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PD 천재설'에 대해 본인은 이렇게 답했다

“능력 있는 친구들을 빨리 알아보고 내 것처럼 빼 쓰는 능력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지난 23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콘텐츠 인사이트’ 세미나에 강연자로 나온 나영석 PD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지금이 “천재를 요구하지 않는 시대”라고도 했다. 그보다는 “좋은 동료들”을 더 많이 옆에 두는 게 좋다는 것. 

나영석 PD의 이 이야기는 최근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화두가 되고 있는 ‘협업’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꺼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KBS 시절부터 협업이 얼마나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의 시너지를 올리는가를 경험해왔던 PD다. 혼자서는 힘겨웠던 신출내기 연출자 시절 그에게 손을 내밀어줬던 이명한 PD와 이우정 작가가 있어 그는 비로소 날개를 펼 수 있었다. 

그가 CJ로 이직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이명한 PD와 이우정 작가가 거기 이미 포진해 있었고 그들과 함께 하는 작업에 대한 신뢰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CJ로 와 tvN 예능의 대기록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기반이 ‘협업’에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지난 한 해 동안의 성과가 남다르게 다가올 법 했다. 지난 한 해 그는 내내 후배들과의 협업을 통해 <윤식당>, <강식당>, <알쓸신잡> 같은 빛나는 성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냐는 필자의 질문에 나영석 PD는 “후배들과의 협업을 계속 할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 나영석 PD가 홀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새롭게 런칭하기를 기대했던 필자에게는 다소 실망스런 답변이었지만, 이제 그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건 이제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 함께 작업하는 협업이야말로 그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런 협업의 중요성은 이미 신원호 PD가 저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을 두고 밝힌 바 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들을 보고 그가 천재가 아니냐고 말하곤 한다. 그토록 많은 취향들을 담아내고, 그 많은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들을 꼼꼼히 펼쳐내는 것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들이다. 하지만 신원호 PD는 일찍이 그것이 여럿이 함께 하는 작업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예능 방식으로 작가와 PD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기획부터 캐릭터, 대사까지 하나하나 회의를 통해 만들어나가는 그의 방식은 협업이 어째서 지금의 제작 방식에 중요한 화두가 되는가를 보여준다. 많은 이들의 아이디어와 생각과 취향이 녹아들기 때문에 작품은 훨씬 다채로워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폭넓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협업에서 나온다. 

<미생>, <시그널>을 연달아 성공시킨 김원석 PD는 지금의 성공하는 작가들의 대부분이 ‘협업’을 얼마나 잘 해나가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말한 바 있다. 놀랍게도 그 역시 나영석 PD가 얘기한 것처럼, 성공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같이 협업하는 작가들의 가능성을 내 것처럼 빼쓰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라고 했다. 

한때 ‘사단’이라고 하면 그저 관계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기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단’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졌다. 나영석 개인이 아닌 나영석 사단이라고 부르고, 신원호 개인이 아닌 신원호 사단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 밑바탕에 그 성취가 혼자 이룬 것이 아닌 여럿이 함께 한 협업을 통한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다. 이제 성공하는 콘텐츠의 기본 조건으로 ‘협업’은 중요한 화두로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사단의 탄생’은 이제 보다 강력한 콘텐츠를 위한 기본전제가 되어가고 있다.(사진 : 한국콘텐츠진흥원)

나 PD님, 이 박사님들 그대로 '알쓸신잡2' 가능한 거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한 사람의 감성, 기운 같은 것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거든요. 한 사람의 뇌라는 것이 나의 뇌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관계로 뇌가 형성되는 거잖아요. 가장 기뻤던 게 김영하의 뇌가 나의 뇌로 들어온 것이에요.” 

'알쓸신잡(사진출처:tvN)'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이 시즌을 마감하며 나눈 마지막 이야기에서 황교익은 이 프로그램을 하며 느낀 소감을 그렇게 전했다. 그러고 보면 <알쓸신잡>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어떤 것을 준 프로그램으로 남는 건 바로 이 황교익이 말하는 그들의 뇌와 했던 ‘교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냥 지나치곤 했던 것들을 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부지불식간에 그 감성과 기운 속으로 우리도 슥 들어갔던 그 기적 같은 경험의 순간들. 

그러니 “행복한 가족”의 느낌을 공유하게 된 건 이 지식수다 여행의 소감으로 그 느낌을 전한 정재승 박사만이 아니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들도 그들과 함께 뇌를 나눈(?) 가족 같은 친근함과 즐거움, 놀라움과 경외감 같은 걸 똑같이 느꼈으니까.

