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사나이>, 김소연의 태도에는 특별한 게 있다

 

배우 김소연에게는 늘 특별한 느낌 같은 것이 배어있었다. 시상식장이나 드라마 종방연에서 가끔 만나보게 된 김소연은 이 인물이 드라마 속 그 인물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다소곳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늘 들여다보는 듯한 그 섬세하고 배려 깊은 모습은 때로는 지나치게 예의바른 느낌마저 주었다. 김소연에게서는 상대가 누구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응대하는 삶의 태도가 묻어났다. 그녀는 그런 인물이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그녀가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에 투입된다고 했을 때, 많은 대중들은 <아이리스>에서의 여전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와 실체는 다를 수밖에 없는 법. 그녀가 체력적으로 허당이라는 건 기초 체력검사를 하는 그 순간에 다 드러나 버렸다. 팔굽혀펴기 백 번 정도는 거뜬히 해낼 것 같고, 윗몸일으키기도 마치 숨 쉬듯 편하게 할 것 같은 그녀였지만 실제는 정반대. 그녀는 팔굽혀펴기 하나도 쉽지 않은 저질체력의 소유자였다.

 

구보 중에는 먼저 가십시오!”하는 말이 입에 배어 나오고, PT 체조를 하면서도 연실 신음소리가 터져 나오며, 포복으로 10미터 전진하는 것이 거의 기적처럼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힘겨워하는 김소연은 그러나 화생방 훈련에 들어가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들 눈물 콧물 쏟아내는 그 최루가스에 밖으로 뛰쳐나가려 안간힘을 쓸 때, 김소연은 그걸 묵묵히 버텨내고 있더라는 것이다. 체력은 떨어져도 하고자 하는 정신력이나 태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악바리라는 걸 그녀는 보여주었다.

 

훈련 중 그녀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죄송합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같은 말들이다. 거기에는 안 돼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가 묻어나고, 혹시나 자신으로 인해 동료들이 힘들어할까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의 말들이 <진짜사나이>를 통해 들려올 때마다 시상식장이나 종방연에서 늘 상대방을 사려 깊은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그녀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평소 그녀의 태도는 혹독한 훈련장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4미터가 넘는 벽을 동료들과 함께 힘을 합쳐 오르는 유격훈련장에서 그녀는 어떻게든 올라가려는 동료를 밑에서 받쳐주려 안간힘을 썼다. 밑으로 점점 내려오는 동료를 위해 악착같이 군홧발을 머리로 받쳐주는 모습에서 우아한 여배우나 멋진 여전사의 모습은 없었다. 결국 바닥에 깔려버린 그녀를 위해 조교들이 나서게 됐지만, 그렇게 동료를 위해 제 몸을 기꺼이 지지대로 내던지는 모습은 그 어떤 여배우나 여전사보다 더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구름사다리를 마치 에베레스트산 정복하듯 힘겹게 오른 그녀는 동료들 중 특별히 감사한 전우가 있냐는 서경석 조교의 질문에 한 명을 택할 수 없이 전부 하나하나 다 고맙습니다. 진짜 너무 고맙습니다.”라고 외쳤다. 모두가 그 말에 눈물을 쏟아냈다. 그 말에서는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간 훈련을 통해 해왔던 그녀의 상대방을 대하는 모습들이 거기에 고스란히 묻어났기 때문이다.

 

이 곳에 와서 뭘 느끼나?”하고 서경석 조교가 묻자 김소연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조금씩 해내고 있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도저히 못할 듯 보였던 것들을 조금씩 해낼 수 있었던이유는 뭘까. 그녀가 악바리라서? 그렇다면 그녀는 왜 그렇게 악바리 근성까지 드러내 보이며 악착같이 해내려 했을까. 그것은 어쩌면 타인들에게 절대로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그녀의 착한 심성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은 여러모로 여기 출연한 여성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귀여운 앙탈 하나로 화제가 된 혜리가 그렇고, 대대장 포스의 라미란이 그러하며, 남편 닮아 바르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풍기는 홍은희나 언어가 익숙지 않아 엉뚱하지만 의외의 성실함을 보여주는 지나, 그리고 영 군대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유격장에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 맹승지, 또 운동선수 출신으로 묵묵히 힘겨운 훈련을 이겨내는 박승희까지 그렇다. 군대 가면 진면목이 나온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얘기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악바리 김소연이 특별히 감동을 주는 까닭은 뭘까. 그것은 어쩌면 배려 없고 예의 없는 현실과는 정반대로 지나치게 배려하고 예의 깊은 그녀의 모습이 주는 어떤 울림 때문이 아닐까.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은 단순히 여자들의 군대 체험만이 아니라 사회나 조직에서 겪게 되는 일종의 단체생활에서의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을 엿볼 수 있는 장이 되고 있다.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특히 이 특집에 관심을 보이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김소연의 자신만이 아닌 타인을 위한 악바리 근성은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진짜사나이> 장혁의 영화 찍기와 그 역효과

 

<진짜사나이> 수방사편에서 특임대에 들어간 장혁은 매번 모의 훈련 때마다 거의 한 편의 영화를 찍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절권도로 무장한 장혁은 버스에서의 대테러진압훈련에서도 총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테러범을 제압하는 모습을 연출해 보여주었고, 인질을 구출하는 훈련에서도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창밖에서 진압 도중 생겨날 만일의 사태를 위해 적을 조준하는 자세를 진짜 영화처럼 보여주었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훈련 과정에서 장혁의 모습은 조금 과한 느낌을 주었다. 맨손으로 적을 제압하는 훈련에서도 장혁의 동작은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한 편의 영화였다. 그 때마다 훈련교관들은 당황하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한 마디로 ‘너무 잘 해서’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통해 예능적인 연출을 보여준 것. 하지만 장혁의 조금은 과한 동작들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너무 영화나 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다. <진짜사나이>를 보면서 <아이리스>를 떠올리게 된 것.

