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종편에서 부활한 강용석, 공영방송에서 추락한 최효종

 

“국회의원 중에서 예능감이 뛰어나신 분 계십니까?” Jtbc <썰전>에서 강용석에게 박지윤이 이렇게 묻는다. 옆에 있던 김구라가 홍준표, 남경필 의원을 꼽고 또 누가 없냐고 묻자, 어딘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진심 없는 리액션을 보이고 있던 강용석은 결국 “강용석이죠 뭐.”하며 자신을 꼽았다. 그러자 김구라는 <썰전> 기사에 달린 강용석에 대한 댓글 이야기를 꺼내며 ‘칭찬 일색’이었다고 증언해주었고, 허지웅은 “‘썰전’이 강변호사한테는 <힐링캠프>”라고 덧붙였다.

 

'썰전'(사진출처:Jtbc)

2년 전 강용석이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으로 한창 주가를 날리던 최효종을 고소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놀라운 변화다. 게다가 강용석은 대학생들과의 술자리에서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아나운서들에게 명예훼손으로 피소되기도 했던 인물이 아닌가. 여론의 지탄을 받으며 국민 비호감으로 전락하고 한나라당에서도 제명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던 강용석은 어떻게 이처럼 화려한 재기를 할 수 있었을까.

 

강용석의 인기비결은 지난 <썰전>의 방송 한 대목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이 날 주제는 지상파 봄 개편이었는데, 강용석은 “지상파 방송이 차별성을 잃었다”고 자못 진지하게 꼬집는다. 옆에 있던 김구라가 “공중파에서 섭외 들어오냐?”고 슬쩍 치고 들어오자 강용석은 굳이 부인하지 않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오매불망”이라는 것. 김구라는 “만약 들어오면 어떤 프로를 하고 싶냐”고 되묻는다. 강용석은 냉큼 ‘그것이 알고싶다’를 지목한다. 그러자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윤석이 마지막 일침을 던진다. “사회자로서요? 아니면 소재로서요?”

 

이 짧은 대화 속에는 강용석이 어떻게 방송에 소비되고 있는가가 들어있다. 강용석은 정치인이나 변호사로서의 위치에 걸맞는 진지함을 먼저 보이다가도 김구라가 속내를 건드리면 거침없이 그 속물근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과거나 비호감적 요소를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거기에 대한 공격 또한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김구라가 그의 방송 멘토라고 강용석이 얘기했듯이 그의 방송 존재 기반은 초반 김구라가 대중들을 대신해 그를 공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강용석은 반발이 아니라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꾸준히 보였다는 점이다.

 

이것이 강용석이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정서적인 전략이라면, 그가 정치인으로서 변호사로서 갖고 있는 다양한 정보들은 그의 말에 대중들이 귀를 기울이게 하는 정보적인 전략이다. 그의 정보는 호기심을 채워주는 쾌감을 선사한다. 국회의원이 어느 사우나를 가고 술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하는 점은 대중들에게는 흥미로운 호기심을 자극한다. 즉 강용석에게는 김구라라는 천군만마의 지원자가 있는데다, 정서적인 전략과 자신만의 특별한 정보를 자원으로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Jtbc나 tvN 같은 지상파 바깥의 매체가 갖는 비주류적인 방송의 특징은 때론 자극적이고 거침없는 그의 이야기에 멍석을 확실히 깔아주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은 강용석의 고소로 한 때 주가가 100배 이상 올랐다(최효종 스스로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고 했던 최효종은 어째서 현재 그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까. 최효종은 현재 <개그콘서트>에서 ‘애니뭘’과 ‘위캔척’ 등에 출연하고 있는데 그 반응은 확실히 예전만 하지는 못하다. ‘위캔척’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아는 척 할 수 있는 몇 가지 용어들을 알려주는 코너. 군대에 대해서 ‘꿀 빨았네’나 ‘치약미싱’ 같은 용어로 아는 척을 해보라 권하는 식이다. 최효종이 늘 해왔던 이른바 ‘공감 개그’의 하나지만 과거처럼 세태를 꼬집는 힘은 좀 약한 편이다.

