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섭 할머니 같은 분들을 위해서라면, ‘1박2일’ 존재이유

벌칙이 다소 심심했던 본 미션을 빛냈다? 팀을 나눠 했던 2번국도 맛집 여행은 사실 새로울 것 없는 KBS 예능 <1박2일>의 단골 소재 중 하나였다. 과거에 했던 해장국 로드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 이건 어쩌면 지금 현재 <1박2일>이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말해주는 것일 게다. 주말 저녁이면 어김없이 방영되는 한바탕 왁자한 여행기의 연속. 

하지만 미션의 끝에 벌칙으로 만들어진 제주도의 조동섭 할머니에게 광양불고기를 선물하러 가는 길은 이 특별할 것 없는(또 특별한 걸 요구하지도 않는) <1박2일>의 진가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벌어진 민심투어에서 <1박2일>의 애청자임을 자청했던 조동섭 할머니. <1박2일>만 챙겨보며 출연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해 애정을 드러냈던 할머니를 찾아가는 길은 벌칙으로 수행됐지만 의외의 감동을 선사했다.

이름과 사진만으로 제주도에서 조동섭 할머니를 찾는 일은 결코 쉬울 수가 없었다. 처음 할머니를 만났던 한림오일장을 찾았지만 휴일이라 텅 비어 있었고, 인근 동네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경로당과 이장님의 도움을 얻어 겨우겨우 길을 찾아가던 중, 우연히 할머니의 딸을 만나게 된 건 천운이었다.

그래서 결국 도착한 조동섭 할머니의 집. 할머니는 배달자로 찾아간 김준호와 김종민의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했다. 그리고 함께 오지 못한 다른 출연자들을 아쉬워하는 얘기로 깨알같은 웃음도 선사했다. 인상적인 건 이들을 반가워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자식 같은 살가움으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오지 못한 다른 출연자들의 영상편지를 휴대전화를 통해 볼 때 뽀뽀를 해대는 할머니에게서는 이들이 얼마나 할머니의 삶에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해줬다. 

사실 <1박2일>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이들은 여행을 떠나고 복불복 게임을 하며 야외취침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온 시간들은 <1박2일>을 과거처럼 뜨거운(?) 프로그램으로 남지 못하게 만들었다. MBC <무한도전>이 종영을 선언하고 있는 지금,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의 풍경을 여전히 <1박2일>이 지켜내고 있는 건 아마도 KBS라는 방송사의 위치가 한 몫을 차지할 것이다. 공영방송으로서 우리네 지역 곳곳의 아름다움과 먹거리, 놀거리를 찾아주는 일은 시대가 변해도 지속적으로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방송은 TV에서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고, 그래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은 조금은 구닥다리가 되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시청률도 떨어지고(물론 과거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지만) 화제성도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프로그램의 존재 가치 또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걸까. 

조동섭 할머니의 등장은 그렇지 않다는 걸 이야기해준다. 어느 시골 집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혼자 저녁이라도 챙겨 드시며 그 빈 공간의 허전함을 채워줬던 게 다름 아닌 <1박2일>이었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해 마을 어귀에 나가는 것조차 유모차의 힘을 빌려야 하는 할머니에게 전국 각지로 구경시켜 준 고마운 존재가 <1박2일>이었다는 것. 물론 시청률이나 화제성에는 그 수치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분들일 수 있지만 전국 각지에는 아마도 이런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소박해도 이런 분들이 있어 <1박2일>은 그 존재가치가 충분하다.(사진:KBS)

시즌1 끝낸 ‘어서와’, 작은 발상의 전환이 만든 큰 변화

포상의 성격으로 제주여행을 했던 4개국 특집을 마지막으로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시즌1을 마무리했다. 서울 MBC 드림센터 스튜디오에 4개국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담아낸 건 그간 그들이 걸어왔던 여행들에 대한 추억과 회고였다. 그 시작점을 생각해보면 소소해보였던 프로그램이었지만, 그들이 걸어온 길들을 되돌아보자 그 소소함이 만들어냈던 의외로 큰 변화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사실 외국인이 출연했던 프로그램이 적은 것이 아니었고, 또 여행 콘셉트의 소재는 넘치고 넘쳤던 게 작금의 예능가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콘셉트를 덧붙였음에도 이 프로그램이 완전히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담아낼 수 있었던 건 작은 발상의 전환 때문이었다. 이미 JTBC가 <비정상회담>으로 외국친구들에 대한 호감을 충분히 이끌어내고 있었고 그래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외국친구들의 고국을 방문하는 여행 소재를 더한 프로그램도 방영되기도 했었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그 여행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작은 발상의 전환으로 만들어졌다. 외국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외국친구들을 한국으로 초청한다는 콘셉트. 영세한 케이블 채널의 작업 환경을 먼저 떠올려보면 이 기획은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 제작비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식이었을 게다. 하지만 효과는 거기에서 머물지 않았다. 이들의 한국 여행이 그들의 여행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우리네 시선까지 바꾸게 했으니 말이다.

