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연기자 교체, 그 녹록치 않은 후유증에 대하여

SBS 수목드라마 <리턴>에 고현정 대신 박진희가 본격 출연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방영 도중 주연배우가 교체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후 과연 박진희로의 교체가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효과는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분량은 대폭 늘었지만, 어쩐지 다른 캐릭터가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고현정이 초반에 연기했던 최자혜 변호사는 좀 더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겉보기에는 털털한 성격에 농담도 곧잘 던지며 사건의 가해자들이 듣기에 섬뜩할 수 있는 팩트를 슬쩍 슬쩍 던져 놀라움을 주기도 하는 그런 캐릭터였던 것. 무엇보다 그 때의 최자혜 변호사는 분명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동시에 밝은 이미지 또한 가진 인물로 그려진 바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박진희로 교체된 후 등장한 최자혜 변호사는 이름만 같을 뿐, 고현정이 했던 캐릭터와는 너무 달라진 느낌이다. 우선 캐릭터가 너무 어둡다. 그건 연기자 교체라는 큰 변화를 무마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에 박진희를 조금씩 노출시켜 기존 고현정이 입었던 최자혜 변호사의 바통을 이어받으려는 연출적 의도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스토리의 변화와 인물에 대한 해석의 변화가 원인으로 보인다. 

<리턴>은 초반부터 이른바 ‘악벤져스’라고 불리는 악당들이 마치 장난처럼 저지르는 범죄행각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자극적인 전개에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상대적으로 최자혜 변호사의 비중이 줄어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롭게 박진희가 투입되면서 의도적으로 최자혜 변호사 캐릭터의 비중을 높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방향성이 시청자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즉 악벤져스의 범죄행각을 파헤쳐가며 그 진실에 접근하는 변호사의 캐릭터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숨겨진 최자혜 변호사의 ‘실체’를 보이는 쪽으로 그 분량이 늘었던 것. 최자혜 변호사는 악벤져스와 대립하는 인물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변호사라는 직업에 걸맞게 법으로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범죄자들이 하는 것 같은 ‘사건 설계’를 통해 행해지는 것이었다. 

당연히 캐릭터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어둠에 빛을 던져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 아니라, 과거에 겪은 어떤 사건에 의해 은밀히 복수를 계획하고 하나하나 실천해가는 인물로 새롭게 그려지고 있어서다. 물론 이건 애초부터 계획된 대본대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급변화하는 캐릭터는 그래서 그 과정을 설득시켜주는 ‘연기의 일관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다. 

만일 고현정이 계속 이 배역을 연기하며 이런 변화된 캐릭터의 면면을 드러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만큼의 이질감을 주지는 않았을 게다. 하지만 캐릭터도 급변하고 동시에 연기자까지 교체되어 버리자 심지어 이들이 동일인물이 맞는가 싶은 이질감이 생겨났다. 몰입이 되지 않는 건 시청자들로서는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분량은 늘었지만 고현정이 연기하던 최자혜 변호사가 어째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바로 그 깨진 몰입감 때문이 아닐까.(사진: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기대 못 미쳤어도 의미 있는 까닭

대선주자들의 대통령 취업을 국민들이 면접한다?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그 발상이 발칙(?)하다. 대통령을 하나의 직업으로 설정하고 그 직업의 사용자는 다름 아닌 국민이라는 걸 명확히 내놓고 있다. 물론 우리는 모두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런 명확한 관계설정으로 국민이 대통령을 대하는 지는 의문이다. 

'대선주자국민면접(사진출처:SBS)'

대통령을 국민을 위한 일꾼으로 바라보기는커녕 여전히 받들어야 할 왕으로 보고, 그 왕에 대한 충성이 사사롭게는 집안에서의 효도와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그 제목이나 기획에서부터 아예 대놓고 대통령을 하나의 직업인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직업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국민의 말을 듣고 그 뜻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일이라는 것. 

