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위치타 공항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마치 가이드를 따라가듯 톰 크루즈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공항 내 안내방송은 이 롤러코스터에 이제 막 톰 크루즈의 안내를 받아 탑승한 관객들에게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빌겠습니다"하고 말한다. 그리고 안전한 일상 속에 살아왔던 우리들을 때론 아찔하고 때론 로맨틱한 두 시간 짜리 여행 속으로 데려간다.
우리를 대신할 영화 속 인물은 캐머런 디아즈. 그녀는 '나잇 앤 데이'라는 영화적 판타지의 세계와 현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감정이입된 관객들은 그녀가 느끼는 대로 위험해보이면서도 어딘지 매력으로 넘치는 톰 크루즈에게 기꺼이 몸을 맡긴다.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 즐거운 여행을 깨뜨릴 수 있는 지독한 상황 속에 들어가면 친절하게도 톰 크루즈는 그녀에게 잠이 오는 약을 먹인다. 그러니 위험한 상황은 지워지고 대신 눈을 뜨면 꿈꾸던 곳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톰 크루즈는 이 여행의 가이드이자, 친절한 기사(Knight)다. 관객을 공주처럼 대하는.
'나잇 앤 데이'는 액션물과 로맨틱 코미디를 절묘하게 엮어놓았다. 그것은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와 각종 로맨틱 코미디에서 발군의 푼수끼를 보여주었던 캐머런 디아즈의 조합 그대로다. 영화는 스파이 남편의 모험 속으로 갑자기 뛰어 들어간 아내의 이야기를 담았던 '트루 라이즈'를 떠올리게 한다. 과도한 액션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깨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이 영화는 톰 크루즈라는 농담 잘 하고 여성에 대한 배려가 출중한 데다 잘 생기기까지 한 인물을 투여해 상황을 늘 말랑말랑하게 바꿔놓는다. 여성들이 진짜 좋아할만한 '로맨틱 액션'. 위험해보여도 안전함을 보장하는 짜릿한 일상탈출 롤러코스터가 '나잇 앤 데이'다.
놀이공원에 즐비한 롤러코스터들이 우리에게 말하듯, 이 영화는 '안전한 삶'이 가진 무료함을 '죽음'이라고까지 말한다. 톰 크루즈가 캐머런 디아즈에게 정보조직이 당신을 찾아갈 것이고 '안전' 같은 말을 반복하면 그건 "당신을 죽이겠다"는 말이니 도망치라고 하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의 안전함을 벗어나 위험하지만 짜릿한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이 어디 쉬운 일인가. 캐머런 디아즈는 모험과 안전 사이에서 갈등한다. 대부분의 우리가 그렇듯이 '지금'이 아닌 '언젠가'로 꿈을 미루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라는 말은 톰 크루즈의 말대로 '위험한 말'이다.
영화는 이 '언젠가'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를(어쩌면 우리를) '지금'의 삶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녀는 톰 크루즈라는 대단히 매력적인 가이드와 함께 알프스로 외딴 섬으로 오스트리아로 스페인으로 날아간다. 마치 비행기에서 푹 자고 나면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자고 나면 그 꿈꾸던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있다. 이처럼 '나잇 앤 데이'는 우리들이 원하고 꿈꾸는 세계를 두 시간 짜리 롤러코스터로 압축해 놓는다. 부담 없고, 신나고, 로맨틱한, 일상에 지쳐 잊고 있던 그 짜릿함에 열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롤러코스터도 이 정도면 꽤 타볼만한 가치가 있다 느끼게 하는 영화, 바로 '나잇 앤 데이'다.
점심식사를 위한 메뉴판에 봄을 알리는 몇몇 풍경이 적혀져 있고, 그 옆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액수가 적혀져 있다. 그 풍경을 찍어오면 그 액수를 점심식사비로 지급하겠다는 거다. 경상남도 어느 길목에서 '1박2일'의 출연진들은 차에서 내려 갑자기 만난 풍경 속에서 봄을 찍어댄다. 무엇보다 압권은 이 메뉴판에 적혀진 'UFO 10억'이라는 문구. 재미로 적어놓은 것이지만 '1박2일'은 이 문구 하나로 재미있는 추억거리를 만들어낸다. 조작사진을 찍고, 거기 우연히 찍혀진 눈곱만한 흔적을 UFO라 우기며 결국 협상을 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여행에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실 '코리안 루트'라고 거창한 제목을 달고 강원도 속초에서부터 경상도를 거쳐 전라도를 도는 3박4일 간의 대장정이지만, 프로그램이 재미를 주는 요소들은 의외의 장면에서 발견된다. 속초에서 아바이 마을을 찾아가 아바이 순대와 생선 구이로 포식을 하고 '가을동화'의 촬영지를 돌아보지만, 사실 그 여행의 진짜 재미는 그들이 이동하는 작은 차에서 만들어졌다. 차 안의 좁은 공간에 강호동과 함께 앉아 엄청난 압축률(?)을 보여준 MC몽이 그 장본인이다.