이미 너무나 익숙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서울의 풍경들이 외국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새로워졌다. 역사적 유적들은 교과서에서 배울 때 잠깐 우리의 기억에 머물렀을 뿐, 그다지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그 역사적 유적과 거기에 담긴 이야기들을 우리와는 다른 시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건 우리에게도 새삼스런 발견으로 다가왔다. 

흔하디흔한 국 한 그릇을 먹어도, 전화만 걸면 바로 배달해 오는 치킨에 맥주를 마셔도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공간의 신기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그것들이 그토록 신기할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 앞에 다시 내밀었다. 외국인친구들의 여행기는 그래서 그들의 여행이면서 우리들의 발견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저마다 휴가철만 되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들에게, 정작 우리는 우리의 것들을 잘 알고 있는가 하는 진중한 질문을 던졌다. 

또한 외국인들의 한국 체험과 그들의 체험을 또한 공감하는 MC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문화 사이의 소통의 물꼬를 열어주었다. 핀란드 친구들이 우리나라에서 경험하는 찜질방이 남다르게 다가오고, 독일 친구들이 도심에서 오르는 북한산의 정경이 남다른 건 그들의 경험치와 문화가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걸 서로 공유하는 시간은 우리가 외국인들을 그저 타자로 바라보던 시각을 바꿨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이미 친구처럼 가까워진 그들을 느끼게 된 건 그래서다. 

소규모 케이블 채널이라도 작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걸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보여줬다.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대형 기획에 스타급 연예인이 출연해야 성공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 없이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다른 작은 규모의 제작자들에게도 어떤 희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벌써부터 시즌2가 기다려진다. 이런 참신한 발상의 전환을 가진 더 많은 프로그램들이 나오기를.(사진:MBC에브리원)

‘어서와’ 친구들이 새삼 확인시킨 제주의 다양한 모습들

제주가 이토록 다채로운 재미를 주는 곳이었던가. 사실 여행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제주의 여러 명소는 이미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소개된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모든 게 익숙할 법도 한데, 어찌된 일인지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소개하는 제주여행은 남다르다. 이탈리아, 멕시코, 독일, 인도 친구들이 그들의 시선으로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는 것도 새롭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멕시코 친구들이 찾은 ‘도깨비도로’만 봐도 그렇다. 사실 이제 너무 흔해져서 ‘도깨비도로’를 찾는 사람들은 예전만큼 많지 않다. 그것이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걸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멕시코 친구들이 그 곳을 찾아 시동을 끈 차가 오르막길처럼 보이는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걸 경험하고 놀라워하는 장면은 새삼 이 공간을 흥미롭게 만든다. 

차에서 내려 직접 그 도로를 경험하기 위해 물을 바닥에 따르고, 귤을 굴리지만 생각만큼 거꾸로 굴러가지 않아 당황하는 멕시코 친구들의 모습도 우습지만, 다른 관광객이 놓은 작은 병이 굴러가는 걸 보고는 동글동글한 친구 파블로를 일부러 굴려보는 장면은 ‘도깨비도로’에서도 느껴지는 멕시코 친구들의 유쾌함이 느껴진다. 

독일 친구 페터와 다니엘이 아침부터 든든하게 김치와 곁들여 한 끼를 챙겨먹고 오른 한라산도 새롭게 다가왔다. 눈 덮인 한라산의 아름다운 풍광도 풍광이지만, 이들을 알아보는 등산객 아저씨가 그들은 물론이고 제작진에게까지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은 새삼 ‘산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줬다. 페터와 다니엘이 그 아저씨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느꼈듯이.