 

이것은 영화만큼 장혁이 잘 한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영화처럼 너무 짜여진 각본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들 일어나는 것조차 천근만근인 상황이지만 장혁은 그 와중에 스트레칭과 운동을 한다. 그의 모습에 일반병사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실제 병사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은 연예인과 군인들이 뒤바뀐 느낌을 준다.

 

물론 이것은 부대의 성격 탓이기도 하다. 청룡대대나 이기자 부대처럼 체력적 부담을 느낄 정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곳에서 장혁의 모습은 FM병사의 그것처럼 보이면서도 어떤 인간적인 허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뭐든 말로는 최고처럼 얘기하지만 실제 경기에 나가 한 방에 모래판에 꽂혀버리는 모습은 장혁의 액션(?)에 실감을 만들어주었다. 즉 폼은 멋있고 또 체력적으로도 대단하지만 실전은 역시 실전이라는 것.

 

하지만 수방사 특임대에서 장혁이 보여주는 액션은 심지어 교관들조차 압도되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이것은 수방사 특임대가 다른 부대에 비해 훈련 강도가 약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장혁이 너무 잘 하고 있기 때문일까. 물론 실제야 어디 그리 쉽겠냐마는 방송으로 나오는 장면만을 두고 보면 장혁이 잘 하면 잘 할수록 특임대의 훈련이 너무 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진짜사나이>의 존재이유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진짜사나이>의 주인공들은 힘들게 군복무를 하는 일반사병들이지 여기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의 역할은 사병들이 얼마나 열심히 군복무를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또 공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수방사 편에서는 연예인 출연자들이 계급과 상관없이 일반병사들에게 마치 선배로서의 조언을 해주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장혁이 내무반에서 사병들에게 하는 이른바 ‘연애 특강’은 인생 선배로서는 이해되는 일이지만 진짜 군대 생활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수방사편의 훈련내용이 지금껏 나온 다른 부대들에 비해서 너무 약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수방사편에서 일반사병 중 가장 많은 방송분량을 만들고 있는 ‘특별한 선임’ 손지민 일병은 연예인 구멍병사보다 더 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 심지어 손지민 일병이 받쳐주지 못해 서경석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빗속에서 땀에 범벅이 되어 치르는 유격훈련이나 잠을 자지 않고 훈련을 버텨내는 고강도 무박훈련을 봐왔던 시청자들로서는 수방사가 보여주는 테러진압 훈련이 너무 짜여져 있어 약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부대마다 특성이 있기 마련이고 또 훈련강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느 한 부대에 전입되면 거기에 맞춰 생활하는 군인들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방송을 통해 나가게 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자연스럽게 부대 간의 비교점이 생긴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그 균형을 방송 제작진과 출연진이 잡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출연진은 이전에 다른 부대를 경험하고 온 터이기 때문에 새로운 부대와 부대원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주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시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수방사편은 특히 류수영 같은 <진짜사나이>에 걸맞는 ‘힘겨워도 긍정하는’ 인물이 스케줄 때문에 중도에 부대를 빠져나갔고, 목 부상을 당한 샘 해밍턴이 훈련의 중심에 들어오지 못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의 균형이 깨진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장혁의 영화 같은 액션은 너무 튀는 인상만 남기게 되었다. 연예인들이 일반인들과 사병들 사이에 어떤 소통의 고리를 만들어주는 것. 수방사편은 <진짜사나이>의 그 진면목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연기는 과정, 비판 없으면 성장도 없어

 

연기력에 있어서 김태희와 수지는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맞는 얘기다. 연기자 출신으로 연기 경력이 10년이 넘은 김태희와, 가수 출신으로 이제 갓 연기를 시작한 수지의 연기력을 비교한다는 건 어딘지 공정치 않아 보인다. 즉 이들의 연기력을 상대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그저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의 캐릭터를 얼마나 잘 소화해내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게다.

 

'구가의 서(사진출처:MBC)'

대중과 언론의 대체적인 평가를 보면 김태희는 늘 그렇듯이 연기력으로 욕을 먹고, 수지는 칭찬받는다. 김태희가 욕을 먹는 근거 중 가장 큰 것은 그렇게 오래 연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지가 칭찬받는 이유는 본격적인 연기자도 아니고 연기를 오래하지도 않았지만 연기가 못 봐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잣대 자체가 다르다.

 

그렇다면 김태희는 정말 연기가 늘지 않았고 지금 하고 있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라는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는 존재일까. 또 수지는 과연 몰입에 방해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연기를 해주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연기자에 대한 일정부분의 편견과 정서가 작용한다. 김태희 하면 어느 순간부터 당연히 연기력 논란이라는 연관검색어를 떠올리는 관성이 있다. 반면 <건축학개론>의 후광효과로서 수지는 만인의 연인,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이미지화되는 경향이 있다.

