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드라마에 미치는 영향

'제빵왕 김탁구'에서 주인공 김탁구(윤시윤)는 천재적인 후각을 갖고 있다. 너무나 미세해 구분이 어려운 냄새도 구별해내고, 뭐든 한 번 맡은 빵 냄새는 잊지 않아 그 빵을 다시 재현내는 데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어린 시절 탁구가 맛보았던 팔봉 선생의 봉빵을 재현해내는 에피소드는 바로 이 김탁구의 남다른 후각에 기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다른 감각도 아닌 후각일까. 그것은 음식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이 후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이 드라마에 미치는 특별함 때문이기도 하다.

김탁구가 오븐에서 빵을 꺼내면 제일 먼저 우리의 눈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빵이다. 그리고 탁구가 거의 습관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은 그 빵의 냄새를 맡는 것. 그 냄새 맡는 얼굴이 흐뭇해지면 그 빵이 잘 되었다는 뜻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빵은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장면은 언뜻 단순해보이지만 사실은 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 장면은 단지 시각적인 자극에 머무는 드라마의 감각을 후각의 차원으로 넓혀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면서 실제로 우리 자신이 경험했던 저마다의 달콤한 빵의 냄새를 기억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탁구의 어린 시절, 빵집 창문 너머로 입맛을 다시며 빵을 바라보는 장면이나, 아버지 구일중이 별채에서 만든 빵을 맛보며 즐거워하는 장면, 그리고 자신을 팔아넘기려는 이들로부터 도망치던 탁구가 팔봉선생의 빵을 허겁지겁 먹는 장면은 그래서 기억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 장면들이 우리의 뇌리 속에 남긴 후각의 기억은 훗날 성장한 탁구가 팔봉빵집에서 일련의 과제를 통과해나가면서 만들어낸 빵들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 후각의 연결고리는 그 어떤 개연성보다 더 강력하게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힘을 발휘한다.

탁구가 가진 천재적인 후각은 그것이 '김탁구 식'의 문제 해결 방법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캐릭터에도 중요한 역할을 미친다. 김탁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뿐, 별다른 학업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능력은 특유의 선한 마음과 성실함이지만, 그것만으로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남다른 후각은 이 상황을 모두 바꾸어 놓는다. 해외에서 빵 만드는 기술을 배워온 마준(주원)과 탁구가 대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탁월한 후각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회사 경영에 뛰어든 탁구가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경영이 갖는 수치적인 접근이 아니라, 그 수치의 실체인 빵을 직접 대하는 방식이다. 김탁구는 이사회에서 서류가 아닌 빵을 준비함으로써 그 실체가 지닌 진심으로 이사들의 신임을 얻는다.

드라마가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장르라는 점에서 여기에 후각을 부가시키는 이른바 음식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들이 힘을 발휘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장금'은 물론이고, '식객' 같은 드라마의 성공 이면에는 음식이라는 보편적인 소재가 가진 힘과 더불어 그 음식이 환기시키는 감각의 확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가 얽히고설킨 관계의 파토스를 그려내면서도 그토록 진한 향기를 내뿜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배경이자 아우라를 만들어낸 막걸리 도가가 풍겨내는 독특한 후각의 힘이 아니었을까. 이제 빵 냄새를 맡으면 이 드라마가 떠올려지듯이, 드라마에서 감각이 갖는 힘은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류로서의 우리네 음식이 어떻게 드라마와 맞닿을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김탁구가 천재적인 후각을 가진 건 그것이 환기하는 감각이 드라마에 특별한 힘을 부가시키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언니', 희생과 용서의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가 전한 감동에는 그저 '슬프다', '기쁘다' 같은 표현으로는 담지 못할 그 무언가가 있다. 누구든 바라보면서 그 몇 줄의 대사를 듣기만 하면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당 못하게 만드는 그 감동의 실체는 뭘까. 대성도가의 주인 구대성(김갑수)이 거실 벽면에 붙여놓은 가훈, '역지사지(易地思之)'처럼, 신데렐라 이야기를 언니의 입장에서 풀어낸 그 스토리 때문에? 물론 이것이 표면적인 '신데렐라 언니'의 이야기지만 그것만으로 심지어 영혼을 건드리는 듯한 그 눈물의 실체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는 여러 차원의 눈물들을 만들어내지만 그 중심에 서 있는 단 한 명의 인물이 있다. 그것은 주인공인 은조(문근영)도 아니고 신데렐라 당사자인 효선(서우)도 아니다. 그저 제 궤도에서 살아가며 버텨내고 있던 인물들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뒤흔들고는 스스로 모든 걸 떠안고 가버림으로써 그들을 다시 한 자리로 모아 놓은 인물, 바로 구대성이다. 이 드라마에서 구대성은 자상한 남편에 아버지로서 완벽한 인간의 표상처럼 그려진다. 심지어 배신하는 아내를 보면서도 오히려 그녀를 걱정하고, 아들처럼 여기던 기훈(천정명)이 사실은 다른 목적을 갖고 대성도가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으로 죽어가면서도 그를 용서한다. 이것은 범인의 모습이 아니다. 차라리 성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이야기 구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모티브를 닮았다.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통해 거의 완벽한 사랑을 전하고는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구대성은 드라마 속에서 계속해서 부활한다. 대성도가에 남은 가족들, 은조를 포함하여 효선, 아내인 송강숙(이미숙) 그리고 막내 준수는, 대성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의 사랑을 느낀다. 그의 사랑은 대성도가 구석구석에, 그가 남긴 일기장에, 준수의 스케치북 속에도 살아 움직인다. 그리고 그가 남긴 사랑의 힘은 남은 가족들을 변화시킨다. 구대성의 희생은 사랑으로 부활하고, 그것은 남은 사람들을 참회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다시 가족을 결속시킨다.

