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에서’, 이런 직원들이라면 안 될 턱이 있나

짜장면에 이어 탕수육도 대박이다. tvN 예능 프로그램 <현지에서 먹힐까>가 대학가에 연 ‘현지반점’ 푸드트럭에서 탕수육은 현지 대학생들에게 ‘찍먹’이나 ‘부먹’이냐를 고민하게 만들만큼 화제가 되었다. 그 남다른 바삭함을 맛보려면 찍먹이 제격이지만, 손님에 따라서는 소스의 맛을 더 느끼고 싶어 부먹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찍먹이든 부먹이든 한결같은 이야기는 “맛있다”는 것. 

물론 요리의 맛이야 이미 검증된 이연복 셰프가 손수 현지에서 그 때 그 때 신선한 재료를 사서 바로바로 요리를 해 내놓는 것이니 정답이 아닐 수 없다. 이틀째에 나간 짬뽕이 너무 매워 중국인들에게 큰 호응은 없었지만, 그 순간에도 짬뽕에 들어갈 해물로 즉석에서 메뉴를 바꿔 백짬뽕을 내놓는 이연복 셰프의 ‘순발력’과 ‘손님 중심’의 마인드가 빛을 발했다. 

그런데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했던가. 함께 이연복 셰프를 도와 ‘현지반점’의 손발 역할을 하는 김강우, 서은수, 허경환 등도 점점 이연복 셰프를 닮아간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탱탱한 면발을 빼놓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국수 앞에서 끊임없어 면을 뽑아내는 김강우는 잘 생긴 외모 탓에 배우를 의심(?)받지만, 너무 열심히 일하고 있어 이연복을 가장 가까이서 돕는 수석 셰프로 현지인들에게 각인된다. 그에게 붙는 ‘면부석’, ‘국수주의자’란 자막이 우스우면서도 수긍이 가는 이유다. 

김강우야 영화 <식객>을 통해 일찍이 요리를 접한 경험이 있어 이연복 셰프가 “칼질이 예사롭지 않다”고 말할 만큼 요리에 뛰어들었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서은수는 ‘성실함’과 ‘센스’로 현지반점이 잘 돌아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주문이 오면 들어갈 재료들을 미리 잡아주었다가 이연복 셰프의 요리 도중 정확한 시점에 넣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중국어를 못하지만 잔돈이 부족하자 현지 음식점을 찾아가 돈을 바꿔오고, 탕수육을 할 때는 이연복 셰프에게 배워 고기를 바삭하게 튀기는 중대임무(?)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김강우나 서은수보다 더 어려운 역할을 하는 이는 바로 허경환이다. 김강우, 서은수는 요리를 하니 몸을 놀리면 되는 일이지만, 허경환은 홀 서빙을 맡아 현지인들과 소통을 해내야 한다. 중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필요한 말들을 외워 활용하는 허경환은 능숙하지 않아도 현지의 손님들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을 통해 음식점에 좋은 인상을 만들어준다. 아이들과 장난을 치기도 하고, 손님들과 한국어, 영어, 중국어를 섞어서라도 소통하려는 모습은 그 노력만으로도 좋은 서비스의 느낌을 준다. 

<현지에서 먹힐까> 중국편은 중국에서 짜장면, 짬뽕, 탕수육 같은 우리 식의 중화요리가 먹힐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지만, 그것보다 더 주목되는 건 이연복 셰프가 어떻게 해서 성공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건 그가 말했듯, “기본에 충실”한 것이고, 손님에게 맞추려는 노력 덕분이다. 그런데 그 성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함께 따르는 이들의 도움이라는 걸 김강우나 서은수 그리고 허경환이 보여준다. 

여느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려 애쓰는 모습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이들은 출연자라기보다는 현지반점의 직원처럼 일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김강우나 서은수는 배우라는 직업을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그 일에 몰입해 있고, 허경환 역시 마찬가지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이연복 셰프도 그렇지만 김강우, 서은수, 허경환 역시 돋보이는 이유다. 역시 잘 되는 음식집에는 남다른 셰프와 그를 닮아가는 성실한 직원들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사진:tvN)

감각이 드라마에 미치는 영향

'제빵왕 김탁구'에서 주인공 김탁구(윤시윤)는 천재적인 후각을 갖고 있다. 너무나 미세해 구분이 어려운 냄새도 구별해내고, 뭐든 한 번 맡은 빵 냄새는 잊지 않아 그 빵을 다시 재현내는 데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어린 시절 탁구가 맛보았던 팔봉 선생의 봉빵을 재현해내는 에피소드는 바로 이 김탁구의 남다른 후각에 기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다른 감각도 아닌 후각일까. 그것은 음식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이 후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이 드라마에 미치는 특별함 때문이기도 하다.