 

강용석이 승승장구하는 반면, 최효종이 점점 주목받지 못하게 된 데는 아무래도 그들이 출연하고 있는 방송사(혹은 프로그램)의 이른바 ‘멍석 차이’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KBS라는 공영방송에서 과거 정치인이건 경제인이건 상관없이 던져지는 최효종식의 거침없는 비판과 풍자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개그콘서트>가 최고의 개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으면서 생겨난 일종의 책임의식은 소재의 제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기검열이 생긴다는 얘기다. 그런 분위기에서 헝그리한 개그가 나오기는 어렵다.

 

반면 바닥을 친 강용석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케이블과 종편에 출연했다. 그의 이 배수진은 논란이나 자극 자체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케이블과 종편으로서는 오히려 자산이 되는 셈이다. 어쨌든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인을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한때 정점을 찍었던 연예인은 여러 환경적 조건에 의해 평범해진 반면, 그 연예인을 고소함으로써 국민적 비호감이 되었던 정치인은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효종이 정치적인 이미지로 자꾸 포장되는 것과 달리, 강용석은 연예인의 이미지로 포장된다. 어쩌면 바로 이 점이 두 사람의 길을 갈랐을 지도 모르겠다.

<개그콘서트> 서수민 PD, 왜 위기감을 느꼈나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애정남', '비상대책위원회', '감사합니다' 같은 인기 코너가 사라졌고, '감수성'과 '사마귀 유치원'도 폐지 논의에 들어갔다. 파업이 끝나고 복귀한 서수민 PD가 마치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칼을 뽑아들었고, 코너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물론 아직까지 새 코너들이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과감한 폐지 선언에 대한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실제로 무리한 점이 없잖아 있다. 만일 서수민 PD가 파업으로 자리를 비우지 않고 있었다면, 코너들의 물갈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탔을 것이다. 잘 나가는 대표코너들이 있을 때, 새로운 코너들이 준비되고 그 중 몇 개가 두각을 나타내면 몇몇 반복되고 식상해지는 코너들을 폐지시키는 과정들을 서수민 PD는 물 흐르듯 진두지휘해 왔었다.

 

하지만 복귀해서 그간 변하지 않고 있던 <개콘>을 본 서수민 PD는 아마도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변화하지 않고 고여 있는 듯한 코너들, 긴장감 없는 분위기에서 사라져가는 헝그리 정신, 게다가 몇몇 개그맨들은 최근 들어 너무 잘 나가고 있지 않은가. 광고를 찍고 음원이 차트에 오르고 하는 건 물론 개그맨들에게 좋은 일이지만, 자칫 그 본래 터전인 <개그콘서트>만의 긴장감이나 헝그리 정신을 희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서수민 PD가 칼을 든 것은 아마도 개개 코너들에 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결과는 코너들이 재미없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거기에는 그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개그콘서트>라는 경쟁 시스템이 느슨해질 때, 코너들도 식상해지고 프로그램도 어려워지게 된다. 그것은 결국 개그맨들에게도 위기로 이어진다. 즉 당장의 편안함이 이 <개그콘서트>라는 시스템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서수민 PD의 칼날은 코너들을 살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바로 경쟁 시스템 자체를 복원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보면 웃기기는 하지만 이미 반복적으로 굴러간다 싶은 코너들은 그래서 <개그콘서트>에는 그 자체로 독이 될 수 있다. '애정남'은 그 폐지 수순이 너무 늦었다 싶을 정도로 반복적이었다. 이 부분은 서수민 PD 역시 알고는 있었지만 시청자분들이 챙겨준 아이디어들을 그저 버릴 수가 없어서 존속시키고 있었다고 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여전히 재미있지만 역시 그 패턴이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안돼!"와 "고뤠!"의 반복인 셈이다. '불편한 진실' 역시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패턴 반복의 고리에 빠져 있다.

