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도 메이저, ‘쌈마이웨이’의 든든한 위로

“네가 있는 곳이 메이저야!”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사회로부터 마이너 취급을 받는 청춘들. 본래 하고 싶었던 일과 갈수록 멀어져 꿈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버텨내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이 드라마는 그런 사회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런 일을 하라고 말한다. 그 곳이 바로 메이저라고.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화려한 삶은 항상 저편에 있다. 동생 병원비 때문에 부정경기를 치르고 꿈이었던 태권도를 접게 된 고동만(박서준)은 마치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진드기 잡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렇게 영영 무도의 길을 떠나 잊고 살아가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의 시간은 김탁수(김건우)에게 경기를 일부러 져주던 그 날에 멈춰 있었다. 태권도 금메달리스트가 꿈이었지만 그 꿈이 꺾어진 자리에 자신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격투기가 있었다. 그는 결국 그걸 선택했고 그 안에서 그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본래 꿈이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였지만 현실은 백화점 안내원으로 살아가던 최애라(김지원)에게 아나운서 박혜란(이엘리야)의 삶은 메이저였다. 그래서 결국 백화점을 그만 두고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면접을 보러다니던 그녀는 의외의 장소에서 자신의 가슴이 뛰는 일을 발견한다. 격투기장에서 선수들을 소개하는 아나운서. 그녀는 그 곳을 자신의 메이저로 삼겠다 마음 먹는다. 

백설희(송하윤)는 꿈이 엄마다. 그래서 6년째 사실혼 관계로 사귀고 있는 김주만(안재홍)을 마치 엄마처럼 자신을 희생해가며 돌본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할 즈음, 의외의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다. 자신이 담근 매실액을 블로그로 본 사람들이 주문을 시작한 것. 그녀의 엄마라는 꿈은 그래서 그 마음을 담은 음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게 된다. 물론 그렇게 스스로를 챙기기 시작하면서 김주만과의 관계 또한 회복된다. 

<쌈마이웨이>의 청춘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 이처럼 본래 하려던 꿈을 그대로 이룬 것이 아니다. 그들은 꿈에서 살짝 비껴난 곳에서 또 다른 꿈을 이어간다. 그것이 세상에서 보기엔 메이저가 아니라고 말할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바로 메이저라는 걸 알게 된다. 

드라마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모두 해피엔딩을 보여주지만 아마도 현실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쪼대로 살아보는 거야”라고 외치는 고동만의 목소리는 적어도 흙수저라고 꿈마저 흙수저일 수는 없다고 믿는 많은 청춘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고 사고를 쳐야 청춘”이라고 말하는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보는 내내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현실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그 난공불락의 저들만의 세상에서 그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이 던지는 발차기와 외침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사는 다세대주택의 옥상에 마련된 남일바의 정경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가진 정서를 한 풍경으로 담아낸다. 어딘지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그 곳 평상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던 곳. 달동네의 빽빽한 집들이 밤이면 아름다운 불빛들을 배경으로 제공해주는 그 곳은 어두워도 그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들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작은 드라마였지만 그 어떤 블록버스터 드라마보다 더 울림을 준 <쌈마이웨이>가 그러하듯이.

‘쌈마이’, 무엇이 이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가로막나

“왜 짐이 이것 밖에 안 되냐?” 이젠 헤어져 자신의 짐을 챙겨달라는 백설희(송하윤)에게 김주만(안재홍)은 화가 났다. 그건 아마도 그녀에게 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리라. 무려 6년 간 사귀면서 그녀가 자신을 위해 산 물건들이라는 것이 한 박스도 안 되는 싸구려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토록 살뜰히도 챙겼던 그녀가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백설희는 결국 김주만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그렇게 빠져나간 백설희의 빈자리를 김주만은 톡톡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매 순간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러니 그녀가 없는 자리가 마치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아프고 허전하고 멍할 수밖에. 