 

시청률도 무시하지 못한다. 가혹한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시청률이 부진하면 그 희생양으로 여배우의 연기를 드는 경향이 있다. 괜찮은 시청률을 보였던 <아이리스>에서도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래도 멜로와 액션을 넘나든 괜찮은 연기라는 평도 있었다. 당시 KBS 연기대상에서 김태희는 우수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장옥정>은 어떨까.

 

<장옥정> 방영 초반에 김태희에 대한 연기력 논란이 쏟아진 건 연기의 문제도 있었지만 캐릭터와 시청률의 영향도 컸다. 김태희 연기의 문제는 본인이 연기하는 자신을 자꾸 의식한다는 데 있다. 연기력 논란이 생기면 이런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보일까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장옥정의 진짜 캐릭터(독하게 변해가는 모습)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래 대중들이 갖고 있던 장희빈의 이미지와 김태희가 초반 연기하는 장옥정은 부딪침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시청률의 추락은 더더욱 이 모든 것이 김태희 연기의 문제로 몰리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장옥정이 본래의 캐릭터를 회복하는 순간부터 김태희의 연기는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김태희는 자신에게 쏟아진 연기력 논란의 문제를 장옥정이라는 캐릭터 속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연기자로서는 영리했던 선택이다. 드라마 속에서 악에 받친 듯한 한스러운 눈빛은 어쩌면 김태희 자신의 답답한 마음의 토로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선택은 그녀가 연기를 삶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과거 장희빈을 다룬 작품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 연기와 비교되는 지점도 있다. 하지만 연기로만 따지만 이번 작품은 과거의 작품들과 비교해 결코 쉽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에서 특히 장옥정이라는 캐릭터의 연기가 어려운 것은 처음부터 악독한 인물이 아니라, 그 악독해져가는 변화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이었다가, 궁으로 들어와서는 사랑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점점 독해지고 나중에는 결국 자신을 잃고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변화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연기다.

 

그렇다면 <구사의 서>에서 수지가 연기하는 담여울은 어떨까. 사극 연기가 처음이라 쉽지 않다고 하지만 <구가의 서>는 본격적인 사극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판타지에 가까운 <구가의 서>는 그래서 현대 어투를 사용해도 그다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담여울이라는 캐릭터는 수지가 늘 해왔던 연기의 연장선이다. 운명적인 사랑의 아이콘. 때론 남자처럼 털털하고 그러면서도 두근두근 설렘을 주는 캐릭터. 이것은 연기라기보다는 수지가 가진 이미지의 매력 그 자체다. 수지는 여전히 <건축학개론>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게다가 우리는 수지에게 엄청난 연기력이나 연기 변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만일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자리한 수지가 장옥정 같은 악역을 연기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누구나 미스 캐스팅으로 여길 것이다. 수지에 대한 기대치는 바로 수지 자신이 갖고 있는 순수한 이미지를 캐릭터로 끌어오는 것에서 만족된다. 이것은 연기의 영역이 아니다. 캐스팅의 영역일 뿐.

 

김태희와 수지의 연기를 비교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경력이 어떻든 출신이 어떻든 둘 다 드라마를 통해 대중들에게 연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또 앞으로 할 것을 기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각자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여러모로 김태희의 연기에 쏟아지는 비난은 그녀에게는 훗날 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과거의 CF스타의 모습과는 달리 이제 진정으로 김태희가 연기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장옥정이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는 그래서 그녀에게 연기자로서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도 높다.

 

반면 어떤 연기를 해도 칭찬받는 수지는 만일 연기를 앞으로도 계속 할 요량이라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나오는 칭찬이란 기대치가 낮거나 캐릭터에 대한 연기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지 본인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는 시간이 흐르면 소멸되고 만다. 연기자는 자신의 이미지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로의 변신이 가능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남자 배우들보다 여배우들은 귀하다. 이렇게 된 것은 대중들이 여배우에게 갖는 이미지가 남자 배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배우들은 논란도 많이 겪게된다. 나이 들거나 사랑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하는 것들은 여배우에게는 하나의 넘어야 할 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김태희도 수지도 바로 그 귀한 여배우들이다. 그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우리 대중문화를 풍성하게 해줄 좋은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비난도 칭찬도 모두 약이 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장옥정>의 끝없는 추락, 그 이유는 뭘까

 

역시 김태희의 사극 캐스팅은 무리수였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의 시청률이 7%대까지 추락하면서 그 원인으로 김태희의 연기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어색한 표정 연기와 어려운 사극 톤에 어울리지 않는 발성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일까. <장옥정>의 부진은 과연 온전히 김태희의 연기력 부족 때문일까.

 

'장옥정 사랑에 살다'(사진출처:SBS)

물론 김태희의 연기력은 <아이리스>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되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극 특유의 맛을 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사극의 대사 톤은 현대극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일상적인 발성으로는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사극 특유의 연기 톤을 자기 특유의 색깔과 맞춰 자기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김태희의 목소리는 복색만 한복을 입었을 뿐, 현대극의 그것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태희의 연기력보다 더 큰 문제는 연기자들 사이에 조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옥정>의 유아인과 김태희 캐스팅은 극중 캐릭터와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 멜로 드라마의 경우 드라마를 보는 관점은 캐스팅된 배우들의 조합 그 자체가 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나이 많은 김태희와 한참 어려보이는 유아인의 조합은 자연스러운 멜로의 결을 만들어내는데 장애요소가 되는 게 사실이다.