영덕에서 게임으로 낙오(?)된 은지원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진주를 거쳐 베이스캠프인 하동에 도착했는데, 그 단순한 여행을 즐겁게 채워준 것은 인근에 사는 친구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청도의 그 유명한 미나리쌈에 곁들인 삼겹살 점심은 그 곳을 지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여행의 코스. 하지만 '1박2일'이 이 코스를 더욱 재미있게 만든 것은 턱없이 부족한 삼겹살이었다. 결국 미나리만 소처럼 먹던 출연진들은 저녁의 복불복 제안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삼겹살을 얻어먹었다.
하동 베이스캠프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의 배경이 되는 최참판댁. 하지만 이 의미 깊은 공간의 재미는 냉수마찰을 걸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으로 채워졌다. 이승기와 이수근을 홀딱 젖게 만든 그 해프닝은 여행자들 특유의 객기가 주는 즐거움이 깃들여졌다. 사실 '1박2일'이 제공하는 지역의 정보는 작은 것이 아니지만, '1박2일'이 주는 여행의 재미는 그 정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코리안 루트는 '1박2일'이 제안하는 우리네 지역의 특산물과 여행지의 코스지만, 재미는 그것을 소개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이것은 '1박2일'이 구사하고 또 시청자들에게 제안하는 '여행의 기술'이다. 여행은 제주도에 간다고 해도 별 의미와 재미를 못찾을 수도 있고, 그다지 멀지 않은 인근 지역을 가서도 특별한 의미와 재미를 얻을 수도 있다. 서점의 여행서적 코너에 가면 널려있는 수많은 책들 속에 들어있는 여행지의 정보들이나, 컴퓨터를 켜고 지역명만 치면 줄줄이 달려 나오는 여행지의 숙소나 먹거리 정보, 그리고 관광 명소는 막상 여행을 실제 떠나는 이들에게는 죽은 정보나 다름없다. 그 정보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경험이지만, 여행을 떠나는 당사자들에게는 참고 그 이상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은 스스로 써나가는 것이지, 누군가가 쓴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 여행의 묘미는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것처럼, 그 이유와 가는 방법을 자기 자신에게 묻고 답을 얻을 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1박2일'의 매주 떠나는 여행이 특별하고 재미를 주는 이유는 우리네 여행지들이 품고 있는 보석 같은 풍광과 독특한 지역만의 풍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여행을 스스로 써나가는 '1박2일'만의 여행의 기술 덕분이기도 하다.
‘무한도전’이 알래스카로 날아갔다. ‘1박2일’의 남극행을 염두에 두었던 행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지만, 미션 자체는 지극히 ‘무한도전’다웠다. ‘알래스카에서 김상덕씨 찾기’라는 지극히 사소한 선택. 반면 ‘1박2일’이 남극에 가는 데는 그 프로그램 성격상 명분이라는 게 필요했다. ‘1박2일’의 취지 자체가 국내의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들을 구석구석 찾아가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박2일’이 남극에 가는 것은 물론 여행에 있어서 극점이라는 의미로서 어떤 로망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남극에 우리의 세종기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확장해서 바라보면 남극의 세종기지는 국내의 오지 섬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반면 ‘무한도전’의 알래스카행은 ‘무한도전’답게 의미가 아닌 재미를 위한 것이었다. 일단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김상덕씨를 찾아 알래스카까지 간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설정이었다. 거기서 김상덕씨를 찾느냐 못 찾느냐는 애초부터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말이 씨가 되는 상황’. 그것을 찬찬히 목도하면서 그 속에서 생고생을 하는 그들의 모습 자체가 ‘무한도전’이 알래스카편에서 겨냥한 웃음과 재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건 로망이 있기 때문에 남극을 선택한 ‘1박2일’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들은 벌칙 수행을 하기 위해 알래스카에 갔다.
