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이 2년 반 동안 찾은 자신, BTS 그 자체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신선한 충격이다. 방탄소년단의 리패키지 앨범 LOVE YOURSELF 結 ‘Answer’의 타이틀곡 ‘IDOL’에는 이례적으로 국악 장단과 ‘얼쑤’, ‘지화자’ 같은 추임새가 들어갔다. 그래서 처음 들으면 신나는 EDM과 ‘사우스 아프리칸 댄스 스타일의 곡’처럼 들리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이상하게도 어깨가 들썩이는 흥겨움이 묻어난다. 그건 국악 장단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런 느낌이다.

이제 최단기간 뮤비 몇 천만 뷰 돌파나 전 음원 차트 점령 같은 기록들은 그리 놀랍지도 않은 결과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번에는 어떤 새로움을 갖고 왔는가에 대한 궁금증과 놀라움이 더 크다. 그런 점에서 보면 2년 반 동안 이어진 LOVE YOURSELF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앨범, LOVE YOURSELF 結 ‘Answer’의 타이틀곡인 ‘IDOL’은 그간의 고민에 대한 해답처럼 다가온다. 결론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들 자신, BTS라는 게 그 해답이다.

EDM에 아프리칸 댄스 스타일의 음악을 가져왔고 거기에 국악을 접목하고 방탄소년단 특유의 거침없는 랩 스타일이 더해졌지만, 그 어느 하나가 튀지 않고 잘 어우러져 있는데다, 이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방탄소년단 스타일이라는 걸 잘 말해주는 곡이 바로 이 ‘IDOL’이다. 글로벌과 로컬이 이어지고, 랩과 댄스, 국악이 접목되는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는 축제의 한 마당. 방탄소년단은 어느새 이 곳과 저 끝을 연결하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완결해내고 있다. 

K팝 아이돌이라는 정체성이 있지만, 그들 스스로 자신들만의 음악 스타일을 추구하고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아티스트로 성장했고,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음원 발표와 함께 전 세계가 들썩이게 되는 글로벌 뮤지션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국내보다 해외의 반응이 더 뜨거워서인지 그 정체성이 K팝이 아닌 그냥 팝의 장르가 아니냐는 일부 시선들에 대해 ‘IDOL’은 자신들의 문화적 DNA가 다름 아닌 한국이라는 걸 국악과의 접목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You can call me artist, You can call me idol, 아님 어떤 다른 뭐라 해도, I don’t care-”로 시작하는 곡의 도입부분이 방탄소년단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정의해준다. ‘artist’든 ‘idol’이든 ‘I don’t care’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 세 구절의 절묘한 랩 라임이 그들의 음악 스타일까지를 말해준다. 후렴구로 붙여진 “You can’t stop me lovin’ myself”에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가 더해지는 부분도 재미있다. 그건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영어와 우리식의 국악 추임새가 기묘하게 엮어져 흥을 돋는 지점이다. 

뮤직비디오는 이 곡이 말하려는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정체성을 영상으로도 담아냈다. 디지털 세계로 구현된 가상의 공간, 테이블에 앉아있는 방탄소년단 저 뒤로 마치 아프리카를 연상시키는 붉고 큰 태양과 기린의 모습들이 뒤섞이고, 방탄소년단의 아이돌스러운 춤사위 뒤로 어떤 아티스트가 그려놓은 듯한 그림들이 펼쳐진다. 가장 흥겨운 부분으로 들어가서는 역시 사이버 세계의 이미지로 구현된 한국식 정자 속에서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 팬들로 어우러지며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뮤직비디오의 백미는 후반부에 방탄소년단이 여러 군중들과 함께 군무를 추는 대목이다. 화려한 색감으로 치렁치렁 머리카락처럼 움직이는 그 색감 앞에서 한 명씩 노래 부르던 장면들은 그 머리카락 같은 색감의 형체가 봉산탈춤의 사자 형상이었다는 걸 드러낸다. 그 일사분란하면서도 자유로워 보이는 흔들림은 마치 방탄소년단과 군중들이 함께 군무를 추며 축제를 벌이는 그 장면처럼 화려한 색감으로 어우러진다. 제 각각의 문화적 코드들과 색깔들이 하나로 묶여지는 축제의 현장을 영상으로 구현해낸 것. 

