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 인생’ 나영희, 재벌가라도 이런 시어머니라면

제아무리 재벌가라고 해도 저런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한다면 들어가고 싶을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신혜선)네 집안에 불어닥친 불행의 시작은 갑자기 해성그룹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부터다. 물론 아버지 서태수(천호진)는 사업 실패 후 그 사실을 숨긴 채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왔고, 첫째 서지태(이태성)는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 자체를 꿈꾸지 않았으며, 서지안은 어렵게 인턴으로 해성그룹에 들어가 일하고 나서도 낙하산으로 뚝 떨어진 금수저 친구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상처를 입었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당신 딸이 내 딸이라고 나타난 해성그룹 사모님 노명희(나영희)의 등장 앞에 이 집안은 균열을 일으킨다. 엄마의 거짓말 때문에 친 딸인 줄 알고 들어갔던 서지안은 진실이 밝혀지자마자 그 집안에서 쫓겨나고 집으로도 돌아가지 못한다. 친 딸로 다시 들어간 서지수는 가족이 아닌 사관학교 같은 그 집안의 공기를 적응하지 못한다. 겨우 자신이 사랑하던 선우혁(이태환)과 좋은 관계가 되었지만 그 집안이 오히려 발목이 되어 그들은 헤어질 위기에 처한다. 진실이 밝혀진 후 지안, 지수의 엄마인 양미정(김혜옥)은 두 딸 모두로부터 버려지다시피 했고, 아버지 서태수(천호진)는 차라리 죽음이 축복이라 받아들이는 힘겨운 현실 앞에 서게 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중반 이후부터는 진실이 밝혀진 이후에 진정한 행복을 찾아 해성가로부터 탈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지안은 쫓겨나 극단의 선택까지 가게 되지만 겨우 제 자리로 돌아와 자신이 좋아하던 것들을 하며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게 되었다. 해성가의 후계자인 최도경(박시후) 역시 해성가로부터 빈털터리로 쫓겨나 홀로서기를 하고 있고, 하다못해 막내 딸인 최서현(이다인)도 서지호(신현수)와 만나 함께 창업을 해가며 제 손으로 일해 돈을 버는 그 경험들을 해나간다. 

흔히들 재벌가 하면 누구나 신데렐라를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신데렐라는 없다’고 못을 박는다. 그래서 최도경의 구애를 오히려 서지안은 거부한다. 그는 노명희 앞에서 당당히 “제가 싫거든요”라고 말했듯 최도경을 사랑하지만 그 집안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선을 긋는다. 그건 불행한 삶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건 서지수를 사랑하지만 그가 해성가의 딸이라는 걸 알고는 이별을 통보하는 선우혁의 이야기에서도 반복된다. 이들은 모두 재벌가가 싫단다. 그런 삶은 불행한 삶이라고.

그것이 불행이라는 걸 확증시키는 인물은 역시 노명희라는 인물 그 자체다. 그는 해성가의 딸로 자라나 최재성(전노민)과 결혼했고 그래서 지금도 실권을 쥐고 있지만 행복이 없다. 최재성이 말하듯 노명희는 가족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줄 사람이 없다. 스스로는 그것이 약한 자들의 논리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외로움을 가리려는 변명처럼 보인다. 최재성은 가난하게 자라나 재벌가의 딸인 노명희와 결혼했지만 해성가로 들어온 그 삶이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일인지 <황금빛 내 인생>에 ‘황금빛’처럼 보이는 재벌가의 모습은 불행 그 자체로 그려진다. 

물론 극화된 이야기일 것이지만, <황금빛 내 인생>이 바라보는 재벌가에 대한 양면은 최근 대중들이 바라보는 재벌가에 대한 양가감정을 투영해내고 있다. 즉 많이 가진 그 화려함에 눈이 멀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그것이 빛을 내는 이면에 놓여진 섬뜩한 돈의 논리들이 주는 진저리를 담아내고 있는 것. 제아무리 재벌가라고 해도 저런 시어머니 아니 어머니라면 그 누구라도 진력이 날 수밖에 없는 재벌가의 민낯을.(사진:KBS)

‘황금빛’ 나영희, 가진 자들의 착각 혹은 오만

“너였구나. 우리 도경이 집 나가게 한 게 너였어. 서지안 네가 감히 내 뒤통수를 쳤구나. 네 엄마 아버지로 부족해서 너까지. 배포가 아주 크구나 너. 그 엄마에 그 딸이야. 들어와서 팔자 바꾸려다 안되니까 다른 길을 찾은 거니? 도경이한테 붙으면 해성가에 다시 들어올 줄 알았어? 이번엔 엄마 아버지까지 같이 머리 모아 기획했니? 서태수가 네 연락처 안 가르쳐줄 때 수상했어. 우리 도경이 어딨어. 경고하는데 그 입에서 또 한 번 한 마디라도 거짓말 나오면 가만 안둔다 지안아.”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인생>에서 해성가 사모님 노명희(나영희)는 다짜고짜 서지안(신혜선)을 찾아와 집 나간 아들 최도경(박시후)이 너 때문이 아니냐며 몰아세운다. 그런데 그 말들을 들여다보면 가진 자들이 가진 착각과 오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의 아들 최도경이 자신들의 그 숨 막히는 세계로부터 탈출해 나왔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한다. 대신 서지안의 꼬드김에 넘어갔다고 착각하는 것.