김탁구가 오븐에서 빵을 꺼내면 제일 먼저 우리의 눈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빵이다. 그리고 탁구가 거의 습관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은 그 빵의 냄새를 맡는 것. 그 냄새 맡는 얼굴이 흐뭇해지면 그 빵이 잘 되었다는 뜻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빵은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장면은 언뜻 단순해보이지만 사실은 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 장면은 단지 시각적인 자극에 머무는 드라마의 감각을 후각의 차원으로 넓혀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면서 실제로 우리 자신이 경험했던 저마다의 달콤한 빵의 냄새를 기억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탁구의 어린 시절, 빵집 창문 너머로 입맛을 다시며 빵을 바라보는 장면이나, 아버지 구일중이 별채에서 만든 빵을 맛보며 즐거워하는 장면, 그리고 자신을 팔아넘기려는 이들로부터 도망치던 탁구가 팔봉선생의 빵을 허겁지겁 먹는 장면은 그래서 기억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 장면들이 우리의 뇌리 속에 남긴 후각의 기억은 훗날 성장한 탁구가 팔봉빵집에서 일련의 과제를 통과해나가면서 만들어낸 빵들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 후각의 연결고리는 그 어떤 개연성보다 더 강력하게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힘을 발휘한다.

탁구가 가진 천재적인 후각은 그것이 '김탁구 식'의 문제 해결 방법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캐릭터에도 중요한 역할을 미친다. 김탁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뿐, 별다른 학업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능력은 특유의 선한 마음과 성실함이지만, 그것만으로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남다른 후각은 이 상황을 모두 바꾸어 놓는다. 해외에서 빵 만드는 기술을 배워온 마준(주원)과 탁구가 대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탁월한 후각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회사 경영에 뛰어든 탁구가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경영이 갖는 수치적인 접근이 아니라, 그 수치의 실체인 빵을 직접 대하는 방식이다. 김탁구는 이사회에서 서류가 아닌 빵을 준비함으로써 그 실체가 지닌 진심으로 이사들의 신임을 얻는다.

드라마가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장르라는 점에서 여기에 후각을 부가시키는 이른바 음식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들이 힘을 발휘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장금'은 물론이고, '식객' 같은 드라마의 성공 이면에는 음식이라는 보편적인 소재가 가진 힘과 더불어 그 음식이 환기시키는 감각의 확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가 얽히고설킨 관계의 파토스를 그려내면서도 그토록 진한 향기를 내뿜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배경이자 아우라를 만들어낸 막걸리 도가가 풍겨내는 독특한 후각의 힘이 아니었을까. 이제 빵 냄새를 맡으면 이 드라마가 떠올려지듯이, 드라마에서 감각이 갖는 힘은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류로서의 우리네 음식이 어떻게 드라마와 맞닿을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김탁구가 천재적인 후각을 가진 건 그것이 환기하는 감각이 드라마에 특별한 힘을 부가시키기 때문이다.

‘식객’과 ‘타짜’, 드라마와 영화 그 엇갈린 반응 왜?

왜 같은 허영만 화백의 만화이면서 드라마 ‘식객’은 되고 ‘타짜’는 잘 안 되는 걸까. 또 아이러니 하게도 이 상황은 왜 영화에서는 거꾸로, 즉 ‘타짜’는 되고 ‘식객’은 안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두 작품은 그 소재에 있어서 각각 적합한 매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즉 ‘식객’은 드라마가 더 적합했고, ‘타짜’는 영화가 더 적합했다.

‘식객’과 ‘타짜’, 그 다른 이야기 구조
‘식객’이 드라마에 더 적합했던 첫 번째 이유는 그 원작의 특징이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병렬적으로 이어놓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시리즈로 방영되는 드라마가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담기에 더 유리했고, 상대적으로 영화는 두 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을 소화해내기가 부담이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 모두 운암정을 사이에 둔 봉주와 성찬의 대결구도가 그 메인이 되고 그 뼈대 위에 소소한 이야기들이 살처럼 박혀있는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이러한 반응의 차이는 서로 다른 매체적 속성에서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타짜’는 그 이야기 구조가 ‘식객’과는 다르다. 물론 허영만 화백 특유의 취재에 근거한 리얼한 에피소드들이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주인공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즉 편편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연결고리를 유기적으로 갖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평경장 같은 한 인물의 이야기는 ‘식객’처럼 그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인물들과 계속 이어지게 되어 있다. 이러한 ‘짜여진’ 구조는 드라마처럼 늘여서 보는 것보다 영화처럼 압축적으로 보는 것이 더 흥미진진하기 마련이다.

