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은 외면하는데, 지상파에 쏟아지는 멜로물들

새로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는 지상파 3사 드라마 대결에서 기선을 잡았다. 첫 방 시청률 7.1%(닐슨 코리아). MBC에서 새로 시작한 <사생결단 로맨스>의 4.1%보다 앞섰고 이미 방영되고 있던 KBS <너도 인간이니?>의 5.6%도 앞질렀다. 

그런데 어쩐지 기선을 잡았다 해도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는 헛헛함 같은 게 느껴진다. 언제부터 지상파 드라마들이 이렇게 소소해졌나 싶어서다. 새로 시작한 드라마들이 모두 평범한 멜로물인데다, 그 이야기 구조도 새롭다 보기에는 너무 뻔해 보인다. 

고교시절 이제 막 좋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할 즈음, 버스 사고로 코마 상태에 빠져 13년이나 누워 있던 우서리(신혜선). 그 버스에서 자신이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라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거라 자책하며 그 13년을 우서리를 바라보며 살아왔던 공우진(양세종). 우서리가 깨어나면서 시작되는 멜로다. 

‘사소한 일들’이 만들어내는 큰 변화를 말하는 이 드라마는, 그로 인해 벌어지는 불행과 행복을 담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는 그 이유도 다소 사소한 일들로 비롯된다. 우서리가 외삼촌(이승준)의 집인 줄 알고 찾아간 집에, 공우진이 조카인 유찬(안효섭)을 돌보러 찾아왔다 만나게 되는 것. 어찌 된 일인지 외삼촌은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고 우서리는 의지할 데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건 아마도 불행한 사고 이후 모든 걸 잃어버렸던 우서리와 공우진이 다시 만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일 게다. 그 멜로적 구도나 ‘불행 끝에도 또 다른 행복이 있다’는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충분히 이해되는 바이지만, 그것이 그다지 새롭거나 무게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 우서리와 공우진이라는 캐릭터와 그들의 멜로구도만이 있을 뿐.

이런 사정은 새로 시작한 MBC <사생결단 로맨스>도 마찬가지다. 아예 제목에 달아놓은 것처럼 이 드라마는 본격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추구한다. 여기도 빠지지 않는 건 독특한 캐릭터다. 호르몬에 미친 내분비내과 의사 주인아(이시영)와 승부욕의 화신 한승주(지현우)와 만나 만들어내는 밀고 당기는 로맨틱 코미디.

대작이 아니라도 기대작은 되어야 채널이 집중될 것인데,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은 너무 소소해졌다. 월화수목을 통틀어 10% 시청률을 넘기지 못하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종영한 SBS <훈남정음>은 2% 대의 수목극 사상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소소한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물들이다. 

이미 시청자들은 지상파 멜로물에 대해 외면하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상파들은 계속 멜로물들만 세워두고 있다. 좋은 작가, 작품들이 비지상파로 빠져나가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지상파의 기획이 예전만 하지 못해서일까.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가 지상파 주중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곱씹어봐야 할 이유다.(사진:SBS)

‘황금빛 내 인생’ 천호진과 김병기, 두 가장의 너무 다른 행보

슬퍼도 너무 슬픈 가장의 희생이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서태수(천호진)는 우리 시대 희생하는 가장의 전형을 보여준다. 너무 가시밭길만이 이어져 심지어 시청자들로부터 원성을 듣기까지 하는 이 가장은 한때 상상암을 진짜인 줄 알고 오히려 ‘축복’이라 여긴 바 있다. 하지만 가족의 남다른 사랑으로 이제 조금씩 다시 살고픈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차에 그것이 진짜 암이었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삶이 너무 힘들어 암 통보조차 ‘축복’이라며 웃음을 짓던 이 아픈 가장은 그것이 진짜 암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하늘을 원망했다. 하지만 이 가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끝까지 챙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다. 암 진단으로 받은 보험금을 딸 지안(신혜선)의 핀란드 유학비로 건네주고, 아픈 와중에도 서지안과 서지수를 걱정했다. 

서지수(서은수)의 친부모인 노명희(나영희)와 최재성(전노민)이 노진희(전수경) 부부에 의해 주주총회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하자 중소주주들의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이 노진희의 차명계좌와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다닌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서지안의 물음에 서태수는 그것이 자신의 딸 서지수의 친부모 일이고 또 딸 서지안이 사랑하는 사람 최도경(박시후)의 일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주주총회에서 위기에 처한 노명희와 최재성 그리고 최도경은 서태수의 결정적인 증거로 상황을 반전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 너무 가시밭길의 연속이기 때문에 서태수의 희생을 바라보는 것이 힘겹다는 시청자들의 원성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가족을 위한 가장의 희생을 굳이 집어넣은 건, 어떤 면에서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해성그룹 노양호(김병기) 회장과의 대비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노양호 회장 역시 여러 차례 의식을 잃는 위기를 겪지만 깨어날 때마다 각성은커녕 자신이 쥐고 있는 기득권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인다.