착각과 오만은 그게 끝이 아니다. ‘감히’라는 표현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이 뼛속까지 들어차 있다. 그래서 서민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는 말 속에는 핏줄에 따라 그 사람도 다르다는 그의 이상한 생각이 담겨 있다. 이 정도면 중증이다. 돈 좀 있다고, 그래서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이상한 생각.

그래서 노명희는 해성가 같은 재벌가라고 하면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 안달난 줄 안다. 그래서 서지안을 몰아세운다. 마치 자신의 생각이 맞지 않냐고 강변하듯. “언제부터였니 니들. 네가 아닌 거 알고 나서지? 그래서 너 도경이한테 먼저 말했지? 도경이 욕심나서. 도경이를 가지면 해성을 가질 수 있을 줄 알고.”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이 정도면 노명희는 ‘재벌가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 같다. 

이어지는 서지안의 일갈은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압축해서 담아놓는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는 최도경 씨하고 아무 사이 아닙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 전혀 없습니다. 최도경 씨 이용해서 얻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특히 해성가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 전혀 없습니다. 전. 제가 싫거든요.”

서지안의 이 한 마디는 이른바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전형적인 틀을 깨는 발언이고, 오히려 ‘재벌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노명희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는 말이다. 정신 좀 차리라는 것.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지만, 그 재벌가를 끔찍하게 경험한 서지안에게는 그 곳으로 돌아간다는 건 지옥 같은 일이다. 게다가 모든 걸 포기하려 했다 다시 살아난 그는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일궈나가는 길이 진짜 잘 사는 길이고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걸 알고 있다. 

노명희가 살아가는 삶이 ‘황금’으로 둘러쳐진 화려한 삶일지라도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지만, 집을 나와 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조금씩 제 인생의 빛을 찾아가는 서지안의 삶이 훨씬 행복해보이는 이유다. 그러고 보면 서지안을 걱정해 전화한 아버지가 한 말이 유독 큰 울림으로 남는다. “네가 어떤 아이였는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그것만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네 길의 불빛은 너만 비출 수 있는 거야 결국.”(사진:KBS)

‘저글러스’ 백진희, 신데렐라 로코물에 담긴 불편한 현실

보스를 위해 양손과 양발로 수십 가지 일을 해낸다? 우리가 흔히 ‘비서’라고 부르는 지칭을 어째서 KBS 새 월화드라마는 굳이 <저글러스>라 이름 붙였을까. 거기에는 일종의 인식차가 존재한다. 좌윤이(백진희)는 그것이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이라며 ‘저글러스’라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언제 어느 때곤 단물 빠지면 팽 당할 처지에 놓이는 비서일 뿐이라는 것.

좌윤이는 봉상무(최대철)의 비서로서 별의 별 일들을 다한다. 심지어 상사의 애인까지 챙기고 봉상무의 아내(정영주)의 의심으로부터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007 작전 같은 일을 감행하기도 한다. 흔히 ‘오피스 와이프’라고 불릴 정도의 선을 넘어버린 일들을 하고 있는 이유는 상사의 성공이 바로 자신의 성공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결국 상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받으며 팽 당하기에 이르지만.

