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박하는 계모, 출생의 비밀, 신파... ‘하나뿐인 내편’의 진부한 현주소

시간을 한 30년 넘게 되돌린 것 같다. KBS 새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은 아주 오래된 신파극의 설정이 고스란히 재연되어 있다. 병에 걸린 아내를 어떻게든 살리려 돈을 빌리러 갔다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두 차례의 살인과 강도, 결국 아내는 사망하고 살인죄로 감옥에 가게 되는 현대판 장발장 강수일(최수종). 그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해 고아원에 보내진 그의 딸을 자신의 딸처럼 키우는 김동철(이두일). 그 집안에서 알게 모르게 구박을 받으며 자란 콩쥐 혹은 신데렐라 김도란(유이), 도란을 구박하고 친딸인 김미란(나혜미)만을 챙기다 결국 그 출생의 비밀을 터트리는 소양자(임예진), 그 충격에 집을 나간 도란을 찾아 나섰다가 사고로 김동철이 죽게 되자 그 집에서 쫓겨나 울며 걸어가는 도란을 우연히 발견해 뒤따라가는 친아버지 강수일...

<하나뿐인 내편>은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던 아침드라마의 그 흔한 설정들이 뒤범벅되어 있다. 그래서 단 2회가 방영됐을 뿐이지만, 시청자들은 대충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로 흘러갈 지를 가늠한다. 결국 아버지임을 숨긴 채 김도란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돕는 강수일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신파 설정), 김도란과 재벌2세 왕대륙(이장우)이 조금씩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김도란의 친아버지가 살인자였다는 사실은 그들의 사랑에 장애물이 될 것이다(출생의 비밀 설정).

물론 이런 예측은 말 그대로 예측일 뿐이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 전개가 나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드라마의 대사나 연출을 보면 그런 기대감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하나뿐인 내편>에는 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혼잣말을 하는 인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사실 연극적인 연출에서 시작한 독백 혹은 방백은 최근 들어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이 너무나 현실감을 깨기 때문이다.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야 그럴 수 있지만 세상에 혼잣말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혼잣말은 이 드라마의 대본이 너무나 이야기 전달에만 집중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낸다. 인물의 대사와 행동들이 겹쳐지며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이 그 상황을 이해하게 해야 하지만, 이 드라마는 아예 그걸 인물의 혼잣말로 설명한다. 물론 한두 차례 꼭 필요한 상황에서야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드라마는 아예 그것이 하나의 작법처럼 반복적으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작품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너무나 전형적이다. 죄책감과 가족에 대한 헌신이 더해져 유일한 ‘내 편’인 딸을 위해 뭐든 해주려 할 강수일이 그렇고, 외로워도 힘들어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 딸 김도란이 그렇다. 왕대륙은 너무나 전형적인 재벌2세의 모습 그대로다. 2회 만에 뒷목 잡게 만드는 소양자 같은 인물도 마찬가지다. 

이야기 전개도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기보다는 극적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의도적 작가의 개입이 너무나 많다. 도란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금옥(이용이) 같은 인물이 등장하게 되면서 김동철은 도란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려 하고, 그 일이 사단이 되어 소양자가 그 출생의 비밀을 터트려버린다. 그 과정은 굉장히 빠르게 전개되고 있지만 어딘가 의도적인 흐름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되다보니 연기도 주목되지 않는다. 연기도 어느 정도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어야 돋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가족드라마로 들어온 최수종도, 너무 주말드라마에 많이 나와 그 캐릭터가 반복되고 있는 듯한 유이도, 또 매력을 좀체 느끼기 어려운 이장우도 매력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래서 도대체 <하나뿐인 내편>이 하려는 이야기는 뭘까. 그건 이미 제목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세상에 내편 하나 있으면 누구나 살아갈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신파와 출생의 비밀이 버무려져 결국 그 귀착점은 다시금 오래 전부터 전가의 보도처럼 메시지로 등장했던 ‘가족주의’다. 물론 가족드라마가 ‘가족주의’를 드러내는 건 어쩌면 태생적인 한계일 수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지금의 달라진 우리네 가족의 양태 속에서 어떤 고민 같은 게 담겨져야 하는 게 아닐까. 