영화여서 담을 수 있는 것, 드라마여서 못 담는 것
‘식객’은 그 소재 자체가 음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TV 방영에 있어서 부담이 없다. 하지만 ‘타짜’는 다르다. 도박이라는 소재는 여러모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위험성이 있다. 실제로 손가락이나 손목을 걸고 하는 도박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영화는 이런 부분에서 자유롭다. ‘타짜’가 영화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저 홍콩도박 영화들이 가진 선악구도의 개념 자체를 뛰어넘는 도박의 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물론 ‘타짜’에도 주인공이 있고 그와 대립하는 아귀라는 절대적인 악이 존재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해서 선한 존재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저 도박이라는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영화 ‘타짜’는 바로 이런 캐릭터들이 존재했다. 아귀나 정마담은 악한 인물이면서도 이 타짜의 세계를 통해 보면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 ‘타짜’에는 분명한 선악 구도가 나뉘어져 있다. 고니(장혁)는 ‘착한 타짜’고 아귀(김갑수)는 ‘악한 타짜’가 된다. 고니가 도박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것이지 도박 자체에 매료된 탓은 아니다. 이것은 드라마로서 도박이라는 사행심리를 자칫 부추기는 결과를 피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타짜’가 영화의 그것처럼 리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분명한 선악구도를 그 안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타짜라는 소재는 매력적이다. 즉 도박의 세계 자체가 인간의 욕망을 끌어내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네 TV에 적합한 소재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시청연령을 제한하는 고지가 나오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방영되는 TV드라마에 대한 우리의 정서는 아직까지 도박과 폭력을 용인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식객’과 ‘타짜’, 모두 좋은 소재의 작품이지만 저마다 적합한 매체는 달랐던 셈이다.

매체에 따라 달라지는 ‘식객’의 맛, 그 이유

원작 만화 ‘식객’이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많은 에피소드들을 과연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 내에 제대로 배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였다. 원작 만화 ‘식객’의 묘미는 편편이 음식 하나하나로 끊어지는 그 독자적인 에피소드들의 상찬에 있다. 거기에는 고구마, 부대찌개, 김치 하나에도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따라서 만화로 ‘식객’을 볼 때 우리는 마치 뷔페식당에 온 듯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당신이 고기류를 좋아한다면 ‘쇠고기 전쟁’을 골라보면 되고, 토속적인 맛을 즐긴다면 ‘청국장’이나 ‘메생이’같은 음식편을 찾아 읽으면 된다.

‘식객’의 영화화는 왜 실패했나
하지만 이 만화라는 매체만이 갖는 찾아보고, 다시 보고 하는 묘미는 영화 속으로 들어가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된다. 영화는 한정된 시간(그것도 두 시간 내외) 안에 한정된 공간에서 상영되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주제를 향한 스토리의 연결고리가 그만큼 중요해진다. 영화‘식객’이 처한 불리함은 오히려 너무나 많은 반찬들 때문에 오히려 주요리가 묻혀질 수도 있는 ‘식객’만의 풍족한 재료에서 비롯된다. 어느 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따라가자니 영화 전편으로 꿰뚫기에는 좀 약한 듯 싶고, 그렇다고 몇 개의 에피소드를 가져가자니 얼기설기한 느낌을 주게 된 것이다. 아예 형식 자체를 만화가 가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다는 것은 상업영화로서는 거의 시도하기 어려운 모험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영화화된 ‘식객’이 지나친 대결구도에 몰두하면서 오히려 ‘식객’만의 묘미였던 서민적인 밥상이 외면되었던 것은, 사실은 원작 만화의 진짜 맛이었던 이 소소해 보이는 에피소드들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여러모로 ‘식객’의 영화화가 실패한 점은 그 매체의 다른 특성을 영화적으로 해석해내기가 쉽지 않은 ‘식객’ 원작 만화가 가진 에피소드별 구성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드라마화된 ‘식객’, 어떻게 재료의 균형을 맞췄나
그렇다면 드라마화된 ‘식객’은 어떨까. 같은 영상으로의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영화와 드라마는 그 매체 특성이 다르다. 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해야 하는 반면, 드라마는 시간적 흐름(몇 달 동안) 위에 에피소드들을 구성할 수 있는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 리메이크의 관건은 따라서 드라마적 특성인 메인 뼈대(이것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이 된다)를 세우고, 그 위에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살처럼 붙여놓는 작업에 있었다.