그 정도면 자신이 저글러스가 아닌 그저 지나치게 충성하는 비서이고 그런 방식으로 자기 성장을 한다는 것이 환상이라는 인식을 가질 만하지만, 회사에서 다시 그를 부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원점으로 돌아간다. 남치원(최다니엘)의 프락치로 조상무(인교진)가 자신을 그의 비서로 붙인 것이라는 걸 좌윤이도 알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인물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남치원을 잘 보좌하고 하나하나 챙기려는 이른바 ‘서포터 정신’이 아예 습관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결국 <저글러스>라는 드라마는 바로 이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타인을 위해 수동적으로만 살아오는 것이 타성화되어 버린 좌윤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변화와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그 틀은 조금은 뻔해 보이는 ‘신데렐라’ 코드를 가져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은 좌윤이가 보좌하게 되는 남치원과의 갑을 관계를 넘나드는 말랑말랑한 썸 타기가 이 드라마의 또 한 줄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뻔한 신데렐라 코드를 조금 다르게 만드는 건 남치원이라는 인물이다. 무슨 일인지 등에 화상을 입고 있는 이 인물은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철벽을 치며 살아간다. 차갑고 사무적인 태도는 결국 이 상처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멜로 코드로서 철썩 달라붙으려는 좌윤이와 철벽을 치는 남치원의 관계가 주는 밀당이 존재하지만, 그것보다 주목되는 건 남치원의 개인주의적 경향이 자신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로 살아가는 좌윤이에게 어떤 변화를 예고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상사밖에 모르는 삶을 타성화해 온 좌윤이와 자신밖에 모르는 삶을 트라우마 때문에 살아가는 남치원은 그래서 각각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멜로적 관계를 넘어서 서로를 성장시켜줄 수도 있는 상보적 관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다. <저글러스>가 뻔해 보이는 신데렐라 코드를 가져오면서도 참신해 보이는 지점은 바로 이 캐릭터들 덕분이다. 

사실 <저글러스>의 시작점으로서 좌윤이가 보여주는 비서로서의 삶은 보기에 불편한 지점들이 많다. 모든 비서들이 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지나치게 사적인 것들까지 상사를 챙기고, 상사는 마치 하인이나 되는 듯 비서를 마구 대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당연한 상사와 비서 사이의 관계인 것처럼 드라마는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극화되어 관계를 다소 과장되게 보여주는 건 그것이 상사와 비서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직장생활에서 어디서나 보여지는 상하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그 불편함들이 좌윤이가 겪는 난관들 속에서 피어오르고, 시청자들이 심지어 이 인물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답답한 면을 느끼게 만드는 건 사실은 향후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좌윤이는 종속적인 인물이 아닌 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인물로 변화할 수 있을까. 그저 단순한 신데렐라가 아닌 진짜 이 인물의 성장담을 보고 싶다.(사진:KBS)

‘황금빛 내 인생’이 깬 주말드라마의 공식들

KBS 주말드라마는 우리에게 오래도록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해왔다. 그래서 항간에는 이 시간대에 들어가는 주말드라마는 기본이 시청률 20%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건 선입견이다. 요즘은 작품이 시원찮으면 곧바로 채널이 돌아간다. 채널도 많아졌고 볼 것도 많아진 탓이다. 주말드라마라고 해서 무조건 잘 된다는 건 옛날이야기라는 것이다. 

게다가 주말드라마가 주로 다루는 가족극의 형태는 이제 현실성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과거의 주말드라마는 두 개 혹은 세 개의 가족을 보여주고, 그 안의 인물들이 서로 관계로 얽히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안이한 전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던가 아니면 그 가족 속에 깃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면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제 중간 기점을 돌기 직전인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이토록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물론 이 시간대는 여전히 그간의 가족드라마가 가진 익숙한 코드들을 다뤄야 이물감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 다루는 방식을 달리 해줘야 지금의 시청자들의 달라진 시선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이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소현경 작가가 이미 <찬란한 유산>을 통해 성공적인 실험을 보여줬던 것처럼 연속극과 미니시리즈가 겹쳐진 장르적 혼재를 보여준다. 매회 사건이 이어지며 다음 회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미니시리즈가 갖는 분명한 메시지들을 곳곳에 박아 넣었다. ‘출생의 비밀’ 같은 연속극의 주요 소재를 가져와 우리 사회가 가진 금수저 흙수저의 계급문제를 비틀어 보여준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이것은 소현경 작가가 가진 특유의 경력과 성장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소현경 작가는 그 시작을 연속극으로 했던 작가다. 하지만 소현경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찬란한 유산>같은 미니시리즈가 접목된 연속극의 실험을 보여줬고, <검사 프린세스>, <49일>, <투윅스> 같은 로맨틱 코미디와 장르물까지를 섭렵했다. 그러면서 <내 딸 서영이> 같은 주말드라마를 성공시킨 소현경 작가는 한 마디로 연속극과 미니시리즈 같은 장르물을 모두 다룰 줄 아는 작가로 성장했다. <황금빛 내 인생>에서 느껴지는 뚝심과 자신감 같은 건 이런 과정들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주말드라마가 가진 틀에 박힌 가족주의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극으로서의 면면을 드러내는 이례적인 작품이다. 그것은 진짜 딸을 바꿔치기 하는 범죄 행위가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뿌리 깊은 핏줄의식과 그로 인해 판이하게 나눠지는 빈부와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를 문제의식을 갖고 다루고 있어서 하는 이야기다. 기존의 가족드라마들이 대부분 흔한 신데렐라 판타지 같은 걸로 다루던 문제를 <황금빛 내 인생>은 처참하게 망가지는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흔히들 주말드라마는 밝아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젊은 청춘이 항상 등장하고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있으며, 혼사 장애의 갈등도 코믹한 유머가 동반된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은 다르다. 이 드라마는 어떤 면에서 보면 요즘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본격 드라마가 가진 비극성 같은 걸 그려내고 있다. 이것 역시 소현경 작가가 깨버린 주말드라마의 공식 중 하나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족의 양태가 달라지면서 그 가족을 담아내는 주말드라마 역시 다른 모습을 요구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은 앞으로 주말드라마들이 어떤 변화를 담보해야 비로소 달라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달라진 가족 양태 속에서도 주말드라마가 지속 가능한 유일한 길이 될 지도 모르겠다.(사진:KBS)