은조는 뒤늦게 대성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는 차마 부르지 못했던 이름, "아버지"를 부르며 목 놓아 운다. 독하디 독한 계모 송강숙(이미숙)은 스스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게 뭔지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뜯어먹을 게 있어 좋다"던 이제는 고인이 된 남편 구대성(김갑수)의 무차별적인 사랑 앞에 세파에 말라버렸던 그녀의 눈은 결국 눈물을 흘린다. 구대성이 전한 '대가없는 사랑'은 그대로 효선에게 똑같이 이어지고, 막내 준수의 아름다운 기억 속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인다. 심지어 자신으로 인해 구대성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죄의식을 가진 기훈은 이제 그 희생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자신이 희생함으로써 대성도가 사람들을 살리려 한다.

이 우리의 가슴 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희생과 용서에 관한 원형적인 이야기가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것은 당연한 일. '신데렐라 언니'는 그런 의미에서 희생과 용서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구대성이 희생을 통해 전한 사랑으로 인해, 남은 이들은 비로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송강숙이 친구의 딸이 자신의 엄마 때문에 우는 모습을 보고 "그게 그렇게 속상해? 미안해. 그게 그렇게 속이 상하는 줄. 어린 것이 그렇게 피눈물 흘리는 줄 어떻게 알았겠냐. 미안해. 미안해."하고 말할 때, 그녀의 앞에는 또한 은조가 서 있었을 것이다.

툭하면 "마귀할멈!"이라고 독한 소리를 해대는 준수의 스케치북에서 가족들 그림 속에 자신만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쩌면 은조는 준수의 독한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지도 모른다. 늘 웃고만 있는 기훈의 눈물을 보고는 "이제 나한테 기대"라고 말했을 때, 거기서 은조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바락바락 소리를 치면서도 절대 기대려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대성이 남긴 가훈, '역지사지'처럼, 서로가 서로의 입장이 될 때, 그들은 드디어 누구의 엄마이고 누구의 딸이며 누구의 자매이고 누구의 애인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껴안게 된다.

구대성의 희생적인 사랑이 남은 사람들을 서로 용서하게 만들고,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기대게 하는 이 드라마는, 은조의 표현대로, "뭔가 딱딱하게 뭉쳐져 있었던" 것을 녹작지근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운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무기력할 정도로 약하디 약한 우리네 인간이 살 수 있는 힘은 어쩌면 그 거대한 사랑을 믿는 것이고, 그 믿음 속에서 타인을 자신처럼 이해하면서 똑같은 가녀린 존재로서 서로를 기대는 일일 것이다. 비록 신데렐라 이야기의 모티브를 빌려왔지만, '신데렐라 언니'가 그토록 깊은 울림을 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이 격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문학 같은 드라마가 주는 울림을 온전히 시청자들에게 전한 건 이른바 진정성으로 무장한 연기자들의 연기 덕분이다. 우리는 문근영을 통해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부르며 목 놓아 울던 은조를 이해하게 됐고, 서우를 통해 미움조차 이겨내지 못하던 사랑만 알던 효선의 성장을 보게 됐고, 이미숙을 통해 처절한 삶 속에서 사랑 없이 살아오다 덜컥 사랑을 알아버린 송강숙을 바라보게 됐고, 김갑수를 통해 자신이 부정당하면서도 결국은 모두를 끌어안은 그 큰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됐다. 또한 천정명의 여전히 소년 같은 미소와 택연의 마음까지 밝게 만드는 웃음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빙의된 연기가 있어 가능했다. '신데렐라 언니'가 전하는 결코 범상치 않은 큰 사랑의 이야기는.

드라마가 발견한 문학의 가치, '신데렐라 언니'

"은조야-" '신데렐라 언니'에서 은조(문근영)의 이름을 부르는 이 대사는 여러 번 반복된다. 하지만 그저 이름을 부르는 것에 불과한 이 대사가 가지는 뉘앙스와 의미는 사뭇 다르다. 독하게 아 소리 하나 내지 않고 회초리를 맞고는 술도가 창고에서 술독에 귀를 대고 왠지 서글프고 왠지 편안해지는 그 술 익는 소리를 듣는 그녀에게 기훈(천정명)은 맞지 말고 앞으로는 도망치라면서 은조를 부른다. "은조야. 대답 좀 해주지. 은조야. 응. 아프지?" 그 때 한 번도 누군가에게 제 맘을 열지 않았던 은조는 "어"하고 답을 해준다.