목적 없이 떠난 벌칙 여행에서 유재석, 노홍철, 정형돈이 겪을 일은 대체로 예상 가능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좌충우돌하는 상황. 의미가 아닌 재미를 위한 선택이었기에 가중되는 웃음에 대한 강박.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상황. 유재석은 가평 번지점프대 위에서 역시 벌칙을 수행하며 하룻밤을 지내는 박명수, 정준하, 길에게 전화를 해서 “거기는 어떠냐?”고 묻는다. 그러자 길이 “완전 망했어요”라고 말하는 그 상황. 웃음을 주려고 극한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었지만 웃음을 못주는 상황이 오히려 이번 미션의 재미 포인트가 된다.
따라서 알래스카까지 가서 얼음낚시를 하겠다고 몇 시간 동안 빙판에 구멍을 뚫기 위해 낑낑대는 모습이나, 난데없는 동계올림픽을 흉내 내다가 피까지 보는 상황은 분명 이 의도된 재미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개그맨으로서의 이들에게 새롭게 부여된 도전 상황으로서 ‘무한도전’의 취지와도 잘 어울린다. 웃음을 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웃음을 주는 것. 늘 그렇듯이 ‘무한도전’은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재미를 주지는 않는다. 그저 그렇게 무모한 듯 도전 상황에 내던져졌다는 것 자체로 재미를 준다. 즉 아이러니한 얘기지만 이번 상황은 웃음을 주었던 주지 못했던 그 도전 자체가 재미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흔히 ‘1박2일’에서 발견한다. 즉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전제 하에 어떤 미션 속에서 웃음을 주지 못하고 지나치게 진지하게 되었을 때, ‘1박2일’에서는 누군가 이런 얘길 한다. “이게 다큐지, 예능 맞아?” 예능이 다큐를 할 때 오히려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1박2일’은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그것은 지나친 진지함,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웃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즉 ‘1박2일’은 늘 스스로가 다큐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것은 쉽게 웃음으로 전화된다. 반면 ‘무한도전’은 재미를 모토로 하기 때문에 새롭게 시도된 다큐적 재미는 낯설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거 다큐 아냐?”하고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1박2일’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어떤 한계가 지워진다. 그것은 ‘의미에 대한 강박’이다. 무엇을 하건 의미가 무엇인가에 합당하지 않으면 비판받기가 쉬워진다. 재미를 위해 알래스카로 훌쩍 떠나는 것이 가능한 ‘무한도전’과는 달리 ‘1박2일’은 그 남극행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꽤 많은 의미부여가 필요해진다. ‘무한도전’이 주창하는 ‘재미를 위한 재미’는 ‘1박2일’에서는 부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무한도전’이 거의 매번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스스로 과도한 의미부여를 피하고 재미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의미부여는 따라서 스스로가 아니라, 시청자들에 의해 부여되곤 한다. 하지만 ‘1박2일’은 의미를 떼어낼 수가 없다. 만약 ‘1박2일’에서 ‘무한도전’이 벌칙으로 수행한 알래스카 같은 오지로의 목적 없는 여행을 했다면, 거기서도 ‘1박2일’은 어떤 의미를 끄집어내려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목적 없는 여행’ 그 자체가 주는 의미 같은 것 말이다.
‘1박2일’은 그 프로그램 형식상 그 의미를 벗어날 수 없다. 여행이라는 사뭇 다큐적인 상황을 예능으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1박2일’은 어쩌면 지금껏 이 의미로만 점철된 여행의 공간을 재미로 바꿔나가는 도전을 해온 셈이다. 교과서에서나 봐왔던 오지 속으로 들어가 게임을 하고 미션을 수행하면서 의미는 재미로 자연스럽게 전화된다. 그렇다고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의미만 있던 공간에 재미가 부가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행이 과거 가이드가 붙는 관광여행에서 이제는 스스로 떠나는 체험여행으로 바뀌는 시대적 추세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1박2일’이 남극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마치 의미로만 점철된 그래서 딱딱하게 다큐적 의미만으로 고형화된 공간의 표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남극하면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다큐멘터리’다. 그 다큐멘터리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 의미와 함께 그것을 뛰어 넘는 재미를 찾아내려는 무한도전, 그것이 ‘1박2일’의 남극 도전 속에 숨겨진 것들이다.
