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캐릭터가 매력이 없는 이유

 

잘 생겼다. 얼굴은 미소년이지만 몸매는 짐승남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에는 유독 그의 벗은 몸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장면은 여지없이 그 드라마의 홍보 포인트로 잡혀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이상우는 꽤 괜찮은 드라마에 다수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자로서 그다지 확고한 존재감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번 그가 출연하고 있는 <결혼의 여신>에서도 마찬가지다.

 

'결혼의 여신(사진출처:SBS)'

<결혼의 여신>에서 그가 연기하는 김현우라는 캐릭터는 초반에만 해도 송지혜(남상미)와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는 역할로서 거의 주연으로서의 분명한 비중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드라마 상황을 보면 그를 더 이상 주연이라 말하기 어려워졌다. 13일에 방영된 32회만 보면 그가 출연한 분량은 강태욱(김지훈)이 무릎을 꿇고 그에게 집안을 대신해 사과한다고 하는 장면이 거의 다다. 단 몇 분도 되지 않는 방송 분량의 그는 이제 거의 조연(그것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김현우라는 캐릭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에서 김현우만큼 답답하게 속내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도 드물다. 그는 송지혜에게 연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를 사랑하는 한세경(고나은)과의 결혼을 부정하지 않는 인물이다. 심지어 한세경이 그와 송지혜의 관계를 알게 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한다. 전형적인 삼각관계의 틀에서 확실한 선을 긋지 않아 주변을 괴롭게 만드는 인물. 이른바 민폐 캐릭터다.

 

흥미로운 건 지금껏 이상우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대부분 이 김현우라는 캐릭터와 거의 유사하다는 점이다. <신들의 만찬>에서 그는 최재하(주상욱)와 고준영(성유리)을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를 이루는 김도윤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고, <마의>에서도 강지녕(이요원)을 사이에 두고 백광현(조승우)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캐릭터 이성하를 연기한 바 있다. 주연급인 것은 분명하지만 메인이라기보다는 주연들 사이의 멜로에 갈등을 만들어내는 보조적 역할이었던 것.

 

애초부터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 있는 캐릭터는 두 가지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 하나는 너무 전면에 서게 되면 주연급들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그렇다고 뒤로 빠지게 되면 전혀 존재감 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상우의 경우에는 <신들의 만찬>이 전자이고 <마의>나 <결혼의 여신>이 후자다. <신들의 만찬>에서는 갑자기 고준영과 김도윤의 멜로가 급물살을 타면서 주인공인 최재하와 상황이 역전되는 관계를 만들었고, <마의>나 <결혼의 여신>에서는 초반에 어느 정도 존재감을 보인 캐릭터가 뒤로 갈수록 사라져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도대체 이상우라는 연기자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왜 늘 비슷한 캐릭터만이 그에게 주어지고 그 캐릭터가 보여주는 연기의 양상도 비슷비슷하게만 보여지는 것일까. 주인공들의 멜로를 방해하거나 그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역할로 이상우의 연기 역할이 규정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것은 연기자로서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보여주었던 게이 역할이 그나마 주목되지만 이것 역시 그의 잘 생긴 얼굴과 잘 관리된 몸이 규정하는 역할범주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 이상우는 지금 현재 그의 역할이 대부분 그의 외모와 결부된 캐릭터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다. 귀공자 스타일의 얼굴과 단단한 몸매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연기자로서 그것이 하나의 캐릭터로 점점 굳어지는 것은 피해야 마땅한 일이다. 마치 데드마스크를 쓴 인물처럼 자신 속에 있는 새로운 얼굴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 연기자. 그가 연기하는 김현우라는 캐릭터가 자신이 내보일 수 있는 연기의 전부처럼 보인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 이상우는 늘 이렇게 비슷한 캐릭터에 머물게 된 것일까. 이것은 그의 잘못일까 아니면 그를 작품에서 늘 비슷하게 소비해온 작가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그를 연기자로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는 소속사의 직무유기일까. 그것이 어디서 비롯된 일인지는 몰라도 연기자로서의 성장을 목표로 두고 있다면 이상우는 스스로 이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0% 넘긴 <백년의 유산>이 남기는 씁쓸함