‘IDOL’은 메시지와 음악과 영상이 모두 방탄소년단의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 보여주는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은 나라의 작은 아이돌 그룹이 이렇게 넓고 다양한 문화적 코드들을 그 품에 넉넉히 담아 한바탕 축제의 마당을 펼쳐놓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아이돌이라 불리든 아티스트라 불리든 무슨 상관일까. 이제 방탄소년단이라고 하는 그들만의 장르가 만들어졌으니.(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더유닛’, 팀 미션이 끄집어낸 기대되는 얼굴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KBS <더유닛>이 처음 참가자들을 선보였을 때 눈에 띄는 인물들은 역시 개인 기량이 뛰어난 친구들이었다. 이를테면 스피카의 양지원은 남다란 가창력으로 주목을 받았고, 빅스타의 필독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춤 실력으로 관객과 선배 군단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의 주인공 자리를 놓고 벌어진 첫 번째 팀 미션은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개인기량만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보여줬다. 물론 춤, 노래의 숨은 실력자이지만 김티모테오가 주목받은 건 남다른 열정과 팀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전략적인 행보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면면을 통해 ‘티갈량’이라는 캐릭터가 부여되었다. 

그가 결성한 빨강팀은 그래서 시작 전부터 이미 어벤져스팀으로 불렸다. 대부분이 슈퍼부트와 6부트 멤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션을 끝낸 이 팀에서 보이는 인물은 필독만이 아니라 팀의 얼굴 역할을 했던 아이엠의 기중이나 트로이의 칸토 같은 인물들이었다. 특히 기중은 특유의 귀염성 있는 표정으로 뮤직비디오에서 센터에 서게 되기도 했다.

양지원은 첫 무대에서의 강렬함 때문에 팀 결성 당시부터 서로 함께 하려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팀에 그다지 좋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보컬로서 댄스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 계속해서 안무를 틀렸고, 결국 최종 무대에서도 혹평을 받았다. 팀에서 리더로까지 추대되었지만 제대로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며 양지원은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반면 밴드 출신으로 춤 경험 자체가 없던 마스의 멤버들이 들어간 하양팀은 애초부터 최약체로 꼽혔다. 하지만 매드타운에서 춤을 맡았던 대원이 기꺼이 합류하면서 하양팀의 춤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대원의 리더십도 돋보였고 무엇보다 열심히 연습하는 마스 멤버들의 노력도 주목할 만했다. 결국 ‘꼴찌들의 반란’을 보여준 이들은 팀 미션을 통해 확실한 눈도장을 찍게 됐다.

남자유닛의 대결에서 흥미로웠던 건 모두가 애초에 기대했던 어벤져스팀이라 불린 빨강팀과 그 대항마로 지목됐던 파랑팀이 생각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여준 반면, 연습에 연습을 더해 퀄리티를 만들어낸 노랑팀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즉 유닛을 만들어가는 아이돌 그룹의 경우, 제 아무리 뛰어난 기량이 있다고 해도 연습으로 함께 합을 맞추고 서로 부족한 면들을 채워나가지 않으면 팀이 돋보이기 어렵다는 걸 이 팀 대결은 확실히 보여줬다. 

<더유닛> 같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건 성적만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그 안에서 어떤 노력들을 보이고 또 함께 하는 팀에서의 자기 역할을 확실히 해내는가 하는 점들이 팀 성적이나 당장의 순위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남자 초록팀의 준 같은 경우 다리 부상에도 무대에 올라 그 열정을 확실히 보여준 바 있고, 걸 그룹 에이스들이 모인 팀에서 유독 춤에 자신이 없던 이보림과 그를 도와 팀 미션을 성공적으로 이끈 소나무의 의진 역시 주목되는 인물이었다. 

검정팀의 리더로서 직접 시범을 보여가며 팀을 가르쳤던 에이스 준이 무대에서 실수를 했지만 주목됐던 것도 그 과정의 노력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또 독보적인 보컬로 조현아마저 인정하게 만든 임팩트의 제업이나, 연습과정에서 갈등을 갖게 됐지만 이내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효선과 이현주도 향후의 성장과정에 대한 기대감을 남겼다.

<더유닛>은 아이돌 오디션이 갖는 자극적인 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순위를 강조하거나, 심사위원을 세워 혹독한 평가를 내리거나 혹은 탈락을 강조하지 않아서다. 물론 앞으로 어떤 변화를 보일지 알 수 없지만, 이런 기조가 만들어진 건 여기 출연하는 아이돌들이 아마추어가 아니라 이미 데뷔를 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지적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고, 선배 군단도 최소한의 예우를 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 아이돌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피력한 것처럼, <더유닛>은 왜 자신들이 잘 되지 못했는가를 끊임없이 반추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이런 실력으로 성공하지 못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이들도 있었지만, <더유닛>은 아이돌 그룹이란 개인 실력 그 이상의 자질들을 요구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시작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꼴찌의 반란이 보여주는 감흥처럼 실패했던 아이돌들이 제대로 된 한 방을 보여줄 수 있다면.(사진:KBS)

‘더 유닛’, 굳이 데뷔한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까닭

매드타운, 다이아, 소나무, 보이프렌드, 백퍼센트, 소년공화국, 멜로디데이, 트로이, 미스에스, 소리얼, 아이엠, 디아크, 열혈남아... 참 많기도 많다. 아마도 아이돌 그룹에 관심을 별로 주지 않았던 분들이라면 이 이름들이 낯설 것이다. 물론 어디선가 봤던 이름도 있고, 어떤 아이돌 그룹은 순위 차트에 올랐던 기억이 떠올라 왜 KBS <더 유닛>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는지가 의아해질지도 모른다. 

