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를 다시 발견하게 만든 드라마, '시크릿 가든'

도대체 이 어메이징한 드라마가 우리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35%의 마지막회 시청률로 '시크릿 가든'의 모든 걸 얘기할 순 없을 것 같다. 정통 멜로드라마가 점점 퇴조하고 있는 요즘, 35%라는 시청률의 체감온도는 50% 이상의 국민드라마에 버금가는 것이니까. 그 체감을 말해주듯, '시크릿 가든'은 그 일거수일투족에 신드롬을 낳았다. "이 어메이징한 여자야." "이게 최선입니가? 확실해요?"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김주원(현빈)이 한 말은 그대로 유행어가 되었고, 그와 길라임(하지원)의 스타일은 유행이 되었으며, 심지어 그들이 읽었던 책들은 일거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도대체 '시크릿 가든'의 그 무엇이 이런 어메이징한 신드롬을 낳았을까. 먼저 지목할 것은 김은숙 작가의 보다 편안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대본이다. 연인 시리즈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은숙 작가가 '시크릿 가든'으로 다시 그녀가 잘 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들고 왔을 때, 많은 이들은 "또 재벌집 아들 이야기야"하고 의구심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신데렐라 이야기라도 전혀 다른 울림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김은숙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온에어'와 '시티홀'을 거치면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은 좀 더 의미가 깊어진 게 사실이다. 물론 시청률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었지만 '시티홀' 같은 작품은 멜로가 어느 정도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고, 무엇보다 이 작가가 이제는 하나의 공간과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어디 대중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국 다시 멜로로 돌아왔지만 '시크릿 가든'은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 편안한 세계 속에서도 충분히 새롭고 의미 있는 작품을 할 수 있었다.

'시크릿 가든'은 도시인들을 위한 동화다. 현대판 백마탄 왕자님은 김주원이라는 백화점 사장이고, 신데렐라이자 인어공주이자 앨리스인 길라임은 맹렬하게 온몸을 부딪쳐 살아가는 현대여성들을 표징하는 스턴트우먼이다. 드라마는 신데렐라, 인어공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고전들에서 모티브를 끄집어와 도시인의 동화로 재구성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세계가 부딪치면서 때론 갈등하고 때론 공감하며 차츰 하나가 되어가는 그 과정을 그린다. 신데렐라와 인어공주의 왕자님과 공주들의 만남은 김주원과 길라임의 얘기로 들어와서는 때론 해피엔딩을 때론 새드엔딩을 예고하며 대중들을 울고 웃게 했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혼 체인지라는 마법적인 판타지로 재탄생되면서 내가 아닌 다른 나가 되고 싶은 욕망과 거꾸로 다시 나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의 변화를 이 계층도 성별도 다른 남녀를 통해 보여주었다. 이 일련의 고전들을 끌어들여 '시크릿 가든'이 그려낸 세계는 그래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를 겪어가며 갖게 되는 공감의 이야기다. '그 남자'는 '그 여자'가 되고, '그 여자'는 '그 남자'가 되는 그 과정은 계층으로 남녀로 구분되는 현대인들의 하나가 되고픈 판타지를 끄집어냈다.

무엇보다 이런 대본 속 캐릭터들을 완벽하게 연기해낸 현빈과 하지원, 윤상현과 김사랑을 비롯한 미친 존재감의 조연배우들의 연기가 있었기에 이런 세계의 구축이 가능해졌다. 현빈 없는 김주원, 하지원 없는 길라임을 상상할 수 없게 된 것은 그만큼 캐릭터와 일체된 그들의 연기 덕분이었다. 물론 이런 대본과 연기를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신우철 PD의 연출도 빼놓을 수 없다.

명작은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흔한 것 속에서 오히려 명작은 탄생한다. 그처럼 상투적인 삶이 우리네 일상이며, 작품은 그 상투적인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시크릿 가든'은 그렇게 늘상 우리가 겪기 마련인 나와 타자와의 관계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당신의 '그 남자', '그 여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 그 평범해보여도 특별한 존재들은 어쩌면 바로 당신 옆에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인식이 바로 어메이징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우리에게 저지른 짓이다.

'시티홀', 연기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끌어내다

준비된 연기자가 좋은 캐릭터를 만난다는 것은 '시티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티홀'은 정치 풍자가 담겨진 코미디에 멜로가 섞여 있는 드라마다. 따라서 정치적인 면을 보일 때는 가벼운 듯 하면서도 진지함을 유지해야 하고, 본격적인 멜로에 들어가면 행복감과 절망감을 오가는 웃음과 눈물 연기를 해내야 한다. 연기자로서 '시티홀'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차승원이나 김선아처럼 준비된 연기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히려 밋밋한 캐릭터보다는 이처럼 복합적인 면을 소화해내야 하는 연기가 그들에게는 도전이면서도 또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시티홀'은 그들에게 바로 그 무대를 마련해주었고,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복합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캐릭터라는 옷을 입고 마음껏 춤을 추었다. 그 결과 이 드라마를 통해 차승원은 재발견되었고, 김선아는 삼순이의 옷을 벗어버리고 신미래라는 새로운 옷을 입음으로써 건재함을 과시했다.

