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판타지보단 아픈 현실 공감...드라마가 달라졌다

슈퍼스타 프로야구 선수의 화려한 삶에서 1년 실형을 받고 감방생활을 하게 된 제혁(박해수)은 참고 참았던 속내를 털어냅니다. “세상에 나만큼 인생이 꼬인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제혁이 지내는 감방생활을 다루죠. 거기에 드라마가 전가의 보도처럼 다루던 판타지 따위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들은 보통 이하의 삶에 처해있기 때문에 굉장한 욕망을 판타지로 갖지 않습니다. 그저 좀 더 따끈한 물에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없다고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죠. 

사실은 재벌가의 딸이라는 ‘출생의 비밀’ 이야기를 듣고 덜컥 그 집으로 들어간 지안(신혜선)은 그게 지옥의 시작이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재벌가의 화려한 삶은 고사하고 실은 그것이 동생 지수(서은수)의 자리였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양가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리죠. 보통의 드라마, 그것도 주말극에서 ‘출생의 비밀’이라면 당연히 따라붙는 ‘신데렐라’ 이야기 따위가 이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는 없습니다. 지안은 이 지옥과 추락을 겪으며 자기 앞에 놓인 목재를 다듬고 가구를 만드는 일에서 오히려 더 큰 행복을 느낍니다. 가족의 포근함? 삶이 수저 색깔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 속에서 가족은 순간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의사 남편에 그럭저럭 잘 살아왔던 삶이었습니다. 치매를 앓아도 좋았던 기억이 있는 시어머니와 망나니 동생이라도 지지고 볶으며 살아주는 올케가 있어 그런대로 버텨낼 수 있는 삶이었죠. 그래서 이제는 남편의 은퇴에 맞춰 시골에 내려가 살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갑자기 말기암이랍니다. tvN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1996년도에 방영된 드라마지만 하필이면 지금 왜 리메이크된 것일까요. 그것은 헛된 판타지보다는 아픈 현실을 공감해내려는 시대적 정서가 바탕에 깔린 선택은 아니었을까요.

JTBC 새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드라마는 붕괴된 건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해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그들이 서로 만나 그 아픔을 보듬고 어루만지며 상처를 이겨내고 해결해가는 이야기죠. 거기에 막연한 판타지 같은 것들이 들어앉을 자리는 없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사랑도 그래서 대단한 삶의 욕망을 건드리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사랑’을 하는 것도 벅찬 그들에게는 그래서 ‘그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일조차 엄청난 사건이니 말이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방영되는 드라마들 중 다수가 ‘성장 곡선’을 그리는 막연한 판타지가 아닌 한껏 추락한 삶이 보통을 추구하는 현실 공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기획은 훨씬 전에 이뤄진 작품들이겠지만 이미 그 때부터 우리가 갖고 있는 현실정서는 그리 녹록치 않았던 게 틀림없죠. 그저 열심히 살아도 점점 추락하는 삶, 제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삶, 그러다 한 순간 아픈 병이 닥치고 사고로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삶. 그것이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라는 인식이 이들 드라마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헛된 환상의 이야기에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합니다.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저편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대신 망가진 삶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를 버텨내고 보듬고 위로하고 그저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가를 다루는 현실적인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합니다. 드라마 몇 편이 드러내는 이 같은 현실 정서는 그래서 못내 아픕니다. 우리는 성장을 꿈꾸는 게 아니라 ‘정상화’ 혹은 ‘그저 보통’을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과연 이 추락하는 삶에도 날개는 있을까요.(사진:tvN)

신고

각자 서야 가족도 행복, ‘황금빛’의 새로운 가족 제안

“난 이 집 가장 졸업하겠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태수(천호진)는 아들 서지태(이태성)에게 그렇게 말했다. 과거 노모의 병환 때문에 아들에게 진 빚을 집 보증금을 빼서 갚겠다고도 했다. 집 나가서 어떻게 혼자 살 거냐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혼자서였다면 더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라고.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가장이었기 때문에 희생하며 살아왔다고.

서태수의 ‘가장 졸업’ 선언은 그간 겪은 일들로 인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결과였다. 사업을 망하기 전까지 그토록 노력해왔던 그의 삶들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망한 후 힘들었던 일들만 가장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가족들에게 그는 실망했다. “사업 망해서 지금까지 10년 동안 양미정 당신 나 한 번이라도 위로해준 적 있냐. 지태 지안이 지수 네들이 나 한 번이라도 안아준 적 있어?...그래. 나 못난 애비다. 무능한 아버지야. 서태수 너 인생 실패했다.”