유시민 작가는 그 마지막 소감으로 ‘소중히 여기며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뭔가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게 참 중요한 거구나. 여기 참가한 분들이 각자 보니까 뭘 되게 소중히 여기는 게 있더라구요.” 

과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며 박물관을 소중하게 들여다봤던 정재승 박사,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했던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언어 수집가’로서 세상의 모든 것들의 언어를 담아내려 했던 김영하 소설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삶의 정체에 대해 무수히 고민하고 올바른 삶과 행복한 삶에 대해 늘 호기심을 갖던 유시민 작가. 또 음악을 사랑하고 그 음악이 주는 행복감처럼 함께 하는 이들을 배려했던 빼놓을 수 없는 유희열까지. 저마다 소중한 것들이 있고 그래서 그 소중한 것들을 궁구하며 그것을 대화를 통해 공유하려는 모습이 어쩌면 <알쓸신잡>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김영하 소설가는 역시 소설가다운 통찰력으로 <알쓸신잡>이 가진 핵심적인 가치와 그 기적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말 빛나는 것들은 대화를 통해서 나오거든요. 각자 생각들을 많이 하시죠. 그런데 대화를 통해서 얘기하는 도중에 더 빛나는 것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결국은 지식수다에서 우리는 ‘지식’에 방점이 찍힌 줄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수다’라는 장치가 더 중요했을 수 있다는 걸 김영하 소설가는 콕 집어냈다. 

되돌아보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알쓸신잡>만 같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사실 <알쓸신잡>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의 축소판이고 우리네 인간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여정을 담았다. 낯선 이들이 서로 만나 낯선 곳을 일정 시간 여행하며 그 안에서 각자 소중하게 느꼈던 경험들을 함께 모여 나누고 공유하면서 ‘더 빛나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과정.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해주지 않을까. 정말 시즌 하나로 끝내기엔 아쉬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나영석 PD가 다시 한 번 놀라운 마법을 발휘해 이 박사님들 그대로 새 시즌으로 돌아오기를.

‘알쓸신잡’, 아재들이 지나간 자리 남은 지식의 향기

여행을 하는 참 많은 방법들이 있는 것 같다. 나영석 PD가 KBS <1박2일>로부터 시작해 현재 tvN <알쓸신잡>까지 이어진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해외배낭여행, 어르신은 물론이고 청춘들, 어느 한 곳에 폭 박혀 며칠간을 정착하며 즐기는 여행에서부터 지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여행까지 참 다양하기도 하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그 중에서도 최근 뜨거운 <알쓸신잡>은 아마도 여행 풍속도를 바꿔줄 새로운 여행의 색깔을 덧씌워주고 있다. 그저 지나쳤던 풍경이나 유적 그리고 음식들까지 그 안에 담겨진 문화적인 이야기들을 이 프로그램이 끄집어내주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알쓸신잡>이 춘천에서 들려준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당연한 듯 춘천에 가면 먹었던 닭갈비에서 ‘갈비’를 먹고픈 서민들의 욕망을 읽어내고, 에티오피아 카페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전우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책과 인쇄박물관’에서 그 잉크 냄새가 주는 아련한 향수에 빠져들면서 후각이 그 어떤 감각보다 우리네 기억을 더 강렬하게 자극하는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애니메이션 박물관에서 태권브이의 향수에 젖는다. 

어찌 보면 여행에서 우리가 흔하게 만나게 되는 음식이나 박물관 같은 것들이지만 <알쓸신잡>이 보여준 것처럼 거기 담겨진 이야기들을 알거나 이해하게 되면 새삼 그 체험들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대성리 하면 대학시절 많이 가던 엠티 장소 정도로 기억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거기에도 당대 감시의 눈길을 피해 독재에 항거하던 젊은이들의 행적들이 숨겨져 있다. 

수목원의 꽃들을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찍어 그 이름을 검색할 수 있는 편리해진 시대에, 그만큼 사라져 가는 직업들을 떠올린다. 일일이 활자를 찾아 신문을 찍어냈던 시절에서 이제 컴퓨터가 모든 걸 해버리는 현재까지의 놀라운 변화가 겨우 30년도 되지 않았다는 걸 통해, 얼마나 세상이 빨리 변화해가는가를 실감한다. 