 

지난 주 MBC <백년의 유산>은 30% 시청률을 넘겼다. 이 수치는 늘 최강자로 군림해왔던 KBS 주말극을 앞질렀다는 것 때문에 더 많은 의미부여가 되었다. 드라마 제목은 <최고다 이순신>이지만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최고가 아니었던 셈이다. <백년의 유산>의 시청률이 30%를 넘기자, 그간 막장 논란을 줄곧 제기했던 언론들 중에서도 과연 이 드라마가 막장인가 하는 의문 제기를 하고 나섰다. 시청률만 높으면 막장도 좋은 드라마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우리네 드라마의 현실이다.

 

 

'백년의 유산(사진출처:MBC)'

먼저 이른바 어떤 드라마를 막장으로 부를 것인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듯싶다.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크게 그 정의는 두 가지로 압축되곤 한다. 하나는 완성도가 떨어져 개연성을 찾기가 어려운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도무지 TV 드라마로서는 다뤄지기 어려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태들이 자극적으로 배치되는 경우다. 두 가지 정의가 복잡하다면 한 가지로 정의내릴 수도 있다. 그것은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상투적으로 자극적인 코드를 반복하는 경우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백년의 유산>은 위에서 제기한 것들 중 적어도 두 가지 경우에는 해당된다. <백년의 유산>이 그나마 갖추고 있다고 보이는 것은 개연성이다. 물론 이것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주인공 채원(유진)의 캐릭터가 초반에는 능동적이었다가 어느 순간 늘 당하는 수동성을 보이는 등 그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완전하다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간 막장드라마들의 전개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두 번째 경우인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태는 <백년의 유산>의 시청률을 끌어올린 주요 요인이다. 아들에게 집착하면서 거의 엽기 수준으로 며느리를 괴롭히는 방영자(박원숙)가 그 주인공이다. 심지어 정신병원에 며느리를 집어넣는 건 거의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물론 이러한 방영자의 악행은 다분히 시청자들의 공분을 이끌어내려는 계산이다. 드라마가 어떤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것이 아니고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시청률을 목표로 할 때 그 드라마는 막장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는 이른바 시청률로 성공한 드라마들의 공식들을 가져와 얼기설기 엮어놓은 상투성이다. 지독한 시월드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마마보이 아들의 갈등 관계는 전가의 보도처럼 가족드라마들이 사용했던 공식이고, 여기에 복수극의 구조와 최근에 많이 사용되는 성장드라마 미션 구조가 뒤섞여 있다. 물론 출생의 비밀도 빠지지 않는다. 만일 이 다양한 코드들을 섞어서 창의적인 이야기를 뽑아냈다면 얘기가 다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구조만 봐도 떠오르는 몇몇 드라마들이 있을 정도다.

 

이 드라마의 구조는 같은 방송사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었던 <신들의 만찬>과 거의 유사하다. 음식이 메인소재이고 그 음식을 다루는 가문의 이야기가 등장하며 그 대를 이어가기 위한 후계자 경쟁이 들어간다. 물론 거기에는 과거에 라이벌이었던 주인공 윗세대들의 갈등과 숨겨진 출생의 비밀이 깔려 있다. 그런데 이 <신들의 만찬> 역시 과거 성공드라마로 지목되었던 <제빵왕 김탁구>의 공식들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그러니 반복된 구조를 답습하는 <백년의 유산>을 과연 창의적인 드라마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백년의 유산>이 내세우고 있는 백년을 이어온 국수집의 이야기도 과도한 PPL로 인해 그 진정성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화면 곳곳에 배치된 오뚜기 브랜드의 제품은 드라마 몰입을 방해할 지경이고, 심지어 채원이 입사한 회사이자 그녀의 연인인 세윤(이정진)의 회사 이름도 ‘오뚜기’다. 여기에 채원 가족이 이끌어온 국수집 이름은 ‘옛날 국수’. 드라마는 채원이 세윤의 회사의 국수 공모에서 ‘옛날 국수’를 제안해 채택되는 과정을 그리지만, 실상은 오뚜기 ‘옛날 국수’의 노골적인 광고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시청률 30%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혹자들은 이를 가리켜 진화된 막장이라 하지만 그 말만큼 슬픈 건 없을 게다. 오죽 진화할 것이 없으면 막장을 진화시킬 것인가. 그렇다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퇴행일까. 이것 역시 슬픈 얘기다. 드라마가 가진 자극적인 면들만 소비되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일 테니.

