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효과, 박신혜 효과보다 컸다

 

<별그대>노믹스.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의 경제효과를 지칭하는 말이다. 전문가들이 <별그대>의 경제효과를 추산하는 건 무려 3조원. 이 드라마 한 편으로 중국인들은 김수현과 전지현의 일거수일투족을 구매하게 되었다. 이들이 입는 의류와 화장품은 물론이고, 전지현이 드라마 속에서 했던 치맥(치킨과 맥주) 문화에 빠져든다. 성지가 되어버린 <별그대> 촬영지는 중국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물론 중국에 진출했거나 관련 사업을 하는 이들도 <별그대> 특수를 누리기 마련이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도대체 무엇이 다른 드라마와 달리 <별그대>의 경제효과를 이토록 크게 만들어냈던 걸까. 지난 23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는 이색적인 컨퍼런스가 열렸다. ‘<별에서 온 그대> 열풍으로 본 중국사회의 이해.’ 이 거창한 제목의 컨퍼런스에는 중국 전매대학 연극영상학부의 리셩리 교수, 북경방송국 드라마센터 마케팅부 샤오제 주간 그리고 CJ E&M China 드라마부문 책임 프로듀서인 정태상 PD가 발표자로 나왔다.

 

사뭇 진지하게 진행된 이 컨퍼런스는 <별그대> 열풍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중국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였다. <별그대>의 중국 성공에 대해 리셩리 교수는 이미 한국 트렌디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형성되어 있었고 특히 여성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는 점과 인터넷의 힘을 강조했다. 중국의 경제가 급부상하면서 생겨난 경제적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 불균형은 지금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양극화와 유사한 정서를 만든다는 것. 그것이 나라는 달라도 <별그대>라는 작품 하나가 양국에서 동시간대에 열광을 만든 이유라는 것이다.

 

동시간대에 한국과 중국에서 비슷한 열풍이 불었다는 점은 중요한 지점이다. 즉 과거 <겨울연가>로 인한 욘사마 열풍이나, <미남이시네요>로 촉발된 장근석 열풍은 국내와 해외의 온도차가 컸다는 점이다. 그래서 거꾸로 해외에서 먼저 터지고 그 다음에 국내에서도 관심을 갖는 순서로 한류바람이 불었다는 것. 하지만 <별그대>는 다르다. 국내와 해외가 동시적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리셩리 교수가 얘기하는 양국이 비슷하게 겪는 양극화와 그 정서가 바탕이 됐다는 얘기다.

 

중국은 하나의 나라라기보다는 하나의 대륙에 가깝다는 정태상 PD의 이야기는 리셩리 교수가 남방과 북방이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정서가 다르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남방의 정서가 따뜻한 멜로의 분위기를 가진 우리네 한류 드라마에 더 열광적인데 반해 북방의 정서는 정치 같은 딱딱한 이야기에 더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적인 정서의 남방과 남성적인 정서의 북방으로 설명될 수도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별그대>의 열풍이 드라마에 머물지 않고 산업적으로 더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로 여주인공 천송이의 캐릭터가 주효했다는 지적이었다. <상속자들>에 비해 <별그대>가 더 마케팅적으로 효과를 발휘했던 이유는 여주인공이 화려한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상속자들>의 여주인공은 가난한 신분이기 때문에 여성 소비자들의 구매에도 그다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인들은 한류 드라마의 힘을 여전히 장르적으로는 멜로의 힘으로 보고 있었다. <상속자들>의 이민호 열풍이나 <별그대>의 김수현 열풍 등 멋진 남자 주인공에 대한 주목은 한류 드라마가 중국의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이번 <별그대>가 특이했던 점은 전지현이라는 여자 주인공에 대한 열풍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수동적인 존재로서의 여주인공에서 벗어나 이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워너비가 됐던 점이 작용했다.

