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월화극, 조정석과 윤균상이 살아나려면

등장하는 주연들만 놓고 보면 이만한 기대작이 없다. MBC <투깝스>의 조정석이 그렇고, SBS <의문의 일승>의 윤균상이 그렇다. 전작이었던 작품들 속에서 이 두 배우가 거둔 성취는 도드라진 면이 있어서다. 조정석은 <질투의 화신>으로 코미디 연기의 대가임을 증명한 바 있고, 윤균상은 <역적>을 통해 감정 선이 남다른 카리스마와 액션 연기가 모두 가능한 배우라는 걸 입증한 바 있다. 그래서 <투깝스>와 <의문의 일승>에 시청자들이 채널을 고정시키게 된 데는 아마도 이 배우들의 지분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잔뜩 기대감을 갖고 들여다본 이들 드라마는 어쩐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물론 이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여전히 명불허전이다. <투깝스>에서 조정석은 사기꾼인 공수창(김선호)의 영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차동탁(조정석)이라는 인물을 연기해낸다. 차동탁이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라면 공수창은 어딘지 뺀질이에 바람둥이 캐릭터인지라, 이 둘을 오가는 조정석의 1인2역이 이 드라마가 주는 코미디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공수창 역할을 맡은 김선호는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그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만일 이 드라마가 어느 정도 성과를 가져간다면 아마도 가장 큰 수확은 김선호의 발견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딘지 남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영혼 빙의’ 같은 황당한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브로맨스 코미디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웃음도 좋지만 그 속에 깔린 페이소스나 지향점 같은 것이 없는 코미디는 그저 휘발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투깝스>가 그 괜찮은 연기조합에도 불구하고 조금 황당한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이런 문제는 <의문의 일승>도 마찬가지다. 윤균상의 역시 믿고 보는 몰입도 높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설정이나 개연성은 너무 허술하다. 감옥을 들락날락한다는 그 설정 자체가 그렇고, 그 사형수 김종삼(윤균상)이 가짜 형사로 신분 세탁이 되어 비자금 천억 원의 행방을 찾는다는 이야기 전개도 어딘지 황당하다. 물론 그 비자금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적폐에 대한 뉘앙스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걸 암시하지만.

이건 이야기나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의 문제로 보인다. <의문의 일승>은 빠른 전개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떤 상황을 납득시키기 보다는 빨리 전개하고 그 속에 반전과 위기를 넣어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는’ 쪽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이러다 보니 디테일이 부족해지고 그 부족한 디테일은 개연성 부족으로 다가온다. <의문의 일승>이 보완해야 할 건 이야기의 속도보다는 이 인물의 행동 동기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디테일한 개연성이 아닐까. 

그래서 <투깝스>나 <의문의 일승>은 조정석이나 윤균상 같은 배우들이 만들어낸 기대감을 생각해보면 2% 부족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 <투깝스>가 그 코미디 속에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부분이 부족하다면, <의문의 일승>은 빠른 전개만큼 이를 납득시키고 몰입시키는 디테일들이 부족하다. 이 각각의 부분들이 향후 어떻게 채워질 것인가가 월화극 지상파 성패의 향방을 가르지 않을까. 과연 마지막에 웃는 배우는 누가 될까. 조정석일까 윤균상일까.(사진출처: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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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이런 허술한 대본으로 제대로 된 일승 가능할까

뭐 이런 허술한 드라마가 있을까. 이야기와 액션은 폭주하지만 시청자들은 그 폭주하는 전개에 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나 기본적인 걸 이 드라마가 지키지 못하고 있어서다. 개연성 부족. 사형수가 ‘어쩌다 탈옥수’가 된다는 그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그럴 듯한 과정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새로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의문의 일승>. 이렇게 해서 과연 일승이라도 할 수 있을까.