그들이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김주만이 자신을 따르던 인턴 장예진(표예진)의 집에서 어쩔 수 없이 외박을 하고 들어온 것이었지만, 그것만이 이별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이전부터 그들 관계는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지나치게 김주만만을 챙기고 자존감이 바닥인 백설희. 그녀의 사랑은 헌신적이지만, 그런 헌신은 김주만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온통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그녀를 현실적으로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6년 간을 뛰고 또 뛰었지만 그다지 바뀌지 않는 현실. 최고는 아니어도 “중간” 정도를 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녀가 말하는 ‘소소한 행복’은 그에게는 어떤 무력감을 주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김주만과 백설희의 이별은 서로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챙기려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서로 사랑하고 챙기는 것이 행복으로 이어지겠지만, 그것이 무거운 현실 앞에 서게 되자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 백설희를 위해 김주만은 전셋집 한 칸이라도 마련하려 애써왔고, 김주만을 위해 백설희는 그를 챙겨도 자신은 돌보지 않았다. 이들의 이별이 남다른 아픔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쌈마이웨이>는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쉽게 부숴버리는 현실을 담고 있다. 그들은 그저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하고픈 일을 하는 것을 꿈으로 여기고, 최고는 아니더라도 중간 정도의 행복을 원하지만 그건 번번이 갑질 하는 현실 앞에 무너진다. 그 현실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가진 것 없는 흙수저 청춘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비열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쌈마이웨이>는 이런 현실에 대한 청춘들의 ‘돌려차기 한 방’을 그리려 한다. 그래서 일찍이 가난한 현실 때문에 접었던 무도의 꿈을 고동만(박서준)은 다시 걸어가려 하고, 스펙이 없어 접었던 아나운서의 꿈을 최애라(김지원)는 다시 꿈꾼다. 그렇다면 김주만과 백설희는 이 현실 앞에 무너진 사랑 앞에서 어떤 ‘돌려차기’를 보여줄까. 그깟 현실 따위 훌훌 털어내고 다시 그들은 사랑할 수 있을까. 

고동만과 최애라의 꿈이 작게라도 이뤄지길 바라는 것처럼 시청자들은 김주만과 백설희의 사랑이 그 현실 앞에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성공과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바깥에서 얼마든지 꿈을 꾸고 사랑할 수 있기를. 저 부조리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시스템이 그들을 무릎 꿇게 하지 않기를.

‘쌈마이웨이’, 그래 우린 모두 꿈이 있었어

“나처럼 살지 마라.” 아버지의 이 한 마디 속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담겨져 있을까. 이제 지긋한 나이, 그 세월을 살아온 분이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말은 사실 그 삶을 부정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것은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자식에게만은 자신 같은 삶이 반복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하는 말만큼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없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고동만(박서준)은 스스로를 흙수저라 부른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집을 찾아온 아버지 고형식(손병호)에게 그 답답한 속내를 토로한다. “나한테 아버지처럼 살라고 하지 마라. 죽을 똥 싸면서 나 같은 놈 또 만들어야하나 잘 모르겠다. 걔가 흙수저라고 나 원망할까봐.” 하지만 흙수저 청춘의 부모 역시 당연히 흙수저 부모다. 그들 역시 스스로 흙수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그들에게도 꿈이란 게 있었다. 

영업부장으로 새파란 사장 앞에서 잔뜩 고개를 조아리고 갑질을 감내하는 아버지를 본 고동만은 거기서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상사에게 당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한 번도 못해봤던 생각.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그 역시 한때는 자신처럼 꿈이 있던 청춘이었을 거라는 생각. 그래서 소주 한 잔을 따라드리며 꿈이 뭐였냐고 묻자 아버지는 말한다. “내 꿈은 파일럿이었다. 지금은 그냥 너희들이 내 꿈이다.”

그 아버지가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한다. “난 이제 와서 파일럿은 못해도, 넌 사고라도 한번 칠 수 있잖아.” 그리고 아들이 흙수저라고 한 그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지 허세 섞인 한 마디를 덧붙인다. “너 흙수저 아니야. 아버지 앞으로 20년은 더 벌거야. 뒤에 아빠가 딱 있으니까 한번 날아봐라. 들이받고 덤비고 깨져도,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봐.”

<쌈마이웨이>는 가진 것 없는 현실이 만들어낸 ‘쌈마이’ 청춘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청춘들의 부모들 이야기 역시 그 울림이 적지 않다. 족발집 딸이라는 사실 때문에 주만(안재홍)의 집 사람들에게 설움 받는 딸 백설희(송하윤)를 보고 억장이 무너지지만 그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주만에게 자신의 딸을 많이 사랑해주라고 부탁하는 설희 엄마가 그렇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무대에 선다는 소식에 한 달음에 달려오는 최애라(김지원)의 딸바보 아빠가 그렇다. 