 

이런 남녀 연기자들 사이의 조합 문제는 동시간대 타 방송사의 드라마들과 비교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직장의 신>의 김혜수와 오지호 조합이나, <구가의 서>의 이승기와 수지의 조합을 생각해보라. 그 캐스팅 자체가 기대감을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기대한 대로 김혜수는 카리스마와 코믹과 슬픔을 모두 껴안을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오지호는 <환상의 커플>과 <내조의 여왕>에서 보여줬던 코믹하고 과장된 캐릭터를 잘도 소화해내고 있다. 또 <구사의 서>의 이승기와 수지는 그 확실한 비주얼만큼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것도 작품 속 캐릭터의 힘이 만들어내는 착시현상일 수 있다. 본래 연기력 논란은 캐스팅 논란이나 캐릭터 논란과 겹쳐져 나타나곤 한다. <장옥정>은 사극의 옷을 입고는 있지만 현대극을 더 많이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제목을 장옥정으로 달고 있기는 하지만, 만일 다른 이름으로 한다고 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서 장옥정은 심지어 그 시대에 패션쇼를 여는 패션 디자이너다.

 

만일 장옥정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들이대지 않았다면 조선시대의 패션 디자이너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을 수 있다. 실제로 군복 디자인을 하기 위해 이순(유아인)의 친위대 비밀야영지로 들어온 장옥정이 군복을 직접 입어보고 군영을 체험하는 장면은 사극으로서는 이색적이다. ‘옷을 만드는 여인’이 그저 미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군사력을 위한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장옥정이라는 역사적 인물로 그 패션 디자이너를 세우자 충돌이 생겨난다. 장희빈으로 기억되는 그 강렬한 이미지는 아마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비록 악녀로 낙인찍히기는 했어도 그 절절함과 절실함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장옥정>에 등장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기존 장희빈이 갖고 있던 그 절실함이 빠져 있다. 오로지 사랑에 목매는 여인이라도 역사적 인물로서 장희빈을 내세웠다면 적어도 그 절절함만큼은 가져갔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장옥정>은 기존 장희빈을 기억하는 사극의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가벼운 사랑타령이 되어버렸고, 또 새로운 사극을 희망하는 젊은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옷(무려 장희빈이라는!)을 입은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마치 조선판 패션 디자이너를 그리는 퓨전사극에 어색하게도 장희빈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억지로 꿰어 덧댄 느낌이다. 작품이 이렇게 어정쩡한 선에 서 있으니 그걸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입은 캐릭터라는 옷이 잘 맞을 리 없다. <장옥정>의 추락은 물론 김태희 연기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바로 현대극인지 사극인지 알 수 없는 위치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작품의 문제가 더 클 수 있다.

안구정화의 미모에서 연기자의 얼굴을 보여준 김태희

김태희가 이렇게 예뻤던 적이 있을까. 겉모습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달라진 연기 때문이다. '마이 프린세스'에서 순종의 숨겨진 증손녀인 그녀는 말 그대로 공주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기억이 지워져버린 채,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녀에게서 공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돈이라면 뭐든 할 것 같은 뻔뻔함과 능글능글함으로 무장한 이설이라는 캐릭터에게서 '예쁜 척'은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왜일까. 이런 망가지는 김태희가 그 어느 때보다 예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드라마를 할 때마다 불거져 나온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은 늘 한결 같은 공주 모습(?) 때문이 아니었나. 그녀의 연기 속에서는 극중 캐릭터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모습이 더 보였다. 그래서 겉모습은 공주처럼 예쁘지만 잘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듯한 연기에 시청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김태희가 달라진 건, 아마도 전작이었던 '아이리스'부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리스'에서 그녀는 비로소 얼굴과 몸을 쓰기 시작했다. 사랑스런 모습에서부터 분노하는 얼굴까지 표정이 다양해졌고, 액션 연기에도 아낌없이 몸을 던졌다.

그 연장선에서 '마이 프린세스'는 이제는 좀 더 연기가 편해진 김태희로 돌아왔다. 그녀는 극중 이설이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된 모습이다. 늘 CF 속에서 방금 나온 것 같던 그녀가 김치를 포기채로 들고 죽죽 찢어 먹고, 입에 소스를 묻혀가며 스테이크를 통째로 뜯어 먹으며, 화장실에 가고 싶어 몸을 배배 꼬는 모습을 연기한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과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언뜻 진짜 김태희의 모습이 그 속에서 느껴진다.

표정 연기는 더 감정이 깊어졌다. 있는 대로 감정을 표정에 싣기 때문에 언뜻 눈가와 미간의 주름이 잡히고 그 여신 같은 얼굴이 한껏 벌려진 입과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사정없이 무너지지만, 바로 그런 과감한 표정 때문에 감정전달은 훨씬 좋아졌다.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던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펑펑 울어대는 얼굴에서는 그 진정성이 느껴진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의 연기를 이토록 바꿔놓은 것일까. 먼저 지목되어야 할 것은 그녀의 나이다. 그녀는 이제 서른을 넘겼다. 여전히 매력적인 미모지만 서른이라는 나이는 과거처럼 외모 하나로 버텨낼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니다. 스타에서 배우로의 전환은 절실했을 것이다. '아이리스'부터 달라졌던 모습은 이런 자세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이 나이라는 무게는 거꾸로 그녀를 편안하게 했다고 보여진다. 서른은 숨기기보다는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더 편안해진 나이가 아닌가.

