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재, 믿고 보는 스포츠 아나운서의 진가

언젠가부터 월드컵 시즌이 되면 지상파 방송 3사는 스타플레이어들을 해설자로 앉히려 안간힘을 쓴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도 예외는 아니다. MBC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충분히 방송경험이 다져진 안정환을 세웠고 KBS는 지난 월드컵 시즌에 문어영표라 불리며 논리적인 예측을 했던 이영표를 내세웠으며, SBS는 영원한 캡틴 박지성을 처음으로 해설의 자리로 끌어냈다. 

해설자들에 따라 중계의 맛이 확실히 달라지고 또 다양해지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이 해설자들 틈에서 유일하게 믿고 보는 캐스터가 눈에 띈다는 건 특이한 사실이다. 바로 SBS 아나운서 배성재가 그 인물이다. 이미 축구만이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 중계에서 맹활약을 하며 공고한 팬층까지 확보하고 있는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가 바로 그가 아닌가. 

이번에 SBS의 해설자로 박지성이 들어오게 된 것도 사실상 배성재와의 친분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박지성이 결혼한 김민지 아나운서를 소개해준 장본인이 바로 배성재다. <양세형의 숏터뷰>에 나온 박지성은 자신이 SBS 해설을 맡게 된 이유로, 배성재의 적극적인 설득이 있었다고 피력한 바 있다. 그가 축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대중들과 나누었으면 한다고 설득했다는 것. 

배성재 아나운서가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가 됐던 그 과정은 드라마틱한 일화로 남아있다. 2006년 SBS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본인이 하고 싶었던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했던 배성재는 한 스포츠 경기 중계를 하면서 선배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고 한다. 처음 하는 스포츠 중계지만 너무나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 결국 그는 사내 경쟁을 뚫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메인 캐스터로 뽑혀 차범근 해설위원과 환상의 콤비를 보여줬다. 

SBS 아나운서실의 현역 최고참인 김태욱 아나운서는 배성재의 중계 스타일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신구의 조화’라고 표현했다. 즉 배성재의 중계는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옛날스타일이지만 동시에 지금 세대들이 좋아하는 유머 감각 같은 것들을 겸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배성재의 중계를 듣다 보면 꽉 짜여진 빈틈없는 경기중계 속에서 때때로 긴장감을 풀어주는 유머가 더해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을 때도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유머 섞인 말들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상당한 정보가 이미 들어가 있어 씁쓸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피어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번 스웨덴전에서 패널티킥으로 한 골을 넣은 스웨덴 선수들이 계속 넘어져 부상을 이유로 시간을 끄는 모습에 배성재 아나운서가 “스웨덴이 가구 브랜드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한데 편안하게 쉬다 일어난다”는 말 같은 게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배성재 아나운서의 캐스터로서의 능력보다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건 그가 가진 남다른 인성이다. 사실 아나운서로서 꽤 유명한 스타덤에 올라있는 게 사실이고 그래서 프리랜서로의 유혹도 많지만 배성재 아나운서는 지금 현재의 자리에 그 누구보다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실 지금은 아나운서도 두 부류로 나뉘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나는 방송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에 만족해하는 아나운서와, 다른 하나는 방송사 바깥으로 나와 프리랜서로 방송인이 되는 아나운서다. 대부분은 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프리랜서를 택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로서 자긍심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배성재 아나운서처럼 방송사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한 모습은 다른 아나운서들에게도 어떤 귀감이 되지 않을까. 조금 유명해지면 프리 선언하고 방송인으로 전향하기보다는, 자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성장을 거듭해 최고의 역할을 해내는 그런 아나운서.(사진:SBS)

볼 것 없던 스웨덴전, 중계 대결 승자는 KBS 이영표

러시아월드컵 한국 대 스웨덴 전은 0대 1로 우리 팀이 패배했다. 워낙 팀 사이의 기량 차이가 컸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예상된 결과였다. 하지만 전후반을 통틀어 이렇다 할 슈팅 몇 번 차보지 못하고 거의 수비에 주력하다 파울로 페널티킥을 허용하면서 패배했다는 사실은 시청자들로서는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지더라도 열심히 했다는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받지 못한 건 그래서다. 