 

하지만 어쩌면 이 둘 다가 아니고 다만 시청률 추산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게다. 지금의 TV 본방사수로만 계산되는 시청률 추산으로 잡히는 시청자들은 결국 특정 세대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젊은 시청자들과 나이 든 시청자들의 시각차가 극명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백년의 유산> 같은 드라마는 지금의 잘못된 시청률 추산이 만들어낸 돌연변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슬픈 이야기다.

민폐된 캐릭터들, 신에게 도전하다

 

<신들의 만찬>은 결국 화해를 그리며 종영했지만,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을 남겨다. 배우와 작가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기사화된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제작진은 이것이 사실 무근이라 밝혔다. 어느 쪽 이야기가 사실인 지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직접적인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러 기사가 나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어딘가 균열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신들의 만찬'(사진출처:MBC)

아마도 최재하(주상욱)라는 캐릭터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최재하는 주인공인 고준영(성유리)과 어린 시절부터 이미 엮어진 캐릭터다. 하지만 진짜 하인주인 고준영이 부모를 잃은 채 다른 삶을 살아오는 동안, 가짜 하인주(서현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당연히 최재하는 가짜 하인주와 결혼을 약속한 관계가 된다.

 

하지만 진짜 하인주인 고준영이 나타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최재하는 고준영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 가짜 하인주를 버리게 된다. 이 지점에서 최재하라는 캐릭터는 조강지처를 버린 인물로 낙인찍히게 된다. 게다가 최재하가 고준영이 진짜 하인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그는 핏줄은 다르지만 어쨌든 한 부모의 자식인 자매를 좋아하게 된 것. 마치 언니를 버리고 동생을 사랑하는 것 같이 되어버린 관계는 최재하를 옴쭉달싹 못하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에 김도윤(이상우)이란 캐릭터가 비집고 들어오자 최재하는 모든 걸 잃어버리는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고준영에게 김도윤이 과감하게 접근하면서 그 둘 사이는 급물살을 탄다. 물론 운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지는 신만이 알 일이지만, <신들의 만찬>의 캐릭터들이 겪는 관계의 변화는 너무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이것은 관계가 바뀐 것이 본래 의도대로건, 아니면 갑작스럽게 바뀐 것이건 상관없는 문제다. 그저 작가가 보는 캐릭터 설정 자체가 무리하다는 문제이다.

 

이 의도된 관계 속에서 최재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고, 김도윤은 갑자기 끼어든 인물이 되어버렸으며, 고준영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일관성 없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물론 여기에는 인물이 뒤바뀌었고 그 바뀌어진 인물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복잡한 과정이 작용한 탓이다. 캐릭터가 민폐로 전락하는 과정에는 결국 이런 과도한 애초의 설정 자체가 무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른바 '출생의 비밀'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그 운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때로는 작가의 악취미 같다는 인상을 받는 건, 바로 이 과도한 설정 탓이다. 작가들은 그것이 드라마의 극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시청률을 위해서 선택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현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출생의 비밀'은 시청률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캐릭터들은 힘들어도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번 <신들의 만찬>에서 일어나는 불협화음(그것이 가시화되었건 그렇지 않건)은 그런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사건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니다. 이미 배우와 작가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어 사건으로 번진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이것은 신으로 존재하는 작가들의 설정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던 캐릭터들이 일으킨 반란처럼 보인다. 결국 민폐나 불쌍한 존재가 되어버린 캐릭터들은, 그것을 연기하는 연기자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때론 캐릭터 논란은 연기력 논란으로 전화하기도 한다.