하지만 그저 나이를 먹었다고 연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이 프린세스'에서 그녀가 이설이라는 캐릭터에 완벽히 빙의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캐릭터에 대한 연구가 철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권석장 PD는 그 누구보다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감독이다. 초반 심지어 푼수 같은 모습을 과감하게 보여줌으로써 공주로의 인생 역전 과정은 더 코믹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보여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김태희는 마구 망가진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갖게 되었다. 그저 외모로서 안구정화를 시켜주는 얼굴이 아니라 연기자의 얼굴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연기자가 망가질수록 더 아름다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드라마 볼거리에 대한 눈높이는 높아졌습니다. 과거에는 해외 로케만 하더라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차량 추격전이나 총격전만으로도 볼거리가 되었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 그런 단순 볼거리는 더이상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주지 못합니다. 몇 년 전부터 등장했던 일련의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볼거리라도 어떤 스토리와 맥락을 갖거나 아니면 새로운 연출로 만들어진 볼거리가 아니라면 이제 '돈낭비'했다고 비난할 정도로 시청자의 눈은 높아졌죠.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그 시청자의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통상적인 볼거리에 이야기를 끼워맞추다 실패한 대작드라마들인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의 후속작을 보는 것 같았죠. 다분히 의도된 첫 시퀀스로서의 스카이다이빙 장면은 마치 007시리즈의 한 장면처럼 멋진 것이었지만, 아무런 드라마의 이야기와 맥락을 갖지 못했습니다. 스카이다이빙 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툭 끊어지고 다음으로 말을 타고 달려오는 최강타(송일국)의 모습, 그리고 앞에 나타나는 성. 액션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야기 전개도 아닌 이 그저 순전한 볼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장면들은 송일국의 잘 다듬어진 몸이 아까울 정도로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 첫 장면은 그 후에도 계속 이 드라마가 가진 '맥락없는 볼거리'의 연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수영장 신, 요트를 타는 송일국의 동작 신, 본부(?)에서 펜싱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등등은 이야기 속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보다는 그저 "이 장면 멋있지 않아?"하며 볼거리에 집착하려는 드라마의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내주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이야기로만 본다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단순 복수극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전략을 어떻게 짰어야 했을까요. 볼거리 위주, 즉 액션 위주로 가되 그 볼거리가 독특한 연출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리스'는 영화적인 연출을 통해 볼거리 자체를 즐기게 해주었습니다. '추노' 역시 레드원 카메라를 통해 액션만 쳐다봐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죠. 물론 이 두 드라마의 성공은 볼거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이리스'는 배우들의 호연이 그 뒷받침을 해주었고, '추노'는 연기는 물론이고 대본의 완성도까지 연출, 대본, 연기의 삼박자를 갖춘 드라마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죠. 이들 작품에는 그저 '보여주기 위한 볼거리'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었습니다. 즉 연출의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죠. '아이리스'는 그 국가를 넘어서는 집단들이 만들어놓은 미궁 속에서 끝없이 허우적대고 흔들리는 개인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가 연실 흔들렸고 그 생존의 몸부림은 수없이 많은 컷으로 빠르게 나뉘어짐으로써 긴박감을 연출했습니다.

'추노'는 몸뚱어리 하나로 부조리한 세상과 대결하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그 몸에 집중했고, 그 처절한 몸부림이 심지어 아름다울 수 있게 연출되었습니다. 이 '아이리스'와 '추노'가 보여준 볼거리는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가 보여주었던 그저 '볼거리를 위한 볼거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 '신불사'가 '아이리스'나 '추노'의 볼거리가 아니라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의 볼거리를 선택했다는 점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위해 수개월 동안 몸을 만들어온 송일국의 노력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배우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걸 받쳐주는 대본과 연출이 없는 한 그 비난은 심지어 배우에게까지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드라마에 있어서 볼거리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가져야할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볼거리는 그저 스펙타클이 아닙니다. 이야기의 맥락을 잘 표현해내는 것이 볼거리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을 때, 그저 볼거리를 위한 볼거리로 전락할 때, 드라마는 매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기차가 도착하는 장면만을 찍어서 대중들을 매료시켰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미 우리네 대중들은 수많은 볼거리를 경험해왔고, 또한 드라마들도 새로운 볼거리를 보여주면서 성공사례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메시지보다는 장르적 재미를 추구한 '아이리스'