경기가 워낙 볼 게 없어서였을까.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는 경기보다 스포츠중계대결이 더 치열한 느낌이다. 지상파 3사가 각각 해설자로 내세운 KBS 이영표, SBS 박지성 그리고 MBC 안정환은 러시아로 가기 전부터 여러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들의 스포츠중계를 홍보했다. 지난 월드컵 시즌 때 문어영표로 불리며 분석에 근거한 해설을 보여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이영표는 이번에도 경기 전부터 다양한 분석들을 내놓았다. 그는 우리 대표팀이 2002년 월드컵 이후 첫 경기에서 패배한 적이 없고 그 상대가 유럽팀이었다는 분석을 통해 기대감을 높였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박지성은 <양세형의 숏터뷰>, <집사부일체> 등에 출연하면서 자신이 SBS의 월드컵 경기 해설을 맡게 된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자신의 아내인 김민지 아나운서를 다름 아닌 배성재 캐스터의 소개로 만나게 됐다는 사실을 전했고, 해설을 통해 자신이 축구를 보는 방식을 국민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양세형의 숏터뷰>에서 경기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냐는 집요한 양세형의 질문에, 낙관적이지 않다는 솔직한 분석을 내놓으면서 결과보다는 경기를 우선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포츠중계에 있어서 박지성은 자신의 경험을 담은 해설을 선보였지만, 소리 자체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전달의 문제가 지적되었다. SBS 중계는 그래서 배성재 캐스터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강했다. 워낙 스포츠 중계를 잘하고, 목소리가 귀에 잘 박히는 배성재 캐스터이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이영표와 안정환의 해설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영표는 자신이 배워야 할 해설자라고 말했고, 안정환은 직설적인 해설로 재미가 있다고 말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번 중계에서 안정환의 해설은 과거 같은 직설적인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다. 훨씬 차분해졌지만 그래서 재미는 조금 반감된 느낌. 과거 김성주와 함께 콤비를 맞췄을 때와 사뭇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러시아월드컵 우리팀 첫 경기인 스웨덴전의 중계 대결 결과는 일단 이영표의 손을 들어줬다. 아무래도 플랫폼의 힘이 더해진 결과겠지만 KBS는 무려 17%(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내며 압도적인 우위를 드러냈다. 2위는 SBS(12.5%), 3위는 MBC(11.4%) 순이었다. 

사실 이번 러시아월드컵은 우리 팀이 죽음의 F조에 배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그다지 기대하기 어렵다는 예측들이 일찌감치 나왔다. 스웨덴, 멕시코, 독일 그 어느 팀 하나도 쉬운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측대로 스웨덴전은 이렇다 할 경기를 보여주지 못한 채 패배했다. 경기보다 더 치열한 느낌을 준 건 스포츠중계 대결이었다. 2002년 월드컵의 주역들이 나선 해설 대결. 여전히 우리 축구는 그 때의 추억 속에 머무는 느낌이다. (사진:SBS)

안정환의 거친 말투, 해설보다 예능이 낫다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경기만큼 뜨거웠던 것이 바로 중계 전쟁이었다. 처음 그 승기는 MBC가 확실히 잡은 것처럼 보였다. 이미 <아빠 어디가>를 통해 친숙한 이미지를 갖게 된 김성주와 안정환이 나란히 축구 중계석에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KBS 중계를 했던 이영표의 승리로 돌아갔다.

 


'쿡가대표(사진출처:JTBC)'

심지어 문어영표, 표스트라다무스라는 애칭이 생겨날 만큼 이영표는 확실한 논거와 자료를 들어 해설하면서 축구 해설만의 재미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김성주의 안정된 진행에도 불구하고 안정환의 해설은 만담처럼 들렸다. ‘때땡큐나 다소 거친 표현들이 등장해 자극적인 재미를 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축구 해설의 묘미는 아니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 후 <아빠 어디가>도 폐지되고 안정환은 좀체 그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슬쩍 모습을 드러낸 것이 KBS<청춘FC>였다. 역시 안정환의 텃밭은 축구였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예능적인 모습이 아니라 축구와 축구를 하려는 후배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진심어린 모습으로 보여줬다. 이 진정성은 안정환이 그저 리환이 아버지도 아니고, 다소 자극적인 말투로 만담 같은 입담을 뽐내는 예능인이 아니라 본래 축구인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주었다.

 

그렇게 안정환의 진심어린 모습이 바탕을 만들어내면서 그는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시 그의 진가를 끄집어내는 인물은 오래도록 호흡을 맞춰온 김성주였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함께 출연해 축구 얘기보다는 나이트 얘기를 더 많이 꺼내 놓으면서 솔샤르를 미드필더라 했다가 쏟아지는 반발에 축알못(축구 알지도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방송은 예능적인 재미를 만들어주었다. 첫 출연에 우승. 안정환과 김성주의 조합의 힘을 확인시키는 순간이었다.