가진 것 없이 키워서 흙수저가 되어 현실에 나간 자식들 앞에서 이 부모들은 모두 죄인처럼 살아간다. 자신은 꿈을 지워버리고 흙수저 현실을 살아가며 자식만큼은 그 삶을 반복하지 않고 그들의 꿈을 키워가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흙수저라는 말 속에 이미 들어 있듯이 그 굴레는 고스란히 자식으로 대물림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쟁적인 현실은 이제 정년퇴직을 앞둔 부모 세대가 계속 자식들을 위해 취업전선에 나서야 하고, 그 자식들 역시 이렇게 가중된 경쟁 속에서 취업난을 겪는 이중고로 이어지고 있다. <쌈마이웨이>의 고형식이 아들 고동만에게 던지는 격려가 슬프고도 먹먹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우린 모두가 꿈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현실을 알아버리고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꿈은 이제 아빠, 엄마가 되어간다. 자식들을 대신 꿈이라 치부하며.

‘쌈’, 욕먹을 캐릭터조차 공감하게 만드는 안재홍 연기력

타고난 배려심일까 아니면 쓸데없는 오지랖일까.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김주만(안재홍) 대리가 장예진(표예진) 인턴을 대하는 태도는 한편으로는 공감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화가 난다. 6년 간을 거의 사실혼 관계로 지낸 조강지처 백설희(송하윤)가 있지만 끝없이 대시하는 장예진에게 철벽을 치지 못한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접촉사고를 당한 장예진이 도움을 요청하자 김주만은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물론 사고를 낸 상대 남자들에게 당할 위기에 처한 여성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김주만의 입장은 어찌 보면 ‘회사 동료’로서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움을 주고 굳이 집까지 그녀를 바래다주고 다리를 저는 그녀를 부축해 문 앞까지 데려다주다가, 문 앞에 가득 쌓인 택배박스를 힘들게 옮기려는 그녀를 그냥 보지 못하고 도와주는 모습은 너무 과하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김주만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다. 사실 6년 전 그가 백설희와 가까워지게 된 이유도 바로 그런 타인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배려심 때문이었다. 같은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백설희를 도와주다가 결국 연인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됐던 것. 

그래서 김주만은 자신에게 대시하는 장예진의 모습에서 당황스럽게도 자꾸만 6년 전 백설희의 모습이 겹쳐지는 걸 발견한다. 그는 백설희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추신수가 출전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본다. 그런 그에게 백설희가 서운함을 드러내자 그는 말한다. “6년을 만났는데 어떻게 눈만 보고 있어. 무뎌지는 거지.”

김주만과 백설희의 관계는 <쌈마이웨이>의 이제 막 1일을 선언한 고동만(박서준)과 최애라(김지원)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서로 눈만 쳐다봐도 꿀 떨어지는 고동만과 최애라의 관계가 보는 이들마저 가슴 설레게 만든다면, 김주만과 백설희의 관계는 그 달달했던 시간들이 지나간 쓸쓸함을 담는다. 어쩌면 고동만과 최애라의 그 죽고 못사는 관계도 6년 정도가 지나고 나면 김주만과 백설희처럼 데면데면해질 지도 모른다. 

그래서 <쌈마이웨이>가 담아내려 하는 건 지금 막 스파크가 터지는 사랑의 시작점만이 아니다. 그것은 나아가 그 사랑이 어떻게 시련을 맞게 되고 그럴 때 우리들은 어떤 노력과 결정들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까지다. 김주만과 백설희의 관계는 그래서 이 달달한 청춘 로맨스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들은 과연 이 고비를 잘 넘어갈 것인가. 

주목할 건 이 김주만이라는 현실 남친 캐릭터를 소화해내고 있는 안재홍이라는 배우의 발견이다. 물론 <응답하라 1988>에서 ‘봉블리’라 불리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주목받은 배우였지만 확실히 이번 <쌈마이웨이>는 그가 가진 연기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욕먹을 캐릭터’지만 그것조차 어느 정도는 공감하게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쌈마이웨이>는 현실이 부여한 어떤 틀에 박힌 길에서 소외되어 ‘쌈마이’ 취급을 받아도 ‘마이웨이’를 걷는 건강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니 김주만이라는 캐릭터에게서도 <청춘의 덫> 식의 틀에 박힌 변심이 아닌 무언가 이들만의 해결책이 제시되길 기대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하고 묻던 <봄날은 간다>의 대사가 아닌 <쌈마이웨이>만의 길을 걷길.