차승원이 연기해낸 '시티홀'의 조국이라는 캐릭터는 겉으로만 봐서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판타지남의 계보를 잇는 것처럼 보인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에서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를 잇는 인물로 조국을 거론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국이 이들의 계보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준표나 태봉씨는 드라마 속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전지전능한 캐릭터지만, 조국은 그렇지 않다. 그의 앞에는 늘 난관이 겹겹이 쌓여 있고 그는 사랑하는 여인 신미래를 보호하면서 그 난관을 넘어서야 하는 입장이다.

이것은 조국이 이들 판타지남들보다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의 계보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조국은 탁월한 정치적 능력을 갖고 있고, 신미래라는 여성을 만남으로 해서 그 힘을 낮은 자들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즉 조국이라는 캐릭터는 그저 멜로의 판타지뿐만 아니라 서민들을 꿈꾸게 하는 판타지까지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그 특유의 카리스마를 갖게 된다. 게다가 그 카리스마는 코믹함을 가미하면서 강마에가 가졌던 괴팍하면서도 친근한 인상을 덧붙인다.

차승원은 사실 코미디와 정극 양쪽을 오간 경력의 소유자다. 코믹의 웃음은 그의 장기이고, 정극의 우수와 슬픔은 그의 특기다. 그런 면에서 '시티홀'의 조국은 이 양면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였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차승원은 지금껏 상대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던 카리스마를 조국을 통해 얻었다. 정치 소재가 갖는 강인한 리더십의 면모를 조국을 통해 갖게 된 것이다.

한편 김선아가 연기한 신미래는 처음 삼순이 캐릭터에서 시작했다. 10급공무원으로서 밴댕이 아가씨 대회가 나가고 거기서 조국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김선아의 연기는 여전히 삼순이에 머물러 있었다. 캐릭터가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미래가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 행보를 하게 되고 시장 선거에 나가게 되면서부터 김선아는 조금씩 삼순이의 아우라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신미래는 돈키호테적인 신념을 가진 순수 정치초심자로서의 강인한 모습과 함께, 사랑 앞에서는 가녀린 한 여성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다. 게다가 신미래 역시 조국처럼 코믹을 바탕에 깔고 있는 캐릭터. 그러니 이 인물의 스펙트럼은 저 삼순이가 갖는 단순함에 비할 바 없이 넓다 할 수 있다. 김선아는 신미래라는 캐릭터를 통해 굳이 삼순이를 넘어설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신미래를 통해 삼순이의 캐릭터를 가지면서도 다양한 폭의 새로운 면모들을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티홀'이 재발견한 연기자는 차승원과 김선아에 머물지 않는다. '온에어'에서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등장해 강인한 인상을 주었던 이형철은 이 드라마를 통해 유하고 귀여운 면모를 갖게 됐으며, 지적인 이미지의 추상미는 이 드라마를 통해 귀여운 악녀의 면모를 갖게 되었다. 이밖에도 주목할 만한 연기자는 강인한 정치인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최일화, 신미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정부미를 연기한 정수영, 그리고 국장삼총사들인 류성현, 신정근, 임대일이 될 것이다. 특히 지국장으로 분했던 신정근은 코믹 연기 속에서도 독특한 개성적인 힘을 갖고 있는 연기자로 주목된다.

좋은 드라마는 좋은 연기자들을 발견해낸다. 그만큼 캐릭터가 좋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시티홀'은 좋은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믹을 바탕에 깔고 정치와 멜로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하나의 드라마를 구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티홀'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마음껏 준비된 연기를 보여준 연기자들에게도, 또 그 연기가 뿜어내는 행복과 슬픔을 공감한 시청자들에게도 '시티홀'은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정치드라마 아닌 멜로드라마로서의 '시티홀'의 가치