 

이 조합이 보여준 성과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MC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어주었다. 정형돈의 부재로 인해 그 빈자리를 채워줄 인물로서 일일 MC로 참여한 안정환이 결국 고정으로 자리하게 된 것. 여전히 거친 면이 분명하지만 안정환은 프로 MC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형돈과의 비교점을 빗겨갈 수 있었다. 프로 MC를 대신 세우려 했다면 대체불가 정형돈과 비교되며 힘겨웠을 그 자리가 이런 프로그램 자체가 낯선 안정환이 들어오자 색다른 분위기로 만들어졌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자리에 들어가면서 그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쿡가대표>에도 자연스럽게 발탁됐다. 명절 파일럿으로 방영됐던 <미래일기>에서도 할배가 된 안정환은 꽤 괜찮은 느낌을 선사했고, <인간의 조건>에서도 특유의 소탈한 모습으로 호감을 만들어냈다.

 

해설에서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던 그가 예능에서 이처럼 짧은 시간에 대세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예능에서 보이는 모습은 말 그대로 축구에서 보면 스트라이커에 가깝다. 늘 전면에 드러나진 않지만 한 번 기회를 잡으면 누구보다 화려하게 센 모습을 드러낸다. 해설에서 거칠게 다가왔던 말투는 예능에서는 오히려 진솔하게 느껴진다.

 

물론 아직 안정환은 원석에 가깝다. 하지만 늘 새로운 얼굴에 갈증을 느끼는 예능에서 그가 올해의 유망주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김성주 없이 홀로서기를 하게 됐을 때 비로소 안정된 방송인으로서의 안정환의 위치가 만들어질 것이지만, 다소 거친 현재의 원석 상태가 어쩌면 대중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 않을까.

<쿡가대표>의 강호동, 완벽한 조합에 빠진 한 조각

 

JTBC <쿡가대표><냉장고를 부탁해>의 글로벌 버전 같은 느낌이다. JTBC<비정상회담>의 성공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확장시켰던 것처럼, <쿡가대표><냉장고를 부탁해>를 국가 대항전으로 확장시켰다. 그간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15분 요리 대결을 선보이며 대결했던 셰프들은 이제 국가 대항전 속에서 한 팀이 되어 타국의 요리사들과 일전을 벌여야 한다.

 


'쿡가대표(사진출처:JTBC)'

우리 팀의 장점은 15분 요리 대결을 여러 차례 하면서 갖게 된 경험일 것이지만 타국의 요리사들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있다. 홍콩에서 벌어진 첫 대결에서 주방이 낯선 최현석 셰프는 당황하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크레페의 농도를 맞추지 못해 다시 반죽을 하기도 했고, 자신이 놓은 밀가루가 어딨는지 찾지 못해 당황해하기도 했다. 반면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로 살린 홍콩 요리사는 여유롭게 두 가지 요리를 선보이며 첫 대결에서의 승리를 가져갔다.

 

흥미로운 건 <쿡가대표>가 가진 출연진들의 조화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부터 확장해 나간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여기 참여한 이연복, 최현석, 샘킴, 이원일의 조합은 완벽하다. 요리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을 잘 알고 있어 프로그램이 어디서 흥미로워지는지 그 포인트를 정확히 살려낸다. 연장자이자 우리 팀의 대표인 이연복 셰프는 상대팀 대표와 악수를 하면서 긴장감을 높이고, 최현석 셰프는 그 와중에도 허세를 보이다가 또 긴장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프로그램을 쥐락펴락한다. 샘킴의 온화한 미소는 프로그램에 부드러움을 더해주고 이원일은 자신이 막내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

 

국가대항전에 맞게 톤이 한층 올라간 김성주의 해설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여기에 그와 오래도록 호흡을 맞춰온 안정환과의 조합이 빛을 발한다. 김성주가 해설로 토스하면 안정환은 역시 스트라이커답게 그것을 웃음의 골로 연결시킬 줄 안다. 딸기 소스로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홍콩측 요리사에게 딸기 아가씨라고 슬쩍 건드리기도 하고, 최현석이 크레페를 만들다 실수하는 장면에서는 공을 받았는데 밟고 넘어진 격이라고 해설을 단다.