서태수는 그래서 하나하나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지수(서은수)를 찾아가 그는 25년 전 그를 데려와 자식으로 키운 걸 사과했다. 부모의 사과. 그것은 더 이상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의미다. “네가 믿든 안 믿든 넌 항상 내 딸이었고 사랑했다. 하지만 훔친 딸이니까 내 딸이 아닌 거다.”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그는 그것이 허망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나이 들면 시골로 내려가 조촐하게 농사나 지으며 살아가겠다던 소박한 가장의 꿈은, 대학을 나와도 여전히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무너졌고, 부모가 금수저냐 흙수저냐에 따라 자식의 미래도 결정되는 현실 앞에서 흙수저 부모이기 때문에 부정당하는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그의 가장 졸업 선언이 공감 가는 이유다.

<황금빛 내 인생>은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는 수저 계급의 사회 속에서 가족이, 핏줄이 족쇄가 되어 개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 서태수가 느끼고 있는 절망감처럼, 재벌가의 딸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사실은 엄마의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고는 그 집에서 쫓겨나고 자신의 가족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서지안(신혜선)도 같은 절망감을 느낀다. 그래서 죽을 결심까지 하지만 친구 덕분에 돌아와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던 중 그는 새삼 부모 탓을 하며 희생을 감수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깨닫는다.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 것”이라는 하우스 메이트의 말 한 마디에 서지안은 문득 그간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떠올린다. 부모의 지원을 마치 당연히 해줘야 할 것처럼 여겼고 그래서 그것이 현실적으로 되지 않자 스스로 꿈을 접고 희생하는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건 부모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재벌가 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바로 그 집으로 들어가겠다 했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그는 새삼 깨닫는 중이다.

가족이 따뜻한 둥지가 아니라 족쇄가 되는 사정은 서지수가 들어간 재벌가 최도경(박시후)의 집도 마찬가지다. 재벌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서지안처럼 위장해 공식석상에 서야 하는 걸 거부한 서지수는 할아버지 노양호(김병기)의 냉혹한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네까짓 게” 자신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노양호는 “황금 물고 태어나면” 해야 할 것들이 있다며 서지수를 집밖에 내보내지 말라고 한다. 서지수는 이 재벌가의 핏줄에 황금빛 족쇄가 채워져 버린 셈이다. 

최도경(박시후) 역시 재벌가의 이미 정해진 삶으로서 결혼할 가문과 상대가 있었지만 서지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그걸 거부한다. 그 역시 이 재벌가의 핏줄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려 한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하는 삶을 통해 행복을 찾겠다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지금의 가족드라마들이 내세웠던 것과는 다른 가족상을 내세운다. 그것은 서로 핏줄로 얽혀 끈끈한 가족상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가족상이다. 부모든 자식이든 그리고 서민이든 재벌가든 가족이 핏줄이라는 이유로 족쇄가 되는 삶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서서 비로소 행복해질 때야말로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제시한다. 

김수현 작가의 2008년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는 엄마의 휴업 선언을 다룬 바 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가 지난 지금 <황금빛 내 인생>은 아빠의 가장 졸업 선언을 그리고 있다. 가족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부모와,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자신의 삶이 부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받아들이는 자식이라면 그 가족은 따뜻한 둥지가 아닌 서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닐까. 각자 삶은 각자 개척해야 비로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제안하는 새로운 가족상이다.(사진:KBS)

신고

‘황금빛’,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까닭

가족은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인가. 지금껏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면, 지금 방영되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은 어딘가 수상하다.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가족의 양태는 결코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의 서민층 가족도, 또 돈 걱정 없는 재벌가 가족도 무엇 하나 따뜻하거나 부러워할만한 구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째서 <황금빛 내 인생>은 그간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왔던 그 가족의 면면을 완전히 뒤집어 보여주고 있는 걸까.

한 때는 잘 나가건 회사의 사장이었으나 부도를 맞고 전국의 건설현장 인부를 전전해온 서태수(천호진)는 그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숨겨왔던 마음의 응어리를 토해놓는다. 가족을 위해 뭐든 희생하며 살아왔던 그였지만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집 나간 딸 지안(신혜선)에게서 “가족이면 다 함께해야 하냐”는 독한 말을 듣고 그는 모든 걸 놓아버린다. 아들 지태(이태성)에게 안하던 화를 쏟아내는 그는 이제 가족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는 듯하다. 

왜 그렇지 않을까. 아내 양미정(김혜옥)이 그간 잘 지내왔던 시절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지금의 힘겨운 시기만을 얘기하는 것에 화가 나고, 서지안도 서지수도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그 시절을 마치 모두 잊은 듯 그를 대하는 모습에 울분이 터져 나온다. 마치 아버지의 무능 때문에 결혼은 결코 안하겠다 소리쳤던 지태의 외침 또한 그에게는 비수 같은 말들로 남아있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는 그것을 이제 스스로에게 묻고 그 답을 찾고 있다. 자신을 먼저 돌보지 않고 가족만을 챙기려 했던 그 삶이 어딘가 잘못됐었다는 걸. 그에게 가족은 이제 더 이상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다.