 

'사마귀 유치원'도 신선함이 사라져버렸지만, 그나마 그 안에서 일수꾼 최효종이 브로커로, 쌍칼 조지훈이 작두 아저씨로 캐릭터를 바꿔 변화를 주고 있다. 하지만 결국 이 코너도 큰 틀은 그대로인 셈이다. '생활의 발견'은 아이디어적으로는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는 코너지만(지금껏 남녀 사이로만 국한된 아이디어에 머물러 왔다) 좀체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게스트를 통해 넘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감수성'도 마찬가지다. 다만 '감수성'은 엔딩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복안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새 코너들은 어떨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직까지 빈 자리를 제대로 채워줄 핫한 코너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무섭지 아니한가'나 '아빠와 아들' 같은 코너는 너무 과거에 무수히 써먹었던 개그의 반복처럼 여겨지고, '호랭이 언니들'은 개그우먼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기획적인 안목은 좋지만 개그로서는 너무 약한 게 흠이다. '박부장'은 공감은 가지만 한방이 부족해보이고, '하극상'은 너무 말장난으로 가는 느낌이다.

 

그나마 주목되는 것은 '희극지왕 박성호'다. 박성호를 전면에 내세운 이 코너는 예상과 반전으로 웃음을 만든다. 이 개그는 박성호가 하는 개그를 평가하면서 그것이 개그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웃음의 틀이 탄탄하게 여겨진다. 즉 박성호가 웃기지 않으면 웃기지 않다는 걸 내세워서(그는 <개콘>의 최고참이다) 웃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박성호 특유의 언변이 돋보이는 개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코너마저 내린다고 한다. 그만큼 <개콘>의 분위기가 남다르다는 얘기다.

 

어쨌든 <개콘>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래서 코너들보다도 먼저 경쟁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그 팽팽한 긴장감과 경쟁구도가 살아난다면 코너들은 자연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역시 서수민 PD는 명장이다. 여전히 적지 않은 20%라는 시청률에 현혹되지 않고 문제를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변화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조만간 더 강력해진 <개콘>을 기대할 수 있게 했다.

시청률 넝쿨째 들어온 '넝쿨'의 비결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쿨)'은 전체 시청률 1위. 봄철 꽃놀이 인파로 잠재 시청층이 빠져나가기 마련인 요즘, 36.4%의 시청률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과거부터 가족드라마는 기본 시청률을 가져간다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요즘은 이런 사정도 많이 달라졌다. 일일드라마라고 해도 그저 비슷한 공식만 반복하는 드라마는 외면받기 일쑤. 늘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던 KBS 일일드라마 '당신뿐이야'가 시청률 20%에 머물러 있는 건 주말극으로 '넝쿨'이 매주 최고시청률을 갈아치우는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풍경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사진출처:KBS)

'넝쿨'이 가진 가족드라마적인 면모는 기존의 것들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점이 가족주의에 머물던 기존의 가족드라마와 달리, 달라진 세태를 며느리와 아들 입장에서 풀어낸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며느리 전성시대' 같은 가족드라마에서 며느리의 관점으로 시댁을 뒤집어보는 시도는 늘 있었던 것이니까. 그렇다면 이 가족드라마만이 가진 진짜 매력은 뭘까.

 

그 답은 드라마보다는 최근 대세를 이루었던 공감개그 혹은 공감에 바탕을 둔 콩트에서 찾아진다. '넝쿨'을 보다보면 그 안에서 우리는 '애정남'이 불쑥 튀어나오고, '롤러코스터'의 '남녀탐구생활'을 떠올릴 수 있다. 이른바 '시월드(시댁)'에서 살아남기 버전처럼 보이는 이 드라마는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공감 가는 상황을 곳곳에 배치했다.