 

국가대항전이니 생길 수밖에 없는 언어장벽을 해결해주기 위해 투입된 헨리의 역할도 명확하다. 미모의 홍콩 레스토랑 대표에게 다가가 관심을 표하기도 하고, 마지막에 판정단들이 선택을 하는 순간에도 적절한 멘트와 농담으로 긴장감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헨리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의 출연자가 통역으로 자리해 있다는 건 통역사가 들어와 있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강호동의 위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애초에 <쿡가대표>라는 프로그램이 소개될 때만 해도 마치 강호동의 프로그램처럼 얘기됐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쿡가대표> 첫 회에서 강호동이 한 역할이란 처음 출연자로 소개될 때 이연복 셰프의 식당에서 안정환과 요리 대결을 벌이는 장면뿐이었다. 홍콩에 가서는 아예 분량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아마도 다른 출연자들이 모두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다져진 팀워크가 있고 그래서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이 분명한 반면, 강호동은 상대적으로 그 역할이 무엇인지 애매모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먹는 역할도 아니고 요리를 하는 역할도 아니며 그렇다고 중계를 해야 될 역할도 아니다. 그러니 마치 게스트가 된 것처럼 간간히 몇 마디 던져 넣는 것이 고작일 수밖에.

 

어째서 강호동 같은 괜찮은 예능 선수를 데려다놓고도 그 역할이 불분명하게 되어버린 걸까. 과연 강호동은 이 탄탄한 조합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낼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제작진이 강호동의 어떤 특별한 위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빠져 있는 이 마지막 한 조각을 잘 맞춰 넣는 것은 어쩌면 <쿡가대표>의 화룡점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취지, 의미 좋은 <미래일기>, 읏음보다 눈물이 앞선다

 

MBC의 새 파일럿 프로그램 <미래일기>는 그 기획이 참신하다. 이른바 타임리프 설정은 드라마나 영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예능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 노인이 되어 있는 자신의 하루를 담담하게 체험하는 그 과정은 누구에게나 예정된 미래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미래일기(사진출처:MBC)'

예측한대로 <미래일기>는 그 노화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먹해지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39년 뒤 80세가 된 자신의 주름 진 얼굴을 본 안정환은 자꾸만 자기 얼굴을 되돌아보며 짠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현재 엄마의 나이인 58세가 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제시는 이건 아니다라며 부정했다. 77세 동갑내기 부부인 강성연과 김가온은 서로의 나이든 얼굴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한때 그토록 젊고 절대 늙지 않을 것처럼 자신감 넘치던 그 모습이 세월의 더깨가 얹어진 주름살로 뒤덮인 자신을 본다는 건 우울함을 넘어 숙연함까지 느껴질 일이다. 게다가 자신만이 아니라 함께 나이든 엄마와 남편을 바라본다는 건 더더욱 그렇다. 제시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막상 더 나이 든 얼굴을 한 엄마를 만나게 되자 솟아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의 엄마를 그대로 체험하고 이해하게 되는데서 오는 먹먹함일 것이다.

 

함께 나이 들어버린 서로의 얼굴을 매만지며 한편으로는 그 낯선 얼굴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 서로에 대한 아련함이 더 커지는 강성연과 김가온 부부의 모습은 또 어떤가. 함께 늙어온 노부부의 삶의 순간들이 마치 기적 같은 일들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 미래의 모습을 미리 확인한 순간, 이 부부의 현재의 삶 또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독거노인 콘셉트로 미래를 바라본 안정환이 쓸쓸히 앉아 어묵을 먹다가 문득 젊었을 때 아무리 인기가 많고 날고 기어도 소용없다. 잊혀지는 게 가장 무섭다.”고 말하는 대목은 <미래일기>가 담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나중에 진짜 80세가 됐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짜 생각해 둬야겠다.”고 결심할 때 시청자들 역시 그 말에 공감하게 됐을 것이다.

 

방송이 나가고 쏟아진 반응들은 감동 일색이다. 좋은 취지에 의미까지 잘 담아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서 파일럿이 아닌 정규프로그램이 되기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공감 가는 얘기다. 하지만 정규가 되기 위해서 <미래일기>는 보완해야 할 몇 가지 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첫 번째는 먹먹한 감동만큼의 유쾌한 웃음의 포인트들을 더 많이 배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년의 삶을 체험한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고 흥미로운 일이지만, 자칫 프로그램의 정서가 너무 어두워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번 파일럿에서는 그나마 제시의 엄마와 할머니의 등장이나, 안정환이 꼬마 아이들과 축구내기를 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있어 지나치게 우울하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너무 의미를 강조하다 보면 교훈조로 흘러갈 위험성도 있다는 점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반드시 가벼울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르치려 드는 자세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거부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너무 자막을 통한 교훈적인 설명이 많이 들어가는 것보다 어떤 객관성과 거리감을 유지하며 있는 그대로를 내버려두고 관찰하게 하는 게 낫다.