'더 유닛(사진출처:KBS)'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등장했고, 그래서 대중들에게는 심지어 식상하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더 유닛>이 어딘가 다른 느낌을 주는 지점은 바로 여기 출연하는 아이돌 그룹들의 면면 때문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Mnet <프로듀스101>의 잔상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획사의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프로듀스101>과 다른 지점인 이미 데뷔한 아이돌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은 그나마 <더 유닛>이 가진 차별점을 보여준다. 

이미 데뷔를 해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거나, 아니면 데뷔한 후 여러 사정으로 인해 해체되어 버렸거나 심지어는 여러 그룹을 전전하다 이제는 홀로 남아버린 이들이 서는 무대니만큼 사연이 없을 리 없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조타라는 인물로 기억하는 매드타운 같은 경우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길 무렵 회사가 다른 회사에 넘겨버렸고, 그 두 번째 소속사의 대표가 사기혐의로 구속되면서 활동 자체가 어려워졌다. <더 유닛>에 나온 매드타운의 대원과 이건은 그래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어려운 여건에서 연습실을 빌려서라도 연습을 해오고 있었다.

다이아 같은 그룹은 이미 꽤 유명해진 팀이지만 이 무대에 나온 그 팀의 예빈과 솜이는 남다른 고충을 토로했다. 그것은 다이아 하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정채연을 떠올린다는 것. 그들의 말대로 ‘정채연과 아이들’로 불리는 그들은 다이아라는 그룹이 알려졌어도 그 존재 자체가 전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현실을 토로했다. 이것은 아마도 다이아만이 아니라 아이돌 그룹이라는 틀 안에서 활동하는 많은 이들이 가진 고충일 것이다. 

연차가 오래된 보이프렌드나 백퍼센트 같은 보이 그룹도 또 실력파 아이돌로 OST에서 자주 이름을 등장시켰던 멜로디데이도 한두 번 미디어의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곧 식어버린 관심으로 인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몇몇 아이돌 그룹이 잘돼서 화제가 될 때 그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 컸을 게다. 

한때 현아와 원더걸스 데뷔를 준비했지만 지금은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린 정민주나,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태민의 절친이었던 핫샷의 김티모테오는 <더 유닛>이라는 무대에 서기가 그래서 만만찮을 것이다. 한때는 같은 선상에 있었던 그들이지만 한 사람은 선배의 자리에 앉아 있고 한 사람은 ‘리부트’라는 절실한 무대에 서 있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찌 쉬울 수 있을까. 오히려 현아와 태민이 눈물을 쏟아낸 건 아마도 그들의 선택이 가진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더 유닛>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저마다의 꿈이 꺾인 채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한때 한류 등으로 퍼져나간 아이돌 그룹의 성공신화가 무수히 많은 아이돌 그룹을 준비시키게 했지만 그들은 결국 치열해진 경쟁만큼 성공할 가능성을 잃어버렸다. 때론 실력도 있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도 했지만 어른들의 결정으로 좌절된 이들도 있고, 때론 너무 어려서 한때의 잘못된 처신으로 나락에 떨어진 이들도 있으며, 아직 자신을 드러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이들도 있다. 

<슈퍼스타K>부터 본격화됐던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신인들을 대거 시장으로 내놓았고 그 후 <프로듀스101>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이제 기획사의 연습생들까지 다시 주목시켜 시장에 내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주목을 받고 아이돌 그룹이 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한다고 해도 그건 이 험난한 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더 유닛>이 이들을 리부트의 대상으로 삼은 건 그래서다. 