드라마‘식객’이 뼈대로 세운 것은 운암정 후계자를 두고 벌이는 성찬(김래원)과 봉주(권오중)의 대결구도다. 드라마 초반부 거의 숨 쉴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어낸 ‘식객’은 그 위에 하나씩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그 살이란 성찬과 봉주의 대결 구도 밖에 있는 서민들과 음식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테드 오가 그리워했던 부대찌개에 관한 에피소드,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유순철)의 애끓는 부정(父情)을 얘기해준 게장 에피소드, 직업적인 편견을 넘어선 정형사 강편수(조상구)의 에피소드, 며느리와의 정을 녹차김치에 담아 얘기해준 치매할머니(김지영) 에피소드, 음식은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먹는다는 걸 말해준 진수(남상미)의 어머니 에피소드 등등. 원작만화 ‘식객’이 가진 진짜 맛은 바로 이 살을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이 내는 깊은 맛에서 비롯된다.

드라마 ‘식객’의 첫맛과 중심 그리고 끝맛
너무 흔한 구도라 하여 식상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 전통적으로 드라마 문법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대결구도를 뼈대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쉬운 구도 덕분에 드라마는 폭넓은 시청층의 눈을 일단 잡아끄는데 성공했고, 그것을 통해 ‘식객’ 본연의 맛으로 시청자들을 유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음식이 가지는 첫맛과 중심의 맛, 그리고 여운의 맛을 구성을 통해 연결해낸 것 같다. 첫맛은 대결구도로 강렬하게 잡아끌고 중심의 맛에서는 음식에 대한 성찬의 철학(서민적인 맛을 지키는)과 봉주의 철학(맛의 세계화)의 부딪침을 보여주며, 마지막 여운으로 음식이 가진 삶의 이야기를 남겨주었던 것이다.

컨텐츠의 융복합이 문화의 한 경향이 되는 요즘, 이처럼 다른 매체는 거기에 담겨지는 컨텐츠의 맛에 영향을 끼친다. 같은 제목이라도 서로 다른 맛을 우리에게 선사한 ‘식객’은 만화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한번쯤 매체가 가진 융합가능성과 그 한계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본 원고는 청강문화산업대학 사보 100도씨(100C)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SBS 드라마 전성시대, 그 인기의 비결

SBS의 연초 드라마 시청률 성적표는 좋지 않다. 월화에는 MBC의 ‘이산’이 굳건히 버티고 있었고, 수목에는 ‘뉴하트’가 포진해 30%가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뉴하트’가 종영하는 시점에 맞춰 시작한 SBS의 ‘온에어’가 수목의 밤을 장악한 후, 그 바통을 ‘일지매’로 넘겨주었고, ‘이산’이 종영한 월화의 자리는 SBS의 ‘식객’이 차지했다. MBC는 ‘스포트라이트’와 ‘밤이면 밤마다’같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로 승부했지만 시청률 10% 전후를 전전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KBS는 작년에 이어 일일드라마를 빼놓고는 주중드라마에서 그다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SBS는 주중드라마 모두를 장악했고 최근에는 ‘달콤한 나의 도시’같은 프리미엄 드라마로 금요일 밤을 공략하면서 불륜드라마로 인식됐던 금요드라마를 바꿔나가고 있다. 주말 드라마로서 ‘조강지처클럽’과 ‘행복합니다’가 역시 수위를 차지하고 있어 SBS 드라마는 오랜만에 일주일 내내 시청률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월화의 밤, ‘이산’이 지나간 자리
‘이산’이 종영한 후, 월화의 밤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변칙 편성이 난무할 정도로 치열한 편성전쟁이 치러진 후, 그 승자는 ‘식객’이 되었다. ‘최강칠우’와 어느 정도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역시 ‘식객’이 앞서나간 것은 무엇보다 원작 드라마가 갖는 힘 때문이다.

SBS는 작년 ‘쩐의 전쟁’으로 만화 원작 드라마에 강점을 보인 바 있다. 만화 원작 드라마는 일단 그 자체로 극화되어 있다는 점과, 어느 정도는 이미 탄탄한 스토리가 짜여져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동명의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식객’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더해진다. 그것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갖춰야할 전문성이 이미 원작 단계에서부터 꼼꼼한 취재를 통해 확보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식객’이 ‘이산’이후의 월화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원작 드라마가 갖는 탄탄한 스토리와 허영만 화백 특유의 전문성이 무리 없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식객’에는 드라마의 힘을 더해주는 요소들, 즉 팽팽한 대립구도, 전문적인 이야기, 음식이라는 소재의 강점, 감동이 있는 스토리, 게다가 음식에 대한 철학적인 논점까지가 모두 잘 버무려져 있다. 물론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수목의 밤, 전문직과 사극의 대결
MBC가 ‘누구세요’로 주춤하는 동안, SBS는 ‘온에어’라는 방송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전문직으로 다루면서 수목의 밤을 장악했다. 이어 절치부심 내놓은 MBC의 ‘스포트라이트’는 초반 ‘일지매’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면서 전문직 드라마와 사극의 대결구도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초반의 관심을 얼마나 잘 이끌어갔느냐에 달려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초반 탈주범 장진규 에피소드라는 초강수를 내보이면서 주목을 끌었으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를 너무 일찍 보여준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에피소드 드라마 형식으로 병렬적으로 구성된 ‘스포트라이트’는 드라마의 흐름을 끊는 역할까지 해 시청률 상승에 족쇄가 되었다. 게다가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미완적으로(정치적으로 해결) 해결되는 모습은 다음 에피소드에 대한 기대감을 상쇄시켰다.

