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삼시세끼’의 풍경들

정오에 먹는 아침 식사. 제빵왕 이서진이 만든 단팥빵에 얼려둔 커피에 산양유를 곁들여 마시는 라떼 한 잔. 그런데 옆집 할머니가 갑자기 무언가를 건네주신다. 갓 찐 옥수수다. 주시면서도 어딘가 계면쩍으셨는지 먹어보고 맛이 덜 들었으면 버리라고 하신다. 하지만 맛보다 그렇게 무언가를 챙겨주신 할머니의 마음이 먼저 마음의 입맛을 돋운다. 만들어놓은 단팥빵을 가져다드리자 뭘 이런 걸 가져오냐며 즐거워하시는 할머니의 표정에 마음의 포만감이 커진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바다목장편은 득량도라는 섬에서 세끼 챙겨먹는 삼형제 이서진, 에릭, 윤균상의 일상을 담는다. 한지민과 이제훈 그리고 곧 등장할 설현까지, 게스트들이 주는 색다른 이야기가 더해지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일상이 크게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매 끼니마다 새로워지는 밥처럼 이 일상들을 계속 바라봐도 물리지 않는다. 거기에는 득량도라는 섬과, 그 섬의 제공하는 풍성한 먹거리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새 이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섬의 어르신들이 주는 따뜻한 정이 묻어난다.

바다목장편에 핫 플레이스로 등장한 정자의 잭슨살롱은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넉넉한 그늘을 제공해 주는 나무 아래, 어르신들이 모여 수다도 떨고 화투패도 맞춰보는 곳. 그런데 그 곳에 출연진들이 산양유를 채워 넣어주기 위해 가거나 섬을 떠날 때나 혹은 다시 섬에 들어올 때 슬쩍 비춰지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그토록 훈훈할 수가 없다. 

이제훈이 돌아가는 날 다 함께 섬을 빠져나오는 걸 본 어르신들 중 한 분이, 다시 안 오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서진이 다음에 또 들어온다고 말하는 짧은 장면 속에 이분들이 이제 이 <삼시세끼> 출연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다. 그리고 다시 섬에 들어온 날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어주는 어르신과 마을 분들에게서는 반가움이 묻어난다. 

어르신들이 주는 그 푸근함은 마치 이 득량도라는 섬을 그대로 닮았다. 뭐 대단히 노력한 것도 아니고 그저 슬쩍 던져놓은 투망에 고맙게도 게를 쫓아 들어온 문어가 자리하는 그런 풍경 속에는 섬이 주는 풍요로움이 새삼 느껴진다. 그렇게 잡은 문어를 보며 에릭과 윤균상이 한껏 기뻐하고, 잭슨살롱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마을 분들이 또한 문어 잡은 걸 같이 기뻐해주신다. 그러고 보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 마련된 목장에서 풀 먹여주고 물 갈아주고 청소해주는 대가로 꼬박꼬박 젖을 내주는 산양들이 마치 자연을 그대로 닮은 어머니의 모습 같다.

그렇게 산양들이 제공한 산양유를 어르신들이 나눠가며 맛을 보고, 냉장고에 넣어주신 소박하지만 그 정이 느껴지는 가지며 호박 같은 야채들이나 신선한 계란. 그 식재료들이 에릭의 손을 거쳐 가지 튀김이 되기도 하고 제빵왕 이서진이 만든 빵에 계란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매일 밥상에서 마주하는 음식들이 다 그런 누군가의 손길을 거친 것들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삼시세끼>를 보다보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은 너무 타산적이고 기계적이란 생각이 든다. 저렇게 조금만 움직이면 뭐든 내주는 자연과, 그 자연을 그대로 닮아있는 득량도의 어르신들. 그 풍경들이 그저 매번 섬을 찾아 삼시 세끼를 챙기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물리지 않고 매번 푸근한 포만감을 주는 이유가 아닐까.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디마프>, 조인성 특별출연이 특별하게 다가온 까닭

 

종영한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조인성이 나왔다. 그런데 그는 특별출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사실 조인성 정도면 어떤 드라마에서든 주연 자리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드라마를 챙겨보려는 팬들도 적지 않을 테니.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하지만 조인성은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위치를 기꺼이 감수했다. 그가 맡은 연하라는 캐릭터는 슬로베니아에 거주하는 인물이다. 완이(고현정)와 함께 그 곳에서 사랑을 피웠지만 불의의 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장애인과 유부남은 안 된다(물론 뒤에 와서는 이런 편견을 모두 깨지만)”는 엄마 난희(고두심) 때문에 그녀는 그를 떠나와 돌아가지 못한다. 그런 자신을 질책한다. 그럼에도 연하는 그 먼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그런 인물이다.