그러니 이제 <알쓸신잡>의 여행을 본 이들은 통영에 가서 새삼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남다른 감회로 떠올릴 것이고, 순천에 가서는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떠오를 것이다. 강릉 오죽헌에 가게 되면 유시민과 황교익이 비분강개했던 안내판을 통해 신사임당의, 율곡의 어머니만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위대함을 새삼 떠올릴 것이고, 경주에 가면 최진립 장군과 그와 끝을 함께한 옥동과 기별의 이야기에서 감동할 수 있을 것이다. 공주에 가게 된다면 백마강과 낙화암 앞에서 새로 써야 할 왜곡된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을 게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요즘, 휴가철이 되면 공항은 북적인다. 해외여행이 이렇게 일반화되는 만큼 국내여행은 어딘지 너무 소소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큰 착각이고 선입견이라는 걸 <알쓸신잡>을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 우리가 국내여행을 소소하게 느껴왔던 건 진짜 그 곳이 소소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국내 곳곳에 숨겨져 있는 많은 이야기들, 하다못해 음식 하나에도 깃들어있는 재미있는 삶의 이야기들이 넘쳐난다는 걸 <알쓸신잡> 박사들은 새삼 확인시켜줬다. 거창하게 인문학을 운운할 필요도 없이, 이들이 어떤 여행지에서 나눈 폭풍 지식수다를 먼저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얼마나 많은 재밋거리들이 숨겨져 있는가. 다만 우리가 관심을 주지 않았을 뿐. 여러모로 <알쓸신잡>으로 인해 이번 여름, ‘휴가의 풍경’도 사뭇 달라지지 않을까.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가까이 충분히 흥미로운 여행은 넘쳐난다.

‘알쓸신잡’, 유시민이 분노한 시대착오적 낙화암 소개 

“지금 여러분이 이용하고 있는 이 강은 백마강으로 낙화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의자왕 20년에 백제가 당나라로 하여금 멸망할 때 적군의 노리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여 이렇게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치마폭에 얼굴을 감싸고 백마강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는 이야기처럼 우리 민족사의 여인들은 백의민족이며 정절을 중요시하는 순박한 여인들로서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맞은 우리 남자들은 퍽이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tvN <알쓸신잡>이 떠난 여행에서 낙화암을 둘러보는 유람선에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의 내용에 유시민은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이야기 자체가 무려 1500년 간이나 ‘가짜 뉴스’로 내려오며 진짜 역사적 사실인 양 굳어져 가고 있던 사안이 아닌가. 역사란 팩트 그 자체가 아니라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는 건 이제 누구나 다 인정하는 일이다. 이렇게 달라진 역사관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낙화암을 둘러싼 의자왕의 이야기가 여전히 승자들의 윤색에 의해 지금까지도 그대로 믿어지고 있다는 건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시민은 사실 ‘백마강’이라는 이름 자체도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며 ‘조룡대’ 이야기를 꺼냈다. 용을 낚았다는 뜻을 가진 조룡대 이야기는 사실상 당시 당나라 장수였던 소정방의 관점으로 기술된 신격화된 무용담으로 지금껏 내려오고 있다는 것. 무왕이 용이 되어 지킨다는 그 강에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해서 그 용을 낚았다 해서 조룡대란다. 그래서 그 강의 이름도 백마강이라는 것. 어떻게 이런 식의 신격화된 해석들이 지금까지도 안내판에 버젓이 담겨 그 곳을 찾는 이들이 읽게 내버려두고 있게 된 것일까. 

소설가 김영하는 기분 나쁜 일이지만 점령군 장군에 대한 숭배는 늘 있어왔던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맥아더 장군을 신으로 숭배하는 일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 정재승은 그래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로 농담을 섞어 아픈 현실을 꼬집었다. 과거에 역사로 기술되었다고 해도 현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그것이 문제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고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덧붙였다. 

그런데 저 낙화암에 대한 유람선에서의 안내방송에 담긴 건 단지 역사적 사실의 왜곡 문제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등장하는 ‘정절’ 이야기와 ‘백의민족’ 게다가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맞은 우리 남자들은 퍽이나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소개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여성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에나 먹힐 이야기가 지금도 버젓이 안내방송에 나오고 있다니...

사실 이런 일들은 우리네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다. 조금만 생각하면 거기 담긴 심각한 문제들이 드러나지만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조차 되지 않고 지나치는 것. 이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관심을 안 갖고 내버려두니까 있는 대로 그냥 흘러가는 거야. 누가 문제제기를 해야 바뀌어지지.”