물론 모든 드라마가 현실성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만화 같은 전개라고 해도 나름의 개연성은 주어야 하지 않을까. 무슨 감옥이 마음만 먹으면 나갔다 들어왔다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렸을까. 또 탈옥한 마당에 시체를 처리하는 의문의 인물들을 만나 쫓기게 되는 상황이 마침 벌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의문의 일승>에 대한 기대를 만든 건 윤균상과 정혜성 같은 매력적인 배우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윤균상은 <육룡이 나르샤>, <역적>, <닥터스> 같은 작품을 거치며 성장 가도를 걷는 배우이고, 정혜성은 <구르미 그린 달빛>과 <김과장>을 통해 매력적인 연기자라는 걸 증명했던 배우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의 조합이 어떤 그림을 그려낼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배우들이 출중해도 역시 드라마는 대본과 연출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의문의 일승>은 대본이 너무 허술하다. 사형수에서 탈옥수 그리고 이제는 형사 역할로 변신하는 인물이 바로 오일승(윤균상)이다. 결코 쉽게 납득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 변화 과정에 대한 디테일한 설득이 이뤄져야 비로소 이 이야기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오일승이 탈옥을 결심하게 되는 그 이유도 사실 너무 약하다. 자신 때문에 살인 공범 누명을 쓰고 감방에 들어온 딱지(정성우)의 여동생 은비(김다예)을 노리는 감옥 동기의 살인을 막기 위해서가 그 탈옥의 이유다. 그렇게 탈옥해 은비를 살해하려는 범인을 막는 과정도 저게 가능할까 싶은 개연성의 부족을 보인다. 

옥상 물탱크에 묶어놓고 물이 차올라 죽을 위기에 처한 은비를 구하는 과정은 시청자가 바라보기에 끔찍한 장면일 수밖에 없다. 은비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오일승이 형사들과 대치하고 결국 물탱크에 구멍을 내서 구하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그 과정도 어떻게 된 것인지 생략되어 있다. 대본도 대본이지만 이 물탱크에서 은비를 구해내는 과정의 연출은 스펙터클하긴 해도 잘 납득이 되진 않는다. 

아마도 <의문의 일승>은 다소 만화적인(그렇다고 모든 만화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야기에 연출을 의도하고 있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납득되지 않는 상황의 반복 끝에 남는 건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들뿐이지 않을까. 특히 강간살인을 의도하는 범인의 면면들은 너무 자세하게 등장해 보기에 불편할 수 있었다. 

첫 회이기 때문에 시선을 잡아끌려는 목적이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스펙터클하고 빠른 전개를 보여주려 했을 테지만, 인물과 스토리에 대한 납득 없이 그저 보여주기식 전개는 오히려 드라마에 대한 몰입만 방해할 뿐이다. 이런 대본과 연출로는 제 아무리 윤균상 같은 배우라도 매력을 드러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첫 방의 부족한 면들은 과연 <의문의 일승>은 채워나갈 수 있을까.(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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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마음을 훔친 ‘역적’, 진정한 리더를 묻다

“오냐 내 아버지는 씨종이었고 나는 씨종 아모개의 아들이다. 허나 내 몸에 흐르는 홍아모개의 피는 그 어떤 고관대작의 피보다 뜨겁고 귀하다. 이 중에 내게 흐르는 것처럼 뜨거운 피를 지닌 자 내게 흐르는 것처럼 귀한 피를 지닌 자 그런 자만이 이 위대한 싸움을 함께 할 수 있다. 그대들에게 어떤 피가 흐르는가. 그대들 중 누가 나와 함께 할 것인가.”

'역적(사진출처:MBC)'

향주목에서 연산(김지석)이 이끄는 관군과 길동(윤균상)이 이끄는 백성들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충원군(김정태)은 길동의 출신을 거론하며 그런 종의 자식을 너희들은 ‘홍장군’이라 따르고 있냐고 비아냥댄다. 하지만 길동은 스스로 자신이 씨종의 아들이라는 걸 밝히며 자신의 피는 그 어떤 누구보다 뜨겁고 귀하다고 말한다. MBC 월화드라마 <역적>이 보여주는 이 장면은 대통령 선거일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누가 진정한 이 시대의 리더일까. 

연산이 가진 권력이란 결국 핏줄로 이어받는 것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권력이 폭력을 통해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향주목을 그 권력유지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지만, 오히려 그것은 그가 가진 앙상한 권력의 실체를 드러내게 했다. 이미 백성들의 마음은 점차 향주목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길동을 향하고 있었던 것. 

길동은 심지어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 가령(채수빈)에게 직접 활을 쏘았다. 그녀를 볼모 삼아 항복시키려는 연산 앞에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드러낸 것. 그의 이런 희생으로 향주목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관군과 대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위치를 더 중하게 여겨야하는 리더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역적>은 부제로 붙어 있는 ‘백성을 훔친 도적’이라는 수식어가 지목하고 있는 것처럼 누가 진정으로 백성의 마음을 얻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드라마다. 사실 군사를 쥐고 있는 연산이 무력으로는 더 강력할지 모른다. 그래서 그 무력을 통해 백성들을 장악하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힘이 되어버린다. 그럴수록 몸을 사리지 않고 백성을 위해 싸우는 길동에게로 백성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백성을 훔친 도적’이라는 표현은 중의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즉 연산의 입장에서 보면 이 표현은 표면적인 의미 그대로 백성을 강제로 ‘훔친’ 도적이라는 의미일 게다. 하지만 길동의 입장이라면 그 의미도 달라진다. 그것은 아마도 백성의 ‘마음을’ 훔친 도적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역적>은 그래서 그 제목 자체도 이중적이다. 도대체 누가 도적이고 누가 왕인가. “왕은 도적이 되었고, 도적은 왕이 되었다”는 대사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다. 