'시티홀'은 정치드라마가 아니다. 작가가 밝힌 대로(밝히지 않았더라도 명백하게) 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다. 하지만 왜 자꾸만 정치드라마로서의 미련을 갖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네 드라마들 중에서 그만큼 본격적인 정치(정치사가 아닌)를 다룬 드라마가 별로 없기 때문이며, '시티홀'이 가진 설정과 구도가 어쩌면 그 정치드라마의 갈증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축소해놓은 듯한 '시티홀'이 상정한 작은 도시 인주시와, 이 나라의 정치를 풍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그려놓은 듯한 정치적 사건들 역시 그 기대감을 키워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갖고 있었다. 전도유망하고 능력 있는 정치인 조국(차승원)이 인주시로 내려와 신미래(김선아)라는 10급 공무원을 만나는 과정과, 신미래가 밴댕이 아가씨선발대회에 나가 진에 뽑히는 그 과정이 뒤섞인 초반부에 정치적 색채는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미래가 시장 후보로 나서고,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정치드라마로서의 기대감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신미래가 주장하는 정치는 우리가 흔히 신문지상에서 발견하는 현실적인 것과는 달리 지극히 이상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미래의 뒤편에 현실정치를 잘 알고 있는 조국이 있었기 때문에 보다 본격적인 정치적 대결구도가 생겨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신미래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이야기는 그 핵심이 현실정치를 사라져야할 부정적인 것으로 세워놓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말하는 진심이니 진정성이니 하는 것은 이상적인 구호는 될 수 있어도 현실정치의 리얼한 면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 현실정치 자체를 적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국은 다르다. 그는 신미래라는 돈키호테가 주장하는 그 진정성을 지켜주기 위해 현실정치를 막후에서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즈음에 신미래와 조국의 강력한 멜로 라인이 본격적으로 형성된다. 현실정치를 해야할 조국은 자꾸만 신미래에 빠져들고, 그녀의 이상에 동참하기 위해 그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드라마는 점차 정치를 버리고 본격적인 멜로로 들어가고, 바로 이 멜로까지를 스캔들로 비화시키려는 정치는 이제 멜로와의 적대관계를 형성한다. 멜로와 정치가 대결구도에 서는 것이고 물론 여기서 드라마가 심정적으로 기우는 것은 멜로다.

따라서 드라마는 현실적인 정치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조국과 신미래 사이의 멜로를 제거하고자 갖가지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빅브라더(최일화)와 고고해(윤세아)는 협박과 폭로로 이들의 멜로를 막아선다. 이 과정에서도 정치적인 선택보다 앞서는 것은 부자관계인 조국과 빅브라더, 그리고 약혼한 사이인 조국과 고고해의 그 관계다. 그 관계 사이에 신미래가 끼어든 것이 그들이 그녀와 조국 사이의 멜로를 깨려는 근본적인 이유로 작용한다.

'시티홀'은 따라서 정치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정치의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대신 정치를 적으로 상정하는 멜로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정치는 이들의 멜로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조국과 신미래 사이의 멜로 라인은 더욱 애틋해진다. 이렇게 보면 정치드라마로 나아가지 못한 '시티홀'이 가진 멜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정치드라마는 아니지만 굳이 정치드라마로 생각한다면, '시티홀'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는 결국 현실정치에 대한 혐오를 말하고 있는 것이고, 실제로는 거의 실행이 불가능한 이상적인 정치를 부르짖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본질인 멜로드라마로 본다면, '시티홀'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드라마다. 정치가 가진 양면성, 즉 진심과 연기의 미묘한 측면들을 멜로를 구축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완의 정치를 담은 '시티홀'은 따라서 정치드라마를 포기하는 대신 완성된 멜로드라마를 얻었다.

‘찬란한 유산’의 백성희, ‘선덕여왕’의 미실, ‘시티홀’의 고고해

‘아내의 유혹’에서 악녀 신애리(김서형)의 트레이드마크는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눈을 치켜뜨는 것이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드라마는 거친 목소리만 들어도 뭔가 사건이 벌어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바로 이 연기로 시청자들을 바들바들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등장한 악녀들은 신애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차분해졌고, 감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논리적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눈을 치켜뜨기는커녕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들이 더 살벌한 것은.

‘찬란한 유산’에서 백성희(김미숙)는 미소 짓는 악녀의 절정을 보여준다. 남편의 사고소식을 듣고는 보험금을 혼자 챙기려 배다른 딸인 은성(한효주)과 그 동생 은우(연준석)를 길거리로 내쫓고, 그것도 모자라 정신지체아인 은우를 멀리 내다버리기까지 한다. 살아온 남편을 반기기는커녕 갖은 거짓말로 은성을 만나려는 그를 절망에 빠뜨리고, 모든 것이 탄로 나자 거꾸로 은성을 거둬 유산까지 주려하는 장숙자(반효정) 여사를 찾아가 거짓말로 은성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그녀는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자신이 하는 행동에 감정을 최대한 숨긴다.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거짓말은 이 차분하게 숨겨진 감정 뒤에서 좀체 진면목을 드러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앞에서 답답할 정도로 착하기만 한 고은성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뭐라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그저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이 미소 짓는 악녀에게 완벽한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미소 짓는 섬뜩함은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늘 방긋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살벌한 칼날이 느껴진다. 덕만을 놓친 병사의 목을 치면서 그 피가 얼굴에 튄 채로 살짝 웃는 모습은 귀기스럽기까지 하다. 앞에서는 공손한 척 예를 다하다가 갑자기 귓속말로 천명공주(신세경)에게 “도망쳐라!”하고 명령할 때, 그 숨겨진 칼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시티홀’의 고고해(윤세아) 역시 같은 부류다. 이름처럼 앞에서도 고고한 척 우아함을 떨지만 사실은 뒤에서 한 사람을 파멸로 몰아붙이는 그 모습은 똑같은 미소짓는 악녀의 자질을 가졌다. 자신이 갖고 싶은 조국(차승원)을 취하기 위해 그녀는 신미래(김선아)를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녀의 목적은 그러나 조국이라기보다는 그를 통해 획득하려는 권력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우아한 악행은 때론 자본이 행하는 그것과 닮은 구석이 많다.