 

물론 명절 파일럿 프로그램으로서 일회성에 그치는 거라면 지금의 <미래일기>만한 취지나 의미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규 프로그램으로 가려면 의미만이 아닌 매회 기대감을 만들어주고 또 감동만큼 기분 좋은 유쾌함을 선사할 수 있는 재미요소들을 더 많이 배치해야 한다. <미래일기>는 오랜만에 본 예능프로그램의 좋은 시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 취지가 계속해서 살아날 수 있게 충분히 보완하고 정규화되길 기대한다

청춘들의 상황을 들여다보게 되는 <청춘FC>

 

눈물이 날 정도로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재능까지 있는 청춘들이다. 한때는 유망주라는 소리도 들었고, ‘한국 축구의 미래라는 얘기까지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축구를 하던 발이 치킨을 배달하고, 그 손이 웨이터가 되어 서빙을 하고, 펄펄 그라운드를 누비던 그 몸이 모든 게 좌절된 채 아버지를 도와 김 양식을 하고 있다.

 


'청춘FC(사진출처:KBS)'

가난 때문에 빌려준 잘 맞지 않는 축구화를 신고 축구를 시작했지만, 그래서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노력해 기회까지 얻었지만 성공의 문턱에서 결국 그 가난이 문제가 되어 주저앉은 청춘도 있었고, 구단에 꿈을 안고 들어갔지만 갑자기 구단 상황이 나빠져 방출되어 그 언저리를 맴돌며 살아가는 청춘도 있었으며, 유망주로 고등학교까지 날렸지만 돈이 없어 번듯한 대학에 가지 못해 좌절한 채 유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살아가는 청춘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득점왕까지 했던 이제석 선수는 고1때 아버지가 고2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던 아픈 사연을 털어놨다. 아마도 할 수 있는 게 축구밖에 없어 더 열심히 뛰었을 그는 대학에서 부상으로 쉬던 중 제적 처리를 당해 축구의 꿈이 좌절되었다. 유일하게 홍일점으로 들어와 테스트를 받은 심연희 선수는 대학 때 단 한 번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청춘FC에 도전한 그녀에게 안정환은 아낌없는 박수를 쳐 주었다. 물론 팀에 합류하지는 못했지만 도전한 것만으로도 그녀는 승자였다.

 

KBS <청춘FC>는 축구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그들의 모습에서는 이 땅에서 꿈을 좌절당한 채 힘겹게 버티며 살아갈 청춘들의 자화상이 어른거렸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저 열심히 하루하루를 축구에 꿈을 담아 뛰고 또 뛰며 기량을 키워왔고 또 실력도 인정받았던 그들이다. 잘못된 것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청춘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그라운드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사회다.

 

<청춘FC>는 바로 이 지점에 천착하고 있다. 즉 사회가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방송을 통해서나마 시도해보려고 하는 것. 시작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허름한 사무실에 감독으로 추대된 안정환과 최재형 PD가 덜렁 앉아 있는 모습은 그 시작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안정환의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일이라며 시작된 <청춘FC>는 이을용, 최진철, 이운재는 물론이고 올림픽 대표팀 신태용 감독까지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아마도 사회로부터 좌절을 겪은 청춘들은 <청춘FC>를 통해 다시금 대중들의 재조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가난과 무스펙과 배경 따위로 그토록 갈망했지만 무참히 꺾어지고 말았던 꿈들에게 다시 뛸 수 있는 작은 그라운드를 하나 마련해 주는 일. 그것이 <청춘FC>가 하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현재 사회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조악한 현실 속에서도 버텨내며 살아갈 이 땅의 미생들에게도 작은 희망이 되어주지 않을까. <청춘FC>에서 다시 뛰는 청춘들의 밝은 얼굴은 거꾸로 그들을 그렇게 좌절시킨 사회와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현실이라는 그라운드에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싶지만 뛰어보지도 못하고 발발 동동 구르고 있을 청춘들을. 그 누가 이런 재능과 열정을 좌절시키고 있단 말인가.



월드컵과 예능의 동거, 그만한 성과 있었나

 

예능과 월드컵.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이번 월드컵은 더욱 그렇다.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성주가 보여준 학습효과와, 방송3사의 중계경쟁이 과열양상을 보이면서 예능 프로그램들은 그 전장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 MBC<아빠 어디가><무한도전>, KBS<우리동네 예체능>, SBS<힐링캠프>가 브라질 현지로 날아갔다.