알베르토가 제안해 이탈리아 친구들이 체험한 바다낚시는 그들의 첫 경험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알베르토는 어려서부터 이웃집 아저씨 때문에 낚시를 해왔다고 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바다낚시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하지만 의외로 가장 많은 물고기를 낚은 루카 앞에서 알베르토는 멋쩍어질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친구들이어서 그저 음식 하나를 먹어도 그 느낌은 다르게 다가왔다. 이탈리아 친구들이 제주 특유의 고기국수 맛에 푹 빠지는 모습이나, 인도 친구들이 산낙지를 통째로 집어 넣어 끓여 먹는 해물탕의 비주얼에 놀라다가, 그 맛에는 더욱 놀라는 모습 또한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어찌 보면 그들이 한 제주여행 자체가 새로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외국인, 그것도 다양한 나라의 저마다 다른 문화와 취향을 가진 그들이기 때문에 제주여행의 모든 면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국수를 먹어도, 산을 오르거나 거기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도 모든 게 달라보였던 것.

그토록 많은 여행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래서 국내는 이제 어느덧 너무 흔해진 느낌마저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보면 이런 느낌 자체가 하나의 편견이자 선입견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공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공간을 누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다.(사진:MBC에브리원)

‘짠내투어’, 어째서 짠내가 욜로보다 재밌을까

김생민과 <짠내투어>의 만남. 이건 기획의 승리다. 욜로가 이른바 하나의 라이프 트렌드로 등장해 ‘단 한 번뿐인 인생’ 여행에서만이라도 누리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던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한 김생민이라는 ‘통장요정’은 이런 트렌드 이면에 있는 ‘하고 싶어도 실상은 하기 어려운’ 그 현실 정서를 콕 짚어냈다. 그가 말하는 짠내 나는 일상은 오히려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고, 그것 역시 가치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욜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여행이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여행을 소재로 하면 서민들이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의 판타지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저런 곳에서의 하룻밤을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 로망을 자극했던 것. 하지만 김생민의 등장은 그런 로망이 있어도 실현할 수 없는 서민들의 ‘그래도 썩 괜찮은’ <짠내투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tvN 예능 <짠내투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래서 ‘가성비’다. 적은 비용으로 나름 누릴 건 다 누릴 수 있는 그런 여행. 김생민이 꾸린 첫 날의 투어는 그래서 짠내 나는 여행의 진수를 보여줬다. 몇 천원을 아끼기 위해 조금 불편한 교통을 이용하고 오사카성 앞에 도착하고서도 미리 사둔 주유패스로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배를 타는 걸 선택한다. 

물론 여행이니 모든 게 예상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생각했던 날씨와 달리 비바람이 몰아치자 예상치 못했던 우비를 사야했고 또 걸어서 가도 되는 길에 굳이 교통편을 이용해야 하는 비용이 들었다. 또 비용을 아끼려다 보니 7시간 동안이나 공복으로 오사카를 돌아다녀야 하는 처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짠내가 나는 여행이어서 오히려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다. 오사카성에서 공짜라 탔던 뱃놀이는 비 오는 날씨와 어우러져 의외로 환상적인 느낌을 주었고, 길거리에서 너무 배가 고파 두 개를 사서 다섯 명이 나눠먹었던 빵은 그렇게 적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맛이 있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김생민이 찾은 라면집에서도 뜨끈한 국물의 라면이 더 맛있게 다가왔던 것도, 또 마침 그 달의 생일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서비스가 남다른 행운처럼 느껴졌던 것도, 어찌 보면 여유가 없는 여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흔히들 마음껏 돈을 쓰고 뭐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그런 여행에서는 포만감은 있을지언정 그 진정한 맛과 느낌은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생민이 찾아낸 여행 코스들은 실로 저게 일본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가성비를 보여줬다. 초밥집이 1인당 1만원을 넘기지 않고, 와규 한 점에 1천원이라는 고깃집은 일본이라고 해도 아끼면서 여행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 여행이 재밌게 느껴진 건 뭘 하나 해도 남다른 소중함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고기 한 점, 초밥 한 개가 이토록 행복감을 줄 수 있다니.

<짠내투어>는 그래서 김생민을 만나 욜로를 주창하며 로망을 건드리던 여행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그 아끼자고 별의 별 선택을 다하는 그 모습이 주는 웃음과 짠함, 공감대는 물론이고, 그래서 오히려 발견하게 되는 여행의 진짜 묘미까지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있어서다. 김생민과 <짠내투어>의 만남. 실로 그 기획만으로도 ‘그뤠잇’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어서와’ 서상구·박구람, 인도친구들 맞아? 