<알쓸신잡>은 이런 사안들을 이미 저 강릉의 오죽헌에서도 발견한 바 있다. 신사임당의 이야기는 거의 없고 율곡의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진 안내판. 조금 있는 신사임당 이야기도 그저 율곡의 어머니로서만 기록된 글들. 세상은 이미 바뀌었는데 그 세상 안에 들어차 있는 시대착오적인 생각들은 여전하다. 그 일상에 가득한 문제들을 계속 끄집어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일은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해나가야 할 중차대한 일들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인문학을 그저 고전을 읽고 이해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인문학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고전들이 현재에 어떻게 적용되고, 그래서 현재의 문제들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까지 적용될 때 비로소 그 인문학은 효용성을 갖는 것이 아닐까. <알쓸신잡>이 그 많은 인문학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의 문제들을 직접 발로 경험하며 끄집어내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 그래야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

‘알쓸신잡’, 삼겹살 하나에도 이런 씁쓸한 역사가...

아마도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무심코 집어먹고 있는 삼겹살에도 이런 씁쓸한 역사가 담겨 있다는 걸 우리는 잘 몰랐을 지도 모른다. 경주로 간 tvN <알쓸신잡>. 아침에 일어나 베이컨을 굽고 모카커피를 내리면서부터 나온 수다에서 황교익은 베이컨이 우리나라에서 특히 비싼 건 삼겹살이 비싸서라고 밝혔고, 그 이야기는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대량 양돈사업을 했던 시절의 불행한 역사 이야기로 이어졌다. 당시의 양돈사업이 일본 수출을 위해 만들어지면서 돼지의 안심, 등심이 수출되고 나면 남은 부위들을 우리가 소비하면서 삼겹살, 족발, 머릿고기, 내장, 껍데기 같은 것들을 먹게 됐다는 것.

'알쓸신잡(사진출처:tvN)'

김영하는 모카커피로 내린 에스프레소를 함께 나눠 마시며 얼마 전 봤다는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마피아 같은 흉악범들이 교도소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에서 보스가 독방에 들어가는데 아무 것도 없는 그 곳에 유일하게 있는 것이 바로 모카 포트라는 것. 그래도 커피 한 잔을 마시게 해주는 것. 그것이 이탈리안인들이 생각하는 인권의 최전선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만큼 그들이 커피를 사랑한다는 것. 

우리에게 음식은 그저 때마다 챙겨 먹는 어떤 것 정도로 인식되어 왔지만 사실 그 안에는 많은 문화적인 배경들이 숨겨져 있다는 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전날 밤 <삼국유사>의 설화와 전설 이야기를 하다, 문득 ‘단군신화’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나오게 된 쑥과 마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쑥과 마늘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황교익은 그것이 마늘이 아니라 사실은 달래였을 거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어 먹을 게 그리 변변치 못했던 우리네 선조들에게 나물들 중 쑥과 달래를 먹은 이들이 생존한 그 이야기가 ‘단군신화’ 속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흔히들 착각하는 것이 인문학 하면 굉장한 철학이나 두꺼운 책을 먼저 연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알쓸신잡>이 드러내고 있는 건 인문학적 지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이 프로그램이 인문학을 소재로 하면서도 여행이라는 틀을 가져온 것은 그래서 단지 그것이 나영석 PD의 단골소재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이 점이 보여준다. 여행을 통해 우연히 겪게 되는 일들과 보게 되는 것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이 흥미로운 지식으로 바뀌어가는 그 신비함을 찾아보겠다는 것. 그것이 이 프로그램이 굳이 여행의 틀을 갖게 된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까. 

경주하면 모두 유적들과 능을 떠올리지만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곳이라며 엑스포와 놀이동산을 찾은 정재승은 그 엑스포라는 것이 세계의 과학사를 발전시킨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는 걸 이야기해준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 산업적으로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뽐내기 위해 개최했다는 런던엑스포에서 수정궁이 지어져 유럽전역에 화제가 되고, 그 경쟁국들도 서로 기술을 뽐내기 위해 엑스포를 열게 되면서 과학이 진일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 가면 흔히 있는 핫도그와 콘 아이스크림 역시, 그 역사가 엑스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음식이 달리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작은 일상의 자잘한 경험들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사실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알쓸신잡>은 굳이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어느 지역을 여행하다 가끔 보곤 하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지나치게 되는 사당이나 비각 같은 것들에도 굉장한 역사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유시민이 찾은 최진립 장군의 비각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모두 의병으로 참전한 최진립 장군의 “이길 순 없어도 (나라를 위해) 죽을 순 있다”는 이야기나, 돌아가라는 걸 따르지 않고 그와 함께 끝을 같이한 노비 옥동과 기별을 위한 제사를 지금까지 그 집안에서 지내고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그 안에 담겨있었다.

