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나영희, 가진 자들의 착각 혹은 오만

“너였구나. 우리 도경이 집 나가게 한 게 너였어. 서지안 네가 감히 내 뒤통수를 쳤구나. 네 엄마 아버지로 부족해서 너까지. 배포가 아주 크구나 너. 그 엄마에 그 딸이야. 들어와서 팔자 바꾸려다 안되니까 다른 길을 찾은 거니? 도경이한테 붙으면 해성가에 다시 들어올 줄 알았어? 이번엔 엄마 아버지까지 같이 머리 모아 기획했니? 서태수가 네 연락처 안 가르쳐줄 때 수상했어. 우리 도경이 어딨어. 경고하는데 그 입에서 또 한 번 한 마디라도 거짓말 나오면 가만 안둔다 지안아.”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인생>에서 해성가 사모님 노명희(나영희)는 다짜고짜 서지안(신혜선)을 찾아와 집 나간 아들 최도경(박시후)이 너 때문이 아니냐며 몰아세운다. 그런데 그 말들을 들여다보면 가진 자들이 가진 착각과 오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의 아들 최도경이 자신들의 그 숨 막히는 세계로부터 탈출해 나왔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한다. 대신 서지안의 꼬드김에 넘어갔다고 착각하는 것.

착각과 오만은 그게 끝이 아니다. ‘감히’라는 표현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이 뼛속까지 들어차 있다. 그래서 서민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는 말 속에는 핏줄에 따라 그 사람도 다르다는 그의 이상한 생각이 담겨 있다. 이 정도면 중증이다. 돈 좀 있다고, 그래서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이상한 생각.

그래서 노명희는 해성가 같은 재벌가라고 하면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 안달난 줄 안다. 그래서 서지안을 몰아세운다. 마치 자신의 생각이 맞지 않냐고 강변하듯. “언제부터였니 니들. 네가 아닌 거 알고 나서지? 그래서 너 도경이한테 먼저 말했지? 도경이 욕심나서. 도경이를 가지면 해성을 가질 수 있을 줄 알고.”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이 정도면 노명희는 ‘재벌가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 같다. 

이어지는 서지안의 일갈은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압축해서 담아놓는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는 최도경 씨하고 아무 사이 아닙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 전혀 없습니다. 최도경 씨 이용해서 얻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특히 해성가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 전혀 없습니다. 전. 제가 싫거든요.”

서지안의 이 한 마디는 이른바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전형적인 틀을 깨는 발언이고, 오히려 ‘재벌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노명희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는 말이다. 정신 좀 차리라는 것.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지만, 그 재벌가를 끔찍하게 경험한 서지안에게는 그 곳으로 돌아간다는 건 지옥 같은 일이다. 게다가 모든 걸 포기하려 했다 다시 살아난 그는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일궈나가는 길이 진짜 잘 사는 길이고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걸 알고 있다. 

노명희가 살아가는 삶이 ‘황금’으로 둘러쳐진 화려한 삶일지라도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지만, 집을 나와 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조금씩 제 인생의 빛을 찾아가는 서지안의 삶이 훨씬 행복해보이는 이유다. 그러고 보면 서지안을 걱정해 전화한 아버지가 한 말이 유독 큰 울림으로 남는다. “네가 어떤 아이였는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그것만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네 길의 불빛은 너만 비출 수 있는 거야 결국.”(사진:KBS)

‘황금빛’ 천호진, 죄인이 된 흙수저 아버지의 현실

“나 힘들어서 그래. 비참해서 그래.” 그 누구에게도 꺼내놓지 못했던 자신의 심경을 서태수(천호진)는 친구에게 털어놨다. 그토록 많은 일들이 그에게 벌어졌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만 꾹꾹 눌러 담던 그였다. 아마도 그 비참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건 친구가 유일했을 게다. 세상 어느 아버지가 ‘힘들다’는 말을 가족 앞에 함부로 털어놓을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이 모든 사단을 만든 건 두 엄마들이다. 서지수(서은수)가 말했듯, 자신 대신 딸을 바꿔치기해 서지안(신혜선)을 재벌가로 보낸 양미정(김혜옥)의 잘못이 크지만, 그 이전에 그의 어린 시절 자신을 잃어버린 노명희(나영희)의 잘못이 더 크다.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일들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니.

그래서 이 재벌가와 서민가의 부모들은 모두 딸들을 잃었다. 서지안은 모든 걸 포기해버렸다. 그토록 자존심 강하던 그는 자신이 그 순간 배경에 눈이 멀어 오래도록 자신을 키워준 부모를 떠나는 선택을 했다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부모를 떠난 그는 그런 자신을 죽이고 싶었고, 죽지 못하자 자신에게 벌을 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서지수도 부모들을 떠났다. 자신을 친딸처럼 키워줬던 서태수와 양미정을 떠나 친부모의 집으로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그가 친부모의 가족이 된 건 아니었다. 그 집에서 서지수는 완전한 이방인으로서 그들을 대했다. 그들과 섞이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그는 지금 친부모에게 속 깊숙이 사라지지 않는 분노를 자기 방식으로 쏟아내는 중이다. 

두 엄마들이 만들어낸 지옥 같은 현실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안쓰럽고 불쌍한 인물은 다름 아닌 서지안의 아버지 서태수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죄 없는 가장일 뿐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때는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가족들을 든든히 지지하는 아버지였지만, 사업이 망한 후 그걸 숨기며 지방을 전전하면서 공사장 인부로 일하던 그였다. 