 

혼수를 해오지 않은 탓에 세탁기 얘길 하는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세탁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로 듣고 신형세탁기를 선물하는 며느리, 또 그런 며느리를 씀씀이 헤프다며 잔소리하는 시어머니, 그런 잔소리에 아들이 며느리 편을 드는 것 같자 눈물을 흘리는 시어머니 등등. 이런 시집 식구와의 관계들이 대단히 디테일한 상황으로 보여지는 건 이 드라마의 최대 강점이다. 어쩌면 그렇게 밉상 짓만 골라하는지 미운 짓에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시누이의 모습이나 시어머니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물어볼 때 가질 며느리의 곤혹스러움 같은 디테일들은 이 드라마에 대한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공감 가는 상황 위에 놓여진 반전의 반전은 또 다른 재미다. 며느리 윤희(김남주)의 바쁜 직장생활과 전혀 다른 생활방식 때문에 전형적인 시댁 식구의 공격(?)이 이어지면, 이후에 해결사처럼 남편 귀남(유준상)의 합리적인 해결방식이 제시되며 역공격이 이루어진다. 제사 음식 차리는 걸 돕지 않은 윤희에 대한 시누이의 공격에 귀남이 손수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제사 음식을 하거나, 시누이의 잇따른 아내 구박에 귀남이 "그러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식이다.

 

기존 공감 가는 상황이 현실적인 디테일이라면, 귀남의 합리적인 해결방식은 일종의 바람직한 판타지에 가깝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애정남'과 '롤러코스터'에서 본 적이 있다. 애매한 상황에 어떤 지침을 내려주는 애정남의 방식은 이 드라마가 가진 현실적인 디테일 상황 속에 일종의 해결책을 던져주는 방식과 똑같다. 또 '롤러코스터'가 보여준 리얼한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통쾌한 내레이션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런 디테일한 공감 포인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넝쿨'은 시청자 유입에 있어서 유리한 지점을 갖게 된다. 물론 드라마적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주지만, 만일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아 그 내용을 전혀 모르더라도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공감가는 상황이 주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애정남'이나 '롤러코스터'가 굳이 지금까지의 줄거리(?)를 이야기 하지 않고도 매회 공감을 얻는 것처럼.

 

게다가 이 공감 포인트는 그 자체로 드라마에 대한 호감을 만들어낸다. 딱히 드라마가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은 이 공감 가는 상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정적인 지지를 하게 된다. 마치 '애정남'에 대한 진짜 재미는 '맞아 맞아'하면서 공감하는 그 대목 자체에 있는 것이지 그것이 대단히 웃기기 때문은 아닌 것처럼. '애정남'을 우리가 공감 개그라고 부른다면 '넝쿨'은 공감 드라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넝쿨'이 승승장구하는 진짜 이유다.


공감 없는 상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승승장구'(사진출처:KBS)

최근 이른바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애정남'이 대세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의 줄임말인 '애정남'. 도대체 뭐가 애매하다는 것이고, 그는 또 그걸 어떻게 정해준다는 얘기일까. 먼저 간단한 몇 가지 애매한 상황을 제시해보자.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먹다가 마지막 한 개가 남았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그냥 버리기도 아깝고 그렇다고 덥석 먹자니 좀 그렇고. 또 누군가를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스킨십은 언제부터 해야 상대방이 당황하지 않을까. 이런 애매한 상황은 너무 사소해보여서 안 보이는 것뿐이지 사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지하철에 앉아 가는데 할머니와 임산부가 동시에 탔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양보를 해줄 것인가. 하다못해 영화관에서 팔걸이는 어느 쪽으로 해야 옆 사람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사실 너무 소소한 일이라 이런 고민은 전혀 쓸 데 없어 보인다. 실제로 남은 음식을 누가 먹든, 팔걸이를 어떻게 하든 '애정남'이 늘 코너에서 말하듯 '쇠고랑을 차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건 정말 쓸 데 없는 고민에 지나지 않는 걸까. '애정남'이 건드린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왜 이런 자잘한 것들은 고민의 대상에 끼워주지 않는 걸까. 꼭 쇠고랑을 차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지극히 공적이고 법제화된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중요한 의제로 제기될까. 왜 우리가 늘 생활하는 사소한 일상들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걸까. 그걸 조금만 심각하게 얘기해도 좀스러운 사람 취급을 하는 걸까. '애정남'이 열어놓은 것은 바로 이 거대담론들에 의해 가려지거나 소외되었던 자잘한 일상들의 소중함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 따위 거대담론들이 도대체 내 살림살이를 얼마나 낫게 해주었는가 하는 냉소적인 시선도 들어있다.