"은조야"라고 묻고 "어"하고 답을 해주었을 뿐인데, 그 소통의 순간이 짠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그 "은조야" 라는 부름 속에 들어가 있는 기훈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기 때문이며, 그렇게 불러주는 그 목소리를 듣고는 "어'라고 답하는 그녀의 조금은 열려진 마음이 감동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술독 안에서 아프게 익어가며 제 소리를 내는 '술의 노래'는 이 짧은 순간의 추억을 다양한 차원의 감각으로 기억되게 만든다. 이 짧은 순간의 강렬함은 훗날 기훈이 소식 한 점 없이 떠나간 날, 은조의 독백으로 이어지며 시적인 여운마저 남긴다. "그 사람을 뭐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서 나는...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듯이 따오기가 따옥 따옥 울듯이 새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이것은 드라마라기보다는 한 편의 문학작품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다. 그리고 이 문학적인 방식은 다이내믹한 스토리 전개보다는 정중동의 압축적이고 폭발적인 대사의 힘으로 흘러가는 '신데렐라 언니'가 가진 특징이다. 효선(서우)이 뭐든 자신보다 잘하는 은조에게 절망감을 느끼면서 내레이션과 대사가 서로 상반되게 터져 나오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하늘에 맹세하고 땅에 맹세하는 건데 내가 얘한테 뱉은 말은 100% 거짓말이었다.' "언니야. 언니야 죽지마라. 죽지마라 언니야." '죽어버려라. 말이 헛나온 거다.' "언니야. 내가 잘 할게. 내가 너 예뻐해줄 게. 죽지마라 언니야" '너 코 파다가 코피난거지 이렇게 묻고 싶은 게 내 진심이었다.' 글로 적어놓으면 좋은 소설의 한 구절을 읽는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드라마 대본이라면 흔하디 흔하게 적혀있을 '온다', '웃는다', '간다' 같은 말들도 '신데렐라 언니'에서는 그 속에 많은 감정과 의미들이 겹쳐져 다가온다. 대성(김갑수)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던 기훈이 절에서 사죄하듯 삼천 배를 하고 비틀거리며 돌아오다 문득 은조를 마주치는 장면에서 은조는 단 두 마디만을 속으로 내뱉는다. '왔다. 웃는다.' 하지만 이 두 마디가 주는 울림은 크다. '왔다'는 언젠가 굳게 닫혀져 있던 자신의 마음을 열게 해주고는 훌쩍 가버린 기훈이 '왔다'는 그 의미이고, '웃는다'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던 은조에게 아침을 기다리게 만들었던 그 기훈의 웃음을 본다는 의미다.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어. 하지만 가더라. 그런데 또 간대. 차라리 잘됐어. 이번에 가면 다시 오지 않겠지. 다시 오지 않으면 다신 가지 않겠지." 그렇게 다시 와서 웃음을 지어주는 기훈이 또 떠난다는 사실에 울먹이며 이렇게 말하는 은조에게 '간다'는 의미는 이처럼 남다르다.

'신데렐라 언니'가 구사하는 대사는 그저 마구 던져지는 대화체의 문장들이 아니다. 그 속에는 인물들이 켜켜이 쌓아놓은 관계의 감정들이 더깨처럼 앉아 있다. 흔하다 못해 상투가 되어버린 그런 단어들조차 깊은 울림으로 만드는 그 마법은 바로 문학의 힘이다. 흔히들 문학은 죽었다고들 말하고 또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어디 그럴까. 세상이 죽은 상투어로 점점 쌓여갈수록 우리는 어쩌면 상투어마저 특별하게 만들어내는 문학의 힘을 갈구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신데렐라 언니'는 드라마지만, 바로 그 문학의 가치를 발견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진심과 진심 사이의 거리, '신데렐라 언니'

진심과 진심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신데렐라 언니'의 인물들은 대부분 가까운 가족관계지만, 그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혹독한 삶을 살아온 송강숙(이미숙)은 진심을 믿지 않는다. 그녀에게 사람이란 '뜯어먹을 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녀는 피붙이를 위해서 진심 따위는 사치라 여기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오열한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남편 구대성(김갑수)의 진심을 드디어 보게 됐기 때문이다. 다이어리에 적혀진 "내 인생이 그 사람 없이 계속 되는 것,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는 글귀는 꼭꼭 닫아뒀던 송강숙의 마음을 열었다.

이 닫혀진 마음을 여는 진심의 힘은 '신데렐라 언니'가 그토록 호소력이 있는 이유다. 이 드라마는 진심을 믿지 않는 송강숙, 그리고 그런 엄마 때문에 마음을 닫아버린 은조(문근영)가 대성도가에 들어오면서 차츰 진심을 받아들이는 그 과정에 주목한다. 은조는 처음 기훈(천정명)을 통해 마음이 설레었고, 그가 사라지자 그 흔들리는 마음을 새아버지 대성이 잡아주었다. '뜯어먹을 게 있어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사랑하면 됐다"고 말하는 대성은 진심을 믿지 않고 외면하던 두 모녀의 단단한 껍질을 깨버린다.