모리(김정현)와 맞상대를 하게 된 길동은 말한다. “네 뒤에 임금이 있겠지? 내 뒷배가 누군지 아느냐? 저 백성들이 내 뒷배다.” 지난 해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올해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조기에 치러지게 된 장미대선. 그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늘 가슴에 담아둬야 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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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기꺼이 홍길동과 함께 역적이 되고픈 이유

연산(김지석)의 폭정은 날이 갈수록 혹독해진다. 여악들이 아기를 낳자 그 아기를 엄마에게서 떼어낸 후 땅에 묻어버리라고 하고, 임금이 사냥을 나오는 곳에 들어오는 자는 목을 잘라 성문 앞에 내건다. 급기야 학정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익명서’를 붙인다. 지금으로 치면 대자보다. 그 익명서를 붙이다 잡힌 이들은 역시 죽을 때까지 두드려 맞는다.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이 하필이면 연산군 시절의 그 암흑기를 사극의 소재로 삼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결국 사극이란 과거의 어느 시점을 현재로 가져오는 것이고, 따라서 그 시점이란 현재와 조우하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역적> 작가의 우리네 현재의 삶이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이 연산군 시절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다. 

<역적>에는 지금의 우리가 처한 시국 상황을 연상시키는 대목들이 다수 등장한다. 익명서를 붙였다고 끌려가 죽어가는 백성들을 보다 못한 길동(윤균상)이 그들을 구해내고 싶다고 하자 길동의 형 길현(심희섭)은 궁의 담이 높아서 백성들이 그걸 넘지 못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것보다는 감히 임금을 범하지 못하는 그 ‘마음의 담’이 높아서라는 것.

지난 탄핵 정국 때 대통령을 감히 넘어서는 안 될 신성한 존재처럼 감싸던 이들이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마음의 담’일 것이다. 이미 시대는 왕의 시대가 아니라 국민의 시대로 바뀌었는데, 여전히 과거에 살아가는 이들은 대통령을 받들어야 할 존재로 여기고, 국민은 왕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마음의 담’이 공고해지는 건 임금 혼자가 아니라 그 주변을 둘러싼 촘촘한 권력구조 때문이다. “그래. 전하는 조선의 쌀이고 군사고 땅이지. 해서 전하 뒤에 숨어 쌀과 군사와 땅을 얻는 자들이 많아. 그자들은 아무리 임금이 학정을 해도 자신들의 안위만 보장된다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그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임금은 안전해.”

임금 주변에 달라붙어 권력과 사익을 추구하는 비선실세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임금을 보호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마음의 담’이 무너지지 않고 공고해진다는 걸 <역적>은 길현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낸다. 결국 여기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건 백성 스스로 의식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길동은 숨어서 움직이는 도적이자 의적이 아니라, 나서서 세상을 바꾸는 역적이 기꺼이 되려 한다.

“성님, 말을 들으니 사람들 마음의 담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줄 이제야 알겄소. 해서 밤에 몰래 백성들 꺼내오는 일은 안하겄소. 대신 벌건 대낮에 백성들 꺼내 올랍니다. 만약 벌건 대낮에 임금님 안방에 들이닥친 미친놈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백성들 마음의 담이 좀 낮아지지 않겄소?” 숨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서서 모든 것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게 싸워나가는 것. 이것은 우리가 최근까지 촛불을 들고 부조리를 알리려고 했던 그 집회의 의미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그 궁극의 목표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임금이지만 감히 범할 수 없다는 ‘마음의 담’ 때문에 하지 못했던 임금을 바꾸는 일이다. “하늘에서 큰 눈이나 우박이 내리면 한 해 농사를 다 망쳐버리지요. 그런데 어쩌겠소. 그건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임금님은 하늘에서 내리는 우박도 아니고 큰 눈도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요.”

