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만 타면 망가지는 일상, 무엇이 문제일까

이른바 ‘투어리즘 포비아’가 <효리네 민박>에도 닥쳤다.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가 살던 제주도 집에 관광객들이 몰려와 심각한 사생활 침해를 일으켜 어쩔 수 없이 그 집을 JTBC가 매입했다는 것이다. 

JTBC의 이런 조치는 이효리 이상순 부부를 위해서도 또 방송 콘텐츠를 위해서도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보인다. 제아무리 연예인이라고 해도 사생활은 보호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이제 사적인 공간으로 살 수 없는 그 곳을 떠날 수 있게 해주는 것 또한 당연하다. 게다가 JTBC 측이 밝힌 것처럼 제3자의 부지 매입은 자칫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 <효리네 민박>이라는 콘텐츠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 

방송이 일상으로 들어오게 된 이른바 ‘관찰 카메라’ 시대에 이제 일상은 방송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지금은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생각해보면 이건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과거 현장이란 방송의 중요한 소재이자 원천이었다. 어떤 현장을 잡느냐가 방송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 주목되지 않았던 곳도 방송이 포착해 놓으면 이른바 ‘관광명소’가 되어버리는 형국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효리네 민박>을 찍었던 그들의 제주도 집을 떠나게 된 상황은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방송의 힘이 어느 정도까지인가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처럼 보인다. 물론 <효리네 민박>의 경우에는 도가 지나친 면이 있다.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들은 그 곳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거의 망각한 채 문을 두드리고 심지어 무단 침입까지 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고 해도 방송의 영향력은 이미 일상을 바꾸고 있다. 최근 북촌 한옥마을과 혜화동 이화 벽화마을에 벌어지고 있는 주민과 관광객 사이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본래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이 곳에 이토록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잇게 된 건 방송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1박2일>을 포함한 무수한 여행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 곳을 다녀간 후 국내는 물론 해외의 관광객들까지 그 곳을 찾고 있다. 심지어 관광버스가 관광객들을 단체로 내려놓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이러니 주민들의 일상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문을 열어 놓고 이웃과 교류하며 살던 주민들은 이제 마구 집안 마당으로 들어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문을 꼭꼭 닫아 걸고 있다. 그 곳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과 주민 간에도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혜화동 이화 벽화마을은 주민들에 의해 벽화가 지워지고 있어 더 이상 벽화마을이라 불리기 어렵게 됐다. 역시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심지어 공황장애를 겪는다는 주민들이니 그런 극단적인 선택이 당연히 이해가 된다.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제주도 집을 떠나게 된 상황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 집이 주목된 건 <효리네 민박>이 그만큼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효리네 민박>이 보여준 건 도시를 떠나 조용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이 아니었던가.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큰 위로와 힐링이 되어주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화제가 된 그 집이 이제는 그들의 편안했던 일상을 파괴하게 되었다는 게 아닌가. 

사실 이런 일은 이미 방송가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던 일들이다. 이를테면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정선의 그 집을 유명하게 만들고 나서 관광객들이 줄을 이어 나중에는 방송에도 적지 않은 지장이 생긴 사례 같은 것이다. 방송이 특정한 유적지나 관광지를 찾아가기보다는 누군가의 일상으로 들어가 그 내밀한 묘미들을 관찰하게 된 건, 이제 대중들도 그런 시끌벅적한 관광지보다 그 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일상을 보여주고 나면 그 곳은 다시 관광지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관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관광객들이 그 곳이 관광지가 아닌 일상의 삶의 공간이라는 걸 안다면 조심하고 주의해야 하는 게 예의다. 특히 효리네처럼 그 일상이 소중하게 다가왔다면 그 일상을 지켜줄 수 있는 마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의 일상을 찾아가기보다는 그런 삶을 내 일상 속에서도 작게나마 시도해보는 게 더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사진:JTBC)

허지웅의 <진짜사나이> 폐지 촉구가 공정하려면

 