이 친구들 인도에서 온 여행자들 맞아? 단 2회 분량이 방송된 것뿐이지만 어째 이번에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한 인도친구들 비크람, 샤샨크 그리고 카시프는 전혀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인천공항에 내릴 때부터 어딘가 인도인들 특유의 삶에 대한 낙관 같은 것들이 느껴졌지만 이 정도로 우리네 문화 속에 이물감이 없을 정도로 스며들 줄은 몰랐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사진출처:MBC에브리원)'

물론 호텔에 도착해 비행일정으로 피곤해진 몸을 낮잠으로 추스를 때, 이 인도친구들이 가진 특유의 느긋함 같은 것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독일친구들이 뭐든 계획대로 척척 시간을 맞춰 여행을 했던 것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본래 일어나려 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게 일어나 느릿느릿 나갈 채비를 하는 이 인도친구들에게서는 “뭐 인생 그리 급할 거 있냐”는 식의 여유와 낙관이 묻어났다.

결국 어둑해진 밤에 남산타워 투어에 나섰지만 그 늦은 밤에 나와서 오히려 더 멋진 서울의 야경을 그들은 자신들의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진 줄을 기다리면서도 인형 뽑기 게임에 푹 빠져 돈을 탕진한 비크람은 마치 아이 같았고, 그렇게 실망한 그들에게 친절한 시민이 모자를 선물하는 장면에서는 삶의 여정이라는 것이 불행과 행운 어느 쪽으로든 튀어갈 수 있는 럭비공 같은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이태원에서 벌인 소주 파티에서 이들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했다. 소주를 마시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그들은 옆 테이블에 있는 분들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고 건배를 제창했다. 그들은 그날 비행기를 타고 인도에서 날아온 외국인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여기 살던 사람들처럼 모든 게 너무나 친숙했다.

둘째 날 여행에서도 여지없이 이들의 낙관적인 삶에 대한 열린 자세는 그대로 드러났다. 다리가 아픈 비크람이 호텔에서 쉬는 동안 한옥마을 여행을 나선 샤샨크와 카시프는 한복을 빌려입고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그리고 한복을 입은 다른 분들에게 다가가 서슴없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런 낯선 곳에서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경복궁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몸이 회복되어 다시 합류한 비크람은 마치 자신이 스타나 된 듯 거기 관광을 온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특히 한복을 입은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한 푸드투어에서도 이 인도친구들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했다. 불고기맛에 연실 감탄하고, 떡볶이와 치맥까지 곁들이며 외국인들과 함께 한 푸드투어 속에서 이들은 거의 한국 사람들처럼 그 시간을 즐겼다. 특히 홀로 식당에 두고 온 모자를 찾으러 돌아갔다가 종로 한복판을 헤매게 된 비크람에게서 외국인의 느낌은 별로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어쩌면 그리도 낯선 곳에서조차 전혀 두려움 같은 걸 느끼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그건 아마도 이 인도친구들이 가진 삶의 자세 같은 것들이 거기 묻어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도인들 특유의 느긋함과 삶에 대한 낙관 그리고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속에서도 위화감 없는 모습을 그들은 보여주었다. 그래서일까. 한 한복 가게에서 직원이 이들에게 지어준 박구람, 서상구라는 이름이 하나도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단 이틀 만에 그들이 우리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이 인도친구들은 신기하게도 보여줬다. 그것이 우리가 삶이라는 여행에서 그 여행을 좀 더 폭넓고 즐겁게 해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알려주듯이.

‘어서와’, 독일 친구들과는 달랐던 젊은 러시아 여성들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러시아 친구들의 여행기는 짧게 마무리됐다. 5회에 걸쳐 방영됐던 독일친구들편에 비교하면 3회 만에 마무리된 러시아 친구들의 여행은 너무 짧아 이제 시작하려다 바로 끝나버린 느낌이다. 물론 독일친구들 이전의 멕시코친구들 역시 3회 분량으로 방영됐던 걸 생각해보면 이들의 여행기가 짧았던 게 아니라 독일친구들의 여행기가 남달리 길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특별했으니 길었을 수밖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사진출처:MBC에브리원)'

하지만 러시아 친구들의 여행은 그들 나름대로 특별한 면면들을 담고 있었다. 동물을 좋아해서 수족관을 가서 물고기를 보며 “귀엽다”를 연발하고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물고기를 먹는 이색적인 하루를 보여주거나, 한류 팬으로서 그 캐릭터 상품들을 살 수 있는 곳에서 쇼핑을 하고, 젊은 여성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또 당연히 관심이 있는 한국 화장품을 폭풍 쇼핑하는 모습 등은 독일친구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러시아친구들의 색다른 여행의 모습이었다.