‘무한도전’의 알래스카행과 ‘1박2일’의 남극도전이 모두 똑같이 말해주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아직까지는 판타지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현실이 될 ‘즐거운 삶에 대한 자유’에 대한 것이다. 알래스카와 남극은 더 이상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공간, 즉 특정인들만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여행을 꿈꾸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한도전’의 알래스카행을 보면서 어떤 로망을 느꼈다면 그것은 생각만 하면 알래스카라도 쉬 달려갈 수 있다는 그 상상의 자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목적도 없이 생각하는 대로. 이것은 ‘1박2일’이 꿈꾸는 남극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능이 다큐의 영역을 넘어가는 시대, 즉 어떤 기능적인 목적이 아니라 즐거움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이 두 프로그램은 지금도 매주 우리 눈앞에 펼쳐놓고 있다.
그 때 우리는 동해안의 어느 바닷가에 있었다. 도시의 폭염을 피해, 도시의 돈 냄새를 피해, 달아난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은 잔뜩 찡그린 채 빗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텅 빈 백사장 위에 설치된 천막 옆에서 우리는 비에 젖은 생쥐마냥 떨면서 빗물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 집으로부터 3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외딴 곳에 잘 곳도 없는 우리들에게, 주머니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돈을 톡톡 털어서 마시는 소주 맛이란, 막막함과 설렘이 뒤섞인 기막힌 맛이었다.
그 대책 없는 상황은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천막 안에서 흘러나오는 쿵쿵 대는 음악에 맞춰 우리는 천막 바깥에서 춤을 추었다. 소주에 취해 빗물과 바닷물에 취해. 자연 속에 적당히 자신을 방치해버린 듯한 그 기분. 그것은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눈을 깜박이면서도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낙관할 수 있었던 청춘의 기분이었고 그것은 여행이라는 단어가 갖는 그 느낌 자체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갔었던 그 동해안의 바닷가는 이미 사그라져버린 청춘의 모래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천막이 있던 자리는 말끔하게 차려진 건물에 카페가 자리했다. 남미풍의 음악이 바다의 백사장까지 침투하는 그 곳에 앉으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저 편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비라도 내릴라치면 묘한 감상에 젖어 비와 바다가 만들어내는 축축함을 쳇 베이커의 ‘마이 퍼니 발렌타인’에 버무려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앉아 부르고뉴 피노누아 정도가 글라스에 채워져 있다면 금상첨화. 우리의 여행은 20년의 세월만큼 달라져 있다.
자연에 가까웠던 청춘의 우리들은 어느새 문화라는 이름 속에 둥지를 튼 인공적인 안전함 속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나이든 우리들에게 온 변화이면서, 동시에 나이 먹어버린 우리네 환경의 변화이기도 하다. 우리와 분리되면서 자연은 우리의 안식처이면서 도전이 되었다. 자연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불안함을 느낀다. 우리에게 여행이란 끝없는 이 양가감정 속에 놓여져 있다. 도시 속의 안전함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문화라는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훌쩍 그 도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그러나 자연 속에서의 야생적인 하룻밤을 버텨내기가 어렵다.
TV라는 매체가 가진 가장 기본적인 속성은 대리체험이라는 점에서, 여행은 바로 이런 양가감정에 놓여있는 우리들을 흔들어놓는 소재다. 우리는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서’,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갈 수도 있고, 범인들은 갈 수 없는 히말라야의 ‘산’에 오를 수도 있으며,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오지에서부터, 물 속 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들을 대리체험할 수 있다. 맥루한이 매체가 감각의 확장이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TV를 통해 실제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의 세세한 순간들을 목도할 수 있고, 인간의 능력으로는 버텨낼 수 없는 심해로 들어갈 수도 있다. 대리체험을 가짜라 치부하는 것은, 영속하는 진짜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플라톤적 사고방식일 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분명 감각적으로 체험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지금은 여행을 낯선 세상과의 만남이라고 할 때, TV가 매개하는 여행 역시 그 여행의 한 부분이 되는 시대다.