노양호 회장은 해성그룹을 자신이 홀로 일궈왔다며 딸 노진희가 모든 걸 가로채려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하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노진희의 그건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틀린 건 아니다. 창업자의 가족승계가 아닌 전문경영인의 시대가 지금의 변화된 기업문화의 바람직한 양태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갖고 있는 두 인물의 이토록 다른 양상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죽음은 금수저든 흙수저든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인간의 운명이다. 그런데 그걸 접한 이들의 반응은 너무나 다르다. 없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을 챙기려 한다. 하지만 가진 이들은 가족보다는 자신을 챙기려 한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달라서 달라지는 반응일 수밖에 없다. 

서태수와 노양호 회장의 서로 다른 가장의 모습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느 것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인가를 생각해보면 서태수의 희생이 주는 느낌은 숭고함까지 갖게 만든다. 하지만 그 삶이 너무 아프고 슬퍼서일까. 시청자들은 이런 선택을 하는 서태수가 어떻게든 살아남아 가족들과의 행복을 함께 누리길 바란다. 비록 기적 같은 일이 필요할지라도.(사진:KBS)

‘황금빛 내 인생’, 어떤 가족의 삶이 진정한 ‘황금빛’인가

이건 형제의 난이 아니라 자매의 난이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해성그룹에 몰아닥친 위기는 노명희(나영희)의 동생인 노진희(전수경)와 그의 남편 정명수(유하복)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 언론에 노명희가 과거 외도를 하다 딸을 잃어버렸고 나중에 딸을 찾았으나 바꿔치기가 됐다는 사실을 사진까지 포함해 내보내게 한 노진희의 진짜 목적은 아버지 노양호(김병기) 회장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마침 충격으로 쓰러진 노양호가 자신의 굳건함을 알리며 이사회에 참석했지만 이미 이사진들 대부분은 노진희 편으로 돌아서 있었다. 결국 노양호 대표이사의 퇴진이 이사회 투표로 결정되어버리고, 이어 노명희의 이사직까지 박탈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노양호는 무너져버린다. 이 자매의 난으로 인해 이제 노명희네 가족은 모든 걸 잃게 될 상황에 놓이게 됐다.

<황금빛 내 인생>이 가족드라마이면서 굳이 해성그룹 안에서 벌어지는 자매의 난을 담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건 ‘황금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듯한 해성가의 실상이 사실은 ‘핏빛’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자식이 부모를 밀어내고, 동생이 언니의 모든 걸 빼앗는다. 가족이라는 틀로 묶여져 있지만 이 가족은 모래알이다. 이런 상황을 일찌감치 보여준 건 노양호와 노명희였다. 그들은 가족이면서도 자식들에게 해서는 안될 일들을 자행했고, 그것이 부메랑처럼 자신들에게도 되돌아왔던 것.

반면 노진희의 계략 속에서 벌어진 자매의 난에 의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게 된 서태수네 가족의 모습은 정반대다. 한 때 모든 걸 포기하려 했으나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서태수(천호진)는 이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한다. 과거 중소기업 대표로서 했던 경험들을 되살려 그는 기자를 찾아내 그가 노진희의 사주를 받았다는 증거를 확보해 최재성(전노민)에게 전한다. 결국 그 증거를 통해 서지안(신혜선)과 서지수(서은수) 두 딸의 신변이 노출되는 걸 막아내게 된 것.

이렇게 문제를 해결한 서태수네 집안은 가족들이 경사가 있을 때마다 갔던 불고기집에서 화기애애한 한 끼를 나눈다. 딸을 바꿔치기 하는 잘못을 저지른 양미정(김혜옥)에게 “가족이니까 서로 덮어주는 것”이라고 했던 서태수다. 그가 불고기집 앞에서 달려오는 두 딸을 향해 예전처럼 두 팔을 활짝 벌려 맞아주는 장면은 그래서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제 대장정을 걸어온 드라마가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 메시지가 분명해지고 있다. 드라마의 초반에서는 황금빛 세상에 대한 금수저 흙수저의 현실이 등장하고, 중반에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홀로 굳건히 서기보다는 서로를 탓하며 상처를 줬던 과거를 넘어서 새로이 저마다 홀로서기를 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마지막에 이르러 <황금빛 내 인생>은 어떤 가족의 삶이 진정한 ‘황금빛’인가를 제시한다. 