여러모로 독일친구들의 여행과의 비교 때문에 소소하게 보였지만 지나고 보니 러시아친구들은 또 다른 색깔의 여행을 보여줬다고 느껴진다. 일단 세대가 독일친구들보다 훨씬 젊다. 따라서 독일친구들이 여행에 있어서 서로를 배려하거나 좀 더 학구적인 자세를 갖는 등 성숙한 면들을 보여줬던 것과 달리, 러시아친구들은 젊은 또래들이 보여줄 만한 여행에서의 좌충우돌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걸 단적으로 드러낸 게 대학가를 여행하는 도중 아나스타샤가 갑자기 “더 이상 못하겠다”며 힘겨움을 토로하며 생긴 갈등이었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차에 비가 추적추적 내려 유독 습도가 높은 날씨로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상황, 오해로 인해 어딘지 소외되고 있다고 느낀 아나스타샤의 감정이 터져버린 것. 

결국 여행 일정을 모두 접고 숙소로 돌아와 버렸지만, 사실 이런 사소한 다툼들이나 갈등들은 여행 도중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특히 젊은 친구들은 자주 싸우지만 또 금세 친해지는 게 그 세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니어서 피식 웃음이 나올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이지만 현장에서는 자못 심각했던 그런 일들을 러시아 친구들이 보여준 건 그래서 독일친구들의 늘 좋았던 여행과는 사뭇 다른 여행의 면면을 드러내줬다. 

그런 갈등이 지나고 나서 서로 말 한 마디로 화해를 하고 금세 다시 친해져 찜질방으로 향하는 러시아친구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진진해질 수 있었다. 불가마의 뜨거움과 얼음방의 차가움을 오가며 냉탕온탕의 단짠 체험을 즐기거나, 처음 해보는 안마의자에서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좋아하는 모습은 그 날 낮에 있었던 갈등들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행복한 순간들로 남게 됐다. 그리고 이어진 러시아 음식점에서의 편안한 식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의 술 한 잔은 이 젊은 친구들의 여행에 괜찮은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저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그 나이 대에 각기 가진 취향들이 다르니 그 여행의 양상도 달라진다. 이것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사실 외국인이 국내에 들어와 겪는 문화적 충돌이라고 하면 어찌 보면 비슷한 것들의 반복처럼 보인다. 언어적 차이, 문화적 차이, 음식이나 숙소의 차이 같은 게 그것이다. 그래서 여러 번 반복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까 싶지만 그런 우려를 날려주는 건 그 여행자들의 다른 취향들이다. 이 취향들이 있어 또 다른 여행기가 나온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그래서 그들의 한국 체험기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들의 눈으로 여행으로 하는 ‘그들의 취향 체험’이기도 하다.

이런 게 진짜 여행,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쏟아진 찬사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시청률 상승곡선은 실로 놀랍다. 시청률 1%대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은 다니엘 린데만의 독일친구들이 출연하면서 2.4%(닐슨 코리아)로 훌쩍 뛰어올랐다. JTBC <비정상회담>에서 심지어 ‘노잼’이라는 별칭까지 얻을 정도로 재미보다는 진지함이 돋보였던 다니엘 린데만에 대한 호감이 일단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사진출처:MBC에브리원)'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독일친구들의 한국여행기가 하나하나 공개되면서 시청률은 간단히 3%를 넘겼고 14일 방영된 프로그램은 전국 시청률 3.5%를 기록했다. 수도권 시청률은 무려 4.5%에 달했다. 케이블 채널, 그것도 그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MBC 에브리원으로서는 최근 거둔 최고의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독일친구들의 무엇이 이토록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끈 것일까. 정규방송으로 들어오면서 첫 회에 게스트로 나온 크리스티안과 멕시코 친구들의 여행기 역시 흥미로웠던 건 사실이다. 한국의 이문화 체험 자체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잡아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하나 먹어도 지하철을 타도 우리에겐 일상인 것들이 그들에게는 사건이었다. 바로 그 점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 일상이 사건이 되는 지점 속에서 우리도 일상을 재발견하게 됐으니.