 

가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완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초반부에 등장하고, 점점 그가 당했던 사고와 그로 인해 완이와 떨어져 지내게 된 사연 등이 소개되며, 나아가 난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슬로베니아까지 날아온 완이와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로 발전하지만, 연하는 이 드라마에서 중심적인 인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가 다리를 다친 후 그 자리에 멈춰선 수동적인 인물로 살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이를 도무지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는 그녀를 보기 위해 귀국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면서 동시에 연하의 자기 극복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조인성이 이 역할을 맡아 드라마를 빛내주면서도 동시에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한 발 뒤편으로 물러나는 걸 기꺼이 감수했다는 사실이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특별출연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무게감 있는 조연에 가깝다. 어르신들이 저마다 앞으로 나와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사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연기자들은 드라마에서 자신이 서는 위치에 대해 민감하다. 특히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이들일수록 자신의 역할이 보조적인 것에 머무는 걸 용납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심지어는 분명 조연인데도 불구하고 과한 연기로 주연을 가려버리는 중견 연기자들도 적지 않다. 결국 드라마가 팀플레이라고 생각한다면 제 아무리 연기력이 출중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건 드라마를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디어 마이 프렌즈>는 김혜자, 나문희, 신구, 주현, 고두심, 박원숙, 윤여정 같은 쟁쟁한 중견 연기자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분들은 모두 우리네 드라마에서 어머니, 아버지 역할을 해 오셨던 분들이다. 드라마가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더 많이 다뤄왔기 때문에, 이 분들은 항상 뒤편에 서서 보조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그 분들이 연기가 부족해서 그렇게 한 발 뒤로 물러나 계셨을까. 그것이 드라마 전체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 분들이 그동안 어떻게 이 놀라운 연기력을 억누르며 뒤편에 서 있었는지가 놀라울 정도의 연기들을 보여줬다. 치매 연기를 하며 마치 아이처럼 우는 장면에서는 보는 이들을 모두 눈물짓게 만들었던 김혜자, 꼰대 남편에 대한 불만과 함께 여전히 남은 정을 보이는 따뜻한 연기를 선보인 나문희, 그 쉽지 않은 꼰대 역할을 제대로 보여준 신구, 속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있지만 씩씩한 엄마로서 딸과 화해를 해나가는 변화를 연기한 고두심, 친구에 대한 깊은 우정과 오랜 세월 순애보를 안고 살아가는 여배우 역할을 실감나게 보여준 박원숙,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보는 이들에게 사이다를 안겨준 윤여정 그리고 노년에도 여전히 멋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주현까지. 어느 한 명 빼놓을 수 없는 명연기들이 펼쳐졌다.

 

이들이 이렇게 속에 깊이 갖고 있던 연기에 대한 갈증을 제대로 풀어놓을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노희경 작가가 그 마음껏 그 연기력을 펼쳐낼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인성이나 이광수 같은 이른바 특별출연연기자들은 기꺼이 뒤로 물러나 이분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저 어르신들이 해왔던 그런 역할을 즐겁게 자청했던 것.

 

이것은 <디어 마이 프렌즈>가 전하는 메시지와도 상응하는 이야기다. 지금껏 막연히 꼰대로 치부되어 왔던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좀 더 담아내겠다는 것. 그러니 연기자들도 늘 뒤편에 있던 어르신들이 앞으로 나오고 앞에 서있던 젊은 배우들이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조인성과 이광수 같은 연기자들의 특별출연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물론 이런 배치와 이야기 구성은 있는 그대로의 현재의 어르신들의 모습을 무조건 긍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현재 고령화 사회의 길에 접어든 우리에게 어르신들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어버이가 어버이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연장자라는 것 때문에 그것까지를 모두 수용하고 긍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래서 현실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네 어르신들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비전을 담아냈다. 중견연기자들은 기꺼이 그 비전을 절절한 연기로 전해주었다. 조인성과 이광수 같은 젊은 배우들이 비껴 준 자리에서.

<디마프>, 여성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그러진 우리 사회

 

꼰대들의 드라마? 애초에 이런 기치를 내걸었다지만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거기서 머무는 드라마는 아니다. 단지 어르신들의 이야기만이 아니게 된 것은, 그들의 삶에 묻어난 많은 것들이 우리 사회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려운 드라마는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종합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물론 이야기는 어르신들의 삶에서부터 시작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삶. 그래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혼자 살 수 있다고 되뇌는 희자(김혜자), 한 평생 구두쇠에 꼰대 남편 밑에서 살아오며 차라리 <델마와 루이스> 같은 자유롭게 살다가 길 위에서 죽는 삶을 꿈꾸는 정아(나문희) 같은 어르신들의 삶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세월을 살아온 어르신들에게서 묻어나는 건 우리 사회 현실의 많은 문제들이다. 폭압적인 남편을 그저 참으며 살아온 정아는 알고 보면 상습적인 아버지의 폭력을 겪으며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에서 영향 받은 것이고, 그것은 또 폭력을 당하는 딸의 삶으로 대물림된다. 이것은 우리네 근대사에 점철된 가부장제로부터 지금껏 흘러온 폭력의 역사를 고스란히 그려낸다.