‘쌈마이웨이’, 송하윤의 눈물과 엄마의 피눈물

“결혼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 엎으고 우리 설희 앞에 다신 얼씬대지도 마러라. 그 따우 집구석에 나는 우리 딸 안 보낸다.” 이렇게 적으려던 엄마는 썼던 문자를 지워버리고 다시 적는다. “주만아, 잘 지내지? 본지가 오래 되었구나. 설희가 혼자 돌잔치에 가 있다. 설희가 너를 참 많이 좋아한다. 우리 설희 그저 많이 예뻐해다오.” 본래 쓰려던 문자와 보낸 문자 사이에,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느껴지던 본래 쓰려던 문자는 한껏 정제되고 차분한 문자로 바뀌었다. 엄마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엄마와 딸은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읽어내는 걸까. 딸 백설희(송하윤)는 엄마가 주만(안재홍)에게 보낸 문자를 읽는 순간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날 낮 예비시댁의 백일잔치에서 종업원처럼 일하던 자신의 모습을 엄마가 봤을 거라는 걸 그녀는 단박에 알아차린다. 한쪽으로 치워져 있던 쓰레기를 엄마가 치워놓았다는 것 역시.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이라고는 했지만 그걸 봤을 엄마의 마음이 설희를 눈물 흘리게 한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에서 백설희라는 청춘은 지나치게 저자세다.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 고기를 잘라준다. 그녀는 6년 동안이나 남자친구 주만의 뒷바라지를 해왔다. 그 덕에 주만은 홈쇼핑 회사에 들어가 대리를 달고 살아간다. 하지만 백설희는 여전히 주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습관처럼 살아가고, 그것은 그녀의 삶 전체를 저자세로 만들어버린다.

주만은 그녀에게 “네가 모자란 게 뭐가 있냐?”고 질책하며 제발 저자세로 그러지 말라고 한다. 누나네 백일잔치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설희를 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이나 주만의 집안사람들은 설희의 그런 희생에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는다. 늘 그래왔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주만의 집안사람들은 설희가 주만과 당연히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도 부정한다. 

그래도 온전히 그녀를 챙겨주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건 주만이다. 그는 집안 사람들에게 설희를 무시하지 말라고 호통치고, 설희와 결혼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아니면 자신은 결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에게 무작정 달려드는 인턴 장예진(표예진)에게 철벽을 치고, 혹여나 이를 신경 쓸 설희를 걱정한다. 

<쌈마이웨이>는 빈부 격차로 인해 태생적으로 스펙이 결정되는 사회 속에서 가지지 못한 청춘들이 겪는 현실을 멜로로 엮어낸 드라마다. 하지만 그 짠내 나는 현실은 청춘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 청춘의 부모들은 그 현실 앞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죄인이 된다. 백설희라는 청춘이 눈물을 흘릴 때, 그걸 바라보는 엄마는 피눈물이 흐른다. 

족발집을 하는 설희네 가게에서 족발을 자르는 남편에게 설희 엄마가 슬쩍 한 마디를 던져본다. “우리 족발집 때려치고 레스토랑이나 하나 할까?” 낮에 백일잔치에서 주만네 집 사람들이 설희네가 족발집을 한다고 한 말이 떠올라서다. 주만에게 선이 들어왔는데 그 집이 레스토랑을 한다는 이야기에 설희 엄마는 괜스레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왜 그러냐는 남편의 물음에 설희 엄마는 말한다. “그냥 설희가 족발집 딸이라는 게 싫어서.” 

힘겨운 청춘들, 어째서 부모가 죄인이 되어야 할까. <쌈마이웨이>가 던지는 질문이다.

'쌈' 박서준·김지원, 갑질 향한 시원한 돌려차기 위해

도둑을 잡았는데 오히려 도둑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게 한다? 전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우리네 현실에서는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1천만 원 호가의 시계를 훔쳐 나오다 최애라(김지원)에게 발각되자 이 진상 VIP는 자신의 구매능력을 내세워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도둑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매출을 올려주는 VIP 고객이기에 상사는 도둑 잡은 최애라에게 사죄를 하라고 한다. 돈이면 다 되는 씁쓸한 세상의 한 자락이 그 풍경에 잡힌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는 그 청춘들이 몸담고 있는 공간이 의미심장하다. 최애라가 일하고 있는 백화점은 특히 갑질 고객의 행패가 종종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며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물건이 있고 가격이 매겨져 있고 그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고객에 따라 VIP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백화점이란 공간은 자본으로 재구성된 현대판 신분제를 재현하는 곳이다. 

최애라의 더럽혀진 무릎을 보며 분노하는 고동만(박서준)은 “왜 도둑 잡은 애한테 상은 못줄망정 사과를 하라고 하냐”며 소리친다. 아마도 그 분노는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분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게다. 범죄행위까지 눈감아주는 자본의 갑질 횡포라니.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위해 나서준 고동만에게 최애라는 오히려 화를 낸다. 당장 월세가 걱정인 그녀지만 얼떨결에 회사를 나오게 된 그녀는 그깟 무릎 꿇는 일이 대수냐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 속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심경이 담겨있다. 