'아이리스'가 종영했다. 단 20부작으로 두 달여 정도의 여정이었지만 이 작품이 남긴 여운은 꽤 크다. 아마도 그 빈 자리는 한 동안 우리의 뇌리 한 구석에 남아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현장 속에서 흔들리며 짧게 짧게 편집된 숨 가쁜 영상들이 만들어낸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드라마 체험은 우리에게 그토록 새로운 것이었다. 감정선에만 깊게 박혀있던 우리네 드라마의 두 발은 '아이리스'를 통해 저 미드들이나 하는 것이라 치부했던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경험이 단지 실험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리스'가 보여주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것은 '아이리스'가 취한 철저한 오락드라마로서의 자세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아이리스'는 어떤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런 드라마라고 보기 어렵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남북한이 공조해 국가를 뛰어넘는 아이리스라는 새로운 주적에 대항한다는 정도. 하지만 이런 메시지는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고, 각별한 의미를 던져주는 것도 아니다. '아이리스'는 메시지를 추구하기보다는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갖추어야할 장르적 재미를 충실히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미드식의 스파이액션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르적 재미를 우리 드라마에서 본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고, 그것에 우리네 드라마가 갖는 멜로적 감성을 잘 버무림으로써 이 이국의 콘텐츠를 우리 식으로 풀어냈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의다. 스토리는 많은 장르들 속에서 이미 본 듯한 것들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상황 속에서 전개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냉전시대가 지나면서 스파이 액션물들은 사라져 갔지만, 전 세계를 통틀어 유일한 분단국가가 우리나라라는 점은 여전히 이 장르가 유용한 이유가 된다.

따라서 연출은 스파이액션물이라는 오락 장르가 가진 문법에 충실하다. 시종일관 긴장감이 유지되고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며 이야기는 계속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여기에 다른 점이라면 우리 식의 멜로가 적절히 포진한다는 점이다. 최승희(김태희)와 김현준(이병헌)이 일본의 아키타현에서 만들어낸 멜로의 힘은 드라마 전반에 걸쳐 흐르면서 급박한 액션 사이 사이를 채워 넣는다. 겉으로 드러난 멜로와 자신이 누구를 위해 싸우는 지도 모르는 최승희나 김현준 그리고 진사우(정준호)의 액션은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조직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그것은 사적인 멜로와 부딪칠 가능성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마치 양파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듯, 숨겨놓은 조직의 비밀은 이 드라마가 움직이는 추동력이 된다. 이 드라마의 매력적인 인물들이 끊임없이 액션의 상황 속에 들어가는 이유가 비밀에 붙여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액션에 빠져들면서도 궁금증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더해간다. 그리고 이 아이리스라는 조직의 비밀은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성에 김현준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김현준의 죽음으로 안타까운 멜로는 여전히 남았고, 아이리스라는 조직의 비밀에 대한 궁금증 역시 그대로 남아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충분한 재미를 주었지만 거의 출발선 상에 다시 서 있는 셈이다. 그러니 그대로 시즌2를 만든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는 작품이다. 비밀에 싸인 조직이라는 추동력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이고, 그 위를 달려 나갈 새로운 인물들과 그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아이리스'는 계속해서 시즌을 이어갈 수 있다.

지금껏 우리는 드라마라고 하면 지나치게 결과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결과보다는 과정의 재미에 충실하다. 결과에 치중하는 드라마가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과정에 충실한 드라마는 순간순간의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장르 영화가 갖는 사고방식이다. 몇 시간의 값어치에 해당하는 장르적 즐거움을 충실하게 제공하는 것. '아이리스'는 이것이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시즌2를 통해 그 즐거움이 계속되길 기대한다.

‘아이리스’의 이병헌, ‘선덕여왕’의 고현정

이른바 한류스타들의 연이은 드라마 참패 이후, 연기자 파워는 거품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올 최고의 연기자 파워를 보여준 두 인물이 있다. 바로 ‘아이리스’의 이병헌과 ‘선덕여왕’의 고현정이다.

‘선덕여왕’의 성공은 물론 모든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지만, 그 중 미실 역할을 백 프로 이상 해낸 고현정의 힘이 컸다의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사극은 간단하게 말해, 미실이라는 권력을 세워두고, 그 권력을 빼앗아가는 덕만(이요원)의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극의 힘은 전적으로 미실에서 비롯되고 미실에 의해 추진력이 생기며, 미실의 패배로 인해 마무리된다고 볼 수 있다.

고현정은 미실을 연기하면서, 냉혹할 정도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고, 심지어 주인공의 반대편에 선 역할이면서도 주인공이 흠모할 정도의 매력을 발산했다. 덕만의 멘토 같은 역할을 해주고, 결국 덕만을 여왕의 자리까지 올려준 것은 결국 미실이었다. 그러니 그 냉철함 속에 합리적인 사고방식까지 갖추고, 때로는 여성으로서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보여주는 미실이라는 역할이 어찌 무겁지 않을까.

고현정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앉아서 세치 혀와 눈 꼬리를 올리고 입 꼬리를 꼬는 몇 가지만으로도 이 사극을 거의 장악해나갔다. 50부까지 팽팽함을 잃지 않고 사극이 흘러온 힘은 바로 이 미실과 그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의 호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미실의 죽음과 함께 그 드라마의 힘을 책임져야 하는 덕만의 모습이 정치지도자로서의 미실을 닮아간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드라마에서 미실은 사라졌지만, 그 아우라는 여전히 남은 분량 내내 극 속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아이리스’의 이병헌은 드라마 시장에 영화적 실험성을 가미한 이 한국형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다소 모험적인 세계를 대중적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냈다. 이 드라마의 소재나 스토리텔링, 그리고 연출은 결코 쉽거나 대중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의 대중적 인기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이병헌이 보여준 멜로와 액션을 넘나드는 연기에서 비롯되었다 볼 수 있다.