대성은 이미 죽었지만, 그가 남긴 무조건적인 사랑은 남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열어놓는다. 대성과 똑같은 사랑의 방식으로 살아온 효선(서우)은 자신을 미워하고 밀어내는 송강숙과 은조를 자꾸 등 뒤에서 껴안는다. 그러면서 그 밀어내는 '서운한 감정' 또한 "자신이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성의 말에서 유전된 그녀의 "내가 사랑하면 그걸로 됐다"는 말, "아파도 괜찮다"는 진심의 말은 은조의 딱딱한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이 과정, 진심을 믿지 않고 외면하는 이들이 마음을 여는 과정은 각박한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굳건히 마음의 빗장을 채워둔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울린다. 아내 송강숙(이미숙)이 다른 남자를 만나도, 또 "뜯어먹을 게 있어" 자신을 좋아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믿었던 기훈(천정명)이 자신의 술도가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는 사실로 쓰러져 죽기 직전에도 그저 "괜찮다"고 말하는 대성. 그는 진심이 버려진 세상에서 가면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다. 은조와 송강숙의 뒤늦은 참회와 눈물은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눈물과 그렇게 맞닿아 있다.

'신데렐라 언니'는 진심의 드라마다. 우리가 흔히 알던 신데렐라 이야기를 그 언니의 입장에서 다시 보게 만든 것은, 본래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던 그네들의 진심을 끄집어내기 위함이다. 드라마는 사건 전개에 급급하기 보다는 사건 사이에서 겪게 되는 인물들의 진심에 천착한다. 대사 속에서 혹은 내레이션을 통해서 전해지는 진심의 강도는 의외로 세다. 그토록 독한 계집애 은조가 그토록 불쌍하고 가엽게 여겨지게 된 것은 그 껍질 이면의 진심을 우리가 바라봤기 때문이다. "봐도 괴롭고 안봐도 괴롭지만 그래도 보면서 괴로운 것이 낫겠다"는 사랑을 하는 그녀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제는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가깝게 보여도 그 사람들 속의 진심 사이의 거리는 의외로 멀다. '신데렐라 언니'는 그 먼 거리에 놓여진 진심을 조우하게 되는 감동을 선사한다. 각박하게 살아가며 없는 것처럼 치부했던 그 진심을.

고슴도치 같은 '신데렐라 언니'의 사랑법

"옛날에 나 이집 떠날 때. 기차역에 왜 안 나왔어? 편지 못 받았어? 기차역으로 나와 달란 편지. 효선이한테 전하랬는데. 효선이가 혹시 안 전했었니? 응?" '신데렐라 언니'의 이 대사는 전형적이다. 이 부분만 들어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기훈(천정명)의 질문에 대해 은조(문근영)가 "받았어"하고 말하는 장면은 그 전형성을 벗어난다. 사실 받지 못했고, 당시 그 편지 한 장이 은조에게 어떤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시청자라면 이 은조의 독한 말에서 다양한 뉘앙스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읽고 나서 찢어버렸는지 태워버렸는지도 생각 안나는 데, 내가 그걸 여태까지 기억해야 돼? 거지 같이 굴지 마. 누구한테 뭘 구걸하고 있는 거야. 나한테 옛날 일을 얻어가겠다고? 줄 거 없어. 나한테 옛날 일 같은 거 묻지 마. 그딴 거 없어. 없다고 했잖아." 이 말투는 그녀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엄마 송강숙(이미숙)의 말투다. 그렇게 말하고는 혼자 눈물을 쏟아내는 그녀는 왜 이다지도 독하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받지 않은 편지를 받았다고 하는 걸까.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남자가 떠나버리고 절망에 빠진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건 새아버지 구대성(김갑수)이다. 엄마가 "뜯어먹을 게 많아서 좋다"는 그 남자. 그래서 엄마의 부채감까지 혼자 짊어진 은조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대성도가의 일에만 몰두한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려 한다. 심지어 그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 효선(서우)까지 돌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 편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면서도, 그 편지를 전하지 않은 것이 효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봐주려고 한다.

"편지 안 전했다는 거 그게 유치하다는 거지? 그럼 그 유치함이 가져온 끔찍한 결과라는 게 그건 뭔데?" 효선의 추궁에 은조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처음으로..."하며 끝내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떨군다. 이 겉으로 보기에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편지 시퀀스는 '신데렐라 언니'라는 드라마가 가진 힘을 잘 보여준다. 은조가 "유치하고 끔찍하다"고 표현한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 있는 상황은 유치할 정도로 전형적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섬뜩할 정도로 끔찍하다.

많은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있는 편지는 그깟 편지 한 장이 아니다. 늘 사랑받으며 사는 것이 당연한 누군가에게는 유치한 그 일이, 한 번도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하며 살아온 은조에게는 끔찍한 결과였을 테니까. 유치함이 끔찍함이 되는 상황. 이것이 가능한 것은 '신데렐라 언니'가 보여주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은조의 그 독함에서조차 마음이 끌리게 된다. 드라마가 그 독함 이면에 숨겨진 그녀의 가녀림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가오는 이들을 독하게 밀어내고,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기훈이 떠나자 다시 마음을 닫아 버린 은조.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깊은 부채감으로서 일의 세계에 몰두해온 은조에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래서 더 큰 절망으로 다가온다. 이로써 그녀가 마음을 조금이라도 준 이들은 모두 떠나버리게 된 것이니까.