이처럼 우리가 <알쓸신잡>을 보며 어딘지 ‘신비하다’고 느끼게 되는 지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살아왔던 손과 발에 툭툭 채였던 많은 것들이 저마다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분한 울림을 준다는 것. <알쓸신잡>의 숨은 가치와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알쓸신잡’, 무엇이 이렇게 신비한 느낌을 줄까

‘알아두면 쓸데없는’ 이야기 같다. 경주로 간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 거대한 능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릉원에서 화려한 금관을 보며 그 많은 금들이 어디서 왔을까를 상상하다, 당시 실크로드의 종착지가 경주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역을 통해 들어온 금이라는 것. 그러더니 불쑥 박물관의 우물 관련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유물들 속에서 소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말의 흔적만 있더라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이야기가 나오고 박물관 유물들은 지배계급의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흐르더니 천마총의 천마장식은 지금으로 치면 페라리의 엠블렘 같은 것이 아니었겠냐는 의미심장한 농담이 덧붙여진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경주가 고향인 유시민은 예전에는 그 유적들에서 뛰어 놀았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제한된 수의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었던 유적들이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서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너무 많이 늘어난 ‘호모 사피엔스’의 문제로 귀결된다.

유적에서도 느껴지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격차나, 너무 인구가 늘면서 이제는 뛰어 놀 수 없고 멀리서 바라 봐야만 하는 유적들의 이야기는 묘한 쓸쓸함을 만들어낸다. 경주에도 새롭게 생겨 커져 가고 있는 황리단길에서 원주민들이 오히려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아이러니가 거론되고, 그걸 막으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아무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유시민의 말에, 그러나 그것이 슬럼화된 도시를 다시 깨어나게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점에서 단순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고 김영하가 덧붙인다. 

천년 전의 신라인들과 지금 우리들이 생물학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지만 생각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는 걸 유시민이 지적하자 정재승은 그것이 뇌의 놀라운 능력이라고 말한다. 뇌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을 한다는 것. 그래서 만일 지금 신라인이 여기로 와서 우리와 이야기를 해도 금세 말이 통할 것이라고. 

이런 걷잡을 수 없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희열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그 사실에 “속상하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런 유희열에게 김영하는 한 가지 희망 섞인 이야기를 덧붙인다. 마침 녹화가 있던 날이 6월 10일. 6.10항쟁 30주년이라는 걸 상기시킨 후, 30년 전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짧은 30년 사이에 나아진 것들이 분명히 있으니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알쓸신잡>의 지식 수다가 ‘알아두면 쓸데없는’ 것처럼 마구 쏟아져 나오다가 어느 순간 ‘신비한’ 느낌을 갖게 되는 건 이래서다. 그 많은 수다들이 그저 맥락 없이 마구 나온 것 같지만 많은 것들이 이어져 있고, 지금 그 작은 공간에서 몇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 속에는 지금도 흘러가는 수천 년 인류 역사의 흐름이 담겨져 있다. 

그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광경 자체가 신비롭게 다가온다는 것. 정재승 교수가 말했듯 어찌 보면 이 우주에서 먼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우리들이 그 우주를 이야기한다는 데서 오는 신비함이 그것일 게다. 유시민 작가는 농담을 더해 이를 ‘먼부심(먼지의 자부심)’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알 수 없는 신비함은 바로 이 먼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천년 전 달을 보며 살았을 신라인들의 삶과, 천년 후 같은 달을 보며 나누는 이야기가 묘하게 겹쳐지는 신비한 느낌.

‘알쓸신잡’ 황교익과 유시민이 오죽헌에서 격분한 까닭

“어 이것도 율곡이네?” tvN <알쓸신잡>이 떠난 강릉 여행에서 오죽헌을 찾은 유시민 작가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오죽헌을 소개하는 안내문부터 곳곳에 신사임당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고 온통 율곡 이이의 흔적들만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헌에서 신사임당은 ‘율곡의 어머니’로서만 존재했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현모양처’니 ‘우리나라 어머니의 사표’ 같은 안내문의 문구를 보며 황교익은 “이런 게 문제다. 여성상을 어머니로만 한정 시키는 거지.”라고 했고 유시민은 “훌륭한 정치인일 수도 있고 예술가일 수 있는데 하필이면 왜 어머니냐”고 안타까워했다. 또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고 있다’라는 문구나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다’ 같은 말들이 “다 봉건적”이라고 비판했다. 