길동의 이 연설은 마치 탄핵 정국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들려오던 그 목소리들을 고스란히 연상케 한다. 연산의 폭정과 비선실세들 그리고 이어지는 탄핵의 목소리. <역적>은 탄핵 정국을 일찌감치 예견이라도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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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윤균상, 사적 복수에서 공적 소명으로

“성님, 어리니를 봤소. 어리니가 임금님이 무섭다며 울고 있었소. 성님, 나 그동안 못된 짓 많이 하고 살았소. 충원군한테 복수도 하고 금주령 때 술 팔믄서 건달들 제끼느라 손에 피도 많이 묻혔소. 억울한 사람들 도와준답시고 미운 놈들 다리도 숱하게 분질러 줬소. 야, 나는 화 많이 내고 살았소. 그런디 성, 워째 지금은 화가 안 나고 맴이 슬프요. 집 뺐기고 가족 잃은 사람들 눈물이, 우리 어리니 눈물 같고, 가령이 눈물 같고, 소부리 아재 눈물 같소. 나는 툭하면 화가 나는 존재인데, 지금은 어째 화는 안 나고 눈물만 난답니까?”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에서 드디어 길동(윤균상)이 세상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가족과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에 대한 사적인 복수와 비뚤어진 세상에 대한 울분으로 억울한 백성들 괴롭히는 이들을 응징해왔다면, 연산(김지석)의 폭주로 망가져가는 세상 앞에 그는 조금씩 공적인 소명의식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분노하기보다는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게 됐다. 핍박받는 이들이 세상과 싸우지 않고 울기만 한다는 것에 오히려 화를 내고 보기 싫다 했던 그가 아니던가. 그랬던 그가 이제 쓰러져 가는 백성들의 피를 보며 그 아픔이 타인의 것이 아니라 마치 가족의 아픔인 것으로 느끼게 됐다. 그의 그릇은 세상을 품을 만큼 커졌다. 처음에 그 그릇의 크기는 가족을 담는 정도였지만 그 후 익화리 사람들을 담는 정도로 커졌고 이제는 세상을 담을 정도로 커졌다. 

<역적>은 우리에게 고전의 인물로 남아있는 ‘홍길동’을 재해석한 작품. 연산군 시절 실존했던 도적 홍길동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런데 어째 그 옛 시절의 이야기가 그저 옛날이야기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연산군이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이 권력자의 불통과 폭주로 그려지면서 그것이 어떻게 백성들의 고혈을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고, 길동이라는 애기장수라는 메시아의 등장이 마치 백성들 하나하나의 소망이 만들어낸 거대한 힘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폐비되어 사약을 받은 어머니를 가진 불행한 과거사는 연산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연산의 주변에는 그래서 비선실세들이 넘쳐난다. 그의 아픔을 건드리고 그 고통을 촉발시켜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이들. 연산의 폭주를 막기 위해 대간에서 나서 왕의 잘못을 고하지만, 그들을 모두 처벌하는 풍경은 언론의 입을 막으려는 권력의 행태와 무엇이 다를까. 

위를 범했다는 이유로 노비들의 혀를 자르고 발목을 잘라내는 그 행태들을 낱낱이 기록한 행록과 그것을 뒤에서 조종하는 송도환(안내상)을 위시해, 충원군(김정태), 참봉부인 박씨(서이숙) 같은 이들이 바로 비선실세다. 그들은 왕을 위한답시고 충언을 말하지만, 사실은 권력 시스템을 공고히 하고 양반의 백성 수탈을 정당화해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유지하려는 인물이다. 불통하고 폭주하는 왕, 그리고 주변을 에워싼 비선실세들. 이러니 <역적>의 홍길동 이야기가 옛 이야기로 보일 리가 없다. 

길동을 잡아 힘줄을 끊고 뼈를 부숴 애기장수의 힘을 없애버린 연산은 그를 갖고 사람사냥 놀이를 한다. 연산은 스스로를 사냥꾼으로 그리고 길동을 그가 언제든 잡을 수 있는 짐승으로 다룬다. 연산은 왕이고 길동은 한갓 도적이다. 그런데 <역적>은 그 실상이 정반대라는 걸 보여준다. 과연 누가 진짜 왕이고 누가 도적이며,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짐승인가. 백성들의 고혈을 빼먹는 이가 도적이고, 사람을 향해 화살을 겨눈 자가 짐승이 아닌가.