백설희(송하윤)는 홈쇼핑 계약직 상담원이다. 회식자리에서 그녀는 고기를 잘라주느라 정작 자신은 잘 챙겨먹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그걸 도와주기는커녕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심지어 고기를 너무 잘 자르니 앞으로 회식자리에는 꼭 함께 하자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녀는 오래도록 김주만(안재홍)과 사귀며 뒷바라지를 해왔지만 새로 입사한 부잣집 딸 인턴이 자꾸 신경 쓰인다. 김주만에게 애정공세를 쏟는 그녀 앞에서 백설희는 자꾸만 의기소침해진다. 

이런 감정은 갑자기 나타나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치는 의사 박무빈(최우식) 앞에 선 최애라도 마찬가지다. 고급 자동차로 그녀를 에스코트 해주고 영화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사주지만 어쩐지 최애라는 그게 너무 불편하다. 어느새 그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그녀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백설희가 느끼는 것처럼 최애라 역시 가진 자들 앞에서 위화감을 느끼며 주눅이 든다. 

사실 가진 것이 많거나 적다고 누가 누구를 함부로 대한다거나,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비교되는 현실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딛는 청춘들에게는 절망감을 주는 일이다. 어쩌다 가진 것에 의해 직업도 나아가 그 사람의 존재의 가치까지도 규정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쌈마이웨이>가 담고 있는 청춘들의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갑질 사회의 장벽 앞에서 절망하고 있다. 

고동만이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격투기를 하겠다 마음먹는 대목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응원하게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짠한 면이 있다. 하필이면 격투기장이라는 설정은 아마도 가진 것 없는 고동만 같은 청춘이 몸뚱어리 하나로 현실과 맞설 수 있는 상황을 이 공간이 잘 표징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어디 격투기장 이라고 해도 이 갑질 현실의 그림자가 없을까. 고동만은 결국 김탁수(김건우)의 교활한 함정에 빠져 오른 링에서 피를 흘리고 무너져 내린다. 

이처럼 힘겨운 현실 속에서 그나마 이 청춘들이 의지하는 건 서로에 대한 마음이다. 고동만은 박무빈을 만나고 다니는 최애라를 걱정하고, 최애라는 링에서 쓰러진 고동만을 보며 마치 자신이 당한 듯 아픈 표정을 짓는다. 백설희는 힘겨운 현실 앞에서도 일편단심 김주만을 믿으려 하고 김주만은 불안해하는 백설희를 꼬옥 안아준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풍경은 짠하면서도 예쁘기 그지없다. 

<쌈마이웨이>의 이 청춘들은 과연 갑질 하는 세상에 속 시원한 ‘돌려차기’를 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너무나 거대한 자본의 힘 앞에서 이 청춘들의 한 방은 그다지 힘을 발휘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세상에 던지는 외침이 주는 공명은 결코 작지 않다. 또한 그렇게 아프기 때문에 서로의 사랑이 공고해지는 것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지의 마음도.

‘쌈마이웨이’ 박서준·김지원, 신데렐라 아닌 흙수저들의 연대

도대체 이 청춘들은 왜 이렇게 처연하면서도 예뻐 보일까.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가 청춘멜로라는 장르로 이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 데는 아마도 이처럼 마음 속 깊이 응원해주고픈 예쁜 청춘들의 면면 때문일 게다. 3회 만에 10%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넘겨버린 이 청춘멜로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웃음이 나오다가도 짠해지고, 그 짠한 마음이 이들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며, 나아가 이 흙수저들의 연대에 기꺼이 동참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쌈마이웨이>가 가진 특별한 힘은 이들이 처한 흙수저들의 현실에서부터 비롯된다. 가난한 집안, 동생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승부조작을 하게 된 동만(박서준)은 그 일 때문에 태권도를 더 이상 못하고 진드기 박멸하는 일을 하며 산다.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꿈인 애라(김지원)는 스펙도 배경도 없어 백화점 안내데스크에서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다. 

옛 코치였던 황장호(김성오)로부터 격투기를 할 의향이 없냐는 제안을 받고 동만은 새삼 가슴이 뛰고, 애라는 사내방송팀에서 안내방송을 잠깐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어했으나 그 자리조차 연줄이 없으면 잡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절망한다. 결국 동만은 진드기 대신 격투기를 선택하고, 좌절된 방송의 꿈 앞에 무너져 내린 애라는 동만에 기대 눈물을 흘린다. 