<더 유닛>의 무대에 올라온 많은 아이돌들은 실력 자체가 미달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떤 아이돌들은 이렇게 실력이 좋은데 어째서 주목받지 못했을까 싶은 이들도 적지 않다. 너무 많이 봐와서 이제 웬만한 건 밋밋하게까지 여겨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지만 그래도 <더 유닛>을 들여다보게 되는 건 이들의 절실함에 공감하고 그래서 이런 무대를 마련한 그 공적인 취지가 이해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재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임시완, 아이돌에서 연기돌, 연기돌에서 연기자로

이제 임시완에게 더 이상 아이돌이라는 지칭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2012년 <해를 품은 달>에 어린 허염 역할로 잠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제국의 아이들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곱상한 외모가 연기보다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영화<불한당>

하지만 2013년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 진우 역할로 분해 갖은 고문을 당하는 청년을 연기하는 임시완에게서 아이돌의 이미지는 말끔히 지워져버렸다. 그 아픔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 그는 진우의 그 처연하기까지 한 모습을 연기했다. 텅 비어버린 듯한 눈빛은 바로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연기자라는 호칭은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하 게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2014년은 그래서 임시완에게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추락했다 상승하는 연기의 진폭을 보여준 해였다. MBC 드라마 <트라이앵글>에서 그의 연기는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캐릭터는 과장되게 느껴졌고, 당연히 그 캐릭터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 해 말 <미생>이 다시금 그의 연기자로서의 진가를 끄집어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듯, 때론 안으로 감정을 누르고 때론 밖으로 터트려내며 임시완은 장그래라는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가 되어갔다. 물론 그것은 너무 잘 맞는 옷이어서 그에게 넘어서야할 도전이 되는 캐릭터였다. 지금도 장그래의 잔상이 그에게서 느껴질 정도로.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불한당>의 현수라는 인물은 이 장그래라는 옷을 벗고 임시완이 또 다른 옷을 챙겨 입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캐릭터가 되었다. 작은 키에 어딘지 가녀리게까지 느껴지는 임시완의 이미지는 이 작품 속에서는 오히려 반전효과를 만들어냈다. 저렇게 예쁘장한 외모에서 어떻게 저런 폭발력이 나오는가가 놀라움을 줄 수 있을 만큼.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영화 도입 부분에 감옥에서 현수가 거구의 상대와 대결하는 장면을 보며 “어 저 놈 봐라”하며 짜릿한 쾌감과 끌림을 느끼는 재호(설경구)의 시선은 고스란히 관객들의 시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감옥을 나와 패거리들과 싸울 때 시계를 감은 주먹으로 상대방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연약한 이미지의 임시완은 사라져버렸다. 

<불한당>이 보여주는 재호와 현수의 피와 눈물이 범벅되는 브로맨스는 어떤 남녀 간의 멜로보다 더 진하게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액션과 그 속에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임시완의 연기는 굉장히 섬세하게 느껴졌다. 증오와 분노와 형제애 같은 정이 뒤범벅된 감정연기는 그래서 관객들을 그 인물 속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자기 모습에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해내며 연기돌이라 불렸던 임시완은, 이제 사뭇 상반된 캐릭터 역시 연기해내면서 온전히 연기자라 불러도 될 만한 성장을 보여줬다. 이제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모습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변호인>부터 단 4년 사이의 일이라고 보기엔 놀라울 만큼의 성장이다.

‘김과장’, 남궁민만큼 주목되는 준호의 악역 연기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을 이처럼 유쾌 상쾌 통쾌하게 만든 장본인은 모두가 인정하듯 연기자 남궁민이다. 심지어 그가 ‘갓궁민’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데는 <김과장>이라는 블랙코미디 장르의 드라마에서 적절히 과장된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짐 캐리가 보여주곤 했던 과장 연기를 통한 확실한 캐릭터 구축을 김과장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성공시키고 있는 듯하다. 폼 잡지 않고 지극히 소시민적인 인물이지만 ‘어쩌다 보니’ 의인이 되어가는 그 상황을 통해 때론 웃기고 때론 속 시원하게 만드는 김과장이라는 인물은 실로 남궁민이라는 연기자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보인다. 

'김과장(사진출처:KBS)'

그런데 <김과장>에는 남궁민만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주목되는 연기를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과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갑질 상사 서율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준호다. 우리에게 2PM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드라마보다는 간간히 출연하곤 했던 예능 프로그램으로 더 이미지가 알려진 그지만 <김과장>에서는 서율이라는 강렬한 안하무인격 악역을 통해 그런 이미지들을 완전히 지워내고 있다. 도대체 <김과장>의 무엇이 준호의 이런 숨겨진 연기를 깨운 걸까. 

물론 <김과장> 이전에 우리는 tvN 드라마 <기억>에서 주인공을 돕는 어소시엣 변호사 정진을 연기하던 준호를 기억한다. 거기서도 준호는 꽤 괜찮은 새내기 변호사의 면면을 보여준 바 있지만 연기 도전이 일천한 신인으로서 인상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준호 하면 본래 떠오르던 바른 청년의 이미지 그것을 연기로 반복해 보여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던 것. 