 

그 폭력 속에는 바람 피는 남편 같은 불륜의 문제가 만들어내는 치명적인 결과들까지 들어 있다. 남편과 자기 집 침대에서 뒤엉켜 있는 다른 여자를 본 난희(고두심)는 그 충격에 자살을 결심한다. 딸을 혼자 놔두고 갈 수 없어 딸에게도 약을 먹인 일을 저지른 난희는 훗날 딸 완이(고현정)에게 그 때 일로 인해 자신이 갖게 된 선택들에 대한 처절한 원망을 듣게 된다. 난희는 그 일로 유부남과 장애인(동생이 장애를 가져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 때문)은 안된다고 완이에게 버릇처럼 말하고, 완이는 그 때 그 일 이후 자신은 엄마 거라는 걸 확인했다며 엄마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아이가 되었다고 말한다.

 

즉 하나의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아픈 트라우마로 남아 그들의 삶 역시 굴절시킨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난희에게 완이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연하(조인성)가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자 버렸다며 그것이 엄마 탓이라고 절규한다. 그런 딸의 아픔을 뒤늦게 알게 된 난희는 완이를 끌어안고 자신의 잘못을 후회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가 어르신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결국 비뚤어진 남성성의 폭력의 역사가 드러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여성들의 우정같은 연대로서 화해되고 해결되는 모습을 그리게 됐다는 건 주목해볼 일이다. 난희는 불륜 상대녀의 친구였던 영원(박원숙)과 결국 화해하고, 또 어린 시절 그런 고통을 겪게 만든 딸과도 화해한다. 정아는 남편에 대한 복수의 칼로서 이혼을 결심하고 친구들은 그녀를 돕는다. 성재(주현)를 두고 희자와 충남(윤여정)이 모두 관심을 갖지만 충남은 희자에게 남자를 양보한다. 그리고 확인하는 건 다시 그들의 우정이다.

 

남성성의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수직적 관계들을 <디어 마이 프렌즈>는 여성성의 우정으로 대변되는 수평적 관계로 그 해결점을 보여준다. 이 어르신들의 삶 속에서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주름을 발견하는 건 그래서 어려운 일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대에 심정적인 지지를 하게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로 어르신들을 이토록 깊게 들여다보고 그 안에 담겨진 삶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역시 노희경이다

<그래 그런거야>에는 왜 현실 갈등이 잘 보이지 않을까

 

SBS <그래 그런거야>에 등장하는 어르신들, 유종철(이순재)과 김숙자(강부자)의 존재감은 사실상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에 맞닿아 있다. 많은 걸 겪으며 살아온 이 어르신들은 이 바람 잘날 없는 가족의 크고 작은 갈등들이 사실은 별 거 아니라는 시점을 제공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맏딸이 결혼한 지 일주일만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수절 아닌 수절을 하며 시댁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걸 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할까. 그런데 둘째딸마저 그 사돈네 아들과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그 엄마인 이태희(임예진)는 사돈댁을 찾아와 어르신인 김숙자 앞에서 대놓고 재수 없는 집안이라는 말을 해버린다. 그러니 그 말은 들은 맏며느리 한혜경(김해숙)도 참을 수 없다. 김수자 앞이라 조심조심하면서도 불편한 심경을 이태희에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갈등의 해결점은 의외로 쉽다. 이태희가 돌아간 후, 유종철이 김숙자를 부른다. 그리고 애들이 가출한 걸 갖고 뭐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김숙자를 데리고 야반도주 했던 과거를 이야기 한다. 청춘들은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유종철은 허허롭게 웃어버린다. “그래 삶이란 그런 거야라는 이 드라마의 갈등 해결법인 셈이다.

 

이 관점이 나쁜 건 아니다. 그간 그토록 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김수현 작가는 대놓고 이렇게 갈등을 극으로 몰아가는 막장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이야기를 그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갈등은 의외로 가족의 품 안에서, 어르신들이 조금만 욕망을 내려놓거나, 혹은 어르신의 시선으로 인생 전체를 통해 그런 작은 갈등들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던짐으로써 쉽게 풀려버린다. 이런 식의 시도는 드라마의 본령이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신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 그런거야>가 이처럼 괜찮은 해결의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남는 아쉬움은 그 갈등들이 여전히 많이 봐왔던 가족 갈등 이야기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결혼을 두고 양가가 부딪치는 이야기나, 노년으로 홀로 살아가다 갑자기 젊은 처자와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 혹은 오래도록 부부로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남편의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들은 물론 나름의 갈등을 유발하지만 어쩐지 과거 어떤 드라마에서 봐왔던 것들의 반복처럼 여겨진다.