그렇다면 재벌가 최도경(박시후)의 가족은 어떤가. 가족이라기보다는 마치 회사 같은 느낌을 주는 그들은 마치 인형처럼 정해진 대사들을 말하고 정해진 틀 안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과의 결혼이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그 당사자들 역시 그렇게 만나 그 날 약혼하고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놓는다. 그건 하나의 계약 사항 같은 것이니까.

그 속으로 들어간 뒤늦게 찾은 딸 서지수(서은수)는 그래서 이 재벌가 가족이 가진 위선적인 모습들을 드러내는 리트머스지 같은 역할을 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거죠?”라는 질문에 이 이상한 가족은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 이 가족의 삶이다. 서민가족의 삶이 그 곤궁함으로 인해 결혼조차 포기하려 했고, 어떻게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결코 낳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재벌가의 남녀가 만나자마자 마치 모든 게 결정되어 있었다는 듯 결혼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아이를 낳을 계획까지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는 이 가족들의 양태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그 양태는 정반대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런 비정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같은 곳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현실이다. 없는 자는 없어서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가져서 그 가족의 삶이 피폐해진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상처가 되며 심지어 굴레가 되는 가족을 진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가족 체계를 굳이 지켜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가족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가족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오래도록 불변의 가치로 여겨왔던 가족주의라는 틀에 대한 균열을 말하고 있다. 핏줄과 혈연으로 얽혀진 가족이라는 틀이 한때는 끈끈하게 서로를 엮어 우리를 생존하게 해주는 힘이었던 적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끈끈함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서로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따로 ‘내 인생’을 세우고 또 같이 나아가는 진정한 가족을 지향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우리 시대가 추구해야할 가족의 새로운 가치가 아닐까.(사진:KBS)

신고

‘황금빛 내 인생’, 가진 자들의 위선 고발하는 서민 자매들

최도경(박시후)이 “자꾸 신경 쓰인다”고 말할 때 서지안(신혜선)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다. 얘기를 들어주는 그 얼굴에 감정은 1도 섞여있지 않다. 최도경은 내놓고 자신의 호의와 마음을 드러내는 중이지만, 서지안은 안다. 그가 입만 열면 말하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것도 또 이런 호의도 사실은 위선적이라는 걸. 최도경은 입만 열면 자신은 해성그룹의 오너가 되도록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해진 혼사도 사업 계약하듯 당연히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결국 가진 자의 위선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서지안은 알고 있다. 

호의라면 상대방이 그 배려를 받아야 호의라고 할 수 있지만, 최도경이 내미는 호의는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재력을 가졌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까지 실천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기애가 그 호의의 실체라는 것. 진짜 호의를 베풀 것이라면 먼저 서지안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최도경은 ‘젠틀맨’이라는 자신의 허상에만 붙잡혀 있다. 서지안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이유다. 서지안은 그 허상뿐인 가진 자들이 호의라며 내미는 화려한 식탁과 옷과 돈과 차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계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괜히 건드리지 말라는 것.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의 가족들은 출생의 비밀이 터지면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건 가진 자들의 위선을 고발하고 나선 서지안과 서지수(서은수)라는 자매에 대한 새삼스런 발견이다. 서지안이 최도경을 밀어내며 그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면, 서지수는 해성그룹의 재벌가의 딸로 들어가 뼛속까지 가진 자의 허위로 똘똘 뭉쳐 있는 노명희(나영희)와 그 세계를 공격하는 중이다. 

밥 먹을 때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고, 마치 그들은 먹는 것조차 다른 걸 먹는다는 식으로 훈계를 하려 드는 노명희에게 서지수는 “왜 그래야 하는데요?”라고 되묻는다. 서지수를 해성그룹의 딸로 바꾸기 위해 그의 물건들을 허락도 없이 방에서 치워버리자 굳이 쓰레기차까지 쫓아가 그걸 가져와서는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면서 이렇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버리는 건 예의냐”고 따진다.