악녀들이 이처럼 감정을 숨긴 모습으로 진화하는 것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악역이 아니고 악녀냐는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점점 여성 편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 여성과 남성의 대결구도보다는 여성과 여성의 대결구도가 그만큼 볼만해졌다는 얘기다.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와 대결하는 것은 바로 구은재(장서희)라는 여성이고, 이것은 ‘찬란한 유산’의 백성희-고은성, ‘선덕여왕’의 미실-덕만, ‘시티홀’의 고고해-신미래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러한 여성과 여성의 대결구도에 우리네 드라마가 가진 갈등 구조 속에 빠질 수 없는 멜로라인이 결부되면 그 대결구도는 더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악녀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것은 바로 감정 자체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해진 섬세함을 무기로 삼는 것이다. 요즘 드라마들에 유독 악녀들이 많고 그녀들이 살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 '시티홀'의 신미래

‘바보’의 사전적 의미는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 본래 ‘밥+보’에서 나온 이 말은 ‘밥만 먹고 하릴없이 노는 사람’을 경멸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경제적인 가치가 최우선 가치로 치부되던 개발 시대를 넘어, 이제는 그 부의 올바른 획득이나 올바른 사용이 새로운 가치로 부각되는 현재에 이르러, 이 ‘바보’라는 용어는 새로운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나치게 경제논리에만 입각해 살아오다보니 우리가 잊고 또 잃고 있었던 가치들을 여전히 지키고 굽히지 않는 이들. 지금 시대의 ‘바보’는 바로 그런 의미를 부가하고 있다.

드라마 속 바보들, 그들의 지극히 상식적인 삶
SBS 주말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은성(한효주)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바보다. 그녀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소식(물론 그 아버지는 실제로는 살아있다)과 함께 계모인 백성희(김미숙)에게 유산을 모두 빼앗긴다. 길바닥으로 장애아인 동생과 함께 내동댕이쳐져 심지어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바로 그 동생 때문에 곧 털고 일어났던 그녀는 그토록 소중한 동생마저 잃어버린다. 자기 자신 돌보기도 힘겨운 이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하지만 그녀는 바로 자신이 그토록 많은 것을 잃고 아파해했던 그 경험으로 인해, 그 누군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기억마저 잃고 길바닥에 쓰러진 장숙자(반효정) 여사를 집으로 데려와 지극정성 보살피는 것. 흔히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알아 서로 돕는다”는 말은 여기에 해당되는 말이다. 버려진 경험이 있는 그녀는 자신에게 혹처럼 달라붙은 장숙자 여사를 힘겨워하면서도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후에 장숙자 여사가 사실은 굴지의 기업 대표임을 알게 되고 그녀가 모든 유산을 자신에게 남겨주겠다는 말을 하는데도 은성은 사심을 갖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유산보다는 장숙자 여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종영한 드라마, ‘그바보(그저 바라보다가)’에서 구동백(황정민)이라는 우체국 직원은 한지수(김아중)라는 톱스타를 만나 사랑을 이룬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모든 것이 상업적인 잣대로 구획된 세계 속에 살아가는 한지수는 거꾸로 구동백이라는 제목 그대로의 ‘그바보’를 만나 자신의 잘못된 삶을 되돌리게 된다. 이것은 ‘시티홀’에서 10급 공무원인 신미래(김선아)를 허수아비 시장으로 세워 인주시를 장악하려 했던 조국(차승원)이 거꾸로 그녀의 순수한 정치적 행보에 감화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 ‘바보들’의 행보는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현실 앞에서는 지극히 어려운 일들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거꾸로 상식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

바보들이 전하는 진심, 서민들의 꿈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상식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먼저 ‘찬란한 유산’의 은성이 말해주는 것은 유산이 비단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전언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유산이라면 흔히 변호사가 대동되고 공증된 유서가 읽혀지는 그런 재산의 의미로 읽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또한 물려진다는 의미에서 핏줄과 혈연의식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찬란한 유산’에서 은성이라는 바보를 통해 말하는 유산이란, 그런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유산을 말한다. 부모가 가르쳐준 정직이나 신뢰, 부지런함 같은 것들이 그런 핏줄과 혈연으로 연장되는 물질적 유산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는 말이다.