 

갈등의 해결방식은 다르지만 제시되는 갈등들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에 어떤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김수현 작가가 여전히 건재하다고 여기게 됐던 이유는 <엄마가 뿔났다><내 남자의 여자>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작품 속에서 당대 현실과 조응하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엄마의 휴직선언과, 불륜에 대한 탐구 그리고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그 드라마들 속에는 존재했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들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당대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것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었다면 <그래 그런거야>가 보여주는 현실은 너무 소소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현실이 어떤가. 젊은 청춘들은 취업 앞에서 꺾어지고,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으며 그래서 대가족은 해체되어 나홀로족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최근 성 갈등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남혐 여혐의 문제도 심각하다. 점점 고령화사회가 되어가며 어르신들과 젊은 세대 간의 갈등 또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크디 큰 현실적 문제이다.

 

김수현 작가 같은 중견을 대표하는 작가가 이런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문제에 대해 왜 침묵하고 있을까.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가족의 양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들이다. 지금의 가족을 그려내겠다면 적어도 이런 시대적 문제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그저 어르신의 긍정적인 시선만 던진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 “그래 그런 거야라고 현실을 초월해 소소한 가족갈등을 긍정의 목소리로 화해시켜도 저 밖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 그런거야>, 김수현 작가 최대의 위기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는 첫 회가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상당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김수현 작가가 아닌가. 막장드라마들이 주말 시간대를 장악하고 있는 현재, 김수현 작가라면 이를 깨치고 가족드라마의 부활을 알려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하지만 결과는 최악이다. 첫 회 시청률 4%(닐슨 코리아). 물론 2회에 5.8%를 기록하긴 했지만 이것이 시청률 상승의 신호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다분히 tvN <시그널>이 금토드라마로서 일요일에 방영되지 않았다는 점과 무관하다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청률이야 지상파에서 가장 높은 게 막장드라마들이니 그렇다 칠 수 있겠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래 그런거야>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도 그다지 좋지 않다. ‘기대 이하라는 평가 속에는 김수현 작가에 대한 실망감이 상당부분 엿보인다. 무엇보다 늘 비슷비슷한 패턴의 김수현식 가족드라마가 이제는 식상하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늘 어르신들의 교훈조의 이야기들이 따발총 대사로 이어지고 젊은 등장인물들은 그 어르신들의 눈에 포획된 존재들처럼 보이는 것도 그렇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구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가족은 심지어 보수적인 가치를 강요하는 듯한 뉘앙스로까지 느껴진다. 특별한 사건들이 벌어지기보다는 그저 일상적인 일들이 수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것도 전형적인 김수현식 가족드라마의 문법들이다.

 

이 비슷한 문법에 등장인물 또한 매번 비슷비슷하다보니 죄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인상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 보수적인 가치가 결국은 본래부터 가족드라마가 지향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그런거야>에는 지금 시대의 공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한 10, 아니 20년 정도 옛날 가족 이야기를 재탕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어째서 이런 느낌이 들게 된 것일까. 가장 큰 것은 제 아무리 가족드라마라고는 해도 현재의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2회가 방영되었지만 이 드라마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들만으로 꽉 채워져 있다. 그들이 속사포로 쏘아대는 대사들을 듣고 있노라면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보수적인 가치를 설파하는 어떤 어르신이 젊은이들에게 인생이란 그래 그런거야라고 달관하듯 가르치려는 모습이 연상된다.

 

김수현 작가가 고령에도 대작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그 나이와 상관없이 당대의 젊은이들과도 호응할 수 있는 혁신적인 이야기들을 심지어 가족드라마 속에서도 거침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 평생을 가족 뒤치다꺼리 하며 살아왔던 엄마의 파업(?) 선언을 다뤘던 <엄마가 뿔났다>가 그렇고, 불륜을 그 끝까지 밀어붙여 그 밑바닥을 보여줬던 <내 남자의 여자>가 그랬으며, 동성애라는 새로운 문제를 가족드라마 틀로 끌어들여 화제가 됐던 <인생은 아름다워>가 그랬다. 그런데 <그래 그런거야>에는 아직까지 그런 파격과 혁신적인 소재에 대한 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응답하라1988>이 가족드라마이면서도 그토록 화제가 되고 기적적인 시청률까지 거둬갈 수 있었던 건 흔한 지상파들의 가족드라마를 재현하거나, 그 변종으로서의 막장드라마를 그려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응답하라1988>은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새롭게 맞춰 가족드라마를 재구성했다. 어르신들의 가르치는 목소리가 아니라 젊은이들이 어르신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헌사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응답하라1988>이 가족드라마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래 그런거야>는 정반대다. 이 드라마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르신들의 목소리만이 들려온다. 그것도 너무 빠르게 너무 많이. 이래서는 젊은 시청자층은 물론이고 중장년 시청자층도 그리 공감하기가 어려워진다. 중년의 시청자라고 해도 드라마를 통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건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물론 막장드라마와 대결하겠다는 그 취지는 나쁘지 않다. 그래서 파괴되어가는 가족의 가치를 되새기겠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막장드라마만큼 보기 힘겨운 것이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건네는 보수적인 드라마다. 가족의 가치를 다시 세우겠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옛날식의 가족으로 돌아가자는 건 퇴행이다. 이제 2회가 끝났을 뿐이니 섣부르게 모든 걸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그래도 기대한 만큼 남는 아쉬움도 크다. 김수현 작가는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평가도 그리 좋지 않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삼시세끼>를 위해 <꽃할배>가 깔아 논 밑밥