고현정이 한 자리에 앉아서 몸이 아닌 말로 칼바람 나는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였다면, 이병헌은 온 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강력한 액션을 통해 카리스마를 보여주면서도 다른 한 편 촉촉이 젖은 눈빛으로 여성 시청층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몸을 아끼지 않는 폭발적인 액션과, 그 몸이 심지어 슬프게까지 느껴지는 처연한 멜로가 아우러지자, 드라마는 끝없이 달리면서도 그 안에 감정을 포획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이병헌의 존재감이 반가운 것은 그간 우리네 드라마 속에서 점차 사라져가던 남성 카리스마의 부활을 보여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 남성 카리스마는 과거의 마초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감성적인 면이 어우러진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것은 향후 우리 드라마가 그려나갈 남성 캐릭터들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병헌이 가진 연기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병헌과 고현정. 이 두 배우가 올해 최고의 연기자 파워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요인은 뭘까. 그 핵심은 연기자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는 끝없는 새로운 연기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현정은 청순한 이미지 틀에서 벗어나 털털한 이미지를 거쳐 이제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까지 소화해내면서 명실공히 연기자로의 확고한 자리를 만들어냈고, 이병헌은 멜로에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자신만의 연기영역을 확보했다. 이것은 과거 일부 한류스타들이 이미지의 반복을 보여주던 양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즉 이제는 연기의 질만이 연기자 파워를 만들어내는 시대라는 것을 이 두 배우는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대중은 지금 서민들의 영웅을 원한다

영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선덕여왕'은 대부분의 사극이 그러하듯이 수많은 영웅들의 탄생과 성장을 그려냈다. 그 중 덕만(이요원)과 미실(고현정)은 난무하는 칼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세 치 혀만으로도 충분한 정치적 지도력을 선보이며 여성 영웅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여성성의 시대, 이 여성 영웅들의 리더십은 꿈꾸지 않는 작금의 현실 정치가 희구하는 것으로, 대중들은 그 강력한 판타지 속으로 빠져들었다.

덕만과 미실이 그 시대의 정점에 서서 그 통치를 통해 현실을 개척해나가는 영웅이라면, '아이리스'의 현준(이병헌)은 시대가 꺾어버린 개인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래서 그것이 결국은 시대를 바꿔버리는 그런 영웅이다. 그 시대란 다름 아닌 남북분단의 상황이고, 현준은 그것을 고착화시키려는 아이리스와 홀로 대결하는 영웅이다. 남북이라는 소재 때문에 현준은 구태의연한 냉전시대의 영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리스'가 현준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남북의 대결이 아니라 집단과 개인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히어로'의 도혁(이준기)은 서민들의 영웅이다. 삼류잡지사 기자였다가 잡지가 폐간되자 전직 조폭이었던 용덕(백윤식)과 용덕일보를 창간하는 도혁이 싸우고 있는 것은 대세일보라는 거대 언론이다. 물론 도혁은 장총찬 같은 주먹도 아니고, 그렇다고 필력이 뛰어난 기자도 아니지만 그를 '영웅'이라 부르는 것은 대세일보로 상징되는 정의가 사라져버린 시대에 사라진 영웅을 거꾸로 말해준다. 도혁은 정의 하나를 쥐고 있는 인물로서 이 시대의 영웅이 된다. 현실에 존재하는 많은 대세일보 같은 언론사들의 정치적 행보들은 도혁 같은 맨주먹의 정의로운 행동을 대중들이 희구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대중들의 영웅에 대한 희구는 안방극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고전 속의 영웅을 현대로 불러들인다. 홍길동의 후손들이 살아남아 아직도 홍길동이 하던 '대도의 길'을 걷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홍길동의 후예'가 그렇고, 설화 속의 인물이 현대에 깨어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전우치'가 그렇다. 이것은 홍길동과 전우치 같은 이야기가 당대 서민들의 억압을 풀어주는 시대의 영웅으로서 탄생한 것과 맥락이 같다. 이들은 현 시대의 억압 속에 답답해하는 대중들의 마음 한 구석에서 탄생한다.

'홍길동의 후예'는 이른바 '좋은 도둑과 나쁜 도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겉으로 보기엔 착한 일을 하는 것 같은 경제인 이정민(김수로)은 사실은 대중들의 피를 빠는 이 시대의 탐관오리 즉 나쁜 도둑이고, 홍길동의 후예인 홍무혁(이범수)은 그의 금고를 털어 사회에 기증하는 좋은 도둑이다. 이 영화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 사이에서 취하고 있는 자세는 흥미롭다. 이정민은 피규어 매니아로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예를 들면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이나 재패니메이션의 로봇들을 수집하는데, 그의 캐릭터는 종종 이 슈퍼히어로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니 홍무혁이 이정민과 벌이는 대결은 한편으로 보면 이들 할리우드와 일본의 영웅들과 우리네 서민적인 영웅이 벌이는 대결로도 보여진다.