익숙한 코드 다른 활용, ‘황금빛 내 인생’ 저력의 원천

도대체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무엇이 이토록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걸까. 서지안(신혜선)이 진짜 재벌가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그 순간 <황금빛 내 인생>의 시청률은 36%(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이런 속도감에 이런 폭풍전개라면 40% 시청률을 경신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놀라운 건 이 드라마가 50부작이며 지금 겨우 20부가 방영됐다는 점이다. 보통의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라면 이렇게 그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은 거의 드라마가 끝나는 시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게 끝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시작이다. 이렇게 드러난 출생의 비밀 이후, 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는 건 아직도 한참 드라마가 하지 않은 이야기가 남았고, 그것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갈 거라는 예감 때문이다.

사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일 수 있다. 흙수저가 금수저로 탈바꿈되어 가짜 신분상승을 하게 된다는 설정은 결국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벌어질 파국을 예고한다. 그 당사자인 서지안이 겪을 고통은 물론이고, 실제 재벌가의 딸인 서지수(서은수)가 느낄 충격 또한 만만찮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인 그들의 엄마 양미정(김혜옥)이 느낄 회한과 그걸 알게 됐음에도 막을 수 없었던 서태수(천호진)의 자책감도 결코 작지 않다.

즉 드라마적인 극적 상황들이 이보다 클 수는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건 자칫 잘못하면 막장드라마들이 쓰는 자극적인 전개처럼 비춰질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황금빛 내 인생>이 주는 느낌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자극을 위한 자극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진짜 ‘황금빛 인생’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지옥도’라는 느낌이 든다. 바로 이 드라마가 가진 진정성의 지점이 이 드라마가 가진 엄청난 자극을 눌러주는 힘이다. 

‘딸 바꿔치기’나 ‘출생의 비밀’, 나아가 왕자님과 신데렐라 설정 같은 익숙한 코드들을 우리는 이 드라마에서 쉽게 발견한다. 서지안에 대한 동정심과 미안함을 넘어 애정을 갖게 된 최도경(박시후)은 현대판 왕자님이나 다름없고, 물론 출생의 비밀을 안고 동생으로 왔지만 그것이 밝혀지면서 그에게 기대는 서지안은 신데렐라의 변형 캐릭터다.

그런데 이런 익숙한 코드들을 가져와 이 드라마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 ‘출생의 비밀’은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신데렐라 판타지를 위해 가져온 코드가 아니라, 흙수저가 가짜 신분을 얻어 금수저가 되도 전혀 행복할 수 없고 오히려 지옥 같은 불행을 겪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금수저가 아니라도 그 흙수저가 얼마나 자기 능력으로 설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코드다. 

여기서 최도경이라는 왕자님의 역할은 신데렐라 서지안이 가질 수 없는 걸 갖게 해주는 그런 판타지적 존재가 아니라, 그가 겪는 아픔을 공감해주며 나아가 보호해주려는 역할이다. 그러니 이 왕자님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물적 욕망이 아니라 정신적 공감대가 주는 인간적인 따뜻함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출생의 비밀 주인공인 서지수는 어떻게 변할까. 지금껏 천사표 동생의 모습을 보이며, 가진 것 없어도 구김살 없이 살아왔던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부모와 언니에게 철저히 속았다 오해하게 된 그는 어쩌면 우리가 그간 ‘출생의 비밀’ 코드를 담은 드라마에서 봐왔던 그 착한 신데렐라가 아닌 악녀의 면면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 