이렇게 충분히 예열(?)을 끝낸 이 프로그램은 다니엘 린데만의 독일친구들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독일친구들의 여행기가 남달랐던 건 그 여행 방식 자체가 독특했기 때문이다. 그간 많은 여행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 지역에 가서 즐기는 모습을 주로 담았다면, 이들의 여행은 한국 탐구 그 자체였다. 모든 것들을 신기해하고 거기서 자국 혹은 유럽의 문화와의 차이를 비교해보려 하며 체험을 통해 한국을 느껴보고 싶은 열정 같은 것들이 있었다. 

판문점이나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해 통일 독일과 분단된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교하고 그 역사를 공감하는 대목이나, 경주로 가서 불국사와 대릉원 그리고 안압지를 둘러보며 그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외국인의 시선은 시청자들 또한 반색하게 만들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져 나온 한정식을 맛보며 연신 감탄을 쏟아내고, 폭염 속에 굳이 북한산 정상에 올라 서울의 전경을 보며 그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그들의 여행은 우리가 봐왔던 여행 예능 프로그램들과는 사뭇 다른 지점들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공감의 발견이었다. 그저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 그 곳의 문화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거기서 어떤 공감대를 찾아가는 과정이 주는 즐거움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우리에게 확인시켜준 여행의 또 다른 측면이었다. 우리는 하지 못했던 것들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가능하게 했다는 그 관점의 변화가 가져온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시청자들은 “이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말하게 됐다. TV만 틀면 쏟아져 나오는 여행 예능 프로그램들이 연예인들을 출연시켜(심지어 연예인 가족까지) 해외여행을 보내고 거기서 저들끼리의 즐거움을 보여주곤 하던 그 틀에 박힌 여행의 양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쏟아진 찬사는 그래서 연예인 여행이 지겨워진 대중들이 느끼던 갈증을 채워줌으로써 생겨난 면이 있다. 국내의 여행 예능 프로그램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지점이다.

'신혼일기2', 신혼과 육아가 만들어내는 정서적 충돌

tvN <신혼일기2>는 사실 나영석 사단이 만든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별로 힘이 없는 편이다. 첫 회 시청률이 그나마 3.1%(닐슨 코리아)를 기록한 건 나영석 사단의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신뢰감이 우선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회가 방영되고 의외로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더니 2회에는 2%로 시청률이 뚝 떨어졌다. 

'신혼일기2(사진출처:tvN)'

장윤주는 시청자들에게도 이미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괜찮은 호감을 가진 톱모델이자 방송인이다. 연하지만 꽤 배려심 깊은 남편 정승민도 그 행동 하나 말 하나가 주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여기에 웃는 모습이 예쁜 귀여운 딸 리사 역시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게다가 제주도에서 그들이 지내는 집은 낙조에 산책 나가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놀라운 바다와 어촌의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다. 저런 곳이라면 단 하루라도 지내보고 싶을 정도다. 

각각의 요소들을 떼어놓고 보면 <신혼일기2>에 현재 보이는 시청자들의 시큰둥함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리사를 챙겨야 하는 육아의 부담이 있지만, 부러움이 묻어나는 그 그림 같은 영상들이 줄곧 펼쳐지는데 어째서 반응은 영 신통찮을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신혼일기>라는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것과 이번 장윤주네 가족이 보여주는 것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다른 관점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이들의 신혼 속으로 쑥 들어온 ‘육아’라는 현실이다.