‘그바보’의 구동백이 말하는 가치 역시 이 물질화된 사회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의 가치를 연봉 얼마로 수치화할 수 있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돈이면 다 되는 것 같은 태도의 예의 없는 세상 속에서 구동백은 진정한 관계와 소통을 전하는 예의바른 인물이다. 구동백이라는 서민이 거꾸로 한지수라는 물질화된 사회의 표상으로서 그려지는 톱스타를 감화시키는 내용이 감동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시티홀’은 드라마가 정치를 다루기 때문에 현 우리네 정치적 현실에 대한 빗나간 가치들을 신미래라는 바보를 통해 보여준다. 그녀는 정치는 신념이 아니라 돈으로 해나간다는 현실 속에서, ‘정치란 못 사는 사람 좀 더 잘 살게, 또 잘 사는 사람 좀 더 베풀게’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물론 현실에서라면 공허한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 말은 그러나 드라마라는 판타지적 공간 속에서나마 어떤 희망을 발견하고픈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이 시대의 바보들은 흔히 서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곤 한다. 이것은 이들 드라마들이 전하는 가치들이 고단하게 바보처럼 살아가는 서민들이 꾸는 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바보들이 전하는 진심의 소리가 큰 울림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이들을 통해 때론 슬프고 때론 웃기며 때론 그동안 잊고 있던 어떤 희망이나 꿈을 찾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진심이 우리에게도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차승원이 이토록 눈에 띈 적이 있을까. '시티홀'의 조국이라는 캐릭터를 만난 차승원은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의 한 경향으로까지 보이는 능력있고 잘생기고 부자인 판타지남들의 출연은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에서부터 시작해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로 이어졌다. '시티홀'의 조국은 겉으로만 보면 이 계보를 잇는 판타지남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준표에서 태봉씨로 또 조국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조국이 가진 판타지가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준표가 주는 판타지는 말 그대로 물질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무지 가늠이 안되는 부가 그 판타지의 실체가 된다. 하지만 태봉씨로 넘어오면서 그 판타지는 부와 함께 인간미를 포함시킨다. 태봉씨는 한 여성을 숨어서 사랑하는 한 남자이면서 동시에 줄이 아닌 능력에 따라 사원들을 등용할 줄 아는 판타지 속의 사장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둘이(태봉씨가 30대 구준표라 불렸듯) 어떤 한 부류의 캐릭터라 여겨지는 것은 드라마가 이들에게 부여한 신적인 힘 때문이다. 이들은 드라마 속에서 거의 신처럼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조국은 다르다. 그는 능력있고, 잘 생기고, 돈도 있지만 뭐든 다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존재는 아니다. 항상 적들과 대치하는 상황 속에 서 있고, 심지어 자기 여자를 위해 뭔가를 해주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처해 있다. 현장에서는 특유의 능력을 발휘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한 여자 앞에서는 코믹스러울 정도로 엉뚱한 면모를 보여준다. 겉으로 보기엔 까칠해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다정다감하다. 이 즈음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다.

이 능력있는 남성들은 모두 처음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강마에는 시향의 지휘자로 서는 것이고 조국은 인주시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서는 것. 하지만 이 둘은 모두 거기서 서민들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중의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이제는 자신의 힘을 사용하게 된다. 강마에처럼 조국도 이러한 낮은 자들의 지킴이로서 갖는 판타지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두 드라마는 현실과의 맥락을 갖게 된다. 판타지가 현실과의 맥락 없이 등장할 때 그저 마취적이고 도취적인 자극으로 함몰될 수 있는 반면, 현실의 반작용으로서 등장하는 판타지는 그 자체로 현실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강마에는 꿈꾸지 않는 현실을 꿈꾸게 만드는 존재이며, 조국은 이미 실종되고 포기된 시민들을 위한 정치를 다시금 꿈꾸게 만드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들 드라마에 등장하는 멜로 역시 그저 멜로에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서는 사랑 그 이면에 어떤 희망이나 꿈같은 것을 등장시킨다. 강마에와 조국이 내포한 판타지가 단지 여성들의 판타지가 아닌 우리 모두의 판타지가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강마에를 닮은 조국이라는 판타지가 서민들을 위한 정치가 부재한 현실에 작은 꿈을 꾸게 만드는 것은 남녀의 차원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드라마이면서 멜로드라마가 되는 '시티홀'의 세계

'시티홀'은 그저 편안하게 멜로드라마를 보듯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실제로 시청자들의 주 관심사는 조국과 신미래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멜로에 집중되어있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드라마는 멜로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무늬만 정치'가 아닌 제법 심각한 정치드라마의 면모들이 드러낸다. 도대체 '시티홀은 어떻게 정치와 멜로를 이렇게 공존시켰을까.