하지만 <김과장>에서는 처음 그의 등장 자체가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악역을 그려내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배역에 딱 걸맞는 캐스팅의 성공처럼 보인다. 즉 <김과장>에서 그의 악역으로서의 존재감이 처음부터 살아난 건 어린 나이에도 ‘반말’하는 상사라는 그 캐릭터와 준호라는 인물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서율이 김과장에게 혹은 회사 내 라이벌인 조민영 상무(서정연)에게 반말을 넘어 욕지거리까지를 하는 장면은 실제로도 한참 나이가 어린 준호가 남궁민이나 서정연 같은 연기 대선배에게 안하무인격으로 대하는 것 같은 불편함을 만들어냈다. 자연스럽게 준호의 악역 연기는 이 반말 하나만으로도 힘이 실리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배역과 캐스팅의 기막힌 조화만으로 가능했다 말하긴 어렵다. 그걸 연기해내는 준호라는 신인이 기꺼이 자신의 이미지를 망가뜨려 재수 없는 악역으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처음에는 그 준호라는 실제 인물과 배역이 만들어내는 안하무인의 행동이 악역으로서의 기묘한 시너지를 만들어냈지만, 그 후로는 준호 역시 그 서율이라는 악역에 제대로 빙의된 듯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악역만큼 연기자로서의 새로운 면을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준호에게 이번 <김과장>의 서율이라는 역할은 그래서 그가 앞으로 걸어갈 연기자의 길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PM의 준호가 아니라, 또 예능프로그램에서 봐왔던 바른 청년 이미지를 가진 준호가 아니라 연기자 준호의 모습을 깨워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화랑', 도대체 언제까지 사랑타령만 하고 있을 건가

방영 전 KBS 월화드라마 <화랑>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작품보다 높았다. 중국과 동시방영을 추진했고, 따라서 100% 사전 제작된 작품이다. 한류를 노리는 드라마였다는 것. 게다가 신라의 화랑을 본격적인 소재로 삼아 꽃미남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도 시선을 잡아끌었다. 박서준과 박형식은 물론이고 도지한이나 김태형 같은 새 얼굴들도 기대되는 지점이었다. 

'화랑(사진출처:KBS)'

그리고 첫 회는 이런 기대감이 실제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저 꽃미남들의 화랑이라는 소재를 빙자한 연애담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무명(박서준)의 등장과 그의 친구 막문(이광수)의 죽음이 전하는 골품이라는 신분제에 억눌린 청춘들의 현실이 단박에 날려주었기 때문이다. <화랑>은 현재의 금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부조리한 현실을 신라의 골품제도 안에서 숨막혀했던 청춘들 이야기로 풀어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막문의 죽음으로 그를 대신해 선우라는 이름을 갖게 된 무명은 그 신분을 뛰어넘어 화랑에 들어왔고 성골인 삼맥종(박형식)과 많은 진골 출신 화랑들 속에서 남다른 재능과 생각을 드러낸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신분이 그러한 것처럼, 골품제의 틀에서 훌쩍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데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이 갈수록 꺾어지게 된 건 드라마가 확실한 추동력을 잃어버리게 되면서부터다. 결국 드라마의 힘은 극적 갈등에서부터 비롯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화랑>은 그러한 갈등이 그다지 절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확실히 도드라지지 않는 악역 때문이다. <화랑>에서 선우와 삼맥종이 가려는 그 길을 막아서는 존재는 바로 왕비이자 삼맥종의 모후인 지소(김지수)와 그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권세가 박영실(김창완)이다. <화랑>의 추동력이 나올 수 있는 건 바로 이들 악역의 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들의 존재감은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강한 대립자가 서지 않기 때문에 선우와 삼맥종이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간절함 같은 것이 생겨날 수 없다. 바로 이 핵심적인 드라마의 추구점이 잘 보이지 않게 되면서 드라마는 소소하고 잔잔한 사랑이야기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로(고아라)를 사이에 두고 미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는 선우와 삼맥종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게다가 강렬한 악녀의 모습을 보여야 될 지소가 어째서 안지공(최원영)에게 멜로 감정을 드러내는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드라마는 그래서 힘이 실릴 수 있는 상황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극적 상황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맥이 빠진다. 