물론 육아 자체의 고충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공감 가는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아내가 운동을 하러 간 사이 독박육아를 하게 된 남편이 겪는 시간은 혹여나 혼자 육아를 해본 부부라면 충분히 공감 갈 내용이다. 또 외식 같은 걸 할 때도 마음 편히 먹지 못하고 아이를 챙겨야 하는 고충 같은 것도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신혼일기2>가 그리고 있는 육아가 일상의 육아라기보다는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그것은 실제로 제주도의 이곳이 이들이 사는 터전이 아니고 잠시 프로그램을 위해 머무는 곳이라는 점에서 비롯한다. 그들은 그래서 마치 아이와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것을 ‘육아의 고충’이라고 얘기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이 관점은 실제로 일상에서 육아를 접하고 있는 부부에게는 공감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신혼일기> 시즌1에서 구혜선과 안재현이 지낸 곳도 그들이 실제 사는 공간이 아니라 강원도에 있는 렌트를 한 집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것이 ‘육아’ 같은 일상의 틈입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혼이라는 것이 이미 경험한 이들은 알다시피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달달한 판타지가 존재한다는 건 누구나 공감하는 일일 게다. 그러니 그들의 여행지에서의 신혼일기는 그 자체로 리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신혼일기2>가 붙여낸 육아와 여행지는 정서적 충돌을 일으킨다. 이렇게 육아 같은 예민한 문제가 진짜처럼 보이지 않게 되면, 그것은 자칫 일반인들과의 정서적 괴리를 일으키기도 한다. 저들은 저렇게 육아를 하면서도 집 앞만 나가면 기가 막힌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실제 일상의 육아에 지친 이들에게는 그것이 그저 남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출산 후 몸을 만들기 위해 갖가지 운동을 계속해왔다는 장윤주의 이야기는 그래서 대단하다고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나는 할 수 없는 박탈감 같은 뉘앙스로 다가온다. 

차라리 일 때문에 육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이(그럼에도 육아로 지치기도 했을 테지만) 그것을 잠시 벗어나기 위해 제주도로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런 이야기라면 조금은 수긍이 갔을 수 있다. 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의 육아 현실이 이만큼 첨예한 일이 아니라면 그나마 이해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지어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하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신혼일기2>가 그 알콩달콩한 그림으로 ‘육아의 현실’을 얘기하는 건 어딘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둥지탈출’의 걸림돌, 연예인 자녀 출연의 불편함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아빠 어디가>를 만든 김유곤 PD가 tvN으로 이적해 만든 <둥지탈출>은 전작과 유사하면서도 조금 달라진 관찰카메라의 시점을 제공한다. 유사한 점은 연예인(정치인도 포함)의 자녀들이 조그만 촌 동네를 찾아가 체험을 한다는 점이다. 달라진 점은 자녀의 연령대가 20대(10대도 포함)라는 것이고 부모와 함께 하는 여행이 아니라 그들끼리 독립해 떠나는 여행이며 국내가 아닌 해외라는 점이다. 

'둥지탈출(사진출처:tvN)'

확실히 연령대를 바꾸고 해외로 떠나 그들끼리 여행을 해나가는 과정은 다르지만 그 느낌은 <아빠 어디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그들을 들여다보는 부모들의 시선이 스튜디오 촬영분으로 붙여져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부모 눈에는 여전히 아이다. 그래서 하다못해 숙소를 하나 정하는 일을 성공해내거나 잘못된 선택으로 조금 힘든 길을 가게 되는 장면을 보는 부모들은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아이를 보듯 기쁨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둥지탈출>의 관전 포인트는 그래서 저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가 그러하듯이 부모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자식들의 행동들을 애정을 갖고 보게 만드는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집에서 봤을 때는 그저 평범해 보였거나 내성적이었던 아이가 막상 바깥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하자 나오는 전혀 다른 모습은 그래서 부모를 놀라게 하고, 만일 시청자들 역시 그 부모의 시점을 공유하게 된다면 그러한 놀라움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부모의 시점을 공유한다’는 그 전제가 과연 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연예인 자녀들이 출연하는 방송에 있어서 시청자들이 먼저 갖게 되는 건 불편함이다. 과거 김유곤 PD가 이끌었던 육아예능이 한창 트렌드가 되었을 때만 해도 연예인 자녀의 출연은 오히려 그 일상적인 스타의 모습과 어우러지는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연예인 가족이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자주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시청자들에게 그것은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불편함으로 바뀌었다.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방송출연의 기회가 너무나 쉽게 주어지고 그를 통해 연예인이 되는 경우도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둥지탈출>은 연예인 자녀들이 해야 할 미션들을 더 힘겹게 구성했다. 오르기도 쉽지 않은 네팔의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에 그들의 정착지를 꾸렸고, 거기서 살아가는 것도 그들 스스로 해결하는 것으로 룰을 정했다. 결국은 부모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가 된 것도 이런 연예인 자녀의 출연에 대해 느끼는 시청자들의 불편함을 상쇄하기 위한 것과 무관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게 첫 방송이 나온 후 시청자들의 반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유곤 PD는 출연자들의 부모 입장이 되어 보기를 바랄 것이지만, 시청자들은 거꾸로 연예인 자녀들의 해외여행을 통한 독립 과정을 왜 봐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특히 20대 청춘들이 현재 겪고 있는 힘겨운 현실들을 떠올려 보면 이러한 독립 여행이라는 것조차 너무나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물론 <둥지탈출>의 아이들을 마치 내 아이들처럼 여기며 바라본다면 충분히 그 과정이 주는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의외의 사건들과 부딪치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흐뭇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타인의 아이들(그것도 여유 있는)을 바라보며 흥미진진하거나 흐뭇해할 여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둥지탈출>은 과연 이 심리적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알쓸신잡’, 아재들이 지나간 자리 남은 지식의 향기