 

<별그대>는 종영했지만 여전히 <별그대>를 얘기하는 것은 중국에서 새롭게 촉발된 한류드라마의 열기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장태유 감독은 지금껏 드라마를 갖고 이런 진지한 자리는 처음이라며 하지만 대단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종영했지만 <별그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여운은 또다른 한류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왜 하필 지금 '정도전'일까

 

왜 하필 정도전이었을까. 여말선초 이 난세만큼 사극이 사랑한 시기도 없을 게다. 거기에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라는 인물이 있다. <조선왕조 500>은 물론이고 <용의 눈물>, <대풍수> 같은 사극이 이성계라는 난세의 영웅을 소재로 다뤘다. 변방을 지키던 무장이 왕이 되는 과정이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특히 대선이라는 정치적 변혁기를 매 번 치르게 되는 우리에게 이 인물은 그 때마다 상징적인 의미가 덧붙여진 채 재해석되었다.

 

'정도전(사진출처:KBS)'

그런데 이 시기를 다루면서도 KBS가 정통사극의 부활을 알리며 가져온 인물은 이성계가 아니라 정도전이다. 물론 <정도전>이라는 제목을 붙여놓았지만 이 사극에서 이성계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극의 첫 시작부터가 정도전(조재현)이 이성계(유동근)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결국 정도전의 정치력과 이성계의 힘이 만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니, 정도전을 다루면서 이성계가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드라마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훨씬 효과적인 인물은 이성계다. 무장으로서 원에 쫓겨 고려로 들어온 홍건적을 물리치며 화려하게 등장해서는 원나라 나하추의 군대를 대파하면서 고려민들의 구세주로 떠오른 인물. 그의 연전연승 이야기는 조선 건국의 정치적인 이야기와 맞물려 훨씬 다이내믹한 장면들을 보여줄 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도전은 다르다. 그가 이성계와 함께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세운 것은 맞지만 그것은 끊임없는 정치적인 투쟁의 결과다. 즉 정도전을 다루는 사극은 결국 본격 정치를 다룰 수밖에 없고, 그것은 칼이 보여주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말로써 벌어지는 정치 대결이 사극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극 <정도전>은 고려 말 이색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정도전과 정몽주(임호)를 위시한 신진사대부들과 고려 말 원나라와 결탁해 권력을 잡은 권문세가의 대표 이인임(박영규)과의 정치대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쇠퇴해가는 북원의 끝자락을 잡고 고려 말의 권세를 계속 유지하려는 이인임과 북원과의 고리를 끊고 새롭게 등장하는 명나라와의 관계를 통해 새 세상을 꿈꾸는 정도전의 대결. 여기에 최영(서인석) 같은 고려의 충신과 공민왕이 시해당한 후 수렴청정을 한 명덕태후(이덕희), 그리고 왕실외척세력인 경복흥(김진태)의 힘겨루기가 들어가면서 정치대결은 더 복잡한 양상을 만들어간다.

 

정치적 이상과 포부가 큰 정도전이지만 적 아니면 도구로만 상대를 생각하는 현실 정치 9단 이인임을 이겨낼 수는 없다. 자신을 제거하려는 이인임에 맞서 정도전이 유학자들의 성지인 대성전으로 들어가 단식투쟁을 벌이자 이인임이 최영의 힘을 빌려 무력 진압 해버리는 현재의 정치에서도 낯설지 않아 보이는 장면은 그의 만만찮은 정치력을 보여준다. 정도전은 결국 이인임과의 수차례 대결에서 패배한 연후에야 이상과 현실 정치의 봉합을 꾀하게 되는 셈이다.

 

정도전은 이처럼 그 정치적 성장담이 흥미롭지 않은 건 아니나 그래도 TV 사극으로서는 다루기가 쉽지 않은 인물인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계가 아닌 정도전을 다루는 데는 그만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정도전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과 관련이 있다. 정도전은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닌 재상이 통치하는 나라를 꿈꾸었다. 즉 왕에 따라서 정치가 농단되는 것을 봐온 그로서는 왕이 누가 되던 나라가 제대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꿈꾸었다는 점이다.