익숙한 코드가 주는 선입견은 <황금빛 내 인생>이 가진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다. 그건 자칫 드라마가 하려는 진심을 덮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소현경 작가가 뚝심 있게 하려던 이야기를 밀고 나간 그 점이 이 드라마가 가진 저력의 원천이 되었다. 코드보다 중요한 건 그 코드들을 달리 활용해 담아내려는 메시지라는 걸 이 드라마는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 내 인생의 진정한 황금빛은 어디서 오나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제 2회가 지난 것이지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는 빠르게 신데렐라와 출생의 비밀 코드 같은 것들을 뛰어넘었다. 첫 회는 어째 주말드라마의 공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출생의 비밀인가 싶었지만, 그 설정은 2회에 풀려버렸다. 이로써 <황금빛 내 인생>은 그 흔한 가족드라마의 코드와는 다른 이야기 전개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사실 첫 회는 그다지 기대할 수 없는 어디서 본 듯한 설정들이 등장한 게 사실이다. 흙수저로 열심히 살아가는 서지안(신혜선)이 부장님의 명으로 그의 차를 대신 몰고 가다 해성그룹의 외아들인 최도경(박시후)의 차와 접촉사고를 내며 인연이 이어지는 과정이나, 해성그룹의 안주인인 노명희(나영희)가 어린 시절 잃어버린 딸이 서지안일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던 첫 회만 해도 그저 그런 신데렐라와 출생의 비밀 코드를 버무린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 

하지만 그런 우려를 날려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2회에 드라마는 노명희가 직접 양미정(김혜옥)을 찾아오고, 서지안과 서지수(서은수) 중 누가 자기 딸이냐고 물으며 그래서 양미정이 결국 서지안이 그녀의 딸이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보통의 옛 가족드라마라고 하면 이 부분 하나만으로도 한 편의 장편 가족드라마가 나오곤 했던 그 코드들이다. 

<황금빛 내 인생>이 이처럼 일찍 그 코드를 드러낸 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다른 곳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 드라마는 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최근 우리 사회에 자주 거론되는 ‘금수저 흙수저’를 소재로 담고 있다. 흙수저로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영향아래 기죽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온 서지안(신혜선). 하지만 이제 막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잠시, 친구가 금수저 낙하산으로 그 자리를 꿰차며 역시 높은 수저의 벽 앞에서 절망하게 됐다. 

그런 서지안이 바로 그 해성그룹 노명희가 잃어버린 딸이라는 사실은 향후 이 흙수저가 하루 아침에 금수저로 그 삶이 바뀔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 금수저의 삶이 서지안이라는 짠 내 나는 캐릭터의 장밋빛 인생을 가능하게 해줄까. 과연 가진 자들의 삶은 행복하고 못 가진 자들의 삶은 불행할까. 물론 겉으로 드러난 삶은 그렇게 빈부에 따라 행복의 질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는 두 가족, 즉 부자가족 최도경의 집과 서민가족 서지안의 집은 그 느낌이 상반되게 다가온다. 어째 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서지안의 집이 더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 

즉 서지안은 본래 태생은 금수저였지만 어린 시절의 사건(?)으로 흙수저의 삶을 살아왔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 흙수저의 삶 속에서도 그녀를 행복하게 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아버지 서태수(천호진)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헌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토록 귀하게 키운 딸을 어려운 현실 때문에 이제 기꺼이 재벌가로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회한이 없진 않겠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우리가 사는 현실은 태생으로 그 미래까지 결정되는 금수저 흙수저의 세상이다. 그 안에서 흙수저의 인생을 부여받은 이들은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그 ‘수저의 벽’ 앞에서 절망한다. 청춘들은 청춘들대로 부모들은 그런 청춘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파한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 청춘들과 부모들에게 그래도 당신들의 삶이 가치 있다는 위로의 말을 던지는 드라마다. 진짜 인생의 황금빛은 가진 것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는 걸 전함으로써.

‘쌈마이웨이’ 김지원, 신데렐라 걷어차고 내 길 간다

“무빈 씨 생각엔 백마 태워 호강시켜 주길 바라는 여자들이 세상에 널렸을 거 같은가 본데 그 신데렐라는 이제 드라마에서도 안 먹혀요. 진짜 현실에선요, 자기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수두룩 짱짱하다고. 그니까 유리구두! 개나 주라고!”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최애라(김지원)은 박무빈(최우식)이 선물한 구두를 벗어던졌다. 사실은 결혼할 사람이 있는데도 자신을 사귀어온 박무빈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데렐라가 되게 해주겠다며 그가 사준 구두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갔던 길을 돌아온다. 그녀를 걱정해 찾아온 고동만(박서준)은 떨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며 분노하고, 그런 그에게 그녀는 가슴이 떨린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보통의 멜로와 어떻게 결이 다른가를 정확히 보여준다. 최애라가 대사로 얘기했듯이 이제 더 이상 ‘신데렐라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도 먹히지 않는 시대다. 그렇게 된 건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현실에는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에 신데렐라가 가당키나 한 판타지인가.