만일 그 가족주의가 혈육의 끈끈함을 다시금 확인하는 신파적 설정으로 그려진다면 <하나뿐인 내편>은 그나마 있는 편들도 잃을 지도 모른다. 그건 너무 알고 있는 이야기, 그것도 아침드라마를 구성하는 달라진 시대와 맞지 않는 틀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KBS 주말드라마가 지금껏 유지되어온 힘은 가족드라마의 틀을 지켜내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우리 시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족의 변화를 담아내고 고민해보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별 기대감이 사라진 채 틀어놓고 있는 아침드라마와 다를 게 뭔가.(사진:KBS)

'같이 살래요' 뻔한 상투성, 유동근·장미희 연기까지 이상하다

주말극은 이 상투성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또 결혼반대 코드에 뻔하디 뻔한 뒷목 잡게 만드는 악역 캐릭터다. 다만 KBS 주말극 <같이 살래요>가 다른 게 있다면 그 결혼 반대하는 대상이 부모가 아니라 자식이라는 점이다. 효섭(유동근)과 미연(장미희), 둘 사이는 핑크빛이고 그래서 결혼까지 오가고 있지만, 이 둘을 미연의 아들 문식(김권)은 대놓고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 반대하는 이유가 황당하다. 결국 미연의 재산 때문이라는 것. 문식은 그래서 몰래 친부를 만나고 미연과의 재결합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보통의 주말극에서 늘상 나오던 상투적인 장면인 부모가 자식 결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식의 설정을 거꾸로 뒤집어 자식이 부모 결혼에 간섭하는 이야기. 

이렇게 되자 보통의 주말극에서 악역을 자처하던 시부모는 이 드라마에서는 문식이라는 자식으로 바뀌었다. 빌딩주인 미연의 금수저 아들로 절대 갑으로서 살아온 철없는 이 인물은 이미 회사 내에서도 효섭의 아들인 재형(여회현)에게 대놓고 갑질을 하는 악역이다. 문식은 그래서 결혼반대에 갑질 상사라는 ‘욕받이’ 역할을 자처하게 됐다.

이후의 이야기는 아마도 이제 시청자들이 대충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문식 같은 절대 악역이 세워지고 나면 그 악행으로 인해 시청자들을 공분시키는 몇 가지 사건들이 더 벌어질 것이고, 결국 그 악행을 알게 된 부모는 갈등할 수밖에 없을 게다. 극중에서 효섭이 말하듯, 자식의 허물은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게 부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을 겪다 결국은 문식이 무너지거나 혹은 개과천선하는 이야기에 효섭과 미연이 우여곡절 끝에 이뤄지는 과정이 담겨지지 않을까.

물론 <같이 살래요>가 애초에 보여주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는 분명하다. 그것은 엄마 혹은 아빠로만 살아왔던 노년 세대의 재결합이라는 새로운 가족형태 속에서 빚어지는 자식들과의 갈등이다. 실제로 이런 문제가 현실에서 벌어질 때 가장 갈등을 만드는 건 역시 재산 문제다. 자식들은 부모의 결혼으로 들어온 배우자가 재산이 목적이 아닌가를 의심하게 되고, 결혼하려는 당사자들은 자식들의 그런 의심을 상처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이가 들어 같이 산다는 문제는 단순히 사랑의 문제만이 아닌 현실적인 일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려나감에 있어서 위아래도 없이 폭주하는 문식이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상투적 악역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폭주할수록 시청률은 올라가지만 드라마에 대한 반응은 갈수록 부정적으로 변해간다. 결국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를 발견하게 되는 그 캐릭터와 이야기의 뻔한 구조 때문이다. 

이러한 상투적인 이야기 구조 때문일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효섭과 미연 역할의 유동근과 장미희의 연기조차 어딘가 옛날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저마다의 개성과 아우라가 넘치던 이 배우들의 연기에서 마치 옛 멜로 속 신파적인 연기 톤까지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야기의 상투성이 연기까지도 전형적으로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 (사진:KBS) 

‘감빵생활’, 박해수에게 배우는 슬기로운 위기대처법

주인공인데 이토록 무뚝뚝하기도 참 어려울 듯하다.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주인공 김제혁(박해수)은 말보다는 행동을 더 많이 보여준다. 그래서 침묵 속에서 표정조차 잘 변하지 않는 이 인물은 평상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없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무뚝뚝하고 어떤 면에서는 무뎌 보이는 인물이 이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김제혁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어쩌다 감옥까지 오게 됐지만 그는 마치 바보처럼 무덤덤해 하고 그다지 아픈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그가 무감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런 아픔들이 있어도 그걸 버텨낼 만큼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라서다. 자신보다 오히려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이 더 아플 것을 먼저 생각한다. 

왼쪽 어깨를 다쳐 은퇴선언까지 했던 야구를 다시 오른쪽 투구로 바꿔 재기에 성공한 김제혁은 복귀 소식에 구단들이 전부 러브콜을 하는 상황에서 의외의 조건을 내건다. 계약금 같은 현실적인 부분이 아니라, 언론 플레이를 잘 하는 구단을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것. 알고 보면 그것이 결국 동생 제희(임화영)를 위한 일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성폭행을 당할 뻔했던 제희의 이야기가 자신 때문에 거론되는 걸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무뚝뚝하고 그래서 야구 빼고 나면 바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마음 씀씀이나 생각이 굉장히 치밀하고 섬세하다는 걸 이 에피소드는 말해준다. 이런 모습은 그가 처음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돈을 요구하는 조주임(성동일)을 뿌리치고 대신 법자(김성철)의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주는 이야기 속에서도 등장한다. 훈훈한 이야기지만 김제혁이 하는 일들은 이처럼 드러내지 않고 진행된다. 