백제 남부여에 화랑사절단이 가는 에피소드에서 선우가 “자신이 왕”이라며 거짓말을 하게 되는 그 이유가 단순히 붙잡힌 아로를 구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은 그래서 <화랑>의 이야기가 왜 소소해졌는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국의 왕임을 거짓말로 하는 장면의 근거가 ‘사랑’이라는 단순한 이유라면 <화랑>이 그리는 세계는 삼한일통을 꿈꾸거나 아니면 골품 같은 신분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그런 것과는 다른 소소한 것으로 전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화랑>이 미지근해진 건 그 본래 하려던 이야기에서 한참 벗어났거나 너무 잔잔한 가지들을 재미요소로 많이 끼워 넣다보니 그 본래의도가 가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회를 보고나면 결국 사랑타령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으로는 이 드라마가 회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꽃미남들의 면면을 보는 것만으로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구르미>가 발굴한 배우들, <성균관스캔들>처럼 성장할까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 종영했다. 끝났지만 보내지 못했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보인다. 그만큼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는 뜻이다. 최고 시청률은 23.3%(닐슨 코리아). 화제성은 단연 갑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남긴 자산은 이 작품이 발굴해낸 만만찮은 배우들의 가능성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 중심에 박보검이 있다. 사실 박보검을 신인이라 말하긴 어렵다. 그는 tvN <응답하라1988>의 택이 역할로 주목받고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미 그 이전에 <각시탈>, <원더풀마마>, <참좋은시절>, <내일도 칸타빌레> 같은 작품들을 거쳤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그가 여러 작품을 통해 쌓고 <응답하라1988>을 통해 단단해진 연기의 결을 비로소 제대로 펼쳐낸 작품이 되었다.

 

여전히 소년 같은 이미지, 하지만 어딘지 소년답지 않은 슬픔 같은 것이 담긴 눈빛, 그래서 그 슬픔이 눈에 머금은 채 환하게 웃을 때 느껴지는 그 복합적인 감정들. 일찌감치 어른의 세계에 들어와 그 아픔을 알아버린 아이 같은 그런 애틋함이 이 예사롭지 않은 가능성을 가진 배우의 결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조정대신들이 만들어내는 살벌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가 제대로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대항하며 성숙해가는 모습을 200% 시청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었던 건 그가 갖고 있는 결이 이영이란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박보검의 상대역을 한 김유정은 남장여자 콘셉트를 제대로 소화해낸 여배우들이 그랬듯이 이제 소녀의 틀에서 성인역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를 잘 치러냈다. 아역 이미지가 강했던 그녀가 홍라온이라는 인물을 통해 비로소 보다 성숙해진 여성의 느낌을 갖게 됐다는 건 그래서 김유정으로서는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아역시절부터 충분히 쌓아온 연기 공력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이미지 변신과 만나게 된 김유정의 앞으로의 연기가 더더욱 기대되는 지점이다.

 

김윤성 역할을 연기한 진영 역시 B1A4의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연기 소화력을 보여줬다. 사실 아이돌들은 연기에 대한 부담감이 타 배우들보다 크기 마련이다. 게다가 특히 사극 같은 경우는 본격 연기자들조차 적응이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그런 상황을 감안해보면 진영이 보여준 연기는 놀라울 정도로 단단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연기돌로서 발전 가능성이 높은 면면을 충분히 그는 보여줬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데뷔해 <돌아와요 아저씨>, <피리부는 사나이> 같은 작품을 거치며 조금씩 성장해온 곽동연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주목받았다. ‘갓동연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을 정도. 이영의 호위무사이자 친구로서 그 선을 넘나드는 김병연이란 인물을 그는 괜찮은 액션 연기와 내면 연기를 통해 보여줬다. 역시 향후가 기대되는 배우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그 퓨전사극의 틀이 <성균관 스캔들>과 비교되곤 했다. 그런데 그 <성균관 스캔들>이 만든 최대의 성과는 역시 연기자들의 탄생이었다. 그 작품으로 박유천, 송중기, 유아인이라는 만만찮은 배우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모두 한류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 역시 훗날 이런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남지 않을까. 여기서 발굴된 배우들이 <성균관 스캔들>의 배우들처럼 좀 더 넓은 세계에서 훨훨 날 수 있기를.

<청춘시대>의 성공, 청춘들에게 건네는 위안

 

JTBC <청춘시대>가 오늘 12회를 마지막으로 종영한다.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표한다. 이 소소해 보였던 작품이 어느새 슬금슬금 우리네 마음 속으로 들어와 깊은 여운을 남겼다는 걸 종영에 즈음해서야 비로소 새삼 느끼게 된다. 결국 좋은 작품은 시청자들이 알아본다는 걸 확실히 느끼게 해준 <청춘시대>였다.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사실 첫 시청률 1.3%(닐슨 코리아)에서 2회에 무려 0.4%까지 급락하면서 역시 신인 연기자들만을 캐스팅해 오로지 작품의 밀도 하나로 승부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여겨졌다. <청춘시대>는 한예리, 한승연, 박은빈, 류화영, 박혜수, 이렇게 다섯 명의 연기자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물론 한예리나 박은빈은 다른 작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연기자들이지만 다른 연기자들은 거의 신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한승연과 류화영은 아이돌 출신이 아니었나.