그것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홀로 서서 자신이 하고픈 일들을 해가는 것이고 또한 그렇게 독립적인 구성원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가진 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때론 미래까지 결정되는 굴곡진 우리네 현실에서는 결코 쉽지만은 일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에둘러 말해주고 있다.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족끼리 물고 뜯는 그 삶이 무슨 행복이 있겠는가. 조금 가진 게 없어도 한 끼를 같이 하며 웃을 수 있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황금빛’이 아닐까. <황금빛 내 인생>은 그 역설을 말하고 있다.(사진:KBS)

‘황금빛’ 천호진과 신혜선의 공감이 주는 남다른 울림

“마지막으로 일주일만 만나기로 했어요.”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딸 서지안(신혜선)은 아버지 서태수(천호진)에게 그렇게 말한다. 애초에 서태수는 지안이 자신에게 했던 말과는 달리 최도경(박시후)과 만나고 있는 것을 보고 걱정되는 마음에 딸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딸의 그 말 한 마디에 이 아버지는 말문이 턱 막혀버린다. ‘마지막’이란 말이 너무나 자신의 가슴에 콕콕 박히기 때문이다. 

서태수가 그 말을 남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자신 또한 그 ‘마지막’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해 생겨난 상상에 불과했지만, 그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을 준비했다. 너무나 힘겨운 삶이었기 때문에 ‘마지막’이라는 그 생각이 오히려 ‘축복’처럼 느껴져 허허 웃었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서태수는 딸 서지안이 말하는 ‘마지막’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지막’을 상정해놓고 서로 웃으며 지내고 있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서 찾아온 서태수는 문득 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 사랑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다. 너무 다른 집안의 차이 때문에 결코 이뤄지기 어려운 딸의 사랑이 자신의 잘못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서태수에게 딸은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며 손을 내젓는다. 자신은 괜찮다고 애써 말한다. 

딸 서지안이 서태수를 이해하게 된 것 역시 자신 또한 죽음까지 생각한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자신이 재벌가의 친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쫓겨난 서지안은 그제서야 재벌가의 딸인 줄 알고 선선이 집을 나서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죽음을 결심하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겨우 그 곳을 지나는 이에 의해 살게 되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제 자신의 삶을 찾아가며 안정을 되찾게 된 서지안이 외면하고 있던 아버지가 사실은 극단적인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죽음을 상상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오열하게 된 건, 바로 자신이 겪었던 그 상황을 통해 아버지의 상황을 더 절실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음을 오히려 축복처럼 받아들이게 됐을까. 

이런 동병상련의 마음은 <황금빛 내 인생>의 인물들이 저마다 제 자리를 찾아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평범한 서민출신이지만 노명희(나영희)와 결혼해 해성그룹 부회장으로 살아가는 최재성(전노민)이 딸 서지수(서은수)를 돕는 마음이 되는 게 바로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재벌가의 삶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사랑마저 희생해야 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통해 알고 있는 최재성은 그래서 서지수에게 선우혁(이태환)과의 연애를 허락하고 노명희에게 사직서를 내버린다.

결국 누군가를 진짜 이해한다는 건 타인의 상황을 고스란히 공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일 게다.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그래서 서로의 입장을 똑같이 바라보는 것으로서 풀어질 수 있는 일이다.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이 그래서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는 건 바로 그 입장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깨닫게 되는 타인에 대한 이해다. 

이 흐름 안에서 최도경과 서지안이 맞닥뜨리는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현명한 방식들이 나타난다. 갑자기 나타나 결혼을 제안하는 노명희 앞에서 두 사람은 잠시 흔들리지만, 그것이 서로를 위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단호히 거부한다. 최도경은 이미 홀로서기를 해나가며 갖게 되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일 수 있다는 걸 자신의 홀로서기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결혼으로 서지안의 발목을 잡는 일은 그에게 결코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노명희에게 이를 거부하는 뜻을 전한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관계의 그물망에 허우적대던 인물들이 저마다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지만 그러기 위해서 서로의 입장을 체험을 통해 이해하고 공감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인생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인생도 중요하다. 나만의 인생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타인 또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어야 결국 진정한 자신의 행복 또한 찾아질 수 있다고 <황금빛 내 인생>은 말하고 있다.(사진:KBS)