이러한 영웅의 서민적인 면모는 우리네 영웅상의 한 특징이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이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는 자들이라면, 우리네 서민적인 영웅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들은 지구적인 고민보다는 당장 서민들이 갖고 있는 고민들을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서민이 삭제된 정치이기도 하고(선덕여왕), 집단이 꺾어버린 개인(아이리스)이기도 하며, 정의가 사라진 사회(히어로)이기도 하고, 나쁜 도둑들이 판을 치는 세상(홍길동의 후예)이기도 하다. 이 영웅들의 서민친화적인 모습은 그 권위적인 모습을 던져버리는 것에서부터 아예 코믹한 영웅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우리네 영웅을 다루는 영화들이 대부분 액션과 함께 코미디를 장르적 특성으로 갖고 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네 영웅은 볼거리라기보다는 시대적 공감에서부터 탄생하고 있다는 징후일 것이다. 이러한 서민적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날라 다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날카롭게 숨겨진 풍자의 칼날이 이 시대의 억압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이야기 속에서 영웅들이 쏟아져 나오는 양상은 이 시대가 가진 억압들을 말해주기도 한다. 대중들은 지금 영웅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서민적인 영웅을.

'아이리스', 드라마와 영화사이 길을 찾다

'아이리스'의 대중적 인기는 이례적이다. HD나 대형화 되어가는 TV로 인해 안방극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드라마는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간 시도되었던 일련의 블록버스터 드라마들, 예를 들면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 같은 드라마들이 실패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실패는 영화적인 볼거리를 드라마적인 스토리가 따라가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아이리스'의 선택은 볼거리가 아닌 스토리였을까. 그렇지 않다.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새롭지 않다. 우리는 이 드라마 속에서 수많은 영화들과 드라마들에서 보았던 익숙한 설정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아이리스'의 대중적인 성공을 가져왔던 것일까.

'아이리스'의 성공은 장르적인 공식에 충실한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해낸 연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드라마는 그런 점에서 세련된 장르 영화에 가깝다. 이미 반복되어 하나의 형식이 굳어져 있지만, 색다른 연출을 통해 여전히 보는 이에게 쾌감을 주는 장르 영화. '태양을 삼켜라' 같은 블록버스터 드라마 역시 장르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태양을 삼켜라'의 스토리나 연출은 영화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드라마적이다. 영화 같은 장면들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볼거리가 그렇다는 것이지, 영화처럼 장면이 주는 심리적인 효과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 또한 영화처럼 압축되어 있지 않고 상당히 느슨하게 풀어져 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태양을 삼켜라'와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적인 볼거리를 주면서도 그 감각적인 영상이 주는 심리적 효과를 영화적인 차원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현장성을 부각하기 위해 끝없이 흔들리는 카메라나, 짧게 압축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의 연결, 인물의 심리를 포착해내는 섬세한 카메라 앵글 등은 '아이리스'가 그간 보아왔던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의 영상과 확실히 차별되는 지점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스토리 또한 대단히 압축적이다. 첫 회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벌어지는 김현준(이병헌)의 암살과 탈출의 장면들은 4회에서 반복되는데, 이 1회에서 4회 사이의 거리는 대단히 좁다. 그리고 4회에서 5회까지 이어지는 헝가리 시퀀스 역시 그 속도감은 여전하다.

이 속도감 위에 현준과 승희(김태희)가 아키타현으로 여행을 떠나서 보여준 멜로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휴식처처럼 존재하는 이완감으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매력적인 멜로구도는 이어지는 속도의 액션 위에 인물들이 감정을 싣게 해주는 힘이 된다. 이미 공식화된 장르적인 스토리는 오히려 이 감정과 아드레날린의 속도 위로 달려 나가는 쾌감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너무 복잡한 스토리의 영화보다 단순한 스토리 위에 현란한 장면들로 펼쳐지는 영화가 보다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과 같다.

이처럼 '아이리스'는 드라마라는 틀로 들어오면서 장르 영화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초반부 폭발적인 몰입을 이끌어내면서 대중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드라마는 영화와는 달리, 몇 시간 내에 끝이 나는 결과물이 아니다. 따라서 속도감 넘치는 장면들이 주는 몰입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둔감해지기 마련이고, 그 때는 이제 점점 새로울 것 없는 스토리가 드러나게 된다. 즉 새로운 스토리의 부재는 이제 이 몰입감을 더 이상 끌어올리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게다가 초반부 이 드라마는 영화적인 연출에 몰두하면서 중요한 시퀀스 하나를 버리는 실수를 했다. 그것은 현준과 선화(김소연) 사이에 벌어지게 되는 멜로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편집해 버린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멜로는 끝없는 긴장감 속에 이완감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데, 현준과 승희가 서로를 죽은 것으로 생각하며 갈라져 있는 시간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현준과 선화의 멜로가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은 실로 아쉬운 부분이다.

'아이리스'가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액션의 반복이 지루한 감을 주는 것은 여기에 얹어지는 적절한 새로운 스토리가 보이지 않는데다가, 그 속도를 어느 정도 제어해줄 수 있는 장치(이를테면 멜로나 코믹적인 인물 같은) 또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화적 선택을 하면서 드라마적 고려를 잘 하지 못한 이 작품의 모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병헌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액션 속에서도 이병헌의 감정 연기는 이 복잡하고 정신없이 달려 나가는 드라마를 중장년층 여성들마저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이리스'는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서 길을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모색이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행착오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어쨌든 앞으로 매체적인 변화는 드라마와 영화 사이의 거리를 상당부분 좁혀놓을 것이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거두고 있는 일련의 성과들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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