 

<신들의 만찬>의 캐릭터 논란은 그런 점에서 작가가 작품을 대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잘 드러내준다. 캐릭터는 물론 작가가 창출한 존재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휘둘릴 수 있는 그런 허수아비는 아니다. 신들이 벌이는 만찬도 어느 정도다. 그것이 과도하거나 제 멋대로일 때 캐릭터들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신만찬>의 출생비밀 집착 뭐가 문제일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신들의 만찬>은 도대체 주제의식이 있기는 한 걸까. 적어도 소재에 대한 나름대로의 시도를 한 적이나 있는 걸까. 애초 <신들의 만찬>에 기대했던 것은 그 요리라는 소재가 가진(최근 요리 한류로 이어지고 있는) 매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을 보라. 요리라는 소재는 뒷전이 된 지 오래고 끊임없는 그 놈의 '출생의 비밀' 타령으로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다.

 

 

'신들의 만찬'(사진출처:MBC)

드라마 초반 요리 대결에 대한 에피소드가 몇 개 나오고 나서는 끊임없이 4각 멜로(그것도 인물들이 그럴 듯한 이유 없이 이리 저리 휘둘리는)가 반복되더니, 이제는 끝없는 핏줄 타령이다. 잃어버렸던 자식의 귀환, 그것을 막으려는 키워진 자식의 갖은 악행, 기억을 잃어버린 엄마. 드라마는 인물들이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도돌이표로 집어넣는다.

 

그나마 이야기에 개연성이라도 있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자식 고준영(성유리)이 엄마인 명장 성도희(전인화)를 추락시키려는 백설희(김보연)의 음모를 막는다는 이유로, 아리랑에 들어와 성도희와 각을 세우는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꼭 그런 방법밖에 없을까(이 상황은 그래서 억지로 저 <하늘이시여>의 기묘한 모녀관계를 만들어내려는 의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그렇게 돌아온 고준영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거라 판단하고 이를 온몸으로 막으려는 하인주(서현진)의 모습도 너무 전형적이다.

 

이것은 출생의 비밀이라는 드라마 코드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다. 왜 등장인물들은 이 핏줄의 틀 속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까. 하인주는 왜 굳이 그토록 힘겨운 시간을 버텨내면서까지 성도희의 딸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걸까. 이것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하인주는 이미 스스로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능력도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는 왜 여전히 '엄마'를 벗어나지 못하는 유아기 상태에 놓여져 있는 걸까.

 

이것은 고준영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타고난 요리 실력의 소유자이고, 생존력 또한 뛰어난 인물이다. 물론 어린 시절 잃어버린 부모 때문에 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녀 역시 이제는 어엿하게 독립적으로 성공해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렇게 여전히 '엄마'를 외치며 눈물 흘리는 아이로 퇴행하고 있는 것일까.

 

출생의 비밀 코드도 적절히 활용되면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극적 장치로 쓰여질 수 있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 코드 그 안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는다. 이 시대는 물론 핏줄이나 혈연 같은 운명적인 틀로 인해 삶이 고착되는 비극적인 현실을 안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정상적이라 여겨지는 그런 시대는 아니다. 과거에 발목 잡히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 적어도 그것이 드라마가 보여줘야 할 비전이 아닐까.

 

<신들의 만찬>은 이미 성장한 사람들이 모두 아이 때로 퇴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준영과 하인주의 대결은 그래서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결국은 순혈을 가진 고준영이 그렇지 못한 하인주를 이기는(이것은 태생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으로 드라마는 치부한다) 이 게임 속에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친 딸이라고 끝까지 주장하는 일뿐이다. 이 얼마나 유아적인가.