자신이 엄마라고 강변하는 노명희에게 “낳기만 하면 엄마냐”고 되묻고 그럴 거면 나가라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갈 테니 방 하나 구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한 게 아무 것도 노명희에게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며. 특히 자신을 길러준 부모들을 단죄하려 했었다는 걸 들은 서지수는 대노하며 “그럴 자격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화를 낼 자격은 “자신 뿐”이라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흥미로운 건 이 서지안과 서지수라는 평범했던 서민층 자매가 사건을 겪으면서 좀 더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지안은 늘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자신 안에 존재했던 ‘속물근성’을 발견하고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부정은 이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이어진다. 가족이라고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는 새삼 깨닫는다. 결국 가족이라고 해도 자신은 자신 스스로 서야 한다는 걸 그는 알게 된 것.

서지수는 늘 순응하며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잘 적응해 밝게 살아왔지만 이 일을 겪으며 자신 안에 있는 의외로 당당한 면모들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늘 언니의 그늘 아래서 커왔지만 이제 스스로 서야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부모가 둘이 생긴 상황 속에서 결국 중요해진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서지안과 서지수는 이 아픈 성장통을 통해 자신의 일을 찾아가고 있다. 서지안은 그토록 희구했던 대기업 입사가 허구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목공일 같은 본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는 걸 발견해가고 있다. 서지수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해서 자신이 하려 했던 제빵의 길을 접지 않는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일을 할 때만이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황금빛’의 허구에 한때 눈이 멀었던 이들이 그 실체를 파악하고 저마다 ‘내 인생’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황금빛’ 인생일 것이니.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어 금수저에 대한 환상을 드러내는 현실이지만, 그 금수저가 가진 위선을 이토록 신랄하게 건드리는 드라마도 없을 게다. 그 어떤 사회극보다 신랄해진 주말드라마라니. 서지안과 서지수의 일침이 은근 통쾌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KBS)

신고

익숙한 코드 다른 활용, ‘황금빛 내 인생’ 저력의 원천

도대체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무엇이 이토록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걸까. 서지안(신혜선)이 진짜 재벌가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그 순간 <황금빛 내 인생>의 시청률은 36%(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이런 속도감에 이런 폭풍전개라면 40% 시청률을 경신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놀라운 건 이 드라마가 50부작이며 지금 겨우 20부가 방영됐다는 점이다. 보통의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라면 이렇게 그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은 거의 드라마가 끝나는 시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게 끝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시작이다. 이렇게 드러난 출생의 비밀 이후, 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는 건 아직도 한참 드라마가 하지 않은 이야기가 남았고, 그것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갈 거라는 예감 때문이다.

사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일 수 있다. 흙수저가 금수저로 탈바꿈되어 가짜 신분상승을 하게 된다는 설정은 결국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벌어질 파국을 예고한다. 그 당사자인 서지안이 겪을 고통은 물론이고, 실제 재벌가의 딸인 서지수(서은수)가 느낄 충격 또한 만만찮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인 그들의 엄마 양미정(김혜옥)이 느낄 회한과 그걸 알게 됐음에도 막을 수 없었던 서태수(천호진)의 자책감도 결코 작지 않다.

즉 드라마적인 극적 상황들이 이보다 클 수는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건 자칫 잘못하면 막장드라마들이 쓰는 자극적인 전개처럼 비춰질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황금빛 내 인생>이 주는 느낌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자극을 위한 자극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진짜 ‘황금빛 인생’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지옥도’라는 느낌이 든다. 바로 이 드라마가 가진 진정성의 지점이 이 드라마가 가진 엄청난 자극을 눌러주는 힘이다. 

‘딸 바꿔치기’나 ‘출생의 비밀’, 나아가 왕자님과 신데렐라 설정 같은 익숙한 코드들을 우리는 이 드라마에서 쉽게 발견한다. 서지안에 대한 동정심과 미안함을 넘어 애정을 갖게 된 최도경(박시후)은 현대판 왕자님이나 다름없고, 물론 출생의 비밀을 안고 동생으로 왔지만 그것이 밝혀지면서 그에게 기대는 서지안은 신데렐라의 변형 캐릭터다.

그런데 이런 익숙한 코드들을 가져와 이 드라마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 ‘출생의 비밀’은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신데렐라 판타지를 위해 가져온 코드가 아니라, 흙수저가 가짜 신분을 얻어 금수저가 되도 전혀 행복할 수 없고 오히려 지옥 같은 불행을 겪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금수저가 아니라도 그 흙수저가 얼마나 자기 능력으로 설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코드다. 