<쌈마이웨이>가 청춘멜로의 전형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안에 ‘갑질하는 현실’의 그림자를 제대로 드리워놓고 있어서다. 최애라도 고동만도 갑질을 당하는 건 ‘일’에 있어서만이 아니다. 그들은 일터에서 이른바 비정규직으로 아무렇게나 쓰다 버려지지만, 그런 갑질은 사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박무빈이 최애라에게 이끌리게 된 계기를 보라. “걔가 좀 나대잖아요? 쥐뿔도 없는 놈이 항상 신나 있고. 그게 거슬린다.”고 말하는 박무빈에게서 느껴지는 건 가진 자의 오만과 독선이다. 그는 단지 고동만처럼 ‘없는 놈’이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꼴이 거슬려 그의 것을 빼앗으려 했을 뿐이라는 것. 

일터에서 청춘들이 일상처럼 만나는 갑질은 이제 남녀 간의 사랑에도 끼어들었다. 과거 많은 멜로드라마들이 부자들에 의해 신데렐라가 되는 여주인공을 통해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면, <쌈마이웨이>는 보기 좋게 그 유리구두의 판타지를 부숴버린다. 그렇게 드러난 실체는 달달하기는커녕 너무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은 고동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몇 차례 헤어져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기를 반복하며 그 지독한 현실의 신데렐라가 된 박혜란(이엘리야)은 뻔뻔하게도 다시 고동만 앞에 나타나 그를 자기남자로 만들려 한다. 그녀는 이제 고동만을 위해 뭐든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건 그녀가 이제 돈이면 사랑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이 그랬으므로.

하지만 고동만도 최애라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고동만은 박혜란에게 자꾸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최애라는 박무빈이 만들어주겠다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벗어던진다. 그래서 그들은 오롯이 맨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돈과는 상관없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지켜낸다. 이 맨발의 청춘이 현실에 치여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줄 모르는 그 모습이 못내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건 그래서다. 

일도 사랑도 갑질 투성이인 세상, <쌈마이웨이>는 쌈마이 취급을 받아도 마이웨이를 걷는 청춘이 더 당당하다고 말한다. 그 당당한 <쌈마이웨이>에 대한 지지의 마음이 깔려 있어 이 청춘멜로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들이 갑질 세상에 날릴 통렬한 돌려차기를 기대하게 된다.

‘쌈마이웨이’ 박서준·김지원, 신데렐라 아닌 흙수저들의 연대

도대체 이 청춘들은 왜 이렇게 처연하면서도 예뻐 보일까.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가 청춘멜로라는 장르로 이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 데는 아마도 이처럼 마음 속 깊이 응원해주고픈 예쁜 청춘들의 면면 때문일 게다. 3회 만에 10%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넘겨버린 이 청춘멜로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웃음이 나오다가도 짠해지고, 그 짠한 마음이 이들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며, 나아가 이 흙수저들의 연대에 기꺼이 동참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쌈마이웨이>가 가진 특별한 힘은 이들이 처한 흙수저들의 현실에서부터 비롯된다. 가난한 집안, 동생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승부조작을 하게 된 동만(박서준)은 그 일 때문에 태권도를 더 이상 못하고 진드기 박멸하는 일을 하며 산다.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꿈인 애라(김지원)는 스펙도 배경도 없어 백화점 안내데스크에서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다. 

옛 코치였던 황장호(김성오)로부터 격투기를 할 의향이 없냐는 제안을 받고 동만은 새삼 가슴이 뛰고, 애라는 사내방송팀에서 안내방송을 잠깐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어했으나 그 자리조차 연줄이 없으면 잡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절망한다. 결국 동만은 진드기 대신 격투기를 선택하고, 좌절된 방송의 꿈 앞에 무너져 내린 애라는 동만에 기대 눈물을 흘린다. 

