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이동건과 정지훈, 흥미진진한 대결 뒤 남는 의구심

인과론.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그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된다는 이론. 그렇다면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 원인을 제거하는 건 정당한 일일까. JTBC 금토드라마 <스케치>는 스케치로 예고된 살인을 막으려는 이들이 등장한다. 미래를 그리는 유시현(이선빈)과 그와 사건에 함께 뛰어들게 된 강동수(정지훈)가 그들이다. 그 스케치를 통해 강동수의 약혼녀 지수(유다인)가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 유시현은 그래서 강동수가 하려는 행동을 바꾸려고 한다. 그렇게 하려는 행동을 바꾸면 원인이 달라지게 되고 그것이 결과도 바꿀 수 있으리라 여기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과론을 뒤집으려는 행동이다. 일어날 사건에 피해자가 연루되지 않기 위해 하려던 행동을 바꾸는 것. 하지만 이런 대응으로 미래를 바꾼다는 건 소극적인 행동일 수 있다. 당장 피해자는 사건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전히 남아있는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인과론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역시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가진 장태준(정진영)이다. 장태준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잠재적 범죄자’를 미리 처단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그가 김도진(이동건)에게 술을 마시는 한 사내를 죽이라고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 사내는 음주운전으로 결국 무고한 모녀를 죽게 만든다. 그런데 과연 이건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일까. 

‘잠재적 범죄자’는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그런 일을 벌일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를 살해하는 건, 그 자체가 범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케치>가 그리는 유시현과 장태준, 그리고 강동수와 김도진의 대결은 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능력 앞에 놓여진 딜레마의 대결이 된다. 

성범죄자 서보현(김승훈)이 지수를 물에 빠뜨리고 도주했을 때, 강동수는 그를 추격하라는 유시현의 말을 따르지 않고 지수를 구하려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래서 강동수는 간신히 지수를 구조해내지만, 서보현을 쫓아간 유시현은 그에게 맞아 쓰러지고 결국 그를 놓쳐버린다. 하지만 강동수가 지수를 구하기 위해 유시현과 함께 서보현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그의 공범자는 홀로 김도진의 집에 침입해 그의 아내를 살해하게 된다. 강동수의 개입으로 결과가 바뀐 것이지만, 이 바뀐 결과는 원인이 되어 다시 지수가 살해되는 결과로 돌아온다. 지수를 해하려는 서보현을 사전에 알게 된 김도진이 살해했고,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강동수는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지수를 안고 오열하게 되는 것.

이처럼 원인이 바뀌고 그래서 결과도 바뀌지만, 그 결과가 다시 부메랑처럼 돌고 돌아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흥미롭다. <스케치>가 그저 예지능력을 소재로 가져와 벌어질 사건을 막기 위한 형사들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일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건 이 드라마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2회 마지막 장면에 김도진이 서보현을 죽이고, 지수에게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한 말에 담긴 뉘앙스는 어떤 의구심을 남긴다. 그는 진정 지수마저 살해한 것일까. 그건 어쩐지 김도진이라는 캐릭터의 과잉된 행동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내의 복수를 한 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할 일이 남았다”며 무고한 지수를 살해한다는 게 납득될 수 있는 일일까.

물론 그 장면이 삭제되어 있는 점으로 보면, 지수의 죽음이 김도진에 의한 살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일말의 예감을 갖게 만든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수의 죽음이 너무 의도적인 강동수와 김도진의 대결구도를 위한 설정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설정이 중요한 건, 이 드라마가 인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결구도나 갈등을 위해 인물을 소모적으로 다루는 것이라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가 어렵게 될 수 있다. 만일 결국 김도진이 지수를 살해한 것이라면, 그만한 납득할 이유가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사진:JTBC)

동체시력, 기시감, 요즘 로코 남주들의 흔한 능력들

 

tvN <또 오해영>에서 남자주인공 도경(에릭)의 직업은 음향감독이다. 그는 사소한 음향조차 그저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프로다. 직원들은 쓸데없이 예술 한다고 투덜대지만 실제로 그가 만들어낸 음향은 확실히 작품을 더 빛나게 만든다. 술을 마시다가도 그 술집의 소리가 갑자기 좋다며 음향기기를 가져와 녹음을 하고, 자신이 하는 일상의 소리들을 담기 위해 무시로 녹음기를 틀어놓는 그는 이 일에 푹 빠져 있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가난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이른바 로맨틱 코미디의 금수저는 아닌 캐릭터다. 금수저는커녕 그의 엄마는 그의 앞길을 막는 존재다. 억누르지 못하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자식에게 손을 벌리고 또 스폰서에 가까운 남자를 여전히 찾아다닌다. 남자주인공은 직업적으로는 행복해보이지만 가족사는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의 다 가진 남자들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다. 하지만 이런 남자주인공도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그걸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자주인공인 오해영(서현진)과 관련되어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보는 능력이다. 처음에는 기시감으로 시작하지만 차츰 이 능력은 도경이 오해영과 가까워지는 장치가 된다. 그녀를 걱정하게 되고 그녀가 위험에 처할까봐 그녀를 찾아 헤매게도 만든다.

 

사실 능력이라기보다는 장애에 가깝다. 그것이 그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그가 가진 장애이자 능력은 묘하게도 그가 가진 매력이 된다. 그것은 그 능력(?) 때문에 그가 타인인 오해영에 대해 자꾸만 신경을 쓰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타인에 대해 보이는 관심은 그래서 도경의 진짜 숨겨진 매력이다. 왜 이런 특징을 <또 오해영>은 굳이 남자주인공의 매력으로 집어넣은 걸까.

 

SBS <미녀 공심이>의 남자주인공 단태(남궁민)는 인권변호사다. 변호사라고 하면 로펌에 들어가 돈 많이 버는 그런 직업으로 많이 그려져 왔지만 <미녀 공심이>에서 단태는 변호사이면서도 대리기사 아르바이트를 뛰는 그런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공심(민아)의 집 옥탑방에 들어와 월세를 사는 인물이다. 그가 현실적으로 공심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단태에게도 남자주인공으로서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동체시력이다. 동체시력 때문에 폭력배들과의 싸움에서도 그는 여유롭게 그들을 물리치고 공심을 보호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능력인지 장애인지는 애매모호하다. 그가 동체시력을 갖게 된 건 그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어린 시절 목격하게 되면서다. 그 끔찍한 장면들은 무의식 속 기억 저편에 묻혔고 대신 동체시력이라는 능력을 갖게 된 것.

 

<미녀 공심이>에서 재벌3세인 준수(온주완)는 공심의 로망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단태가 실제로 그녀를 남모르게 사랑하는 존재라는 걸 보여준다. 모든 걸 가진 재벌3세는 여전히 로망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람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남자주인공과의 대비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또 오해영>의 도경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고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과, <미녀 공심이>의 단태가 남이 못 보는 걸 보는 사람이고 가난한 서민들을 돕는 인권변호사라는 점은 이들의 매력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얘기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봐주고 그것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공감해주는 능력이 있는 남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 로맨틱 코미디에서 현실적인 능력은 남자주인공의 중요한 자질이 아니다. 그것은 물론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판타지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로맨틱 코미디는 훨씬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재벌3세 같은 인물을 통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더 이상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걸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시대라고들 말한다. 그러니 한때 결혼과 사랑을 통해서라도 꿈꾸던 신데렐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더 현실적인 사랑을 꿈꾸고 그 안에서의 행복을 느끼길 원한다. 가난해도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남자. 다른 사람들은 다 모르고 무시해도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그런 남자. 지금의 현실은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주인공들을 훨씬 더 현실적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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