유치함마저 끔찍함으로 바라보는 그 섬세한 시선은 '신데렐라 언니'가 그토록 독한 사랑을 보여주면서도 그 독함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이유다. 우리는 이 깊이 있는 시선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 말투, 말 그 이면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드라마가 인간에 대한 어떤 깊은 이해와 공감을 추구한다면, '신데렐라 언니'는 거기에 가장 잘 부합하는 드라마일 것이다. 다가갈수록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세워진 은조의 가시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도 찌른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 행복을 꿈꾸기 시작하다

'대장금'의 장금이(이영애)는 남다른 욕망을 갖고 있는 캐릭터였다. 수많은 모함과 함정을 벗어나면서 최고의 수라간 상궁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결국 그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그 모습은 당시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많은 이들이 '동이'의 동이(한효주)가 장금이를 닮았다고 한다. 실제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하지만 닮은 구석이 많아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동이가 장금이처럼 최고 상궁이 되기 위한 강력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이는 물론 천비 출신인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 매일을 긍정하며 밝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무엇이 되기 위한 욕망보다는 현재의 행복 또 앞으로의 행복을 꿈꾸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캐릭터들의 욕망은 과거 시대극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랑과 야망'이 대표적이고, 가깝게는 '에덴의 동쪽'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과거 욕망의 시대의 '사랑과 야망'은 성공적이었지만 다시 리메이크된 '사랑과 야망'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물론 '에덴의 동쪽'도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되었던 이른바 남성드라마들도 이 계보에 속한다.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 같은 작품들. 성공의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캐릭터들을 내세운 이 드라마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이것은 어쩌면 성공을 추구하던 시대가 가고,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한 탓인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현재 방영되는 수목드라마들 속의 캐릭터들은 모두 성공이 아닌 행복을 추구하는 인물들이다. '신데렐라 언니'의 은조(문근영)는 물론 능력이 있고 대성도가를 크게 키우는 인물이지만, 그녀는 성공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행복이다. 늘 욕망에 휘둘리며 속물근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엄마 송강숙(이미숙)의 그늘 아래서 그녀는 가족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을 꿈꾼다. 그래서일까. 성공을 향한 욕망에 휘둘리는 엄마와 대결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성공이라는 과거적 가치에 포획되어 있는 엄마의 삶에서 벗어나 행복을 향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검사 프린세스'의 마혜리(김소연)는 경제적이나 사회적인 위치로 봤을 때 부족한 것이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미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못하다. 그녀는 공주로 남아 있고 싶어 하지만, 그런 삶은 그녀의 사회적인 삶과 부딪친다. 검사로서의 삶은 공주로서는 해보지 못했던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즉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녀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삶으로서의 여성적인 행복을 쥐고 있으면서도, 검사라는 사회적 직무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검사 프린세스'는 모든 걸 다 가져도 결국 행복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말하는 드라마고, 그 행복이 타인과의 공존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개인의 취향'은 아예 이 성공이라는 가치 기준을 살짝 옆으로 밀어놓고 시작한다. 동성애로 오인된 전진호(이민호)와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박개인(손예진)이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이 드라마는, 결국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가는 로맨틱 코미디다. 재미있는 것은 이 드라마가 다루는 취향의 문제다. 동성애자라는 오인에도 불구하고 그 취향을 인정하고 나자, 박개인은 전진호가 가장 편안한 남자친구로 다가온다. 전진호는 남자로서 박개인에게 연애비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결국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 서로 소통하는 이 이야기 역시 그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다.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가족드라마들이 늘 다루기 마련인 혼사장애 속 신데렐라 이야기는 빠져있다. 이 집의 막내인 양초롱(남규리)은 자신을 따라다니며 돈 자랑을 해대는 남자친구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같이 있어주는 것"조차 싫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행복에 대한 가치를 가장 잘 말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동성애도 그 연장선으로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신분상승이니 성공이니 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현실 속에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넘쳐나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 지긋지긋한 성공을 향한 욕망의 질주에 좀 지친 듯하다. 혹 어쩌면 이제야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에는 성공이 따르기도 하지만, 성공이 행복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짧아도 강한 인상을 남긴 그의 진정성

"누야(누나) 너랑 같이 살았다." 많은 대사가 필요하지 않았다. '신데렐라 언니'의 한정우(택연)가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려주는 걸로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고주망태의 아버지 밑에서 일찍이 도망친 그는 죽 홀로 살아왔지만, 오랜만에 드디어 만난 그 누나, 은조(문근영)와 늘 함께 살아왔다. 아마도 그것은 그를 버티게 해준 유일한 힘이었을 테니까.

'기다리다 지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신데렐라 언니'에 택연의 등장은 더뎠다.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아이돌 가수의 연기는 어떨까. 그것도 짐승돌의 대표격인 그 거친 남성미의 택연이라면. 기대도 컸고 기대가 큰 만큼 섣부른 예단도 많았다. 그래서 야구방망이 하나 들쳐 메고 그가 대성도가에 발을 디뎠을 때, 우리는 그의 입에 주목했다.