'원격현전'이 TV가 가진 가장 놀라운 경이라는 점에서 TV의 공간을 포착하는 대부분의 영상들은 여행과 다르지 않다. '이 곳에 앉아 저 곳을 본다는 것'이 이 여행의 특징이자 가장 큰 매력이다. 따라서 날 것의 여행을 보여주는 것은 TV로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니 여행 자체가 쇼의 소재가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섯 남자들이 1박2일 간 떠나는 여행을 오락적인 쇼의 형식으로 포착한 '1박2일'은, 여행 그 자체를 대리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행이 환기하는 어떤 기억을 대리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생고생의 기억이다.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여섯 명의 캐릭터는 바로 우리들의 분신이고, 그들이 저 야생에 나가서 복불복 게임을 하며 노숙을 하는 건 우리들이 잊고 있던 야생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한 겨울에 텐트에서 잠을 자거나, 계곡의 얼음물 속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여행을 앞두고 갖게 되는 혹은 자연을 앞에 두고 갖게 되는 그 불안감과 편안함의 양가감정을 담고 있다. 이것은 저 20년 전 갖고 있었으나 이제는 잃어버린, 청춘의 대책 없는 낙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힘겨움과 고통스러움이 웃음과 즐거움으로 화하는 것. 그것이 이 쇼가 주말 밤 떠나지 못한 자들을 이끌고 그들과 함께 떠나게 만드는 치명적인 유혹의 실체다.
한편 20년 전과는 달리 현재 나이 먹어버린 우리가 하는 여행이란 고작 자연 속에서도 편안한 도시의 인공 속으로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산과 바다에 자리한 고급 펜션들과 호텔들은 자연을 찾은 이들이 다시 인공으로 들어감으로 해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여행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산 속에서 길을 잃어 오랜 시간 동안 헤매다 겨우 발견한 대형마트의 불빛에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 우리네 도시인들의 삶이 아닌가. 그러니 여행의 또 한 가지 측면은 단지 자연과의 일체감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의 다른 생활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 생활은 본질적으로는 떠나온 도시와 다를 것이 없지만, 이질적 공간이 주는 변주의 즐거움이 있다.
시골에 사시는 어르신들을 여행 보내드리고, 대신 그 곳에서의 하룻밤을 지내는 컨셉트의 '패밀리가 떴다'는 바로 이러한 여행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쇼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도착해서 짐을 풀고, 놀다가 밥을 함께 차려먹고, 함께 자고 일어나 다시 밥 차려먹고 놀고 하는 것의 반복이다. 하지만 이 단순함이 주는 판타지는 의외로 크다. 일과 욕망에 점철되어 살아가는 도시생활 속에서의 우리네 삶이 일하고 일하고 일하는 그 연속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밥 한 끼 제대로 가족들과 차려먹는다는 것이 하나의 로망이 되어버린 삶 속에서 이런 여행이 갖는 평범함(삼시 세 끼 먹고 놀다가 푹 자는)은 때론 강력한 유혹으로 다가온다.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프로그램은 그 내용에 있어서 여행의 양상을 보여주는 접근방식이 다르지만, 그 형식과 외형은 동일하다. 그것은 모두 TV라는 매체를 통해 보여주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1박2일'이 야생을 외친다고 해도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야생의 여행 체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인공적인 대리 체험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야생으로 떠나자"고 프로그램은 소리치고 있지만, 바로 그 소리침으로 인해 우리는 TV 앞에 앉아있다는 것. 우리에게 어쩌면 여행이란 이제 이런 것으로 변해 있는 지도 모른다. 가끔씩 오지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그 곳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TV의 채널을 만지작거리며 안도감을 갖곤 한다. 이곳도 내가 떠나온 곳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 매개된 체험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우리의 감각은 어쩌면 이미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칼럼은 Yes24의 문화웹진 나비(nabeeya.yes24.com)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관련 글 : '마더', 우리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누구나 소풍 전 날, “내일은 꼭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빌었던 기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여행은 날씨에 민감하다. 또 변수도 많다. 갑작스런 폭설로 발이 묶이기도 하고, 우연한 사고(?)에 일정이 모두 바뀌기도 한다. 길에서 만난 사람과 생각지도 않은 경험을 하기도 하고, 그 경험을 통해 뜻밖의 재미를 얻기도 한다. 그것이 진짜 여행의 참 맛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여행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특별한 설정 없이도 그 낯선 장소로 떠나는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든 벌이지게 마련이다. 그걸 촘촘히 발견해내고 때론 캐릭터가 그 발견된 상황을 강화하면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자연스럽게 그 리얼이 주는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
야생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1박2일’이 빛을 발하는 것은 야생과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엮일 때다. 박찬호와 강호동이 대결하듯 한겨울 계곡 물에 들어가는 장면은 인물들 간에 형성된 미묘한 신경전과 함께, 마침 그 장소, 그 시간에 존재하는 얼음장같은 계곡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여기에도 인위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1박2일’은 버라이어티쇼라는 의식은 어떤 식으로든 웃음의 포인트를 현장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강호동은 출연진들을 때론 윽박지르고 때론 다독이면서 지나치는 연못에 뛰어들게 만들어, 그 연못을 승기 연못으로 만들어버린다.