하지만 일단 결심이 서면 무시무시할 정도로 자신을 밀어붙이고 준비하는 게 바로 김제혁이다. 오른손으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 그는 감옥에서 강행군에 돌입한다. 쉴 틈 없이 체력훈련과 투구훈련을 하고 친구인 교도관 준호(정경호)가 슬쩍 건네는 술 한 잔도 거부한다. 그만큼 무언가를 하기 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없이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혹독하다는 것. 

그러면서도 얻을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활용할 줄 아는 ‘인간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자신에게 팬심을 가진 소장을 ‘형’이라고 부르고 그가 그토록 원하는 언론플레이를 자신을 통해 슬쩍슬쩍 하게 해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해 얻어내기도 한다. 곰인 줄 알았더니 처세술에서는 여우였다는 것. 

하지만 무엇보다 김제혁이 가진 가장 큰 슬기로움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삶의 방식이다. 어머니의 병환을 도운 일로 법자는 영원히 그의 사람이 된다. 무엇보다 같은 감방에 사는 식구들의 마음을 얻은 김제혁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 상황 속에서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다시 돌아와 호시탐탐 김제혁을 노리는 똘마니(안창환)로부터 감방 사람들은 제혁을 보호하려 나선다. 장기수(최무성)는 완력으로, 한양(이규형)은 약에 대한 지식으로, 유대위(정해인)는 군인다운 주도면밀함으로 그를 돕는다. 타인을 도와 자신을 돕게 하는 김제혁의 삶의 방식은 그가 그 힘겨운 나락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된다. 

그런 그를 알아봐준 건 넥센 히어로즈였다. 스카웃 담당자는 준호가 보낸 김제혁의 투구영상을 통해 그가 완벽하게 재기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는 걸 확인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조건을 수락하고 계약을 진행한다. 김제혁이 가진 스토리가 사실 많은 구단들이 영입을 원하는 이유였지만 이들은 그의 실력을 먼저 본 것. 그는 자신들이 “신파가 아닌 실력”을 원한다고 말한다. 

신파가 아닌 실력. 어쩌면 이건 김제혁이라는 인물이 지금 같은 혹독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결심을 하면 무섭게 준비해 실력을 갖추는 것. 그리고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을 도와 자신을 이롭게 할 줄 아는 것. 현실을 한탄하는 신파에 빠져들기보다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으로 넘어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조금 독특한 주인공 김제혁에게 빠져들게 되는 그만의 매력이 아닐까.(사진:tvN)

눈물 가득 ‘황금빛 내 인생’과 ‘신과 함께’, 흥행하는 까닭

너무 신파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 누구도 눈물을 참기 힘든 상황 설정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방송 전체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렇고, 개봉 5일 만에 350만 관객을 넘어서며 일간 관객 수 순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과 함께-죄와 벌>이 그렇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각각 대중들의 가장 큰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는 이 두 작품에는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져 있다.

인사이트<황금빛 내 인생>은 서태수(천호진)의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크리스마스의 한 풍경으로 시청자들을 울렸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 가장은 가족들에게는 원양어선을 탄다고 했지만 본래부터 삶을 정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몸 상태가 심상찮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곧 죽을 수도 있겠다고 느끼며 웃음을 터트린다. 크리스마스에 그는 자신이 맞이할 수도 있을 죽음을 ‘휴식’으로 받아들인다.

오랜만에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고 외투까지 하나 사 입은 이 가장은 자신이 죽었을 때 나올 사망보험을 보며 어차피 정리하려 했지만 이렇게 병으로 죽는 것이 가족들에게 죄책감을 주지 않는 방법이라며 좋아한다. 죽음을 오히려 휴식으로 받아들이고, 병사하는 것을 오히려 안도하는 가장의 모습은 아마도 동시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나 그걸 바라보는 자식 세대들까지 가슴 먹먹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영화 <신과 함께>는 인명을 구조하다 죽음을 맞이한 소방관 김자홍(차태현)이 사후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거치면서 그가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후 세계의 모험담을 그린다는 점에서 스펙터클에 판타지 블록버스터일 수밖에 없지만 영화의 스토리는 김자홍이 가진 휴머니즘과 ‘효’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눈물을 참기가 어려운 작품이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김자홍 가족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으로, 실제 영화관을 여지없이 눈물의 도가니로 만들어놓는다. 제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만큼 감정을 격동시키는 것이 있을까. <신과 함께>는 그래서 가장 비현실적일 수 있는 판타지를 그리면서도 이 눈물을 통해 현실의 무게감을 담보해낸다.