 

수차례의 대선을 겪으면서 그 때마다 가졌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은 단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좌절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 그토록 꿈꾸었던 민생경제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했던 양극화 해소 역시 지난 1년 동안 아무런 해결점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정치가 바로 서고 나라가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제 믿기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왕이 아닌 시스템의 개혁을 꿈꾼 정도전이 사극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건 지금 현재 대중들이 느끼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정서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대선에 대한 누적된 실망감은 이제 표상되는 대표자의 얼굴이 아닌 실제적인 현실 정치 시스템의 변화로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이 <정도전>이라는 쉽지 않지만 좀체 눈을 떼기 힘든 본격 정치 사극에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가 아닐까.

신데렐라 없어도 더 쫄깃한 '응답1994'의 멜로

 

멜로는 신데렐라가 있어야 된다? 적어도 <응답하라 1994>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상속자들> 같은 드라마가 초거대 재벌가들 사이에 들어간 신데렐라 이야기로 너무 뻔하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응답하라 1994>는 신데렐라 없고 심지어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멜로만으로도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과거 <시크릿 가든>의 현빈과 하지원이 그랬고, <최고의 사랑>의 차승원과 공효진이 그랬듯이 잘된 멜로의 연기자들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 <응답하라 1994>의 멜로는 정우라는 배우에 대한 신드롬을 만들고 있고 또한 늘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고아라까지 매력적인 연기자로 재탄생시켰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처럼 촌스런 멜로의 주인공들이 이토록 주목받게 된 것은.

 

<응답하라 1994>는 <응답하라 1997>이 그랬듯이 현재의 여주인공이 과거 1994년의 어떤 인물과 결혼을 했는가를 찾는 다소 단순한 멜로를 그린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멜로가 의외로 힘을 발휘한다. 누가 누구와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어떻게 관계가 발전됐는가 하는 점은 마치 첫사랑의 추억담처럼 우리를 아련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친오빠처럼 다가와 점점 가슴 뛰게 만드는 오빠로 느껴지게 되는 쓰레기 정우나, 그저 하숙집을 들락거리다 점점 가까워지게 되는 칠봉이 유연석은 그 설정 자체가 신데렐라 멜로와는 다른 <응답하라 1994>의 특별한 멜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은 연세대라는 괜찮은 학벌의 소유자에다 직업적으로도 향후 의사가 될 의대생이거나 프로야구의 에이스가 될 야구선수다.

 

이것은 나정이(고아라)네 하숙집에 들어와 그녀와 장차 결혼할 지도 모를 다른 후보군들도 마찬가지다. 해태(손호준)는 순천시 버스회사의 막내아들이고, 빙그래(바로)의 부모는 충북 최대 규모의 양계장을 운영하며, 삼천포(김성균)는 한번 나가면 기름 값 1500은 드는 배를 가진 집의 아들이다. 물론 이들은 초재벌도 아니고, 드라마는 오히려 이 ‘잘사는 촌놈들’이라는 설정을 신데렐라 이야기로 활용하려 들지도 않는다. 유머 코드라면 모를까.

 

이들 촌놈들이 상경해 벌이는 멜로는 특별할 것 없는 당대 대학생들의 그것이다. MT를 가고 미팅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팬클럽 활동을 하며 하숙방에서 술내기 게임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그들이 보여주는 멜로란 오지 않는 삐삐를 밤새워 기다리거나 게임을 빙자해 뽀뽀를 하거나 혹은 아플 때 꼭 껴안아주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등장하는 그 흔한 결혼 반대하는 부모들도 보이지 않고 백화점을 통째로 쇼핑하듯 과시하는 남자의 모습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94>의 멜로가 그 어떤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쫄깃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멜로 속에 존재하는 평등한 시선과 특유의 공감대 덕분이다. 이 드라마에는 1994년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어딘지 촌스럽고 능숙하지 못한 인물들의 행동들이 오히려 멜로를 더 아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정이를 좋아하면서도 표현은 친오빠처럼 무뚝뚝하게 던지는 쓰레기가 그렇고, 또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애써 속내를 감추려는 칠봉이가 그렇다. 해태와 조윤진(도희)의 관계를 보라. 그들은 대부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면서 가까워진다.