여기서 최도경이라는 왕자님의 역할은 신데렐라 서지안이 가질 수 없는 걸 갖게 해주는 그런 판타지적 존재가 아니라, 그가 겪는 아픔을 공감해주며 나아가 보호해주려는 역할이다. 그러니 이 왕자님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물적 욕망이 아니라 정신적 공감대가 주는 인간적인 따뜻함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출생의 비밀 주인공인 서지수는 어떻게 변할까. 지금껏 천사표 동생의 모습을 보이며, 가진 것 없어도 구김살 없이 살아왔던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부모와 언니에게 철저히 속았다 오해하게 된 그는 어쩌면 우리가 그간 ‘출생의 비밀’ 코드를 담은 드라마에서 봐왔던 그 착한 신데렐라가 아닌 악녀의 면면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 

익숙한 코드가 주는 선입견은 <황금빛 내 인생>이 가진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다. 그건 자칫 드라마가 하려는 진심을 덮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소현경 작가가 뚝심 있게 하려던 이야기를 밀고 나간 그 점이 이 드라마가 가진 저력의 원천이 되었다. 코드보다 중요한 건 그 코드들을 달리 활용해 담아내려는 메시지라는 걸 이 드라마는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신고

‘황금빛 내 인생’으로 신혜선의 황금빛 시대 열리나

아직 20대에 이처럼 복합적인 연기 스펙트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사실상 주인공인 서지안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신혜선이라는 배우가 떠올리게 하는 생각이다. 흙수저 청춘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지만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인물이 주는 건강함을 보여주면서도,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고 속물적인 욕망을 드러내면서 또한 그것에 대한 죄책감까지 느끼는 인물. 서지안이라는 인물은 그 연기가 만만하지 않은 다양한 면면을 가졌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이렇게 된 건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작품이 보여주는 극적인 상황 전개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코드를 가져왔지만 그 전형적인 활용을 벗어나 한 회 한 회 빠른 전개를 통한 상황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황금빛 내 인생>이 가진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빠른 전개 속에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인물들의 심경 변화는 무엇이 진짜 ‘황금빛’ 인생인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급변하는 감정들을 연기를 통해 보여줘야 하는 연기자들로서는 이 작품이 그리 호락호락할 수 없다. 전 회에서는 짠내 나는 비정규직의 삶을 보여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재벌가의 숨겨진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재벌가에 입성하지만 그 삶이 생각만큼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또한 그러한 든든한 백이 있어 정규직 채용에서 밀려났던 그 자리에 떡하니 들어가 제 능력을 발휘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그 즐거움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은 자신이 아니라 동생이 그 친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자신의 모든 일상이 지옥으로 변해버리고, 그 와중에 부모를 생각하며 어떻게든 대신 속죄하려 안간힘을 쓰는 인물. 그러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최도경(박시후)과 오빠 동생 사이가 아닌 연인의 감정을 갖게 되는 그 감정변화들을 보여줘야 하는 인물이 바로 서지안이다. 

만만치 않은 이야기 전개이고, 그 속에서 쉴 새 없이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지만 이를 연기하는 신혜선은 그다지 큰 이물감 없이 이를 소화해내고 있다. 어떤 면으로 보면 너무 급변하는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계속 몰입할 수 있게 된 데는 신혜선이 보여주는 이 복잡 다변한 캐릭터에 대한 몰입연기가 한 몫을 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사실 신혜선의 가능성은 전작이었던 tvN <비밀의 숲>을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청렴결백했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후배 검사들에게 조사를 받았던 그 충격적인 경험을 했던 명문가 출신의 수습검사 영은수 역할을 그는 놀랍도록 깊이 있게 연기해 보여줬다. 스릴러 장르가 가진 어딘지 의심이 가는 그런 면면들까지 캐릭터에 담아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주면서 이 배우의 존재감은 확실히 강렬해질 수 있었다. 

그런 가능성이 <황금빛 내 인생>을 통해서는 제목처럼 활짝 열리는 느낌이다. 20대 여자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현 대중문화의 현장 속에서 신혜선이라는 확실한 선을 보이는 배우가 특히 반가운 건 그래서다.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이라는 인물은 이제 본격적인 멜로와 함께 뒤틀려진 출생을 바로잡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그 과정을 설득시켜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여겨진다. 그 과정들이 어딘지 믿음이 가는 신혜선이라는 신예에게는 연기자로서의 ‘황금빛’을 열어줄 길처럼 보이니.

신고

‘황금빛 내 인생’과 ‘변혁의 사랑’이 그리는 금수저 판타지 깨기

재벌가의 삶이 판타지를 주던 시대는 이미 지나버린 모양이다. 재벌3세가 등장하고 그 상대역으로 신데렐라, 남데렐라, 줌마렐라 같은 인물들이 주는 판타지는 최근 드라마에서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 물론 재벌3세라는 특정 캐릭터는 여전히 등장하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과 tvN <변혁의 사랑>을 보면 지금 대중들이 바라보는 재벌가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황금빛 내 인생>에 등장하는 재벌가 해성그룹은 그 부유함이 막연한 판타지를 주는 그런 곳이다. 서지안(신혜선) 같은 흙수저에게는 특히 그렇다. 어떻게 해서라도 마케팅팀에 들어가기 위해 인턴으로 갖가지 잔심부름까지 기꺼이 도맡아 하는 곳. 하지만 드라마는 애초부터 그런 판타지는 흙수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죽어라 노력했는데도 어느 날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금수저 친구에게 밀려나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곳. 그것이 굴지의 재벌가에서 일이라도 해보려는 흙수저에게 떨어지는 씁쓸한 현실이다. 