거대담론들은 늘 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우리에게 던져져왔다. 거기에 우리가 끼어들 틈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어디 이런 상명하복식의 혹은 일방통행식의 거대담론으로 굴러가는 시대인가. 이제 우리는 소소한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엮어서 세상을 만들어가려 한다. 선거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공약들이 공염불이 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온 유권자들은 이제 '우리들만의 소중한 약속'이 더 중요해졌다. 그 실천 가능한 것들이야말로 어쩌면 실제로 세상을 변하게 하는 힘이라는 걸 깨달은 탓이다.

물론 '애정남'은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그런 코너가 아니다. 이것은 개그다. 이런 자잘한 이야기들을 통해 웃음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애정남'이 이런 애매한 상황에 내리는 일종의 지침이나 해법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마지막에 하나 남은 음식은, 밑반찬일 경우에는 아무나 먹고(리필이 가능하기 때문에), 육류는 집게를 가진 사람이 먹으며(일한 사람이 먹는다), 나머지 기타 음식은 돈 내는 사람이 먹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애정남'이 건네는 답은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이 상황들이 곤란하고 애매하다는 것을 똑같이 공감한다는 것 그 자체다. 그 상황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고 "맞아 맞아"하고 공감하며, 일종의 해답을 찾으려는 그 노력 자체에 수긍하고 동조하게 되는 것. 이른바 '공감 개그'라고 불리는 '애정남'이 갖고 있는 대단한 경쟁력의 실체다.

따라서 '애정남'의 힘은 대중들이 현재 어떤 가려움을 갖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능력에 있다. 지난 추석 다음 아고라에 애정남이 올린 글은 그 단적인 사례다. 추석이나 명절에 시댁에 가는 것을 좋아할 며느리가 몇이나 있을까. 제사 지내고 나면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애정남'은 그런 며느리들에게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내고 아침 먹고 설거지가 끝나는 순간 출발입니다잉"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며느리를 탐탁찮게 여길 수 있을 시어머니에게도 한 마디 공감어린 충고를 곁들였다. "잘 생각하세요. 시어머니들. 이게 지켜져야 따님도 빨리 볼 수 있는 겁니다잉." 이 글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내용을 따다가 쓴 기사에 무려 천 개가 넘는 댓글이 붙었고, 그 내용도 대부분 "공감 백프로"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좀스럽고 어쩌면 곤란해서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속내를 애정남이 살짝 끄집어내는 순간, 빵 터지는 웃음과 함께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해졌던 것. 물론 이렇게 인기발언을 제 맘처럼 해주는 '애정남'에 대한 애정도 더 깊어졌다.

사실 '개그콘서트'에서 이런 현실 공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개그는 '애정남'뿐만이 아니다. '생활의 발견'이나 '불편한 진실'도 모두 현실에서 지나쳤던 일상을 가져와 공감을 바탕으로 웃음을 주는 소위 '공감개그'들이다. 하지만 이들 개그들과 '애정남'은 기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이 현실에 대한 태도다. '생활의 발견'이나 '불편한 진실'은 그 부조리한 일상의 현실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것이라면, '애정남'은 좀 더 적극적으로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지침(?)을 준다. 물론 애정남의 말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쇠고랑을 차지는' 않는 일이지만 '서로 지킴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행동을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저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걸 강조한다.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우리들만의'라는 한정이다. 저들의 쇠고랑 차고 경찰 출동하는 거대담론이 있다면, 우리들만의 자잘한 상황 속에서의 아름다운 약속이 있는 셈이다.