<쌈마이웨이>의 이 흙수저 청춘들은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난 친구들이라는 든든한 빽으로 이 힘겨운 현실을 버텨낸다. 동만과 애라 그리고 주만(안재홍)과 설희(송하윤)는 옥상에 마련된 자신들만의 아지트에서 술을 마시며 마치 아잇적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다시금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흙수저의 현실 앞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 청춘들의 관계는 친구 관계를 슬금슬금 넘어 이성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것을 새삼 알아차리게 되는 건 그들 앞에 금수저들이 다가와 호감을 드러내면서다. 동기의 결혼식에서 한 때의 시비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된 의사 박무빈(최우식)이 애라에게 대놓고 애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동만은 자꾸만 그게 마음에 쓰인다. 동만에게 옛 애인이었던 혜란(이엘리야)이 또 나타나자 애라는 그녀를 막아선다.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청춘 멜로에 가끔 등장하던 신데렐라 이야기 따위는 지워버린다. 신발을 선물하는 박무빈 앞에서 애라는 아무런 설렘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자꾸만 자신을 터치하는 동만에게 자꾸 그러면 자신이 착각하게 된다고 선을 긋는다. 그건 애라가 그를 남자로서 점점 마음에 담고 있다는 뜻이다. 설희가 홈쇼핑 방송을 녹화 중에 체리가 목에 걸려 쓰러지자 주만은 마치 왕자님처럼 달려가 그녀를 구하고 테이블 위에 눕힌 채 인공호흡을 한다. 그 장면이 설희에게는 마치 백설공주의 한 장면처럼 오버랩된다. 물론 그것 역시 왕자님에게 천거되는 백설공주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많은 드라마들이 빈부 격차의 남녀를 세워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이야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놓던 것을 간단히 뒤집어버린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흙수저들끼리 서로 지지해가며 스스로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해나가려 한다. 그것은 꿈에 대한 것이나 사랑에 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쳇말로 ‘쌈마이’ 같은 청춘이지만, 그래도 ‘마이웨이’를 간다는 의미가 담긴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우리네 청춘의 현실이 주는 무게감 속에서도 서로 사랑해가며 무너지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픈 일을 찾아가는 그 과정을 그린다. 힘겨워도 웃으며 서로 어깨를 내어주는 그 모습들은 그래서 짠하면서도 보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게 다가온다. 

아마도 <쌈마이웨이>는 청춘들에게는 공감 가는 자신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중년들에게도 이 드라마가 마음을 잡아끄는 건 거기 담겨진 어떤 부채감 때문이다. 저들이 겪고 있는 저 어려운 현실들이 어찌 보면 이전 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결과라는 부채감. 그래서 그들에 대한 지지의 마음은 더욱 커진다. 이것이 평범해 보이는 청춘 멜로 <쌈마이웨이>가 가진 특별한 힘의 원천이 아닐까.

‘임금님의 사건수첩’, 봉골레 파스타와 봉블리가 사극서 만났을 때

이선균과 안재홍이 아니었다면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가능한 작품이었을까. 사실 이 코믹추리극은 사극의 틀과는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임금 예종(이선균)이 셜록처럼 추리를 하고 자기만의 은신처에서 모종의 사건을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라는 설정이 그렇고, 사관 이서(안재홍)가 한번 보면 사진처럼 기억해내는 놀라운 시력으로 그를 수행한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배트맨과 로빈, 혹은 셜록과 와트슨의 코믹 버전 사극판이라고 해야할까. 

사진출처:영화<임금님의 사건수첩>

하지만 이런 부조화를 적절한 긴장감과 웃음으로 유화시켜주는 건 다름 아닌 배우 이선균과 안재홍이다. 이선균은 특유의 그 굵직한 목소리가 갖는 임금님의 위엄(?)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봉골레 파스타!”로 기억되는 코믹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 위엄이 슬쩍 슬쩍 무너질 때 이 예종이란 캐릭터는 웃음을 유발한다. 

아울러 이선균이 이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임금님의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해낼 수 있게 된 건 다름 아닌 그걸 받아주는 조금은 억울하고 우직하며 선량하기 이를 데 없는 사관 이서를 연기하는 안재홍 덕분이다. 안재홍은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 역할로 우리에게는 ‘봉블리’라는 캐릭터 이미지를 갖게 된 배우가 아닌가. 그 봉블리의 매력은 이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퓨전을 넘어 장르 사극이 그러하듯이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조선시대에 벌어졌을 수도 있는 사건을 현재적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기이한 사건과 그로 인해 번져가는 소문들, 흉흉해지는 민심 같은 것들이 음모론과 결합하여 임금님을 옥죄는 가운데, 이를 과학적으로 풀어나가는 예종의 추리가 흥미롭다. 물론 그 과정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건 예종과 이서의 주종관계에서 비롯되는 코미디들이다. 