 

희한한 일이다. <삼시세끼> 어촌편이 끝날 때만 해도 차승원이라는 발군의 출연자가 만들어낸 만재도 만찬으로 앞으로 돌아올 이서진의 강원도편이 시들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웬걸?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을 보고 나니 이제 이서진이 보여줄 <삼시세끼> 강원도편이 그리워진다. 도대체 나영석 PD는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이것은 과거 <꽃보다 할배> 스페인편이 끝났을 때 느꼈던 소회와 다르지 않다. 당시에도 또 한 번의 <꽃보다 할배>가 과연 재미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지만 <삼시세끼> 강원도편과 어촌편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났다. 그것은 강원도편에 게스트로 참여했던 최지우가 그리스편에 합류한다는 소식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영석 PD<삼시세끼><꽃보다> 시리즈를 운용하는 방식은 이처럼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어느 한 프로그램에서 주목된 인물이 생겨나면 그 인물을 자연스럽게 다른 프로그램으로 연결시켜 힘을 이어간다. 여행에서 돌아와 한 그리스 식당에서 최지우가 후일담을 나누며 방송 나간 후 태희, 혜교에게 연락이 왔다. 보고 있다고 한다고 말하자 나영석 PD가 재빠르게 그들 데리고 김치 담그러 오라고 슬쩍 섭외 욕심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래서 그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런 밑밥은 시청자들로서는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밑밥은 이서진에 대한 기대감이다. 이번 그리스 여행에서는 새로운 짐꾼으로서 최지우가 단연 돋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서진이라는 존재가 왜 나영석 PD의 페르소나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나영석 PD가 그에게 용돈을 왜 최지우에게 주지 않았냐고 질문을 던지자, 역시 이서진 다운 답변이 흘러나왔다. “맡길 사람한테 맡겨야 한다는 것. 즉 두바이에서 아이스크림으로 과소비(?)’를 목격한 이서진이 돈 관리는 자신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이건 나영석 PD나 시청자들이나 딱 듣고 싶었던 얘기였을 것이다.

 

이처럼 이서진은 가까워진 사이일수록 더 자신의 속내를 숨기지 않는 모습이 매력이다. 이서진은 마치 농담을 하듯 어느 날 할아버지 두 분이 다가와 이서진씨는 우리들의 로망이라고 하시더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여자들의 로망도 아닌 어르신들의 로망’.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어르신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어르신들에게는 마치 자식 같은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한편으로 보면 이번 그리스 여행을 통해 이서진은 연인들의 로망이기도 했다. 최지우와 마치 오누이처럼 친근하게 지내면서 때로는 툭탁거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연인 같은 설렘을 갖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으로 세워진 이서진의 면면들은 고스란히 앞으로 이어질 <삼시세끼> 강원도편에 대한 기대감이 될 수밖에 없다.

 

<꽃보다 할배><삼시세끼>는 공간적인 차이에 있어서도 기막힌 짝패다. 해외 배낭여행이라는 설렘이 있다면 <삼시세끼>처럼 어딘가에 콕 박혀 소꿉놀이하듯 내밀하게 즐기고 싶은 로망도 있기 마련이다. 해외를 보다보면 강원도 오지가 그립게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이런 그리움을 마치 작업이라도 걸 듯 나영석 PD<꽃보다 할배> 속에 슬쩍 슬쩍 끼워 넣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꽃보다 할배>의 배낭여행이라는 정서와 <삼시세끼> 같은 시골 살이의 정서가 이렇게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영석 PD의 예능을 밀어주고 끌어주게 된 걸까. 그것은 이 프로그램들이 나영석 PD의 진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으로 어르신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한다. 그리고 이렇게 먼 여행과 일을 하고난 후에는 시골에 콕 박혀 쉬고 싶어한다. 그 진심에 공감하는 한 시청자들도 똑같은 정서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꽃보다 할배>에서 <삼시세끼>로 또 <삼시세끼>에서 <꽃보다> 시리즈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정서의 흐름이다.