<쌈마이웨이>의 이 흙수저 청춘들은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난 친구들이라는 든든한 빽으로 이 힘겨운 현실을 버텨낸다. 동만과 애라 그리고 주만(안재홍)과 설희(송하윤)는 옥상에 마련된 자신들만의 아지트에서 술을 마시며 마치 아잇적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다시금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흙수저의 현실 앞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 청춘들의 관계는 친구 관계를 슬금슬금 넘어 이성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것을 새삼 알아차리게 되는 건 그들 앞에 금수저들이 다가와 호감을 드러내면서다. 동기의 결혼식에서 한 때의 시비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된 의사 박무빈(최우식)이 애라에게 대놓고 애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동만은 자꾸만 그게 마음에 쓰인다. 동만에게 옛 애인이었던 혜란(이엘리야)이 또 나타나자 애라는 그녀를 막아선다.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청춘 멜로에 가끔 등장하던 신데렐라 이야기 따위는 지워버린다. 신발을 선물하는 박무빈 앞에서 애라는 아무런 설렘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자꾸만 자신을 터치하는 동만에게 자꾸 그러면 자신이 착각하게 된다고 선을 긋는다. 그건 애라가 그를 남자로서 점점 마음에 담고 있다는 뜻이다. 설희가 홈쇼핑 방송을 녹화 중에 체리가 목에 걸려 쓰러지자 주만은 마치 왕자님처럼 달려가 그녀를 구하고 테이블 위에 눕힌 채 인공호흡을 한다. 그 장면이 설희에게는 마치 백설공주의 한 장면처럼 오버랩된다. 물론 그것 역시 왕자님에게 천거되는 백설공주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많은 드라마들이 빈부 격차의 남녀를 세워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이야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놓던 것을 간단히 뒤집어버린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흙수저들끼리 서로 지지해가며 스스로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해나가려 한다. 그것은 꿈에 대한 것이나 사랑에 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쳇말로 ‘쌈마이’ 같은 청춘이지만, 그래도 ‘마이웨이’를 간다는 의미가 담긴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우리네 청춘의 현실이 주는 무게감 속에서도 서로 사랑해가며 무너지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픈 일을 찾아가는 그 과정을 그린다. 힘겨워도 웃으며 서로 어깨를 내어주는 그 모습들은 그래서 짠하면서도 보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게 다가온다. 

아마도 <쌈마이웨이>는 청춘들에게는 공감 가는 자신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중년들에게도 이 드라마가 마음을 잡아끄는 건 거기 담겨진 어떤 부채감 때문이다. 저들이 겪고 있는 저 어려운 현실들이 어찌 보면 이전 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결과라는 부채감. 그래서 그들에 대한 지지의 마음은 더욱 커진다. 이것이 평범해 보이는 청춘 멜로 <쌈마이웨이>가 가진 특별한 힘의 원천이 아닐까.

<미녀 공심이>, 그 힘의 원천

 

사실 SBS 주말드라마 <미녀 공심이>가 이 정도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출생의 비밀을 가진 남자 주인공 안단테(남궁민)와 외로워도 슬퍼도 씩씩한 캔디형 여자 주인공 공심(민아)의 밀고 당기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캐스팅도 화려하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물론 남궁민처럼 악역으로 확고한 연기력을 인정받은 베테랑 연기자가 떡 하니 서 있지만, 이런 주인공 역할이 부담됐을 민아는 영 불안한 캐스팅이었다.

 

'미녀 공심이(사진출처:SBS)'

게다가 경쟁작은 사극의 명장 이병훈 감독의 <옥중화>였다. 로맨틱 코미디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극성을 가진 사극으로서 <옥중화>는 그래서 첫 회부터 17.3%(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해 5회 만에 20%를 넘어섰다. 하지만 그 때부터 <옥중화>는 조금씩 시청률이 떨어지더니 16%대까지 하락했다. 반면 <미녀 공심이>의 시청률 상승곡선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였다. 첫 회 8.9%(닐슨 코리아)의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는 계속해서 조금씩 오르더니 최고 시청률 13.6%를 찍었다. 결국 시청자들이 <옥중화>에서 <미녀 공심이>로 이동해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작 사극 앞에서 이 작은 소품처럼 여겨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무엇이 이토록 놀라운 반전을 일으키게 한 것일까. 사실 이 드라마의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나다거나 혹은 소재가 참신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공감대가 그 어떤 드라마들보다 크다. 공심이라는 소외된 청춘의 캐릭터는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갈증을 제대로 건드리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고, 심지어 갑질 하는 진상고객에게 뺨을 맞기도 하는 수모를 겪는 캐릭터. 게다가 집에서도 잘 나가는 언니와 늘 비교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운이 좋아 비서로 채용되기도 하지만 스타유통그룹의 재벌3세 준수(온주완)가 관심을 보이자 그 엄마인 염태희(견미리)에 의해 하루아침에 잘려버리는 그런 인물이기도 하다. 씨를 심고 물을 열심히 주는데도 잘 자라지 않는 꽃을 자신에 빗대어 왜 열심히 하는데도 안되냐고 그녀가 안단테에게 토로하는 장면은 그래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안단테가 결국은 스타유통그룹의 남순천 회장(정혜선)이 그토록 찾고 있는 친손자임이 밝혀졌고 그래서 실제로는 재벌3세인 그와 공심의 사랑은 마치 신데렐라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녀 공심이>는 이 지점에서 안단테의 출생의 비밀이나 공심이의 신데렐라 성공 스토리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런 거창하고 물질적인 신분 상승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껏 해오듯 공심이에 대한 소박한 공감과 위로의 이야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사실 안단테나 재벌3세인 준수가 공심에게 하는 호의는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다. 그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공심이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고 소주 한 잔을 하거나, 웃긴 사진을 일부러 찍어 보내거나 하면서 그녀를 한 번 웃게 해주려 노력한다.