제주도로 가기로 되어있던 상황에서 비행기 결항으로 계획이 무산되어 대신 가게된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그들은 웃음을 주기 위해 바닷물에 뒹구는 몸 개그를 위한(?) 게임을 해야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위적인 부분은 그것이 여행 속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수긍하게 된다. 여행이라는 일탈 속에서는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제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리얼을 표방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이러한 리얼의 요소들은 묻혀져 버렸다. ‘무한도전’의 끝없는 도전은 이제 굳이 리얼이라고 붙이거나 붙이지 않거나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무한도전’이기 때문에 주목되는 것이지, 이제 더 이상 리얼 버라이어티이기 때문에 주목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무한도전’에서 시도했던 좀비 특집, ‘28년 후’는 그 실패를 통해 오히려 ‘무한도전’의 리얼 상황을 드러내주었다. 김태호 PD는 실패에 대해 연거푸 사과하며 시말서를 쓰고 있다는 얘기를 했지만, 바로 그 상황이 ‘무한도전’이 가진 실험정신과 리얼리티를 상기시켜 주었던 것.
이것은 ‘1박2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제주도에 촬영팀들을 전부 보내고, 자신들은 영종도에 발이 묶여 을왕리로 발길을 돌릴 때, 이 애초의 목적 실패는 이 프로그램이 진짜 리얼이라는 것을 거꾸로 드러내주었다. 이제 모두가 리얼이라 주장하는 시대에, 오히려 리얼이 드러나는 대목은 버라이어티쇼가 어떤 목적의 실패를 했을 때가 되었다.
‘1박2일’이 1주년을 맞아 초심을 되찾기 위해 떠난 충북 영동. 차를 타고 떠나는 출연진들은 시작부터 투덜대기 시작한다. 늘 먹을 것을 안주는 것에 대한 불만토로. 작년에 노홍철이 팬 사인회를 열어 먹을 것을 구걸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이승기가 그 미션에 나섰다. 산더미처럼 쌓이는 음식을 차안에 가만히 앉아 갈취(?)하는 다른 팀원들의 모습은 특유의 구질구질한 모습을 연출하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늘 부족한 ‘1박2일’의 밥상, 그 굶기의 해학 충북 영동에 도착한 후, 저녁거리를 찾아 빈 통을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장면도 작년과 똑같이 연출되었다. 작년 기꺼이 밥통을 열어 밥을 내주고, 냉장고를 열어 김치를 내주시던 그 집들을 방문한 ‘1박2일’팀은 은지원과 MC몽, 이수근이 벌인 깜짝 쇼로 고마운 분들을 폭소로 쓰러지게 했다. 그렇게 가가호호 얻어온 밥과 반찬을 한데 넣고 비빈 후, 그들은 역시 1년 전과 똑같이 ‘티스푼으로 밥 떠먹기’게임을 했다. 작은 스푼으로 보다 많은 밥을 퍼먹기 위해 목숨을 거는(?) 그네들의 모습은 유아적이지만 본래 현실에서 조금은 붕 뜰 수 있는 여행이라는 아이템과 잘 맞물려 무리 없는 웃음을 선사했다.
잠자리를 두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 역시 ‘먹는 게임’이다. 매운 불닭 양념을 찍은 고기를 먹고 참지 못하면 평상 위에서 백만 모기떼들에게 뜯겨 자야할 상황. 게임은 불꽃을 튀길 수밖에 없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미션 또한 “자급자족으로 아침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초심을 되찾기 위해 떠난 ‘1박2일’의 중심 아이템은 ‘먹는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자는 문제가 큰 아이템이지만 이것은 겨울이 되어야 힘을 발하는 것. 역시 여름의 아이템은 먹거리가 중심을 이룬다.