"요즘 내가 안하던 짓을 해요." 타고난 정치꾼, 조국(차승원)이 처음 인주시청의 부시장으로 들어왔을 때만 해도 그는 하던 짓(?)만 하던 사내였다. 여기서 하던 짓이란 흔히들 정치꾼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하는 짓거리, 즉 협잡, 모함, 이용 같은 것들을 말한다. 그런 그가 한다는 안하던 짓은 그럼 무얼까. 그건 순진할 정도로 순수한 신미래(김선아)가 해나가는 '진심이 담긴 정치'를 옆에서 돕는 것이다.

그 진심이니 신념이니 하는 것은 본래 그에게는 그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유치한 짓들이었다. "못사는 사람 잘 살게, 잘 사는 사람 좀 베풀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말하는 신미래와, "정치는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조국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멀다. 그런 그가 안하던 짓을 한다? 그건 그의 신미래에 대한 마음의 표현인 동시에, 정치판의 복마전에서 잔뼈가 굵어온 자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유치한 짓이라 여기던 그 진심이니 신념이니 하는 것에 이끌리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처음 봤을 때 너는 아주 쉬운 여자였는데, 그냥 이용하고 버리면 되는 여자였는데, 어떡하다 이렇게 됐는지 정말 돌겠다구." 그렇다. 조국은 정치를 하기 위해 BB(최일화)의 명으로 인주시에 허수아비를 세우려 왔는데, 어쩌다 그 허수아비를 사랑하게 됐고 그러자 모든 정치적 관계들은 뒤틀어져 버렸다. BB의 명을 어기게 된 것이고, BB의 돈줄이자 조국의 약혼녀인 고해(윤세아)를 배신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시티홀'이 그리는 세계는 정치와 멜로가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 있다. 신미래와 조국의 멜로는 그들의 정치적인 행보와 늘 반대로 작용한다. 둘의 사랑은 정치적인 위기를 불러올 것이고, 정치적인 행보는 둘의 사랑의 끝장을 불러올 것이다. '시티홀'이 구성해놓은 정반대의 위치에 세워진 정치와 멜로는 이처럼 절묘하다. 멜로가 어떤 진심을 끄집어낼 때, 정치는 그 진심을 배반한다.

이것은 또한 관계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시티홀'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정치가 얼마나 관계를 파괴하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미래와의 진심어린 사랑을 선택한 조국은 아버지인 BB와도, 또 약혼녀인 고해와도 서로 적이 되어 싸워야 한다. 민주화(추상미)와 이정도(이형철)는 부부지만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로 인해 부부관계의 진심마저도 흔들리게 된다. '시티홀'이 그리는 정치란 이처럼 부모자식 간에도, 애인 간에도,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금을 긋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괴물이다.

'시티홀'은 이처럼 정치와 멜로의 이중주를 들려주면서 그 접점을 모색하는 드라마다. 정치로서의 조국과 멜로로서의 신미래는 차츰 그 중간지대를 향해 나아가고, 점점 사랑에 빠져드는 조국과, 이제는 더 이상 정치를 외면할 수 없는 신미래로 발전해 나간다. 독특한 이름들이 가진 말장난처럼, '조국의 신미래' 혹은 '신미래의 조국'은 멜로와 정치의 중의적 표현인 셈이다. 따라서 '시티홀'은 멜로드라마이면서 정치드라마가 된다. 멜로드라마로서 정치는 거짓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되고, 정치드라마로서 멜로는 진심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된다. 정치와 멜로는 이렇게 '시티홀' 속에서 공존하게 되었다.

뜨는 드라마에는 꼭 있다, 판타지남

구준표(이민호)는 엄청난 대부호의 아들로 뭐든 못할 게 없는 인물. 그런 남자가 한 여자, 잔디(구혜선)만을 사랑한다. 이것이 '꽃보다 남자'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판타지의 핵심이다.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 역시 퀸즈푸드라는 대기업의 사장으로 재력과 능력을 겸비한 남자. 그런 그가 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천지애(김남주)를 좋아한다. '시티홀'의 조국(차승원)은 젊은 나이에 성공한 능력 있는 정치인. 하지만 그는 시골의 10급 공무원 신미래(김선아)에게 빠져 '안하던 짓', 사랑을 하게 된다. '찬란한 유산'의 박준세(배수빈)는 능력에 성품까지 겸비한 남자. 그는 어느 날 만나게 된 집도 절도 없는 고은성(한효주)을 사랑하게 된다.