'애정남'이 구획하는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왜 이 개그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누군가 정해놓은 것들 속에서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대중들은 언제부턴가 저 스스로 약속을 정하고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국가나 세계가 주창하고 따르기를 바라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비록 작고 소소하다고 하더라도 나와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는 것. 물론 이 개그 속에는 저들의 법칙으로 구획되어 좀체 바뀌지 않는 단단한 세상에 대한 소심한 복수가 들어있지만, 그 안에는 또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대안도 들어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약속'은 무엇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동어반복일 지 모르지만 그것은 바로 '공감대'다. '애정남'이 애매한 상황에 던지는 지침 하나하나에는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느 사안에 대해 특별히 수사적인 설변이 없어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상황. 어찌 보면 상식적일 수도 있지만, 세상이 지키지 않아 더더욱 돋보이는 그런 상식. 마음과 마음의 교감 혹은 동감. 거기서 생겨나는 동류의식. 이런 것들이 이 작은 코너 속에서는 번뜩인다.

마케팅이 단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라면 아마도 '애정남'이 주는 교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이제 상품보다는 문화를 팔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 문화라는 것은 바로 '애정남'이 보여주는 그 공감이라는 장치를 통해 만들어지고 공유되고 전파되는 것이다. 만일 공감이 없다면 문화도 없다. 그러니 이를 확대해서 얘기하면 공감 없는 상품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것은 아마도 마케팅의 기본일 것이다. 고객의 마음을 얻는 것이나 공감하게 한다는 것이 그다지 달리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의미는 약간 다르다. 공감은 단순히 물건 하나에 심어진 이미지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좀 더 총체적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상품이 아니라 그 상품을 만드는 회사나 장인의 진심이 더 중요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만일 그 진심을 대중들이 공감하게 된다면, 상품 판매는 특별한 프로모션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게 될 테니 말이다. '애정남'은 바로 그런 달라진 대중들의 시선을 슬쩍 보여주고 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까. 함께 음식을 먹다가 마지막 하나가 남았을 때, 그들도 누가 그것을 먹어야 할지 고민할까. 누군가를 사귈 때 스킨십은 언제부터 해야 할까. 또 지하철에서 할머니와 임산부가 동시에 탔을 때 누구에게 자리를 양보해줘야 할지 그들도 애매해할까. 영화관에서 팔걸이는 어느 쪽으로 해야 할까....

어찌 보면 쓸데없는 고민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 현실에서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애매할 때가 많다. 물론 그 남은 음식 하나를 누가 먹든, 팔걸이를 마음대로 한다고 '쇠고랑을 차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건 아니다. 이건 몰라도 하등 사는데 지장 없는 소소한 일들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이른바 애정남은 바로 그 생각들을 보여준다. 어쩌면 좀스럽다고 여겨져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그 속내를 애정남이 끄집어내놓는 순간, 같은 생각을 했던 우리들의 웃음이 터져나온다. 밖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그 공감의 순간. "맞아 맞아"하는 끄덕거림과 함께 웃음으로 만들어지는 개그. 이른바 '공감 개그'인 셈이다.

사실 애정남이 제시하는 해법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즉 예를 들어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음식은, 밑반찬일 경우 아무나 먹고(리필이 되기 때문에), 육류는 집게를 가진 사람이 먹으며(일한 사람이 먹는다), 나머지 기타 음식은 돈 내는 사람이 먹는다는 식의 답은 그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다. 그것이 곤란하고 애매한 상황이라는 것을 똑같이 공감한다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 물론 정한 답에 살짝 사심이 섞인 메시지를 넣어주면 일종의 '인기발언'이 성립된다.