 

<응답하라 1994>가 신데렐라 이야기 없이도 더 아련한 멜로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은 1994년이라는 과거의 한 지점이 가진 힘 때문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 그것도 첫 사랑의 추억이 있는 그 청순의 한 기억이란 현실적인 것과 일정부분 거리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첫 사랑의 설렘에 집안 형편이나 학벌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것은 또한 어쩌면 1994년만 해도 지금처럼 극심한 양극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초재벌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와 거의 하녀처럼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을 보호해주는 이야기는 그것이 판타지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치졸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돈이 많으면 많았지 그것이 사랑도 넘을 수 없는 계급이 되는 현실, 얼마나 치졸하고 치사한가.

 

그래서 이러한 양극화로 인한 수직적인 계급구조가 잘 보이지 않는 나정이네 하숙집에서 벌어지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멜로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다가온다. 돈이나 현실이나 집안이나 학벌과 상관없이 누군가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 설레며 하는 사랑.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사랑은 그러나 심지어 치사한 신데렐라 스토리에마저 빠져들게 만드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랑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요즘 청춘들은 학비 마련하랴 취업 준비하랴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응답하라 1994>가 보여주는 이 너무나 편안하고 때로는 낭만적으로 여겨지는 청춘과 사랑이 왜 판타지가 되지 않을까. 이것은 양극화를 더 첨예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멜로의 극성을 만들어내는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응답하라 1994>의 평범한 멜로가 더 강력한 이유다. 양극화 자체를 지워버린 완전한 평등의 멜로라니. 대단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비참한 삶 속에서 인간다운 삶이란

 

대선이 끝났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 어느 선거보다 뜨거웠던 대중들의 염원을 느낄 수 있었던 선거였다. 보수 진보와 신구세대로 나뉘어져 팽팽한 대결을 벌였지만 그 공약이 전하는 내용들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로 양극화 문제 해결, 반값등록금 실현과 청년 실업 해결, 대기업의 횡포로 사라져버린 골목 상권 부활 등등. 그것이 보수 진보와 신구세대를 넘어선 작금의 민심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영화 <레미제라블>

대선이 치러진 날 <레미제라블>이 개봉되었다.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 <레미제라블>은 이 날에만 전국 28만 3887명의 관객을 동원 누적 관객수 34만 3094명을 기록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마치고 이 영화를 봤을 것이다. 이미 고전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이 영화를 통해 대중들은 어떤 희망을 꿈꾸었을까.

 

<레미제라블>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후의 비참했던 민중들의 삶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제목부터가 <레 미제라블 Le Miserable> 즉 ‘비참한 사람들’ 혹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무려 19년의 감옥살이를 지낸 장발장, 병을 앓고 있는 코제트를 위해 몸까지 팔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 불쌍한 여인 팡틴, 고아나 다름없이 갖은 구박과 착취를 겪으며 살아가는 코제트가 그들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이 가난과 비참이 전염병처럼 돌고 있는 도시, 그 끝없는 고통의 그늘 속에서 마리우스 같은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기득권을 가진 아버지를 부정하고 이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다. 하지만 혁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거리 시위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결국 혼자만 장발장에 의해 살아남게 된 마리우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 마리우스를 위로하고 감싸 안는 건 바로 연인 코제트와 그 사랑을 이뤄준 장발장이라는 위대한 인간의 헌신이다.

 

<레미제라블>은 최근 우리 문화계의 화두로 자리하고 있다. 뮤지컬 영화가 개봉되었고, 뮤지컬은 우리말로 초연되었다. 5권으로 완역된 소설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있고 심지어 다시 돌아온 피겨 여왕 김연아의 프리 프로그램의 새 레퍼토리가 바로 이 작품이다. 왜일까. 도대체 15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이 걸작이 지금 우리 시대와 맞닿은 지점은. 그것은 아마도 20세기, 자본이 그려낸 지구의 미래가 양극화라는 위기의식을 가져왔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게다.

 

돈이면 사람도 서슴없이 거래되는 이 비참한 시대에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런 삶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희망이다. 도둑질을 한 장발장을 끌어안아 그 영혼을 구원한 미리엘 주교의 삶은 바로 그대로 장발장에 의해 반복된다. 한 사람에게 준 희망의 촛불이 다른 여러 사람의 희망을 비춰주는 빛이 되었던 것.