 

게다가 <청춘시대>가 경쟁해야 하는 금토 편성 시간대의 tvN <굿와이프>는 칸의 여왕이라 불리는 전도연에 역시 오랜만에 드라마로 모습을 보인 유지태가 주인공들이었다. 드라마의 첫 시청률을 이끌어내는데 있어서 이러한 톱클래스 배우들의 출연은 압도적인 우위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 <굿와이프>는 또한 미드 원작으로 탄탄하고 디테일한 대본이 변호사의 세계를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그러니 아예 <청춘시대>는 경쟁상대조차 되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0.4%부터 한 회 한 회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가며 작품의 가치를 알린 <청춘시대>는 시청률도 조금씩 회복했고 이 작품의 규모로 봐서는 성공이라고 봐도 좋을 2.5% 시청률을 넘어섰다. 드라마틱한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건 <청춘시대>가 그저 그런 청춘멜로물 정도일거라 가졌던 그 선입견과 편견을 작품을 통해 깨주었기 때문이다.

 

<청춘시대>는 달달한 청춘의 멜로만을 담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오히려 작금의 청춘들이 겪을 다양한 현실적 문제들을 극화한 작품이었다.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가고, 성추행에 치욕까지 겪으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며 버티는 청춘이 있었고, 사고의 트라우마로 미래를 꿈꾸지 않고 그저 현재를 막 살아가는 청춘이 있었으며, 부모의 죽음을 자신 때문이 아닐까 자책하는 청춘이 있었다.

 

또한 청춘들에게는 중대사라고 할 수 있는 연애 문제에 있어서도 <청춘시대>는 풋풋하고 달달한 사랑을 그려내면서도 현실을 잊지 않았다. 나쁜 남자와 헤어지지 못하는 청춘과 그녀가 겪게 되는 데이트 폭력의 이야기는 최근 들어 사회문제로까지 지목되는 소재였다. <청춘시대>는 청춘이라는 시기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지금의 청춘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들을 발랄한 감성으로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청춘 특유의 회복탄력성을 이 작품은 보여줬다. 그토록 힘겨운 현실들을 마주한 청춘들이 저마다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삶을 회복하는 모습은 그래도 버텨내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올 것이라는 작은 위안을 건네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청춘시대>의 성공이 의미 있는 건 스타 캐스팅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우리네 드라마 풍토에서 괜찮은 선전을 해주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여기 출연한 젊은 배우들의 발견은 요즘처럼 신인들이 설 자리가 사라진 현실에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실력도 의욕도 넘치지만 설 자리가 없어 그걸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지금의 청춘들이 한데 모여 작은 성취를 이룬 것 같은 느낌이다.

 

캐스팅에 있어서 스펙이 아닌 이 청춘들의 실력을 믿어주었고, 막연한 판타지가 아닌 진솔한 현실들을 담아내려 했던 노력은 결국 <청춘시대>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가 되었다. 요즘 같은 현실에 <청춘시대>의 성공이 유독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송혜교에 대한 찬사와 설현 지민에 대한 비난 사이

 

사실 눈물이 났다.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자동차 광고 제의를 거절한 송혜교에게 쓴 감사의 편지의 한 구절. “우리나라 대통령도 못한 훌륭한 일을 송 선생님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물이 나고 가슴에 박힌 큰 대못이 다 빠져나간 듯이 기뻤다. 날개가 달렸으면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얼마나 할머니의 힘겨운 삶에 관심을 주고 또 그 고통의 역사를 함께 인식해주며 행동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이토록 절절한 감사의 마음을 표할까.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하지만 정 반대의 일로 눈물을 쏟는 이들도 있다. 걸 그룹 AOA의 설현과 지민이 그들이다. 그녀들은 케이블채널 온스타일 <채널 AOA>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맞추는 퀴즈에서 긴또깡이라고 답해 대중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상식일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순간 대중들은 분노했다.

 

그렇지만 그 분노는 온전히 설현과 지민에게 쏟아내는 분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다 우리네 역사에 이토록 무지해져버린 현실이 되었는가에 대한 분노가 더욱 크다. 역사가 그저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단답식 퀴즈 맞히기의 소재 정도로 활용되는 현실. 비뚤어진 교육 현실 속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역사교육. 그리고 그것이 별 문제도 아닌 것인 양 방치하는 교육 부처들.

 

역사교육은 문제 맞히기가 아니다. 그것은 관점이고 시각을 갖는 교육이다. 역사는 하나의 팩트라기보다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포괄한다. 그러니 그것은 얼굴 하나 내놓고 누구냐고 맞히는 식으로는 절대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입장과 관점들이 있고 시각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후 스스로 역사 인식을 갖는 그 과정이 역사교육이 가야하는 길이다.