 

과거 <제빵왕 김탁구> 역시 출생의 비밀을 드라마 코드로 활용했지만 적어도 그 드라마는 그 안에 성장의 과정을 집어넣었다. 출생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노력으로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은연 중에 보여주었다. 하지만 <신들의 만찬>은 어떤가. 고준영은 성도희의 순혈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재능을 부여받는다. 한 번 냄새만 맡아도 그 재료와 요리 방법까지 꿰뚫는 이 신의 재능은 오로지 그녀가 좋은 핏줄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반면 오로지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그 자리를 버텨온 하인주는 고준영의 등장만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설마 제 아무리 노력해도 핏줄 잘못 타고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과연 21세기에 어린이 드라마가 아닌 성인들의 드라마에서 버젓이 내놓고 할 이야기일까. 얼개도 느슨하고 메시지도 공감하기 힘든 <신들의 만찬>은 그래서 그 어떤 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스럽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도대체 이 불순한 드라마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출생의 비밀에 발목 잡힌 ‘신들의 만찬’

 

출생의 비밀은 때론 멜로의 장치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알고 보니 남매’ 같은 설정. ‘신들의 만찬’에서는 ‘알고 보니 자매(?)’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 들어있다. 물론 준영(성유리)과 인주(서현진)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엄마인 성도희(전인화) 입장에서 보면 수십 년을 딸로 살아온 가짜 인주(인주 행세하는 실제는 송연우)나 이제 그 세월을 뛰어넘어 돌아온 진짜 인주(준영)나 모두 딸인 것은 마찬가지. 그러니 가짜 인주를 죽 사랑해오다 진짜 인주에게 마음이 돌아서버린 재하(주상욱)는 이들의 숨겨진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신들의 만찬'(사진출처:MBC)

물론 이건 그저 이 관계들을 굳이 인정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스토리 자체가 억지스럽고 인물들의 내면 심리가 섬세하게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준영과 재하가 보여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운운하는 장면들은 너무 오버하는 것 같고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잘 지내다가 왜 갑자기 저렇게 된 것인지에 대한 인물들의 감정 변화가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다 보니 공감대 역시 없기 때문이다.

 

본래 출생의 비밀이라는 장치 자체가 작가가 일부러 끼워 넣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 것이지만, 그나마 드라마의 극성을 위해 설정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물이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흐름을 타지 않고 작가에 의해 이리 저리 휘둘리는 건 자칫 막장으로 흐를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20여 년 간을 인주와 교제를 해오다 준영을 만나고는 순식간에 마음을 바꿔버린 재하(분명한 이유가 제시되었어야 한다)는 이 드라마가 가진 작가의 억지스런 개입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낸다.

 

이로써 재하라는 인물은 조강지처 버린 매력 없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재하가 준영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캐릭터고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멜로가 이 드라마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매력 없는 인물로 만들어버리자, 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도윤(이상우)이라는 인물과 상황이 역전되어 버린다. 도윤은 겉으로는 냉랭하게 대하면서도 오로지 준영만을 바라보는 인물로, 캐릭터 역시 재하와 비교해 더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결국 이 멜로구도는 자가당착의 상황에 빠져버렸다. 준영을 재하와 연결시키자니 매력이 떨어지고 또 도윤이 눈에 밟힌다. 그렇다고 도윤과 연결시키면 스토리 전개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버린다. 물론 멜로가 스토리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중요한 건 이 멜로 구도를 통해 볼 수 있는 작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가진 문제다. 작가의 의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인물들은 그래서 자연스럽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때론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안쓰럽게 보일 지경이다.

 

‘신들의 만찬’의 출생의 비밀을 사이에 끼워 넣은 억지스런 멜로 구도는 이 드라마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드라마 속의 캐릭터는 작가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다. 물론 캐릭터의 창조는 작가가 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창조된 캐릭터는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예를 들어 작가가 원한다고 어느 날 갑자기 죽여 버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작가가 마음껏 캐릭터들을 유린해놓고는 그것이 ‘운명’이라고 치부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 운명을 만든 자는 바로 작가 자신이다. 따라서 작가는 이러한 드라마 스토리 속에서 신이나 다름없다. 작가는 분명 콘텐츠에 있어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신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세계를 마음껏 전횡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공감’이라는 질서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질서가 무시 됐을 때 그 세계는 막장이 되어버린다. ‘신들의 만찬’이라는 이 기묘한 제목의 드라마가 자꾸만 ‘작가의 만찬’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공감의 질서를 해치는 운명이라 변명하는 신적인 손길이 자꾸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전횡되는 세계 속의 불쌍한 캐릭터들을 어찌할 것인가.