하지만 이 부분은 보는 이들에 따라서 지나치게 신파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비판적인 반응 또한 나오고 있다. 너무 익숙한 코드들이지만 어쨌든 가장 효과적인 코드로서 신파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는 것. 물론 그 장면들을 감동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것은 어쩌면 가족 간에도 각박해진 현실에서 촉촉한 감정을 끄집어내는 대목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황금빛 내 인생>과 <신과 함께>에 등장하는 이러한 신파적 코드에 대한 호불호는 이처럼 극명하게 나뉜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 두 작품을 통해 지금의 대중들이 갖고 있는 일관된 정서가 바로 ‘울고 싶다’는 그 비감이라는 점이다. 최근 들어 많은 작품들에서 드러나고 있는 ‘추락하는 주인공들’에 대한 대중적 호응과 공감에는 이런 정서가 깔려 있다. 이제 누군가가 잘되는 걸 보는 것보다는 잘 안 되는 걸 보면서 공감하는 측면이 더 강해졌다. 신파든 아니든, 대중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울고 있고 그래서 작품들을 통해서라도 그걸 풀어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사진:KBS)


‘피고인’ 시청자들이 그토록 사이다 엔딩 기대했건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이 종영했다. 모두가 바라던 해피엔딩. 박정우(지성)는 차민호(엄기준)를 결국 사형수로 감방에 집어넣으며 정의를 실현했다. 마지막 시청률도 28.3%(닐슨 코리아)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모든 것이 정의로 돌아간 해피엔딩에 최고 시청률까지 기록했지만 어딘지 시청자들의 반응은 찜찜하다. 사이다이긴 한데 어딘지 김빠진 사이다란다. 도대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피고인(사진출처:SBS)'

가장 큰 문제는 이 드라마가 연장 2회를 더해 18회를 끌고 왔던 그 힘이 고구마 전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고통스런 상황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박정우를 다시금 원상태로 돌려놓는 방식을 반복하면서 생겨난 시청자들의 갈증을 동력으로 삼았던 것. 마지막회까지 이렇게 갈증들을 증폭시켜놓았기 때문에 웬만한 엔딩으로는 그게 채워지기가 어려웠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차민호가 사형수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 정신병자인 척 가장하며 법망을 피해나가려는 상황에 갑자기 나연희(엄현경)가 증인으로 등장해 자신이 차민호를 사랑했다고 말하며 아이 역시 차민호의 아들이라고 밝히는 장면은 너무 신파적이었다. 결국 그 증언이 차민호의 마음을 움직여 그 실체를 드러내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사형수가 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결말이다. 

그토록 권력자들을 좌지우지하며 잘 빠져나가던 차민호가 “본래는 착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에 감상적으로 빠져버리는 이야기는 18회 동안 쌓아 놓은 정의 구현을 통한 사이다 결말에 대한 갈망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일이다. 갑자기 약해진 악역이 신파적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한 의도적 결말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진정한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못했다.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구도조차 명쾌하다고 보기 어려운 <피고인>은 그래서 나아가 어떤 주제의식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했다. <피고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드라마는 애초에 “누가 이 시대의 피고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담아낼 수도 있었다. 박정우라는 무고한 인물이 피고인이 되고, 정작 살인자인 차민호가 권력을 손에 쥐고 버젓이 잘 살아가며 법망을 빠져나가는 그 구도만 잘 살려냈어도 충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피고인>은 그런 주제의식을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했다. 고구마 전개를 통한 시청률 낚기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를 보였던 것. 물론 주제의식 같은 메시지보다 이야기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됐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야기가 개연성을 잃어버리면서 억지 반전을 통해 만들어내는 충격요법이 진정한 이야기의 재미를 주기는 어렵다. 

최근 들어 이만한 시청률을 가져간 드라마도 드물었지만 <피고인>은 여러모로 적지 않은 문제들을 남긴 드라마였다. 시청률이 올라갈수록 시청자들의 혹평도 늘어갔다는 건 그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어쩌면 애초에 고구마를 통해 시청자들의 감정을 억압함으로써 시청률을 겨냥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 제대로 된 엔딩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애초 사이다 엔딩은 고구마 전개의 끝에 보상처럼 주어질 것처럼 여겨진 환상이었을 지도.

<판도라>, 결국 위기를 해결하는 건 서민들 뿐

 

영화 <판도라>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재난영화다. 여기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의미 속에는 이 영화가 신파적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이 재난상황을 다룬 영화가 그저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우리네 현실을 담아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스러져간 많은 이름 모를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다.

 

사진출처:영화<판도라>

<판도라>는 영화 시작 전에 자막으로 이 영화가 드러내고 있는 것들이 허구일 뿐 특정한 사실과는 무관하다는 걸 고지한다. 하지만 그 고지는 오히려 거꾸로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허구를 통해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네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최악의 원전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최근 경주 인근에서 벌어진 지진 때문에 오히려 더 실감 있는 허구가 되었고, 콘트롤타워의 무능함으로 국민들을 위험 속에 몰아넣는 영화 속 이야기 역시 최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탄핵안이 의결되고 세월호 참사의 미스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짜 같은 허구로 다가온다.