 

아이돌 그룹이라는 특성상 교육의 문제는 더 일천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단답화 되어 있는 역사교육은 근본적으로 보면 설현과 지민의 문제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때때로 <무한도전>이나 <12>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역사교육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역사의 한 지점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무한도전>이 들려준 가슴 아픈 하시마섬의 진실이나 우토로 마을 이야기가 그렇고, <12>이 하얼빈까지 가서 들려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 이야기가 그렇다.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역사를 제대로 재조명해 드러낼 때마다 시청자들은 깊은 감명의 뜻을 전하곤 한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울린다. 하지만 그 눈물의 뒤안길을 들여다보면 어쩌다 역사를 예능에서 더 배우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씁쓸함 또한 묻어난다. 이러니 도대체 누굴 탓할 것인가!

 

송혜교의 행보에 쏟아지는 찬사와 지민과 설현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그래서 너무 다른 양극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분노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상식이 사라진 세상에 남는 건 몰상식과 무개념뿐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 답답한 현실에 또 눈물이 난다

<딴따라>, 우리네 가요계 현실과 판타지의 조화

 

SBS 새 수목드라마 <딴따라>는 그 인물들의 관계 구조만 보면 영화 <비긴 어게인>이 떠오른다. 물론 미국의 상황과 우리가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 정서적인 느낌이나 드라마가 가져올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야기들도 완전히 다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최고로 잘 나가던 매니저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 밑바닥에서 가능성 있는 가수의 목소리를 듣고는 마치 구원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비긴 어게인>에서 프로듀서 댄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레타의 노래로 구원받는 장면과 그리 다르지 않다.

 


'딴따라(사진출처:SBS)'

사실 이건 음악이라는 소재가 동일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유사성일 수 있다. 즉 음악이란 실로 기적 같은 것이어서 진정 절망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을 다시 구원할 수도 있는 마력을 발휘한다. 그것이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상관없이. <딴따라>라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 역시 바로 이 음악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순간들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들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그려내는 현실들이 우리 것이어야 공감대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일 게다.

 

그런 점에서 보면 <딴따라>는 첫 회에 꽤 많은 우리네 가요계의 문제들을 들춰냈다. 신석호(지성)라는 매니저의 뒤를 따라가 보면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과 파파라치 매체의 비즈니스가 슬쩍 드러나기도 하도, 아이돌 그룹의 자작곡의 이면에서 눈물 흘리는 실제 원작곡자들과 기획사 사이의 은밀한 거래가 보이기도 하며, 또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하기 위해 이른바 공장이 동원되어 음원사재기가 횡행하는 우리네 가요계의 어두운 면들이 폭로되기도 한다.

 

여기에 방송사와 기획사의 관계, 나아가 기획사 내부에서도 오너와 매니저들의 관계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가요계의 네트워크들이 <딴따라>에는 잘 그려져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밑그림들은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그리려는 기적 같은 음악의 순간들과 잘 대비되어 드라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최고의 위치에 있다가 하루아침에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매니저들의 이야기는 가요계 나아가 연예계에 넘치고 넘친다. 물론 그들이 다시 부활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들도.

 

하지만 <비긴 어게인>에서도 이미 시스템화 되어 있는 팝 시장에서 댄이 상업적일 것 같지 않은 보석 같은 그레타의 목소리를 찾아내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두게 되는 판타지를 통해 천편일률적인 팝 음악 산업의 대안 같은 걸 보여줬듯이, <딴따라> 역시 거대 기획사와 아이돌로 대변되는 우리네 가요계 시장의 어떤 대안들을 보여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하늘(강민혁)은 그 원석이 되어줄 것이고, 신석호와 그린(혜리)은 그 원석이 빛날 수 있게 기존 가요계의 흐름과는 다른 새로운 그림을 그려줄 것이다.

 

결국 신석호의 추락을 통해 보여진 우리네 가요계의 부조리한 현실들을 하나하나 깨치고 나가는 과정들이 <딴따라>의 판타지이며 성공 스토리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그 많은 가요계의 대안으로 제시됐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많이들 들고 나왔던 것들이긴 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 대안으로 제시되는 스토리와 거기 얹어진 음악들이 시너지를 이루며 대중들을 매료시켰던 형식이다.

 

<딴따라>는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했던 방식을 드라마타이즈하고 있다. 음악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 스토리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인물들의 이야기와 성장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제시하는 음악들을 통해 감동적으로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딴따라>는 겨우 원석인 하늘과 밑바닥으로 내려온 신석호가 노래를 통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그들이 함께 현실과 판타지를 뒤섞어 그려갈 가요계의 대안들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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