유시민은 이 안내문을 보면 “신사임당에 생애에 대해 제대로 알 수가 없다”며 “그 분의 생애를 짧은 글에 압축해야 하는데 율곡이 다”라고 꼬집었다. “신사임당이라는 한 인간, 한 여성이 어떤 목표와 소망을 가지고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삶을 살았고 그 삶이 우리에게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가”하는 내용이 안내문에 있어야 한다며 “고쳐주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날의 지식 수다를 털어놓는 자리에서도 유시민은 “신사임당은 학식과 재능이 뛰어나고 자부심이 굉장히 강했고, 남편과의 관계를 보면 당시 축첩제도에도 무척 비판적이었고,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몹시 강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동시에 어머니였죠. 율곡의 어머니라는 건, 신사임당이라는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걸 누구의 어머니로, 그것도 어떤 성공한 남자의 어머니로 축소해서 온 국민에게 선보인다는 것이 상당히 그렇다”고 말했다. 

이것은 신사임당이 조선시대에서도 여성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그만큼 힘겨운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유시민과 황교익이 격분한 건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여전히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서 신사임당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부속적인 존재로 보는 시선이 이렇게 공공연하게 문화유적의 안내문에 담겨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노릇인가.

이 날 강릉에서 벌어진 지식 수다에서 유독 주목하게 된 건 뛰어난 학식과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묻혀 버리고 왜곡되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신사임당과 더불어 강릉에서 화제에 오른 인물은 허난설헌이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가를 다녀온 그들은 조선시대의 천재시인이었던 허난설헌의 결코 쉽지 않았던 삶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허균은 <홍길동전>을 쓸 정도로 누릴 것을 누리며 살았지만, 허난설헌은 그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문집 자체를 중국인이 먼저 묶을 정도로 여성이 차별받는 조선사회에서 숨막혀 했다. 유시민은 “허난설헌은 그 재능이 삶의 고통”이 됐다며 “그게 병이 되어” 27살의 나이에 일찍 돌아 가셨다고 했다. 김영하는 허난설헌이 나중에는 도교에 영향을 받아 “이 잘못된 세상에 잠시 다녀갑니다”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황교익은 이날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가며 “역사를 보는 시각은 현시대의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물론 과거의 역사도 잘못된 부분이지만, 그런 잔재가 현재까지도 여전히 안내문 문구 속에 담겨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시각을 봉건적 틀에 묶어두고 있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죽헌에서 유시민과 황교익이 보인 격분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다.

‘알쓸신잡’, 치열한 삶의 궤적이 뒷받침된 수다의 진정성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 순천, 보성편은 첫 회 통영편과는 다른 구성 방식을 나타냈다. 통영편은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유희열이 통영에 도착해 각자 취향에 맞게 음식을 찾아 먹고 여행을 하는 장면들을 먼저 보여준 후 저녁 식사자리에서 뒤늦게 참여한 정재승과 지식 수다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순천, 보성편은 앞부분에 살짝 그 날 이들이 여행한 장면들을 보여준 후, 바로 저녁 식사자리로 들어가 수다를 시작했고 그 수다 중간 중간에 그들이 여행한 장면들을 구성했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이 구성 방식의 변화가 말해주는 건 <알쓸신잡>이 여행이라는 포인트 그 자체보다 지식수다에 더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다. 물론 순천과 보성을 여행하는 내용은 그 지식수다의 재료들이 된다. 그래서 그 지역이면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야기나, 김승옥의 ‘무진기행’ 같은 소재들이 그날 저녁 수다의 반찬이 된다.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지식 수다는 신기할 정도로 몰입이 된다. 황교익이 수다 자리에 갖고 나온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적힌 그 날 저녁 반찬으로 올라온 꼬막 요리법을 소개하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빨치산 이야기, 여순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정래의 탑처럼 쌓인 육필원고 이야기는 육필과 컴퓨터 작업 사이의 창작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그 방식의 변화가 창의성의 변화와는 무관하다는 걸 정재승은 과학적 데이터로 알려준다. 이처럼 술술 풀려나오는 지식의 향연이 있을까. 남자들끼리 이렇게 오래도록 수다를 떨어본 적이 없다는 유희열의 이야기가 그저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알아두면 쓸데없어 보이는’ 지식의 향연이 더욱 놀라운 지점은 ‘신기하게도’ 우리가 흔히 아재들의 수다라고 하면 느껴왔던 ‘노잼’이나 어떤 ‘불편함’ 같은 것들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알쓸신잡>에도 너무 가벼운 아재 토크처럼 느껴진다거나, 여성 출연자가 없다는 식의 아쉬움의 목소리는 있다. 그리고 특히 여성 출연자의 부재는 이들 아재들만의 세상이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향후에 이 부분이 채워진다면 훨씬 균형잡힌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아쉬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쓸신잡>을 큰 불편함 없이 보게 되는 건 그것이 단지 그들의 놀라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 선결되는 것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들이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가일 게다. 말은 말 자체가 힘을 지닌다기보다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살아온 행보에 의해 더 힘을 얻기 마련이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그 단적인 사례가 된다. 아무 죄 없이 감옥에 가게 된 청년 유시민이 그 부당함을 토로하는 그 글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썼을 그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그것은 지금의 유시민이 하는 말들이 그저 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에 닿아있다는 진정성을 느껴지게 한다.