한편 ‘일지매’는 ‘스포트라이트’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초반부 화려한 일지매의 액션을 보여주고는 그 일지매가 되어가는 과정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보여주었던 것.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상승곡선을 이루면서 시청률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KBS의 ‘태양의 여자’는 꽤 잘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타방송사의 작품들만큼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이것은 최근 들어 사극과 전문직 드라마가 아니면 좀체 화제가 되지 않는 상황을 말해준다.

주말드라마, 명품이거나 공식이거나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된 요즘, 금요드라마는 주말드라마와 함께 얘기될 수밖에 없다. 그간 금요드라마가 주부대상의 성인드라마가 되어왔던 것은 이탈되어가는 시청층을 그나마 충성도가 높은 주부들에게서 찾아보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바 크다. 하지만 프리미엄을 주창하는 새 금요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는 거꾸로 가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섹스 앤 더 시티’같은 세련된 성인 미드에 익숙한 시청층을 공략한 것. 10%대를 유지하는 시청률에서 성공적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금요일의 색깔을 바꾸었다는 의미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주말 드라마로서 ‘행복합니다’나 ‘조강지처클럽’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주말 트렌드를 읽어낸 결과다. 이 드라마들은 일단 어렵지 않고 캐릭터나 관계만 알고 있으면 몇 회 정도는 못 봐도 그다지 무리가 없는 정도의 편안한(?) 작품들이다. 이동이 많은 주말 밤에 너무 꽉 짜여진 드라마는 부담이 된다. ‘달콤한 인생’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시청률 경쟁에서는 정작 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BS의 주말드라마는 이러한 공식에 충실한 트렌드를 이미 ‘황금신부’를 통해 확인한 바 있고 지금의 드라마들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KBS의 ‘엄마가 뿔났다’같은 경우는 이러한 주말 트렌드를 김수현 작가 특유의 색깔로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예외적인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의 헤게모니는 일 년에도 몇 번씩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는 방송사의 드라마 관계자들을 만나면 흔히 이 주기적인 헤게모니의 이동을 얘기하곤 한다. 그것은 마치 시간이 지나면 응당 자신들의 시대가 돌아올 것이라는 낙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려운 입장에서 부단한 노력과 투자가 있었기에 헤게모니의 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SBS의 드라마 평정은 한동안 이어질 수도 있고 또 언젠가 타 방송사로 넘어갈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과정에서의 노력이 좋은 드라마라는 결실로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돌아가기를 바란다.


음식이 가진 메시지, 그 소통의 기억

SBS 월화드라마 ‘식객’에 등장하는 세계적인 음식 칼럼니스트 테드 오가 꿈꾸는 맛은 어린 시절 어머님이 해주셨던 부대찌개다. 온갖 산해진미를 다 맛보았을 그가 서민적인 부대찌개의 맛을 애타게 찾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테드 오의 에피소드가 말해주는 것은 음식과 맛이 그저 감각적인 기호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테드 오가 찾는 것은 부대찌개에 담겨진 그만의 기억이다. 그에게 부대찌개는 어린 시절 배고픈 자식들을 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며, 부족해도 그것을 함께 나눠먹던 형제들의 마음이다. 그 맛의 기억이 녹아든 부대찌개가 그에게 인생 최고의 맛이 되는 것은 음식이 때로는 언어처럼 그 담겨진 의미가 소통되고 전달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음식, 만드는 자와 먹는 자의 공감
저 ‘식객’의 테드 오가 보여주는 것처럼, 음식은 그저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만드는 자와 먹는 자 사이에 놓여진 소통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매체철학의 근간을 세운 마샬 맥루한식으로 표현하면, ‘미디어는 메시지’인처럼, ‘음식은 메시지’다. 즉 음식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처럼 만드는 자와 먹는 자 사이를 소통하게 해주고, 그걸 만들고 먹는 자의 음식에 대한 생각, 나아가 세상에 대한 생각까지를 변화하게 해준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랫목에 넣어두었던 고구마는 나이 들어서도 어머니가 자식에게 표하는 사랑의 상징처럼 자리잡게 마련이고, 그래서 고구마를 먹을 때면 언제나 남다른 애정이 느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때론 개인적인 차원의 정서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머니의 손맛은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손맛’이라는 말은 손으로 했다는 그 물리적인 행위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손으로 직접 하는 그 정성과 마음’이 맛으로 전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거꾸로 말해 그 정성과 마음이 사라져버린 음식들, 예를 들면 패스트푸드 같은 것들에 대한 거부는 어머니의 손맛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다.