 

하지만 이러한 월드컵을 두고 벌어지는 예능의 경쟁이 그만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너무 많은 예능들이 월드컵에 줄을 대면서 이에 대한 대중들의 부정적인 인식도 만만찮다. 강력한 팬덤을 소유하고 있는 <무한도전>조차 굳이 월드컵을 위해 브라질 현지까지 날아갈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건 그런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까지 갔다면 그만한 성과가 있어야 할 텐데 취재나 응원전의 모습이 과거 <이경규가 간다>라는 프로그램 형식에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이것은 <무한도전>뿐만 아니라, 이경규가 진행하는 <힐링캠프>도 마찬가지다. 같은 경기에 비슷비슷한 응원전이 이 방송사 저 방송사에서 반복되다 보니 각각의 예능 프로그램들의 변별성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경기장의 한국 응원석을 보면 심심찮게 연예인들이 발견되는 건 이번 월드컵의 예능 경쟁을 그대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연예인들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특히 서민들의 정서를 대변해주길 바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월드컵을 맞아 브라질까지 날아가 현장에서 응원하는 모습은 때로는 위화감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위화감은 월드컵 특집 예능 프로그램이 특별한 기획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는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아빠 어디가>의 아이들이 브라질 원정을 가는 것이 그다지 좋은 기획이 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이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빠 어디가>는 시청자들이 아이들의 부모처럼 반응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는 일종의 동일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을 보러 브라질까지 날아가는 아이가 서민들에게 몇 프로나 될까. 1%도 되지 않는 이 경험은 그간 시골 민박집에서 보던 아이가 사실은 자신의 처지와는 너무 다른 삶에 놓여있다는 걸 확인하게 만든다.

 

이처럼 예능 프로그램이 월드컵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드는 이유 중에는 방송3사가 벌이는 월드컵 중계전쟁을 지원하는 측면도 크다. 그렇다면 예능 경쟁이 중계전쟁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는 있는 걸까. 초반에는 그런 것 같았다. 안정환, 김성주, 송종국, <아빠 어디가> 3인방이 이끄는 월드컵 중계에 시선이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중계 전쟁에 돌입하자 갓영표라 불리는 이영표의 출현으로 KBS가 중계를 압도하고 나섰다.

 

예능적인 이미지와 만담 같은 해설을 앞세운 MBC는 그 차별화 요소 때문에 어느 정도 선전하고 있지만 결국 본격 해설의 묘미를 보여준 이영표의 KBS 중계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SBS<정글의 법칙><런닝맨> 등을 통해 배성재 아나운서와 차범근, 박지성 등을 홍보했지만 방송3사 중계 전쟁에서는 아예 소외되는 인상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예능 경쟁이 중계 전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독보적인 이영표의 존재감은 예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중계를 하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알제리전에서 참패를 당하면서 예능과 월드컵은 난감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예능이 월드컵 경기를 다시 보여주는 건 좋은 경기를 치렀을 때 그것이 다시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제리전을 다시 보고픈 시청자들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이 경기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것은 월드컵 중계도 마찬가지다. 농담도 경기가 잘 풀릴 때나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이 불러온 침울한 분위기는 현지로 간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예능을 업은 월드컵 중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예능 프로그램에 상처만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경기결과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방송사 간의 과열경쟁으로 인해 차별성 없이 반복되는 월드컵 특집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식상함과 반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대중들이 힘든 사건들을 연거푸 겪고 있는 시점에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별다른 소득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은 정서적인 불편함만 가중시킬 수 있다.

치열한 월드컵 중계 전쟁, 이영표가 보여준 것

 

본 게임인 한국 대 러시아 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브라질 월드컵 중계방송 전쟁에서 MBC는 확실한 승기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빠 어디가> 3인방, 김성주 캐스터와 안정환, 송종국 해설위원은 예능에서 오래도록 다져진 친근한 이미지로 마치 예능 같은 중계방송의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영표(사진출처:KBS)'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영 달랐다. 한국 대 러시아 전 중계방송의 승자는 초롱도사, 문어영표, 표스트라다무스 등등으로 불리는 이영표 해설위원이 포진한 KBS에게로 돌아갔다. 시청률이 무려 16.6%(닐슨 코리아)로 본 게임 이전에 시청률 선두를 지켰던 MBC( 13.5%)를 압도했다. 차범근 해설위원과 배성재 캐스터가 중계한 SBS는 겨우 8.5%에 머물러 이번 월드컵 중계 전쟁에서 SBS의 준비가 안이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KBS 해설에 대한 호감은 한국갤럽이 최근 전국의 성인 남녀 6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이번 월드컵 중계는 어느 방송사가 가장 잘한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31%의 응답자가 KBS를 지목한 것. MBC23%, SBS18%에 그쳤다.