그런데 그 흙수저가 하루아침에 해성그룹의 잃어버린 딸이 되어 금수저가 되자 이 모든 닫혔던 문들이 열린다. 그래서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하루에 천만 원씩 쓰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집안이지만 사실 사는 모양이 영 불편하다. 지켜야할 것도 많고 보는 눈도 많고 구설에 오를 일도 넘쳐난다. 재벌3세인 최도경(박시후)은 입만 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치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래가 모두 결정된 인물이다. 심지어 누구와 거래하듯 정략결혼을 해야 할 지까지.

서지안은 동생 서지수(서은수)가 진짜 재벌가의 잃어버린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게 힘겨운 지옥의 삶을 경험한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해성그룹의 사모님 노명희(나영희) 같은 인물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실감한다. 게다가 이 재벌가 사모님은 입만 열면 ‘특권의식’이 철철 묻어나는 말들만 늘어놓는다. 서민들과는 말도 섞지 말라는 식이다. 서지안이 뒤바뀐 출생의 비밀 때문에 겪게 된 재벌가는 판타지가 아니라 지옥이다. 되도록 빨리 도망치고픈 그런 곳.

<변혁의 사랑> 역시 재벌가의 풍경은 그리 다르지 않다. 변혁(최시원)이라는 낭만주의자 재벌3세는 그 낭만적인 성격 때문에 집안에서 밀려난다. 형인 변우성(이재윤)은 동생을 영구히 밀어내기 위해 변혁이 일으키는 사건들을 은밀하게 더 키우는 그런 인물이고, 아버지 변강수(최재성)는 아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폭력적인 인물이다. 

물론 여기 등장하는 백준(강소라)이라는 프리터족 흙수저의 현실은 더 참담하다. 직업 갖는 걸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는 겉으로 명랑해보여도 속은 문드러져 있다. 늘 돈을 빌려달라는 엄마에게 자신도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다달이 모았던 적금통장을 깨서 주려고 가져가는 그런 딸. 그런데 철없게도 돈 쓸 줄만 아는 변혁은 그런 그가 안타까워 척척 돈으로 그걸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백준은 그런 변혁의 행동이 오히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돈만 많았지 세상 사람들의 아픈 현실은 잘 모르고, 그렇게 돈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인물이 바로 변혁이기 때문이다. 재벌3세라면 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 것 같지만 변혁은 오히려 정반대다. 집안에서도 제대로 기를 피지 못하고 그렇다고 돈이 많다고 해도 한 사람의 마음 하나를 얻지 못한다. 

흔히 드라마가 재벌가 판타지를 담곤 했던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진 권력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던 당대의 정서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권력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갖가지 재벌가의 특권의식이 점철된 갑질 사건들이 주는 현실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단지 금수저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황금빛’ 인생을 살아가는 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황금빛 내 인생>이나 <변혁의 사랑>은 물론이고, <품위 있는 그녀>가 그려냈던 불륜과 치정으로 얼룩진 재벌가의 삶이나, <부암동 복수자들>에 담겨진 저들만의 세상에 대한 분노 같은 반감들은 최근 드라마들이 재벌가를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을 담고 있다. 어차피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그런 판타지는 애초에 ‘꿈 깨’라고 드라마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신고

‘황금빛’, 김혜옥의 비뚤어진 선택이 만든 신혜선의 지옥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을 듯싶다.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서지안(신혜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시방석에 앉게 됐다. 재벌가의 딸이 되어 흙수저를 벗어나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남다른 능력을 보여줬던 그녀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것이 모두 엄마 양미정(김혜옥)의 자식 바꿔치기 때문이었고, 자신은 그 재벌가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라는 걸 알게 된 서지안은 그 집안에서 숨 쉬는 일조차 힘겨워했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왜 그렇지 않을까. 친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 부모가 주는 돈과 옷과 갖가지 혜택들을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게다. 그건 엄마의 범죄가 이제 그 선에서 머물지 않고 서지안에게도 고스란히 똑같은 실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엄마의 범죄는 이제 자식의 범죄가 되었다. 죄지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그 집안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 모두에 긴장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고 있는 서지안의 지옥도는 하지만 쉽게 풀어지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 재벌가의 만만찮은 사모님 노명희(나영희)는 자신을 기만하는 이들을 결코 가만두지 않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그러니 그런 면면을 보게 된 서지안은 이 사실을 밝혔을 때 당할 부모들의 고통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됐다. 