성찬(김래원)이 운암정의 후계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서민들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운암정을 브랜드화하여 세계화하려는 봉주(권오중)의 면면과 대비된다. 맛에 대한 경제적 잣대는 맛의 메시지를 규격화시켜 결국에는 사라지게 만든다. 맛에 담겨진 정성과 마음은 사라지고 경제적 가치만이 메시지로 남게 되는 것이다. 테드 오의 평점에 집착하는 봉주에게 오숙수(최불암)가 “운암정의 위상은 한 사람의 입맛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말은 그의 음식에 대한 메시지가 서민과 대중들을 향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신이 꿈꾸는 맛, 혹시 살맛은 아닌지
손과 손이 만나고, 눈과 눈이 마주치는 그런 사람과 사람간의 직접적인 소통이 점차 사라지고, 대신 자리잡은 시스템화되고 규격화된 네트워크 위에서 사는 요즘 같은 세상에, 오히려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그 공감의 기억이다. 그리고 음식은 매일 세 번씩 그 공감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것을 민감하게 느끼는 현대인들은 드물다. 매일의 바쁜 일상은 저 불교에서 말하는 자신을 위한 ‘공양’을 귀찮은 행위로까지 전락시킨다.

아침이면 정신 없는 출근길에 대충 군것질로 식사를 대신하고 커피로 공복을 달래기 일쑤며, 점심이면 오늘은 또 뭘로 때우나 하며 여기저기 음식점을 기웃거린다. 저녁이면 과도한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때론 자학적인 음주에 빠지기도 하고, 과장된 외식의 화려함 속에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문득문득 몸이 원하는 맛의 기억이 있다. 그것은 단순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겨있던 밥 한 그릇에 대한 그리움이다.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사라져 가는 세상 살맛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식객’이 꿈꾸는 맛은 아마도 바로 그런 맛일 것이다.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주기도 하는 음식은 세상을 바꾸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어머니는 늘 조용히 세상을 바꿔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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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예능에 가득한 경합, 그것이 말해주는 것

‘식객’의 초반부 긴장감을 탄탄히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단연 운암정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이는 성찬(김래원)과 봉주(권오중)의 요리 경합이다.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이미 앵커 자리를 놓고 한 차례 경합을 벌였던 서우진(손예진)과 채명은(조윤희)이 이제 심층리포트의 진행자 자리를 놓고 또 경합을 벌이고 있다. ‘대왕 세종’에서도 드라마 초반에는 충녕대군과 양녕대군이 국본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정치적 경합을 벌이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드라마 속의 경합, 공정하지 못한 사회
드라마들이 이렇듯 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드라마는 갈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이 대결구도를 가장 쉽게 가시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경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합의 양상들을 좀더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다. 거기에는 사회가 가진 서열 구조와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욕구들이 드라마 속에 환타지의 형태로 드러난다.

성찬과 봉주의 경합에서 봉주가 상처를 받는 것은 그가 적자의식을 갖고 있어서다. 그는 운암정 최고권위자인 오숙수(최불암)의 아들이니 당연히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우진과 채명은의 경합에 있어서도 이 적자와 서자의식은 똑같이 드러난다. 선배인 채명은은 서열상 자신이 적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대왕 세종’같은 사극 속에서의 장남이거나 적자인 이들은 당연히 자신에게 권력과 부가 승계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들은 대부분 이 적자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는다. 지금 사회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적자나 서자의식이 통용되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 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당히 실력을 갖춘 이가 적자의식에만 가득한 인물을 무너뜨리고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경합뿐이다. 이것은 점점 능력 중심으로 변해가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일까. 거꾸로 여전히 실력보다는 서열이나 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의 불합리함을 드라마에서나마 위안을 얻으려는 환타지일까.