“난 인간을 믿지 않는 인간이다. 폭력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정치인이다. 난 오래 전부터 인간은 폭력을 써야 다스려지는 존재라는 것을 깨우쳤을 뿐이다.” 연산이 길동에게 하는 이 말이 주는 울림은 그래서 더 크게 다가온다. 인간을 믿지 않는 존재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정치의 유일한 길을 폭력이라 여기는 이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결코 다스려지는 존재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역적>은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통해 지금의 대중들에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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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홍길동, ‘역적’의 재해석이 흥미로운 까닭

“상전나리 나리께선 아내를 죽인 남편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이 나라의 법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 같은 일자무식 무지랭이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겠는데 똑똑하신 웃전들께선 진정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걸 모르신단 말입니까?”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윤균상)은 상전 김자원(박수영)에게 그렇게 묻는다. 간통했다며 아내를 살해한 정중부에게 죄를 묻기는커녕, 그에게 복수를 한 장인 김덕형을 한성부 서윤 조정학(박은석)이 오히려 신문을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부당함을 되묻는 질문이다. 

헬조선. 남편이 아내를 때려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 세상이다. 양반은 양인을 때려죽여도 죄를 묻지 못하는 세상. 그것이 바로 대명률에도 들어있는 헬조선의 법도란다. “해서 간통한 아내는 임금을 저버린 신하를 벌주듯 남편이 벌주게 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자라는 것은 본시 집안에서는 아비를 따르고 시집을 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는 것이지요.” 충원군 이정(김정태)은 이것이 나라가 바로 서는 길이라고 강변한다. 

충원군의 그런 생각의 뒤에는 사실상 유자를 내세워 국정을 농단하는 송도환(안내상)이라는 비선실세가 존재한다. “어찌 인간에게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이 없겠습니까. 임금과 신하, 아비와 자식,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구분이 있는 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죠. 이런 구분이 없는 세상이란 무질서이고 무질서란 곧 뭐다? 혼란을 불러오게 되는 것입니다. 해서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을 부리고 천한 사람은 귀한 사람을 따라야 하는 것이오. 이러한 이치가 이루어지면 나라는 저절로 다스려질 것이고 이러한 이치가 이루어지면 집안은 저절로 다스려질 것이며 임금은 임금다워지고 신하는 신하다워지고 남편은 남편다워지고 아내는 아내다워지는 것입니다.”

송도환의 요설은 신분사회, 차별사회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런 반상의 계급 안에서 질서가 유지되어야 나라가 저절로 다스려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결국 ‘다스린다’는 표현 안에 이미 숨겨져 있듯이 권력자들이 말하는 ‘통치의 기술’을 교묘한 유자의 논리를 통해 풀어낸 요설일 뿐이다. 

홍길동은 한성부에 억울하게 끌려간 김덕형을 구해내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전소설 속에 등장하는 홍길동이야 복면 쓰고 당장 한성부 감옥을 공격했겠지만 그러는 대신 그는 김자원에게 부탁해 연산(김지석)을 활빈정에 오게 하고는 그의 어머니 폐비 윤씨가 억울하게 죽어간 이야기를 듣게 만든다. 폐비 윤씨의 억울함을 통해 김덕형의 딸의 죽음에 동정심을 갖게 만들기 위함이다. 

결국 홍길동의 이런 마음을 흔드는 지략으로 연산은 신하들에게 묻는다. “정중부가 아내를 죽인 것이 마땅하다 이 말인가. 진정 그대들 모두 그리 생각하는 것인가.” 그리고 마침 자신과 함께 수학해온 조정학이 자신의 집안을 풍비박산 낸 조참봉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길현(심희섭)은 분연히 나서 사건의 부당함을 피력한다. 

“허나 아내 김동이 이미 죽어 참으로 남편을 배신했는지 알 수 없지 않사옵니까. 헌데 아내를 죽인 후에 그 아내가 투기하였다 간음하였다 빠져나간다면 죽은 아내의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하겠나이까. 그럼에도 한성부 서윤 조정학이 정중부의 죄상은 밝힐 생각도 하지 않고 외려 딸을 잃은 김덕형만을 신문하고 있나이다.” 길현의 이 말에 동조한 연산은 김덕형을 풀어주고 정중부의 죄를 낱낱이 밝히며 한성부 서윤 조정학을 다른 직으로 좌천시키라는 명을 내린다. 

억울하게 남편에게 맞아죽은 한 처자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것이지만, 이 안에는 <역적>이 재해석하고 있는 홍길동의 흥미로운 면면이 드러난다. 물론 괴력을 사용하는 홍길동의 모습이 간간히 등장하고는 있지만 <역적>은 그렇다고 홍길동은 그런 의적으로만 해석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의적이라기보다는 사업가의 외피를 쓴 혁명가에 가깝다. 