 

영화는 재난영화들이 흔히 만들어가는 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진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냉각장치가 정지되고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서 결국 원자로의 노심까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의 지경에 이르게 되는 그 숨 가쁜 과정들 속에서 영화는 청와대의 상황과 사고 현장의 상황을 병치하며 콘트롤타워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일으키는가를 보여준다. 세월호 7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청와대에서의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라는 보고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입니다로 바뀌는 장면은 마치 전쟁이 터진 듯 처참하게 변해가고 있는 현장과 대비되며 관객들을 분노와 허탈감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판도라>는 이 통제 불능의 원전사고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그리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놀라운 통제력을 발휘하는 대통령이 나서거나 하다못해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간단히 문제를 해결하며 영웅이 되겠지만, <판도라>는 결코 이런 모습을 그려내지 못한다. 지금껏 무수한 재난을 겪어온 우리네 대중들에게 그런 이야기는 허황된 거짓말이라는 게 단박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판도라>가 그리는 건 통제 불능의 그 상황 속에서 그나마 스러져 가는 생명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는 평범한 서민들이다. 원전에서 일하던 재혁(김남길)은 그 무너진 원전 속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동료이자 선후배라는 점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결국 몇몇을 구해내지만 그 스스로도 피폭되어 쓰러져버리는 평범한 서민들.

 

그 와중에 원전을 지켜내려는 업주측은 가까이 있는 바닷물을 길어 끓어오르고 있는 원자로에 붓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바닷물이 들어가면 원전을 폐기해야 하기 때문. 현장을 뛰어다니며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소장(정진영)은 울분을 터트린다. 하지만 콘트롤 타워인 대통령은 노련한 총리(이경영)에 의해 실제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결국 원전은 2차 폭발의 위험 속에 빠져버린다.

 

<판도라>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물론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 표면적인 것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재난 상황 속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콘트롤타워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다. <판도라> 속 등장하는 총리의 모습에서 우리네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이 너무나 쉽다는 것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마치 진짜 일처럼 몰입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현실이 <판도라>라는 영화를 더더욱 실감나게 만드는 비극이라니.

 

결국 영화는 마지막 순간 위대한 한 서민의 희생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 마지막에 남겨져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이 현실에 던지는 일종의 경고이고 갖가지 사건 사고 속에서 스러져간 희생자들이 영화의 입을 통해 전하는 외침이다. 죽음을 앞둔 재혁이 기억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지우려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이를 위해 나서는 건 결국 서민들뿐이다. 위기 상황 때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들처럼.

조정석과 도경수가 <>의 신파를 살려낸 비결

 

한 마디로 말해 영화 <>은 신파다. 경기 도중 충격으로 시력을 잃은 동생과 말기 췌장암 선고로 죽어가는 형. 배다른 형제의 브로맨스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짠하다. 애증으로 시작하던 형제 관계가 차츰 애정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먹먹함으로 이어지는 그 감정의 파고를 만든 건 바로 이 신파적 설정이 큰 몫을 차지한다.

 

사진출처:영화<형>

하지만 이 눈물 빼는 영화가 90%를 눈물로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웃음으로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형 고두식 역할로 나오는 조정석과 동생 고두영 역할의 도경수는 그 신파적 눈물과 비극을 뒤집는 코미디의 밀당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들이다. 여기에 유도 국가대표 코치로 등장하는 수현 역할의 박신혜와 깨알 같은 따뜻한 웃음을 전해주는 대창 역할의 김강현은 시종일관 관객들을 미소 짓게 하고 때로는 뭉클하게 만든다.

 

사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는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의 신선함 같은 건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그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살려내고 신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있는 영화를 헤어나올 수 있게 해주는 건 배우들이다. 놀라운 건 이 영화는 온전히 조정석, 도경수, 박신혜 그리고 김강현 네 배우가 거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그 중심점에 조정석이 있다. 이미 SBS <질투의 화신>을 통해, 아니 훨씬 이전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로 등장해 미친 존재감을 드러낼 때부터 조정석은 희비극이 뒤섞인 연기의 정점에 올라 있었다. 그는 자신이 비극적 상황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 보는 관객들을 웃기는 놀라운 재주를 가졌다. 즉 상황은 비극이지만 보는 이들은 희극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힘. 찰리 채플린이 얘기했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그 얘기가 떠오르는 배우다.

 

<>에서도 조정석은 단연 빛난다. 교도소에서 가출소된 껄렁껄렁하고 욕쟁이인 이 형이 동생을 대하는 모습은 한 마디로 까칠하면서도 인간적인 애정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장님이 된 동생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그 형의 시선은 그래서 영화 초중반을 눈물보다는 웃음을 채워 넣어준 이유다. 브로맨스의 츤데레를 보는 듯 조정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생을 툭툭 건드리며 웃기다가 어느 순간 마치 둑이 터지듯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를 보여준다.