‘황금빛 내 인생’ 나영희, 재벌가라도 이런 시어머니라면

제아무리 재벌가라고 해도 저런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한다면 들어가고 싶을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신혜선)네 집안에 불어닥친 불행의 시작은 갑자기 해성그룹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부터다. 물론 아버지 서태수(천호진)는 사업 실패 후 그 사실을 숨긴 채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왔고, 첫째 서지태(이태성)는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 자체를 꿈꾸지 않았으며, 서지안은 어렵게 인턴으로 해성그룹에 들어가 일하고 나서도 낙하산으로 뚝 떨어진 금수저 친구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상처를 입었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당신 딸이 내 딸이라고 나타난 해성그룹 사모님 노명희(나영희)의 등장 앞에 이 집안은 균열을 일으킨다. 엄마의 거짓말 때문에 친 딸인 줄 알고 들어갔던 서지안은 진실이 밝혀지자마자 그 집안에서 쫓겨나고 집으로도 돌아가지 못한다. 친 딸로 다시 들어간 서지수는 가족이 아닌 사관학교 같은 그 집안의 공기를 적응하지 못한다. 겨우 자신이 사랑하던 선우혁(이태환)과 좋은 관계가 되었지만 그 집안이 오히려 발목이 되어 그들은 헤어질 위기에 처한다. 진실이 밝혀진 후 지안, 지수의 엄마인 양미정(김혜옥)은 두 딸 모두로부터 버려지다시피 했고, 아버지 서태수(천호진)는 차라리 죽음이 축복이라 받아들이는 힘겨운 현실 앞에 서게 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중반 이후부터는 진실이 밝혀진 이후에 진정한 행복을 찾아 해성가로부터 탈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지안은 쫓겨나 극단의 선택까지 가게 되지만 겨우 제 자리로 돌아와 자신이 좋아하던 것들을 하며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게 되었다. 해성가의 후계자인 최도경(박시후) 역시 해성가로부터 빈털터리로 쫓겨나 홀로서기를 하고 있고, 하다못해 막내 딸인 최서현(이다인)도 서지호(신현수)와 만나 함께 창업을 해가며 제 손으로 일해 돈을 버는 그 경험들을 해나간다. 

흔히들 재벌가 하면 누구나 신데렐라를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신데렐라는 없다’고 못을 박는다. 그래서 최도경의 구애를 오히려 서지안은 거부한다. 그는 노명희 앞에서 당당히 “제가 싫거든요”라고 말했듯 최도경을 사랑하지만 그 집안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선을 긋는다. 그건 불행한 삶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건 서지수를 사랑하지만 그가 해성가의 딸이라는 걸 알고는 이별을 통보하는 선우혁의 이야기에서도 반복된다. 이들은 모두 재벌가가 싫단다. 그런 삶은 불행한 삶이라고.

그것이 불행이라는 걸 확증시키는 인물은 역시 노명희라는 인물 그 자체다. 그는 해성가의 딸로 자라나 최재성(전노민)과 결혼했고 그래서 지금도 실권을 쥐고 있지만 행복이 없다. 최재성이 말하듯 노명희는 가족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줄 사람이 없다. 스스로는 그것이 약한 자들의 논리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외로움을 가리려는 변명처럼 보인다. 최재성은 가난하게 자라나 재벌가의 딸인 노명희와 결혼했지만 해성가로 들어온 그 삶이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일인지 <황금빛 내 인생>에 ‘황금빛’처럼 보이는 재벌가의 모습은 불행 그 자체로 그려진다. 

물론 극화된 이야기일 것이지만, <황금빛 내 인생>이 바라보는 재벌가에 대한 양면은 최근 대중들이 바라보는 재벌가에 대한 양가감정을 투영해내고 있다. 즉 많이 가진 그 화려함에 눈이 멀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그것이 빛을 내는 이면에 놓여진 섬뜩한 돈의 논리들이 주는 진저리를 담아내고 있는 것. 제아무리 재벌가라고 해도 저런 시어머니 아니 어머니라면 그 누구라도 진력이 날 수밖에 없는 재벌가의 민낯을.(사진:KBS)

헛된 판타지보단 아픈 현실 공감...드라마가 달라졌다

슈퍼스타 프로야구 선수의 화려한 삶에서 1년 실형을 받고 감방생활을 하게 된 제혁(박해수)은 참고 참았던 속내를 털어냅니다. “세상에 나만큼 인생이 꼬인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제혁이 지내는 감방생활을 다루죠. 거기에 드라마가 전가의 보도처럼 다루던 판타지 따위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들은 보통 이하의 삶에 처해있기 때문에 굉장한 욕망을 판타지로 갖지 않습니다. 그저 좀 더 따끈한 물에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없다고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죠. 