 

그들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3각구도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 틀에서 늘 보이던 그런 갈등들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준수와 안단테가 사실상 형제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걱정하는 장면은 멜로의 전형적인 대결구도의 틀에서나 재벌가의 상속을 두고 벌어지는 권력의 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그것들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대결양상이라면 이 청춘들은 거기서 벗어나 순수하게 서로를 위로해주고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따뜻한 위로 하나면 충분했다는 걸 <미녀 공심이>는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을 바꾸거나,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는 그런 거창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소하고 투박해도 진심어린 위로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 <미녀 공심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놀라운 힘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인다

동체시력, 기시감, 요즘 로코 남주들의 흔한 능력들

 

tvN <또 오해영>에서 남자주인공 도경(에릭)의 직업은 음향감독이다. 그는 사소한 음향조차 그저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프로다. 직원들은 쓸데없이 예술 한다고 투덜대지만 실제로 그가 만들어낸 음향은 확실히 작품을 더 빛나게 만든다. 술을 마시다가도 그 술집의 소리가 갑자기 좋다며 음향기기를 가져와 녹음을 하고, 자신이 하는 일상의 소리들을 담기 위해 무시로 녹음기를 틀어놓는 그는 이 일에 푹 빠져 있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가난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이른바 로맨틱 코미디의 금수저는 아닌 캐릭터다. 금수저는커녕 그의 엄마는 그의 앞길을 막는 존재다. 억누르지 못하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자식에게 손을 벌리고 또 스폰서에 가까운 남자를 여전히 찾아다닌다. 남자주인공은 직업적으로는 행복해보이지만 가족사는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의 다 가진 남자들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다. 하지만 이런 남자주인공도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그걸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자주인공인 오해영(서현진)과 관련되어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보는 능력이다. 처음에는 기시감으로 시작하지만 차츰 이 능력은 도경이 오해영과 가까워지는 장치가 된다. 그녀를 걱정하게 되고 그녀가 위험에 처할까봐 그녀를 찾아 헤매게도 만든다.

 

사실 능력이라기보다는 장애에 가깝다. 그것이 그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그가 가진 장애이자 능력은 묘하게도 그가 가진 매력이 된다. 그것은 그 능력(?) 때문에 그가 타인인 오해영에 대해 자꾸만 신경을 쓰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타인에 대해 보이는 관심은 그래서 도경의 진짜 숨겨진 매력이다. 왜 이런 특징을 <또 오해영>은 굳이 남자주인공의 매력으로 집어넣은 걸까.

 

SBS <미녀 공심이>의 남자주인공 단태(남궁민)는 인권변호사다. 변호사라고 하면 로펌에 들어가 돈 많이 버는 그런 직업으로 많이 그려져 왔지만 <미녀 공심이>에서 단태는 변호사이면서도 대리기사 아르바이트를 뛰는 그런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공심(민아)의 집 옥탑방에 들어와 월세를 사는 인물이다. 그가 현실적으로 공심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단태에게도 남자주인공으로서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동체시력이다. 동체시력 때문에 폭력배들과의 싸움에서도 그는 여유롭게 그들을 물리치고 공심을 보호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능력인지 장애인지는 애매모호하다. 그가 동체시력을 갖게 된 건 그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어린 시절 목격하게 되면서다. 그 끔찍한 장면들은 무의식 속 기억 저편에 묻혔고 대신 동체시력이라는 능력을 갖게 된 것.

 

<미녀 공심이>에서 재벌3세인 준수(온주완)는 공심의 로망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단태가 실제로 그녀를 남모르게 사랑하는 존재라는 걸 보여준다. 모든 걸 가진 재벌3세는 여전히 로망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람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남자주인공과의 대비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또 오해영>의 도경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고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과, <미녀 공심이>의 단태가 남이 못 보는 걸 보는 사람이고 가난한 서민들을 돕는 인권변호사라는 점은 이들의 매력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얘기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봐주고 그것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공감해주는 능력이 있는 남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 로맨틱 코미디에서 현실적인 능력은 남자주인공의 중요한 자질이 아니다. 그것은 물론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판타지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로맨틱 코미디는 훨씬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재벌3세 같은 인물을 통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더 이상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걸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시대라고들 말한다. 그러니 한때 결혼과 사랑을 통해서라도 꿈꾸던 신데렐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더 현실적인 사랑을 꿈꾸고 그 안에서의 행복을 느끼길 원한다. 가난해도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남자. 다른 사람들은 다 모르고 무시해도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그런 남자. 지금의 현실은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주인공들을 훨씬 더 현실적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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