 

도경수는 <괜찮아 사랑이야>나 영화 <카트>를 통해 보여줬던 그 진지함으로 <>이 가진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적 공기를 채워준다. 조정석이 시종일관 웃음을 줄 수 있게 된 건 바로 이 도경수가 만들어내는 비극적 정조가 어떤 긴장감을 만들어 그걸 살짝 뒤트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질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은 일종의 정해진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영화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영화를 통해 대단한 상상력이나 혹은 삶에 대한 놀라운 시각 같은 걸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감정적 위로와 위안이 절실해진 요즘 같은 시기에 어떤 따뜻한 웃음과 눈물이 주는 효용가치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조정석과 도경수의 연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즐겁게 해주는 힘이 되기에 충분하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진짜 하려던 이야기

 

KBS <함부로 애틋하게>는 왜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까.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틀에, 가난하다 못해 처절한 여주인공과 최고의 위치에 선 한류스타, 게다가 시한부 설정까지 들어 있으니 이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를 그저 그런 틀에 박힌 멜로 심지어 신파로까지 여기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혹자는 우리네 드라마 시청자가 첫 회만 보면 그 끝을 쉽게 예측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니 <함부로 애틋하게>의 초반부는 함부로그저 그런 멜로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함부로 애틋하게>가 하려던 진짜 이야기들이 조금씩 고개를 든다. 너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이경희 작가가 왜 틀에 박힌 설정들과 이야기들을 끌어왔고, 그것을 어떻게 뒤집으려 하는가 하는 의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건 드라마가 오해되는 게 못내 안타까워 제작사가 나서서 그 본래 의도로서 얘기했던 염치없는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드라마는 지나치게 명쾌하게 어른들의 세상과 청춘들을 분리해 놓았다. 어른들의 세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최현준 검사(유오성). 그는 정의로운 척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자신의 개인적 영달을 위해 갖가지 부조리와 부정을 저지른 인물이다. 법을 운운하며 공명정대한 것처럼 자신을 위장하지만 법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걸 모른다. 그러니 법을 수호한다기보다는 법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게 그의 추악한 진면목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하나는 그에게서 자란 최지태(임주환)고 다른 하나는 그도 모르게 태어나 자라 스타가 된 신준영(김우빈)이다. 신준영은 엄마인 신영옥(진경)의 소원처럼 최현준 같은 검사가 되려 노력하지만 노을(수지)의 아버지의 죽음을 덮어버리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최현준의 진면목을 보고는 흔들린다. 결국 아버지의 비리를 덮어주려다 노을을 죽일 뻔한 일을 저지르고는 검사의 길을 포기한다.

 

신준영은 아버지 최현준과는 달리 염치 있는 인간이다.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지만 바로 그렇게 저지른 실수 때문에 영원히 검사 자격 따위는 없다며 꿈을 포기한다. 그는 대신 한류스타가 되지만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꿈을 포기한 일은 그에게도 혹독한 벌을 내린다. 엄마인 신영옥이 그를 더 이상 아들로서 대하지 않는 형벌.

 

최현준의 또 한 명의 아들 최지태 역시 염치 있는 인간이다. 그는 아버지의 잘못을 알고는 노을의 키다리 아저씨로 살아온다. 그것이 자신이 대신 사죄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러 최현준이라는 어른과 최지태, 신준영이라는 청춘이 본격적으로 대립하는 이야기로 들어간다. 염치없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최현준 같은 어른(그의 아내도 마찬가지다)과 그로 인해 처절한 삶에 내몰린 노을(그녀가 영원히 을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어른을 아버지로 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대신 사죄하려는 최지태, 신준영이라는 청춘들.

 

여전히 최현준에 대한 환상을 저버리지 못하는 신영옥에게 아들 신준영은 그 실체를 고발한다. 그가 노을의 집안을 어떻게 풍비박산냈고 그로 인해 그들이 지금도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털어놓는다. 신영옥은 그제서야 충격에 빠진다. 평생을 기대왔던 믿음이 무너지는 충격.

 

최지태는 쫓겨나게 된 노점상들에게 그건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강변하는 아버지 최현준에게 정면으로 맞서며 법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런 최지태의 말을 최현준은 그런 경험조차 없는 그가 던지는 값싼 동정심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최지태는 최현준의 어머니 역시 노점상이었다며 그런 경험조차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그를 오히려 비판한다. 신준영은 과거 노을의 아버지 뺑소니 사건 수사를 덮으라는 최현준의 명령을 불복해 불이익을 받은 최변호사(류승수)를 찾아가 그 과거의 진실을 다시 밝히려고 한다.