 

강원도 정선에서 이서진이 하게 될 대충대충 어리숙하면서도 잘 하는 척 생색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특유의 넉살을 보여주는 이 매력적인 아마추어 농부 요리사가 보여줄 <삼시세끼>가 자못 궁금하다. 그것은 <삼시세끼> 어촌편의 차승원이 보여준 만찬과는 또 다른 맛이고,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이 보여준 페이소스 짙은 여행의 맛과도 다른 맛이다.

 

<꽃할배> 최지우, 할배들의 며느리감, 짐꾼의 썸녀

 

제 아무리 최지우 때문에 할배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최지우가 아니었다면 이번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의 이런 밝은 에너지는 불가능했을 것 같다. 삶의 경륜이 묻어나는 어르신들의 무게감이 있다면 최지우라는 경쾌함과 발랄함이 더해져 이번 <꽃보다 할배>가 더 풍성한 느낌을 준다. 그녀는 할배들에게 어떤 활력을 주는 존재이면서 짐꾼 이서진에게는 보고만 있어도 미소를 짓게 하는 존재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모두가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 여정이 설날을 전후에 잡힌 어르신들은 괜찮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의 허전함 같은 게 있었다.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조금은 쓸쓸했던 것. 그런 마음을 챙기고 채워준 건 다름 아닌 최지우가 아침으로 준비한 떡국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밝혔듯 잘 하는 요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둘러 앉아 떡국을 먹고 덕담을 나누는 것이 주는 훈훈함은 할배들의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최지우는 요리든 영어든 아니면 가이드 역할이든 뭐든 척척 잘 해내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이든 정성을 다해 하는 모습이 보는 이들을 흡족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떡국을 만들면서 지단 하나를 제대로 얹으려 노력하는 모습이나, 필요한 영어회화를 노트에 적어서 준비하고 다니는 자세나, 또 홀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선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도 마음 졸이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그렇다. 그런 노력 속에는 어르신들에 대한 그녀의 살가운 마음이 묻어난다.

 

올림픽경기장을 찾아간 어르신들이 한번 뛸까요?”라는 최지우의 제안에 때 아닌 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장면은 아마도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장면이다. 그녀의 가벼운 제안이 순간적으로 어르신들을 동심으로 되돌려 놓은 것. 그렇게 한번 그 역사적인 올림픽경기장에서 뛰면서 아마도 어르신들은 새로운 추억 하나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한편 최지우가 짐꾼으로 투입되면서 생겨난 이서진의 변화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저 대화만 나눠도 기분이 좋아지는 듯 보조개를 만들어내는 이서진. 물론 경비 때문에 소소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말 한 마디면 먼저 몸이 움직이는 이서진이다. 떡국을 만들면서 보조역할을 하는 이서진은 대충대충 하려고 하지만 최지우의 시어머니 잔소리를 그래도 다 들어준다.

 

무엇보다 이서진과 최지우가 그려내는 알콩달콩한 그림은 <꽃보다 할배>에서는 이색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어르신들을 가이드 해주고 챙겨주는 일이 짐꾼의 역할이지만 그렇게 힘들 수 있는 일이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는 건 최지우가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다. 이런 썸 타는 분위기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최지우가 어르신들의 마음까지 살뜰히 챙기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한없이 훈훈해진다면, 이서진과의 미묘한 감정 교류에서 어떤 설렘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흡족한 마음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러니 어찌 사랑받지 않을 수 있을까. 할배들의 며느리감이자 짐꾼의 썸녀인 최지우라는 존재가 <꽃보다 할배>에서 빛나는 이유다.

 

<꽃할배>가 담아내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

 

아이고 최지희가 마흔을 넘겼어?” 박근형은 이름이 가물가물한 듯 최지우를 최지희로 착각했다. 하지만 박근형이 하려고 한 말에서 묻어나는 건 최지우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도 현장 어디에선가 만났을 최지우는 훨씬 더 젊은 시절의 그녀였으리라. 그러니 박근형은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을 통해 함께 여행을 하게 된 최지우를 통해 세월의 빠름을 실감했을 게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그리스로 가는 경유지 두바이의 한 호텔에서 아침 일찍 깨어나 침대에 누운 채 나누는 박근형과 신구의 대화 속에는 어딘지 쓸쓸함 같은 게 묻어난다. “학교 같은 덴 안 가실 생각이우?” 갑자기 박근형이 신구에게 향후 계획 같은 걸 묻는다. 그러자 신구가 의외의 말을 꺼낸다. “현장에 있는 게 제일 나아.” 칠순을 훌쩍 넘긴 어르신이지만 여전히 그 말 속에는 일에 대한 열정 같은 게 느껴진다.