사실은 재벌가의 딸이라는 ‘출생의 비밀’ 이야기를 듣고 덜컥 그 집으로 들어간 지안(신혜선)은 그게 지옥의 시작이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재벌가의 화려한 삶은 고사하고 실은 그것이 동생 지수(서은수)의 자리였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양가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리죠. 보통의 드라마, 그것도 주말극에서 ‘출생의 비밀’이라면 당연히 따라붙는 ‘신데렐라’ 이야기 따위가 이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는 없습니다. 지안은 이 지옥과 추락을 겪으며 자기 앞에 놓인 목재를 다듬고 가구를 만드는 일에서 오히려 더 큰 행복을 느낍니다. 가족의 포근함? 삶이 수저 색깔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 속에서 가족은 순간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의사 남편에 그럭저럭 잘 살아왔던 삶이었습니다. 치매를 앓아도 좋았던 기억이 있는 시어머니와 망나니 동생이라도 지지고 볶으며 살아주는 올케가 있어 그런대로 버텨낼 수 있는 삶이었죠. 그래서 이제는 남편의 은퇴에 맞춰 시골에 내려가 살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갑자기 말기암이랍니다. tvN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1996년도에 방영된 드라마지만 하필이면 지금 왜 리메이크된 것일까요. 그것은 헛된 판타지보다는 아픈 현실을 공감해내려는 시대적 정서가 바탕에 깔린 선택은 아니었을까요.

JTBC 새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드라마는 붕괴된 건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해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그들이 서로 만나 그 아픔을 보듬고 어루만지며 상처를 이겨내고 해결해가는 이야기죠. 거기에 막연한 판타지 같은 것들이 들어앉을 자리는 없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사랑도 그래서 대단한 삶의 욕망을 건드리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사랑’을 하는 것도 벅찬 그들에게는 그래서 ‘그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일조차 엄청난 사건이니 말이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방영되는 드라마들 중 다수가 ‘성장 곡선’을 그리는 막연한 판타지가 아닌 한껏 추락한 삶이 보통을 추구하는 현실 공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기획은 훨씬 전에 이뤄진 작품들이겠지만 이미 그 때부터 우리가 갖고 있는 현실정서는 그리 녹록치 않았던 게 틀림없죠. 그저 열심히 살아도 점점 추락하는 삶, 제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삶, 그러다 한 순간 아픈 병이 닥치고 사고로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삶. 그것이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라는 인식이 이들 드라마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헛된 환상의 이야기에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합니다.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저편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대신 망가진 삶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를 버텨내고 보듬고 위로하고 그저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가를 다루는 현실적인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합니다. 드라마 몇 편이 드러내는 이 같은 현실 정서는 그래서 못내 아픕니다. 우리는 성장을 꿈꾸는 게 아니라 ‘정상화’ 혹은 ‘그저 보통’을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과연 이 추락하는 삶에도 날개는 있을까요.(사진:tvN)

각자 서야 가족도 행복, ‘황금빛’의 새로운 가족 제안

“난 이 집 가장 졸업하겠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태수(천호진)는 아들 서지태(이태성)에게 그렇게 말했다. 과거 노모의 병환 때문에 아들에게 진 빚을 집 보증금을 빼서 갚겠다고도 했다. 집 나가서 어떻게 혼자 살 거냐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혼자서였다면 더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라고.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가장이었기 때문에 희생하며 살아왔다고.

서태수의 ‘가장 졸업’ 선언은 그간 겪은 일들로 인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결과였다. 사업을 망하기 전까지 그토록 노력해왔던 그의 삶들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망한 후 힘들었던 일들만 가장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가족들에게 그는 실망했다. “사업 망해서 지금까지 10년 동안 양미정 당신 나 한 번이라도 위로해준 적 있냐. 지태 지안이 지수 네들이 나 한 번이라도 안아준 적 있어?...그래. 나 못난 애비다. 무능한 아버지야. 서태수 너 인생 실패했다.”

서태수는 그래서 하나하나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지수(서은수)를 찾아가 그는 25년 전 그를 데려와 자식으로 키운 걸 사과했다. 부모의 사과. 그것은 더 이상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의미다. “네가 믿든 안 믿든 넌 항상 내 딸이었고 사랑했다. 하지만 훔친 딸이니까 내 딸이 아닌 거다.”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그는 그것이 허망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나이 들면 시골로 내려가 조촐하게 농사나 지으며 살아가겠다던 소박한 가장의 꿈은, 대학을 나와도 여전히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무너졌고, 부모가 금수저냐 흙수저냐에 따라 자식의 미래도 결정되는 현실 앞에서 흙수저 부모이기 때문에 부정당하는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그의 가장 졸업 선언이 공감 가는 이유다.