 

원작에서 장발장은 죽어가며 이런 말을 남긴다. “죽는 건 아무 것도 아니야. 무서운 건 진정으로 살지 못한 것이지.” 세상이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절망할 건 없다. 스스로 진정 인간다운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일이니까.

 

대선은 끝났고 당락은 결정됐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었든, 아니면 그렇지 못했든 그 과정에서 지금 이 땅의 대중들의 염원은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그 염원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게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일이다. 저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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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스페셜>에도 보이는 양극화의 그림자

 

KBS <드라마스페셜>은 우리 드라마에 남은 유일한 단막극의 공간이다. 시청률은 낮은 편이다. 3%에서 5% 남짓. 하지만 편성시간대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낮다고 만도 할 수 없다. 일요일 밤 11시45분. 사실상 이 시간대에 드라마를 챙겨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게다. 그러니 어찌 보면 이 스페셜한 드라마들은 편성에 있어서는 홀대받고 있는 형편이다.

 

'드라마스페셜'(사진출처:KBS)

그런데 이 <드라마 스페셜>의 예산이 삭감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회당 8천만 원 남짓의 예산에서 그 절반을 뚝 떼서 회당 4천만 원의 예산으로 줄인다는 것. 이건 사실상 드라마를 만들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캐스팅을 하는 데만도 3천만 원 가까운 예산이 들기 때문이다.

 

1억도 안 되는 예산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스페셜>의 면면을 보면 그 실험성이나 작품성에서 꽤 의미 있는 성취를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번 시즌에 방영된 <불이문(KBS 우수 프로그램상 수상)> 같은 작품은 작금의 드라마 환경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화면 속에 깊은 삶의 의미까지 담아낸 수작이었고, <습지생태보고서(이달의 PD상 수상)>는 작금의 청춘들의 현실을 재기발랄한 연출로 보여준 좋은 작품이었다.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은 <스틸사진>은 경쟁적인 현실 속에서 이제는 젊은 날의 순수가 스틸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답답한 현실을 잘 포착한 작품이었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불륜과 죽음을 엮어놓은 문제작이었으며, <기적 같은 기적>은 불치병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소재로 삶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괜찮은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들 작품들이 몇 배의 투자가 이뤄지는 장편 드라마들의 화려한 색깔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바로 이 돈의 논리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는 점(그래도 여전히 가난하지만)이 이들 드라마가 무언가 참신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숨통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드라마들의 예산을 절반이나 삭감한다는 것은 그나마도 어려운 살림에 자존심과 뜻 하나로 버텨내고 있는 이들 드라마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행위다.

 

경제논리가 이제 이들 드라마에도 드리워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것을 말해주는 건 올해 KBS 드라마가 역대 최고치의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KBS 드라마는 광고매출, 판권수출, MD상품판매, OST수입 등 올해 약 2천3백억 원의 수익을 냈다고 한다. 시청률이 좀 낮았던 <사랑비> 같은 작품은 해외에서 최고가의 판권수출을 이뤘고, <각시탈>처럼 해외 판매가 거의 없었던 작품은 높은 시청률로 광고 완판 수익을 올렸다는 것. 이 상황에 단막극의 예산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접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단막극은 알다시피 눈으로 보이는 수치로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즉 신인작가들의 등용문이기도 하고, 신인 연출자들은 단막극을 통해 경험을 넓혀 결국 그 성과를 장편에서 보이기도 한다. 지난 2월에 방영되었던 <보통의 연애> 같은 작품은 대표적인 사례다. 비록 3%대의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연출, 대본, 연기의 삼박자를 두루 갖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김진원 PD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를 통해 그 진가를 보여주었다. 또 이 작품을 쓴 이현주 작가는 현재 <학교 2013>의 공동 집필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논리로만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 사회가 겪게 된 것은 결국 극심한 양극화다. 올해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최대의 이슈로 떠오른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드라마스페셜> 같은 가난한 드라마들에게 똑같이 드리워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KBS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아닌가. 가난한 여건에도 다양성을 시도할 수 있는 바로 그 숨통이 있기 때문에 장편 드라마들에 새로운 동력이 생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양극화의 양상을 드라마에서조차 확인하게 되는 이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청담동>이란 이상한 나라에 앨리스가 온 까닭