그 첫 번째 면접에 응한 대선주자는 여러 리서치에서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문재인이다. 마치 회사에서 치러지는 면접처럼 국민을 대변하는 면접관들 앞에서 문재인은 그간의 이력과 국정운영 관련한 여러 사안들에 대한 생각과 소신 등을 밝혔다. 직업인으로서의 대통령을 뽑는 과정이기 때문에 회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검증절차’를 갖는 것. 문재인은 그래서 자신에게 덧씌워진 잘못된 이미지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도 했고, 일종의 압박면접으로 부여된 특정 상황에서 어떤 대처를 하는가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생각만큼 신랄한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어떻게 보면 대선주자로 나온 이들을 위한 ‘홍보와 해명의 시간’처럼 보여지기까지 했다. 질문들은 너무 의도가 있어 보였고 거기에 따른 답변도 마치 해답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평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분명히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후보라면 그게 대통령이라도 반드시 제대로 된 검증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누구나 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SBS는 최근 선거에 관련된 아이템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그것이 국민적인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SBS가 그 아이템들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제대로 된 ‘선거’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5일 방송된 [SBS스페셜] ‘대통령의 탄생’ 편에서는 대선캠프에서 실제로 뛰었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통령이 어떻게 탄생해왔는가를 들여다보면서 실체가 아닌 만들어진 이미지가 선거를 갈랐다는 뼈아픈 진실을 드러내줬다. 그리고 미국의 사례를 들어 우리의 선거방송들이 얼마나 안이한 후보검증을 하고 있는가를 에둘러 말해줬다. 

지난 11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디도스 사건의 비밀’에서는 선거장소가 이해할 수 없이 엉뚱한 곳으로 바뀌기도 하고, 마침 선관위가 디도스 공격을 받아 접속 자체가 되지 않아 선거당일 투표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들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또한 선거 과정에 당락을 바꾸기 위해 동원되는 갖가지 불법적인 행태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SBS의 일련의 행보는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물론 방송사로서 국민들이 가진 최대의 관심사가 이번 대선이라는 걸 읽어낸 기획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 얹어진 메시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거’를 치르자는 목소리다. 사전에 충분히 후보 검증 과정을 갖고 또 선거 당일에도 어떤 의혹이 생기지 않는 공명정대한 선거를 치를 수 있게 국민 모두가 그 과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물론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내용들로 채워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얻은 것이 있다면 말의 내용들이 아니라 그런 내용들이 나오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후보의 생각과 태도 같은 것들이 아닐까.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은 공약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어떤 과거를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미래의 그림을 그릴 것인가를 판단해내는 일이다. 지난 선거 같은 뼈아픈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신년토론' 전원책 후폭풍 왜 생겨난 걸까

 

시청률 11.8%. 이 수치만 봐도 신년을 맞아 JTBC가 마련한 신년특집 대토론 2017년 한국 어디로 가나는 분명 성공적인 기획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 토론 자리에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승민 개혁보수신당 의원을 앉힌 행보는 여러모로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 의미 있는 포석이었다고 보인다. 떠오르는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그들의 JTBC 토론 프로그램 출연은 다른 대선 주자들의 출연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신년특집 대토론(사진출처:JTBC)'

하지만 시청률면에서도 또 향후 대선 정국을 앞두고 내놓은 좋은 포석의 기획면에서도 괜찮다 여겨졌던 이 특집 프로그램은 또한 방송 이후 꽤 큰 후폭풍을 낳았다. 그것은 전원책 변호사의 막무가내식 토론 태도에서 빚어진 일이었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답답한 대중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사이다 예능으로 급부상한 <썰전>의 주역인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가 토론에 함께 참여한다는 소식은 그것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지만 어째 방송에서 보여주는 전원책 변호사의 모습은 <썰전>의 그것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거침없는 언변이야 <썰전> 그대로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대방의 말을 막거나 끊고 자기 할 말은 누가 뭐래도 끝까지 하는 모습은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진행을 맡은 손석희 앵커조차 전 변호사님!”을 여러 차례 외치다 듣지도 않는 모습에 실소를 터트렸고, 유시민 작가는 역시 여러 번 <썰전>을 통해 전 변호사의 그런 모습에 익숙하다는 듯 능숙하게 진짜 보수는 잘 안 듣는구나, 그런 오해를 유발하게 돼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신년토론에서 전 변호사가 한 이야기들은 그 내용만으로는 문제될 것이 별로 없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날카롭게 이른바 대선 후보들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질문들이 던져지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은 이런 내용들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말에 담겨진 매너와 태도다. 시청자들은 전원책 변호사의 일방통행식 토론 태도를 보고는 비난을 쏟아냈다. 심지어 <썰전>의 시청자게시판에는 하차 요구가 빗발쳤다.