<황금빛 내 인생>은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는 수저 계급의 사회 속에서 가족이, 핏줄이 족쇄가 되어 개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 서태수가 느끼고 있는 절망감처럼, 재벌가의 딸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사실은 엄마의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고는 그 집에서 쫓겨나고 자신의 가족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서지안(신혜선)도 같은 절망감을 느낀다. 그래서 죽을 결심까지 하지만 친구 덕분에 돌아와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던 중 그는 새삼 부모 탓을 하며 희생을 감수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깨닫는다.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 것”이라는 하우스 메이트의 말 한 마디에 서지안은 문득 그간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떠올린다. 부모의 지원을 마치 당연히 해줘야 할 것처럼 여겼고 그래서 그것이 현실적으로 되지 않자 스스로 꿈을 접고 희생하는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건 부모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재벌가 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바로 그 집으로 들어가겠다 했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그는 새삼 깨닫는 중이다.

가족이 따뜻한 둥지가 아니라 족쇄가 되는 사정은 서지수가 들어간 재벌가 최도경(박시후)의 집도 마찬가지다. 재벌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서지안처럼 위장해 공식석상에 서야 하는 걸 거부한 서지수는 할아버지 노양호(김병기)의 냉혹한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네까짓 게” 자신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노양호는 “황금 물고 태어나면” 해야 할 것들이 있다며 서지수를 집밖에 내보내지 말라고 한다. 서지수는 이 재벌가의 핏줄에 황금빛 족쇄가 채워져 버린 셈이다. 

최도경(박시후) 역시 재벌가의 이미 정해진 삶으로서 결혼할 가문과 상대가 있었지만 서지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그걸 거부한다. 그 역시 이 재벌가의 핏줄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려 한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하는 삶을 통해 행복을 찾겠다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지금의 가족드라마들이 내세웠던 것과는 다른 가족상을 내세운다. 그것은 서로 핏줄로 얽혀 끈끈한 가족상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가족상이다. 부모든 자식이든 그리고 서민이든 재벌가든 가족이 핏줄이라는 이유로 족쇄가 되는 삶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서서 비로소 행복해질 때야말로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제시한다. 

김수현 작가의 2008년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는 엄마의 휴업 선언을 다룬 바 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가 지난 지금 <황금빛 내 인생>은 아빠의 가장 졸업 선언을 그리고 있다. 가족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부모와,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자신의 삶이 부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받아들이는 자식이라면 그 가족은 따뜻한 둥지가 아닌 서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닐까. 각자 삶은 각자 개척해야 비로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제안하는 새로운 가족상이다.(사진:KBS)

‘황금빛’,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까닭

가족은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인가. 지금껏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면, 지금 방영되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은 어딘가 수상하다.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가족의 양태는 결코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의 서민층 가족도, 또 돈 걱정 없는 재벌가 가족도 무엇 하나 따뜻하거나 부러워할만한 구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째서 <황금빛 내 인생>은 그간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왔던 그 가족의 면면을 완전히 뒤집어 보여주고 있는 걸까.

한 때는 잘 나가건 회사의 사장이었으나 부도를 맞고 전국의 건설현장 인부를 전전해온 서태수(천호진)는 그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숨겨왔던 마음의 응어리를 토해놓는다. 가족을 위해 뭐든 희생하며 살아왔던 그였지만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집 나간 딸 지안(신혜선)에게서 “가족이면 다 함께해야 하냐”는 독한 말을 듣고 그는 모든 걸 놓아버린다. 아들 지태(이태성)에게 안하던 화를 쏟아내는 그는 이제 가족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는 듯하다. 

왜 그렇지 않을까. 아내 양미정(김혜옥)이 그간 잘 지내왔던 시절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지금의 힘겨운 시기만을 얘기하는 것에 화가 나고, 서지안도 서지수도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그 시절을 마치 모두 잊은 듯 그를 대하는 모습에 울분이 터져 나온다. 마치 아버지의 무능 때문에 결혼은 결코 안하겠다 소리쳤던 지태의 외침 또한 그에게는 비수 같은 말들로 남아있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는 그것을 이제 스스로에게 묻고 그 답을 찾고 있다. 자신을 먼저 돌보지 않고 가족만을 챙기려 했던 그 삶이 어딘가 잘못됐었다는 걸. 그에게 가족은 이제 더 이상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다.

그렇다면 재벌가 최도경(박시후)의 가족은 어떤가. 가족이라기보다는 마치 회사 같은 느낌을 주는 그들은 마치 인형처럼 정해진 대사들을 말하고 정해진 틀 안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과의 결혼이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그 당사자들 역시 그렇게 만나 그 날 약혼하고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놓는다. 그건 하나의 계약 사항 같은 것이니까.