영화는 초반 여러 사건들과 캐릭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금 지루함을 보이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중반 이후가 지나고 나면 스펙터클한 사건들과 연발 터지는 코미디가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의외로 이서의 예종에 대한 충직한 모습이 뭉클한 브로맨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악역으로는 정평이 난 김희원과 최근 여러 작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배우 김홍파가 가벼울 수 있는 이야기에 무게감을 얹어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조선명탐정>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작품들이 그래왔듯이 사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연휴나 명절 같은 시기에 별다른 부담 없이 가족들이 함께 보기에 적합한 영화다. 대단한 메시지나 의미를 찾기보다는 가벼운 오락 기획물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작품 역시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지금의 시국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면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메시지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다지 문제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임금님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작품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이선균과 안재홍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한 점이 주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연기라기보다는 이들이 가진 독특한 코미디적인 이미지를 사극의 캐릭터와 잘 맞춘 점이 효과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벌이는 한바탕 모험과 웃음. 꿀 같은 연휴에 가족과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꽃청춘>이 봐야할 아름다움, 풍광이 아닌 사람들

 

tvN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편에서는 이 여정의 최종 목적지인 빅토리아 폭포에 도달한 청춘 4인방의 이야기를 보여줬다. 실로 놀라운 풍광의 빅토리아 폭포였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멀리서 보면 물안개가 끊임없이 피어나고 무지개는 무시로 걸려있어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그걸 목도한 청춘들의 감회가 없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압도적인 풍광 앞에 말을 잇지 못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치 동화에 세계에 들어간 것만 같은 풍광 속에서 폭포를 옆에 두고 걸어오는 네 사람의 모습은 한 마디로 그림 같았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거기까지 달려가면서 봐왔던 장면들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막과 동물의 왕국을 연상시키는 사파리 그리고 도시를 거쳐 물의 축제가 벌어지는 빅토리아 폭포까지.

 

아마도 시청자들이 이런 느낌을 가질 정도니 거기 직접 여행에 참여한 출연자들과 제작진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그 아름답고 심지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광은 압도적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풍광들보다 더 아름다운 청춘들의 모습이 있었다. 류준열, 안재홍, 고경표 그리고 박보검. 이 네 사람의 마치 형제처럼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마음은 청춘의 고단함 속에서도 빛나고 있었으니.

 

경표형이 텐트 쳐주시지 재홍이형이 밥 먹여주시지 준열이형이 운전해가지고 이곳저곳 다 데려다 주시지 저는 아무 것도 해드리는 게 없는 거예요.” 박보검은 인터뷰에서 형들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실로 류준열은 6백 킬로가 넘는 거리를 괜찮다며 홀로 운전했고, 안재홍은 변변찮은 재료로도 최고로 맛나는 음식을 매번 챙겨줬으며, 고경표는 뚝딱뚝딱 텐트 치고 접는데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말하는 박보검 역시 형들을 알게 모르게 챙기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모르게 옷을 개어주고, 설거리를 하거나 정리정돈을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카메라 곳곳에서 잡혔다. 게다가 피곤할 형들을 위해 차에서 잠을 자는 걸 자청하기도 했다. 그런 동생을 위해 형들은 숙소 침대를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러고 보면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 아름답게 여겨진 건 이들 네 사람이 보여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총무를 덜컥 맡아 남들은 즐길 때 홀로 돈 계산에 걱정을 하는 고경표나, 학교 선배이기도 한 안재홍이 그런 고경표가 부담 때문에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모습. 운전이 미숙해 번번이 사고를 낸 박보검에게 짐짓 괜찮다며 등을 두드려줬던 류준열이나 그런 형들이 고마워 무슨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부터 글썽이는 박보검.

 

압도적인 풍광이나 도로 위로 지나가는 기린, 가까이서 보이는 코끼리와 온통 분홍빛으로 호수를 물들이는 홍학 떼들의 비현실적인 장면들.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 편에는 그 어떤 여행보다 그런 이국적인 장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눈에 더 띄고 공감하게 되는 건 어떤 청춘들보다 더 서로에 대한 마음이 컸던 네 청춘이 아니었을까. 아프리카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힘겨웠던 시절을 겪었기에 더 절절했을 그 마음.