뻔한 전개, 근데 왜 자꾸 보게 될까

'무신'(사진출처:MBC)

MBC 주말극이 칼을 빼들었다. 고전적인 영웅 서사, '무신'이 남성 시청자를 정조준한 것이라면, 전형적인 가족 서사, '신들의 만찬'은 여성 시청자를 겨냥했다. 그것도 전통적인 드라마 남녀 시청층인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데다, 주말 밤에 연달아 편성함으로써 하나의 패키지로서의 시너지 효과도 노렸다. 이 정도면 주말의 이 두 작품에 깃든 MBC의 야심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은 새롭기보다는 익숙한 것을 가져왔고 대신 자극은 더 강해졌다. '무신'은 잔인한 고문 장면이 꽤 길게(이것은 의도적인 연출이다) 이어졌고, 노예가 된 여자들의 옷을 벗기고 하나의 성노리개처럼 그 몸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사실 이미 미드로 유명한 '스파르타쿠스' 같은 작품을 본 시청자라면 이 정도 연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겨질 법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네 지상파를 염두에 두고 본다면 꽤 수위는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자극은 '신들의 만찬'도 마찬가지다. 첫 회부터 유람선을 타고 가던 중 남편의 외도 사실에 아내가 자살을 기도하는 장면이 나왔고, 그걸 본 아이가 충격에 휩싸여 갑판에 오르다 미끄러져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 또 자신이 불치병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이를 버린 채 자살하려는 여자가 등장했다. 무엇보다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종종 이 폭력적인 상황에 아이가 그 대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강렬한 자극의 껍데기를 벗겨내면 그 내용은 익숙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이다. '무신'은 지극히 고전적인 영웅서사를 담았다. 고려 무신정권 시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최충헌가의 노비였으나 훗날 최고의 위치까지 오르는 인물, 김신을 다루었다. '벤허'에서부터 '글래디에이터', '스파르타쿠스' 같은 고전적인 영웅담은 물론이고, 그 전통을 그대로 밟아 만들어졌던 '태조 왕건', '해신', '대조영'과도 스토리구조에 있어서 궤를 같이 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신들의 만찬'은 이미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에서부터 지금껏 반복되는 그 전형적인 '출생의 비밀'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출생의 비밀' 코드와 '요리 경합'이 붙어 있는 점은 '제빵왕 김탁구'를 떠올리게 하고, 바뀐 인물들이 훗날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생겨날 파장들은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부터 '반짝반짝 빛나는'까지 무수히 반복된 우리네 드라마의 틀에 박힌 구조 그대로다.

이처럼 이 '무신'과 '신들의 만찬'은 뻔한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대신 그 자극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웬만큼 반복된 스토리라고 해도 한 번 보면 계속 보게 되는 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 이들 작품들은 기대를 뛰어넘는 반전의 드라마가 아니라 기대한대로 흘러가는 드라마다. 그것도 더 강한 자극으로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그런 드라마. 뻔한 얘기인데 왜 자꾸 보게 될까 하는 의구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물론 약점도 있다. 현재 드라마의 시청률은 남성만을 타깃으로 하거나, 여성만을 타깃으로 해서는 좀체 오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이 두 드라마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인해 너무 타깃의 성별이 뚜렷한 점이 강점이자 약점이다. 과연 MBC의 조금은 야심이 지나쳐 보이는 이 전략적인 두 드라마는 과연 선정성과 자극성, 그리고 상투성의 시비를 넘어서 주말 밤의 영토를 빼앗아 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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