그 속으로 들어간 뒤늦게 찾은 딸 서지수(서은수)는 그래서 이 재벌가 가족이 가진 위선적인 모습들을 드러내는 리트머스지 같은 역할을 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거죠?”라는 질문에 이 이상한 가족은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 이 가족의 삶이다. 서민가족의 삶이 그 곤궁함으로 인해 결혼조차 포기하려 했고, 어떻게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결코 낳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재벌가의 남녀가 만나자마자 마치 모든 게 결정되어 있었다는 듯 결혼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아이를 낳을 계획까지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는 이 가족들의 양태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그 양태는 정반대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런 비정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같은 곳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현실이다. 없는 자는 없어서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가져서 그 가족의 삶이 피폐해진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상처가 되며 심지어 굴레가 되는 가족을 진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가족 체계를 굳이 지켜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가족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가족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오래도록 불변의 가치로 여겨왔던 가족주의라는 틀에 대한 균열을 말하고 있다. 핏줄과 혈연으로 얽혀진 가족이라는 틀이 한때는 끈끈하게 서로를 엮어 우리를 생존하게 해주는 힘이었던 적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끈끈함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서로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따로 ‘내 인생’을 세우고 또 같이 나아가는 진정한 가족을 지향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우리 시대가 추구해야할 가족의 새로운 가치가 아닐까.(사진:KBS)

‘황금빛 내 인생’, 가진 자들의 위선 고발하는 서민 자매들

최도경(박시후)이 “자꾸 신경 쓰인다”고 말할 때 서지안(신혜선)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다. 얘기를 들어주는 그 얼굴에 감정은 1도 섞여있지 않다. 최도경은 내놓고 자신의 호의와 마음을 드러내는 중이지만, 서지안은 안다. 그가 입만 열면 말하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것도 또 이런 호의도 사실은 위선적이라는 걸. 최도경은 입만 열면 자신은 해성그룹의 오너가 되도록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해진 혼사도 사업 계약하듯 당연히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결국 가진 자의 위선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서지안은 알고 있다. 

호의라면 상대방이 그 배려를 받아야 호의라고 할 수 있지만, 최도경이 내미는 호의는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재력을 가졌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까지 실천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기애가 그 호의의 실체라는 것. 진짜 호의를 베풀 것이라면 먼저 서지안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최도경은 ‘젠틀맨’이라는 자신의 허상에만 붙잡혀 있다. 서지안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이유다. 서지안은 그 허상뿐인 가진 자들이 호의라며 내미는 화려한 식탁과 옷과 돈과 차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계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괜히 건드리지 말라는 것.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의 가족들은 출생의 비밀이 터지면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건 가진 자들의 위선을 고발하고 나선 서지안과 서지수(서은수)라는 자매에 대한 새삼스런 발견이다. 서지안이 최도경을 밀어내며 그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면, 서지수는 해성그룹의 재벌가의 딸로 들어가 뼛속까지 가진 자의 허위로 똘똘 뭉쳐 있는 노명희(나영희)와 그 세계를 공격하는 중이다. 

밥 먹을 때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고, 마치 그들은 먹는 것조차 다른 걸 먹는다는 식으로 훈계를 하려 드는 노명희에게 서지수는 “왜 그래야 하는데요?”라고 되묻는다. 서지수를 해성그룹의 딸로 바꾸기 위해 그의 물건들을 허락도 없이 방에서 치워버리자 굳이 쓰레기차까지 쫓아가 그걸 가져와서는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면서 이렇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버리는 건 예의냐”고 따진다.

자신이 엄마라고 강변하는 노명희에게 “낳기만 하면 엄마냐”고 되묻고 그럴 거면 나가라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갈 테니 방 하나 구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한 게 아무 것도 노명희에게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며. 특히 자신을 길러준 부모들을 단죄하려 했었다는 걸 들은 서지수는 대노하며 “그럴 자격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화를 낼 자격은 “자신 뿐”이라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흥미로운 건 이 서지안과 서지수라는 평범했던 서민층 자매가 사건을 겪으면서 좀 더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지안은 늘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자신 안에 존재했던 ‘속물근성’을 발견하고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부정은 이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이어진다. 가족이라고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는 새삼 깨닫는다. 결국 가족이라고 해도 자신은 자신 스스로 서야 한다는 걸 그는 알게 된 것.