또한 김영하가 아내에게 요리는 내가 한다며 ‘주방 은퇴’를 하게 했다는 이야기 역시 그렇다. 왜 그렇게 했냐는 질문에 그는 아내가 주부로서 요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며 그걸 없애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했다고 했다. 아재의 나이지만 구세대적인 아저씨가 되지 않으려는 그 모습은 그의 수다에서 지식 자랑이 아닌 어떤 호감을 느끼게 만든다.

사실 <알쓸신잡>은 그 액면으로 보면 아재들의 수다다. 하지만 그 액면을 들여다보면 그저 떠드는 시시콜콜한 잡담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시켜주는 지식 수다이고 그 지식들이 그저 머릿속으로만 채워진 게 아니라 치열한 삶을 통해서 체득된 것이란 걸 발견하게 된다. 이 부분이 신기하게도 아재들의 수다라고 하면 외면하곤 하던 우리들의 귀와 마음을 연 이유가 아닐까.

‘알쓸신잡’에 화자 아닌 청자 유희열이 필요했던 까닭

사실 누군가가 가르치는 이야기를 듣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그런 가르침의 분위기는 ‘꼰대’의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고, 때로는 권위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 인문학이 예능의 새로운 소재로 트렌드화되면서도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이미지와 느낌을 어떻게 상쇄시킬까 하는 점이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나영석 사단의 새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역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느껴진다. 즉 작가 유시민,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그리고 물리학자 정재승 같은 쟁쟁한 전문가들을 섭외하고 그 안에 유희열이라는 ‘재담꾼’을 투입한 건 그래서다. 

<알쓸신잡>은 첫 회가 방영되고 대체로 반응이 괜찮았다. 나영석 PD표 예능에 대한 여전한 지지가 있었고, 유시민 작가처럼 최근 대중들의 호감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 주는 유쾌함이 있었다. 여기에 유시민과 각을 세우는 황교익 그리고 간간이 한 마디씩 던지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김영하와 말 그대로 ‘쓸데없어 보이는’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의외의 예능감을 보여주는 정재승의 합이 썩 괜찮았다. 

물론 통영이라는 지역이 가능케 하는 역사적 담론들(이순신 관련)이나, 문학 이야기(난중일기, 박경리 선생의 토지)와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어서 식사시간마다 자연스럽게 깔리는 먹방의 분위기 그리고 동피랑, 서피랑 마을을 갖고 있는 곳의 볼거리 등이 어우러진 것도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갖는 지나친 무게감을 떨쳐낼 수 있는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쓸신잡> 역시 인문학 소재가 갖는 ‘먹물’의 느낌이나 ‘지식의 나열’에서 비롯되는 부담감 같은 건 피하기 어려웠다. 끊임없이 지식을 쏟아내는 유시민 작가의 달변은 먹거리에서부터 역사, 문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들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것이었지만 그런 달변이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와 부딪치는 지점에서는 고집 같은 것도 느껴졌다. 물론 이런 고집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음식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나이대가 유시민과 황교익 그리고 김영하와 정재승 이렇게 두 세대로 나눠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유시민과 황교익이 끌고 가는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들보다 더 주목되는 건 간간히 한 마디씩 터트리는 김영하와 정재승이었다. 김영하가 슬쩍 던진 “햇살이 바삭바삭하다”는 말 한마디가 이들의 여행의 공기를 전해주고, 정재승의 그 황당한 ‘이순신의 숨결’ 이야기가 <알쓸신잡>의 독특한 지적 유머코드를 담아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유시민과 황교익이 쏟아내는 전문지식들 속에서 예능으로서의 어떤 균형점을 잡아준 건 다름 아닌 유희열이었다. 유희열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간간히 한 마디씩 덧붙임으로써 가르치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즉 유희열이 던진 “이 분들 옆에 있으니까 바보가 된 기분”이라는 말은 시청자들이 느낄 그 기분이 당연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런 지식을 털어놓는 그들이 보통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물론 <알쓸신잡>은 그 주인공이 ‘말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특정 여행지에 합류시킨 건 보통 사람들의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각자 전문분야를 가진 이들의 생각들을 그 공간을 통해 풀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하는 예능’에서 더 중요해지는 건 유희열 같은 ‘들어주는 인물’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춰주고 이야기가 과할 때는 그 사실을 얘기해 공감대를 형성해주고, 놀라운 상상력에는 같이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때론 그들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과 똑같다는 사실을 드러내주기도 하는 인물. <알쓸신잡>에서 유희열이 없었다면 자칫 지루해졌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알쓸신잡’, 쓸데없어 보여도 신기하게 재밌는 