 

이렇게 된 건 물론 전원책 변호사가 이번 신년토론에서 무언가 다른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신년토론<썰전>이 방송 형식 자체가 다른데다, 생방송과 편집의 차이가 극명하게 다른 느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썰전>은 시사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형식 자체가 시사 프로그램은 아니다. 예능이라는 형식으로 시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다소 과한 표현들이나 유머들도 모두 수용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썰전>의 편집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이슈들이 쏟아져 나와 추가촬영이 계속 이어지자 전원책 변호사는 생방송을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때 김구라는 일언지하에 그건 불가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어느 정도 편집이 되어야 방송이 그나마 어떤 균형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김구라는 베테랑 방송인답게 알아차리고 있었을 것이다.

 

편집은 다소 부적절한 말들이나 너무 오래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모양새들을 잘라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막과 CG까지 사용해서 거기 앉아 있는 인물들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단두대같은 발언으로 전원책 변호사는 <썰전>에서 시청자들을 속 시원하게 해주었지만 그런 발언이 아무런 편집과정 없이 그냥 내보내지면 그 느낌은 사뭇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썰전>은 이렇게 예능이라는 틀과 편집이라는 마법을 부릴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신년토론은 그런 장치를 걷어내 버림으로써 그 민낯을 보여준 셈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전원책 변호사는 예전 MBC <100분토론>에 나왔을 때도 여전히 일방통행식의 토론 태도를 보였었다는 시청자들의 새삼스런 반응들이 나왔다.

 

신년토론은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썰전>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준 면이 있다.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예능적인 편집이 얼마나 토론자들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드러내줬다는 것이다(이러한 이미지 세탁 논란은 예전 강용석 변호사가 나왔을 때도 그런 지적들이 있었다). 항간에서는 그래도 전원책 변호사와 합을 맞춰가는 유시민 작가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더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신년토론의 후폭풍을 경험한 시청자들로서는 <썰전>이 다시 보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가씨' 김민희와 김태리, 그녀들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아가씨>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어느 곳에 지어진 대저택이다. 하필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일제강점기로 삼은 이유는 명백하다. 그건 이 시대를 다룬 무수한 영화들이 많이 보여주던 민족주의적인 관점과는 무관하다. 다만 그 시기가 가진 혼종적 성격, 즉 문을 지나고 나서도 한참을 차를 타고 들어가 세워져 있는 대저택이 일본식과 영국식 그리고 우리식으로 한 공간에 지어져 있는 모양새와 무관하지 않다. 공간이 그러하듯이 그 공간에 살아가는 이들도 혼종적 성격을 띤다. 일본어를 쓰는 조선인이 있고 조선어를 쓰는 일본인이 있다.

 

사진출처: 영화 <아가씨>

영화가 담는 시공간이 이처럼 혼종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건 <아가씨>에서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수한 경계와 구분들이 이 혼종적 시공간에서는 어딘지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그 느슨함은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대저택에 거의 감금되듯이 살아온 아가씨 히데코(김민희)는 부모를 잃고 막대한 유산을 받았지만 그 후견인인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의 손아귀에서 자라난다. 그런데 이 코우즈키와 히데코의 관계가 애매하다. 친인척 관계지만 코우즈키는 히데코에 대한 변태적인 애정을 갖고 있다. 외부에는 그것이 코우즈키가 히데코의 재산을 노리기 위함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건 영화의 말미에 가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아가씨 히데코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려는 가짜 백작(하정우)이 그녀에게 좀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 숙희(김태리)를 하녀로 넣는 일종의 작전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연기를 한다. 혼종적 공간에서의 연기는 이들이 도대체 그 진심이 무엇이고 실체는 무엇인지를 더욱 오리무중으로 만들어버린다. 3부로 나뉘어 구성된 영화는 그래서 그 시점이 매 부마다 달라지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의 반전을 보여준다. 연기를 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연기가 아니었고, 진짜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연기였다는 것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한 장면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의 변주만으로도 <아가씨>는 꽤 흥미롭다.