하지만 은조 앞에 선 그는 말이 없었다. 은조가 스스로 자신을 알아보길 원했기 때문에 그는 가만히 그녀의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고 맑게 웃었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가만히 따라가면서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그가 한 전부였다. 그러다 결심한 듯 다가와 은조 옆에 앉았을 때, 은조는 일어서며 물었다. "혹시 내가 무슨 말을 못 듣던가요? 나한테 뭐라 했냐구요."

그는 부인했지만, 아마도 수없이 말을 건네고 있었을 것이다. 이 한동안 지속된, 대사 없이 바라보는 행위는 연기자 택연에 대한 선입견을 지워냈다. 대신 마음속으로 늘 은조와 함께 살아온 한정우라는 캐릭터를 그 자리에 세워두었다. 술도가 창고에 쓰러진 은조를 업고 "누야.. 니 뭐가 그리 힘드노?"하고 물을 때, 그녀 앞에서만 튀어나오는 사투리 속에 그의 진심이 보였다. 쓰러진 신을 가지런히 세워두는 그에게 그 신은 은조 자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 복잡다단한 대성도가의 사람들 속에서, 늘 맑게 웃고 단순 명쾌해 보이는 한정우라는 캐릭터는 가만있어도 도드라져 보였다. 어쩌면 이 정우가, 새 아빠가 "뜯어먹을 게 있어 좋다"고 말하는 속물인 엄마와, 그런 엄마를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새 아빠, 그리고 이제 '자기 것은 자기가 챙겨야 함을 알게된' 동생 효선(서우) 사이에 짓눌려 있는 은조를 구원해줄 인물처럼 보이는 건 그들과 상반된 그만의 단순 명쾌함 때문이다.

그래서 내내 웃음을 보인 적 없고, 늘 독을 품은 듯한 눈빛으로 잡아먹을 듯 사람을 대하던 은조가, 그가 그 어린 시절의 정우임을 깨닫고 처음으로 웃는 장면은 가슴이 서늘하다. 은조에게 웃음을 되돌려주는 존재로, 한정우라는 캐릭터는 그렇게 서게 되었고 그런 만큼 택연이라는 연기자는 뒤로 숨었다.

연기자가 사라지고 캐릭터가 남는 경험은 아마도 택연이라는 초보 아이돌 연기자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짜 연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선악을 넘어, 관계의 화학반응으로 가는 '신데렐라 언니'

"나한테 뜯어먹을 거 있어? 왜 웃어?" '신데렐라 언니'의 그 언니인 은조(문근영)는 그녀를 향해 해맑게 미소 짓는 기훈(천정명)에게 다짜고짜 쏘아댄다. 기훈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넌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니?"하고 되묻는다. 어쩌다 은조는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는다'고 여기는 아이가 되었을까. 기훈의 질문은 전통적인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서 그 언니가 왜 그토록 악독했던가 하는, 지금껏 아무도 던지지 않은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람이 악독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서 소외된 그 언니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그녀가 그토록 독해지고 매정해진 사연을 찾아낸다.

그녀의 어머니 송강숙(이미숙)은 한 때 걸핏하면 계집질 하는 남자를 잡아놓기 위해 광목천을 끊어다 죽으려고까지 했던(물론 연기지만) 독한 인물. 그녀는 인생은 그처럼 날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며, 그러다 끽 잘못되더라도 위험을 감수해야 얻을 걸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토록 진심 없는 삶을 살아가는 엄마가 그 모든 것이 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할 때 은조가 느꼈을 절망은 얼마나 컸을까. 자신의 삶이 지독히도 구차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엄마의 말이 거짓말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효선(서우)이 아버질 좋아는 해? 효선이 아버지 그냥 뜯어먹을 게 많은 남잔 거야?"하고 묻는 은조는 그래서 필사적이다. 하지만 엄마 송강숙에게 그건 '거지같은 질문'이고 괜한 '청승'이다. 그래서 "좋아서 산다고 말해주면(거짓말이라도) 용서해준다"는 은조에게 "뜯어먹을 게 많아서 좋다"는 잔인한 말을 해댄다. 은조를 엄마를 통해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더 이상 악역이 아니라 상처받은 슬픈 영혼이다. 술독에서 술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회초리를 맞아 피멍이 든 종아리에 고기 점을 붙여주는 기훈이 그저 "은조야"하고 불러주는 것에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 달까지도 가겠다'는 기쁜 마음을 갖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기훈에게 "그 사람을 뭐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서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듯이 따오기가 따옥 따옥 울듯이 새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는 그 내레이션이 깊은 공감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은조의 내레이션이 이어지면서 그 독해진 사연을 들려주는 동안, 신데렐라인 효선은 그 몰이해 때문에 거꾸로 악역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은조의 독한 행동 뒤에 숨겨진 상처받은 영혼을 보여준 후, 그로 인해 다시 상처받게 되는 효선의 마음을 찾아간다. 무엇하나 손에 쥔 게 없던 은조가 무엇이든 쥐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는 동안, 모든 걸 쥐고 있었던 효선은 차츰 은조에 의해 자기 것이 사라져가는 불행한 상황을 맞이한다.