그것은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능력 위주의 사회는 바람일 뿐, 우리 사회는 심지어 그 탄생에서부터 미래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이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갖춘 자들의 적자의식은 시대가 흘렀지만 여전하다. 드라마 속에 이렇듯 빈번하게 경합이 활용되는 것은 그만큼 치열해진 경쟁사회이면서도, 그 경쟁 자체는 그다지 공정하지 않은 우리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예능 속의 경합, 경쟁 사회에 대한 희화화
한편 경합에 빠진 건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들은 거의 모든 것들이 바로 이 경합의 틀을 갖고 있다. ‘1박2일’의 잠자리나 식사 한 끼를 두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이 그렇고, ‘무한도전’의 끝없는 과제 속에서의 이기적인 출연진들의 대결이 그러하며, ‘해피투게더’의 사우나 안에서 벌어지는 도전 암기송이나, ‘패밀리가 떴다’의 유재석이 툭하면 제안하는 게임이 그렇다.

이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의 경합은 얼토당토않은 목표를 갖고 있다. 바로 이 얼토당토않다는 부분에서, 우리가 스포츠경기 같은 것을 통해 느끼게 되는 진지한 긴장감 같은 것은 사라진다. 만일 진지한 목표가 설정된다면 긴장감은 생기겠지만 웃음은 좀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복불복 게임은 말 그대로 게임일 뿐 현실 사회가 보여주는 진짜 경쟁과는 다르다. 경쟁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에 목숨을 걸고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들 예능 프로그램들은 웃음을 유발한다. 이것은 경쟁 사회에 대한 희화화다.

직장생활 같은 경쟁적 삶 속에서 살다가 빠져나온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때론 왜 그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며 살았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의 경합은 따라서 사회 풍자적인 요소가 있다. 그 얼토당토않은 경합을 보면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이미 우스꽝스런 경쟁적 삶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지게 된다.

드라마나 예능이 점점 이 경합이라는 코드를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거기서 충분한 효과를 얻어내는 것은 여러모로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진 불공정한 구조와 그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피곤함과 관련이 있다. 드라마는 이 경쟁의 피곤함을 환타지의 형태로 해결하려는 것이며, 예능은 경쟁 자체를 비웃음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그 무엇도 실제적인 해결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떠랴. 그 경합의 재미 속에서 현실의 경쟁적 삶을 잊어버리는 것은. 잠시만이라도 말이다.


‘식객’, 그 첫 맛은?

네모난 세상/명랑TV 2008.06.18 02:22 Posted by 더키앙

‘식객’의 기본기, 물리지 않는 담담한 맛

누군가 정성 들여 만들어놓은 음식을 처음으로 맛보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새로이 월화의 밥상에 올려진 ‘식객’이란 요리의 첫 맛은 담담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극적 구성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또 그렇다고 흥미진진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허영만 화백의 원작 ‘식객’이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똑같은 음식을 소재로 하지만, 우리네 ‘식객’은 중국의 ‘식신’같은 영화와는 차별화 된다. ‘식객’이란 원작만화의 첫 시작으로 제시되는 요리가 밥이라는 사실은, ‘식신’의 화려한 요리들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서민적인 요리에 손을 들어주는 ‘식객’의 맛의 철학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드라마 ‘식객’이 담담한 첫 맛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성찬(김래원)은 운암정 후계자 자리를 두고 요리대결을 벌일 봉주(권오중)와는 물론이고 심지어 오숙수와도 맛에 대한 철학이 다르다. 똑같은 생태를 가지고 요리를 하더라도, 오숙수는 최고의 재료를 구하는 것이 요리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라 생각하고, 봉주는 요리도 장사이기에 일단 수지가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성찬은 싸고 흔한 재료라도 노력을 통해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숙수가 요리에 있어서 이상을 꿈꾼다면 봉주는 현실적이며, 성찬은 그 사이에서 화해를 모색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성찬이 버려지는 동태들을 싼 가격에 사서 끝끝내 맛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선사할 맛이 산해진미가 아닌 바로 서민의 맛을 향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이상을 꿈꾸지만 그렇게 어렵게 구한 재료로 끓여낸 생태탕을 꽁보리밥과 함께 내주면서 고향의 맛, 어머니가 해주던 맛을 선사하는 오숙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돈이라는 현실의 차원을 넘어서 추억을 떠올려주는 맛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바로 이 부분은 ‘식객’이 그저 화려한 음식이나 대결구도만의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식객’은 음식의 의미를 찾아가는 드라마다. 드라마 첫 시작에서 순종에게 마지막 수라를 올리는 대령숙수가 납평전골을 만들어 그 의미(다시 나라를 되찾아 빼앗긴 사냥터에서 다시 꿩과 멧돼지를 잡아 요리를 올릴 수 있게 해달라)를 전하는 것은 음식이 그저 입만을 즐겁게 해주는 것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운암정 후계자를 두고 벌인 첫 번째 요리대결에서 성찬이 우승한 이유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지키는 그 기본기를 지켰기 때문이다. 드라마 ‘식객’이 성찬의 기본기를 닮기를 바란다. 듣도 보도 못한 화려한 음식들의 상찬으로 만들어내는 자극적인 맛보다는, 청국장이나 김치찌개 같은 평범하고 담담하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맛을 내는 드라마가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은 허영만 화백 원작 ‘식객’이 가진 기본기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요리영화의 새장 연 ‘식객’, 그 아쉬움