주목해야할 것은 ‘1박2일’이 먹는 문제를 웃음의 코드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1박2일’은 잘 나간다는 연예인들을 굶기는 방식으로 웃음을 유도한다. 일주일을 굶으면 전봇대도 떡볶이로 보이는 법. 배고픈 이들은 먹기 위해 사생결단의 게임을 벌이며, 먹기 위해 치사해지기도 하는 행동을 보인다. 때로는 먹기 위해 구걸하는 불쌍한 모습을 연출해 웃음을 주기도 한다. 먹는 것을 마음껏 제공받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복불복 게임이 그 즐길 틈을 막아선다. 먹거리에 대한 ‘1박2일’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여행 버라이어티가 주는 재미는 부족함, 굶기의 해학에 있다.
풍족한 ‘패밀리가 떴다’의 밥상, 요리의 해학
반면 ‘패밀리가 떴다’의 저녁상은 ‘1박2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패밀리가 떴다’ 역시, 물고기를 잡거나, 야채를 준비하거나, 요리를 하는 등 그 아이템의 중심에 서는 것은 먹거리이다. 하지만 그 먹거리는 부족함보다는 풍족함을 더욱 강조한다. 물고기를 잡는 것은 물론 저녁 밥상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그들에게 그 일은 그다지 절실하지 않다. 장어를 잡기 위해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그들은 그 자리를 떠나 게임에 몰두한다. 그리고 돌아와 많이 잡히면 좋고, 적게 잡히면 아쉬운 정도이다.
하룻밤을 묵을 집에 돌아와 저녁상을 차릴 때 고민이 되는 것은 적은 식재료가 아니라 그 재료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의 문제다. 그들에게는 이미 집을 봐달라고 떠나면서 그들에게 남겨준 풍족한 재료들이 집 주변에 널려 있다. 토종닭이나 숭어 같은 좋은 식재료가 제공되지만 달콤 살벌한 박예진이 그걸 요리하지 않으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나, 미식연구가 윤종신이 패밀리의 맛좋은 저녁을 위한다면서 라면 스프나 통조림에 집착하는 상황에서 ‘1박2일’의 부족함이 갖는 해학은 없다. 오히려 그 즐거운 상황 자체가 웃음의 포인트가 된다.
여행의 먹거리에 있어서 ‘1박2일’이 그 먹느냐 굶느냐는 것 자체에 더 집중한다면, ‘패밀리가 떴다’는 맛있게 먹느냐 맛없게 먹느냐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이 점은 두 여행 버라이어티의 성격을 규정하기도 한다. ‘1박2일’이 여행이라는 야생의 상황에 좀더 치열한 상황이 주는 웃음을 추구한다면 ‘패밀리가 떴다’는 여행이 주는 아기자기함에서 웃음을 찾는다. 두 여행 버라이어티는 여행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1박2일’에게 여행은 굶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 해야하는 ‘야생’이지만, ‘패밀리가 떴다’의 여행은 부족함도 즐거움이 되는 ‘단합대회’의 성격이 짙다. 프로그램의 이미지에 있어서 ‘1박2일’이 리얼의 느낌을 강조한다면, ‘패밀리가 떴다’는 어떤 로망을 준다.
여행이란 실로 바로 이런 현실과 환타지가 뒤범벅된 것이 아닐까. 떠나기 전의 막연한 기대감이나 여행지에서의 아늑함은 환타지가 되지만, 또한 그 여행에서 만나는 의외의 상황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 지금 ‘1박2일’이 독점(?)하던 여행 버라이어티에 ‘패밀리가 떴다’가 뛰어들어 그 영역을 나눠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여행이 가진 두 밥상 중 ‘1박2일’이 갖지 못한 밥상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여행 버라이어티의 성격을 규정짓는 이 서로 다른 두 밥상 사이에서 시청자들의 숟가락은 어디로 향할까. 밥맛이야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것이니 어느 한쪽의 쏠림을 예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밥상이 한동안 주말의 예능을 평정하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무한도전’과 스릴러가 만나면 어떤 형태가 될까.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이 그 형식으로 가져온 것은 최근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주목되고 있는 스릴러라는 장르다. 그것은 마치 인기 미국드라마 ‘24’나 ‘추격자’같은 쫓고 쫓기는 긴박한 스릴러를 연상시킨다. 아침에 경주에서 일어난 ‘무한도전’ 출연진들이 영문도 모를 게임에 빠져들고 하루 동안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형식이 그렇다.