지난 추석 다음 아고라에 애정남이 올린 글에 대한 여성들의 엄청난 공감은 바로 그 '인기발언'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명절 때 시댁에 들렀다 친정에 가는 애매한 시점에 대해서,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내고 아침 먹고 설거지가 끝나는 순간 출발입니다잉"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아마도 모든 며느리들의 마음일 것이다. 물론 그는 시어머니에 대한 공감 포인트도 잊지 않는다. "잘 생각하세요. 시어머니들. 이게 지켜져야 따님도 빨리 볼 수 있는 겁니다잉." 이처럼 그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살짝 긁어주었을 때, 일상 속에 묻어 놓았던 자잘한 삶의 간지러움은 시원해진다. 애정남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남녀를 비교했을 때 아직까지는 남성보다 여성들에게 일상의 가려운 부분이 더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실 '개그콘서트'에서 이러한 현실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공감개그는 흔한 소재들이다. '두분토론'이나 '동혁이형' 같은 세태적이고 풍자적인 코너들은 '개그콘서트'만의 특징을 잘 보여 온 개그들이다. '애정남' 최효종 역시 과거부터 줄곧 공감개그를 선보인 전력이 있다. '독한 것들'이나 '최효종의 눈' 같은 코너들이 그렇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그콘서트'의 공감개그는 훨씬 더 강해졌고 많아졌다. 일상 속에서 만들어진 습관에 의해, 상황과 맞지 않는 부조리한 행동들을 보여줌으로써 웃게 만드는 '생활의 발견'이나, 그 부조리한 상황을 마치 심층 보도하듯 풀어내는 '불편한 진실'도 '애정남'과 마찬가지로 현실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개그다.

하지만 이 '불편한 진실'이나 '생활의 발견' 같은 개그들과 '애정남'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그것은 상황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자세다. '생활의 발견'과 '불편한 진실'이 그 우스운 상황을 그저 보여주는 것이라면, '애정남'은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지침(?)을 제시해준다. 물론 애정남의 말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쇠고랑을 차지는' 않는 것이지만 '서로 지킴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행동을 하자고 말한다. 이러한 행동강령을 부여했기 때문에 '애정남'은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 일상 속에 존재하는 '애매한 상황'들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추석 시점에 맞춰 애정남이 아고라에 올린 글은 이런 적극적인 개그의 특성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굳이 지침 같은 건 필요 없어 보이는 '애정남'의 소재들이다. 그 소재들은 명절에 받은 문자에 답장을 보내야 할까, 결혼축의금은 도대체 얼마를 내야할까, 심지어 시식코너에서 몇 개까지 먹는 게 시식일까 같은 자잘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바로 이 중요하지 않게 취급된 자잘한 소재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크다. 그것들은 이른바 이 사회가 폼나게 전면에서 드러내는 거대담론에 의해 소외된 이야기들이라는 점이다. 그 거대담론을 이끌고 있는 건 누구인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힘 있는 이들이다. 서민들이 제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는, 저들끼리 만들고 꾸려가는 거대담론이 주는 소외감은, 거꾸로 서민들로 하여금 일상적이고 자잘한 것들에 대한 애착을 갖게 만든다. 즉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거대한 것보다는 그래도 우리끼리 정하고 바꿀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 훨씬 마음이 간다는 얘기다. '애정남'이 제시하는 일종의 행동강령은 그래서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비정치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행위 자체는 굉장히 정치적인 것이다. 이 자잘한 일상의 변화는 어쩌면 뜬구름 잡는 거대담론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애정남'에 열광하는 사회의 이면에는 이 단단하게 바뀌지 않는 세상에 대한 소극적인 복수(?)가 들어있다. 그래서 이렇게 자잘하고 애매한 것들을 목숨 걸고 정해주려는 '애정남'은 우스우면서도 때론 처절하고 비애스럽게 보일 때조차 있다. 왜 그토록 작은 것들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거 안한다고 쇠고랑 안차요. 경찰 출동 안 해요. 그저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이에요." 이 반복되는 얘기 속에는 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지의식을 느끼게 되는 구석이 있다. '우리들만의'라는 내밀한 표현이 우리의 허전한 마음 한 구석을 채우는 건 그 때문일 게다. '애정남'은 거대담론으로 굴러가는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작지만 실제적인 '우리들만의' 작은 약속을 던져준다. 그 약속이 얼마나 적절하고 효과적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작은 세계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한다는 것. 우리끼리 약속을 정한다는 것. 그것이 주는 위안은 결코 작지 않다.
(이 칼럼은 중앙선데이에 기고된 글입니다)