 

하지만 영화가 지향하는 점은 그간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이 보여줬던 모호함이 아니라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폭력적인 남성성의 세계로부터 두 여성이 유쾌한 탈주극을 벌이는 것이다. <아가씨>에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하고 그들이 모두 두 명의 남성에 포획된 존재들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이 영화가 가진 상징성을 보다 명쾌하게 보여준다. 가짜 백작에 의해 작전에 투입된 숙희가 그렇고, 코우즈키에 의해 대저택에 감금된 채, 신사차림으로 가장한 남자들 앞에서 더럽고 도착적인 소설 강독을 하며 살아가는 히데코가 그렇다.

 

아가씨와 하녀라는 관계 설정은 아마도 남성성을 드러내는 무수한 성애 영화가 보여주곤 했던 기묘한 상상을 자극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직접 보기 전에는 <아가씨>라는 영화가 일종의 동성애 영화가 아니냐는 편견을 갖게 되는 건 이 영화가 주는 반전에는 오히려 더 효과적인 면이 있다. 남자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묻는 아가씨의 질문에 하녀가 그 속살을 만지고 성 행위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1부에서는 말 그대로 남성성의 시각을 그대로 재연하는 듯 보이지만, 2, 3부에서 다시 보는 그 장면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마치 코르셋처럼 남성성에 의해 짓밟히고 옥죄던 육체들이 아가씨와 하녀라는 서열 구조까지 한껏 벗어던진 채 서로를 온몸으로 위무하는 듯한 장면으로 치환된다. 두 여성이 첫 설렘을 갖게 되는, 골무로 날카로운 이빨을 갈아주는 장면 역시 다시 보게 되면 여성들의 연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 대저택 지하실로 상정되는 남성성의 세계는 점점 더 도착적인 느낌을 준다.

 

섹스는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저 성행위가 아니다. 여기 등장하는 남성들은 이상하게 삐뚤어진 성의식을 갖고 있다. 마치 여성들을 위압적으로 짓눌러야 여성들이 더 좋아할 거라는 사고방식. 그런 폭력적인 생각들은 지하실 가득한 무수한 성애 소설들의 판타지로 남겨져 여성들을 그 폭력의 대상이 되게 만든다. 뒤늦게 이 지하실에 가득 채워진 성애 소설들을 발견하고 그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깨닫게 된 숙희는 그래서 히데코와 함께 그 집으로부터 탈주하며 소설들을 발기발기 찢어버린다. 그리고 마치 발기된 성기처럼 세워져 위압적으로 그녀들을 억압하던 상징물 뱀 대가리를 잘라버린다.

 

그렇게 여성들이 탈주해버린 대저택에서 남겨진 남성들은 그 폭력적인 성의식 속에서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이끈다. 대신 탈주한 여성들은 블라디보스톡행 배를 타고 자유의 항해를 한다. 그간 남성성의 억압을 상징하던 옷들을 남김없이 벗어버리고 폭력적인 성행위가 아닌 행복한 성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코우즈키가 히데코를 훈육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구슬은 온전한 쾌락의 도구로 바뀐다.