 

청담동은 ‘이상한 나라’다. 거기서는 백 하나의 가격이 누군가의 몇 달치 월급이고 옷 한 벌이 누군가의 일 년치 봉급이다. 그런데도 물건이 없이 못 팔 지경이다. 아니 심지어 가격을 더 높이면 높일수록 사람들이 더 몰려든다. 그래서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 등장하는 아르테미스 코리아라는 명품(사치품?) 브랜드의 이제 겨우 33세 회장인 차승조(박시후)는 가격을 끊임없이 더 올리라고 한다. 결국 이 명품의 탈을 쓴 사치품은 가격과 상품의 질 때문이 아니라 ‘공포’ 때문에 팔리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살 수 없으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공포감.

 

'청담동 앨리스'(사진출처:SBS)

이 부자들의 섬 같은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앨리스 한세경(문근영)이 들어온다. 그녀는 전형적인 88만원 세대. 등록금 대출로 대학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가 되고 여기저기 취업전선을 뛰어다니지만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못한 약한 스펙으로는 취업이 어렵다. 게다가 남자친구는 쓰러진 어머니의 병수발을 하다 빚더미에 올라앉고 범법행위를 한 후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리고, 부모님은 대기업들의 횡포에 점점 기울어가는 골목상권의 피해자가 되어간다. 한쪽은 껍데기에 불과한 옷 한 벌에 수백 만 원을 펑펑 쓰고, 다른 한쪽은 돈 몇 푼이 없어 빚쟁이로 쫓겨 다니는 이 기묘한 세상. 청담동은, 아니 이 나라는 ‘이상한 나라’다.

 

청담동이 이상한 나라가 된 건 태생적으로 모든 게 결정되어버리는 양극화된 빈부의 삶 때문이다. 한세경은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지만 그녀에게 직장상사인 신인화(김유리)는 혹독한 현실을 일깨워준다. 한세경의 노력으로도 될 수 없는 것.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은 바로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삶에 의해 생겨나는 안목’이란다. 즉 한세경의 부족한 스펙이란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유학갈 형편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오면서 갖게 된 낮은 안목이라는 것.

 

결국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신념이 그저 ‘희망고문’이 되어버리는 이 이상한 나라를 보고는 절망하는 한세경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더 절망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몰라서 꿈이나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버지는 이미 노력해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헛된 꿈이나 희망이라도 갖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을 말한다. 아버지의 이 고백은 이제 청담동에 발을 딛고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한 한세경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만들어버린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남편 잘 만나 청담동 사모님이 된 고등학교 동창 서윤주(소이현)와 한세경은 빈부의 양극단에 서서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부딪치게 되지만 어쩌면 그 둘은 똑같은 앨리스인지도 모른다. 서윤주 밑에서 심부름을 하며 굴욕을 당하던 한세경이 어느 날 찾아와 서윤주의 과거를 꺼내 협박하며 자신도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 있냐고 묻는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다. 도무지 성장의 사다리는 보이지 않는 사방이 막혀져버린 막막한 현실 속에서 한세경이 청담동 며느리를 꿈꾸는 것은 어쩌면 과거 서윤주가 선택했던 그 길일 수 있다.

 

사랑조차 돈이 있어야 되는 이 현실을 한세경은 받아들인 것(그 선택이 끝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하지만 정반대의 인물도 있다. 돈을 찾아 떠나버린 서윤주와 결혼까지 했지만 버림받고 절치부심해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으로 돌아온 차승조가 그렇다. 그는 ‘돈이 전제되지 않은 사랑은 없다’고 말하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한세경의 순수한 사랑을 목도하고는 펑펑 눈물을 흘린다. 물품을 빼돌려 고소위기에 몰린 남자친구를 위해 차승조에게 한세경이 보낸 적금통장과 편지는 돈의 또 다른 가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치와 과시에 불과한 돈이지만, 그 적금통장 속에 알알이 적혀진 사연들은 한세경의 한없이 순수한 사랑의 표징이니까.