마침 이런 시기에 서지안을 친딸이라 믿고 있는 노명희가 그에게 유학을 제안하는 대목은 그래서 더더욱 그의 갈등을 크게 만든다. 사실을 알면서도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자신 역시 이 범죄에 가담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유학을 떠나버리는 것이 어쩌면 당장 하루도 버티기 힘든 이 집안에서 탈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을 밝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런 제안을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 서지안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지만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상황 자체가 그에게는 지옥일 수밖에 없다. 친엄마에게 갖게 될 분노와 노명희와 그 집안사람들에게 갖게 될 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 그 노명희의 친 딸인 동생 서지수(서은수)에게 느껴질 죄책감. 그 속에서 제 아무리 많은 돈과 번듯한 정규직과 화려한 재벌가의 삶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황금빛 내 인생>은 그 재벌가가 막연히 그려내줬던 ‘황금빛’이 사실은 ‘내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서지안이 겪는 지옥 같은 삶을 담아내고 있다. 제아무리 ‘황금빛’이라고 해도 내 것이 아닌 인생이 행복할 수 없고, 차라리 ‘흙빛’이라도 내 인생이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이 주인공의 일순간 변해버린 처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 깔려 있는 또 한 가지의 이야기는 부모의 선택이라는 지점이다. 현실에 지쳐 자식이 성공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는 부모의 선택은 결코 자식의 행복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 물론 그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네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지만, 그렇다고 비뚤어진 선택은 오히려 더 큰 불행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황금빛 내 인생>은 다소 거친 드라마의 전개와 소재들 때문에 마치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의 디테일이나 개연성의 촘촘함에 있어서 이 드라마는 허술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그저 막장드라마로 치부하긴 아까운 건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가 남다른 면이 있어서다. 재벌가 입성이 지옥도로 변하는 이런 상황을 주말 가족드라마 시간에 보게 되다니. 그간의 주말드라마가 그리던 보수적이고 판타지적인 세계관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 아닌가.

신고

‘황금빛’이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는 색다른 방식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대놓고 ‘출생의 비밀’ 코드를 쓰고 있다. 사실 무수한 막장드라마들이 이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고 있어서 이걸 또 쓴다는 것이 KBS 주말드라마 같은 성격에는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빛 내 인생>은 어째서 이런 부담을 감수하려 했던 걸까.

'황금빛 내인생(사진출처:KBS)'

그것은 <황금빛 내 인생>이 궁극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금수저 흙수저 계급으로 나뉘는 사회의 허위의식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바로 이 ‘출생의 비밀’ 코드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들은 금수저 흙수저 계급 사회가 가진 판타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곤 했다. 사실은 금수저인 ‘출생의 비밀’을 가진 주인공이 흙수저 인생을 살다가 부모를 만나 다시 금수저 인생으로 신데렐라가 되는 과정이 그 천편일률적인 활용법이었던 것.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의 출생의 비밀 코드는 이 방향과는 정반대다. 그걸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장면이, 하루아침에 금수저가 되어 재벌가 딸로 둔갑한 서지안(신혜선)이 노명희(나영희)의 미술관 모임에 불려와 자신의 미술지식을 통해 인정을 받는 장면 같은 것이다. 혹여나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했지만 서지안은 그들 앞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미술에 대한 자신의 식견을 드러낸다. 

그런 일이 있었던 걸 알게 된 최재성(전노민)이 노명희에게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딸을 그런 위험한 상황에 내놓은 걸 나무라자 노명희는 말한다. “내 딸이니까” 잘 할 거라 믿었다고. 핏줄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고. 또 서지안이 해성그룹 마케팅팀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예전에 내놨던 기획안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이 집안은 또 그놈의 핏줄을 꺼내놓는다. 그 피가 어디 가냐는 말은 이 집안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서지안은 그들의 친딸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서태수(천호진)와 양미정(김혜옥)의 딸일 뿐이다. 그런 그가 이른바 저들의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회사에서도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건 그래서 핏줄과는 아무 상관없는 그의 노력 때문이다. 이것이 <황금빛 내 인생>이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하는 색다른 방식이다. 이것은 금수저 흙수저의 세계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판타지를 공고히 하는 게 아니라, 그 허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황금빛 내 인생>의 출생의 비밀 코드가 굉장한 속도로 전개되는 건 그래서다. 판타지를 지속시키려면 그 비밀을 오래 유지해야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 50부작 드라마는 고작 10회 남짓 넘었을 뿐인데, 출생의 비밀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서지안이 스스로 자신이 그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전개는 향후 서지안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에 시청자들을 주목하게 만든다. 계속 가짜노릇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진짜의 자신으로 돌아올 것인가. 