여행을 하는 참 많은 방법들이 있는 것 같다. 나영석 PD가 KBS <1박2일>로부터 시작해 현재 tvN <알쓸신잡>까지 이어진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해외배낭여행, 어르신은 물론이고 청춘들, 어느 한 곳에 폭 박혀 며칠간을 정착하며 즐기는 여행에서부터 지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여행까지 참 다양하기도 하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그 중에서도 최근 뜨거운 <알쓸신잡>은 아마도 여행 풍속도를 바꿔줄 새로운 여행의 색깔을 덧씌워주고 있다. 그저 지나쳤던 풍경이나 유적 그리고 음식들까지 그 안에 담겨진 문화적인 이야기들을 이 프로그램이 끄집어내주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알쓸신잡>이 춘천에서 들려준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당연한 듯 춘천에 가면 먹었던 닭갈비에서 ‘갈비’를 먹고픈 서민들의 욕망을 읽어내고, 에티오피아 카페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전우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책과 인쇄박물관’에서 그 잉크 냄새가 주는 아련한 향수에 빠져들면서 후각이 그 어떤 감각보다 우리네 기억을 더 강렬하게 자극하는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애니메이션 박물관에서 태권브이의 향수에 젖는다. 

어찌 보면 여행에서 우리가 흔하게 만나게 되는 음식이나 박물관 같은 것들이지만 <알쓸신잡>이 보여준 것처럼 거기 담겨진 이야기들을 알거나 이해하게 되면 새삼 그 체험들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대성리 하면 대학시절 많이 가던 엠티 장소 정도로 기억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거기에도 당대 감시의 눈길을 피해 독재에 항거하던 젊은이들의 행적들이 숨겨져 있다. 

수목원의 꽃들을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찍어 그 이름을 검색할 수 있는 편리해진 시대에, 그만큼 사라져 가는 직업들을 떠올린다. 일일이 활자를 찾아 신문을 찍어냈던 시절에서 이제 컴퓨터가 모든 걸 해버리는 현재까지의 놀라운 변화가 겨우 30년도 되지 않았다는 걸 통해, 얼마나 세상이 빨리 변화해가는가를 실감한다. 

그러니 이제 <알쓸신잡>의 여행을 본 이들은 통영에 가서 새삼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남다른 감회로 떠올릴 것이고, 순천에 가서는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떠오를 것이다. 강릉 오죽헌에 가게 되면 유시민과 황교익이 비분강개했던 안내판을 통해 신사임당의, 율곡의 어머니만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위대함을 새삼 떠올릴 것이고, 경주에 가면 최진립 장군과 그와 끝을 함께한 옥동과 기별의 이야기에서 감동할 수 있을 것이다. 공주에 가게 된다면 백마강과 낙화암 앞에서 새로 써야 할 왜곡된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을 게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요즘, 휴가철이 되면 공항은 북적인다. 해외여행이 이렇게 일반화되는 만큼 국내여행은 어딘지 너무 소소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큰 착각이고 선입견이라는 걸 <알쓸신잡>을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 우리가 국내여행을 소소하게 느껴왔던 건 진짜 그 곳이 소소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국내 곳곳에 숨겨져 있는 많은 이야기들, 하다못해 음식 하나에도 깃들어있는 재미있는 삶의 이야기들이 넘쳐난다는 걸 <알쓸신잡> 박사들은 새삼 확인시켜줬다. 거창하게 인문학을 운운할 필요도 없이, 이들이 어떤 여행지에서 나눈 폭풍 지식수다를 먼저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얼마나 많은 재밋거리들이 숨겨져 있는가. 다만 우리가 관심을 주지 않았을 뿐. 여러모로 <알쓸신잡>으로 인해 이번 여름, ‘휴가의 풍경’도 사뭇 달라지지 않을까.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가까이 충분히 흥미로운 여행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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