 

그리고 던지는 쓸쓸한 몇 마디. “근데 우리만 해도 텔레비전 드라마에 섭외가 없어. 거의- 지금 불암이 하고... 그리고는 없나? 70대에.” 그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을 <꽃보다 할배>PD는 거기에 이런 자막을 붙여 넣는다. ‘동년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현역에서 왕성히 뛰고 있는 배우들이 어디 흔할까. 그나마 <꽃보다 할배>에 나오는 4인방이 가장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동년배들일 것이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하고 말 꼬리를 흐리는 신구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한없이 느껴진다. 여전히 청년 같은 박근형은 그 아쉬움에 덧붙여져 이런 세태에 대한 쓴 소리가 나온다. “나이 먹은 배우들이 자꾸 없어지니까. 많아야 그냥 쓸래도 야 그 양반 나이 높으니 무시하면 안돼, 이렇게 하지. 에 됐어 됐어. 냄새 나.” 최고의 어르신들이라고 해도 현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헛헛함이 있게 마련일 것이다. 우리네 현장이 어디 나이를 챙기던가.

 

그러자 신구는 박근형을 다독이며 애써 긍정한다. “나이 80에 또 뭘 바라.” <꽃보다 할배>의 배낭여행을 통해 술 한 잔 걸치고 그토록 흥에 겨운 모습을 보여주던 신구의 마음 한 자락이 슬쩍 느껴진다. 어쩌면 어르신들은 그렇게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애써 나이 들어가며 점점 사라져가는 동료들과 점점 젊은 친구들에게 밀려나는 듯한 그 기분을 달래셨을 지도 모르겠다. ‘뜻을 함께 했던 이들이 적어지는 서운함.’ 자막이 말해주듯 그 서운함은 나이 들어가며 누구나 느끼게 되는 것일 게다.

 

<꽃보다 할배>가 심정적인 지지를 하게 만드는 지점은 바로 이 서운함을 담아낼 줄 아는 예의에서 비롯되는 일일 것이다. 이 어르신들의 배낭여행을 담는 프로그램은 그렇게 두바이에서의 어느 날 아침에 나눈 소소한 짧은 대화 속에서도 결코 지나치기 어려운 그들의 삶과 소회를 담아낸다. 거기에는 어쩔 수 없는 쓸쓸함도 있지만 그것에 대한 긍정 또한 담겨져 있다.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더 많은 곳을 여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나이 들어가는 삶을 이들의 여행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져가는 동료들이 주는 서운함과 아쉬움은 그래서 더더욱 놓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을 끄집어내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들의 미래일 수 있는 어르신들이 계속 해서 보여지기를. 우리의 마음이 서운해지지 않게.

 

<12>부터 <꽃할배>, <삼시세끼>까지, 이서진의 매력

 

이서진씨가 완전히 물이 올랐어요.” <삼시세끼>의 승승장구에 대해 나영석 PD는 이렇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신기한 일이지만 이서진이라는 인물은 나영석 PD만 만나면 반짝반짝 빛난다. 최근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은 최근 <삼시세끼>로 인해 재조명되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이서진을 중심으로 함께 삼시세끼를 해먹는 옥택연과의 조합이 만들어졌고 윤여정, 최화정, 김광규, 김지호가 연달아 출연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참 좋은손님들은 이 MSG 없는 예능 프로그램에 괜찮은 양념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양념으로서 기여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 이서진이라는 손맛이 있었다는 점이다. 열심히 하려는 택연에게 노예근성운운하는 말로 캐릭터를 부여한 것도 이서진이고, 김광규가 왔을 때 수수밭만 베라고 그를 자꾸 부추긴 것도 바로 이서진이며, 김지호에게 뱃속에 거지 앉았냐고 투덜대며 텃밭 브레이커의 탄생을 알린 것도 이서진이었다류승수는 이서진에게 속아 아궁이 일꾼이 되었다. 이서진은 하다못해 염소 잭슨과의 러브라인(?)까지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나영석 PD 말대로 물이 오른 것(?)이 분명하다.

 

이서진의 가능성을 처음 나영석 PD가 발견한 건 <12> 때다. <12>에서 이서진은 미대 형이라는 캐릭터로 불렸다. 전혀 웃길 것 같지 않은 진지함을 보이는 인물이지만 엉뚱한 면으로 웃음을 주었다. 이 때부터 투덜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러면서도 특유의 선한 이미지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기도 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은 조커 역할을 했다. 어르신들에게 대놓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상황을 나영석 PD는 이서진을 중간에 놓음으로써 해결했다. 이서진을 끊임없이 힘겹게 만들고 또 깐족대는 것으로 나영석 PD는 이 어르신들의 여행에 톡톡 튀는 재미를 만들어냈다. 이서진의 매력은 투덜대면서도 할 건 다 하는(심지어 아주 잘 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어르신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나영석 PD에게는 으르렁대는 모습에서 이서진의 양면적 매력이 탄생했다.