그녀는 도저히 은조를 따라갈 수 없다는 데서 절망을 느끼면서, 질투가 존경의 차원으로까지 넘어가는 그 지점에 이르자, 입으로는 "언니야. 내가 잘 할께. 죽지마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죽어버려라'하고 외치는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형편없어지는 내 옆에서 근면성실하고 잘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은조에게 "네가 꼴도 보기 싫다"며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하고 외치는 효선의 마음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은조와 효선, 부딪치게 되는 이 두 인물의 속내를 이해하면서, 우리는 그녀들이 모두 악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진짜 악역은 누구일까. 눈앞에 언뜻 보이는 인물은 은조의 어머니 송강숙이다. 그녀는 자신의 구차한 인생의 이유가 모두 은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은조의 삶 또한 구차하게 만들어버리는 존재이며, 또한 모성애를 갈구하는 효선에게 엄마인 척 행동하면서 오히려 그녀를 망치고 있는 존재다. 하지만 그런 몹쓸 행동들도 자식을 가진 모성애의 한 차원으로 들여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너 업고 쓰레기통도 뒤졌어. 더러운 거라도 안 먹이는 거 보다는 나을 거 같아서. 뒤져 먹이고 너 탈났을 때, 밤새 열 오르고 니 눈동자 뒤로 까무룩 넘어가 흰자만 번뜩일 때, 하느님 아버지 부처님 신령님, 내 새끼 죽이기만 해보라고, 내가 가만 놔둘 줄 아느냐고, 하늘이고 나발이고 간에 한 입에 꿀꺽 삼켜 잘근잘근 씹어주겠다고, 사람으로 품위 지키면서 사는 거 그날 밤으로 포기했어." 송강숙의 이 대사는 진짜 악역처럼 보이는 그녀에게서 그 독한 행동의 이유를 찾게 해준다.

보통의 드라마가 선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는 반면, '신데렐라 언니'는 악역을 위한 드라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독한 면모를 가진 악역들의 뒤에 숨겨진 독한 사연을 끄집어내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드라마. 따라서 역설적으로 이 드라마에는 실제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으면서 어떤 화학작용을 만들어가는 드라마가 '신데렐라 언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술도가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화학작용이, 상당부분 술이 주는 상징과 맞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소재들이 모여 부딪치며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결국 술이라는 하나로 만들어지는 그 과정은, 치열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래서 술은 독하면서도 감미롭다.

세상에 진정으로 악하고 독한 자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세상의 악역은 어찌어찌하다 그 역할을 맡게 되었을 뿐, 실제 악이 아니다(실제 악은 오히려 '가난' 같은 엉뚱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런 인물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내면에서 상처받은 영혼의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악역이 되어버린 그들이 서로 부딪치고 깨지면서 하나로 얽혀 만들어내는 소리는 아비규환이 아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소리가 될 수도 있다. 저 은조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던, 술독에 술이 익어가던 그 소리처럼 말이다.

'신데렐라 언니' 문근영 어디까지 변신할까

신데렐라 집에 들어간 신데렐라 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문근영이 연기하는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을 가족으로 살갑게 대하려는 새 가족들을 계속해서 밀쳐내는 중이다. 끝없이 재잘거리며 언니를 따르는 동생 효선(서우)에게 "너 원래 그렇게 말이 많니?" 하며 금을 긋고, 키다리 아저씨마냥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기훈(천정명)에게 "나한테 뜯어먹을 거 있어? 왜 웃어?"하고 쏘아댄다. 기훈의 말처럼 웃을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하필이면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는다"는 아이. 그만큼 은조는 행복이라고 여겼던 것들에 지독히도 배신을 당해왔다. 그러니 아예 행복의 접근을 막는 중이다.

이런 신데렐라 언니 옆에서 자신이 문자를 보내면 절대로 씹히지 않을 거라는 행복에 대한 신념을 가진 신데렐라 효선의 늘 방글방글 웃는 얼굴은 오히려 그녀에겐 상처가 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호의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완벽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신데렐라 언니 은조에게 차분히 다가와 "나도 너 같았다"며 "너 같았는데 여기서 지내다가 나 같아졌다"고 말하는 기훈은 어쩌면 또 빼앗길 지도 모르는 이 행복을 조금은 믿고 싶게 만드는 인물일 것이다.

이처럼 신데렐라 언니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신데렐라 이야기 속의 은조는 전혀 악역이 아니다. 오히려 이 불행한 상황 속에 던져진 은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효선의 행동이 악역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이 드라마가 뒤집어놓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이다. 늘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있는 은조가 측은해지고, 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재잘대는 효선이 오히려 미워지는 이 캐릭터 설정. 그리고 그 상반된 캐릭터의 축성을 통해 만들어낸 악역의 역전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따라서 악역으로 시작하지만 차츰 이해가 되고 오히려 그 악역의 상황에 몰입되게 만드는 은조를 연기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워할 수 없는 악역'에서 이것은 한 차원 더 나아가 '악역이 아닌 악역'을 연기한다는 것. 문근영은 이를 위해 몇 가지 얼굴표정에 말투를 이어 붙였다. 절대로 웃지 않는 얼굴, 말하거나 들을 때면 약간 삐뚤어진 반항적인 입 매무새, 불만이 가득하지만 왠지 허무한 눈, 마치 가리려는 듯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에 반쯤 가려진 눈, 무심한 듯 하지만 사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몸을 반쯤 빼고 있는 자세로 틀어진 몸... 한 마디로 말하면 상처받은 짐승의 몸짓에 "아니요" 혹은 "싫어요"를 반복하는 대사를 연결시켰다.