그가 혁명가로 보이는 까닭은 이른바 ‘삼종지도’ 운운하며 임금과 신하가 아비와 자식이 또 남편과 아내가 차별받는 세상에 반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큰 어르신으로도 불리고 길동이로도 불리며 또 발판이라도 불렸던 홍길동은 이러한 수직적인 계급구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채수빈)에게 “여자라 하여 밥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길동이 아닌가. 

<역적>이 단순히 홍길동을 탐관오리 혼내주는 의적으로 그리지 않고 헬조선의 잘못된 시스템과 대적하는 혁명가로 그리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더 이상 탐관오리 혼내주는 의적이 보여주는 판타지가 지금의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속 시원한 해결책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그깟 탐관오리 몇을 혼내 준다한 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지금의 대중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적>이 그리고 있는 의식 있는 혁명가로서의 홍길동이라는 캐릭터가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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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은 무조건 장편? 늘어뜨리기보단 더 압축할 필요 있다

우리네 사극은 아직도 그 앞에 ‘대하’라는 수식어를 붙이길 좋아한다. 그래서 사극이라고 하면 적어도 30부작, 길게는 50부작 정도의 장편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선입견 같은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하사극’의 시대가 여전히 유효할까. 최근 방영되었거나 방영되고 있는 사극들, 이를테면 KBS <화랑>, MBC <역적>, SBS <사임당, 빛의 일기>를 보면 사극이라고 무조건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종영한 <화랑>의 경우 20부작이었지만 굵직한 이야기는 실종되고 대신 인물들의 멜로와 소소한 미션들이 매회 배치되면서 기대이하의 성적으로 끝나버렸다. <화랑>이라고 하면 삼국통일을 이룬 그 인물들의 장중한 이야기가 있어야 했지만 이 사극은 화랑을 ‘꽃미남’ 아이돌처럼 해석함으로써, 애초에 하려던 신분으로 좌절된 청춘들의 현실을 담아내려던 의도마저 흐려져 버렸다. 이런 이야기라면 굳이 20부작이 필요했을까. 

30부작 <역적>은 역사에 기록된 실존인물 홍길동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것이지만 그 절반에 해당하는 16부 동안 길동의 아버지 아모개(김상중)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물론 이 사극이 갖는 현재의 현실을 빗댄 해석들은 실로 주목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지나치게 늘어진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주인공 홍길동의 활약과 이야기들이 생각만큼 다양하게 전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괜찮은 기획의도를 가진 작품의 시청률이 왜 갈수록 꺾어져 8%대까지 주저앉았는가를 설명해준다. 

역시 30부작인 <사임당, 빛의 일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 사극과 현대극을 뒤섞은 드라마는 벌써 17부가 방영되었지만 애초에 그리려던 사임당(이영애)의 예술혼은 아직까지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고려지를 재현해내려는 사임당의 이야기가 치열한 대결구도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애초 기획의도였던 ‘히스토리’가 아닌 ‘허스토리’로서의 워킹맘 사임당의 일과 사랑, 그리고 예술의 세계를 얼마나 잘 구현하고 있는가는 미지수다. 

사실 30부작은 그나마 과거의 사극들이 대부분 50부작을 기점으로 만들어졌던 것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방영되고 있는 <역적>이나 <사임당>을 두고 보면 그 30부작도 너무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매회 한 가지씩의 굵직한 사건들이 전개되며 밀도 있는 드라마를 기대하는 시청자들로서는 “아직도 그 얘기야?”라는 답답함을 토로하는 게 당연하다 여겨진다. 

지상파에 종편, 케이블까지 합쳐져 우리네 드라마 편수는 과거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지상파가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를 빼고도 한 주에 6편을 내놓고 있고, 케이블이 월화와 금토 또는 토일 편성으로 3편을 종편은 매 주 한 편씩을 내놓고 있다. 이것만 해도 일주일에 시청자들에게 보여지는 드라마가 10편에 달한다. 