스릴러라는 장르적 긴박감을 부여하면서 ‘무한도전’이 얻은 가장 큰 것은 속도감이다. ‘24’같은 리얼타임 액션을 보고 있다보면 그네들이 흘리는 땀과 심장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처럼, 비가 오는 상황 속에서 달리고 달리는 ‘무한도전’ 출연진들의 모습 또한 시청자들에게 그 긴박감을 전해주기에 모자라지 않았다. 최고의 자리에서 느슨해질 수도 있는 고삐를 바로 이 스릴러라는 형식을 끌어옴으로써 바짝 조일 수 있었다.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또한 퀴즈 프로그램의 진화된 형태로도 읽을 수 있다. 퀴즈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대개 떠오르는 것은 스튜디오에 출연진들이 모여 문제를 맞추는 폐쇄적인 형태. 하지만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그 퀴즈 형식이 마치 게임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은 현장성을 보여주었다.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던져지는 문제를 풀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그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문제집 속에 박제화된 퀴즈를 살아있는 형식으로 바꿔주는 힘을 발휘한다.
여기서 퀴즈의 내용이 또한 중요하다. 기존 퀴즈 프로그램들이 내보냈던 그저 문제 맞추기를 위한 공감 없는 문제는 왜 그 문제를 풀어야 하나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즉 그것은 퀴즈의 과정(문제를 푸는 의미)보다는 결과(점수)에만 치중하는 퀴즈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그 의미를 부각시킨다. 잘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우리의 문화유산으로서의 경주의 보물들을 알아간다는 취지는 퀴즈의 과정 자체를 그저 몸 개그를 위한 것이 아닌 의미 있는 작업으로 만들어낸다.
또한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지역주민들과의 교류는 그 의미를 더욱 확장시킨다. 문제를 잘 풀어내는 일부 엘리트 지식인들만의 경연장으로서만 기능했던 퀴즈 프로그램은 이런 형태와 만나면 보통사람들의 지식에 대한 진짜 호기심을 끄집어낸다. 조금 어리숙하고 배운 건 적어도 알고 싶은 욕구는 그 배움의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 아닌가. 이 부분은 분명 작금의 달라진 지식사회 속에서 누구나 참여시킬 수 있는 형태로서의 새로운 퀴즈 형식을 예감하게 만든다.
이러한 형식은 또한 여행 프로그램의 새로운 접근방식으로도 볼 수 있다. 예능과 여행의 만남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1박2일’이 야생에 대한 도전이라면,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같은 지식여행에 대한 갈증이다. 답답한 일상탈출과 함께, 체험이 가져다주는 살아있는 지식의 경험은 바로 다름 아닌 여행 속에서 우리가 흔히 추구하던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따라서 예능에 스릴러, 퀴즈, 그리고 여행 형식을 접목시키는 실험을 통해, 프로그램의 긴박감(스릴러의 속도감)과, 재미(퀴즈형식의 호기심과 의미), 그리고 실제적인 지식(여행)을 전하는데 성공적이었다. 이것은 TV 프로그램으로서 과감한 형식 실험이면서, 예능의 최강자로서 그만한 힘을 가진 ‘무한도전’만이 가능한 도전임이 분명하다.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그 힘이, 청와대 같은 높은 곳으로 가는 것보다 저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보물들 속으로 내려가는 것에서 더욱 빛난다는 걸 보여준 시간이 아니었을까.
이 로고만 봐도 "띤띤~띠디~~"하는 로고송이 생각난다. 나만 그런겨? 2002년 월드컵이 끝나면서 "TV안보기"를 위해 TV를 내다버린 후에 유일하게 챙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은 무한도전뿐이다. 무한도전이 황소와 줄다리기하고 지하철과 달리기하던 "무모한도전" 시절부터 무한도전의 파격과 도전 자체가 마음에 들기도 했고, 가끔 목과 배가 아플 정도의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무한도전이 방영된 후에는 "반드시" 무한도전을 까거나 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