<꽃청춘>, 높이 난 만큼 추락의 상처도 깊지만

 

tvN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편은 나영석표 예능이 늘 그래왔듯이 그 기획부터 이미 대박이었다. <응답하라1988>로 한창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4인방, 류준열, 고경표, 안재홍, 박보검이 출연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종영으로 아쉬움이 남았던 시청자들이라면 그 연장선으로서 <꽃보다 청춘>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고픈 마음이었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이미 <응답하라1988>의 포상휴가를 떠났던 그들이 푸켓에서 나영석 PD에게 납치(?)됐다는 소식이 나오자마자 대중들은 반색했다. 대중들이 정확히 원하는 그 포인트를 나영석 PD 특유의 오글거리지 않는 스타일로 짚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아프리카로 떠난 그들. 이런 상황 자체를 뒤늦게 통보받고 후발대로 박보검이 합류하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다 모인 그들이 마치 형제처럼 서로를 토닥이며 여행을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훈훈함을 주었다.

 

그들은 한 번도 그런 여유를 만끽한 적이 없었던 청춘들처럼 들떠 있었고, 모든 것 하나하나가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 억눌렸던 청춘의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풀려났던 것이 문제였던가. 가운을 입고 조식을 먹으러 가는 장면과 수영장에서 팬티까지 벗어 던지고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 아슬아슬한 느낌을 안은 채 방영되었다. 청춘의 한 때 치기라고 볼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비매너 논란은 의외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지금껏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에서 자잘한 논란거리는 나왔지만 이만큼의 큰 파장은 처음이다. 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나영석 PD의 성향이지만 어딘지 이번 논란을 일으킨 장면들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늘 출연자도 제작진도 또 시청자도 즐겁고 흐뭇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추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논란의 장면들은 출연자와 제작진은 어떨지 몰라도 결코 시청자들이 편안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제작진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의외로 그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청춘의 한 때로서 이해할 수 있다는 동정적인 시각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늘 비호 받는 나영석 PD표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 또한 등장하기도 했다. 즉 이제는 비매너 논란이라는 사안 자체에서 벗어나 지금껏 늘 대중들에게 호의적이었던 나영석 PD표 프로그램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어쩌면 이것은 논란 자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결국 나영석 PD에 대한 무한지지는 그 프로그램들이 워낙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웬만한 논란이 나와도 나영석 PD가 나서서 한 마디 하면 가라앉을 수 있었던 건 그래서다. 그렇다면 <꽃보다 청춘>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꽃보다 청춘>이 예전만큼 재미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이미 아이슬란드편에서부터 조금씩 흘러나왔다. 물론 아이슬란드라는 놀라운 풍경들이 모든 걸 압도하고 있었지만 본래 <꽃보다 청춘>의 재미는 거기 출연하는 인물들의 새로운 면모에서 나온다. 하지만 아이슬란드편에서 인물들보다 주목된 건 풍광이었다. 오로라는 멋있었지만 거기 출연하는 인물들은 새롭다기보다는 이미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알고 있던 이미지의 재연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었다.

 

이것은 곧바로 이어진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편도 마찬가지다. 물론 <응답하라1988>로 한껏 높아진 관심 때문에 첫 회부터 두 자릿수 시청률을 내는 대박 아이템이 되었지만 그 인물들은 <응답하라1988>의 캐릭터를 반복해서 보여줄 뿐 새로운 면모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들의 새로운 면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류준열은 의외로 뛰어난 소통능력과 추진력을 보여주었고, 안재홍은 긍정적이며 여유 있는 성품을 드러냈다.

 

중요한 건 그런 면모들이 그다지 부각되는 느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꽃보다 청춘>이라는 시리즈가 반복되면서 생겨난 피로가 아닐까. 그나마 시즌제로 어떤 휴지기를 두고 방영됐을 때는 새로운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아이슬란드편에서 바로 나미비아편으로 이어지면서 그건 반복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장소와 풍광만 달라졌을 뿐.

 

나영석 PD는 이제 새로운 아이템을 시작해야 할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꽃보다> 시리즈도 아니고 그렇다고 <삼시세끼>도 아닌 또 다른 참신한 아이템만이 그의 비상을 지속가능하게 해주지 않을까. 이번 <꽃보다 청춘><응답하라1988>의 콜라보는 시청률에서는 대박을 내주었지만 나영석 PD표 예능 프로그램에는 큰 상처를 주었다. 그간 늘 높이 날아왔기 때문에 이번 추락의 충격은 더 깊을 수 있다. 하지만 나영석 PD에게 이것은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항상 대중들의 눈높이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던 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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