이처럼 늘어난 드라마 편수는 시청자들이 더 압축적인 드라마를 요구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괜스레 질질 끌기보다는 한 편을 봐도 몇 편을 본 것처럼 확실한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가 요구되고 있는 것. 그게 아니라면 굳이 채널을 고정시킬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극은 그래서 과거의 연속극의 특성에서 더 과감한 탈피를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모든 사극이 그래야한다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육룡이 나르샤> 같은 사극은 50부작이었지만 매회 빈틈이라는 걸 느끼기 어려울 만큼 압축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역적>이나 <사임당> 같은 사극은 굳이 30부작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느슨함을 보이고 있다. 이래서는 그 어느 때보다 눈높이가 높아진 이탈하는 시청자를 잡기는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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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초반의 속도감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어느새 반환점을 돌았다. 전체 30부작 중 15부가 지나간 것.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홍길동(윤균상)의 비상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앞부분의 대부분을 아모개(김상중)라는 길동의 아버지의 존재감이 채워 넣었고, 이제 겨우 홍길동이 활빈정의 수장이 되었지만 아직 각성하지 못하고 왕 연산군(김지석)의 뒷배를 봐주는 건달놀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역적(사진출처:MBC)'

사실 이런 느림보 전개가 되리라고는 <역적>의 초반만 해도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길동 아버지 아모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참봉을 죽이고 각성해 노비 처지에서 벗어나 익화리에서 터전을 만들었지만, 충원군(김정태)을 뒤에 업고 복수하는 참봉부인(서이숙)에 의해 익화리 사람들과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그 상황까지가 숨 가쁘게 진행된 바 있다. 

그런데 길동이 충원군에게 복수를 하고 나서 내관 김자원(박수영)을 매개로 연산과 관계를 맺는 이야기는 너무 느슨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아모개의 죽음을 지나치게 긴 분량으로 잡아넣은 지난 회에서부터 느껴졌던 부분이다. 물론 아모개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이 그만큼 컸다는 걸 방증하는 일이겠지만 드라마가 앞으로 나가지 못함으로써 긴장감이 흐트러진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연산이 금주령을 내리고 그걸 이용해 돈을 모아 다시 연산에게 바치는 그 연결고리에서 그나마 긴장감을 유지하게 한 유일한 인물은 김자원이다. 한편으로는 홍길동을 위험인물로 바라보면서도 또한 이용하려는 듯 보이는 이 속을 알 수 없는 내관의 태도가 아니었다면 이 한 회 분량의 이야기는 너무 심심할 수 있었다. 어째서 초반 그 좋은 설정과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걸까.

길동을 중심으로 활빈정 사람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건 이 드라마가 자칫 너무 분위기만 잡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순수노비혈통의 애기장수라는 홍길동에 대한 좋은 재해석을 담아 놓고도 어째서 이런 외관에만 집중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드라마의 힘은 긴장감을 놓지 않는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에서 나온다. <역적>이 그토록 좋은 캐릭터와 재해석을 갖고도 시청률이 오르기는커녕 갈수록 빠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도 입소문으로 12.5%(닐슨 코리아)까지 올랐던 시청률은 이제 9,7%까지 주저앉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홍길동은 도대체 언제쯤 각성해 연산군과 대적해나갈까. 물론 그걸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이 시청자들로서는 너무나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겉멋을 부릴 일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쭉쭉 뻗어나가는 홍길동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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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자체발광', 만듦새에 비해 시청률 야박한 이유

재밌는데 왜 시청률이 낮을까. MBC의 새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는 최근 대중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오피스물이다. <미생>의 느낌이 물씬 나는 청춘들의 짠내가 그 정서를 이루고 있고, 여기에 <김과장>이 갖고 있는 심지어 만화적인 코믹 터치가 잘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한참을 웃다보면 어느 순간 뭉클해지는 그런 공감과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는 드라마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드라마의 소재나 만듦새에 비해 <자체발광 오피스>의 시청률은 3.9%(닐슨 코리아)에 머물러 있다. 낮아도 너무 낮은 수치다. 경쟁작인 KBS <김과장>이 여전히 가장 뜨거운 드라마로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이런 수치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화제작 <역적>도 어찌된 일인지 반응만큼의 시청률 반등이 좀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역적>은 12%까지 시청률이 오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10%대로 시청률이 떨어졌다. 

비평적 관점으로 봐도 <역적>은 최근 보기 드문 수작으로 평가된다. 홍길동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가져왔지만 그 소재를 현대적 감각과 정서에 맞게 재해석하고 연출한 면은 실로 박수 받을만 하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 슈퍼히어로물을 다루듯 홍길동이란 인물을 애기장수로 해석한 점이나, 연산군이라는 왕과 대적해나가는 민초들의 왕의로 대립구도를 만든 것도 예사롭지 않은 작품의 완성도를 말해준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오랜만에 월화의 <역적>도 수목의 <자체발광 오피스>도 괜찮은 만듦새를 보이고 있는 마당이지만, 이렇게 고전하고 있는 상황은 이 문제가 드라마 외적인 데서 생겨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그것은 다름 아닌 MBC라는 방송사의 브랜드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심이다. 