 

단연 그 힘은 현재 화제의 중심에 선 이영표 해설위원에게서 나온다. 스페인의 몰락과 일본과 코트디부아르전의 경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냈던 그에게 문어영표라는 닉네임이 붙고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아시아판에 기사화되며 국제적인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영표 해설위원의 힘은 단지 문어영표라는 닉네임처럼 경기 결과 예측 같은 이벤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제시되는 다양한 논거들과 증거들이 이영표 해설의 진짜 힘이다. 이영표는 국가별 팀의 색깔은 물론이고 선수들 개개인의 성향과 장단점까지 분석함으로써 그것을 토대로 경기의 흐름을 예측해낸다는 점에서 해설의 묘미를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안정환과 송종국 그리고 김성주가 함께하는 MBC 중계는 어딘지 산만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처음에는 만담중계처럼 친근함 때문에 보게 됐지만 자꾸 듣다보니 결국에는 제대로된 분석의 묘미가 스포츠 중계의 핵심이라는 걸 대중들도 체감하기 시작했다는 것. MBC중계가 너무 시끄럽다는 반응은 말은 많지만 쏙쏙 들어오는 효과적인 해설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한 이영표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해설자에 걸맞는 전문적인 언어구사 역시 이번 월드컵 중계 전쟁에서 KBS가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기대했던 안정환은 예능 멘트를 날려 주목을 끌었지만 결국 축구 해설의 묘미란 축구의 본령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걸 입증한 셈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지난 20일 오전 7시부터 방영된 일본과 그리스 전에서 KBS는 시청률에서 10.9%를 기록하며 5.4%를 기록한 MBC를 두 배 가까이 앞질렀다. 후끈 달아올랐던 예능 경쟁으로 월드컵 중계 전쟁의 서막이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결국 스포츠 중계의 본질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이영표는 그 스포츠 중계가 갖는 본연의 재미와 힘을 보여주었다.

준비와 분석, 예측이 만든 이영표 해설의 묘미

 

브라질 월드컵 우리 대표팀의 러시아와의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교체 투입된 이근호 선수가 한 골을 먼저 넣었지만 단 몇 분만에 아쉽게도 러시아에 골을 내주면서 무승부가 됐던 것. 하지만 첫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은 평가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알제리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KBS월드컵중계(사진출처:KBS)'

한편 경기만큼 관심을 끈 것이 지상파 3사가 벌인 월드컵 중계전쟁이다. 러시아와의 경기에서도 방송사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의 중계를 보여주었다. MBC<아빠 어디가>의 아빠들이 팀을 이뤄 중계팀을 꾸렸다는 점을 강조했고, 실제 해설에서도 그 친근감을 활용하는 중계가 엿보였다. 안정환의 직설화법은 공격적인 느낌의 해설로 주목을 끈 게 사실이다.

 

선수들의 경기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은 지금껏 해설이라고 하면 감싸주기가 대부분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MBC 중계방송의 전체적인 느낌이 감정적으로 토로되는 듯한 인상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대표팀으로 뛴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걸 바탕으로 하는 코멘트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상대적으로 냉철하게 경기를 분석하는 식의 전문성은 잘 엿보이지 않았다.

 

반면 KBS는 이런 MBC와는 정반대의 중계방송을 선보였다. 이영표 해설위원의 활약은 예상 외의 안정감을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전을 해설하면서 꼼꼼하게 러시아팀이 첫 골을 넣은 경기와 첫 골을 먹은 경기의 승률을 분석하거나, 대부분의 골이 후반 경기 종반에 몰려 있다는 점 등을 예시로 드는 모습은 이영표가 그간 꽤 많은 준비를 해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경기 해설에 있어서도 이영표는 선수들에 대한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모습이었다. 또한 선수들 개개인에 대한 장단점 분석을 통해 향후 경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짚어주는 대목도 시청자들로서는 경기를 보는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한 지점이다. 무엇보다 꽤 열심히 준비한 듯 해설의 단어 선택 또한 전문가들만큼의 안정감을 보여준다는 것은 이영표 해설이 왜 빛을 발하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예능을 끌어와 그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운 직설화법의 MBC 중계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중계에 있어서 안정감과, 분석을 통한 적절한 예측 해설이 주는 재미의 균형을 적절히 맞추고 있는 건 이영표가 이끌고 있는 KBS 중계다. 안타깝게도 SBS 중계방송은 차범근 차두리 부자와 배성재 아나운서의 깔끔하고도 노련한 중계가 빛을 보고 있지만 대중들에게는 그 색깔을 확실히 어필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사전 홍보에서 예능을 앞세운 MBC와 예측을 앞세운 KBS가 양대 대결구도를 만들면서 생겨난 결과다. 물론 향후 차범근과 차두리 부자의 해설이 가진 잠재력을 무시할 순 없다.