 

최지태와 신준영이 최현준과 맞서는 이유는 노을에 대한 애틋한마음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사랑이면서 연민이면서 동시에 동정이다. 그녀의 처절한 아픔과 고통을 도무지 저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최소한의 염치 있는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본래 하려던 이야기가 바로 이런 염치에 대한 것이란 걸 염두에 두고 바라보면 <함부로 애틋하게>가 왜 전형적인 신파 멜로의 틀과 상투적 설정들을 가져왔을까 하는 것이 일면 이해되기도 한다. 신파 멜로의 틀이란 어찌 보면 기성세대들의 사고관이다. 기성세대가 어떤 아픔과 고통을 주고 그것에 저항하기보다는 내면화할 때 신파 멜로의 틀이 생겨난다. 고부갈등은 대표적이다. 그러니 이 기성세대의 사고관을 대변하는 전형적 신파 멜로의 틀을 가져오되 그것을 내재화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뒤집어 적극적으로 청춘들이 항변하고 저항하는 이야기를 담는 건 꽤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까.

 

물론 <함부로 애틋하게>의 이런 전략은 결과적으로 보면 실패했다. 그것은 요즘의 시청자들이 너무 많은 드라마들을 접하고 있고 그래서 좀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간과했기 때문이다.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뒤에 숨겨놓는 전략은 그래서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도 중반 이후를 통해 드러난 <함부로 애틋하게>가 본래 하려던 이야기는 나름의 재미와 가치를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함부로 무치한사회에 대한 애틋한저항이다

반인반수 영웅으로 재탄생된 이승기의 구미호

 

왜 <구가의 서>가 다루는 우리네 민초들의 영웅은 반인반수로 태어났을까. 이승기에 의해 재탄생된 구미호는 우리가 <전설의 고향>에서 보던 “서방님 하루만 더 참았어도...”하며 원망의 눈길을 보내던 그 구미호가 아니다. 우리네 전설에서 구미호라는 존재가 한이 내면화된 민초들의 억압에서 탄생한 존재라면, <구가의 서>의 반인반수 최강치(이승기)는 안으로 꼭꼭 숨겨두는 한보다는 겉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에서 탄생한 존재다.

 

'구가의 서'(사진출처:MBC)

확실히 지금은 조선시대의 수동적인 구미호의 신파가 감흥을 잃은 시대다. 아마도 70년대 가부장적인 가족체계 내에서라면 이른바 고부갈등과 시집살이에 꾹꾹 눌려진 억압이 구미호의 신파적인 변신만으로도 눈물로 풀어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라진 시대는 달라진 구미호를 요구한다. 최강치가 그려내는 구미호 이야기는 그래서 신파가 아니라 활극에 가깝고, 내면화된 욕망을 풀어내는 공포가 아니라 좀 더 겉으로 드러내는 판타지에 가깝다.

 

“다 죽여버릴거야!”라고 외치는 분노의 최강치는 그래서 그 최대의 적이 바로 자신이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도무지 그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지만, 바로 그런 엄청난 반수의 힘은 어느 쪽으로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마치 핵을 가지고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최강치는 지금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거북선을 만들려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유동근)과 백년객관을 빼앗고 왜구들과도 결탁해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희대의 간웅 조관웅(이성재)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되고 있는 존재다.

 

조선시대의 구미호 전설을 재해석하고 있지만 <구가의 서>는 그래서 무수한 현대의 영웅담과 판타지물의 흔적들이 들어있다. 분노하면 반수로 변신해 자신도 모르게 모든 적을 살상하는 그 모습은 헐크를 닮았고, 다른 존재로서의 외로운 영웅의 모습은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을 닮았으며, 영웅의 인간적인 고뇌는 배트맨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전라도는 배트맨의 고담시처럼 고립된 인상이 짙고, 그걸 장악하는 조관웅은 고담시나 뉴욕을 꿀꺽 삼키기 위해 테러를 일삼는 악당을 닮았다.

 

물론 여기에는 영웅담 이외에 판타지물의 흔적도 담겨 있다. 지리산을 지키는 신수 구월령(최진혁)과 소정법사(김희원)는 <반지의 제왕>의 요정과 마법사를 떠올리게 하고, 담여울(수지)과 최강치의 관계 설정은 일본 만화 <이누야사>를 닮았다. <구가의 서>는 이처럼 그간 <전설의 고향>이 다루던 전통적인 구미호와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다. 우리만의 특수성을 가진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전 세계 보편적인 변신 캐릭터들(이를테면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에서 현대적인 슈퍼히어로에 이르는)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달라진 구미호 최강치는 민초들에게 어떤 영웅일까. 과거의 구미호 텍스트들은 구미호보다 더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으로 당대의 신분구조가 주는 억압을 해체시켰다. 양반과 상놈의 신분구조는 인간과 구미호로 치환되었고, 구미호는 공포의 존재가 되어 인간을 깨우치는 이야기로 그려진다. 2000년대가 넘어 재탄생된 구미호 이야기들은(이를 테면 <여우누이뎐>같은) 구미호보다 심지어 더 공포스런 인간들을 비판한다. <구가의 서>가 그리는 구미호도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인간이지만 반인반수보다 못한 조관웅이 등장한다.

