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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2 신데렐라, 사극도 예외는 아니다
  2. 2008/03/09 주말극, 신데렐라가 넘쳐난다

의빈성씨가 다모가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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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극을 장악한 이른바 줌마렐라(아줌마 신데렐라)가 있다면, 사극에도 신데렐라는 예외가 아니다. MBC 월화 사극, ‘이산’에서 훗날 의빈성씨가 될 성송연(한지민)과 정조(이서진)의 사랑이 그렇다. 그것도 그 신분의 벽이 그저 양반과 천민의 수준이 아니다. 천민과 왕과의 사랑을 다루고 있으니 그야말로 극과 극의 만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설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가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이야기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눈에 가장 잘 띄는 것이 늘 있게 마련인 반대하는 시어머니다. 이산을 위해서라면 한 목숨 기꺼이 바칠 듯하던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송연이 다모라는 그 신분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의 의빈성씨는 적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사육신 중 하나인 성삼문을 배출한 조선시대 명문가의 하나인 창녕 성씨 중 찬성 벼슬에 올랐던 성윤우의 딸이다. 적어도 다모 같은 천민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산’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약간의 사실의 변용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왜 굳이 도화서 다모 같은 천민으로 의빈성씨를 설정했는지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법하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도화서 다모라는 직업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다.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그림은 어진(임금의 초상화)과 의궤(행차도 같은 의식을 기록한 것)였다. 그러니 사극으로서 도화서 화원이라는 직업은 여러 모로 매력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화원은 그 그림 자체도 흥미를 끌게 하지만, 무엇보다 모든 행사에 나간다는 점, 그것도 그림으로(요즘으로 치면 사진 같은 것이다) 남긴다는 점이 그렇다. 사극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서 이 그림이라는 기록은 추리극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하고 때론 사건 해결을 위한 확실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 화원이 아닌 다모는 신분을 한 단계 낮추면서 또한 당대로서는 성차별을 겪기 마련인 여성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볼 때 가장 약자에 해당하는 존재가 된다. 물론 이런 설정은 성장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위한 발판이다. 드라마 상에서 성송연은 남자 화원들보다 뛰어난 입지전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다분히 현대여성들의 환타지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의빈성씨를 굳이 다모로 설정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신데렐라의 사극 멜로 버전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현대극에서 신데렐라야 빈부 차이에서 거의 비롯되지만, 사극은 그 신분 차이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극이 갖는 환타지는 더 커진다. 이렇게 보면 다모라는 직업의 선택에는 두 가지 고려가 들어있다. 그것은 저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말하는 전문직에 대한 요구가 첫번째요, 직업의 천한 신분으로 인해 생기는 보다 강력한 신데렐라 설정이 두번째다. 이렇게 보면 역사왜곡의 문제는 남겠지만, 드라마적으로 봤을 때 의빈성씨를 다모로 설정한 것은 다분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 효과가 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는 문제는 지금부터다. 성송연은 이 다모라는 신분으로 어차피 의빈성씨까지 올라가야 하는 드라마 속의 과제를 안고 있는 캐릭터다. 그렇다면 이 과정이 더 중요해진다. 다모에서 화원의 지위까지 성장한(물론 신분상으론 여전히 다모지만) 성송연은 이제 어떻게 의빈성씨가 될 것인가. 앞부분의 성장은 성송연 혼자 가진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것이라 현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충분한 공감이 된다. 허나 의빈성씨가 되는 과정 역시 그러할까. 그것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과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전형적인 신데렐라 멜로를 따라갈 것인가. 그것이 그저 신데렐라의 사극 버전이 될지, 아니면 능동적인 현대 여성의 사극적인 변용이 될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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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신데렐라, 그 변주는 어디까지?

주말극을 신데렐라가 장악했다.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들은 저마다 신데렐라를 내세우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놓고 있다. 그 시청자의 대부분은 아줌마. 그래서일까. 신데렐라도 아줌마의 눈높이에 맞춘 버전으로 변주되는 양상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는 정도를 넘어 아예 신데렐라의 남녀 구도를 역전시킨 ‘행복합니다’에서부터, 이혼녀 워킹맘으로 일상이 고통이지만 그 일상을 이해해주는 능력 있는 남자들에 의해 사랑받는 워킹맘 신데렐라, ‘천하일색 박정금’, 역시 이혼녀에 조기폐경 진단까지 받으며 악다구니를 쓰며 살지만 톱스타와 스캔들에 빠지는 억척맘의 신데렐라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까지. 도대체 이 변주된 신데렐라의 어떤 점이 우리네 아줌마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 걸까.