허지웅이 JTBC <썰전>을 통해 군대 이미지 세탁을 하고 있는 <진짜 사나이>는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을 진짜 재밌게 봤다그래서 더 확고하게 생각한 게 <진짜사나이>는 폐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썰전(사진출처:JTBC)'

그가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한 프로그램의 폐지까지 거론한 것은 그만큼 우리네 군대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에둘러 드러내는 일이다. 그는 우리 군대가 정말 엉망진창이라며 그런 실체를 희석시키고 대한민국 군대를 예능화시킨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고 있는 내 자신을 보는 게 못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가진 이미지 세탁의 방식에 문제제기를 했다. 군 장병들은 엄격한 피해자임에 분명한데, “이 사람들이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는 식으로 예능이 보여주는 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은 기자로서 충분히 제기할만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벌어진 일련의 군 사태는 우리 군대가 거의 막장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가져올만한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이 굉장한 화제를 이끌면서 이런 사안들마저 삼켜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허지웅의 문제제기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제기가 다른 프로그램도 아닌 <썰전>을 통해서 나왔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미지 세탁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리게 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썰전>이기 때문이다. 강용석 변호사의 아나운서 비하 발언은 법적인 문제가 끝났다고 하지만, ‘이미지 세탁의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사안이다.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이 강용석 변호사의 이미지를 바꿔놓은 건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물론 강용석 변호사는 거듭 사과의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에 대해서 대중들은 여전히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잘못에 대해 말을 할뿐, 자숙의 시간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강용석 변호사를 계속 출연시키고 있는 <썰전>이 보여주고 있는 건, 잘못된 일을 해도 방송이 재미를 통해 그 이미지를 덮어버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자인하는 일이다. 현재 <진짜사나이>가 갖고 있는 이미지 세탁의 문제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지 세탁은 허지웅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출연자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그가 강용석 변호사와 함께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은 그의 의도가 전혀 아니라도 그 자체로 강용석 변호사의 잘못을 상쇄시키는 역할로 작용한다.

 

<썰전>의 한계는 바로 이런 점에서 비롯된다. 즉 무언가를 공정하고 엄정하게 비판하려고 해도 스스로의 정통성이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허지웅은 바른 소리를 했지만 그런 소리를 하는 와중에도 <썰전>이 그 이야기마저 누군가의 이미지 세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설국열차>가 비판하는 <설국열차> 독과점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설국열차>가 다루고 있는 것은 저절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실체다. 하층 계급이 무임승차한 대가로 사는 열차의 맨 꼬리 부분에서 상층 계급이 살고 있는 맨 머리 부분까지 달려가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의 여정(?)은 그래서 이 계급으로 나눠진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저 스스로 작동하는 지를 절묘하게 보여준다.

 

'설국열차(사진출처:CJE&M)'

흥미로운 것은 하층 계급의 혁명가인 커티스가 일으키는 반란조차 적절한 인구수를 조절하는 이 시스템의 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하층 계급이 상층 계급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은 그래서 이 열차의 통치자인 윌포드(애드 해리스)에 의해 때로는 부추겨진다. 결국 맨 머리 부분까지 올라간 커티스를 윌포드가 설복시켜 차기 통치자로 내세우려는 장면은 그래서 이 시스템의 통제방식이 하나의 반복적인 궤도를 이루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커티스가 혁명의 이름으로 맨 꼬리 부분에서 맨 머리 부분까지 달려가는 이 욕망의 시스템에 충실한 인물이라면, 남궁민수(송강호)는 이 시스템의 흐름에서 벗어나려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전면에 나선 인물이 커티스임에도 불구하고 남궁민수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결국 이 시스템을 깨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커티스의 오로지 앞으로만 나가려는 힘과 남궁민수의 자꾸만 옆길로 빠지려는 힘은 그래서 이 영화의 중요한 두 흐름과 그 부딪침을 만들어낸다.