 

사실 이렇게 선명하게 메시지를 담아내면서도 매번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고 그리고 박찬욱 감독 특유의 탐미적인 영상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가씨>는 놀라운 성취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장면을 바라보던 카메라가 갑자기 느릿느릿 뒷걸음질을 치면서 그 장면의 진짜 이야기를 보여주는 듯한 영상 연출은 그래서 이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다음에 벌어질 상황들이 못내 궁금하고, 그러면서 스스로 갖고 있던 편견들이 여지없이 박살나는 그 장면에서는 어떤 쾌감마저 느껴진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혼종적 성격을 띠던 영화의 모호함은 보다 선명해진다. 가짜는 가짜임이 판명되고 진짜는 진짜임이 드러난다. 그래서 모두가 연기를 하는 듯 보였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면 그 연기의 끝장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폭압적인 상상력과 기획으로 강요되던 연기들이 벗겨지고 대신 진실 된 알몸이 드러날 때의 카타르시스는 그 어떤 섹스보다 강렬하다. 남성성이 내포하고 있는 폭력적인 양태들이 무너져 내리고 저 편 들판을 향해 달려 나가는 두 여성의 자유를 지지하게 될 때, 영화는 한없이 유쾌해진다. 성 의식에 대한 논제들이 그 어느 때보다 쏟아져 나오는 시기여서 일까. <아가씨>는 특히 더 흥미로운 동지의식을 갖게 만드는 영화다

<그녀는 예뻤다>, 황정음은 왜 주근깨 가면을 쓰고 나왔나

 

MBC 주말예능 <복면가왕>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리 이상하게까지 여겨지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나이든 세대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한 마디로 기괴하게 다가온다. 가수가 얼굴을 가리고 노래를 부른다니. 그것도 기괴한 모습의 가면을 쓰고.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기성세대들이 <복면가왕>에서 느끼는 기괴함은 과거 이 세대들이 봐왔던 많은 가요제와 쇼들을 떠올려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 때 방영되었던 국제가요제에서는 마치 우리나라의 대표선수처럼 무대에 올라 여러분을 열창해 관객들을 압도하던 윤복희가 있었고, 대학생들을 위한 대학가요제강변가요제에서 너무나 촌스러운 스타일이었지만 놀라운 가창력으로 주목받은 심수봉이나 이선희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드러내고 뽐내기 위해 무대에 섰다. 조금 부족해도 그들을 위해 마련된 무대가 있었고 대학생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그래도 실력을 선보이면 발탁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러니 이 시절의 가수들을 생각한다면 <복면가왕>의 복면 쓴 가수들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당시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부른다는 건 자기 얼굴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복면 쓰게 만들었을까. 흔히 복면의 기능은 실체를 가리는 것이다. 그런데 <복면가왕>에서 가수들이 복면을 쓰고 나오는 목적은 정반대다. 실체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고 오히려 진짜 실체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아이돌이라는 얼굴에 복면을 씌우자 숨겨진 가창력이라는 실체가 드러난다. 그저 센 힙합 가수인 줄 알았는데 복면을 씌우자 의외의 깊은 감성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제 한 물 간 가수인 줄 알았는데 복면을 쓰고 나와 여전히 감동을 준다.

 

스스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실체를 드러내는 인물을 우리는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서도 발견한다. 여기 등장하는 과거 예뻤으나 역변한 김혜진(황정음)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 게다가 옷 스타일도 꽝인데다, 스펙도 보잘 것 없는 인턴 나부랭이. 그런데 그녀가 예쁘다. 감춰져 있는 능력도 있다.

 

만일 김혜진이 예쁜 얼굴로 모든 사람이 주목하는 캐릭터였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런 미모의 캐릭터라면 연애도 잘하고 일에 있어서도 능력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 드라마에서 그녀의 절친인 민하리(고준희)가 그렇다. 예쁜 얼굴에 잘 빠진 몸매 게다가 스타일도 좋고 좋은 집안까지 갖춘 그녀에게서 우리는 숨겨진 다른 능력이나 매력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당연히 능력도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김혜진이라는 인물은 주근깨 가면을 씀으로써 오히려 그녀의 진가를 드러내는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그녀는 예뻤다>가 제목에서부터 드러내고 있듯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사실은 예뻤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장치다. <복면가왕>에 가수들이 복면을 쓰고 무대에 올랐듯이,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도 주근깨 가면을 쓰고 이 드라마의 무대에 올라서 있다. 목적은 같다. 진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복면가왕>의 가면 쓴 가수들을 보면서,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이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지금 우리네 청춘들을 떠올리게 되는 건 그 공통분모로서의 가면이라는 장치 때문이다. 이들은 왜 이토록 가면까지 쓰면서 자신의 진가를 발견해주길 바라게 된 것일까. 그 반대편에 거대한 스펙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물론 좋은 스펙을 가진 이들이라면 그걸 내보임으로써 어떤 이득을 가져가려 하겠지만, 대부분의 그렇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복면을 꺼내 쓴다. 제발 스펙을 가리고 실체를 봐달라는 간절한 호소. 그것이 이들 가면 세대들에게서 느껴지는 절절함이다.