허영만 화백의 ‘식객’이란 원작만화는 일본의 ‘미스터 초밥왕’이나 ‘맛의 달인’을 보며 입맛을 다셨을 독자들에게 우리네 입맛을 되돌려준 고마운 작품이다. ‘우리 음식의 재발견’이라 할 정도로 만화는 철저한 사전 취재와 실제사례들을 통해 생생한 우리네 맛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반응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것을 영화화한 ‘식객’은 기본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들어가는 이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식객’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요리영화라는 점에서 먹고 들어가는 영화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담뽀뽀(1986)’가 있다면 중국에는 ‘금옥만당(1995)’, ‘식신(1996)’이 있고 우리에게는 ‘식객’이 있다고.

그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영화는 초반부에 운암정 후계자를 뽑는 대결에서 봉주(임원희)에게 패배한 성찬(김강우)이 시골집에서 자신을 찾아온 진수(이하나)와 국장에게 밥상을 차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손수 지은 밥에 된장찌개, 각종 반찬에 누룽지까지 이 영화의 첫 번째로 등장하는 밥상은 화려하진 않아도 우리네 요리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원작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걸 보여주려 한 탓일까. 원작 만화가 가진 에피소드들을 한 편의 영화로 묶어내는데 있어서 ‘식객’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그 중심적인 모티브를 원작만화의 미덕이었던 이 서민적인 밥상에 두지 않고, 성찬과 봉주의 ‘요리대결’로 가져가면서 영화는 정작 주목해야할 요리들을 소외시킨다.

이것은 저 ‘담뽀뽀’가 가진 일본식 사연 중심의 스토리와 ‘금옥만당’, ‘식신’이 가진 중국식의 과장된 대결구도를 적절히 봉합한 듯한 느낌을 준다. 원작만화가 천착하려 했던 요리에 대한 치열한 접근이 빠져버리자, 요리 자체와 요리와 관계된 사연을 가진 인물들의 관계는 겉돌게 된다. 그나마 이 부분이 맞아떨어지는 곳은 원작만화에서도 백미로 꼽히던 ‘고구마 에피소드’에서이다.

영화의 사건들은 생활과 생계, 혹은 삶과 연계된 요리 이야기를 배제하고, 대결구도 속에서 이기기 위해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로서의 요리 이야기로 흘러간다. 스토리가 극단적으로 한일 간의 민족주의적 색채마저 띄게 되는 것은 영화가 선택한 대결구도라는 장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대결구도 속에서 요리가 화려해질수록 사람 손길이 닿은 서민적인 밥상이 주던 훈훈한 감동은 점점 사라진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이 감동을 주었던 것은 그 안에서 다루던 음식이 특별난 것이 아닌 서민들의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대사에서도 등장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의 수는 세상의 어머니의 숫자와 같다”는 말은 사실상 허영만 화백이 가진 음식에 대한 생각이다. 그러니 ‘식객’의 진짜 묘미는 요리사들의 대결 이야기가 아닌 서민들의 이야기에 있다. 거기 들어있는 요리가 맛있고 심지어 감동까지 주는 것은 요리는 물론이고, 그걸 만든 사람의 손길이나 마음이 닿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부분은 원작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감독 나름의 선택이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만화원작과 영화를 너무 비교하는 관점에서 본 결과일 수도 있다. 실제로 영화 ‘식객’은 만화원작에서는 보이지 않던 도시와 시골, 상류층과 서민의 대결구도를 끄집어내 괜찮은 우리 식의 요리 영화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상품화되어 대량생산되는 요리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요리의 대결구도를 가져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것 역시 영화 속에서 구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영화는 여러 편의 에피소드를 대결구도라는 틀 속에서 순서에 따라 나열하는 구조로 간다.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요리로 치자면 이 영화는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린 화려한 밥상 같은 느낌이다. 그러니 그 자체의 다채로운 맛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충분한 재미를 선사해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좀더 소박하고 서민적인 밥상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이 화려한 밥상을 대하면서 무언가 2%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그 상 위에 올려진 요리 하나하나에 숨겨진 서민적인 사연 같은 것들이 그 화려함 속에 묻혀졌다는 아쉬움이다. 때론 수십 개의 화려한 메뉴를 선보이는 집보다, 한두 개의 메인 메뉴로 승부하는 집의 입맛이 그리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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