 

크로놀 중독자처럼 보이던 남궁민수가 열차의 맨 머리 부분의 윌포드가 있는 문 앞에 서서 커티스와 나누는 설전은 그래서 대단히 흥미롭다. 남궁민수는 그 자리에서 커티스에게 “문을 열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은 남궁민수라는 캐릭터의 역할(각 계급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가 열려는 문은 윌포드가 있는 곳으로 가는 문이 아니다. 열차 바깥으로 나가는 문. 여기서 크로놀은 마약이 아니라 폭탄으로 돌변한다. 시스템에 중독된 이들을 깨는 방식으로 크로놀을 사용한다는 설정에는 봉준호식의 블랙유머가 살짝 들어가 있다.

 

그렇다. <설국열차>는 단순하게 말하면 모두가 동승해야만 하고, 또 각자 부여받은 칸에서 살아야만 하며, 또 계급 상승 욕구를 갖고 있다고 해도 오로지 윗칸으로만 달려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 무비판적이고 세뇌적인 시스템의 옆구리에 옆으로 나갈 수 있는 구멍을 뚫는 영화다. 모두가 다 앞으로만 달려갈 때 왜 그래야 하느냐고 질문하는 남궁민수의 역할은 그래서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에 해당한다.

 

결국 이 <설국열차>는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을 열차라는 상황으로 집약해 놓은 놀라운 작품이다. 마치 카프카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그러하듯이 거기에는 비현실적이고 심지어 판타지적인 세계가 그려지지만 그 세계의 작동방식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너무나 리얼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저 시간 죽이는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다면 적잖이 옆길로 새는 이 영화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상징이나 블랙 유머를 한 번 생각해보면 <설국열차>라는 작품이 가진 나름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설국열차>라는 영화 자체가 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산물이라는데 있다. 이 영화는 CJ E&M이 무려 450억을 투자해 만들어진 영화다. 할리우드라면 소자본 영화겠지만 우리로서는 블록버스터 중에 블록버스터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이렇게 투자된 영화에 CJ가 총력을 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CJ가 구축하고 있는 CGV 멀티플렉스는 그래서 이 <설국열차>가 움직이는 시스템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움직인다. 스크린 독과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설국열차> 개봉 첫 주말 스크린 수는 1128개로 역대 6위라고 한다. 상영 횟수도 지난 13일만 두고 보면 1014개 스크린에서 무려 5213번 상영되었다고 한다. 이미 6백만 관객 수를 동원하고 7백만 나아가 1천만 관객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괜찮은 영화지만 가장 많은 스크린을 확보함으로써 결국은 영화관을 찾는 이들이 볼 수밖에 없는 영화가 됐다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몇몇 언론에서는 아예 대놓고 관객 수 카운팅 기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올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 역시 영화 흥행의 시스템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치 <설국열차>를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 관람의 행렬에 동참하지 않으면 소외될 것 같은 기분. <설국열차>에 올라탄 승객들이 가졌을 기분이 이렇지 않았을까. 영화 속에서 ‘열차 바깥으로 나가면 우린 모두 죽어요’라고 외치는 아이들처럼.

 

<설국열차>는 좋은 영화지만 그것이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과정에는 이 영화가 메시지로 던지고 있는 ‘옆길로 샐 권리’ 자체를 봉쇄하는 씁쓸함이 담겨져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아이러니인가. 영화는 옆길로 샐 권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영화가 보여지는 방식은 그걸 허용하지 않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굳건히 붙박여 있다는 것은. 이것은 이 영화가 대단하기 때문일까(그만큼 자본주의 시스템을 제대로 꿰뚫고 있기 때문?) 아니면 이런 메시지조차 시스템으로 묶어두는 자본주의의 힘이 대단한 것일까. 봉준호 감독은 이 시스템에서 남궁민수가 되고 싶었겠지만 그 윌포드식의 완벽한 현실의 시스템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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