'개콘', 깊어진 공감, 신랄해진 풍자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이렇게 후보가 돼서 당선되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그냥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한 번에 먹으면 되요. 선거 유세 때 공약도 어렵지 않아요. 공약을 얘기할 때는 그 지역에 다리를 놔준다던가, 지하철역을 개통해준다던가, 아 현실이 너무 어렵다고요? 괜찮아요. 말로만 하면 되요. 이래도 당선이 될까 걱정이라면 상대방 진영의 약점만 잡으면 되는데 과연 아내의 이름으로 땅은 투기하지 않았는지 세금은 잘 내고 있는지 이것만 알아내세요. 아 그래도 끝까지 없다면 사돈에 팔촌까지 뒤지세요. 무조건 하나는 걸리게 돼있어요. 이렇게 여러분들 이 약점을 개처럼 물고 늘어진다면 국회의원이 될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 이렇게 쉽게 국회의원이 돼서 서민을 위한 정책 펼치세요."

'개그콘서트'의 풍자가 더 독하고 신랄해졌다. '사마귀유치원'은 그 정점이다. '어린이 여러분'이 아니라 '어른이 여러분'을 상대로 하는 '사마귀유치원'은 대놓고 정치적인 문제들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풍자한다. 그것도 웃으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 '예쁜 집에 살고 싶다'는 어른이들의 소망에 대해 최효종은 천연덕스럽게 "교대에 가면 된다"며, "초봉이 140만 원"인데 "숨만 쉬고 살면 89세에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어요. 너무 쉽죠?"하고 말한다. 또 아이를 낳을 경우에는 "1인당 양육비가 2억4천씩 들기 때문에 아이들과 숨만 쉬고 살았을 때는 217세에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의 자질문제에서부터 집 마련은 언감생심인 서민들의 현실적인 고충까지 풍자의 대상에는 거침이 없다.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물론 '개그콘서트'는 현실풍자가 그 바탕에 늘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 강도가 이토록 강해진 건 최근의 일이다. '비상대책위원회'는 비상사태를 전제해두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관료주의와 무능력한 위기대처능력을 사정없이 꼬집는다. 당장 테러가 일어날 상황을 긴박하게 브리핑하지만, 거기에 대해 첫 마디는 "안돼-"인 상황.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안되는 이유를 줄줄이 늘어놓음으로써 결국 위기에 대처할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무능력. '비상대책위원회'나 '사마귀유치원'은 보는 내내 깔깔 웃게 만들지만 그 밑에는 그간 답답하고 억눌려왔던 서민들의 감정들이 꿈틀댄다.

이처럼 독한 풍자가 대중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 풍자가 꼬집는 현실에 대한 깊은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딱히 비판적인 현실 풍자가 아니라고 해도 '애정남'이나 '생활의 발견', '불편한 진실' 등, 현실을 공감하게 하는 코너들이 많아진 것도 최근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변화다. '애매한 것을 정해준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그 상황에 대한 공감을 동력으로 가져가는 '애정남'이나, 진지한 상황 속에서도 본능적인 욕망을 발견하게 되는 '생활의 발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을 슬쩍 끌어들여 그 심리를 파고드는 '불편한 진실' 등은 모두 '현실 공감'이 그 핵심이다. '그래 그래 나도 저랬어'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

'개그콘서트'는 물론 여전히 '슈퍼스타KBS'나, '감수성', 'N극과 S극'처럼 몸 개그를 기반으로 하는 개그들이 있지만, 최근 그 흐름을 주도하는 건 이 풍자와 현실에 공감하게 되는 말 개그들이다. 이것은 '개그콘서트'가 과거 마빡이나 갈갈이류의 초중등학생들이 좋아했던 몸 개그에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풍자를 이해하는 나이든 세대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은 고무적이다. 일요일 저녁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해피선데이'가 '개그콘서트'에게 왕좌를 내주고 있는 것. 이렇게 된 것은 물론 '개그콘서트'의 깊어진 공감과 신랄해진 풍자 덕분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어쩌면 그만큼 더 팍팍해진 대중들의 삶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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