왜 ‘인문학 어벤저스’라 불렀는지 그 이유를 알아차리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타 목적지인 통영으로 가는 길, 무얼 먹을까 생각하던 중 무심히 나온 장어탕 이야기에 황교익은 장어의 종류들을 줄줄이 설명한다. 민물장어부터 바닷장어 나아가 사실은 장어과가 아니라는 꼼장어까지 우리가 그다지 자세히 알지 못했던 자잘한 지식들이 쏟아진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여기에 유시민은 장어가 왜 양식이 되지 않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산란을 하기 위해 바다로 돌아가는 장어에게 추적기를 달아도 심해로 들어가면 신호가 잡히지 않아 그 이후의 과정들이 ‘신비’에 가려져 있다는 ‘신기한’ 장어의 생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유희열이 오늘은 꼭 장어를 먹어야겠다고 말하자, 김영하가 불쑥 끼어들어 그 고생을 해서 겨우겨우 살아 돌아온 애들을 꼭 먹어야겠냐는 감성적인 유머를 덧붙인다. 

한편 강연 일정이 있어 저녁 자리에 겨우 합류한 정재승 박사에게는 과학적인 궁금증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장어를 먹으면 정력에 좋다는 것이 과학적 근거가 있냐는 질문에 “근거 없다”고 선을 긋자, 황교익이 ‘플라세보 효과’는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정력은 그렇게 함부로 올라가지 않는다”고 말해 빵 터지게 만들었다.

장어 하나만을 갖고도 이처럼 다채로운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각각 자기 분야가 확실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취향도 제각각이다. 같은 소재를 갖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점심을 먹는데도 저마다 취향이 달라, 황교익은 자신이 자주 가던 단골집을 찾았고, 유시민과 유희열은 자신들의 촉을 따라서 걷다가 문득 걸린 집에서 맛난 한 상 차림을 즐겼다. 한편 김영하는 바닷가 마을에 가면 짬뽕을 먹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놀라운 해물 비주얼을 갖춘 특제 짬뽕을 챙겨먹었다. 

그들이 간 통영이라는 곳도 마찬가지다. 황교익은 충렬사를 찾아 거기 세워진 백석 시비를 읽으며 백석의 연정을 공감하고, 유시민은 역시 작가답게 거북선 안내문을 읽으면서도 잘못된 문장들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한편 박경리 선생의 묘소를 찾아간 김영하는 소설가 선배를 대하는 후배의 살뜰한 마음을 담았다. 

각각 자신들만의 세계가 확실하고, 여행을 해도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렇게 낮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 한 자리에 모인 그들은 그 짧은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이나 생각한 것들을 줄줄이 풀어내는 즐거운 수다 시간을 갖는다. 각자 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렇게 저마다의 생각들이 저녁 시간에 한데 어우러지는 그 느낌이 주는 풍족함이라니.

사실 우리가 생활해 나가는 것에 초점을 두고 보면 이런 수다는 쓸데없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이라는 것이 본래 생활의 차원을 살짝 넘어서 있어 마치 쓸데없어 보이고 그래서 우리가 자주 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들의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신기한’ 느낌을 갖게 된다. 사고의 확장이랄까. 혹은 사고의 전환이랄까. 생활 속에 매몰되어서는 나오기 어려운 생각과 이야기들이 거기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역시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가능해진 건 이처럼 각각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일이다. 유시민 작가는 나영석 PD가 함께 하자고 했을 때 항상 모니터링을 해주는 아내에게 의향을 물었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온 이야기가 나영석 PD라면 항상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이었다는 것.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유희열. 이런 인문학 어벤저스의 조합은 나영석 PD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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