<SBS스페셜>, 우리가 몰랐던 천일염의 실체

 

예전에 저는 천일염을 저나트륨 소금이고 미네랄이 많고 자연의 조건에 맞춰진 소금이라고 썼습니다. 그 때 제 글을 읽었던 분들한테 저는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릴게요.” <SBS스페셜>에 출연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공개적으로 사과의 말을 전했다. 과거 자신이 썼던 천일염에 대한 글이 사실과 달랐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그런데 황교익은 왜 모두가 좋다고 믿고 있던 천일염의 문제들을 조목조목 들고 나온 것일까.

 


'SBS스페셜(사진출처:SBS)'

천일염. 우리가 너무나 많이 신문지상을 통해 봐왔던 이 소금에 대한 이미지는 너무나 신화적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이 자연의 합작품이 천일염이라는 식의 보도들은 천일염에 막연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마치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선물처럼 여겨지게 한다는 것. 여기에 갖가지 연구기관들의 연구발표는 천일염이 세계 최고의 미네랄 함량을 가진 세계 제일의 소금이라는 근거를 세워준다.

 

게다가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먹던이라는 수식어는 마치 천일염이 우리네 고유의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소금이란 인식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정제염이 전기분해같은 인위적인 조작으로 만들어진 소금이라는 흑색선전까지 더해지니 천일염이 아니면 마치 진짜 소금이 아닌 것처럼 소비자들은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SBS스페셜>이 그 포장을 떼어내고 본 천일염의 실체는 소비자들이 공분을 일으킬만한 것이었다.

 

천일염이 청정갯벌이 아니라 청정갯벌을 죽인 땅에서 생산된다는 황교익의 지적은 염전에 깔리는 두꺼운 비닐장판으로 확인되었다. 가소제를 넣지 않은 폴리프로필렌 재질로 바뀌어 친환경 장판이라고 말하곤 있지만 그것 역시 직사광선에 분해되고 결국은 소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방송을 통해 확인되었다. 국내 최고의 천일염전으로 불리는 신안의 염전에서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장판을 교체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장판 바닥에서 떨어진 이물질이 소금에서도 그대로 발견되었다.

 

천일염이 우리네 고유의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소금이라는 건 날조된 것이었다. 천일염은 1907년 일본이 대만의 기술을 들여서 조선 땅에 이식한 소금 제조방식이었던 것. 하지만 대만에서조차 천일염보다는 정제염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대만의 치구염전에서 나오는 건 공업용 소금이고 그것은 세척 공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식용으로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네 천일염이 과거 공업용의 기준을 그대로 따라고 있어 제대로 된 위생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네 전통방식의 소금이란 천일염이 아니라 갯벌을 모아 농축된 소금물을 끓여 만든 자염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사료에도 남아있는 이 자염은 그러나 현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금이다. 그 빈자리를 천일염이 마치 우리의 전통소금인 양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교익은 일본이 이식한 천일염은 주로 화학 산업용으로 쓰이는 값싼 천일염을 제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먹을 수 있을지 없을 지도 모르는 천일염을 최고의 소금으로 받아들이게 됐을까.