사실 MBC의 이전 작품들이었던 <불야성>이나 <미씽나인> 역시 거의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들로 끝을 맺었다. <불야성>은 3%에서 4%를 오가는 시청률을 기록했고, <미씽나인> 역시 비슷한 수치로 초라하게 종영했다. 말이 3%, 4%이지 이 정도는 수치는 요즘 tvN이나 JTBC 같은 비지상파 채널에서도 훌쩍 넘기는 시청률이다. 

물론 이러한 MBC드라마가 드라마 자체의 만듦새에 비해 박한 시청률을 가져가는 이유가 전적으로 방송사 이미지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그리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MBC의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경영의 제작 관여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MBC를 외면하는 이유가 된 게 사실이다. 뉴스, 교양 프로그램에서부터 시작된 이탈이 최근 드라마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방송사의 이미지가 콘텐츠에 어떻게 연관되어 영향을 미치는 지를 정확히 파악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최근의 보수 편향된 흐름을 보이는 MBC의 이미지가 <역적>이나 <자체발광 오피스> 같은 사회 비판적 경향을 담은 드라마와 시청층에 있어서 엇박자를 이룬다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보편적 시청층을 확보하려면 편향은 피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MBC는 이제 콘텐츠가 재밌고 잘 만들어지기까지 했는데 성과가 적은 이런 기현상을 해결해야할 숙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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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부터 ‘도봉순’까지 드라마에 깔린 사이다 정서

드라마 제작자들은 드라마의 성패는 그 누구도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 사실이다. 애초의 기획한대로 대중들이 받아들여주는 드라마도 있지만, 기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어 난항을 거듭하는 드라마도 있다. 예를 들어 이제 종영한 <미씽나인> 같은 드라마는 결국 용두사미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이전에 방영되었다면 더 주목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미씽나인> 같은 현실의 정서를 반영하기 어려운 장르물을 시청자들로서는 왜 봐야하는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김과장(사진출처:KBS)'

이런 상황은 KBS에서 새로 시작해 방영되고 있는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도 마찬가지다. 믿었던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의외의 미스터리한 사건 속으로 빠져들면서 그간 잊고 살았던 자기 자신을 다시금 자각해나가는 아줌마의 이야기.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지금의 시국에 이 이야기를 놓고 보면, 역시 봐야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미드적인 미스터리를 깔고 있지만 결국은 그 많던 아줌마의 성장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같은 드라마는 이런 드라마들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지금의 시국을 만나 탄력을 받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박정우(지성)가 처한 상황, 즉 무고한 그가 감옥에 갇혀 고통을 당하고 어떻게든 그 감옥을 빠져나와 진실을 밝히며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반격하는 그 모습을 시청자들은 마치 탄핵 정국의 결과를 기다리듯 간절히 바라게 된다. 답답한 현실이 이 드라마의 고구마 전개를 그대로 담고 있고, 그래서 그걸 풀어줄 수 있는 반전을 끝없이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그러고 보면 작품과 현실이 완벽하게 조우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 홍길동을 재해석한 이 사극은 그 틀거리 구조만 보면 연산 같은 권력자와 대적하는 길동과 그 일당들의 이야기다.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살아온 그 민초들이 힘을 모아 자신들을 핍박해온 충원군(김정태)과 나아가 그 위의 연산군(김지석)에게 일격을 가하는 이야기. 어찌 지금의 대중들의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른바 아예 사이다 드라마라고 지칭되는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과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은 갑질하며 때로는 폭력을 일삼는 세상 앞에 나선 서민 히어로로서 김과장(남궁민)과 도봉순(박보영)이라는 캐릭터를 세운다는 점에서 이미 현실적 공감대를 가져가는 드라마다. 요즘 같은 시국에 이러한 서민편에 선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이 열렬히 원하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며 심지어 박수를 친다는 시청자들이 있을 정도니 그 현실의 팍팍함과 드라마의 시원함이 얼마나 교차되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드라마의 성패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말은 드라마가 주는 느낌이 그걸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의 정서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뜻이다. 최근의 드라마들의 성패를 들여다보면 지금의 대중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가 명쾌하게 드러난다. 답답한 시국과 현실 속에서 속 시원한 그 무엇이 있는가 하는 점은 그래서 최근 드라마들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사이다를 갈망하는 대중들은 드라마 판도까지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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