 있는 하지원의 얼굴 바로 앞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현빈의 눈빛은 그 어떤 스킨십 이상으로 보는 이를 녹진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물론 그 눈빛을 제대로 제 눈에 받아주며 어딘지 수줍고 어딘지 설레는 하지원의 연기 역시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때론 장난기어린 모습으로, 때론 깊은 슬픔이 담겨진 모습을 연출하는 현빈의 눈빛은 희비극을 넘나드는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의 기본 힘이다. '시크릿 가든'의 구조는 비극 위에 희극이 얹어져 있는데, 이 희비극을 제대로 표현해내는 게 바로 현빈의 그 양면적인 눈빛이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사고를 통해 길라임은 아버지를 잃고, 김주원(현빈)은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주재로 길라임과 김주원의 영혼은 하나로 묶여진다.

이 영혼 체인지라는 소재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주로 사용되어졌다. 그만큼 남녀가 뒤바뀌는 상황이 주는 웃음에 주력했던 것. 하지만 '시크릿 가든'은 코미디만큼 비극에도 주목한다. 영혼이 뒤바뀌어 성별과 사회적 위치가 달라지는 포복절도의 웃음을 먼저 살짝 보여준 후, 그렇게 서로 연결된 영혼의 한쪽이 비극적인 상황에 이를 때 발생할 수 있는 다른 한쪽의 비극을 다루었다. 뇌사 판정을 받은 길라임을 살리기 위해 영혼을 바꿔서 자신이 대신 죽고서라도 그녀를 자신의 몸속에서 살게 하려는 김주원의 결단은 희극에서 비극으로의 극적 체인지를 만들었다.

한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한 사람이 죽어야 되는 상황. '시크릿 가든'은 이를 왕자를 위해 물거품이 되고야마는 인어공주의 비극에 비유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깨어나 비록 엘리베이터 사고 이후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다시 살게 된 김주원에게, 길라임은 "네가 뭘 어떻게 해도 이젠 용서가 된다"고 말한다. 죽음을 겪고 난 영혼에게 세상이 갈라놓는 빈부의 문제든, 남녀의 문제든 뭐가 중요할까. '시크릿 가든'은 완전히 타인인 두 사람이 완전히 하나의 영혼이 되는 과정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드라마다.

이 복잡한 과정 속에서 때론 희극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때론 비극이 되고 심지어 남성에서 여성으로 역할을 바꿔야 하는 그 연기를 현빈은 마치 맞춘 듯이 해낸다. 그것이 바로 현빈이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이기 때문이다. 희비극을 넘나드는 그 눈빛은 그래서 김주원이라는 캐릭터를 만나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긴다. 해피냐, 새드냐, '시크릿 가든'의 엔딩에 온통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은 김주원을 연기하는 현빈이라는 배우의 그 알 수 없이 깊은 눈빛에 우리가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시크릿 가든'은 시크한 현빈의 눈빛을 그대로 빼닮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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