 

그것은 지자체와 연구기관이 만들어낸 날조된 신화가 아니었을까. 재래식 화장실이 옆에 놓여져 있고 그 옆에는 인부들이 신는 장화들이 걸려있고 염전에는 못에서 나오는 녹물이 흘러들어가는 그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그것도 장판을 깔고 그 위를 긁어 모아내는 소금을 어떻게 자연이 만들어낸 선물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전남보건환경연구원에서 비교 연구한 자료는 시료 채취 방법이 명쾌하지 않아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밝혀졌다. 즉 천일염은 염전에서 직접 채취한 걸 썼지만 정제염은 시중에 나온 상품을 시료로 썼다는 것. 오래 놔두면 미네랄 성분이 급격히 줄어드는 건 천일염이나 정제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이런 잘못된 시료 채취 방법을 통해 천일염의 미네랄 함량이 정제염의 몇 배라는 식의 발표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

 

결국 천일염의 신화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탄생하고 미디어와 연구기관에 의해 부풀려졌다는 게 <SBS스페셜>이 말하려는 내용이다. 소금의 문제는 우리가 거의 매일 섭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국민건강을 책임져야할 국가기관들이 오히려 정치적 논리에 의해 비위생적이고 그 효능도 믿을 수 없는 천일염의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황교익은 뒤늦게나마 천일염의 실체를 알게 됐고 그래서 자신이 과거에 썼던 글에 대해 사과했다. 이것은 지금 미디어들이 해야 할 일이고, 정부기관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 성격상 단번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마치 문제가 없는 것처럼 덮고 간다는 것은 또 하나의 안전 불감증이 아닐까



이병헌에 이어 김C까지 이미지의 역린

 

인스타그램에 살짝 올라온 김C의 사진 한 장과 거기에 덧붙여진 ‘I'm fine. And you?’라는 글 한 줄에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늘 피곤한 듯한 얼굴에 약간은 흐트러진 모습의 김C지만 그 모습이 호감으로 전해지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반응이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거지꼴이라는 감정 섞인 반응도 나온다. 도대체 그 이미지 좋던 김C는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사진출처:김C인스타그램

문제는 지난 8월에 발표됐던 김C의 이혼 소식 때문이다. <12> 당시에도 살뜰히 가정을 챙기는 남편으로서의 자상한 모습을 봐왔던 대중들로서는 난데없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더 큰 충격은 바로 그 다음날 그가 재혼을 전제로 스타일리스트 박모씨와 열애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하루 터울로 나온 이혼과 재혼 소식. 말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

 

마치 본처 버리고 새로운 여자를 만난 듯한 뉘앙스에 해명이 이어졌다. C와 전 부인이 이혼에 합의해 법적 절차를 마무리한 것이 2013년이었지만 그들의 파경이 시작된 건 2010년부터였다는 것. 그래서 그가 독일유학을 다녀온 2011년부터는 별거를 했었다는 것이다. 즉 스타일리스트 박모씨와의 열애는 전 부인의 이혼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해명이다.

 

하지만 이 해명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불편함은 있다. 그 내용은 우리가 2010년도 <12>을 통해 봐왔던 김C의 이미지와 상충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파경을 맞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힘겨운 시절을 버텨낸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불편한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물론 부부간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연예인들에게는 사실과 무관하게 어떻게 그것이 대중들에게 비춰지는가도 중요하다.

 

방송을 통해 얻게 된 좋은 이미지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것이 깨지게 될 때 그 좋았던 만큼의 역풍을 만들어낸다. MC몽이 고의 발치 군 기피 의혹으로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칩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비난이 여전한 건 그가 <12>을 통해 그간 쌓아온 좋은 이미지에 대한 배신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음담패설을 했다며 50억 협박을 받은 이병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 큰 것 역시 그가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보여 왔던 순애보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역린이다. 과거에 이미지란 단단한 껍질은 좀체 깨지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지로 실체를 숨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게 감춰졌던 실체는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것을 자발적으로 드러낸다면 적어도 이미지의 역린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김C나 이병헌처럼 어떤 사건을 통해 실체가 폭로되면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에 휘말리게 된다.

 

이병헌처럼 김C도 이제 좀체 과거 같은 이미지로의 회복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의 음악활동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C의 음악은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다만 그의 <12>을 통해 보여줬던 친근하고 자상한 이미지가 있어 음악도 독특하게받아들여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이미지가 사라져버렸고 박수치던 대중들은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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