‘행복합니다’- 신데렐라, 되기보다는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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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합니다’에서 박서윤(김효진)은 재벌집 딸. 그와 사랑에 빠진 이준수(이훈)는 그녀에 의해 천거된 남자다. 기존 신데렐라 이야기를 뒤집은 이 드라마의 스토리에서 주목해야할 인물은 이 맹랑할 정도로 당당한 박서윤이란 캐릭터다. 트렌디 드라마의 고질적인 수동적 여성 캐릭터와 비교한다면 정 반대에 서 있는 이 캐릭터는 뭐든 자기 스스로 능동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간다. 반대하는 엄마를 굴복시키기 위해 저 스스로 언론에 열애설을 배포하고, 그것도 모자라 더 반대하면 아예 임신설을 퍼뜨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게다가 그녀의 이런 막가파식 행동은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재벌그룹 자제와의 결혼설로 올라갔던 회사의 주가가 서민적인 남자, 이준수와의 열애설로 떨어질 것이라 고심하는 가족들에게 그녀는 오히려 이런 발표가 기업의 서민적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설파한다. 이런 합리적인(?) 설명은 결국 그녀가 자기 회사를 위해 재벌과 결혼시키려는 엄마와 다를 것 없이 결혼이 사랑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도 활용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지만, 어쨌든 그녀의 이런 설득은 영리한 면이 있다.

과거 트렌디 드라마에서 늘 당하고, 울고, 그러면서 참고, 결국에는 남성에게 매달리던 수동적 캐릭터는 이 여성에게서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준수에게 오히려 거꾸로 프로포즈를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성 역할만 바꾼 트렌디 드라마를 연상케 만든다. 여성들은 이제 수동적으로 신데렐라가 되는 입장보다는 신데렐라를 키우는 걸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여성의 위치는 이미 남성이 끌어 올려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높거나 그 이상이라는 것. 이것은 현실에서 적어도 심적으로는(물론 사회 시스템은 다를 수 있다) 여성들이 남성과 놓여졌을 때 느끼는 동등함 혹은 그 이상의 우월감을 말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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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일색 박정금’ - 이해 받고 싶은 신데렐라
‘천하일색 박정금’이 특이한 것은 남녀 간의 성 역할 구분이 희미해진 세계를 이미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정금(배종옥)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관습적으로 활용되었던 마초적인 남성 형사라는 틀을 깨는 배려 깊은 여성 형사라는 점은 주목해봐야 할 문제다. 물론 ‘히트’같은 드라마를 통해서도 이러한 여성성을 가진 여형사가 등장했지만, 박정금은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 구체적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식을 잃어버린 엄마다. 그러니 그녀가 일하는 형사라는 칼부림의 현장 속에서도 모성이라는 여성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박정금이 남성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와서도 여성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남녀 성 역할 구분에 있어서 그만큼 유연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박정금과 대척점에 서 있는 불량주부(?) 정용두(박준규)의 설정은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다. 물론 그만큼 극단화되어 있지 않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두 남자, 한경수(김민종)와 정용준(손창민) 역시 여성성을 가진 남성들이다. 한경수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진 인물로 아이를 잃어버린 아픔을 가진 박정금과 동병상련을 갖고 있다. 그의 캐릭터는 ‘떠나지 못하는’ 인물로 상정되어 있는데 여기서 ‘떠나지 못한다’는 말은 ‘상처주지 못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것이 한경수를 여성성에 머물게 하는 이유다. 정용준 역시 의사로서 돈을 벌기보다는 약자를 위해 봉사하고 거기서 기쁨을 얻는 인물로 상처를 보듬어주는 한경수의 캐릭터와 유사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에서 신데렐라는 어디서 발생할까. 이 드라마는 빈부 격차에서 벌어지는 신데렐라는 없다. 막연히 형사라는 직업과 의사, 변호사라는 직업 사이의 간극이 느껴질 뿐이다. 그 능력 있는 남성들이 이제 나이 들고 집 안팎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워킹맘 박정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사랑해준다는 점에서 신데렐라는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상 요즘처럼 능력 있는 여성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는 돈보다 더 강한 환타지를 제공한다. 이해 받고 싶은 것이다.

신데렐라의 변주, 트렌디의 역할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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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통속적인 작품이라 할 지라도 그 속에는 사회적 모순 같은 것들이 담겨져 있기 마련이다. 주말극을 장악한 신데렐라의 변주는 그런 점에서 지금 시대를 바라보는데 의미가 있다. 지금의 신데렐라들이 과거의 신데렐라를 거부하고 새로운 신데렐라를 꿈꾸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틀 안에서의 이야기에 머물 뿐이다. ‘행복합니다’나 ‘천하일색 박정금’이나 이 시대의 달라진 모습을 포착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신데렐라 콤플렉스 속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공공연히 신데렐라의 아줌마 버전이라 자처하고 있는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이제 이 신데렐라의 변주가 하나의 장르적 재미의 틀로 안착하는 징후로 읽혀진다.

주말극을 장악한 신데렐라에 대한 열광은 그만큼 양극화된 사회 속에서 과거와는 다르게 사회에 진출해 살아가는 여성들의 욕구와 좌절을 에둘러 말해준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러한 새로운 신데렐라가 어쩌면 젊은 시청층이 뉴미디어로 점점 빠져나간 자리에 들어서는 또 다른 중년 트렌디의 시작인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달라진 신데렐라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속의 새로운 의미에 천착하지 않고 여전한 공식 속에서 단지 트렌디의 역할 바꾸기에만 골몰할 때, 그것은 저 몰락한 트렌디 드라마의 뒤를 고스란히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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