구준표에서 태봉씨, 조국, 박준세까지,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모두 잘 생겼고, 둘째 재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셋째 보잘 것 없는 여자 주인공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넷째는 현실적으로는 발견하기 힘든 판타지 속의 완벽한 남자들이다. 무엇보다 큰 공통점은 이들이 등장한 드라마가 모두 성공작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러한 판타지남들이 있어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남자가 어디 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 속에서 이들이 하는 역할은 지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여성 주인공을 만남으로 해서 신데렐라 혹은 캔디적인 판타지의 바탕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판타지는 과거처럼 왕자님이 그녀와 결혼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현대적인 신데렐라 혹은 캔디의 이야기는 그 왕자님이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그녀가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남모르게 돕는 것이다. 즉 외모나 성품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노력이 전제되는 판타지로 그 이야기는 바뀌고 있다.

태봉씨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천지애 모르게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며 그녀가 처한 위기를 돌봐주고, 조국은 이제 막 정치의 세계 속에 들어와 고군분투하는 신미래를 걱정하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해법을 들려준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고은성을 위해서 박준세는 헌신적이라 할 만큼 그녀를 도와준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헌신에 대한 대가조차 바라지 않는다. 티 나지 않는 도움이기에, 그녀들은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면에서 이 남자들은 키다리 아저씨를 닮았다.

이 이른바 뜨는 드라마 속에 꼭 존재하는 판타지남들의 공통점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대 여성들의 로맨스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만큼 커진 성공 욕구일 것이다. 이제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남자는 그저 잘생기기만 해서도 안되고, 그저 부자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남자들이 그 모든 걸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그녀들을 뒤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성공의 길로 이끄는 판타지남들이 완성되게 된다.

이들 판타지남들에 대한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은 이것이 판타지라는 점에서 정반대되는 현실을 말해준다. 불황의 여파로 사회는 더 각박해졌고, 기득권이라고 하는 남성들조차 버텨내기 힘든 경쟁시대로 돌입했다. 그러니 여성들은 오죽할까. 점점 완벽해져가는 판타지남들과 그들에게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배우들이 수목 드라마에서 한 자리에 모였다. '그저 바라보다가'의 황정민, '신데렐라맨'의 권상우, '시티홀'의 차승원이 그들이다. 영화에서 각각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수목극의 경쟁이 자존심 대결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연기대결은 말 그대로 불꽃튀는 양상을 보인다.

황정민은 팔색조 같은 연기자. 때론 비열한 악역(달콤한 인생)을 보여주다가 때론 바람둥이 같은 자유로운 남자로(행복), 또 부패한 형사(사생결단)로 껄렁껄렁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아주 순박한 시골청년(너는 내 운명)으로 변신하며 그 연기 영역을 넓혀왔다. 그런 그가 '그저 바라보다가'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바보처럼 순수한 우체국 영업사원이다.

톱스타 앞에서 어쩔 줄 몰라 어색하다가도 어떤 진지한 상황이 오면 고지식하고 고집불통일 것 같은 완고한 얼굴을 들이미는 구동백이라는 캐릭터는 사실 이 드라마의 주제나 마찬가지. 모든 것이 거래로 환산되는 세상에 관계를 희망하는 구동백은 현실적으로는 약자의 위치에 서면서도 오히려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을 꾸짖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다.

그 순수한 모습은 자못 '너는 내 운명'의 석중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캐릭터와는 차별화되는 점이 많다. '너는 내 운명'의 석중은 사랑에 순애보적인(심지어는 신파적인)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그저 바라보다가'의 구동백은 그 사랑의 차원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있다. 인간에 대한 어떤 예의 같은 것을 감지하게 하는 그 캐릭터를 황정민은 어눌하면서도 촌스럽고 때론 듬직한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신데렐라맨'의 권상우는 이 작품을 통해 연기논란에 대한 종지부를 찍으려 작정한 듯 하다. 그간 일련의 흥행실패(드라마  '못된 사랑'과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로 절치부심한 듯 이 1인2역의 도전적인 작품을 꽤 능수능란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동대문 시장에서 장삿군으로 뼈가 굵은 오대산은 늘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낙천적인 인물인데 반해, 소피아 어패럴의 차남인 이준희는 모든 걸 다 갖고 있지만 가족사로 인해 어두운 인물이다.