어린 서지수를 거둔 것도 잃은 자식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자식으로 거둬 친 딸처럼 키워냈다.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서지수는 자신이 서태수의 딸이라는 사실을 의심해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살뜰히 서지수를 아껴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업이 기울고, 현실적으로 집안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하나는 이 아버지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흙수저’라는 딱지가 붙고, 딸 서지안이 그토록 총명하고 능력이 있어도 죽어라 노력한 정규직을 낙하산으로 들어온 금수저가 떡 하니 차지해버리는 세상이다. 그래도 가지 말라고 딸을 붙잡았지만 결국 떠나버린 서지안을 보며 그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아들 서지태(이태성)가 결혼 따위는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형편이 되지 않는 집안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 현실에 절망했을 게다. 사업이 망하고 하루아침에 무능한 아버지라는 낙인이 찍혀 자식들 앞길을 열어주지 못하는 가장의 답답함은 자신이 공사판에서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을 해도 가시지 않았을 게다.

그래서 아내 양미정이 딸을 바꿔치기하는 그런 범죄까지 저지르게 된 상황 또한 서태수라는 가장은 온전히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서지안을 찾기 위해 길거리를 전전하고, 서지안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서지수를 찾아와 기껏 들은 얘기가 “때렸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서지안도 서지수도 모두 그에게는 딸이기에 그 상처들을 이 아버지는 모두 받아내는 모습이다.

서태수라는 아버지를 보면 우리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가족드라마들은 언젠가부터 달라진 아버지상을 보여 왔다. 전작이었던 <아버지가 이상해>의 변한수를 떠올려보라. 그 역시 아픔을 속으로 삭이고 가족에 헌신하며 기꺼이 가족을 위해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는 아버지였다. 

<황금빛 내 인생>의 아버지 서태수의 처지는 더 참담하고 비참하다. 그가 친구의 전화 한 통에 힘들고 비참함을 토로하는 대목이 특히 아프게 다가오는 건 이 가장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상조차 친구 이외에는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과연 가진 것 없다는 것이 이토록 큰 죄가 되는 걸까. 도대체 이 아버지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사진:KBS)

‘황금빛 내 인생’,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이상하게 만들었을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는 두 명의 엄마가 나온다. 한 명은 중소기업을 하며 잘 나가던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근근이 살아가는 서민층 엄마 양미정(김혜옥)이고, 다른 한 명은 재벌가 사모님인 노명희(나영희)다. 그런데 이 두 엄마들이 모두 이상하다. 양미정은 나타난 서지수(서은수)의 친모인 노명희에게 거짓으로 서지안(신혜선)이 당신 딸이라고 말한다. 너무나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지만 집안 환경 때문에 번번이 좌절하는 자신의 딸이 불쌍해서란다. 

'황금빛 내인생(사진출처:KBS)'

하지만 그건 엄연한 범죄다. 서지안에게도 할 짓이 아니고 진짜 재벌가 딸인 서지수에게도 못할 짓이다. 게다가 이렇게 비뚤어진 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녀는 남편 서태수(천호진)의 가슴에도 대못을 박았다. 결국 그의 무능함 때문에 이 모든 거짓들이 꾸며지게 된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모성애 때문에 자신이 범죄자가 돼서라도 딸을 재벌가에 보내고 싶었다지만 사실 상식적인 선택은 아니다. 

그런데 또 다른 엄마인 노명희 역시 정상은 아니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겪었을 고통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 아이에게 그녀는 과거를 지우라고 한다. 이른바 품위와 교양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런 모습이 품위 있고 교양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서지안에게 천만 원을 주고 하루에 다 쓰라는 숙제를 내주지만, 그렇게 돈 잘 쓰는 일이 품위 있는 그녀들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노명희는 딸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딸을 잃었던 그 기억을 떨쳐내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잃어버렸던 딸을 다시 찾은 것 그 자체로 행복해하기는커녕, 이런 일이 외부의 가십이 될 것을 더 걱정한다. 오히려 자신이 품위라 생각하는 그 따위 것들을 지키기 위해 딸의 소중했을 과거 따위는 내다 버리라고 한다. 역시 제아무리 모성애 운운해도 이해안되는 엄마다. 

<황금빛 내 인생>이 다루고 있는 건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사회를 가족의 풍경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모두 이 수저 계급의 사회 속에서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가를 드러낸다. 그런데 부모만 이상한 게 아니다. 자식 또한 아버지가 부유하지 못해 결혼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흙수저 가족의 장남 서지태(이태성)가 그 인물이다. 

서지태는 애초부터 결혼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연애만 추구했지만 오래 사귄 이수아(박주희)가 결혼을 이야기하자 결국 이별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파한다. 친구들과 만난 술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집안 처지가 그들보다 못하다는 점을 들어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것. 하지만 그 정도의 나이에 직장까지 갖고 있고 그래도 유년시절 아버지 덕분에 잘 살았던 그의 처지는 그리 나쁜 게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아버지 탓만 하고 있을까. 

물론 <황금빛 내 인생>이 건드리고 있는 건 이 ‘이상한 사회’ 그 자체다. 태생적으로 모든 게 결정되고, 죽어라 정규직이 되려 노력해도 결국 낙하산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그 낙하산을 밀어내는 건 더 높은데서 내려오는 낙하산인 사회.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자식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 그래서 자식이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보다는 부모 탓을 하는 이상한 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어떤 불쾌함과 불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현실의 비상식 때문일까 아니면 드라마가 이를 상식적으로 그리지 않아서일까. 엄마들은 이상하고 자식들은 부모 탓만 하는 걸 보며 느끼는 불쾌함과 불편함. 그것은 드라마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네 현실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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