쓸쓸하지만 때론 독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 눈빛은 '선덕여왕'에서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었던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을 닮았다. 그러고 보면 문근영의 연기자로서의 행보는 여러 모로 고현정의 그것을 닮은 구석이 있다. 청춘스타로서 맑고 순수한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고현정은 세월이 흐른 뒤, 복귀하면서 '여우야 뭐하니'로 털털한 노처녀의 이미지로 변신했고, 몇몇 영화들('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같은)을 통해 스타의 이미지를 털어버렸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미실은 그녀를 온전한 연기자로 세워주었다.

문근영은 '어린신부', '댄서의 순정'을 통해 국민여동생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후, 성인 연기자로 변신하려 했지만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바람의 화원'의 남장여자 신윤복 역을 통해 더 이상 국민여동생에만 머물지 않는 그녀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미실이 고현정에게 완전한 연기자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해준 것처럼 '신데렐라 언니'의 은조는 문근영에게 또 한 번 연기자로서의 그녀의 입지를 탄탄하게 해줄까. 살짝 돌려 내리 깔아보는 문근영의 눈에서 고현정의 기운을 느끼는 것은 섣부른 생각일까. 기대되는 대목이다.

사랑을 넘어 인간애로 가는 멜로드라마

수목의 밤, 방송3사가 동시에 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것들은 모두 멜로드라마다. '신데렐라 언니'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를 언니 입장에서 재해석한다. 따라서 그 안에 사랑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드라마는 매번 새로운 남자를 갈아 치우는(?) 엄마 덕분에 이집 저집을 전전해온 은조(문근영)가 엄마가 마지막이라고 한 효선(서우)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그 자매는 한 남자를 두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애증의 과정 속에서 차츰 성숙해져간다는 이야기다.

'신데렐라 언니'는 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의 선악구도를 뒤집는다. 즉 신데렐라는 늘 착하고 옳고 그 언니는 늘 악하며 옳지 않다는 그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려는 것이 이 설정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신데렐라 언니도 언니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으며, 동생인 신데렐라도 어떤 면에서는 그 언니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 있다는 것. 즉 이것은 어찌 보면 신데렐라와 신데렐라 언니를 동등한 위치로 바라보면서 그 둘의 갈등과 화해를 모색하는 드라마로 볼 수 있다. 결국 사랑을 두고 벌이는 멜로의 갈등 속에서 똑같은 눈높이로 서로의 성장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멜로의 틀을 넘어선다. 사랑 끝에 인간을 세워두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 역시 마찬가지.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구조를 갖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멜로 그 이상을 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쩌다보니 게이 행세를 하게 된 남자, 전진호(이민호)라는 존재다. 장차 이 완벽남이지만 게이라는 너울을 쓰게 된 인물은 솔직하고 내숭 없는 어리버리 박개인(손예진)과 동거를 하며 가까워지게 되는데, 여기서 사랑과 우정은 미묘해진다. 게이 남자친구와의 우정인지, 아니면 그를 남자로서 바라보는 사랑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 이 유쾌하고 발랄한 해결과정 속에 나올 수 있는 것은 결국 두 인물의 성장을 통해 갖게 되는 남녀라는 성별을 넘어서는 사랑이다. 즉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사랑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찬란한 유산'의 후속작으로 소현경 작가가 들고 온 '검사 프린세스'는 얼핏 보기에는 전작과의 연결고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 속에 깃든 사회(의 정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검사 프린세스'는 검사라는 직업이 가진 사회정의에 대한 사명감보다는, 그 직업의 외적인 것에 혹한 '프린세스' 마혜리(김소연)가 차츰 진짜 검사가 되어가는 이야기다. 즉 프린세스로 시작해 검사로 성장하는 마혜리의 이야기는, 좌충우돌의 멜로에서 차츰 사회로 넓혀져 갈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수목극의 방송3사가 모두 멜로드라마를 그리고 있지만, 또 이들 드라마들이 모두 멜로에 머물지 않고 차츰 인간애로 그 관심을 확장해나가는 것은 왜일까. 이것은 어쩌면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한계를 넘기 위해 일과 사랑에 대해 고민했던 청춘 멜로드라마에서 한발 더 나아간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즉 이제는 멜로드라마의 관심이 남녀 간의 사랑에서 차츰 성장해 인간 대 인간의 사랑을 담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겉으로 보기에 하나는 진지하고(신데렐라 언니), 하나는 로맨틱하며(개인의 취향), 다른 하나는 따뜻한(검사 프린세스) 이 세 멜로드라마들은 각각의 서로 다른 재미를 내포하면서도 저마다 하나씩의 성장드라마를 담는다는 점에서 작금의 달라진 멜로드라마의 태도를 잘 드러내준다. 멜로드라마를 통해 멜로 그 이상을 담아내려는 이런 시도는, 매번 늘 같은 남녀 간의 그저 그런 시시한 사랑타령에 머물던 멜로드라마를 또한 성장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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