 

예능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MBC 중계에 대한 관심은 다름 아닌 거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중계는 그만한 철저한 준비와 분석을 통해서 깊이가 생긴다는 것을 이영표는 보여주었다. 물론 차두리의 말대로 함께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이영표나 안정환, 송종국 그리고 차두리가 각각 방송사를 대표해 해설경쟁을 벌이는 것은 불편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만담중계든 예측중계든 노련미를 보여주는 중계든 시청자들로서는 그 경쟁이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치열해진 월드컵 중계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시청자들로서는 그만큼 선택이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니까.

'아빠' 업은 MBC 월드컵 중계, 승승장구하는 까닭

 

지상파 3사의 월드컵 중계 경쟁은 어느덧 예능경쟁이 되어버렸다. 과거 <이경규가 간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월드컵과 접목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적이 있지만 최근의 양상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이경규가 간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월드컵이라는 소재를 끌어와 주목을 받던 것과는 정반대로, 요즘은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주목이 월드컵 중계방송의 관심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MBC 월드컵 중계(사진출처:MBC)'

MBC <아빠 어디가>는 그런 점에서 월드컵 중계 경쟁의 신호탄을 올린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민국이 아빠 김성주가 보인 성과는 방송사들에게는 일종의 교육효과를 가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월드컵 중계 경쟁에서 방송3사는 너나 할 것 없이 예능 프로그램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냈다.

 

MBC<아빠 어디가>에 출연하고 있는 김성주와 안정환을 전면에 내세웠고, 여기에 시즌1에 참여했던 송종국을 참여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스포츠 중계와 예능을 연계시켰다. <라디오스타>에 나란히 출연한 이들은 특유의 예능감을 선보이며 보다 친근하고 재밌는 스포츠 중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SBS<정글의 법칙>을 통해 배성재 아나운서와 차범근 해설위원을 선보이고, <런닝맨>을 통해 차범근과 박지성 해설위원을 띄운 것도 같은 맥락이며, KBS<우리동네 예체능>에 이영표 해설위원과 조우종 캐스터를 참여시킨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 월드컵을 지원하는 예능 경쟁에서 단연 MBC가 우위를 보이게 된 것은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의 존재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아빠 어디가>는 주말 예능의 선두를 이끄는 프로그램인데다 단지 이번 월드컵 특수를 겨냥해 기획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타 방송사들의 월드컵 지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이미 작년에 런칭하면서 김성주와 송종국을 투입시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2년 가까이 월드컵 중계전을 준비해온 셈이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이 브라질편을 기획하고 배성재 아나운서를 투입시킨다거나, <런닝맨>이 특집으로 차범근과 박지성을 게스트로 초대하는 것, 또는 <우리동네 예체능>이 축구편을 만들어 이영표와 조우종을 출연시킨 것은 홍보를 통한 이벤트적인 성격이 강하다. 스포츠 중계를 하는 이들의 친근한 이미지도 자연스러운 방송 흐름 속에서 만들어져야 더 효과를 발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빠 어디가>MBC 월드컵 중계의 신의 한수임에 틀림없다.

 

물론 예능의 이미지나 예능감이 스포츠 중계를 보는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다. 스포츠 중계는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전문적인 해설위원들이 투입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김성주, 안정환, 송종국이 하는 MBC 월드컵 중계에 대해 만담 중계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안정환 특유의 톡톡 쏘는 멘트와 김성주의 노련한 진행 그리고 안정적인 송종국의 합은 잘 맞아떨어지며 재미를 주지만, 스포츠 중계가 예능 같다는 뉘앙스도 들어있다.

 

하지만 월드컵 중계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 또한 많이 달라진 것이 현실이다. 중계방송의 정확한 정보 전달은 이제 방송3사의 차별화 포인트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좀 더 특징 있는 개성을 가진 중계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시청자들로서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차범근 해설위원을 통한 관록의 해설이 안정환이나 이영표 같은 재미를 주는 해설에 어딘지 밀리고 있는 인상은 전체적으로 예능화 되어가는 방송경향이 이제는 스포츠 영역에도 밀어닥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분명 우려스러운 점은 있다. 월드컵 중계방송과 월드컵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지만, 바로 그래서인지 정작 월드컵 경기는 소외되는 인상이다. 월드컵 예능이 월드컵 자체를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하지만 어쩌랴. 방송의 흐름이 이제는 정보에서 재미로 바뀌고 있는 것을. <아빠 어디가>가 만들어낸 MBC 월드컵 중계의 승승장구는 그래서 지금 달라지고 있는 스포테인먼트의 징후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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