서지수는 늘 순응하며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잘 적응해 밝게 살아왔지만 이 일을 겪으며 자신 안에 있는 의외로 당당한 면모들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늘 언니의 그늘 아래서 커왔지만 이제 스스로 서야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부모가 둘이 생긴 상황 속에서 결국 중요해진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서지안과 서지수는 이 아픈 성장통을 통해 자신의 일을 찾아가고 있다. 서지안은 그토록 희구했던 대기업 입사가 허구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목공일 같은 본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는 걸 발견해가고 있다. 서지수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해서 자신이 하려 했던 제빵의 길을 접지 않는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일을 할 때만이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황금빛’의 허구에 한때 눈이 멀었던 이들이 그 실체를 파악하고 저마다 ‘내 인생’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황금빛’ 인생일 것이니.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어 금수저에 대한 환상을 드러내는 현실이지만, 그 금수저가 가진 위선을 이토록 신랄하게 건드리는 드라마도 없을 게다. 그 어떤 사회극보다 신랄해진 주말드라마라니. 서지안과 서지수의 일침이 은근 통쾌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KBS)

익숙한 코드 다른 활용, ‘황금빛 내 인생’ 저력의 원천

도대체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무엇이 이토록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걸까. 서지안(신혜선)이 진짜 재벌가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그 순간 <황금빛 내 인생>의 시청률은 36%(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이런 속도감에 이런 폭풍전개라면 40% 시청률을 경신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놀라운 건 이 드라마가 50부작이며 지금 겨우 20부가 방영됐다는 점이다. 보통의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라면 이렇게 그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은 거의 드라마가 끝나는 시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게 끝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시작이다. 이렇게 드러난 출생의 비밀 이후, 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는 건 아직도 한참 드라마가 하지 않은 이야기가 남았고, 그것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갈 거라는 예감 때문이다.

사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일 수 있다. 흙수저가 금수저로 탈바꿈되어 가짜 신분상승을 하게 된다는 설정은 결국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벌어질 파국을 예고한다. 그 당사자인 서지안이 겪을 고통은 물론이고, 실제 재벌가의 딸인 서지수(서은수)가 느낄 충격 또한 만만찮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인 그들의 엄마 양미정(김혜옥)이 느낄 회한과 그걸 알게 됐음에도 막을 수 없었던 서태수(천호진)의 자책감도 결코 작지 않다.

즉 드라마적인 극적 상황들이 이보다 클 수는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건 자칫 잘못하면 막장드라마들이 쓰는 자극적인 전개처럼 비춰질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황금빛 내 인생>이 주는 느낌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자극을 위한 자극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진짜 ‘황금빛 인생’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지옥도’라는 느낌이 든다. 바로 이 드라마가 가진 진정성의 지점이 이 드라마가 가진 엄청난 자극을 눌러주는 힘이다. 

‘딸 바꿔치기’나 ‘출생의 비밀’, 나아가 왕자님과 신데렐라 설정 같은 익숙한 코드들을 우리는 이 드라마에서 쉽게 발견한다. 서지안에 대한 동정심과 미안함을 넘어 애정을 갖게 된 최도경(박시후)은 현대판 왕자님이나 다름없고, 물론 출생의 비밀을 안고 동생으로 왔지만 그것이 밝혀지면서 그에게 기대는 서지안은 신데렐라의 변형 캐릭터다.

그런데 이런 익숙한 코드들을 가져와 이 드라마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 ‘출생의 비밀’은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신데렐라 판타지를 위해 가져온 코드가 아니라, 흙수저가 가짜 신분을 얻어 금수저가 되도 전혀 행복할 수 없고 오히려 지옥 같은 불행을 겪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금수저가 아니라도 그 흙수저가 얼마나 자기 능력으로 설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코드다. 

여기서 최도경이라는 왕자님의 역할은 신데렐라 서지안이 가질 수 없는 걸 갖게 해주는 그런 판타지적 존재가 아니라, 그가 겪는 아픔을 공감해주며 나아가 보호해주려는 역할이다. 그러니 이 왕자님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물적 욕망이 아니라 정신적 공감대가 주는 인간적인 따뜻함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출생의 비밀 주인공인 서지수는 어떻게 변할까. 지금껏 천사표 동생의 모습을 보이며, 가진 것 없어도 구김살 없이 살아왔던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부모와 언니에게 철저히 속았다 오해하게 된 그는 어쩌면 우리가 그간 ‘출생의 비밀’ 코드를 담은 드라마에서 봐왔던 그 착한 신데렐라가 아닌 악녀의 면면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 

익숙한 코드가 주는 선입견은 <황금빛 내 인생>이 가진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다. 그건 자칫 드라마가 하려는 진심을 덮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소현경 작가가 뚝심 있게 하려던 이야기를 밀고 나간 그 점이 이 드라마가 가진 저력의 원천이 되었다. 코드보다 중요한 건 그 코드들을 달리 활용해 담아내려는 메시지라는 걸 이 드라마는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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