물론 이런 방식으로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려다 보니 양미정이 진짜 재벌가 딸인 서지수(서은수) 대신 친딸인 서지안을 재벌가 딸로 둔갑시키는 다소 과한 설정이 들어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 역시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재벌가에 들어가는 것이 막연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편견 또한 깨기 위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태생으로 누군가는 선택받고 누군가는 힘겨운 삶을 살게 되는 금수저 흙수저 사회가 가진 부조리에 대한 폭로다. ‘출생의 비밀’ 따위는 사실 허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흙수저가 금수저로 둔갑하자마자 그 능력을 발휘하는 건 핏줄 때문이 아니고 다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인생을 황금빛으로 반드는 건 그래서 그 수저를 나누는 ‘황금’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해야할 기회가 아닐까.

신고

‘황금빛 내 인생’, 내 인생의 진정한 황금빛은 어디서 오나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제 2회가 지난 것이지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는 빠르게 신데렐라와 출생의 비밀 코드 같은 것들을 뛰어넘었다. 첫 회는 어째 주말드라마의 공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출생의 비밀인가 싶었지만, 그 설정은 2회에 풀려버렸다. 이로써 <황금빛 내 인생>은 그 흔한 가족드라마의 코드와는 다른 이야기 전개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사실 첫 회는 그다지 기대할 수 없는 어디서 본 듯한 설정들이 등장한 게 사실이다. 흙수저로 열심히 살아가는 서지안(신혜선)이 부장님의 명으로 그의 차를 대신 몰고 가다 해성그룹의 외아들인 최도경(박시후)의 차와 접촉사고를 내며 인연이 이어지는 과정이나, 해성그룹의 안주인인 노명희(나영희)가 어린 시절 잃어버린 딸이 서지안일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던 첫 회만 해도 그저 그런 신데렐라와 출생의 비밀 코드를 버무린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 

하지만 그런 우려를 날려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2회에 드라마는 노명희가 직접 양미정(김혜옥)을 찾아오고, 서지안과 서지수(서은수) 중 누가 자기 딸이냐고 물으며 그래서 양미정이 결국 서지안이 그녀의 딸이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보통의 옛 가족드라마라고 하면 이 부분 하나만으로도 한 편의 장편 가족드라마가 나오곤 했던 그 코드들이다. 

<황금빛 내 인생>이 이처럼 일찍 그 코드를 드러낸 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다른 곳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 드라마는 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최근 우리 사회에 자주 거론되는 ‘금수저 흙수저’를 소재로 담고 있다. 흙수저로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영향아래 기죽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온 서지안(신혜선). 하지만 이제 막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잠시, 친구가 금수저 낙하산으로 그 자리를 꿰차며 역시 높은 수저의 벽 앞에서 절망하게 됐다. 

그런 서지안이 바로 그 해성그룹 노명희가 잃어버린 딸이라는 사실은 향후 이 흙수저가 하루 아침에 금수저로 그 삶이 바뀔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 금수저의 삶이 서지안이라는 짠 내 나는 캐릭터의 장밋빛 인생을 가능하게 해줄까. 과연 가진 자들의 삶은 행복하고 못 가진 자들의 삶은 불행할까. 물론 겉으로 드러난 삶은 그렇게 빈부에 따라 행복의 질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는 두 가족, 즉 부자가족 최도경의 집과 서민가족 서지안의 집은 그 느낌이 상반되게 다가온다. 어째 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서지안의 집이 더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 

즉 서지안은 본래 태생은 금수저였지만 어린 시절의 사건(?)으로 흙수저의 삶을 살아왔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 흙수저의 삶 속에서도 그녀를 행복하게 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아버지 서태수(천호진)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헌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토록 귀하게 키운 딸을 어려운 현실 때문에 이제 기꺼이 재벌가로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회한이 없진 않겠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우리가 사는 현실은 태생으로 그 미래까지 결정되는 금수저 흙수저의 세상이다. 그 안에서 흙수저의 인생을 부여받은 이들은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그 ‘수저의 벽’ 앞에서 절망한다. 청춘들은 청춘들대로 부모들은 그런 청춘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파한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 청춘들과 부모들에게 그래도 당신들의 삶이 가치 있다는 위로의 말을 던지는 드라마다. 진짜 인생의 황금빛은 가진 것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는 걸 전함으로써.

신고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183)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3973)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7/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2,880,883
  • 626589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