 

하지만 최강치라는 새로운 영웅이 하려는 것은 조관웅을 죽이는 사적인 복수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굳이 등장한 이유다. 이 반인반수의 영웅은 임진왜란과 무적의 이순신이라는 존재 옆에 생겨난 판타지다. 그런 점에서 <구가의 서>의 구미호는 사회적 억압이 만들어낸 공포의 캐릭터가 아니라, 사회적 분노가 만들어낸 영웅에 가깝다. 권세에 기대 뭐든 갖고 싶은 것을 취하려는 조관웅은 그래서 사회적 분노를 일으키는 공공의 적이 된다.

 

최강치라는 새로운 구미호는 현대인들의 분노가 응축되어 만들어진 캐릭터다. 분노에 의해 만들어진 그의 강력한 힘은 이미 신분체계의 벽을 넘어선다. 하지만 괴물과 싸우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는 일이다. 최강치에게 남겨진 문제는 그래서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된다. 현대인들이 갖고 살아가는 분노가 그러한 것처럼.

<마의>와 <야왕>, 뒤바뀐 남자 캐릭터 왜?

 

<마의>에서 백광현(조승우)을 보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하고 노래 부를 법한 캔디 캐릭터다. 어린 시절 버려져 마의로서 자라오지만 그가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주변에 많은 인물들이 그를 도와주고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백광현은 여복(女福)을 타고 난 인물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인들이 백광현 바라기일 정도다.

 

'야왕(사진출처:SBS)'과 '마의'(사진출처:MBC)

어린 시절부터 백광현을 그리워했던 강지녕(이요원)은 물론이고, 숙휘공주(김소은) 역시 그에게 연심을 품고 뒤에서 모르게 그를 돕는다. 그로 인해서 병을 고친 서은서(조보아) 역시 마음 한 구석에 그를 품고 사라진 그를 찾아다닌다. 사암도인의 제자였던 소가영(염현경)은 연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늘 백광현 옆에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인물이다. 즉 <마의>는 백광현이라는 남자 캔디 주변에 그를 사랑하거나 돕는 여성들이 배치된 드라마다.

 

이렇게 된 것은 드라마의 구조상 고난에 빠진 주인공과 그를 돕는 인물들을 병치함으로써 드라마가 균형을 잡히게 하기 위함이지만, 또한 달라진 남녀 관계의 세태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고 활동도 많아진 여성들과 상대적으로 위축된 남성들은 그 남녀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주도적인 여성과 어딘지 소극적인 남성. 한 때는 이것이 <대장금> 같은 여성 영웅의 성장과정을 공감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마의>의 남자 캔디 백광현은 그 역전된 남녀 관계가 점점 고착화되어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마의>의 경쟁작으로 등장한 <야왕> 역시 역전된 남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야왕>은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주다해(수애)와 그를 몸 바쳐 뒷바라지 하지만 버림 받고 복수를 꿈꾸는 하류(권상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같은 고아원에서 자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주다해를 위해 하류는 아낌없이 모든 걸 주는 인물이다. 주다해가 자신을 어린 시절부터 괴롭혀온 양아버지를 우발적으로 살해했을 때 그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려하기도 하고, 그녀의 학비를 벌기 위해 호스트바에서 몸을 팔기도 하는 인물이 바로 하류다.

 

이런 인물들을 우리는 70년대 전형적인 신파극 속에서 본 적이 있다. 남편 뒷바라지하기 위해 몸을 바치지만 결국은 남편에게 버림받는 그런 여성상. 헌신적인 여성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전형적인 신파극 속의 인물들 말이다. 78년에 김수현 작가에 의해 빛을 본 <청춘의 덫>은 99년에 다시 만들어지면서 심은하의 그 유명한 대사 “당신 부숴버릴거야!”로 우리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런 여성 신파를 뒤집어 놓은 <야왕>의 하류라는 캐릭터 역시 역전된 남녀 관계의 일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야왕>에서 주다해가 끝없는 욕망의 질주를 하는 능동적인 여성이라면, 하류는 그녀에게 종속된 남성이다. 과거 여성 신파극에서 그 여성이 남성에게 복수를 감행한 것처럼, 이제 하류는 주다해를 향한 헌신이 복수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물론 이런 남녀 관계의 역전은 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여성 시청층에 주도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시각이 그 안에는 들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걸음 더 나간 듯한 남자 캔디, 남자 신파는 확실히 작금의 남성들이 처한 ‘위기 상황’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지금은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시대가 아닌가. 남성성의 시대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여성성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남성들이 점점 사회적 약자가 되고 있다는 얘기는 그래서 앞으로도 많은 드라마를 통해서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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