 

과연 한세경은 앨리스가 될 것인가 아니면 신데렐라가 될 것인가. 청담동 며느리가 된 서윤주가 신데렐라를 꿈꾸며 사랑 따윈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인물이라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한세경 역시 그 신데렐라가 되고 말 것인가. <청담동 앨리스>는 바로 이 한세경이 신데렐라의 유혹을 느끼면서도 앨리스로 돌아오길 바라는 그런 드라마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한 바탕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를 경험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런 앨리스. 이 절망적인 현실을 그녀는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앨리스를 지켜주고 싶은 그 마음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개콘>, 노예, 거지 캐릭터 전성시대 왜?

 

“지가 마님 옷을 떨어뜨렸슈.” “우리 목도 떨어지겄구만.” “옷이 찢어졌슈.” “내 사지도 찢어지겄어.”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새 코너 ‘노애’는 드라마 <추노>의 상황을 패러디한다. ‘분수도 모르고 종놈들끼리 눈 맞으면’ 개죽음을 당하는 그 상황에 송영길과 허안나는 격렬한 사랑의 감정을 액션(?)으로 표현한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빨려던 마님의 옷을 떨어뜨린 별 것도 아닌 일에 자신들의 목도 떨어질 거라고 말하는 송영길의 모습은 그 과장된 처절함 때문에 웃음을 준다. 하지만 고작 웃전의 옷 하나 때문에 사지가 찢어질 것을 걱정하는 이 노비들의 죄를 들은 마님의 반응은 이들의 상황을 더 처참하게 만든다. “나 이 옷 안 그래도 질려서 버리려던 참인데. 이거 개집에나 깔아줘라.”

 

누군가에게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물건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개집에 버리는 그런 물건. 하지만 그렇게 버리려는 물건을 허안나는 굳이 자신이 챙겨 입겠다고 한다. 그러자 송영길은 만류하며 이렇게 말한다. “글쎄 입지 말라면 입지 말란 말여. 그거 입으면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릴 거잖여. 너는 선녀니께.”

 

분노의 빗자루질로 사랑을 표현하는 송영길과 먹다 버린 고기를 챙겨먹으려는 허안나의 처절과 분노가 과장되게 뒤섞인 이 개그는 그러나 어느 한 사극 속의 한 대목을 패러디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 웃음 속에는 양극화로 시름하는 현실의 처절함이 공감대로 깔려 있다. 우리는 이 웃전들의 옷 한 벌에 또 고기 한 점에 온 몸을 떠는 노비들의 삶에 빵 터지지만, 그 뒤에 남겨진 씁쓸함을 공감하게 된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 이 대사 하나로 대중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된 ‘거지의 품격’이 거지가 되어버린(어쩌면 과거에는 어떤 품격을 갖추었던 평범한 사람이었을) 삶을 유쾌하게 뒤집어 웃음을 주었다면, ‘노애’는 그 노예가 되어버린 처절하며 분노에 찬 삶을 과장되게 드러냄으로써 웃음을 준다. 그래도 ‘거지의 품격’이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면 ‘노애’는 그런 여유가 보이지 않는 절절한 사랑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제 첫 코너로 등장한 ‘노애’가 주목받는 것은 그 캐릭터가 공감가기 때문이다. 웃전이 씹다 질겨서 뱉어버린 고기를 서로 먹으려 아옹대는 모습에서는 날선 풍자가 느껴진다. 한 편에서는 ‘정여사’ 같은 이들이 질려서 버리며 흥청망청 살아가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바꿔줘”를 연발하는 천민자본주의가 횡행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돈 한 푼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현실이 아닌가.

 

“아들 아들 아빠 회사에서 잘렸어. 너도 곧 유치원에서 잘릴 거야.” “저는 아들 갈비도 못 사주는 쓰레기니까요.” ‘갑을컴퍼니’의 홍대리(홍인규)가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던지는 이 말은 그래서 그 공감 때문에 웃음이 터지지만 한참을 곱씹어보면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다. 도대체 그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극과 극의 삶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이건 해도 너-무한 삶이다. 그러니 ‘정여사’의 말을 빌어 한 마디 던져볼밖에. “바꿔줘.”