'신데렐라맨'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드라마는 신데렐라(남자 신데렐라)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왕자와 거지 모티브를 첨부했다. 신데렐라, 왕자와 거지, 어느 쪽이든간에 그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변신욕구다. 그 변신한 인물들이 거기서 체험(새로운 삶을)해보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이 고전적인 모티브를 가진 이야기들의 핵심이다. 권상우는 극과 극의 상황에 있는 두 인물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그 인물들이 반대 편 역할을 연기하는 것 또한 연기하고 있다.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그의 연기세계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차승원은 일련의 코미디 장르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안정된 코믹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그의 코믹 이미지는 '차선수'라고 불리는 닉네임에서 알 수 있듯, 프로의 위치에 서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선생이라는 역할(선생 김봉두)을 맡아도 어딘지 "아마추어처럼 왜 이래?"하고 말할 것 같은 때묻은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그 선수이미지의 캐릭터는 엉뚱하게도 순수한 인물들을 만나(선생 김봉두에서는 시골사람들과 어린 학생) 무너지며 웃음을 준다. 그 웃음의 끝에는 선수가 순수한 마음을 찾아가는 변신의 흐뭇함이 덧붙여지기 마련이다.

'시티홀'은 초반부 신미래(김선아)라는 인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조국(차승원)보다 큰 편이지만, 결국 조국의 변신과정이 멜로와 코믹으로 버무려진다는 점에서 차선수의 역할은 실로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드라마 초반 내내 지속된 밴댕이 아가씨 선발대회 이야기는 그 '밴댕이'가 주는 우스꽝스런 뉘앙스를 미인선발대회라는 지방행사의 엄숙함과 대비시켜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차승원이 가진 캐릭터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의 진지함은 차승원의 장기다.

물론 드라마는 대본과 연출 연기가 삼박자를 이루어야 빛을 발하는 것이지만 이번 수목드라마에서는 유독 그 비중은 연기자들에게 쏠리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황정민과 권상우와 차승원이 보여주는 연기의 세계는 어느 한 분야에서 자리매김한 연기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능수능란함이 돋보인다. 불황으로 영화 제작편수가 줄어들어 드라마로 외유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로서는 이런 명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바보’, ‘시티홀’, 그들에게서 보이는 전작의 흔적

새로 시작한 두 편의 수목극, ‘그저 바라보다가(이하 그바보)’와 ‘시티홀’은 비슷한 구석이 많은 드라마다. 모두 코믹극인데다가 공교롭게도 둘 다 영화배우들이 출연한 드라마. ‘그바보’에는 황정민과 김아중이 등장하고, ‘시티홀’에는 차승원이 나온다. 영화배우로서 이미 자신들만의 색채를 확실히 갖고 있는 이들이기에 드라마는 첫 회부터 흥미진진하다.

‘그바보’는 한지수(김아중)라는 톱스타와 구동백(황정민)이라는 우체국 직원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로맨틱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너무나 순수해 심지어 바보 같은 남자 구동백 역할을 연기하는 황정민은 이 드라마에 확실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티홀’은 시청 공무원인 신미래(김선아)와 부시장으로 새로 부임한 조국(차승원)이 엮어 가는 지금까지 드라마로서는 좀체 접하기 힘들었던 정치라는 소재를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낸 드라마다. 코믹 연기로 정평이 나 있는 두 사람의 호흡이 드라마를 톡톡 튀게 만든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 작품들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서 전작의 향기가 묻어난다는 점이다. ‘그바보’의 황정민은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석중을 닮았고, 김아중은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를 닮았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어찌 보면 ‘너는 내 운명’과 ‘미녀는 괴로워’가 하나로 엮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도 있다.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에서 자신보다 낮은 곳을 바라보며 한 여자를 죽어라 사랑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어쩌면 내게 이런 일이!”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톱스타를 사랑한다. 반면 김아중은 ‘미녀는 괴로워’에서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자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한 남성을 신데렐라로 만드는 존재가 된다. 이 역전된 캐릭터의 상황이 한 드라마에서 엮어지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바보’는 충분히 흥미를 끄는 작품이다.

한편 ‘시티홀’에서 김선아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를 떠올리고 하고, 차승원은 그가 해왔던 많은 코미디 영화의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한다(차승원은 코믹 작품 속에서 어떤 일관된 캐릭터를 갖고 있다). ‘시티홀’에서 이들의 캐릭터는 ‘그바보’와 달리 전작의 캐릭터들이 가졌던 위치를 고수한다. 즉 김선아는 여전히 신데렐라를 꿈꾸고, 차승원은 폼생폼사를 지켜려다 망가진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를 꽤 안정적인 느낌으로 바라보게 한다. 기대했던 부분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채워주는 것이다.

아마도 영화 속에 등장하던 이들이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대에 드라마에 나오게 된 것은 영화계에 떨어진 불황의 그늘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영화 제작 편수는 줄어들었고, 톱스타들마저도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들의 드라마 출연은 시청자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들의 등장이 막장으로 치닫거나, 혹은 늘 안전한 틀에 머물고 있는 드라마에도 어떤 자극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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