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줍쇼’ 1년, 무엇이 바뀌었을까

어느새 1년이 흘렀다. 처음 길바닥에 숟가락 하나씩 들고 나와 낯선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모르는 집의 초인종을 누르던 그 순간의 긴장감은 그 1년 사이 많이 사라졌다. “이경규인데요”라고 말했을 때 초인종 저 편에서 들려오는 “그런데요?”라는 반문이 주던 그 당혹감도 이젠 익숙해졌다. 물론 지금은 그런 반응을 보이는 목소리는 잘 들려오지 않는다. JTBC <한끼줍쇼>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이제 우리네 대중들이라면 한번쯤 봤거나 혹은 들어봤을 테고,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내 집에 초인종을 누른다면 적어도 낯설어 거부하진 않을 정도는 됐다. 

'한끼줍쇼(사진출처:JTBC)'

그 1년 사이 무엇이 바뀌었을까. <한끼줍쇼>가 1주년을 맞이해 그 첫 회를 했던 망원동을 다시 가보는 그 행보는 그 달라진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주었다. 이미 망리단길을 알고 또 tvN <알쓸신잡>에서 나왔던 ‘젠트리피케이션’을 들어본 시청자라면 망원동의 주택가가 상가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며 남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게다. 물론 망리단길이 <한끼줍쇼>로 인해 주목받은 건 아니다. 이미 <나 혼자 산다>의 육중완이 망원시장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드는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부터 망리단길은 서서히 만들어져 왔다. <한끼줍쇼>는 방송의 힘이 심지어 동네의 풍경을 1년 사이에 그렇게 바뀌게 해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물론 그건 좋은 일만은 아니다. 외부 자본으로 인해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형국이니.

경리단길, 망리단길, 연남동길... 이처럼 많은 길들이 마침 생겨나고 상권도 형성되기 시작할 즈음 방영되기 시작했던 터라 <한끼줍쇼>는 그렇게 새로운 동네와 길들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되돌아보니 <한끼줍쇼>가 바꾼 건 그런 동네의 외적인 풍경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타인들에 보여주는 따뜻함 같은 것들이 더 큰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낯선 이들의 방문에 문을 열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게다. 하지만 적어도 <한끼줍쇼>가 1년 동안 방영되면서 그 불가능해보였던 일들이 완전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문을 닫고 있는 동네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살 일이 바빠서 타인에게 거리를 두고 있을 뿐, 어떤 기회가 되면 그토록 따뜻할 수 없다는 걸 이 프로그램에 나온 많은 ‘식구’들이 확인시켜줬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망원동에서 이경규와 강호동이 각각 찾은 집은 너무나 상반된 풍경을 보여줬다. 이경규가 이연희와 찾은 집이 추석을 맞아 3대가 모여 잔치 같은 분위기를 보여줬다면, 강호동과 차태현이 찾은 집은 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욜로족 청춘의 단출하지만 유쾌한 한 때를 보여줬다. 대가족과 나홀로족. 그 두 집의 풍경은 우리 시대에 공존하는 너무나 다른 삶의 양태를 표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달라도 그들이 낯선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그 안에서 밥 한 끼를 나누며 보여준 환대는 다를 바가 없었다. 

<한끼줍쇼>가 1년 간 바꾼 것은 그래서 망리단길처럼 동네에 들어온 자본의 물결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따뜻한 정 같은 것을 새삼 복원한 것이 아닐까. 저마다 정글 같은 일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서민적인 사람에 대한 정과 호의. 방송 프로그램이 현실에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면 이것만큼 좋은 건 없을 것이다. 

이경규는 이미 <일밤> 시절부터 ‘양심냉장고’ 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방송이 현실에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준 바 있다. 이런 사정은 강호동을 일약 스타덤에 올렸던 <1박2일>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우리네 숨겨진 비경과 오지에서 살아도 정만은 그토록 깊었던 분들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꽤 큰 자산들을 확인시켜줬던 경험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한끼줍쇼>가 바꿔 놓은 건 동네가 주는 따뜻한 정감만이 아니었다. 이경규와 강호동 역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본래 자신들이 잘 해왔던 그 초심을 이 시대에 맞게 되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황소걸음이지만 성실하게 그 길을 오래도록 걸어서야 만이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진정성이고, 그것을 통해서 어쩌면 현실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들은 그 1년 동안 보여줬다.

이경규를 보면 예능의 흐름이 보인다

 

이경규가 SBS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많았다. 딸 예림이와 함께 출연한다는 사실은 이런 우려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마치 이 프로그램이 예림이의 연예인 만들기처럼 비춰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이런 오해는 사라졌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아빠의 삶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물론 그 아빠를 보는 시선은 딸의 시선이지만.

 

이경규(사진출처:KIBS)

하지만 필자를 더 놀라게 만든 건 이런 기대와 우려가 아니라 이경규의 행보 그 자체였다. 사실 이경규는 KBS <남자의 자격> 이후에 그리 주목되는 프로그램에 등장하지 못했다. SBS <힐링캠프>는 이미 토크쇼 트렌드가 사라진 현재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종영된 KBS <가족의 품격>은 지상파에서의 집단 토크쇼를 선보였지만 역시 한계를 보였다. 그런데 그가 다시 <아빠를 부탁해>를 통해 확실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경규는 MBC <일밤>과 함께 버라이어티쇼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개그맨이었다. 당대에 이경규는 스튜디오 안에서 하는 토크쇼에서도 펄펄 날랐고, ‘양심냉장고몰래카메라’, ‘이경규가 간다같은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프로그램에서도 확고한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버라이어티쇼가 고개를 숙이고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열리자 이경규는 다시 이 새로운 트렌드에 뛰어들었다.

 

SBS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MBC <무한도전>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보게 했다. 하지만 이경규는 KBS <남자의 자격>으로 다시 리얼 버라이어티쇼 트렌드에도 안착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빠를 부탁해>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새롭게 열린 리얼리티쇼 트렌드 속으로 그는 들어오고 있다.

 

그가 예능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트렌드에 따라 변화해왔다. 과거 버라이어티쇼 시절에는 말 그대로 캐릭터를 보여줬다면,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절에는 그 캐릭터에 진정성을 얹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아빠를 부탁해>라는 리얼리티쇼에서는 그간 우리가 몰랐던 그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에서 버럭대던 그의 캐릭터는 온데간데없고 딸 예림이와 보내는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친숙해져가는 그 과정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버라이어티쇼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그리고 다시 리얼리티쇼로 적응해가는 이경규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이 예능인이 왜 독보적인가를 깨닫게 된다. 사실 이런 적응력을 보이는 예능인은 거의 없다. 최고의 MC로 추앙받는 유재석, 강호동도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가고 리얼리티쇼가 열리는 지금 현재, 이런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닌가.

 

물론 지금 당대로서는 이경규에 대한 호불호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훗날 우리 시대를 회고하게 된다면 분명 이경규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진 존재감은 독보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토록 급변하는 트렌드의 변화 속에서도 밀려나지 않고 자기만의 영역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그의 행보는 많은 후배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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