<최후의 제국>이 대선주자들에게 건네는 말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울렸을까. SBS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단 몇 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아주 작은 섬 아누타에서 촬영을 마치고 떠나는 제작진들을 향해 원주민들이 통곡을 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우리 주변의 누가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도시인들에게 그저 이별이 아쉬워 통곡하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충격에 가까웠다.

 

'최후의 제국'(사진출처:SBS)

아마도 제작진도, 그 장면을 보는 시청자들과 똑같은 마음이었을 게다. 그들은 처음에는 멍해졌다가 차츰 그 통곡이 그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심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을 것이다. 어느새 그 울림이 닿은 제작진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그 장면을 본 시청자도 마찬가지의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말이 오고갔던 것도 아닌 그저 진심을 담은 마음 하나만으로 그들은 뜨거운 인간애를 보여주었다.

 

<최후의 제국>. 영어 제목은 <The Last Capitalism>으로 ‘최후의 자본주의’를 뜻한다. 즉 자본주의의 위기를 다루는 이 다큐멘터리는 왜 그 멀고도 먼 외딴 섬 아누타까지 찾아갔을까. 그것은 아누타 섬이 자본주의에 의해 돈으로 모든 가치가 평가되는 세상과 정반대되는 가치를 보여주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제작진 앞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는 그들이 보여준 것은 같은 인간으로서의 깊은 공감이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그 공감의 가치는 서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가치로 이어지고 있었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자본주의의 세계는 아누타 섬과는 정반대의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돈으로 가치 매겨지는 세상은 자신의 몸매 관리를 위해 대리 수유모를 사는 부자 엄마와 당장 벌이를 하기 위해 자신의 자식 대신 남의 대리 수유모가 되는 가난한 엄마를 이어주었다. 급격한 자본의 물결이 몰아닥쳐 신흥 부자계급이 생겨난 데다, 멜라민 분유 파동으로 모유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중국의 새로운 풍경이다. <최후의 제국>은 이 풍경에 대해 묻는다. 과연 돈은 모성도 대체할 수 있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고등학교는 수업에 빠지지 않고 숙제를 잘 해온 학생들에게 돈을 준다. 제 아무리 청소년 범죄를 줄이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주려는 학교의 고육지책이라고는 해도 이런 교육은 결국 학생들에게 돈이 최고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이 가치의 본말이 전도된 교육은 과연 이 학생들이 살아갈 세상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라는 미국이 34개 OECD 국가 중 빈곤율 4위라는 충격적인 보고에서 드러난다. 다큐멘터리는 플로리다주의 모텔에서 살아가는 굶는 아이들을 조명하며 이 아이들이 왜 이런 불행에 처하게 됐는지를 꼬집는다.

 

아마도 그토록 멀리 떨어진 아누타 같은 외딴 섬까지 찾아가서야 비로소 자본이 아닌 인간을 찾아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계의 불행을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1%의 부와 99%의 가난. 미국에서 월가를 점령했던 그 유명한 “우리가 99%다”라는 구호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이 전 지구적인 위기 상황을 만들어낸 자본주의의 불편한 풍경들은 우리로 하여금 경쟁과 이기심보다 중요한 공존의 가치를 떠올리게 만든다. 돈이라는 번쩍거리는 괴물에 가려 바라보지 않던 그 불편한 진실을 우리 눈앞에 들춰냄으로써 급기야 공감하게 만드는 <최후의 제국>은 그래서 그 어떤 거창한 정상들의 회의나 연설보다 더 우리를 울리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양극화가 극에 달하고 있는 지금, 저 미국의 풍경이 어찌 우리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선에 즈음하여 모든 대선 주자들이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이 단순한 수사에 머무르면 안 될 것이다. <최후의 제국>은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들고 또 실천에 옮기게 만드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돈에 미친 세상에 던지는 다큐의 일침. 이것이 <최후의 제국>이라는 명품다큐가 보여주는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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