 

<삼시세끼>는 악덕 마름 같은 나영석 PD와 투덜대는 노예 같은 이서진 캐릭터의 조합이 흥미진진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고기 한 점에 수수 빚을 받는 마름 나영석 PD, 빚이 불어남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점점 고기를 찾게 되는 이서진이 곤란해지는 그 상황을 한껏 즐기는 모습이다.

 

즉 이서진이라는 대체 불가의 매력이 탄생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그 악역을 자처한 나영석 PD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악역처럼 보인다. 물론 그 악역에게서 실제 악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중요하다. 나영석 PD는 악당이라기보다는 악동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그저 순응하기보다는 투덜대는 캐릭터가 훨씬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결국은 시키는 일을 하는 캐릭터는 더더욱 재미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점점 노예처럼 길들여가는(?) 악동 캐릭터는 마치 시청자들의 욕구를 반영하듯 은근한 쾌감까지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의 전체 그림이 주는 느낌은 살풍경한 것이 아니라 참 좋은훈훈함이다. 이렇게 좋은 캐릭터들이니 승승장구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이서진이 나영석 PD만 만나면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다.

 

세대가 공유하는 청춘을 담아낸 <꽃보다> 시리즈

 

지나와서 생각해보면 나영석 PD의 배낭여행 프로젝트 <꽃보다> 시리즈는 놀라운 면이 많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이 시리즈가 다양한 세대와 성별을 배낭여행이라는 실험대 위에 집어넣었지만 거기서 청춘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일관되게 발견하게 했다는 점이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먼저 <꽃보다 할배>를 떠올려보라. 이 칠순의 어르신들이 유럽에서 배낭여행을 통해 발견한 건 청춘이라는 시절에 대한 새삼스런 찬미였다. 홀로 배낭여행을 하는 젊은이에게 존경합니다라고 신구가 말했을 때 우리는 모두 그 마음에 공감했다. 청춘은 특정 나이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나이 들어도 누구나의 마음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라는 걸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은 보여주었다.

 

<꽃보다 누나>에서도 이 청춘은 어디서나 발견된다. 이승기라는 청년은 누나들의 보호를 받으며 차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세파에 휘둘려 잠시 잊고 있던 누나들의 젊은 날들을 되살려 놓았다. 성당에 들어가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김희애는 거기서 세월이 주는 무게감과 그럴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젊은 날의 찬란함을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를 거쳐 나영석 PD는 이제 이 프로젝트의 귀결지인 청춘으로 돌아왔다. <꽃보다 청춘>은 그래서 먼저 윤상, 유희열, 이적을 출연시켜 중년남자들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소년을 끄집어낸다. 현실이 발목을 죄고 있어 저 가슴 속 아래 고개 숙인 채 제 존재를 숨기고 있던 소년이라는 청춘은 그래서 돌발적인 일상 탈출을 통해 마음껏 그 얼굴을 드러냈다. 잊고 있던 청춘에 대한 복원. 중년 3인방의 <꽃보다 청춘>이 우리에게 건넨 이야기다.

 

그리고 이어진 진짜 청년들의 청춘여행, 유연석, 손호준, 바로의 <꽃보다 청춘>은 거칠 것 없는 청춘이라는 시간의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고민할 것도 없고 갈등할 것도 없으며 다만 부딪치고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그 청춘만의 특권적인 좌충우돌을 이 여행은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꽃보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지금껏 봐온 시청자라면 이 흐름이 마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같은 느낌을 만들어낸다는 걸 눈치 챘을 것이다. 어르신들과 중년과 청년들은 그렇게 시간의 역순으로 청춘을 찾아간다. 그것은 마치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올라가는 듯한 그 시간의 흐름에 대한 본능적인 역행을 닮아 있다.

 

과연 나영석 PD는 처음부터 이 <꽃보다> 시리즈의 전체 흐름, 즉 어르신에서부터 청년으로 내려오는 그 흐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일까. 만일 이것이 그가 숨겨놓았던 기획의도라면 <꽃보다> 시리즈가 가진 놀라움을 새삼 느낄 수 있다. 과연 어느 누가 배낭여행이라는 소재를 갖고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세대별로 발견해내는 실험을 감행할 수 있단 말인가.

 

세대와 성별과 상황이 모두 달라도 그것이 <꽃보다> 시리즈 하나로 묶여질 수 있었던 건 실로 거기 청춘이라는 키워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실감하면서, 나영석 PD의 기획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것이 만일 우연적인 것이었다면, 새삼 청춘이라는 키워드가 가진 힘을 거기서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꽃보다> 시리즈는 따로인 듯 하나로 엮어지는 나영석 PD만의 통일성 있는 시리즈가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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